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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교수에게 듣는 경영과 디자인

“한국의 CEO들, 다빈치 경영 나서라”

2009년 06월 30일 09시 31분조회수:548
이 연주 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교수는 ‘디자이너 경영론’의 전도사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통섭형 지식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혈팬인 그녀는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야말로 인문학·공학 CEO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차세대 경영자군 이라고 강조한다.

이연주 교수를 지난달(6월) 24일 ‘리카트리나’ 본사에서 만나 재계 경영 트렌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디자인 경영론에 귀를 기울였다.


Q. 홍익대 국제디자인 전문대학원 역사상 최연소(36) 전임교수로 채용되지 않았습니까. 경쟁자들이 다 쟁쟁했을 텐데요.
(세 계적 디자이너 양성의 산실로 불리는) 로데 아일랜드 디자인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공업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갭(Gap) 등 유명 브랜드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한 경험을 높이 산 것 같습니다.


Q. ‘신정아 사태’로 임용과정에서 ‘에피소드’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또 가짜가 아닌가는 의혹의 눈초리가 매서웠다고요.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로 한창 나라 전체가 들썩일 때였어요. 나이가 어리다 보니 혹시 이력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다녔어요.

(웃음) (홍익대에서) 면접을 거의 10여차례는 본것 같습니다. 저만 따로 불렀어요.

신정아
신정아 by 류동협 저작자 표시




Q. 후쿠다 보고서가 삼성그룹 디자인 경영의 허실을 지적한 지도 10여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디자인 경영은 ‘상식’이 되지 않았나요.
하지만 디자인 경영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심지어는 업계에서도 쓰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르기도 합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저도 전문가들을 연쇄 인터뷰하고 다시 한번 개념을 정리했을 정도니까요.


Q. 디자인 경영이 국내외 기업들 사이에서 지금처럼 각광 받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전날(23일) 대학 총장님이 방문을 해 한참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옛날에는 어떤 조각품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왔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약아서 뭘 내놓아도 놀라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피력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Cemetery 9797
Cemetery 9797 by casch52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메뉴 디자인, CI(Coprorate Identity), BI(Business Identity),
조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경영자는
모두 ‘레이아웃’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브랜딩(branding)’을 모르면
디자인 경영자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브랜딩은 육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Q. 이상봉 씨나 앙드레 김이 각광받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요.
(삼성전자의) 디오스 냉장고는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문양이 들어가 있어요. 하지만 이 냉장고는 결코 앙드레 김답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냉장고에 ‘패턴(pattern)’을 집어넣은 정도입니다. 이 냉장고의 문을 여닫는 방식은 과연 앙드레 김 다운 걸까요.

Moonsun's PIFF 2006 Diary 앙드레김
Moonsun's PIFF 2006 Diary 앙드레김 by toughkidcs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디자인은 물론 기능에서도 고유의 브랜드가 충분히 살아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디자인은 물론 피부가 닿는 옷감이나, 심지어는 냉장고의 문 개폐방식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 특유의 철학이 반영돼 있어야 합니다.


Q. 디자이너 출신이 경영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식당을 청담동에 오픈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프랑스 식당을 낼지, 일본 라면집을 낼지를 선택해야 하죠. 그리고 셰프(요리사)를 누가 할지, 종업원 남녀비율은 어떻게 할지 등도 결정해야 합니다. 브랜드 전략도 정해야 합니다.


Q. 디자이너 CEO가 이 모든 일들을 완벽히 처리할 수 있다는 건가요.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들은 상품이나 프로세스의 최종 형태(파이널 프로덕트)의 모습을 알고 있는 점이 강점입니다.

공대나 인문대 출신 경영자들이 아이디어를 글이나 수식으로 푼다면 디자이너들은 ‘비주얼’하게 표현합니다. 상품화 단계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강점도 있지요.

knitted star dress design | fashion portrait
knitted star dress design | fashion portrait by Adam Foster | Codefo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이 모든 작업을 경영자가 직접 감당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웃소싱이 대세입니다.
말콤 글라드웰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1만 시간 정도 하면 ‘프로페셔널’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전문가들이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애플 같은 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경영자는 이 전문가들을 조율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Q. 국내 단말기 업체 CEO들은 경쟁의 구도를 ‘B to C’에서 ‘B to B’로 전환해 노키아, 모토로라가 주도하는 휴대폰시장 경쟁의 무게중심을 뒤흔들지 않았습니까. 디자이너 출신들은 이러한 전략 능력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핵심 콘셉트를 비주얼로 표현하는 역량은 디자이너 출신들을 따라갈 수 없겠죠. 마찬가지로 공대나 인문대 출신들이 더 나은 점도 있지 않겠습니까.


Q. 지난 1980년대 디자인은 기업 경영의 한 프로세스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경영자들은 골치 아픈 디자이너를 쉽게 관리하기를 원할 따름이었죠.
디자이너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고, 경영자의 입장에서도 다스리기 힘든 유형이 아닌가요.

디자이너들의 이직을 줄이고, 그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주요 관심사였죠. 하지만 지금은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프로세스를 디자이너 경영자가 직접 감당한다는 의미로 바뀌었어요.


Q. 디자인 경영의 대명사이던 소니는 경쟁에서 한걸음 뒤처져 있지 않습니까.
일본은 장인정신이 투철한 나라지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식사를 하면서 커피를 달라고 하면 디저트 때 나온다며 거부하는 게 일본식 서비스입니다.

My Stack
My Stack by archie4oz 저작자 표시




Q. 디자인 경영이 가장 활발한 업종이 백화점, 할인점을 비롯한 유통 분야가 아닐까요. 국내 기업들의 디자인 경영 수준은 어떤 편입니까.
주요 백화점들을 방문해 보면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층마다 걸어놓았습니다. 또 다른 유통업체는 명품거리를 조성해 명품 브랜드를 모두 한곳에 몰아넣었죠.

하지만 철학을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백화점에 전시된 모든 상품, 브랜드의 콘셉트를 규정하는 고유의 정체성을 엿보기 힘들죠.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들은 상품이나
프로세스의 최종 형태(파이널 프로덕트)의
모습을 알고 있는 점이 강점입니다.
공대나 인문대 출신 경영자들이
아이디어를 글이나 수식으로 푼다면
디자이너들은 ‘비주얼’하게 표현합니다.



Q. 월마트는 ‘애브리데이 로우 프라이스’를 내걸고 있어요. 정체성을 이보다 더 명확히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마트가 한국의 월마트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를 더 알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국내 백화점들도 명품에 집착하지 말고 이러한 부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Q. 제품에서 서비스 쪽으로 경쟁구도가 옮겨가고 있는 상황도 디자이너 경영자의 희소가치를 높이는 요인은 아닐까요.
커피 잔을 디자인하는 것이 제품 디자인 입니다. 그런데 이 과제를 한번 살짝 비틀어봅시다. 커피 잔과 더불어 이 잔에 담길 커피를 ‘디자인’하는 겁니다.

이때부터 경영자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커피의 향은 어떻게 정할지, 커피 잔이 놓일 테이블을 비출 조명은 어떻게 정할지도 감안해야 합니다.

Rhode Island Cinnamon Latte
Rhode Island Cinnamon Latte by Chris Owens 저작자 표시



브랜딩도 고민거리입니다. 제품(커피 잔)에서 서비스(커피 판매)로 시장 공략의 범위가 확대되는 겁니다.


Q. 핵심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인접 분야 확장전략의 전문가처럼 들리네요. 시야가 매우 넓어야 하겠습니다.
핸드백만 디자인해서는 안 됩니다. 메뉴 디자인, CI(Coprorate Identity), BI(Business Identity), 조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경영자는 모두 ‘레이아웃’할 수 있어야 합니다.

armani chocolate
armani chocolate by vitavita15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시 살아온다면 아마도 가장 뛰어난 디자인 경영자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종교인이자 화가였습니다. 또 발명가로 활동했으며, 뛰어난 조각상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사실 학교에서 2년 공부한 뒤 디자인 경영자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훌륭한 디자인 경영자가 될 수 있습니다.

vitrv
vitrv by shingo 저작자 표시비영리




Q. 현재 운영하는 핸드백 브랜드 ‘이카트리나’는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까.
이카트리나는 예카트리나 대제를 뜻합니다. 그녀가 여왕일 때 러시아가 가장 부강했습니다. 당시의 ‘우먼파워’가 핸드백을 비롯한 모든 액세서리, 원단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Q. 디자이너가 디자인은 물론 경영도 감당하려면 ‘비즈니스 플랜’도 명확하게 작성할 수 있어야겠군요.
물론입니다.


Q. 뉴욕에서 핸드백 디자이너로 성공한 가수 출신 임상아 씨도 성공한 디자인 경영자가 아닙니까.
(저 는) 상아 씨와 인연이 있는 편입니다. 패션잡지 ‘보그(Vogue)’에도 같이 등장했습니다. 핸드백 브랜드 오프닝 파티도 도산공원에서 같은 날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제 제품이 들어가는 스토어들에 임상아 씨도 대부분 들어가 있습니다.


Q. 임상아 씨는 국내에서도 성공한 사업가로 소개되면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이카트리나 제품과 특별한 차이는 있습니까.
제가 만드는 제품이 85만~100만원이고, 임상아 씨 제품은 300만~400만원입니다.(웃음)


Q. 디자이너들은 감각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평소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뒤 가벼운 감상평을 붙여놓습니다. 그러면 한 열흘 뒤에 아이디어들이 술술 나옵니다. 독서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요즘은 《Obsessive Branding Disorder》를 읽고 있습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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