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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볼보 코리아, ‘007영화’같은 첨단 굴착기 개발기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7-05 01:36


어! 블랙박스에 항법장치까지…


광활한 중국 대륙을 종횡하는 도난 상품을 위성으로 추격하고, 되찾은 제품의 ‘블랙박스’에 간단한 장비를 장착해 과거 고장 기록을 살펴보는 사람들. 007영화에 등장하는 첩보 기관의 종사자들이 아니다. 굴착기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일상을 재구성해본 것이다.

굴착기라는 단어에서 첨단과학을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자동차보다 더 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현대 과학의 총아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지난 22일 창원에 위치한 볼보그룹코리아 공장, 첨단 기술센터를 방문해 이른바 엑스커노베이션(excavator + innovation)의 세계를 들여 보았다. 〈편집자주〉


볼보그룹코리아 창원 첨단기술개발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종민 상무. 그는 지난 2004년 일본 방문 때 겪은, 당시로서는 황당하기만 했던 에피소드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윗선의 특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간 강 박사는 경쟁 업체인 히타치의 굴착기 제품을 현지에서 임차했다.

기술력에서 한발 앞서가고 있는 일본 업체의 동향과 더불어 당시로서 명성이 높던 일본 제품의 구조를 파악해보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굴착기를 점검하며 삼매경에 빠져 있던 그가, 불청객의 방문을 받은 것은 불과 수시간이 지나서였다. 히타치사 직원들이 강 상무를 찾아왔던 것.

“정말 말 그대로 화들짝 놀랐습니다. 허허∼” 쉬쉬하며 경쟁사 제품을 면밀히 살펴보는 마당에 보안 유지가 허술했으니 말이다.

당시 히타치 직원들이 이 곳을 전격 방문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정교한 ‘GPS(위성 위치확인 시스템)’ 장치 덕분이었다는 게 강 상무의 설명이다.

굴착기가 발하는 이상신호를 포착하고 즉각 출동했던 것.

그로부터 3년 후, 굴착기에 GPS를 장착하는 업체는 비단 히타치만은 아니다. 국내 생산 물량의 80% 가량을 해외로 수출하는 볼보그룹코리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중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은 GPS가 필수적이라고. 건설 현장에 주로 투입되는, 대당 1억원을 호가하는 굴착기를 훔쳐 인생 역전을 노리는 범죄가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굴착기 관리는 물론 소유주의 책임이다. 하지만 도난 때 신속 대응을 하는 것이 치열한 굴착기 판매전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요소라는 것.

제품의 판매에서 사후 서비스, 그리고 도난 대응까지, 이른바 ‘원스톱 서비스’ 제공이 중요하기는 이 분야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GPS는 도난제품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비행기에나 장착하는 것으로 알려진 ‘블랙박스’를 탑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블랙박스에 간단한 장비를 꼽으면 과거의 고장 기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의사가 과거병력을 살펴보고 진단과 처방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는 볼보 본사의 서버 컴퓨터에 무선 통신 장비를 통해 저장된다.

전날 고장을 발견하고 수리를 맡기면 바로 다음날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볼보그룹코리아 김희장 팀장의 설명이다. 물론 경쟁사들도 블랙박스를 장착하고 있다.

“굴착기는 크고 튼튼하기만 한 제품으로 알려졌지만, 자동차보다 더 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현대과학의 총아입니다.”강 상무의 설명이다. 에릭 닐슨 사장은 기자에게 한술 더 떠 “굴착기는 (범용 제품 가운데) 우주선 다음의 첨단 제품”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제품 개발 공정 또한 최첨단이다. 볼보그룹코리아가 지난해 10월 200억원 가량을 들여 건립한 창원의 첨단기술개발센터(VPD:Virtual Product Develop

ment)를 지난 22일 오후 둘러보았다.

필드테스트, 시뮬레이션으로‘바꿔’

북어 한마리가 출입구 꼭대기에 걸려 있는 것이 이채롭다. 작년에 스웨덴 본사 경영진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이곳에서 고사를 지낼 때 사용한 소품인데, 여전히 현장에서 방문객들을 굽어본다. 바이킹의 후예들이 한복을 한껏 차려입고, 정성스레 절을 올리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도 눈길을 끈다.

이 건물 2층에 위치한 시뮬레이션실. 대형 프로젝터에 비친 모니터 위에는 가상 굴착기 한 대가 부지런히 작업을 하고 있다. 가상 굴착기의 부위별로 색깔이 각각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주로 붉은색과 파랑색이다. 기준치 이상의 압력을 받는 굴착기 부위는 붉은색으로 반전된다고 한다.

실험 결과는 즉각 설계에 다시 반영한다. “굴착기를 사용해 구덩이를 파거나, 건물을 허물어뜨리는 작업을 하지 않고도, 컴퓨터 모니터상의 작업만으로 각 부위에 미치는 부하를 비롯한 파급 효과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강종민 상무의 설명이다.

과거와 달리 필드에서 일일이 실험을 하지 않아도 되니 설계에 소요되는 시간, 비용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혹한기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연구실도 눈길을 끌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굴착기의 내구성이나, 엔진에 미치는 파급 효과 등을 상황별로 테스트할 수 있다.

영하 30도로 맞춰 놓은 실험실 안에 들어가 보니 운전석 진동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가상공간에서의 실험이 모든 필드 테스트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품 테스트 요원들을 세계 각지로 보내 파견국의 독특한 작업 환경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데이터는 센터실험에서 얻어낸 정보와 더불어 제품 개발 데이터베이스로 활용된다.

인도, 터키, 중국, 이탈리아를 비롯한 4개 나라에 이 회사 직원들이 파견돼 있다. 볼보의 경우, 트럭이나 버스 부문의 기술개발 성과도 꾸준히 굴착기제품에 반영하고 있다.

미래형 굴착기 첫째 키워드는 환경

차세대 굴착기 개발의 첫째 키워드는 환경이다. 볼보그룹코리아도 연비가 뛰어나고, 전기와 휘발류를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는 도요타의 프리우스와 비견되는 하이브리드형 트럭과 버스를 2009년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다만 굴착기 부문도 이 엔진을 장착할지 여부는 시장 규모 등을 감안해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회사관계자는 설명했다. 글로벌 굴착기 업체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캐터필러(Caterpillar)는 대체 연료만으로 작동이 가능한 첨단 터빈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하버드비즈니스리뷰)

이 회사는 디젤 엔진의 연비를 더욱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 작업도 진행 중이다. 특히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필터시스템을 앞세워 시장 우위를 굳혀나간다는 포석이다. 센터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미래형 굴착기의 키워드는 첨단과 환경, 안전 등으로 요약된다.

산불, 방사능 유출 현장을 비롯한 위험한 사건·사고 지역, 혹은 도심 개발 현장 등에 투입할 수 있는 무인 굴착기도 연구 개발 단계라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빠른 속도로 인텔리전트 기능을 접목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기술적 성취도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반영될 전망이다.

강종민 상무는 “미래형 굴착기는 연비가 뛰어난 하이브리드형 친환경 엔진을 장착하고, 실시간으로 교신할 수 있는 정교한 무선 시스템과 더불어 이용자의 편의를 극대화한, 거대한 인공지능 컴퓨터처럼 바뀌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볼보, 그리고 도요타

“창원 공장 높은 생산성
도요타 간반 방식이 주효”

지난 98년 볼보그룹은 삼성중공업의 굴착기 부문을 사들였다. 일본, 한국 업체들을 돌아보며 생산성, 장래성, 매입가 등을 저울질해 본 뒤 최종 낙점했다고 한다. 당시 볼보가 삼성중공업 굴착기 부문을 사들인 배경은 무엇일까. 창원 현지의 공장 관계자들은 뛰어난 생산성을 꼽는다.

창원 공장은 하루에 굴착기 60대를 생산할 수 있다. 하루에 열 시간을 작업하니 시간당 여섯 대꼴, 10분에 한 대꼴로 거대한 굴착기를 만들어내는 것. 볼보그룹코리아는 생산 물량의 80% 정도를 해외에 수출하는 효자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창원 공장이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간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성 혁신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간반 시스템 도입에는 과거 삼성중공업 시절, 한 일본인 기술자의 공이 매우 컸다고 조수형 볼보그룹코리아 한국생산담당 전무는 설명했다.

주인공은 고 모리야 쇼지 컨설턴트.

도요타의 오노 다이치 부사장 밑에서 간반 시스템을 익힌 그는, 지난 89~98년도요타의 생산 시스템을 과거 삼성중공업 굴착기 부문에 전수한 당사자이다.

자신의 유해를 창원 앞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강한 애정을 보였다는 게 조 전무의 전언이다.

스웨덴 기업이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데는 따지고 보면 장인 정신에 투철했던 한 일본인 기술자의 공헌이 크게 기여한 셈이다.


글로벌기업은 물류 전쟁 중

오지라도 48시간 내 부품배달…
물류혁신에 기업 경쟁력 달렸다

건설 현장에서는 공기가 돈이다. 완공이 하루 이틀 늦춰질수록 인건비는 눈덩이처럼 치솟는다.

고장 없이 튼튼한 건설 장비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험한 공사현장에서 건물을 허물고, 추위로 얼어붙은 땅바닥을 파다보면 불가피하게 고장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고 장난 장비를 신속하게 수리해 되돌려주는 일이 중요할 수밖에. 노후화된 부품을 제때에 갈아주는 일도 이에 못지 않다. 캐터필러, 고마쓰, 볼보를 비롯한 글로벌 굴착기 업체들이 최첨단 물류 센터 구축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볼보의 경우 한국 생산 물량의 80%이상을 세계 각지로 수출한다. 오지라도 48시간 안에 부품을 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참여 정부가 집권 초 물류 허브구축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기업들을 독려할 때 가장 먼저 인천국제공항에 물류 창고를 구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현지 대리점 망 구축도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무대의 최강자인 캐터필러는 미국, 유럽에 구축하고 있는 거미줄 같은 대리점 망이 경쟁기업들을 압도한다는 평가다.

이 덕분에 미국 전역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일부 해외수출 모델에 외국 기업의 엔진을 장착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고장이 발생할 경우 표준화된 제품이어야 현지에서도 쉽게 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캐터필러가 미국 전역에서 딱 한 곳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볼보에 밀리고 있는데, 이 지역 딜러가 현지 사정을 꿰뚫고 있는 마당발이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기술혁신 못지 않게 물류 혁신 또한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임을 가늠할 수 있다.

창원=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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