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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서 한국경제 고민하는 좌승희 박사

[이코노믹리뷰 2005-08-24 11:18] 지금은 경기개발연구원장으로 가 있는 좌승희 박사 인터뷰 기삽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시원한 차림으로 연구에 열중하던 그를이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는데요. 그의 연구실이 있던 국제대학원 건물이 한창 공사중이어서,
자리를 옮겨 한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좌박사의 주장은 명확합니다. 참여정부의 평등주의 정책이 기업가 정신을 꺾어 성장동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현 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의 핵심이기도 합니다만, "꼭 그렇기만 할까"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 중에는 활발한 연구개발활동, 그리고 성장동력 발굴로 한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업체들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강단 학자분들은 아무래도 세상돌아가는 일들에 다소 무딘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아도, 위대한 경영자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기업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01년 9.11사태에 즈음해 부임한 제프리 이멜트 GE회장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경영 환경이 좋으면 좋은대로, 또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사업기회를 포착해 한걸음 한걸음 내달려온 것이 그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좌 박사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재벌 기업의 이데올로그라는 날선 질책부터, 한국의 하이에크라는 상찬까지, 그를 바라보는 세인들의 시선은 극과 극을 달립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좌 박사의 주장이 평생을 걸쳐 진행해온 학문적 고투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허투루 흘려 보낼 수 많은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두산가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을 재벌이 성숙해나가는 과정으로 보는 그의 시각은 지금 보아도 꽤 신선하기도 합니다.



“궁지에 몰린 지금이 경제단체 통합 고민할 때”

"비 정규직의 서러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싱크탱크격인 한국경제연구원장을 지내며‘재계의 입’으로 불리던 좌승희 박사. “참여정부의 평등주의 정책이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며 화끈한 독설을 퍼붓던 그를 떠올리던 기자에게 시원한 러닝 차림으로 연구에 몰입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17일, 가을학기를 앞두고 건물 보수공사마저 한창이어서 인터뷰 내내 소음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었지만, 그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시종일관 여유가 넘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두산가의 경영권 분쟁, 삼성의 X파일 등으로 촉발된 재계 위기에 대한 의견을 묻자“진의가 잘못 전달되는 사례가 많아 기업 관련 코멘트는 하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치던 좌 박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재계가) 경제 5단체 통합을 비롯한 개혁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위기는 항상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두산가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서도 “탈법 행위가 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재계가 자연스럽게 진화해나가는 과정으로 보아 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삼성의 X파일건에 대해서는 “당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고서는 기업을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든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X파일과 관련된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본다”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먼저 이해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 올 가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교편을 잡게 됐다.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는.
학생들 과 어울려 생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쭉 해왔다. 지난 4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장을 그만두면서 이러한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지난달에 정식으로 발령이 났다. 당장 국책연구기관으로 이동하는 것은 해당 기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대학행에 한몫 했다.

앞으로 경제 발전과 정치·사회·경제 제도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한편, 서울대에 유학온 옛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그리고 아시아 각지의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경제론을 가르칠 것이다.

- 재벌 기업의 ‘이데올로그’라는 반갑지 않은 별칭이 따라다녔다. 이러한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나는) 누구보다 실증경제학에 철저하다고 자부한다. 첨예한 현안을 이념 논쟁하듯이 접근해서는 절대로 답이 안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안에 접근할 때 엄정한 학문적 태도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등주의가 경제에 미치는 해악 등은 영국이나 일본, 미국 등 자본주의 선진국은 물론 아프리카나 남미 국가, 그리고 우리나라를 철저히 분석해 얻어낸 결론이다. 예컨대 후진국이나 선진국 모두 평등주의의 이상이 맹위를 떨칠 때,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서독도 빌리브란트가 집권하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

- 국내에서는 재벌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더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두산사태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불 행한 일이다. 검찰수사 결과, 여러 가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두산그룹 최고경영자들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좀 더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국내 재벌그룹이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썩 유쾌한 방식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두산그룹의 분가는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형제들이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을 하다 다툼이 생기고, 지분이 분할되면서 재벌기업도 분리되는 것이다. 현대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형제간에도 이익을 다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애초에 두산그룹은 분란의 씨앗을 안고 있던 셈이다. 이런 곳들이 더 있다. 이번 사태는 국내 재벌 기업들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좀 더 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 삼성의 X 파일 사건의 여파가 간단치 않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데.
삼성 그룹이 대통령 후보자를 상대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나선 시대적·경제적·사회적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정치자금 문제는 한국의 정치제도, 그리고 정치문화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당시 기업들이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고서는 기업을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든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X파일과 관련된 논의는 모두 무의미하다고 본다.

하지만 앞으로 삼성의 X파일과 같은 사건은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본다. 참여정부가 적어도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잘하고 있다. 기업의 정치자금 공여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실증 경제학이, 그리고 내가 강조하는 인센티브(incentive)다. 근본적인 병인(病因)에 검을 겨누는 것이다.

- 국내 재벌기업의 지배 구조가 지닌 한계 탓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비판은 주로 총수 일가가 순환 출자를 통해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에 맞춰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예컨대 10%로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데 왜 20%를 소유하려고 하겠는가. 비용을 적게 들이고 큰 힘을 가지려고 하는 게 본능이다. 거꾸로 만약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다면, 이들은 아마 이번에는 경제력 집중을 질타하고 나설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 즉 우리나라의 정치·사회·경제 제도를 좀 더 깊이 성찰해 줬으면 한다. 재벌 총수를 움직이는 한국 사회의 인센티브가 무엇인지를 천착해야 한다. 사실 경제학 자체가 인센티브에 관한 학문이다.

- 지배구조를 놓고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인가. 일부 학자들은 좌 교수의 이러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참 여연대의) 김상조 교수나 김진방 교수는 모두 학자적인 열정으로 충만한 분들이다. 다만 좀더 생명이 길고, 파급 효과가 큰 연구를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배구조는 한 국가의 정치·사회 제도의 부산물이다. 다시 말해 종속 변수라는 말이다. 기업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특정한 지배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문제는,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스리지 못하고 결과에만 메스를 댄다는 점에 있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게 마련이다. 규제나 외부적인 강제의 힘이 기업 활동에 개입하면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적어도 내게는 지배구조 문제는 경제학의 연구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태로 재계의 입지가 상당히 위축돼 있다. 특히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등이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는데
재 계가 머리를 맞대고 기득권을 버리고 민주적 시장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 이럴 때는 얘기를 안하면 안되는 상황이다. 만일 지금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고 어려운 시기라면, 그런 위기의식이 좋은 아이디어를 실천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제단체 통합, 헤리티지 재단화를 비롯한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재계의 자중지란, 유가급등 등 악재가 겹치면서 국내 경제가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타개책은 없겠는가.
과거 금리를 내려도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 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면 문제가 풀린다. 물론 지금은 금리를 올려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단지 조건이 있다. 기업이 뛸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금리를 올려야 한다. 여러 가지 규제도 풀고 하면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처방만이 부동산 시장 버블 문제는 물론, 노사 문제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규제를 풀지 않고 금리를 올리면 버블 문제는 가라앉겠지만 기업은 더 움츠러들지 않겠는가. 한국은행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뜻인가.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순환 출자는 가공 자본이 될 수 있으니까. 문제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유 자본이 있어서 지분 투자하겠다는 데, 그것을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소버린과 SK그룹의 경영권 분쟁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지배주주에게 역차별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분경쟁 때 불리한 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공정한 경쟁 기반만 마련된다면 소버린이 얼마든지 와도 괜찮다고 본다. 소버린이 와서 좋은 일도 많이 했다.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SK의 주가도 많이 오르지 않았는가.

- 투자부진을 둘러싸고 책임공방도 치열하다. 정부는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재계가 모든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 전문 경영인들을 만나보면 투자할 곳이 없다고 호소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당시의 경제 정책을 되돌아보자. 정부 정책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방향으로 운용되었다.

성과를 내지 않으면 정부로부터 대접받을 길이 없었다. 그게 과거의 역사다. 정부가 기업인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앞장서 조성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든 책임을 기업인에게 돌리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다.

- 8월 말 부동산 대책 발표를 앞둔 가운데 보유세 인상을 둘러싼 논란도 치열해지고 있다.
보유세 율이 선진국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유세 인상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한꺼번에 올리면 안된다.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특히 세율은 몇 사람이 정치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기라성 같은 조세 학자들이 있지 않은가. 선진국 사례를 감안해서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10~20년 뒤에 한국의 부동산 세제의 초석을 놓는다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동산 가진 사람은 부도덕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강남에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진취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