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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스위스 프랑화, '명품 통화'로 떠오른 비결
    기사등록 일시 [2011-08-14 16:10:24]    최종수정 일시 [2011-08-15 09:39:02]

안정성·유동성 높고 신용리스크 낮아
달러, 엔화와 맞장 뜨는 안전자산 부상
4분기에 다시 하락할 가능성도 있어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폴란드 바르샤바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안나'(여·37) 교수는 이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서 10여년간 유학생활을 보낸 뒤 폴란드로 돌아온 그녀는 아직 미혼이지만, 내 집 마련에 대한 관심은 누구 못지않다. 문제는 집값. 바르샤바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의 평당 가격은 1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녀에게 은행 담보대출 상품은 가뭄속 단비와 같다. 폴란드인들도 은행 담보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사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 자국 통화인 '즐로티'가 아니라, 스위스 프랑화(franc)로 대출을 받는다는 점이다. 스위스 프랑화가 폴란드인들의 재테크를 위한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 차입통화로 각광받고 있다고 그녀는 귀띔한다.

물론, 이 나라 사람들이 스위스 프랑화 대출을 선호하는 것은 즐로티화에 비해 차입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즐로티'로 대출받을 때보다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데다, 통화 가치가 안정돼있는 것도 강점이다. 국민소득 1만 7000달러가 넘는 중부유럽의 강자 폴란드에서 프랑화는 명품 통화 대접을 받는다.

브랜드 왕국 스위스의 프랑화가 금융위기를 동력으로 '명품 통화'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 초 중동·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을 신호탄으로, 일본 동북 지역 지진사태, 유럽의 재정위기 등이 꼬리를 물며 바람 잘 날 없는 금융시장의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는 이 통화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프랑화는 올들어 달러화 대비 30%이상 절상되며 대표적 안전자산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주 화요일에만 달러화 대비 6%가 오르며 하루 절상 폭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자, 바짝 긴장한 스위스 중앙은행이 시장에 구두 개입하며 금요일 달러 대비 0.8%가 하락했지만,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스위스 경제, 서비스·금융·제조 3박자 갖춰

스위스 프랑화가 각광받는 것은 유동성이 풍부하고, 안정성도 뛰어나지만 신용리스크는 낮기 때문이다. 이러한 3가지 강점을 뒷받침하는 일등공신은 '스위스 경제'이다. 브랜드 왕국으로 통하는 스위스는 인구가 770만명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제조업, 서비스업, 금융업 등이 골고루 분포한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만 봐도 네슬레(식품), 홀심(시멘트), 신젠터(농업화학),롤렉스,스와치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카르티에, 몽블랑, 피아제 브랜드를 거느린 리치몬드 그룹도 스위스 국적이다. 서비스 부문에도 세계 최대의 인재파견기업인 아데코(Adecco)가 있으며, 제약사인 로슈. 노벌틱스 등이 스위스에서 성장해 세계무대에서 활약중이다.

UBS, 크레디 스위스, 스위스 리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이 나라 경제의 한축을 이룬다. 고객의 비밀을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는 은행의 이른바 '수비의무(守秘義務)'는 이 나라 금융산업 도약의 디딤돌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검은 돈이 스위스 계좌에 은닉돼 있다는 소문이 도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식품에서 정밀기계, 의약품, 시멘트, 화학, 보험, 금융 부문의 글로벌 기업들은 스위스 경제의 풀뿌리 저변을 이루며 외풍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한 스위스를 만들고 있는 주역이다. 조선, 정보통신 자동차 등 제조업 포트폴리오가 탄탄하지만, 금융 부문이 취약한 일본이나, 금융서비스 산업이 부실해 일자리 창출능력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는 스위스의 국가 지배구조도 이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뒷받침하는 주춧돌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현재 국가지배구조 순위에서 스위스는 세계 213개 국가 중 핀란드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독일이 3위, 영국이 4위였는데, 세계은행이 정치안정성, 정부효율성, 법의 지배 등을 평가한 결과이다.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통화의 부침도 적다 보니 독재국가의 검은 돈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의 직접 투자가 봇물을 이루면서 스위스 통화가 강세를 띠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조업·서비스·금융업이 골고루 포진해 있는데다, 해외 투자 수익도 꾸준히 내다보니 대외 충격에 스위스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모건스탠리의 분석이다.


◇일본 엔화. 달러화 맞장뜨는 안전자산 부상

스위스의 대외자산은 2010년말 현재 7900억 달러. 지난 7월말 현재 2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일본과 스위스가 0.2%로 같으며, 10년 만기는 일본이 1.1%, 스위스가 1.6%로 일본보다 더 높지만 두 나라 공히 미국보다 국채수익률이 더 낮다. 스위스의 경제성장률, 실업률, 경상수지 등 주요 지표의 변동성도 매우 낮다.

국채 수익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스위스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각을 반영한다. 유로존에 속해 있지 않은 것도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을 비롯한 일부 불량국가들의 위기가 전 회원국으로 퍼져가며 위기가 눈덩이처럼 증폭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개연성이 없는 것이다.

스위스 프랑화와 같은 안전자산의 위상을 누리는 또 다른 국제 통화가 일본의 엔화이다.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배경으로는 세계 제1위의 순 대외채권 규모, 일본기업의 강력한 경쟁력이 뒷받침된 꾸준한 경상수지 흑자, 건전한 국가지배구조, 세계 2위의 외환보유고, 저금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스위스는 여기에 금융부문의 안정성을 보탰다.

좁은 국토에 산이 많아 경사면에 소를 키워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던 '빈국(貧國)'의 놀라운 변신이다. 국민들의 기질이 거칠어 프랑스, 독일 등 중세유럽 국가들의 용병으로 싸움터를 돌아다니던 스위스 인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인생역전에 성공했는데,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강한 프랑화로도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프랑화는 오랜 명성을 자랑한다. 지난 70년대 경제학 원론에 실리지 않은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할퀴고 지나가자, 투자자들이 이 통화를 안전자산으로 매입했던 것.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침체상태인 이 초유의 경제현상은 훗날 위기때마다 떠오르는 프랑화 전성시대를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4분기에 잠시 쉬어갈 가능성 있다-모건스탠리

프랑화 담보대출을 받은 폴란드인들의 재테크가 그만 길을 잃은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였다. 이자는 저렴했지만, 통화가치가 급등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한 시민들에게 스위스 프랑화를 빌려주는데, 이 통화의 가치가 가파르게 치솟자 부채 상환에 애를 먹었던 것.

급격한 통화가치 상승이나 하락은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길 수 있다. 올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스위스 프랑화의 가치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스위스 중앙은행(SNB)이 프랑화 절상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이 안전자산이 올해 4분기 조정국면을 맞을 수 있다고 모건스탠리는 예측한다.

모건 스탠리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프랑화가 약세를 보였는데, 스위스 은행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 해외 자회사나 지점에 증자를 하는 등 자본금을 다시 늘리면서 통화가치가 하락했다고 진단한다.

외국인들의 직접투자가 감소하고, 스위스 중앙은행이 특단의 대책을 발표할 경우, 프랑화가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 이 투자은행의 분석이다. 하지만 안전자산 요건의 삼박자를 갖추고 있어 부침(浮沈
)은 있어도,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엔화, 호주 달러화, 미국 달러화 등과 치열하게 최고자리를 다툴 것으로 관측된다.

yunghp@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