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Statistics Graph

Interview |英정부 경제학자가 말하는 韓 균형발전정책
기사입력 2007-10-03 00:42 |최종수정2007-10-03 00:54


“공무원이 국가균형발전 주도해선 안 돼”

유럽대륙 끄트머리의 섬나라에서 온 푸른 눈의 경제학자. 퉁명스러운 느낌의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마이클 쿄오간(Michael Keoghan)’영국 기업 및 규제위원회(BERR) 국장은 다소 피곤해 보였다. “아홉 시간의 시차 탓”이라며 양해를 구하는 그는 지난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 집권 후 균형발전정책을 주도해왔다. 그래서일까. 지난 18일 오후, 그는 기자가 들고 있는 책 한 권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안소니 기든스의 《미스터 브라운, 이제 당신 차례요》가 그것이다. 저자는 영국 보수당의 17년 통치를 종식하고 지난 97년 노동당 재집권을 이끌어낸 토니 블레어의 ‘장자방’격인 인물. 토니 블레어의 뒤를 잇는 고든 브라운 총리에게 노동당 집권을 연장하기 위한 고언을 직언했다. 경제 번영과 사회적 가치의 추구가 정치적 수사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물어본 배경이다. 기든스는 늘 두 가지 목표의 달성을 노동당 정강정책의 핵심으로 강조해 왔다.

“저 같은 말단 공무원이요 뭐…” 그는 농담을 던지며 직답을 비켜가면서도, 한 가지 점만큼은 분명히 했다. 정부는 그 역할을 민간 부문의 측면 지원에 한정해야 한다는 것. 전 국토에 3∼4개의 거대 성장축을 ‘육성’해 나간다는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의 한계를 꼬집는 말로도 읽혔다. 이날 인터뷰는 참여정부 주최 균형발전 국제 콘퍼런스가 열린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회의장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오늘(18일) 오전 영국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을 주제로 한 연설이 힘에 부치셨나 봅니다.

제가 그렇게 피곤해 보이나요. 아마도 영국과 한국의 시차 탓인 것 같습니다. 한 9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웃음) 안소니 기든스의 책을 읽고 있나 봅니다. 사진이 잘 나왔네요.


▶안소니 기든스는 경제성장이 사회적 가치와 양립할 수 있다고 늘 강조했습니다. 균형발전정책도 이러한 철학의 산물인가요.

토니 블레어의 정책 보좌관인 그 기든스 말인가요.(웃음) 제3의 길로 널리 알려진 토니 블레어 국정운영 철학의 주춧돌을 놓은 거물입니다. 저는 말단 공무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경제학자입니다. 국정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질문지를 훑어보면서) 정치적이거나,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당신이 영국 노동당 소속인지 아니면 보수당 소속인지를 묻는 질문을 지적하시는 건가요.

우선, 제가 소속된 기관(BERR)은 어떤 정당에도 소속돼 있지 않습니다(We don't belong to the party). 그리고 영국 정부 정책을 평가하는 내용은 가급적 빼주셨으면 하네요. 토니 블레어나 고든 브라운의 정책 운용 방향의 차이를 묻는 질문 등에 대해서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공무원들 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미안합니다(sorry).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노동당이 집권한 지난 97년 정부에 들어갔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십니까.

기업 및 규제개혁국(BERR)의 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기업 활동에 이상적인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 주요 업무입니다. 영국 경제 전반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경쟁 상태, 그 지역의 규제 현황, 또 고용 상황 등을 주로 확인합니다. 하부기관으로 지역발전청(RDA)과 선별적 금융투자기구(SFI)가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활동의 목표는 지역민들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지난 97년 영국 정권 교체기에 등장해 영국 대중을 사로잡은 ‘풀 몬티’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풀몬티(FulMonty)요? 잘 알고 있지요. 보수당의 메이저 총리 때 제작된 영화가 아닌가요.(97년은 토니 블레어가 집권한 해이다.) (이 영화는 영국 요크셔 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으며, 철강산업 침체로 일자리를 잃은 중년 가장들이 고달픈 돈벌이에 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RDA는 굴뚝산업 쇠퇴로 실업자가 된 지역민들의 직업교육도 담당하고 있죠.

근로자들의 전직 교육도 물론 돕고 있습니다. 규제 완화 방안과 더불어 숙련 노동자의 지식을 심화하고, 산학협동을 증진하는 방안 등도 꾸준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오해가 있는데, 풀 몬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아닙니다(It is phoney). (그는 풀몬티에 대해 묻자, 빙글 빙글 웃었는데, 아마도 실직한 중년 가장들이 스트리퍼로 나서는 ‘민망한’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당시 영국 사회가 직면해 있던 시대적 상황을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았습니다.

물론입니다. 영국 북부 도시의 쇠퇴가 그 배경입니다. 풀몬티의 배경이 된 요크셔 타운은 지난 70~90년대 쇠퇴일로를 걷습니다. 철강, 탄광 등 제조업이 지역 경제의 주춧돌을 형성했는데,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이 지역의 노동자들이 대거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 거죠.

이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과거 노동당 정부의 지나친 보호가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경제 번영과 사회적 정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기든스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제학자입니다. 주로 실업 해소나 규제 혁파를 비롯한 경제 이슈들을 주로 고민할 뿐입니다.

철학과 사회복지 등의 분야는 제 지식의 범위를 훨씬 벗어납니다.

그리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특정한 답변을 끌어내려고 해서는 곤란합니다. (웃음)


▶애덤스미스를 배출한 영국이, 정부 주도의 균형발전정책을 장기간 추진하는 이유가 있나요.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영국 정부는 기업들의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을 뿐이지, 주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간 기업들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을 돕는 역할에 그친다고 할까요.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목소리를 경청합니다.

그리고 각종 규제를 혁파하지요.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근로자 교육 기관이야 민간에도 많고, 산학 협력도 기업들이 알아서 접근할 문제가 아닌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영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때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장의 실패가 그 경우입니다.

스필오버(spill-over)의 사례도 있습니다. 민간 기업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입니다. 물론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고 하죠.(웃음)

민간이 담당할 수 있는 분야이긴 하지만, 정부 수준의 업무나 서비스를 생산하지 못할 때도 개입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정부는 단지 지원 업무만을 처리할 뿐입니다.


▶국민을 보호하는 정부의 전통적 역할마저 시장이 담당하는 추세입니다. 정부가 어떤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까.

지역 내 유망 기업이 특정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RDA가 이때 지역 대학과의 산학 협동을 주선할 수 있습니다. 또 특정 섹터에 소속된 기업들이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겠죠. 영국 진출을 추진 중인 한국 기업들도 수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면 다음 단계로 나갑니다. 혁신 거점 도시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고 다시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며 기업생태계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해나가는 역할은 특정 민간기업이 담당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것을 매우 중시합니다.


▶케임브리지는 하이테크 클러스터, 런던은 금융 클러스터로 유명합니다. 영국 정부가 만든 작품이 아닌가요.

정부가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부 역할은 지역 내에서 클러스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유인(incentive)’을 제공하는 일이죠. 런던과 케임브리지를 예로 들어 볼까요. 런던은 금융, 케임브리지는 하이테크분야의 대표적인 클러스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시시콜콜 이 과정을 주도한 것은 아닙니다.

케임브리지는 케임브리지 대학이라는 천년의 명성을 자랑하는 교육 기관이 이미 있었습니다.

정부는 이 명문대학, 그리고 지역 기업의 산학협동을 유도하는 등 하이테크 클러스터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정부는 측면지원에 그칠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혹시 신규 사업 진출과 관련한 컨설팅도 하나요. 한국에서는 정부출연 기관(뉴패러다임센터)이 민간 기업 컨설팅을 성공적으로 수행,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돈이 될 만한 분야는 기업들이 더 잘 알지 않겠어요. 특정 산업이나 섹터 진입을 권하는 일은 우리의 업무영역이 아닙니다. 그랜드 플랜을 짜고,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기보다 현장에서 부대끼면서 정책이 제대로 먹히는지 판단합니다.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정책은 미세조정하거나, 폐기하지요.


▶글로벌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영국 공무원 조직에서 대거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국장으로 있는 ‘버(BERR)’를 보세요. 이 조직이 속해 있는 정부 부처의 장관이 이사회 멤버를 선정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글로벌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민간 기업인 출신들입니다. 이스트미들턴의 RDA청장은 도요타의 전 매니징 디렉터였습니다. 이사회 멤버들은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지역에서 발로 뛰는 실무진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섞여 있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 자금관리자, 맥킨지 등 컨설팅 기업 출신들이 조화를 이루며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합니다. 때로는 공무원들, 그리고 행정 전문가들도 같이 일을 합니다.


▶참여정부는 전국에 3∼4개의 거대 성장축을 ‘육성’해나간다는 방침입니다. 공공기관의 이전도 진행 중인데, 영국 정부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혁신 거점이나 혁신 도시가 영국에도 있는지를 묻는 건가요. 영국 정부도 최근 몇 년간 공공기관 이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1만8000개 정도의 공직이 이때 같이 움직입니다. 물론 혁신도시 등을 염두에 두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한국과 비교해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저희는 상황이 좀 다르거든요. 어떤 경우든 혁신 거점을 구축하는 데 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랜드 플랜을 세워놓고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