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Statistics Graph

Management |세계의 발, 택배회사가 보는 미래 글로벌 경제

이코노믹리뷰|기사입력 2007-10-31 23:48 |최종수정2007-10-31 23:57


“중국-인도-한국이 향후 10년 세계경제 이끌어”

●“아시아가 앞으로도 10년 이상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봅니다. 중국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인도와 한국이 뒷받침하는 그런 방식이 되지 않겠습니까.

●“북한 평양에 지난 97년 11월 국제 특송업체 중에 유일하게 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북한 내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우 라와 레즈가 한국 프로축구팀들에 좀 버거운 상대였나요. 다음번에는 일본 어웨이 경기라 더 힘들텐데요.” 그의 말은 차분한 듯하면서도 거침이 없다. 무테안경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 외양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독일의 유서 깊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일이 어울릴 듯한 지적인 인상의 소유자다.

일본에서만 10년 이상 근무한 일본통. 그래서일까. 일본은 물론 다음달 19일 치러질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 소식도 두루 꿰고 있다. 일본어를 일본인보다 더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기업인이 바로 ‘군터 존(Gunter Zone)’ DHL 북태평양 수석부사장이다.

그의 첫인상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유대계 피아노 연주자 슈필만(spielman)을 도와주던 독일군 장교를 떠올리게 했다.

하 지만‘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고 했던가. 자사의 대표적인 스포츠 마케팅 성공사례인 일본 프로축구팀 우라와 레즈를 자랑하면서 동시에 올 들어 단 한 차례도 이 팀에 이기기 못한 우리나라 프로 축구 구단의 부진을 슬쩍 짚고 넘어간다.

지난달 중순, 남산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만난 그에게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화제에 올려본 것도 이러한 솔직담백함 때문이다. 한때 유럽의 병든 거인으로 통했으나, 부활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독일 경제 재건의 선봉장 메르켈 총리는 동독의 연구원 출신에서 총리가 된 독특한 이력, 그리고 개혁정책으로 자국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다.

“독일 경제의 강세는 지난 2005년 메르켈 총리 부임 이후 일련의 과감한 자유주의 정책이 주효했다는 분석인데요, 현지의 평가는 지금 어떤 편입니까.”(기자)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될 수 있으면 묻지 말아달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는, 그러나 매우 솔직했다.

그 의 답변은 이랬다. 과감한 개혁의 방아쇠를 당기며 분위기 쇄신의 물꼬를 튼 것은 그녀의 공으로 돌릴 수는 있지만 일련의 개혁 정책이 주효할 수 있던 데는, 타이밍이 무엇보다 절묘했다. 독일 경제가 막 기지개를 켜던 시기에, 그녀가 취임하는 등 운도 작용했다는 얘기다.

자국의 정치 상황을 묻는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결코 에둘러가는 법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자사의 인력 개발 프로그램인 ‘임플로이 오브 초이스(employee of choice)’를 알리는 일도 결코 잊지 않는다. 질문에 세심하게 대응하면서도,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역량이 탁월하다.

배송직원 통해 세상 변화 읽어

상 인들의 정보력은 예로부터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전국시대 조나라 수도인 한단에서 진나라 왕족 ‘자초’를 만나 인생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며 훗날 자신도 재상의 반열에 오르는 대상 여불위는, 각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면서 당시 7개 나라 사이의 복잡한 국제 정세를 한눈에 꿰뚫고 있었다. 어디 여불위뿐일까. 중국사 최고의 기재로 통하는 제갈공명이 융중 땅을 떠나 유비의 막하에 들어간 이후 취한 첫 번째 조치도, 바로 각지에 간자들을 파견해 정보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이었다.

DHL본사는 세계 각지에서 실시간으로 수집된 정보가 모여드는 거대한 ‘슈퍼컴퓨터’를 떠올리게 한다. 벽면을 가득 덮고 있는 두 개의 대형 스크린, 이 회사 본사에 있는 이 스크린 속의 작은 점들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복잡한 궤도를 그리며 움직인다. 항공기의 운행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태풍, 그리고 이 회사가 소유한 500여 대 비행기의 이동경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회사의 또 다른 대형 스크린은 세계 각국의 정치 상황을 한눈에 비춘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할거지역,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의 역학 구도, 그리고 북핵 사태 등은 모두 주요 분석 대상이다.

특송회사들은 세계 각지에 펼쳐 놓은 ‘촉수’를 통해 정보를 전방위적으로 포획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지속적 경쟁우위의 핵심이다. 세계 각지의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항공기나 차량의 운송 경로 등을 재설계한다.

“미 래학 서적을 굳이 짬을 내 읽을 필요가 있나요.” 그가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 비트가 저술한 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의 말대로, ‘신통력’이 다 떨어진 미래학자들의 철 지난 미래학 서적을 굳이 손에 쥘 필요가 있을까.

눈부신 속도전쟁의 시대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지구 온난화가 불러올 재앙을 꾸준히 경고, 인류의 각성을 촉구하며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이 회사가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간파한 것은 벌써 오래 전이다.

태풍의 발생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으며 강도도 훨씬 세졌다. 현장에서 숨 가쁘게 진행되는 생생한 변화는 미래 포착의 자양분이다.

베 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은 때로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나비의 날갯짓을 현장에서 가장 먼저 포착한 뒤 뉴욕에 불어닥칠지 모를 허리케인의 강도, 그리고 파장을 예측하는 일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 경제 구도를 좌우할 미래 트렌드는 무엇일까.

바로 ‘아시아의 부상(emergence of Asia)’이다. 지난 3월 미래학자 로히트 탈와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분석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아시아가 앞으로도 10년 이상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봅니다. 중국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인도와 한국이 뒷받침하는 그런 방식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난 10년간 아시아에서 활동하며 눈부신 변화를 목도한 것은 행운이라며 활짝 웃는다. 이 회사가 중국에서만 이미 1만1000여 명에 달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대북 사업 기대 커

그는 중국 경제의 성격도 근본적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중저가 제품을 생산하는 세계의 공장에서 하이테크 제품·서비스의 기지로 바뀔 것이란다. 군터 부사장이 바라보는 한국 시장의 전망은 어떤 편일까.

“인천에 위치한 대형 물류 설비에 최근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한국시장을 유망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DHL코리아는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지역에 2만㎡ 규모의 허브터미널을 착공, 2008년쯤 완공할 계획이다.

새 로 건립될 ‘첨단 DHL 익스프레스 인천 허브’는 현재의 DHL 화물 터미널보다 5배 이상 큰 규모로 지어져 한국뿐 아니라 몽골·중국 북부·러시아 극동 지역을 위한 물류 집하기지의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없을까.

독 일은 노동조합이 강성하기로 유명하다. 평등주의적 사고가 강한 유럽에서도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대표주자다. 경영위원회와는 별도로 주주와 근로자들로 구성된 감독이사회가 회사활동을 감시·견제하며 공동체 지향적 가치를 충실히 실행에 옮기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주로 인수합병에 나설 때 피인수 대상 기업의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하지만 독일 기업들은 운영 철학부터 많이 다릅니다. 해고가 불가피할 때도 사회친화적인 방향으로 추진하고자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한국보다는 덜하지만 말입니다.”

한국기업, 노사 극한투쟁 지양해야

말 속에 뼈가 있다. 그는 공동체 지향적 사고는 한국기업이 더 강하다고 잘라 말했다. 독일 기업들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고도 했다. 감독회의 경우에도 주주들이 한 표를 더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인데, 근로자들과 주주들의 이해가 상충될 때 주주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때에도 노동조합과 협의를 물론 거치지만, 꼭 동의를 확보할 필요도 없다고 전했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이겨낼 상생의 방안을 협의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대립의 문화가 노사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대화 주제가 민감하다고 본 때문일까. 지난 10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화제를 돌리자 그는 반색을 한다. “두 나라에서 해빙의 무드가 고조되면서 DHL의 대북 활동도 더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지금은 규제가 적지 않아 어려움이 상당한 편이거든요.” 이 회사는 이미 북한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97년 11월 5일 북한에 DHL 평양사무소를 개설했는데 국제 특송업체 중에는 유일하게 이 지역에 진출, 배송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선 정국,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의 여파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시간 남짓한 인터뷰, 그는 하나의 유럽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이기는 하지만, 세계 경제 번영의 또다른 축은 유럽이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은 이미 미국을 경제 규모 면에서 추월했고, 이러한 성장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며 두 대륙의 교류와 협력을 당부했다.

아시아 인력시장에 대한 아쉬움도 잊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 보니 재정, 회계, 물류 등 각 분야를 담당할 핵심 인력이 태부족인 게 큰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중국 시장의 경우 단순 업무를 처리할 인력은 노동시장에 풍부하지만 정작 다국적 기업에서 눈독을 들일 만한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는 영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