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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NEXT SENTENCE(명문)/NEXT TERMINOLOGY | 2012. 1. 11. 02:10 | Posted by 영환


"모택동의 고향 호남은 동정호 남쪽에 위치해 붙은 이름이다. 이 호수는 중국 최대규모다. 춘추전국시대에 운몽대택으로 불린 이 호수는 주변이 구름 속에서 꿈꾸는 듯한 절경으로 가득 차 있다. 무한의 황학루, 남창의 등룡각과 더불어 중국의 3대 누각으로 일컬어지는 악양루가 대표적이다.

모택동이 생전에 많은 시를 남긴 것도 고향의 이런 빼어난 풍광과 무관치 않을 듯 싶다. 문제는 이러한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현실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 정치에 그대로 적용돼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데 있다. 참담한 실패로 끝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천하를 얻는데 유리하게 작용한 문학적 상상력이 천하를 다스리는데는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성립 초기만해도 그의 위치는 하잘것없었다. 비록 호남사범학교를 나왔다고는 하나 여러 모로 시골뜨기에 가까웠다. 초기에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며 중국 공산당을 이끈 진독수와 이대교 등과는 대조적이다. 교조적인 진독수는 도시폭동을 통해 이내 부패한 국민당 정부를 전복시키고, 인민공화국을 세울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했다.

소련혁명의 방식을 그대로 도입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은 코민테른이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 위에 상전처럼 군림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조를 낳았다. 코민테른의 대표 마링은 진독수와 의견이 충돌할 때마다 서신을 보내 이같이 주의를 주었다. 

"당신이 진정한 공산당원이라면 반드시 코민테른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진독수는 중국공산당의 교부와 같은 존재였다. 코민테른의 입장에서는 그는 단지 덩치만 큰 미개국의 공산당 지도자에 불과했다. 모택동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그는 중화제국 건설이라는 거창한 꿈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웃음거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얘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초지를 결코 잃지 않았다.

초한전 초기에 머슴으로 있던 진승이 자신을 비웃는 동료 머슴들을 향해 연작이 어찌 홍혹의 뜻을 알겠느냐며 자위한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모택동도 진승처럼 큰 꿈을 지니고 있어 당당할 수 있었다. 홍군을 장개석을 비롯한 군벌휘하 군사와 다르게 보이도록 만든 소위 3대규율, 8항주의가 나온 것도 바로 이런 큰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홍군이 군벌시대 중국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군인으로 인민앞에 설 수 있던 배경이다. 

물론 중국 공산당의 역사가 명예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들 역시 장개석의 국민당과 마찬가지로 기만과 선동, 강탈, 이간 등의 수법을 구사했다. 안팎의 여러 정황이 맞아 떨어져 천하를 거머쥐었을 뿐이다. 천시를 만난 셈이다. 수많은 군벌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모택동이 어느날 문득 가장 막강한 군벌로 군림하던 장개석을 누르고 천하를 제패한 배경은 무엇일까"

인물로읽는중국현대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 동양사
지은이 신동준 (인간사랑,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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