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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차지혁, 비운의 사나이

NEXT 로컬(Local) | 2007.02.21 19:47 | Posted by 영환

다시보는 차지혁, 비운의 사나이

다시 한번 출사표 던진 비운의 천재 차지혁




[이코노믹리뷰 2005-05-26 10:15] (차지혁씨를 만나본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그와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어 , 차지혁씨가 아니신지요"  솔직히 저는 그를 사기꾼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바 있는 그의 얼굴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차씨의 진면목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지요. 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가지 점만은 명확하더군요.그가 상당히 똑똑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우 선 구사하는 단어의 수준이 남다른 데가 있었어요. 뭐라고 할까요. 매우 정교하다고 할까요.

인터뷰 내내 신세한탄, 억울함을 털어놓아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책을 2만권 읽었다는 그의 주장이 허풍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차씨는 여러차례 불만을 털어놓더군요. 자신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라면을 먹다가 그의 전화를 받았는 데, 다시 라면을 먹으려고 하니 퉁퉁 불어 도저히 입에 대지를 못하겠더군요. 차씨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토라진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휴대폰 메시지와 함께 가수 이승철의 〈인연〉을 배경음악으로 띄워 보세요. (당신의) 애틋한 마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풍운아(風雲兒) 차지혁 씨(47)가 5년여의 은둔 생활을 끝내고 다시 출사표(出師表)를 던지며 재기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1999년 벤처기업 ‘미다스칸’을 설립하고 비상(飛上)을 꿈꾸다 사기공모 등의 혐의로 날개가 꺾이며 오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그의 복귀 일성(一聲)은, 뜻밖에도 휴대폰 부가 서비스인‘컬트링’이었다. 신세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컬러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신(新)개념 서비스라는 게 그의 설명.


지난 17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개인 사무실(지인 회사의 사무실 한켠을 빌려 쓰고 있다)에서 만난 차씨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정으로 지난 5년간 치열한 반성과 더불어 뼈를 깎는 자기 개발 노력을 거듭해 왔다고 고백했다. 초췌한 얼굴에 움푹 들어간 눈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가 보낸 풍상의 세월을 웅변하고 있었다.


“셋방을 전전했습니다. 조그만 골방에 묻혀 사업 구상과 연구에 골몰하다 보면 간혹 과거 교도소 생활로 다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차씨가 이 기간 동안 출원하거나 등록한 특허 건수만 무려 100여 건. 이 특허를 활용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작품이 휴대폰 부가서비스인 ‘컬트링’인 셈이다.


지난 1990년 단돈 2만3000원의 자본금으로 자동차 관리업체 ‘트리피아’를 설립해 그 해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차씨의 화려한 이력 탓일까? 기자는 그에게 “휴대폰 부가 서비스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기존의 컬러링 서비스는 음성 통화 시장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컬트링은 서비스의 범위를 SMS, 무선 인터넷, 컬러링등 데이터 통신 시장으로 넓혔다는 점에서 획기적입니다. ”아직까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그 누구도 개척해보지 못한 이른바‘블루오션(Blue Ocean)’시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서비스의 특징은, 문자 메시지 비용만으로 휴대폰 메시지를 배경 음악과 함께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자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나 장윤정의 〈어머나!〉등을 배경 음악으로 지정해 함께 보낼 수 있다. 메시지 사연을 읽다 보면 전송자가 지정한 음악이 동시에 은은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울려 퍼지게 된다는 게 차씨의 설명이다.


특히 음악을 듣거나, 다른 문서 업무를 처리하면서 굳이 휴대 전화를 확인하지 않고도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를 컴퓨터 화면 상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큰 강점이다.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업무시간 대부분을 보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메신저 상에서 바로 상대편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날릴 수도 있으며, 인터넷 전화 환경을 갖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메신저 상에서 바로 통화도 할 수 있다는 게 차씨의 설명이다. 차씨는 조만간 이동통신 3사에 이러한 내용의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실패한 벤처기업인 경험도 소중한 자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투자자를 울린 희대의 사기꾼, 21세기판 봉이 김선달, 대중선동에 능수능란한 한국의 히틀러. 사실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은 아직도 만만치 않다.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이라도 팔았지만, 저는 물건도 없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피해를 안겼다는 게 지난 92년 저를 심문한 젊은 검사의 말이었습니다.”


차씨는 92년 트리피아 부도 후 그를 심문하던 당시 20대 검사의 발언을 담담히 회고한다. 그는 지난 1999년 미다스칸 주식 공모 과정에서도 사기공모, 과대광고 등의 혐의로 고발됐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어느덧 세인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면서 그를 두고두고 고통스럽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격 복귀 선언을 하게 된 배경은 “두려움 탓이 컸다”고 그는 고백한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역사의 뒷 무대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4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자신을 겨냥한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에게도‘패자부활’의 기회를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물론 옥석을 가려야 합니다. 머니게임을 하다 몰락한 벤처기업인인지, 아니면 치열하게 기술 개발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기업인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한 벤처 기업인들의 경험도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


차씨는 특히 과거 자신의 도덕성을 통째로 허물어뜨렸던 여직원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이며 무죄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인터뷰 내용이 실린 월간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천 의원은 이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차씨의 무죄를 주장한 바 있다.

기자는 차씨에게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넌지시 던져 보았다. 자신의 주장대로 무죄라고 하더라도 그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서랍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지난 1999년 미다스칸 공모에 참가했던 투자자들의 명단이었다. “투자 판단에 따른 손실은 투자자들의 몫입니다. 법적인 책임에서는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까지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추후 재기에 성공하면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 척박한 토양의 국내 벤처 업계에도 훈훈한 전례를 세워나가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차씨는 지금도 사무실에 아침 6시면 출근해 새벽 2∼3시가 돼야 퇴근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요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탐독하고 있다고 한다.


IQ 174의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차씨는 과거의 실패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그는 ‘조급증’ 탓이었다고 말한다. 지난 87년 대선 당시 평화민주당 캠프에서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을 조직하다 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나자 스스로 당을 박차고 나온 그는, 지난 13대 총선을 앞두고 후보 수십여 명의 선거 기획 의뢰를 수주하며 정치권에서 상종가를 기록한 바 있다.


그가 훗날 벤처기업 설립과정에서 발휘한 기획 능력도, 이때의 경험이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이러한 성공이, 자신을 주변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으로 변모시킨 것 같다고 차씨는 고백했다. 그는 이제 인내의 미덕을 새삼 절감하게 됐다고 말한다. 일본의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끈질긴 견제를 극복하고, 훗날 ‘미가와’ 시대를 활짝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는 새가 울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다”는 그는, 지난 12일에는 지인들에게 빌린 도토리 79개로 사이월드에 자신만의 온라인 사무실(cyworld.nate.com/digitalboy)을 열어 1촌 맺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IQ 174의 천재…기다림의 미학 배웠다


차씨는 창의력이 뛰어난 인물로 유명하다. 지난 2000년에도 시내 곳곳에 단말기를 설치해 이를 통해 고객들이 제품을 살 수 있는 가상백화점과, 돈 없이 물건을 살 수 있는 ‘노머니 매직서비스’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면서 역시 차지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명성이 명불허전(名不虛傳)은 아닌 듯 했다. 그가 지난 2000년 저술한 《청년 차지혁 그 꿈과 야망은 늙지 않는다》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이 눈에 띈다. 치질 치료 약재가 첨가된 화장지, 선적립 마일리지가 들어 있는 역발상 신용카드 운용시스템 등은 지금 보아도 새롭다.


이날 인터뷰 중 그가 즉흥적으로 제안한 ‘은행 매장을 활용한 상품 마케팅’도 이른바 차지혁식(式) 재기(才器)를 가늠하게 했다. 그가 제시한 은행 내 백화점 상품 매장 설치 아이디어를 보자. 백화점과 은행이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백화점에서 한 주 동안 가장 높은 인기를 얻은 제품을 은행 점포에서도 판매한다는 게 골자다. 은행 방문객들은 송금. 환전 등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면서 물건도 구입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지난 2000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회장을 만나 게임서비스와 온라인 쇼핑몰을 제안했는 데, 이 사장이 이를 거부했다는 비사(秘事)도 공개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당시 그의 제안을 수용했다면 인터넷 포털 업계의 판도가 변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차씨는 요즘 후속 사업 준비 작업에도 골몰하고 있다. 직장인과 어린이들을 겨냥한 경제 포털 사이트가 그가 준비 중인 회심의 카드이다. 어린이들이 주식 거래를 실연해볼 수 있고, 특히 직장인들도 이곳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고수들에게 주식 거래를 위탁할 수 있다고 일부 기능을 귀띔했다.


이 경제 포털사이트가 출범하면 국내 증권산업 분야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그는, 아울러 한 업체와 손잡고 유무선 도메인 표준화 작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재기에 성공한다면 될성부른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재단 ‘꿈은 현실로’를 세우고 싶습니다. 이 곳은 최고경영자의 학벌이나 인맥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창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조직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도 모두 이를 위한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 그가 인터뷰 막바지에 밝힌 포부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관중의 인재등용 노하우

“말을 대신해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해 날지 말라”

길고 긴 번역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스승인 고 권우 홍찬유 선생은 뜻밖에도 ‘관중’을 공부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주군인 제환공을 패자 지위에 올려놓고 춘추시대 열국을 평정한 사나이. 유학을 평생의 가르침으로 삼아온 스승의 입에서, 유가에서 전통적으로 배격하는 관중이라니….

고개를 갸웃했다. 노자, 장자, 묵가까지 제자백가 사상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하지만 읽으면 읽어볼수록 원전의 문장 하나 하나가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매주 서울역 인근에 있는 대우학술재단에 모여 유학 사상을 집대성한 ‘성리대전’을 강독하던 학자 네 명이 전격 의기투합했다.

번역은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작업에 비유할 정도로 고단했다. 무엇보다, 문장이 난삽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지만, 의미가 턱하니 막힐 때에는 한학자들을 찾았다. 초역에만 2년 이상이 걸렸고, 작년 말 관중은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무려 7년여의 길고 긴 작업이었다. 그동안 스승은 타계하고, 정부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바뀌었다.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값만 무려 5만원. 사실, 잘 팔리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에나 등장하는 패도 정치가로 알려진 관중에 누가 관심이 있으랴.

하지만 ‘관중’은 뜻밖에도 출판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시내 주요 대형 서적의 고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정해년 새해, 수천년 전 중국 대륙을 풍미하던 이 남자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오후 인천 경인교대에서 만난 공동번역자 고대혁 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먹고 살 기반이 있어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긴다는 뜻이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수출 3000억달러를 돌파했지만, 체감 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춥고 어둡다.

“관자에게서 21세기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의 원형을 본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 교수는 기자의 이러한 가설에 순순히 동의를 한다. 관중은 말 그대로 민생문제 해결을 가장 중시하던 정치가였다.

간웅으로 널리 알려진 조조가 관중의 사상에 심취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젊은 시절, 조조는 첫 임지에 부임해 일을 낸다. 당시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던 수백여 개의 사당을 모조리 허물어버리는 대담한 행동을 했는데, 미신보다는 백성들의 민생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사고 덕분이었다.

관중은 특히 갈등을 풀어내고, 비전을 제시하며, 인재를 발탁하는 일에 발군이었다. ‘말을 대신해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해 날지 마라.’ 관중이 남긴 인재 운용의 첫 번째 원칙이다. 지도자가 일을 맡기고도 시시콜콜 간섭하며 달리는 말에 발길질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뜻이라고 고 교수는 지적한다.

관중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인재를 추천하는 데 결코 망설임이 없던 배경이다. 진시황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동문 한비자를 모함해 죽여버렸으나, 자신도 훗날 비슷한 운명에 처하는 이사는 관중을 배웠어야 했다.


일을 맡기고 시시콜콜 간섭하면 득보다 실 많아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원칙을 견지하기란 때로는 얼마나 힘든 것인가. 국내 일부 대기업그룹 오너들은 내로라하는 인재를 발탁하고도, 수시로 갈아치우거나 작은 실수를 빌미 삼아 옷을 벗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첨단 경영기법을 이식했지만, 회사별로 명암이 엇갈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이명환 전 동부그룹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른바 ‘시스템 경영’의 성패는 경영자의 용인관(用人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제환공은 관중 사후에 간신들을 등용했다 결국 죽어서도 한동안 관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아야 했다.

관중에게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리더십은 시스템의 중시다. 문제를 푸는 데 한 사람의 독단을 배제하고, 많은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보탤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유가에서 이상향으로 통하는 요순시대를 보자. 당시에도 후계자 그룹간의 암투,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민생고는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요순임금이나, 관중은 여느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원탁회의를 열어 참석자들과 머리를 모았다. 특히 공은 언제나 자신이 발탁한 인재에게 돌렸으며, 과는 자신의 몫이었다. 구성원의 장점을 중시했으며, 한 가지 단점으로 섣불리 이들의 능력을 폄하하지 않았다.

관중은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하라고 했다. “사실, 너무 이상적인 얘기들이 아닐까요” 고 교수가 제자들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중의 리더십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세계적인 검색 기업인 구글은 조그만 벤처기업 시절부터, 사내 인사평가위원회를 통해 인재를 발탁했다. 사내추천에만 의지하다, 자신의 입지를 우선시해 A급 인재를 추천하지 않는 직원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관중은 마굿간 우리를 구성하는 목재의 사례를 들며 이러한 이치를 이미 설파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여 년 전이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현대판 관중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있겠습니까. ”고 교수는 재치 있게 비켜간다. “인재는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라고 해서 관중 만한 인물이 없겠습니까. 다만 이들을 알아볼 수 있는 국민들의 역량이 문제가 되겠지요.”

관중은 누구인가

“제갈량이 흠모한 춘추시대 대정치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로 널리 알려진 춘추시대의 정치가 관중. 훗날 춘추시대 열국의 정치무대를 좌우하는 대정치가로 성장하지만, 그도 젊은 시절 자신의 지식을 무기로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입신양명을 꾀하던 숱한 제자 백가 지식인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외무고시가 없던 춘추전국시대의 유가, 종횡가, 법가 등은 자신들의 부국강병 이론이나, 치도를 앞세워 군주들에게 지식을 세일즈하는 지식보부상이었다. 자신의 이론이 받아들여지면 경륜을 펼칠 기회를 제공받았으나, 이는 드문 경우에 불과했다.

공자나 맹자도 평생을 떠돌며 자신을 채용해줄 주군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관중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단한 행운아였다. 그는 제나라의 왕권을 다투는 여러 공자들 가운데 공자 규의 참모 노릇을 하면서 입신양명을 꿈꾸었다.

흥미로운 점은 절친한 친구인 포숙아가 공자 규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훗날 왕위에 오르는 제환공의 참모를 담당하게 되면서, 두 사람이 정치적인 라이벌로 부상하게 된다는 점이다. 관중은 제환공의 배에 화살을 날리며 목숨을 노리는 승부수를 띄우지만, 거사는 실패하고 포숙아가 지지한 제환공이 제나라의 왕위를 잇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진가를 알고 있는 포숙아의 천거로 왕위에 오른 제환공을 보필하는 재상자리에 오르게 되고, 자신의 경륜을 펼쳐 그를 패자 자리에 올려놓게 된다. 관중은 흔히 법가 사상의 시조 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중국 최고의 기재로 통하는 제갈공명이 융중에 머물던 무명시절에 자신을 관중에 비유하곤 할 정도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대정치 사상가로 인정받아 왔다. 재상 자리를 자신의 친구에게 양보한 포숙아,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객을 재상자리에 발탁한 제환공 모두 관중 못지않게 대단한 인물들임에는 틀림없다.


낸시랭, 그리고 천정배

NEXT 로컬(Local) | 2007.02.21 19:43 | Posted by 영환

낸시랭, 그리고 황신혜

●팝 아티스트 시대 활짝 연 낸시 랭
“비엔날레서 뜨는 과정 자체가 마케팅 교과서”

(낸시랭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팝아티스트와 인터뷰를 한지도 벌써 1년여가 훌쩍 지났네요. 주로 기업인들과 인터뷰를 하다, 톡톡튀는 20대 아가씨와 인터뷰를 하려니 영 쑥스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첫만남에서 낸시랭에 대해 지니고 있던 편견은 여지없이 부숴졌지요. 그녀는 적극적이었으며, 미술사에 대해서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낸시랭은 세상의 풍파도 적지 않게 겪었구요. 특히 자고나면 바뀌는 세상의 염량세태를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는 아가씨였죠. 그녀는 언론에 비치는 다소 가벼운 이미지와는 달리, 내적으로도 성숙한 인물이었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비엔날레에서 속옷으로 퍼포먼스를 연출한 그녀의 용기를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그녀에게서 작년말 한차례 전화가 왔었는 데요, 동화백화점내의 개인 작품 전시관 오픈행사에 와줄 수 없냐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 낸시랭은 요즘 여러 광고에도 등장하며 잘 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초심을 잊지 말고 오래 가는 예술가가 됐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그는, 방송 토론프로그램 패널들의 질문을 능수 능란하게 비껴 나갔다. 하지만 홍익대 주변의 클럽하우스 M2에 가본 적이 있는 지를 묻는 큰 딸뻘의 팝 아티스트라니…. 이날 한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참석해 튀는 발언으로 천 장관을 당혹하게 만든 20대 여성이 바로‘낸시랭(Nancy Lang)’이다. 그녀는 요즘 방송 토론프로그램의 패널로, 패션업체의 아트디렉터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주목받고 있는 팝 아티스트다.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패션 회사 쌈지의 본사. 2003년 열린 세계 예술인들의 꿈의 무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속옷 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낸시 랭은 ‘뜻밖에도’ 예술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털어놓으며 ‘진지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특히 국내 미술계의 보수적인 풍토(風土)에 대해 직격탄을 날려, 톡톡 튀는 이미지의 그녀를 떠올리던 기자를 잠시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벼움과 무거움, 속된 것과 성스러움을 두루 갖추고 있는 낸시 랭 특유의 예술세계의 특성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면서도 정작 대중문화를 고급문화에 비해 저열한 것으로 취급하는 국내 미술계의 행태는 이율배반적입니다. 미국만 봐도 앤디 워홀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구분이 이미 깨졌으며, 매튜 바니도 열광적인 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 미술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는 그녀는, 그러나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이들의 해방구인 홍익대 주변이나 강남 청담동 일대에서는 그녀에게 사인과 더불어, 손을 앞으로 쥐고 엉덩이를 뒤쪽으로 쭉 내뻗는 ‘낸시 랭 포즈’를 부탁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그녀의 이러한 상품성에 눈을 뜬 것은 몇몇 기업들이다. 변덕스러운 젊은 소비자들의 코드를 읽어내는 팝 아티스트를 보면서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낸시 랭은 지난달 캐딜락 신차 발표회장에서 ‘터부 요기니’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회사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쌈지의 천호균 사장은 생면부지의 그녀를 ‘아트 디렉터’로 전격 영입하며 그녀의 이름을 딴 낸시 랭 브랜드 런칭의 전권을 부여했다. 낸시 랭은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해외에서도 루이 뷔통은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세계적인 일본 작가와 손잡고 그의 예술세계를 제품에 반영해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프라다나 에르메스도 세계적인 작가를 영입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도-비록 일부이지만-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천 장관과는 오랜 시간을 같이하지는 못했지만 프리메이슨에 대한 대화를 잠깐 나누었다고 귀띔하는 그녀는, 요즘 낸시 랭 브랜드 런칭을 기념하는 패션쇼를 준비하며 분주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청담동의 트라이베카에서 패션쇼를 열게 되는 데, 평범한 소녀들을 모집해 퍼포먼스와 패션쇼가 어우러진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만화책 《오렌지 보이》가 그녀가 요즘 탐독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신재철 LG CNS사장, 재기의 마술사

(커버 4) 쓸쓸한 퇴장...화려한 재기

유순신이 말하는 재기 방정식

"신재철을 보면 정답이 보인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직 장인들의 운명은 평탄치 않습니다. 승승장구하다가도 한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오랜 칩거끝에 마지막에 웃는 역전의 용사들도 있기 마련이지요. 현대의 직장인들뿐일까요. 고전은 우리에게 "충신은 하사받은 마차가 헐기도 전에 내쳐지고, 애첩은 미모가 시들자마자 버림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오래전부터 전해왔지요.

신재철 LG CNS사장은 이런 맥락에서볼때 이례적인 존재입니다. 납품비리로 무관의 생활을 무려 2년이다 했으나, LG CNS의 사장으로 지난해 화려하게 복귀했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신사장의 복귀에 돋보기를 들이댄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 기사와 관련해서는, 당사자인 신재철 사장의 반론이 있었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그는 잡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고 말했는 데, 물론 잘못된 부분은 전적으로 기자의 책임입니다. )

" 급작스럽게 물러나셔야 했는 데, 억울하지는 않으셨어요. 납품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결국 문제를 일으킨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하 직원들이 저지른 실수 또한 내 책임입니다.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헤드헌팅 업체인 유앤파트너스(YOU&PARTNERS)의 유순신 사장.

지난 13일 삼성동에 위치한 이 회사 집무실에서 만난 유 사장은 지난 2005년 한 구직자와 나눈 대화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60세를 바라보고 있던 이 전직 최고경영자는ꡐ납품 비리ꡑ라는 유탄을 맞고 뜻하지 않게 옷을 벗어야 했다. 검찰 수사는 그의 명성을 허물어 버렸다.

자 신의 명성에 일대 오점을 남긴 사건. 이 경우 누구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대개는 책임을 부하 직원들에게 돌리면서 전 직장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나가기 마련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비리 기업인이라는 낙인이 한번 찍히면 재기는 영 어려워진다.

하 지만 그는 자신의 책임을 오히려 순순히 시인했다.ꡒ설사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더라도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역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ꡐ진실ꡑ이라는 평범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진리를 새삼 재확인 하게 됐습니다. ꡓ

당 시 이 구직 인터뷰에 응했던 전직 최고 경영자가 바로 신재철 현 LG CNS사장이다. 한국IBM의 최고 경영자로 7년간 근무하며 이 회사를 탄탄한 토대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컴퓨터를 납품하며 담당 직원들이 발주처에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며, 그는 시련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2년여의 실직자 생활을 거쳐야 했다. 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의 한국 자회사에서 CEO로만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신 사장은 지난 2004년부터 야인 생활을 했다. 그에게는 납품 비리 기업인이라는 ꡐ꼬리표ꡑ도 늘 따라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대개 선택하는 길은 크게 두 갈래이다.

분 노를 속으로 삭이면서 외부 행사나 모임 등에 발길을 뚝 끊고 두문불출하는 것이 그 하나다. 체면을 중시하는 국내 기업인들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거나, 직장에서 좌천될 경우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고 여러 모임에도 일절 나오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최악의 자충수이다.

자칫하면 외부 인맥의 도움을 스스로 차단하고, 본인도 자신감을 잃고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유 사장은 지적한다. 하지만 신재철 LG CNS 사장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쉬는 동안에도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또 아내와 유럽여행을 하며 격무에 지친 몸을 돌보았다.

업계와의 인연의 끈도 놓지 않았다. 강남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업계 후배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자청했다. 조급하게 복귀를 서두르지도 않았다. 유 순신 사장은 그에게 여러 차례 현업 복귀를 권했으나, 그는 이러한 제안을 고사했다. 아직까지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변하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무려 2년간 야인 생활을 했지만, 업계에서는 그를 잊지 않았다. 그는 재작년 LG CNS의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재기 성공 방정식 몸에 익혀라

그 는 성공적인 재기의 교과서이자 전범(典範)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흔하지 않은 사례다. 한때(女帝) 여제 소리를 듣던 휴렛 팩커드의 칼리 피오리나나, 애플컴퓨터의 존 스컬리 등은 실적 부진에 더해 파워 게임에서 밀려 현직에서 물러난 뒤 아직까지도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들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엔론의 전직 경영자들과는 달리, 도덕성면에서 질타를 받은 적도 없고, 한때 시장에서도 촉망받는 경영자들이었으나, 한번 낙마하고 나니 재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은 냉혹하다. 한번 실패한 경영자에게 러브콜을 보내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ꡒ 칼리 피오리나는 주주나 동종업계에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혁신적인 기업이 아니라면, 재계보다는 정치권에서 그녀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ꡓ 유 사장의 분석이다. 하물며 납품 비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인물을 뽑으려고 할까.

신 사장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무엇보다, 그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을 잘 깨닫고 있었다.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유 사장은 그와 대비되는 국내 5대 그룹 출신의 한 전직 최고 경영자를 반면교사의 사례로 들었다.

이 전직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후임자로 7~8세나 어린ꡐ새파란ꡑ인사가 내정이 되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잡 인터뷰에서 이 그룹이 위치해 있는 여의도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다 보면 과거에 얽매이고 생산적이지 못한 일에 감정을 소모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 는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의 임직원들과도 만나지 않았으며, 사적인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자학을 하거나, 전 직장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금물이다.ꡒ30년 동안 경력을 쌓았는데 얼마나 고마운 회삽니까.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같이 협력할 수 있는 회사로 가고 싶습니다.ꡓ

유 사장은 그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객관적인 상황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재기에 성공하는 해외 경영자들은 결코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으며, 때로는 자신을 축출한 인사에 대해서도 과감히 먼저 손을 내밀 줄 알았다. 씨티그룹의 제이미 디몬 전 회장이 대표적이다.

유 사장은, 자신을 내친 회사에 분노를 표출하는 전직 CEO와 인터뷰를 하면서 역설적으로 폭넓은 시야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쉬는 동안 건강을 추스르는 한편, 인문서적을 읽고 사회공헌활동에도 나서 보라고 조언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숲속에 있다보면 숲이 보이지 않는다.

세 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부지런히 사람들과 교유하며 세상 흐름을 파악하는 한편, 자신이 활동했던 업계와의 끈도 놓지 말아야 한다. 분노를 느끼거나 자괴감에 빠져 있기에는 세상 변화가 너무 빠르다. 무엇보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적극 활용해 나가야 한다. 유 사장이 구직자들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널리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ꡒ기회는 항상 옵니다. 가정일도 적극적으로 돕는 한편, 조직생활에 매여 있다보니 소원했던 사람들도 부지런히 만나세요. 그리고 앞으로 20년 동안은 무엇을 할 것인지 포부를 밝히세요. ꡓ

무 엇보다, 꾸준한 ꡐ평판(reputation)관리ꡑ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평판은 자신의 경력이자 직장 생활의 성적표이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도, 직장에서 같이 일하기 어려운 인력으로 낙인이 찍히면 불이익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조직 내 간부 사원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부하직원들의 평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 또 후배 직원들은 자신의 조직 로열티에 대한 윗선의 평가를 꾸준히 신경 써야 한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신 사장의 이러한 위기 탈출의 방정식이 세계적인 경영 월간지인 《하버드비즈니스 리뷰》가 최근호(The Tests of A Leader)에서 밝힌 재기에 성공한 유명 경영자들의 여러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고수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하나로 통하는 법이다.







베인&컴퍼니 이성용 사장 인터뷰


Management |베인&컴퍼니 이성용 사장이 밝히는 임원으로 살아남는 6가지 방법(이 성용 사장은 5공화국 시절, 청와대에서 미군 연락장교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습니다. 지난해 8월 이사장을 이 회사 본사에서 인터뷰했으니, 다섯달 가량이 벌써 지났네요. 하지만 이 사장의 인상은 지금도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우리말 발음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어른들이 늘 하는 말씀처럼 똑소리가 나는 인물이었습니다. 뛰어나니 이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의 수장으로 근무할 수 있는 거겠죠. 이사장이 밝히는 임원으로 살아남는 6가지 방법, 자 귀를 기울여 보시죠.  


[이코노믹리뷰 2006-08-04 15:42]


“전략적 사고 첫걸음은 열린 태도
인적 네크워크부터 리모델링 하라”

“임원진을 혁신해야 비로소 회사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기업 베인&컴퍼니 코리아의 이성용 사장은 지난달 20일 이 회사 본사에서 가진 기자와의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국내 기업의 임원들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기업의 별’이라는 통념과 달리, 상당수가 윗선에서 던져주는 일만 처리하다 보니 전략적 사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국내 임원들의 취약한 경쟁력으로는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이성용 사장은, 특히 “동종 업계는 물론 사내 교류마저도 꺼리는 폐쇄적인 태도부터 포기해야 한다”며 전략적 사고의 첫걸음은 열린 태도에 있음을 강조했다. 인적 네트워크의 리모델링부터 하라는 주문이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5공 시절 청와대에서 미8군 연락장교로도 복무한 이 사장은, 전 세계 20개 나라에 32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 컨설팅회사 한국 법인의 대표이자, 베인&컴퍼니 본사 글로벌 디렉터로서 동북아시아 IT부문과 한국금융 서비스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임원들이 꼭 실천해야 할 자기혁신법 6가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당장 손에 들어라
●일년에 일주일 정도는 전략을 고민하라
●외국의 경쟁사 정기적으로 방문하라
●경쟁사 임원 동향을 부지런히 파악하라
●경쟁사 정보는 공급사에서도 확보하라
●FTA는 위기이자 기회, 영어부터 시작하라

-세계적 컨설팅 기업의 수장이다 보니, 많이 바쁜 것 같다. 서울시 자문위원단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삼성테스코 이승한 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자문위원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조만간 (서울시측에서 논의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 자문위원단에는 5~6명 정도의 외부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서울시가 도쿄나 밀라노, 그리고 싱가포르 등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단 모임에서 도시 브랜드 제고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음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임원들》이라는 책을 저술 했는데, 국내 임원들의 자화상을 냉정하게 분석했다는 평가다.

국내에는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서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국내외 유명 최고경영자의 자서전이나 경영전략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임원들로서는 딱히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고치려 해도 도움을 구할 곳이 흔치 않다. 오랫동안 컨설턴트로 기업임원들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바를 정리하게 된 배경이다.


-해외 기업인들과 견주어 볼 때 국내 기업임원들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장점부터 살펴보자면 단기 현안을 처리하는 역량이 탁월하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손익 관리를 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3~5년을 멀리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역량이 부족하다. 시야가 매우 좁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생각없이 한다고 하면 지나칠까.

대기업의 경우 한 기업에서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하고 요직을 거쳐 임원직에 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러 기업을 두루 거쳐야 지식의 폭도 더 깊어지게 마련인데, 이러한 점에서 외국에 비해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있는 셈이다. 자사 브랜드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해외에서 근무해본 경험도 적다.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데도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한국적인 상황도 감안해야 하는 데, 평가가 지나치게 박한 것이 아닌가.

자질은 뛰어나지만, 시스템이 문제다. 우선, 임원들에 대한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기업들이 드물다. 얼마 전 필드에서 한 재벌 그룹 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 데, (그에게 ) 골프 회원권 금액의 50%를 임원 교육에 쓴다면 임원 역량이 열 배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농담 섞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최고 인재를 모아 놓고도 이들의 역량을 강화할 교육에 지속적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내 기업의 평가 시스템도 때로는 장애로 작용한다. 대부분 연간 단위로 평가를 받고 재계약을 맺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회장이 3~5년 장기 비전을 강조해도, 임원들 입장에서야 그 때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장기 비전에 시큰둥한 데도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국내 기업의 토양도 따져봐야 한다.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보니 스스로 사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임원들을 만나보면 오너의 의사를 파악하는 나름의 비법을 자랑스레 털어놓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임원이라는 자리는 전리품이 아니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임원들의 전략적 스킬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기회를 한 걸음 앞서 포착하고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비단 최고경영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국내 임원들은 인맥을 넓히고 제대로 활용하는 데도 상당히 서툰 편이다. (내가 만나본 ) 임원 상당수가 경쟁 기업의 임원들은 막론하고, 심지어 사내 임원들과도 교류하지 않는 폐쇄적인 태도를 지닌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임원들도 많이 공부를 한다고 하는 데,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다.


-국내 정서상 경쟁 기업 임원과 교류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할까. 왜 다들 제너럴일렉트릭(GE)만 배우려고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잭 웰치나 빌 게이츠를 입에 올리지만, 국내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배우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국내 상황에 정통한) 경쟁 기업의 임원들이 서로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

경쟁사에서는 일을 어떻게 하는지 배울 게 많다. 경쟁기업 임원들과 만난다고 해서 기밀문서를 주고받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스스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멀리하는 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임원이 되고, 롱런하는 데도 네트워크가 의외로 많이 작용을 한다. 좋은 쪽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피터 드러커나 잭 웰치의 경영 사상을 학습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대가들에 집착한 나머지, 가까운 곳에 있는 정보의 보고(寶庫)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해외 석학들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내게도 ) 피터 드러커는 영감의 원천이다. 특히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책은 임원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프로페셔널로 산다는 것이 어떤 뜻인 지,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무엇인 지 등을 논하고 있는 데, 경영자로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전략적 스킬을 키우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선, 1년 중 적어도 일주일은 회사의 각 사업부를 전략적 관점에서 검토해 보라. 3년 후 상사나 오너와 어떤 비즈니스 사안을 논의하게 될지, 현재와는 어떤 점이 다를지,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깊이 검토해 보라. 부서가 당면한 전략적 문제에 대해 일지로 기록해야 한다.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 상사와 친밀한 관계라면 이를 연간 주기로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함께 고민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공급업체가 누구보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라. 특히 경쟁사에도 납품을 하는 회사라면 양질의 정보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이 대표는 다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데, 본인이 직접 실천하고 있는 방안이 있다면.

진부한 말이지만, 배우고 익히는 데 결코 게을러서는 안 된다. 글로벌한 시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해외 저널도 꾸준히 읽어봐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권해주고 싶다. 고개를 절로 끄덕거릴만한 사례가 적지 않다.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글로벌한 시각을 배울 수 있다. <포브스>도 추천할 만하다. 모두 간결하고도 명확해서 (나처럼)항상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딱이다. (웃음)


-업종부터 임원 개개인의 업무스타일까지, 차이점이 적지 않은 데 일률적으로 이러한 지침을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인맥을 넓히고,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 것은 말 그대로 공통분모일 뿐이다. 임원 스스로의 유형을 파악해서 대처해야 한다. 예컨대, 전술적 스킬에 탁월한 이른바 마셜형 리더를 보자. 그는 우선 부하 직원과 자신이 담당해야 할 책임의 몫을 분명히 파악하는 편이 낫다. 이들은 스스로의 경영 노하우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권한이양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임원 자신이, 과연 인맥 활용에 뛰어난 브래들리형 리더인지, 관리 감독에 탁월한 아이젠하워형 리더인지 등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본인의 리더십 못지 않게 부하직원이나 상사의 성격·리더십 유형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업을 혁신하기 전에 임원직을 혁신해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만나본 국내 임원들 중 전략적 스킬이 가장 탁월한 기업인 한 명만 꼽아달라.

한 사람을 딱히 지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본받아야 할 역할 모델은 역시 은행권의 임원들이다. 특히 신한은행 임원들이 은행권에서는 가장 탁월한 것 같다. 맨손으로 신한은행을 일으켰다는 자부심 덕분인지 열정이 대단한 데다, 특히 국내 금융권과 달리 덜 관료적이어서 얽매인 사고를 하지 않는 점도 강점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임원들이 거의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근접해 있다.


-국내외 기업인들 사이에서 성장이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고민하는 임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나.

국내 기업들이 의외로 성장을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큰 돈을 벌고 있지만, 예외적인 사례다. 통틀어 따져보면 많은 기업들이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VK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문을 닫는 기업도 적지 않다. 성장을 하려면 해외시장에 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 경쟁의 정도가 세다는 점이다.

외국에 나가면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니 여러모로 어렵다. 국내 시장에는 중견 기업만 해도 브랜드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어 시장을 파고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해외 시장은 다르다. 결국 주판알을 튕겨보고 갈 데가 없으니 현금만 쌓아놓고 있다. 임원들의 전략적 사고가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끝으로, 뜨거운 감자인 한미 FTA도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사실, 수년 전 컨설팅 시장의 빗장을 열 때도 논란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경영 혁신의 노하우를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거의 시차 없이 습득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고객사들의 평가다. 금융 부문도 비슷하다. 국내에 진입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결국 국내 인력들을 채용해야 한다.

이들은 외국 기업의 노하우를 익혀 스스로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가장 큰 이슈는 영어다. IT 분야 고급인력이 많은 데 영어 탓에 수출을 못하고 있다. 영어를 할 수 있으면 앞으로는 더 많은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데, 지금까지는 그것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이면우, 이공계현실을 비판하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펌글)
 
 
(월간조선에 실린 서울대 이면우 교수의 글입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긴 합니다만, 이공계 회피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오죽하면 제너럴일렉트릭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자국의 이공계 전공자 격감을 거론하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겠습니까. 문제는 세상을 바꾸는 이노베이션의 주체들이 공대출신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죠. 미국에서도 젊은 나이에 거대한 부를 일궈낸 인물중에는 공대 출신들이 많지요. 공대 출신이 기업은 물론 관계를 주름잡고 있는 인도나 중국을 두려워하는 배경입니다.
 
아마도 이런 반론을 하실 분들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게 어디 이공계 뿐이냐고. 워렌 버핏, 칼리피오리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인문학을 전공한 거물들 가운데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거나, 한때 주도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공계 전공자가 가늠하지 못하는 인문학의 가치가 또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 하지만 말이죠. '그들이' 이런 얘기에 꿈쩍이나 하겠습니까. 이 교수님,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시지 말고, 차라리 될성싶은 대선후보 진영에나 참가해보시죠. :)


많은 사람들이 이공계 교육의 위기를 얘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공계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다. 이건 아주 간단명료한 문제다. 살고 싶으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나 는 1991년 '서울공대 백서'를 발간했다. '서울대학은 국내 최고의 대학도 아니고, 세계 400위 안에도 못 드는 관악산의 최고대학'이라는 게 백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대학은 지금도 관악산의 최고 대학일 뿐이다.

2002 년 대선 때 서울대 폐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관악산 골짜기의 골목대장 밖에 안 되는 대학을 없애서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 나는 '서울공대 백서'와 1992년에 펴낸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오늘날 우리 공학교육의 위기는 5년 내지 10년 후 국가 전체의 위기로 냉큼 대두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IMF가 터지자 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 같이 예견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건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공계 교육이 왜 국가위기를 진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바퀴는 두 개다. 하나는 국가 경쟁력이고 하나는 가계부 작성이다. 돈을 잘 벌어야 하고, 번 돈을 잘 써야 하는 이치다. IMF는 벌이는 없고 가계부 작성도 엉망이었기 때문에 온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계부 작성을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엉망이었던 가계부 정리는 대충 끝났다. 구멍난 곳을 메우는 데 150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벌이를 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 'W 이론'에서 나는 세계 1등 기술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은 고스톱 판과 포커 판의 게임처럼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 2등이나 3등은 가산만 탕진할 뿐이다.

당 시에는 "도대체 무슨 얘기냐"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이제 이 얘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예전에는 인구 1억 명이면 내수시장만으로 국가를 지탱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요새는 인구가 문제가 아니다. WTO 등 글로벌 네트워킹 때문에 인구가 10억 명이 넘어도 기술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이외에 팔아먹을 것이 없다.

제주도를 천혜의 관광지라고 하지만 1년에 비오는 날이 100일이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는 부적격이다. 발리나 하와이에 가 본 사람들은 내 얘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관광국가로 먹고 살기에 우리의 문화유산은 너무 빈약하다.

벌 이가 없으면 아무리 가계부를 잘 써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원천은 과학기술 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 학생들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있느냐는 우리나라가 5년 후, 10년 후 어디로 갈 것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는가? 답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삼성전자가 핸드폰을 하나 만들 때 퀄컴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판매가의 15% 정도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설비와 부품을 일본에서 모두 수입해야 한다. 앞으로 남고 뒤로 믿지는 장사다. 그것도 삼성전자의 얘기다.

정부는 '2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을 위해 5대 성장전략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독자적인 기술 없이 어떻게 5대 성장 전략 사업을 키우겠다는 말인가?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들

지난해 서울공대생 23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적 어도 100명에서 150명의 공대생이 머리를 싸매고 골방에서 법전을 외워대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그것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나도 늦기 전에 고시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며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은 채 고시공부의 언저리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서울공대 학부생 5500명 가운데 10% 이상이 고시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니던 한 학생이 다시 대입 시험을 봐서 서울의대에 입학했다. 면접장에서 제자를 만난 물리학과의 한 교수는 기가 막혀서 '물리 과목은 다 맞았겠지'라고 했다고 한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돈 잘 버는 의사·한의사·변호사가 되겠다고 작심한 아이들에 비교하면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에 불과하다.

나는 이 제자들이 딱하기만 하다. 눈치 빠르게 일찌감치 돈 버는 쪽으로 갈 것이지 서울공대에는 왜 들어왔다는 말인가.

서울공대나 자연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모두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특출나게 잘 했고, 과학기술을 연구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졌던 친구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가 '이공계 공부해야 이렇게 비전이 없는데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서 이공계 공부를 계속 할 거냐'면서 이 아이들을 끊임없이 고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 대덕의 연구원들은 밤 12시까지 연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연구자 학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20대, 30대에 습득한 기술과 이론들은 순식간에 과거의 것이 되고 만다. 이공계 연구인력의 정년은 대부분 40대다.

이공계 인력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을 기다리는 건 '사오정'이라는 운명이다. 과학기술 인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길에는 존경과 냉소가 뒤섞여 있다.

이 들이 한국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라는 걸 어렴풋이 인식한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활동을 지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싫다. 국민의 이해 부족과 낮은 지위와 보수 때문에 이공계 출신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런데도 당신들은 자식들을 이공계에 보낼 것인가? 의대와 한의대에, 법과대학과 상과대학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개인차원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사회차원의 비합리적 선택이 되는 현상을 미리 알고, 차단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몫이다.

재벌 총수들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재벌기업 총수에게 "왜 기술력도 확보되지 않은 공장들을 자꾸 늘려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의 대답이 똑같았다. "이교수, 그러니까 이공계 출신들이 눈치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요.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총수가 이끌던 거대 재벌기업 두 개는 IMF 전후에 무너졌다. 그때 한 재벌 총수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생산성 향상, 그거 별 의미가 없어요. 5~6% 이윤이 남는데 30% 생산성 향상시켜 봐야 기껏 2% 포인트 이윤을 더 남기는 겁니다. 공무원들하고 골프 치고, 술 먹고 해서 큰 프로젝트 하나 따오면 20%, 30% 이윤이 남아요. 로비 잘하는 게 생산성 향상시키는 것보다 열 배는 쉽게 돈 버는 일입니다."

공 장을 세워서 은행 돈을 빌리고, 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덩치를 키워 정부의 특혜를 받고…. 그런 식으로 기업들은 살아왔다. 그 체질이 지금도 과히 많이 바뀌지 않았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를 나온 사람들은 재벌기업의 비서실, 기획실, 마케팅실에 근무하면서 정·관계에 포진한 동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지금도 이공계 졸업생들은 '당신들이 중요하다'는 말만 듣지 계속 벽지 공장을 돌게 된다. 이공대 졸업생들의 좌절은 여기서 시작한다. 엔지니어들이 말도 못 하고 속을 끓이는 사이에 몇 년 후배인 법대·상대 출신들은 쭉쭉 승진을 한다.

이공계 졸업생은 승진에 한계가 있다. 경영진에 많이 기용되지를 못한다. 벽지의 공장에 처박혀 있으니까 '촌닭 같아서'임원으로는 못 쓰겠다는 것이다.

그 래도 과거에는 엔지니어들에게 프라이드가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성을 향상시켰다고, 품질개선을 했다고 총수와 간혹 악수할 기회도 있었다. 1960년대, 1970년대에 기업들이 외국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면, 영문 매뉴얼을 보고 가동시키는 일을 서울공대 출신들이 했다. 복잡한 영어 매뉴얼을 보고 다들 기겁을 하는데 그나마 서울공대생들이 그걸 해낼 수 있었다.

요즈음은 그 일을 외국에서 공부한 교포 출신들이 대체한다. 영어 실력이 서울공대생들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에서 '서울공대 나온 친구들이 기술을 알면 얼마나 더 아나, 교포 2세가 낫다. 미국에서 대학교 2학년 다니다가 왔다는데도 또랑또랑하고 매너 좋고, 아무나 만나도 섭섭하게 안 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

왜 대학들은 이렇게 기술 경쟁력이 없는 공대생들을 양산하고 있을까?서울공대는 물론이고 대다수 공과대학이 이론 교육에 치중한다.

강 의 시간에 외국 이야기만 들으니 학생들은 감흥이 일지 않는다. 학생들이 '우리가 직접 실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으면 교수들은 '여기서는 못해'하고 의욕을 꺾어 버린다.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너희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받는다.

서울공대 교수의 학위논문 80% 가까이가 이론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인 셈이다. 우리 공대생들은 실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유학 가면 다 촌닭이 된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수들은 '실험실습비도 없고, 실험장비도 없다, 어차피 나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느냐'며 항변한다.

그러니 이공계 출신들은 유학 가서도 다 이론 쪽으로 간다.

기업은 해외협동이 있을 수 없다. 수요도 없고 공급도 없다. 기업과 대학 사이에 오가는 연구비는 기업들이 이공계 학생들을 조달하려는 차원에서 에이전시한테 주는 커미션일 뿐이다.

최근 들어 서울공대의 커트라인이 웬만한 지방의 의과대학보다 떨어진다. '공대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한다는 사실이 신문에 자꾸 보도되니까 공대가 더 죽는다'며 정원 미달 사실을 숨기는 것을 대책으로 들고 나오는 교수도 있다.

입 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져 수학·과학 '보충반'을 편성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수준의 학생들을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하라는 말이냐'고 한탄하는 동료 교수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 과연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학교육을 했느냐'고 묻는다.

최근 정부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겠다', '병역 혜택을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이런 대중적 구호를 보면 옛날 전봇대에 붙어있던 술집 여종업원 호객 구호가 생각난다. '침식 제공, 선불 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구호를 보면 "아, 저곳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건 산업기술이고, 그것을 이끌어 가는 것이 이공계 교육'이라는 사실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이 몇 개의 사탕을 나눠 주는 것으로 이공계 교육을 살려낼 방도는 없다.

내 실험실의 졸업생들 중 11명이 국제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졸업생들은 물론 교수인 나 역시 자부심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국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 이것이 우리 이공계의 현주소다.

이공계 기피의 역사적 뿌리

우 리 사회는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조의 문화로 회귀하고 있다. 기술을 중시하고 이공계가 우대를 받았던 1960년대 이후의 시기는 기술을 냉대한 긴 역사에서 잠시 반짝한 예외적인 시기였다. 역사 속에서 내 선배 과학자 기술자들은 모두 처절한 최후를 맞았다.

신라 무영탑의 전설은 아주 로맨틱하다. 탑 만들기에 동원된 석공은 오랫동안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스스로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 탑 만드는 데 동원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가정이 파탄난다' 불사에 동원된 석공들에게 오두막 하나씩 지어 주고 거기서 아내가 밥을 지어 주게 했을 법한데도 위정자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영탑의 전설이 주는 교훈은 '석공에게 시집가면 죽는다'였을지 모른다.

에밀레종 설화도 마찬가지다. 공명 설계는 컴퓨터 기술로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신라 시대에 종을 만들려면 보통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독촉과 질책을 받았으면 끓는 쇳물에 제 아이를 넣어 볼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흉내만 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대대손손 축복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아들을 제물로 바쳐 맑고 그윽한 소리를 만들어낸 신라의 종 만드는 기술자가 그 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설화 역시 '주조 기술자가 되려면 자식을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새벽 안개처럼 은은하게 사방에 퍼지게 했을 것이다.

조 선시대 기술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천민 계층이었다. 장영실을 보자. 관노 출신 천민인 장영실은 당시 지극히 예외적으로 종 6품까지 벼슬이 올랐다. 세종이 신임을 하니 문반들의 시기 질투가 대단했다. 문반들은 '천민이 종 6품까지 올라가는 것을 좌시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 아래 세종에게 온갖 간언을 했으나 세종이 듣지 않았다.

그러다 장영실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공주의 가마 손잡이가 부러져 공주의 가마가 구르고 말았다. 왕족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면 모반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세종도 감싸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가마 손잡이에 미리 톱질을 해 놓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당시 돌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후 아무도 장영실이 어떻게 됐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과학 기술자로 출세하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관존민비

국 내의 몇 개 안 되는 과학관에 가서 보면 서양 과학자들은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전부 기록돼 있는데 우리나라 과학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출생연도만 밝혀져 있을 뿐 사망연도는 물음표로 처리돼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말로가 안 좋았다는 증거다.

나는 1990년대에 '손빨래 세탁기', '골고루 전자레인지', '따로따로 냉장고' 등을 개발해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제품 6개를 만들었다. 이 덕에 199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시상식 전날 예행연습이 있다고 해서 불려갔다. 단상에 올라가는 걸음걸이가 씩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몇 번을 단상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연습하러 나온 여고 합창대원들 앞에서 서울공대 교수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었다.

이 튿날 시상식장에서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시상을 맡은 이수성 국무총리는 나와 함께 서울대학 교수로 일했던 분이다. 그의 연설이 이어지는 10여 분 내내 나는 객석을 등진 채 그를 바라보고 서 있어야 했다. 시상식의 주인은 상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맨 앞에 앉아 사진기를 들고 있던 아내는 나의 뒤통수만 실컷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상품 개발로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는 나는 수상 소감 한 마디 못해 보고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조선 시대 장영실의 얘기가 아니라, 1996년 서울공대 교수가 겪은 일이다. '이러니 다들 관료가 되려고 하지 누가 과학기술자가 되려고 하겠나' 하며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십면초가

나 는 1986년부터 우리의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1992년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우리 경제가 십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의 산업구조는 선진국에서 도입한 낙후기술과 설비에 저임금을 결합한 허약 체질이었다.

주문자 상표를 부착한 얼굴 없는 수출로 우리 상품은 저급품으로 분류돼서 외국의 저소득층에 팔려 나갔다. 유통망과 애프터 서비스 시스템이 없어 단골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져 실속 없는 산업팽창이 이뤄졌다.

1975 년을 기점으로 우리 산업의 틀을 바꿔야 했다. 1975년까지만 해도 '저임금 양산조립'은 한국에게 보장된 독무대였다. 그렇지만 기술도입과 단순 모방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했고, 값싼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라는 넘을 수 없는 산이 눈앞에 있었다.

1975년의 기술도입료가 전년도에 비해 갑자기 4배나 늘어났다. 이때부터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어야 했는데 우린 그걸 하지 못했다. 기술 도입료와 로열티가 계속 올라가자 기업들은 현장 작업자들만 다그쳤다.

지 금도 관료와 기업인들은 '고임금 저효율이 해소되어야 경제위기가 해소된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말인가? 이웃집에서 카시미론 솜 이불을 팔아대는데 낡은 솜틀 기계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 것은 1975년식 사고방식이다. 제조업은 기술정보, 상품기획, 연구개발, 설계, 설비계획, 부품조달, 생산, 판매기획, 판매, 사후관리 등 대략 10단계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우리의 제조업은 상품기획과 연구개발 설계는 해외기술의 도입으로 대체했고, 판매 및 사후관리 단계는 외국 바이어들에게 기대 왔다. 우리 손으로 직접 담당하였던 것은 생산부분 뿐이다.

우리 제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응급 처방은 무엇일까. 우선 선진 제품의 모방에 심취했던 역개발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창의적인 연구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상품 기획을 해 본적이 없다.

선진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도입하고 모방설계를 했으며, 세계시장에서 소비자 구매욕이 입증된 상품만 골라 뒤늦게 기획에 착수하였다.

나는 1989년 산학협동을 통해 '하이 터치'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상품을 개발하자는 게 목표였다.

1989 년에 만든 입체형 컴퓨터 키보드는 손목의 피로를 덜어 주는 제품이었다. 1993년에 출시되어 1조원 이상 팔린 맥킨토시 키보드보다 4년 앞선 기획 상품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은 '이제까지 이런 제품을 본 기억이 없다'는 이유로 대량생산을 망설였다.

'그렇게 좋은 키보드라면 왜 IBM에서 아직까지 개발을 하지 않았겠는가'가 업체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우리 기업은 남의 것을 모방만 해왔기 때문에 남이 안 하는 것을 만들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비 슷한 시기에 나는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자동 진공청소기를 개발했다. 최근 필립스가 제작해 국내에서 한 대에 200만원 이상으로 팔리는 자동 진공청소기와 똑같은 모양과 기능의 제품이다. 차이가 있다면 필립스는 진공청소기에 자동 감지장치를 장착했다는 것뿐이다.

자동 진공청소기의 기획 아이디어를 냈지만, 어느 전자제품 업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산학협동을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인들 머리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삼부가 이론'을 발견했다.

경영혁신은 죽지 않으려고 하는 일

신제품 개발을 위한 상품기획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기업의 관리자들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개발을 기피한다.

첫째,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이유다.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면 제품 원가가 올라가고 판매가도 높아지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량산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가 나온다. 나는 직육면체로 만든 제품의 모서리를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곡선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기업 쪽에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곡면으로 바꾸면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신뢰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논리다. 새로운 기능이 첨가되면 부품이 늘어나고 고장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기업 측에서는 '삼부가 이론'으로 신제품 개발에 반대했다.

어 떤 기업이 일류기업인가? 일류기업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산업분야를 개척하고 최고 혹은 최초의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이 기업을 모방한 다른 기업들이 덩달아 돈을 벌어야 한다. 즉 보고 따라 하는 이류기업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렇다면 초일류기업이란 무엇인가? 국적과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전세계의 일류기업들이 초일류 기업의 기술과 상품 경영철학을 본받아서 큰 이익을 내야 한다. 초일류로 분류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몇 개 밖에 없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한국에는 불행하게도 초일류 기업이 없다.

삼성은 일류기업이지 초일류기업이 아니다. 삼성이 '신경영'을 추진할 때 삼성 임원들의 방마다 '잭 웰치'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나는 삼성 임원들에게 '삼성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잭 웰치를 쫓아갈 수 없다'고 얘기했다.
삼성 사람들이 '왜 안 되냐'고 묻기에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 잭 웰치는 현재 1등이거나 가까운 장래에 1등이 될 수 있는 2등을 빼놓고는 다 잘라냈다. 삼성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그룹이 공중 분해되어도 좋은가? 잭 웰치가 한 번에 10만 명을 감원했다. 한국적 정서를 이겨내고 수만 명을 감원시킬 자신이 있나? 잭 웰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서 직접 서류 나르고 재떨이 던지며 경영혁신에 달라붙었다. 당신 회사의 회장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 관계자들은 '신경영을 하려는 총수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고 항변했다. 나는 '경영 혁신은 총수의 의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안 하면 죽기 때문에 하는 것이 경영혁신'이라고 했다.

그러면 삼성 관계자들은 대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죽기 살기로 경영혁신을 안 하는데 왜 삼성은 안 죽습니까?'

내 대답은 이렇다. '지금 사방에 암 걸려서 링거 꼽고 누워있는 환자들이 수두룩한데 폐병 걸린 환자를 죽일 수는 없지 않나?' 한국에서 경영혁신을 하겠다는 기업들은 대개 '전담추진반'을 둔다. 전담추진반은 보통 상무급이 팀장이 된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상급자인 사장들의 목을 자르겠는가?

IMF 경영혁신의 최대 피해자는 연구인력

IMF 이후 제일 먼저 잘려나간 것이 '전담추진반'에 연줄을 확보하지 못한 연구소의 연구인력들이었다.

총수가 직접 나서서 '우리 기업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밤새워 고심했다면 연구인력은 제일 마지막 감원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했다.

이 게 대한민국 기업의 비극이고, 나라의 비극이다. 한국은 기업의 회장이 구설수를 외면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잭 웰치는 '전담추진반'을 두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감원대상을 고르고, 자르고, 불필요한 부서와 인력을 잘라 냈다.

1997년 초 한 경영자 모임에서 내게 강연을 요청했다. 당시 '가격 경쟁력만이 살길이다'는 구호가 위력을 떨치던 시절이었다. 나는 강연을 하면서 '아직도 가격 경쟁력을 강조하는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기업활동에서 가능한 한 끝까지 피해야 할 것이 바로 경쟁사와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가격경쟁이란 최후의 승자 하나만이 남을 때까지 출혈을 하면서 계속해야 하는 죽음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나서서 '죽음의 경기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아직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제품들은 제조원가가 높은 반면에 판매가가 낮아서 가격 경쟁력을 따질 시기를 지난 지 오래다. 우리 제조업은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에 비해 높은 금융 비용과 부동산 가격, 물류 비용, 로열티, 실질 임금 등이 높아 '5고'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울타리를 친 내수시장에서 국내 가격을 높게 받아 연명해 왔다. 마치 친척들에게는 비싼 값을 받고 일반인에게는 싼 값에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긴 것과 같다.

운 동경기에서 우리 팀이 계속 실점을 하면 관중들은 '작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의 과거 작전은 가격 경쟁력이었으나, 가격 경쟁력 작전으로 가서는 중국은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상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길은 가격을 높여서 받을 수 있는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는 길뿐이다. 제품가격을 높이고도 물건을 파는 방법은 독특한 제품, 경쟁상대가 없는 고부가 제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겠다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 중국에는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은 물론 화상 네트워킹과 마케팅 능력이 있고, 일본에는 기술력이 있는데 우리가 무슨 근거로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까? 해답은 창의력에 있다.

우리에게 창의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모든 걸 해 봤는데 아직까지 안 해 본 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혹시 창의력이 있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나 스스로 경험을 통해 우리가 창의력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창의력을 가지고 소규모 실험을 해서 세계시장에 성공여부를 타진한 다음 군단 병력에게 파는 식으로 가야 한다. 우리의 3대 효자 상품인 휴대폰, LCD, 자동차 산업은 5년 안에 중국의 추격을 받아 자멸할 운명이다.

'가격 결정권'만이 살길이다

글로벌 마켓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마켓을 독점 내지 선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가격 결정권만 가지면 우리는 동양의 맹주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가격결정권을 가지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내가 내놓은 아래의 물음들에 독자들이 응답을 해주었으면 한다.

' 정부가 5년 이내에 이공계 기피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을 내놓을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기업이 5년 이내에 정부지원 없이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보는가?' '대학이 5년 이내에 스스로 교육개혁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학부모들이 내 자식만은 편안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고, 자녀에게 이공계 대학 진학을 권유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항목이든 "10%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응급실로 가야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우 리 산업은 도시가스에 밀려 설 자리를 뺏긴 구공탄 공장에 비유될 수 있다. 생산성을 향상해 하루에 구공탄을 10%씩 더 찍으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날 수 있을까? 구공탄 공장의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답은 둘 다 '아니오'이다.

도시가스가 도입되는 초기에 '도시가스로 업종을 전환하라'고 했다면 연탄공장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웃기지 마라. 온돌방이 존재하는 한, 겨울철이 존재하는 한 구공탄은 영원하다.' 연탄공장은 그렇게 전의를 불 태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음가게와 냉장고, 우마차와 용달차, LP와 CD 모두 똑같은 원리다. LP 5000장을 모은 음악 애호가에게 CD로 바꾸라고 한다면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오스트리아에 여행 갔을 때 밥 굶으면서 산 오페라 판, 유학할 때 아내에게 잔소리 들어가며 산 클래식 전집,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그래서 음악 애호가도 이렇게 외친다. "클래식이 존재하는 한, 아니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LP는 영원하다." 그러나 지금은 축음기 생산이 중단되어 더 이상 LP를 들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과거의 산업구조가 일직선인 주로를 눈감고 뛰기만 하면 되는 마차 경주였다면, 지금의 산업구조는 폴로 게임이다. 말의 눈을 절대 가리면 안 되고 주로도 일직선이 아니고 그라운드다. 어디로 갈지 모르며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빨리 설 줄 알아야 하고 세 박자 쉬었다가 달릴 수도 있고, 세 걸음 뛰다가 정지도 해야 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마차 경주 챔피언들이 폴로 복장을 하고 나와서 설치고 있는 형국이다.

요즈음 우리의 국가 목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다. GNP로 국가의 비전을 내세우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의식은 거의 필리핀 수준이다. 우리에게는 '이웃을 돕겠다', '인류에 혹은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 희박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기 조차 힘들다. 원래 패러다임의 전환은 극히 일부가 시도하는 것이고 시도한 사람 중에 극히 일부가 성공한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조선조의 한 왕이 정승들에게 "광풍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초가삼간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의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광풍이 쇠잔해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지도계층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사방의 문을 열어 놓으면 초가집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방 안에 있던 민초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 바람에 날려가서 죽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끈질기게 버텨왔다. 7년 전쟁에서 절반에 가까운 민초들이 사라진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이공계의 위기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이공계의 위기에는 기업과 대학, 사회 전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잭 웰치의 얘기에서 거론했듯이, 이공계의 위기는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달라붙어야 할 문제다. 정책 구호나 유인책 몇 가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대학이나 이공계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기업, 우리 사회 전체가 이공계 기피현상의 최종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살고 싶으면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Global Leadership| ② 이베이 맥 휘트먼 사장 (그녀는 저니맨에 가깝습니다. 저니맨이란 한 팀에 오래 있지 못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는 운동선수를 의미합니다. 그녀는 프록터앤갬블, 디즈니, 이베이, 하스브로스 등 여러 회사를 거쳤습니다. 전직이 흔한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직장인들이 회사를 자주 옮겨다니는 건 아니죠. 프록터앤갬블은 도요타 못지 않게 직원들이 장기 근속하기로 유명한 회사죠.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이 그녀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된 듯 합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이를 경영에 반영하는 습관이 몸에 배였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전제적인 유형의 보스를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맥휘트먼의 겸양의 리더십을 한번 배워보시죠.  )

[이코노믹리뷰 2006-03-30 06:45]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
결단력은 있지만 지배욕은 없다”

‘미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 전자상거래 업체인 미국의 이베이(ebay)를 지칭하는 말이다.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디어(Pier Omydir)가 여자 친구에게 줄 ‘캔디박스’를 구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기업의 성장 속도는 실로 현기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년 말 현재 전 세계적으로 등록된 회원 수만 무려 1억 5000만여 명.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의 인구를 합친 것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이 회사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13억2900만달러. 순이익은 36.1% 늘어난 2억 7900만달러였다.

창립 이후 매 분기 4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기업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해외 진출 실적도 괄목할 만하다. 지난 2001년에는 우리나라의 전자 상거래 업체인 옥션(auction)을 인수했으며, 프랑스·영국, 그리고 최후의 격전지 중국 등 해외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간간이 거래 수수료 인상을 둘러싼 잡음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이베이는 이제 구글·야후·아마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인터넷 기업의 명실상부한 최강자 대열에 합류했다.

‘떠들썩한 시골 장터의 정겨움과 초현대식 쇼핑몰의 편리함’. 이베이의 성공 비결은 명확하다. 시골 장터나, 지역 바자회의 흥겨움, 정겨움과 쇼핑의 편리함을 결합시킨 것이 상당 부분 주효했다는 평가다.‘친구들과 디즈니랜드에 가는 데 돈이 필요하다. 직접 그린 그림을 2달러에 팔고 싶다’는 한 어린이의 상품 설명은 보는 이들의 미소를 흘리게 한다.

두 살짜리 어린이가 초콜릿 푸딩을 재료로 직접 찍어낸 ‘손가락 프린팅’, 15만달러짜리 스포츠카 페라리와 더불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첨부돼 있는 편지…. 오프라인 매장에서라면 동시에 선보이기 힘든 이질적인 상품에 대한 원스톱 쇼핑을 제공하는 온라인 경매는, 이제 포털이나 인터넷 기업들이 탐을 내는 대표적인 수익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이베이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맥 휘트먼(Meg Whitman) 이베이 사장이다. 래리 페이지(구글 창업자)·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경영자의 반열에 오른 그녀는 이베이 약진을 이끌어낸 일등공신이다.

지난 1998년 3월, 휘트먼이 이 회사에 합류한 이후 회원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으며, 매 분기 수입은 40% 이상 폭증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 1999년 당시 미국 온라인 경매시장의 6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이베이의 독주를 경고하고 나설 정도였다. 그녀가 이베이 운영의 중임(重任)을 맡은 지 불과 1년여 만이었다.

물론 상황이 썩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포털 업체 등 이 분야의 잠재력에 뒤늦게 눈을 뜬 기업들이 이베이의 행보를 주시하며 유사 서비스를 신설해 강력한 위협을 던져 주었다. 가격비교 사이트는 수익 기반을 일거에 흔들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잠재력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신기술은 시장 강자의 비교우위를 순식간에 뒤집어놓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붉은 꽃이 열흘을 가지 못한다’는 속담은 이베이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은 그녀의 편이었다. 지난 2001년 닷컴 버블 붕괴의 후폭풍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베이가 온라인 결제 서비스사인 ‘페이팔(PayPal)’을 인수하는 등 승승장구하자, 그녀에 대해 다소 인색하던 시장의 평가도 완전히 달라졌다.

휘트먼식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온화한 미소가 돋보이는 휘트먼식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일까. ‘강한 결단력의 소유자이지만,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성향이 없는 경영자’. 지난 1998년 휘트먼과 면접을 치르고 난 뒤 창업자인 오미디어가 내린 그녀에 대한 평가는 정곡을 정확히 찌른 말이었다.

개방성, 유연함으로 튀지 않은 리더십 발휘

휘트먼식 리더십의 요체는 개방성·유연함 등으로 요약된다. “휘트먼은 결코 튀지 않는 리더다. 결코 보스처럼 굴지 않지만, 임직원들을 훌륭하게 이끈다. 그녀는 다스리지 않는 경영자며,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다.” <유에스뉴스 앤 월드 리포트>의 윌리엄 메이어 기자의 평가다

사실, 이 말 만큼 휘트먼식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평가도 없다. 휘트먼 자신도 ‘민주적 리더십’이야말로 이베이 성공의 비결(秘結)이라고 <유에스뉴스 앤 월드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회사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제언을 정책에 반영하는 한편,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여 사고의 폭을 확대해 나가는 그녀의 신중한 행보는 휘트먼식 리더십의 첫 번째 특징이다.

그녀가‘자아없는 경영(selfless management)’의 전범(典範)으로 불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회의 주재에서도 그녀의 이러한 특징은 확인된다. 장기 전략 수립에 수일 간을 매달리기보다 아이디어를 직접 실천해 보고 잘못된 점을 개선해 반영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게 그녀의 지론.
 
물론 이러한 아이디어의 근원은 ‘온라인 커뮤니티’다. 온라인 장터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판매자와 구매자들, 그리고 이베이의 9300여 명의 직원들은 그녀의 경영 전략의 큰 줄기를 결정하는 핵심 참모인 셈이다. 사실, “고객의 아이디어를 서비스나 제품 기획에 반영하라”는 프라할라다(C.K. Prahalad) 미시간대 교수의 가르침은 이베이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특히 그녀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전기는 중고 자동차 매매분야 진출을 둘러싼 회사 내부의 논란이었다. 일부 회원들이 장난감 자동차 카테고리에 중고 자동차 판매 공고를 올려놓으면서 회사측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당시 이베이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 반대 이유는 거래의 안전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중고차 매물 거래에 나서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제대로 계약을 이행할 것이라는 신뢰의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베이는 중고 자동차 판매업에 진출했고, 이제는 대표적인 효자 품목이 됐다.

그녀가 군림하고 통제하는 전통적인 리더십을 포기하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결정적으로 중시하게 된 배경이다. “시장을 이기려고 하지 마라.” 휘트먼의 이러한 사고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고 프랭크 웰스(Frank Wells) 디즈니 전 회장이었다. 그는 경영자가 지녀야 할 겸손의 미덕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인물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이직 경험도 유연한 사고방식의 형성에 한몫 했다는 것이다. <유에스뉴스앤 월드리포트>는 그녀의 민주적인 리더십 형성에는 잦은 전직의 영향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과거의 지식이 더 이상 나침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새로운 분야로 이직한 그녀가, 주변의 전문가 집단에게 꾸준히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만의 아집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컨설턴트부터 장난감 회사의 최고경영자, 그리고 소비재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까지, 그녀는 과거의 경험을 금과옥조로 삼기 어려운 새로운 분야로 이직을 했고, 이러한 경험은 이베이 운영방식에도 일정부분 기여한 셈이다.

특히 소비재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프록터앤갬블의 브랜드 마케팅 분야에서 직장경력을 시작한 것도 고객 중시 성향에 한몫 했다. 민주적인 리더십의 소유주인 휘트먼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대단하다. 인터넷 전화업체인 스카이프 인수건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휘트먼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가늠하게 한다.

이베이가 지난해 인터넷 전화업체 스카이프를 26억달러에 인수하자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회사 주가는 하락을 면치 못했다. 상품의 구매자와 판매자가 온라인 전화 서비스를 통해 더 정확하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였지만, 당시 이윤을 내지 못하고 있는 기업을 지나치게 비싸게 사들였다는 게 비판을 면치 못했던 것.

하지만 이베이의 주가는 곧 원상회복됐는데, 미국 언론은 이를 ‘맥 휘트먼 효과’에 따른 것으로 보았다. 언제나 신중한 행보로 시장의 믿음을 결코 배신한 적이 없는 그녀의 과거 업적을 신뢰했다는 의미다. 디즈니는 지난해 그녀를 영입하려고 했으며, 야후는 이베이와 전략적 제휴 협상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식경영시대에 이상적인 경영자 모델

지난 2002년 이금룡 당시 옥션 사장을 물러나게 한 것은 그녀의 또 다른 면을 가늠하게 한다. 당시 옥션의 지분 50%를 인수한 이베이의 휘트먼은, 대외 활동에 치중하는 이금룡 사장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그를 물러나게 했다.

“당시 (그녀가) 한국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일정 부분 오해가 있었다. 하지만 대외지향적 관리자보다 사업을 꼼꼼히 챙길 관리형 경영자를 선호한 것도 사실이다. ”홍보라인에 근무하던 이 회사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자신의 경영 방침과 부합하지 않는 경영자를 축출하는 단호한 면모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휘트먼이 항상 승리의 보증수표가 돼 온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터줏대감인 야후에 밀려 사업을 접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 그녀의 리더십을 폄하하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들려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인터넷 기업에서나 통할 스타일이며, 거대 굴뚝 기업 경영자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적지 않다는 것. 특히 소비자들을 추수하기보다 일정한 흐름을 선도해 온 경영자의 존재는 휘트먼식 리더십이 절대선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군림하지 않고, 소비자와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는 그녀의 리더십 스타일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있고, 소비자들의 변덕스러운 기호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최고경영자의 독선은 실패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올해 2월호에서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 좋아하는 경영자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영자에게 지식경영이란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일 뿐이라는 얘기다.
휘트먼식 리더십은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그녀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지난 1999년 이베이의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던 요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잠재해 있다. 예컨대, 미국 인터넷 산업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고 있는 구글의 가격 비교 서비스인 프루걸(froogal) 은 이베이의 입지에 상당한 위협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전망.

구글뿐만이 아니다. 야후를 비롯한 포털들도 가격 비교 서비스를 앞세워 이베이의 성장기반을 적극적으로 파고 들고 있으며, 아마존은 책은 물론 자동차·보석 등 상품을 판매하며 이베이의 입지를 강력히 위협하고 있다.
“ 나는 이베이가 그 잠재력의 일부만을 현실로 옮겼다고 판단하고 있다.” 휘트먼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베이가 경쟁자들을 누르고 전자상거래는 물론 전 세계 네티즌들을 끌어들이는 포털이 되든, 아니면 욱일승천의 기세를 잃어버리고 고만고만한 사업자로 전락하는 지 여부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주요 승부처의 하나는 중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베이 입성 비하인드 스토리

급여 수준 알고 머뭇…
스톡옵션 720만주에 OK

휘트먼이 당시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이베이에 합류한 것은 지난 1998년 초.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갬블·베인앤컴퍼니 등을 거쳐 장난감 업체이던 하스브로스의 최고 경영자로 근무하던 때였다.

이베이의 창업자인 오미디어는 브랜드 관리 부문에서 역량이 탁월한 최고 경영자를 수소문하고 있었고, 그녀는 6명의 후보군에 속해있었다. 공대 출신들이 주도하던 회사 입장에서 마케팅 역량을 강화할 전문가의 영입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베이는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었다.

“헤드헌터가 실리콘밸리에 있는 신생 인터넷 회사인 이베이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전혀 없다고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신경정신 외과의사로 뇌종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두 아이도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스브로스를 나와 5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옮겨갈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

《이베이의 거대한 실험》에 실린 맥 휘트먼의 말이다. 당시 그녀에게 제시된 급여 조건은 연봉 14만5000달러에 보너스 10만달러.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파격적인 스톡옵션 조건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회사 주식의 6%에 달하는 720만주를 주당 0.022달러에 살 수 있다는 옵션이었다. 당시 미국을 강타한 닷컴 열풍을 감안해 볼 때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던 셈이다. 휘트먼이 이베이의 약진에 단단히 한몫 한 것은 명확하다.
 
윤리경영이 부상하면서 최고경영자에게 지나친 보상을 주는 스톡옵션의 폐해를 지적하는 염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휘트먼은 스톡옵션의 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고건 전총리, 전장서 예를 찾다

다시 리더를 말한다 ② 고건 전 총리

[이코노믹리뷰 2007-02-15 07:42] (송 양지도. 전쟁터에서 도를 찾다가 결국 적에게 패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후인 송양을 비꼬는 고사성어입니다. 고건 전 총리도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한때 주변의 높은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후보 대열에서 스스로 탈락하고 말았지요. 혹시 적군이 강을 다 건널때까지 기다리던 송양의 우를 되풀이한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직접 쓴 기사는 아니고, 고전연구가인 신동준씨가 풍요로운 고전 지식을 활용해 저술한 글이지요.


신동준씨는 한겨레와 조선일보 등에서 정치부 생활을 오래 했는 데,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전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성악설로 널리 알려진 순자를 국내에 평역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분석한 고건 전총리의 리더십을 한번 보시죠:)



“시대 거부한‘愼獨 리더십’…
臣道의 길을 이탈하지 못했다”

“고 전 총리는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결단을 내린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의 행보는 현실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역대 대통령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행보와 대조를 이룬다”

다산 정약용
“고 전 총리는 다산 정약용의 저서《목민심서》에서‘현명한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의‘지자이렴(知者利廉)’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때문에 그가 취한 행보는 《중용》에서 말하는‘신독(愼獨)’에 가깝다.”

조조“난세에 천하를 놓고 다툴 때는‘신독(愼獨)의 리더십’이 어울리지 않는다. 조조처럼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재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해 쓰는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용인술이 필요하다.”

최근 범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던 고건(高建) 전 총리가 문득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된 인물이 중도에 불출마선언을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특히 고 전 총리는 지난해 중반기까지만 해도 줄곧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려온 까닭에 그를 잠재적인 대통령 감으로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던진 충격은 매우 컸을 것이다.


대선 경쟁은 기병술이 동원되는 野戰
본래 대선 경쟁은 온갖 기병술(奇兵術)이 동원되는 야전(野戰)에 비유할 수 있다. 야전을 지휘하는 장수는 결코 일시적인 승패에 희비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전투를 하다 보면 적의 기습공격을 받아 대병(大兵)을 잃고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전투에서 줄지어 승리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상승무적(常勝無敵)의 기세를 자랑할지라도 마지막의 대회전(大會戰)에서 승리를 거머쥐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대선의 최종 회전에서 승리키 위해서는 먼저 출마자 스스로 필승의 신념을 지니고 도중의 모든 난관을 기필코 돌파해 나가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결단을 내린 적이 없었던 듯하다. 이러한 관측이 맞는다면 고 전 총리의 행보는 현실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역대 대통령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행보와 커다란 대조를 이루는 셈이다.


큰 틀에서 보면 고 전 총리의 하마(下馬) 선언은 기본적으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그의 조심스런 행보와 무관치 않다. 고 전 총리가 존경한 역사적 인물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라고 한다. 정조(正祖)의 총임(寵任)을 받았던 다산은 순조(純祖) 연간에 노론의 견제에 걸려 전남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무수한 역저(力著)를 남겼다. 고 전 총리가 주목한 다산의 저서는 공직자의 직무수행 교범이라고 할 수 있는 《목민심서(牧民心書)》였다. 그는 《목민심서》에서 ‘현명한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의 ‘지자이렴(知者利廉)’이라는 구절을 찾아내 자신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 전 총리가 취한 행보는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신독(愼獨)’에 가깝다. ‘신독’은 말 그대로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조차 신중한 사려와 행보를 취하는 군자의 기본자세를 말한다. ‘신독’을 두고 다산은 《중용자잠(中庸自箴)》에서 ‘신독은 성(誠)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성’은 ‘성신(誠信)’을 뜻한다. ‘중용’이 곧 ‘성’이고, ‘성’은 곧 ‘신독’에 의해 이뤄진다는 게 다산의 논리였다.



40년 화려한 官歷…깨끗한 사생활
고 전 총리는 다산의 이런 논리를 적극 수용한 듯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확실히 ‘중용’에 입각한 ‘신독’의 길이었다. 그가 제3공화국 이래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선을 포함한 서울시장을 2번 역임하고 총리직을 중임하는 등 40여 년에 달하는 고위 관직 생활 중 단 한 번도 금전과 여인 등으로 인한 스캔들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독’을 삶의 기본철학으로 삼은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조 중기의 명신인 김집(金集)을 들 수 있다. 그의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김집은 조선조 예학(禮學)의 조종인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효종 때 이조판서가 되어 북벌(北伐)을 계획하다가 김자점(金自點) 등의 방해로 이내 관직을 사임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조선조 예학의 태두가 된 인물이다. 김집과 고 전 총리는 평생 ‘신독’을 기본철학으로 삼아 여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그러나 ‘신독’은 비록 군자의 길이기는 하나 원래 청관(淸官)에게 어울리는 신도(臣道)의 길이다. 난세에 천하를 놓고 다투는 소위 ‘축록전(逐鹿戰)’은 신도가 아닌 군도(君道)의 길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역대 대선전은 말 그대로 ‘군웅축록(群雄逐鹿)’의 각축전이었다. ‘축록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재능 있는 자를 과감히 발탁하는 소위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용인술(用人術)이 필요하다. 이는 평생을 ‘신독’의 청관으로 살아 온 고 전 총리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愼獨의 행보… 조조의 리더십과 상반돼
군웅축록’의 난세에 ‘유재시거’의 용인술을 절묘하게 구사한 대표적인 인물로 조조(曹操)를 들 수 있다. 그는 형수를 취하고 뇌물을 받은 소위 ‘도수수금(盜嫂收金)’의 인물일지라도 재능만 있다면 과감히 발탁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쟁천하(爭天下)의 요체가 오직 재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하는 소위 ‘유재시거’에 있다는 사실을 통찰한 데 따른 것이었다. ‘유재시거’는 《목민심서》의 ‘지자이렴’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신독’의 행보를 취해 온 고 전 총리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원래 ‘도수수금’은 《사기》‘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찍이 유방(劉邦)은 항우(項羽)를 치러 갔다가 대패하여 정신 없이 도주하던 중 흩어진 군사를 간신히 수습해 형양(滎陽) 땅에서 진평(陳平)을 아장(亞將)으로 삼아 한왕(韓王) 한신(韓信) 밑에 예속시킨 바 있다. 이때 휘하 장수인 주발(周勃)과 관영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진평을 이같이 헐뜯고 나섰다.


진평은 집에 있을 때는 형수와 사통했고, 위(魏)나라를 섬겼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망하여 초나라에 귀순했고, 초나라에 귀순하여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도망하여 우리 한나라에 귀순한 자입니다. 그는 여러 장수들로부터 금품을 받으면서 금품을 많이 준 자는 후대하고, 금품을 적게 준 자는 박대했습니다. 진평은 반복 무상한 역신(逆臣)일 뿐입니다.”


유방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곧 진평을 천거한 위무지(魏無知)를 불러 질책했다. 그러자 위무지가 유방에게 이같이 대꾸했다.


신이 응답한 것은 그의 능력이고, 대왕이 물은 것은 그의 행동입니다. 지금 만일 그에게 미생(尾生) 및 효기(孝己)와 같은 행실이 있다 할지라도 승부를 다투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바야흐로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대항하고 있는 까닭에 신은 기모지사(奇謀之士: 기이한 계책을 내는 뛰어난 책사)를 천거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계책이 나라에 이로운지만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도수수금’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기의 ‘미생’은 홍수로 인해 물이 불어나는데도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남의 장소인 다리 밑에서 한없이 기다리다 물에 빠져 죽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효기’는 뛰어난 효성으로 이름이 높았던 은(殷)나라의 중흥군주인 고종(高宗)의 아들이다. 위무지는 잘못된 천거를 나무라는 유방에게 아무리 효성과 신의가 뛰어난 인물일지라도 난세를 타개한 지략(智略)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일갈(一喝)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방은 위무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도 못내 안심이 안 되어 당사자인 진평을 불러 반복무상한 행보를 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진평이 이같이 응답했다.


당초 신은 위왕(魏王)을 섬겼으나 위왕은 신의 말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왕을 떠나 항왕(項王:항우)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항왕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면서 오직 항씨 일가와 처남들만을 총신(寵信)했습니다. 설령 뛰어난 책사가 있다 한들 중용될 여지가 없기에 저는 초나라를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대왕이 사람을 잘 가려 쓴다는 얘기를 듣고 대왕에게 귀의케 된 것입니다. 신은 빈손으로 온 까닭에 여러 장군들이 보내준 황금을 받지 않고서는 쓸 돈이 없었습니다. 만일 신의 계책 중 쓸 만한 것이 있으면 저를 채용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황금이 아직 그대로 있으니 잘 봉하여 관청으로 보내고 저를 사직시키십시오.”


이에 유방이 진평에게 사과하고 후한 상을 내린 뒤 호군중위(護軍中尉)에 임명해 제장들을 지휘케 했다. 그러자 제장들이 더 이상 진평을 헐뜯지 못했다. 유방이 항우를 제압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데에는‘유재시거’의 대원칙에 입각해 진평을 과감히 기용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삼국시대의 조조가 동탁(董卓)과 이각, 장수(張繡) 등에게 차례로 몸을 의탁하며 반복무상한 행보를 보인 책사 가후를 자신의 군사(軍師)로 과감히 발탁한 것은 유방의 ‘유재시거’ 행보를 흉내낸 것이다. 조조의 이런 선택은 전적으로 옳았다. 북방의 맹주 자리를 놓고 원소(袁紹)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결전을 벌인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가후의 계책이 결정적인 승인(勝因)으로 작용한 사실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공직생활 내내 ‘신독’의 행보를 보여 온 고 전 총리에게는 ‘유재시거’와 같은 과감한 인사를 기대키가 쉽지 않다. 고 전 총리가 오랫동안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참모들을 적극 활용해 이를 하나의 대세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고 전 총리는 비록 관원의 최고직위를 뜻하는 극품(極品)의 자리를 2번이나 역임하는 등 화려한 관력을 보유키는 했으나 극상(極上)의 자리인 군위(君位)와는 인연이 멀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본래 군위는 지존무비(至尊無比)인 까닭에 품계가 없다. 아무리 극품의 자리에 여러 차례 오를지라도 군위에 비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선이 있을 때마다 극품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들이 대권에 강한 의욕을 내비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동양 3국의 역대 인물 중 고 전 총리와 유사한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을 고르라면 단연 5대10국(五代十國)의 시대에 활약한 풍도(馮道)를 들 수 있다. 풍도는 특이하게도 불과 채 10년도 안 되는 왕조가 명멸하는 와중에 재상을 연거푸 역임했다. 이는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제3공화국에서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고위직을 역임한 고 전 총리의 관력 역시 전무후무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풍도는 당(唐)제국이 무너진 후 60여 년 동안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 지속된 소위 5대10국(五代十國)의 시기에 활약한 인물이다. 당시 황하 중하류 북쪽에서는 후량(後梁)과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5왕조가 명멸했다. 장강 중하류 남쪽에서는 오(吳)와 남당(南唐), 오월(吳越), 초(楚), 민(??), 남한(南漢), 전촉(前蜀), 후촉(後蜀), 형남(荊南), 북한(北漢) 등 10국이 난립했다. 남쪽은 여러 나라가 난립해 병존한 데 반해 북쪽에서는 5왕조가 차례로 명멸한 점에 차이가 있다. 이들 왕조를 흔히 ‘5대10국’으로 통칭한다.


5대10국 시대에 활약한 풍도와 닮아
당시 5대10국 중 가장 짧은 왕조는 후한으로 만 4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이는 중국사는 물론 전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짧은 왕조에 속한다. 후량은 만 7년, 후주는 만 9년, 후진은 만 10년밖에 존재하지 못했다. 가장 긴 후당의 경우도 겨우 만 14년에 불과했다.


10년 안팎의 5왕조가 난립한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로 5년마다 되풀이 된 6공화국 역대 정권의 파행(跛行)과 사뭇 닮아 있다. 그러나 5왕조는 6공화국보다 오히려 나은 면이 있었다. 5왕조는 최고 권력자의 교체로 끝난 데 반해 6공화국은 하부 인사들까지 일거에 교체되는 격변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5왕조가 왕조교체로 명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면 평온을 유지한 데에는 풍도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고 전 총리가 전대미문의 ‘탄핵정국’ 속에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끈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풍도는 5왕조에서 8성(姓)의 11명에 달하는 천자를 잇달아 섬기면서 고위 관리로 30년, 재상으로만 20여 년을 지냈다. 이는 고 전 총리가 총리직을 포함한 고위관원으로 40여 년을 살아온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풍도가 여러 왕조에 걸쳐 오래도록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청렴한 자세와 뛰어난 자질 때문이었다. 만 4년짜리 왕조가 명멸하는 미증유의 혼란 속에서 그나마 백성들이 큰 어려움 없이 난세를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풍도와 같은 현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명대 말기의 이탁오(李卓吾)는 ≪장서(藏書)≫의 마지막 장에서 풍도를 이같이 평한 바 있다.


맹자는 사직이 소중하고 군주는 가볍다고 말한 바 있다. 풍도는 이 말을 참으로 잘 이해한 사람이다. 백성들이 창끝과 살촉을 맞는 고통에서 벗어난 것은 바로 풍도가 백성들을 편안하게 부양하는 데 힘쓴 결과이다.”


풍도는 자신이 다섯 왕조를 두루 섬겼다는 지적을 받을지언정 차마 무고한 백성이 날마다 도탄에 빠져 있게 할 수는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탁오가 풍도를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풍도가 백성의 존망을 자신의 영욕(榮辱)보다 위에 둔 데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풍도는 평생을 두고 정당치 못한 재화는 집안에 쌓아 두지 않았다. 또한 질박하고 검소한 옷과 음식에 만족했다. 특히 그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했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출신 가문을 따지지 않고 재능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아꼈다. 고 전 총리 역시 청렴한 삶을 살아오면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풍도는 훗날 자서전인 《장락로자서(長樂老自序)》에서 자신은 집안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키 위해 헌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러 면에서 풍도와 유사한 삶을 살아온 고 전 총리가 훗날 자서전을 쓰면 《장락로자서》와 유사한 내용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한 번도 국민들의 박수 속에 퇴임하는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했다. 특히 5년 단임제를 채택한 이후 정권교체의 시기가 빨라져 마치 5대10국 당시에 단임 왕조가 명멸하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풍도를 닮은 고 전 총리가 당선될 경우 나라를 보다 안정되면서도 중도 통합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공산이 컸다.


그러나 풍도가 비록 지존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지라도 5대10국의 난세에 찬연한 빛을 발했듯이 고 전 총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고 전 총리가 앞으로도 계속 국가원로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아 갈 것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 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힐튼리조트, 포터이론으로 분석해보니

Topic |국내 진출한 힐튼 글로벌리조트 돌아보니

[이코노믹리뷰 2007-02-15 23:00] (힐튼 리조트의 초청으로 지난주 남해에 위치한 이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서울에서 여수공항까지 딱 45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이곳에서 다시 한시간 정도를 달리니 힐튼 리조트의 정경이 나타났는데요. 첫인상은 겨울철이고, 나무가 모두 헐벗어서인지 좀 을씨년스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월요일이어서 내방객도 많지 않구요. 하지만 메인 식당과 숙소, 그리고 글프장 등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싹 바뀌고 말았죠. 뭐라고 할까요. 리조트 전체가 바다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잠을 청하든, 식사를 하든, 아니면 골프를 치든 바다가 항상 주위에 있었죠.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기사를 쓸때는 한 가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칫하다간 힐튼쪽의 입장만을 대변해줄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포터의 다이아몬드 이론을 적용해 이 리조트의 경쟁력을 분석해보았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과유불급인가요? 마이클포터가 한국땅에서 너무 고생을 하나요. 아 참 그리고, 기사에 등장하는 재즈가수 린 힐튼은 힐튼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리조트의 메인 식당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


리조트와 마이클 포터 만나니
남해가 몰디브로 바뀌었네

‘투명한 쪽빛 바다.’ 탄성이 절로 난다. 상큼한 공기, 스쳐 가는 바람에 수면위에서 수천 수만개의 빛의 조각들이 명멸을 한다. 바다를 따라 흐르듯 이어져 있는 도로변의 벚나무, 올망졸망 늘어서 있는 작은 민가들. 지난 5일 차창 밖으로 바라본 경상남도 남해의 첫인상이다.

봄이 성큼 다가온 주변의 풍광은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자랑거리는 비단 볼거리가 다는 아니다. 이 곳에서 잡히는 횟감은 육질이 좋기로도 유명하단다. 이날 가이드 역할을 자청한 택시 기사의 자랑이 대단하다. “씹히는 맛이 그만입니더. 타지 사람들은 한번 혀끝에 배인 그 맛을 영 잊지 못합니더.”

현대하이스코 공장, 광양 등을 지나 남해대교를 건너자, 이순신 장군의 전몰 유적지를 알리는 팻말이 시선을 끈다. 나지막한 산, 바다, 그리고 역사적인 유적도 이곳에는 풍부하다.

하지만 낮에는 화려하던 남해는 밤만 되면 또 다른 ‘속살’을 드러낸다. 밤 10시, 여느 도시 같으면 불야성을 이뤘을 시간이지만 시내 전체는 벌써 어둠 속에 깊숙이 잠겨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거제도와 생활수준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조선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거제도는 요즘 분위기가 썩 좋고, 땅값도 많이 올랐습니다. 남해는…”기자를 남해 시내로 안내하던 택시 운전기사는 말끝을 흐린다.

“김두관 군수, 참 열심히 일했는데, 타지에 가서 고생만 하고 있지 뭐…” 이 섬 출신의 인사를 맥없이 화제에 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 자원 말고는 딱히 자랑할 거리가 없는 것이 이곳의 딜레마다.

낮과 밤은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군민수도 불과 5만여 명. 남해군이 오죽하면 군민 1% 늘리기 운동에 나섰을까.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훌쩍 떠나버린 남해 군민들의 평균 연령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지역 출신 군수들이 나서보지만 역부족이다. 그런데 작년말부터 이 소도시에 조그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다시 늘어나고 있다. 또 이들을 겨냥한 생맥주집, 치킨집도 점점 늘어 활력을 더하고 있다.

남해에는 요즘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번영은 유산이 아닌 창조하는 것”
“번영이란 창조되는 것이지 유산으로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Prosperity is created, not inherited)”다이아몬드 이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경영 전략의 대가 마이클 포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의 말이다.

작년 10월 남해에 문을 연 한 글로벌 리조트는 이 지역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있다. 불과 석 달 가량이 지났지만 리조트 분양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추가 분양을 위해 리조트 세 동을 추가로 건설 중이다. 젊은이들도 늘었다.

주인공은 힐튼 남해 골프&리조트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던 남해를 바꾸어 놓고 있는 이 글로벌 기업의 저력은 무엇일까.

마이클 포터의 다이아몬드 이론은 이 지역의 경쟁력을 분석하기 위한 유용한 분석틀이다. 다이아몬드의 첫 번째 꼭지점이 바로 생산 조건인데, 무엇보다 남해는 이 점에서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날씨가 따뜻하고,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바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떠 있는 섬 주위로 순식간에 안개가 피고 사라지며 이국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회사 측이 조성한 나무 목책 산책로도 눈에 띈다. 골프장 주변의 야산 주변을 감아 돌며 관광객들을 전망이 탁 트인 장소로 이끈다. 겨울철에 골프를 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장점. 제주도와 달리, 겨울철에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눈이 내리지 않는다.

갯벌을 막아 만든 매립지 위에 리조트를 세워서일까. 바다에서는 섬을 배경으로 안개가 순식간에 피어났다 사라지며, 무수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골프를 칠 때도, 식사를 할 때도, 리조트에서 잠을 청할 때도 바다는 늘 함께 있다.

포터가 말한 생산조건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는 탁트인 풍광, 다시 말해 ‘뷰(View)’이다. 생산 조건의 또 다른 구성 요소는 바로‘종업원들의 경쟁력’이다. 무엇보다 검은색 두건 형태의 모자에, 같은 색의 깔끔한 캐주얼 복장으로 통일했다.

이들에게는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사기 진작을 위해 정기적으로 총지배인이 시내에서 볼링 대회를 개최한다. 평균연령이 30대 초반인데, 이들이 바로 요즘 남해 시내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힐튼 측은 리조트 오픈과 더불어 160명 가량을 고용했으며, 앞으로도 채용 규모를 꾸준히 늘려나갈 계획이다.

올해 6월께면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오픈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더 많은 젊은이들을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글로벌 기업은 이들을 서비스정신이 투철한 인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리조트의 ‘수요 조건(Demand Condition)’은 어떤 편일까. 마이클 포터가 제시한 다이아몬드의 두 번째 꼭지점이다.

시장의 크기도 크기지만, 소비의 질이 중요하다는 게 포터의 지적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 비해 시장 규모가 열세이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기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진출했다 토종 기업들에 밀려 턱턱 나가떨어지는 곳이 바로 한국 시장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힐튼도 국내에서는 유독 신라호텔 등 토종브랜드들에 맥을 못추고 있다. 리조트 내 목욕탕에도 버튼하나만으로 데스크를 부를 수 있는 호출 장치를 설치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다이아몬드의 세 번째 꼭지점은 바로‘관련 및 지원분야 (Related & Suppor-ting Industry)’다. 스웨덴의 울루 클러스터(cluster)나, 미국의 실리콘 밸리 등 관련 산업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정보와 지식을 나눌 수 있는 단지를 뜻한다.

여기에는 물류나 정부의 지원 등도 포함된다. 생산조건이나, 수요조건과는 달리 관련 및 지원분야는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여수까지는 불과 45분 정도가 걸리지만, 여수에서 이곳까지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또 리조트로 통하는 도로는 폭이 비좁고, 중앙선도 없다. 이에따라 리조트측은 올 여름에는 여수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도로를 이용하지 않고도 바다를 경유해 리조트에 올 수 있는 쾌속선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남해군이 ‘보물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호재이다. 생태공원, 원예 예술촌 등 지역 특성을 활용한 관광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힐튼 측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배경이다. 남해군은 힐튼 리조트로 통하는 좁은 2차선 도로의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마지막 항목인 이 기업의 전략적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전략과 경쟁이 사업성패 좌우
‘린 힐튼(Lynn Hilton)’을 보자. 넉넉한 체구의 흑인 여자 가수다. 이 리조트에서 활동 중인 그녀는 흑인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고음의 보컬을 자랑한다. 닐스 총지배인은 뉴욕 맨해튼에서 활동하던 그녀를 영입했다.

그녀를 불러온 것은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다. 본관 건물도, 마치 독일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떠올리게 한다. 다이아몬드의 네 번째 꼭지점은 전략과 경쟁(Strategy & Rivalry)이다.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는 게 포터의 지적이다.

생산조건, 수요조건, 관련 분야 지원분야 등을 파악하고, 약점을 보완하며, 강점은 강화하는 것이 바로 전략가의 몫이다. 닐스 총지배인은, 힐튼 인터내셔널이 무려 2년 간을 관광지로서 남해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를 면밀히 분석하며 진출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고 전한다.

J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전라남도가 갯벌에 조성하는 토지의 분양가 수준을 놓고 농림부와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지리한 대치를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모두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고개를 가로젓던 아프리카의 몰디브를 세계적인 명소로 키워낸 역량은 바로 이 회사 성공의 자양분이기도 하다. 힐튼이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의 공략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싱가포르에 있던 아시아 태평양 지역본부의 기능 일부를 별도로 떼어냈다.

또 이 기능을 담당할 지역 본부를 일본에 세우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공략의 수위를 높여나가고 있다. 용의주도한 접근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쟁요소는 어떨까. 제주도에 있는 리조트는 물론 일본, 중국의 글로벌 리조트들도 모두 잠재적 경쟁상대다.

해외 리조트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남해리조트가 이들 경쟁사들에 비해 비교우위가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마이클 포터는 “경쟁이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하버드가 추천하는 경영서 10선

하버드 비즈니스 추천 경영서 10권 분석해보니

CEO 고민은 국경이 없네!

[이코노믹리뷰 2006-03-23 10:00] (하버드비즈니 스리뷰.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경영월간지입니다. 마케팅, 전략 등 분야별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석학들이 이 책에 기고를 하는 데, 면면을 보면 참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이클 포터, 프라할라다가 대표적이죠. 이 두사람은 최근호에도 기고문을 싣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CEO들의 대담 기사도 곧잘 실리곤 하는 데요. 제프리 이멜트도 작년 6월호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Growth as a process였나요. 이 책에서는 미국 경영계의 최신흐름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데요. 작년 3월에 실린 추천 도서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


국 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경영학자 말콤 글래드웰. 기자 출신으로 경영자의 의사결정 방식과 관련한 특유의 통찰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그가 최근 한 유명 인터넷 블로그 사이트(www.800ceoread.com/blog/)에 자신의 글을 올리기 시작해 화제다.

유명 경영자들이나 기업인들의 언론 인터뷰나 연설문 등이 날짜별로 매일 올라오는 이 블로그 사이트는 정보의 보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사이트에 매년 초 빠지지 않고 실리는 정보 중 하나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추천하는 올해의 서적 20권이다. 전 세계 경영자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이 잡지가 소개하는 책들은 자본주의 최전선인 미 경영계의 최신 동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중 10권의 내용을 분석해 보았다.

‘저가 상품 시장에 눈을 돌려라’. 다국적 기업들 사이에서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히트 상품 ‘레이저(razr)’를 앞세워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도 대거 약진한 모토롤라.

이 회사는 인도를 비롯한 신흥 시장의 통신 업자들과 손을 잡고, 불과 3만원대의 저가 휴대폰을 대량 공급하며 시장 공략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프리미엄·저가 제품을 양 날개로 선진국·개도국 시장 모두를 효율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 저가시장 공략에 나선 업체는 비단 모토롤라뿐만이 아니다.

미국 인터넷 산업의 지도를 바꾸어놓은 검색기업 구글(Google)도 저가의 랩톱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을 정도니, 각국의 기업이 저가 상품과 ‘바람이 났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저가 시장은 새로운 금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중국 등 아시아의 개도국 시장이 주요 공략 대상이다. 《개발되지 않은 시장, Untapped》 의 공저자인 존 와이저(John Weiser)는 그러나 (아시아는 물론) 북미 지역의 저소득층에도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인도 출신의 프라할라드(C.K Prahalad) 미시간대 교수가 개도국 빈민 계층의 구매력에 초점을 맞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와이저는 특히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새롭게 조명한 일단의 경영학자들, 그들의 사상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저가 시장 공략의 장애물,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 등을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보물 사냥, Treasure Hunt》 은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 변화와 더불어 파급 효과, 그리고 공략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컨설턴트인 마이클 실버스타인(Michael. Sylverstein).

그가 묘사하는 미 소비자의 소비 행태는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할인점에서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생필품을 구입하고, 아낀 돈으로 프리미엄 상품에 거리낌 없이 투자하는 제한적 사치의 선호자들. 페이스 팝콘이 지난 1999년 예견한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들이기도 하다.

IBM컨설팅 그룹이 지난 2004년 〈2010 소비자 보고서〉를 통해 이중적 소비행태의 등장을 예고한 바 있으니, 이 책도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셈이다.

소비자들의 새로운 소비 성향은 가격이나 품질에서 비교 우위를 지니지 못한 기업들이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울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레드 오션에서 저가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배경이기도 하다. 브랜드 파워를 확보하거나, 신시장을 개척하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케이트 뉴린이 저술한 《쇼핑의 기회, Shopportunity》 는 마케팅 지침서. 할인 경쟁이 몰고 온 여러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유통업체들이 할인 경쟁에만 치중하다 보니, 소비자로부터 쇼핑의 즐거움을 앗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브랜드 파워를 약화시키는 것도 문제다.

‘소매혁명의 선언(Manifesto for Retail Revolution)’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케이트 뉴린(Kate Newrin)’ 컨설팅 그룹을 운영중인 저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트렌드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운영하는 브레인 러저브(Brainreserve) 출신이다.

美, 장기 가치 중시 기업이 뜬다

국내에서도 윤리경영을 둘러싼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X-파일 사태, 두산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기폭제가 됐다. 지난 학기 일부 경영대학원의 윤리경영 강좌는 넘쳐나는 유명 기업인들로 정원을 늘려야 했을 정도.

흥미로운 점은 윤리경영의 대두는 국내에서도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29년 대공황으로 빈부 격차가 커지며 록펠러 등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확산된 점을 감안하면 양극화는 윤리경영의 탄생을 예비하는 토양인 셈이다.

윤리경영의 역사가 상당히 긴 미국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여전히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이상이 높은 기업, High-purpose company》 는 윤리경영을 추구하는 여러 기업들을 분석했다.

저자인 크리스틴 아레나(Christine Arena)는 윤리경영 실천 기업 중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곳들과 더불어 윤리경영의 작동방식,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 등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전략적 윤리경영의 의의를 분석한 지침서. 윤리경영의 확산은 경영자에 대한 보상 시스템의 재평가를 불러왔다. 《경영자 급여 어떻게 할 것인가, CEO Pay and What to do About it》 가 스톡옵션 운용 방식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톡옵션 제도가 경영자에게 지나치게 후한 보상을 주고 있다는 것. 단기 실적에 집착하게 만들어 여러 부작용을 불러오는 배경이라는 얘기다.

칼 아이칸(Carl C. Icahn)도 미국 경영자들에 대한 보상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스톡옵션 제도는 기업의 장기 가치 제고에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인 마이클 젠슨(Michael C. Jensen)과 케빈 머피(Kevin J. Murphy)의 지적이다.

미국 기업들을 사로잡고 있는 주제는 장기 전략. 장기 가치 제고 등이다. 제약업체 화이자가 최근 분기실적을 발표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제2의 닷컴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구글(Google)’도 장기 가치를 중시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분류된다.

하버드 대학교의 현직 교수인 저자는 한때 스톡옵션의 장점을 주창한 당사자였으니, 미국 사회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가늠하게 한다. 가족경영의 재조명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단기 실적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운용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

특히 놀라운 실적을 올리고 있는 유럽의 일부 가족 기업 사례는, 오너의 독선을 비롯한 가족경영의 한계를 꼬집는 세간의 통념을 비웃고 있다. 《가족자본주의. Family Capitalism》 는 이러한 사례를 생생히 보여준다. 분석 대상은 유럽의 웬델(Wendels)·하니엘(Haniels)·플랙스(Falcks) 등 대표적인 가족 기업.

미국의 명문사학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교수인 해럴드 제임스(Harold James)는 이들 기업의 오너들이, 유럽의 정치적인 격변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회사를 반석위에 올려놓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의 정치·사회적 격변이 유럽에 미국과는 다른 관계 자본주의(relationship management)를 형성하는 과정을 특유의 통찰력으로 생생하게 제시하고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유럽의 가족경영 기업들의 성공 뒤편에는 소속 사회에 대한 헌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애플비의 미국. Applebee's America》 은 인본주의적 경영 방식을 재조명하고 있다. 애플비는 미국의 레스토랑 체인점. 저자는 공동체적 가치와 더불어 직원들의 가정 생활을 배려하는 이 회사의 운용 방식을 심층 분석하고 있다. 인본주의적 경영방식을 고수하는 기업들이 선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근로자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골자로 하는 프레드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장점에도 불구, 근로자들의 도전정신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오는 한계가 있다. 인본주의 경영의 부상은, 지식 근로자의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중시되는 지식 경제 시대의 도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글이나 샘코는 인본주의적 경영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중국식 인맥네트워크 관시를 공략하라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올해 신년호에서 미국에서 불고 있는 중국어 학습 열풍을 다룬 바 있다. 한때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던 중국이 숱한 회의론을 불식하고 고속 질주를 지속하자, 이제는 아시아 국가는 물론 유럽연합·미국 등 선진국들도 승천하는 용의 재평가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독특한 중국식 인맥 네트워크를 뜻하는 《관시. Guanxi》 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추천도서 목록에 오른 배경이기도 하다.

컨설턴트인 이안 브레머(Ian Bremmer)가 저술한 《제이 커브(J-Curve)》 는 개발도상국에 투자하는 선진국 기업들이 파악해야 하는 경영 지식의 허와 실을 다루고 있다. 이 밖에 직장인들의 사내 관계 개선책을 다룬 처세 관련 서적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추천 도서 목록에 올랐다.

▷개도국·선진국 저소득층 지갑 열어라
▷제한적 사치에 나선 소비자 공략해야
▷전략적 윤리경영 기업 돈도 잘 벌어
▷유럽의 오너경영, 첫걸음은 근로자중시
▷인본주의 경영이 다시 떠오른다
▷중국시장 공략, ‘관시’부터 파악하라
▷쇼핑의 기쁨 소비자에게 되돌려줘야
▷스톡옵션 운용 방향 제고해야 할 때
▷사내 분쟁, 소모적 감정싸움 극복해야
▷선진경영, 개도국서 혼란 초래할 수 있어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HBR이 말하는 재기의 법칙

“‘눈물의 여왕’ 칼리 피오리나 잊고
자전거 여행 떠난 스티브 잡스 배워라”

'항룡유회(亢龍有悔)’. 높이 날아오른 용에게는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온다는 뜻이다. 동양의 《주역》이 전하는 인생살이의 법칙이다. 멀게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제부터 가까이는 고 박정희 대통령까지, 정상에 오른 자는 항상 하산과정이 고통스러웠다.

벽안의 외국인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 1980년, 남부 조지아 주의 플레인스(Plains). 4년 간의 워싱턴 정가 생활을 끝내고 고향집으로 돌아온 지미 카터는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조약인 캠프데이비드협정을 이끌어낸 주인공.

민주당 소속이면서도 탈규제를 주도한 그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가였다. 하지만 3류 영화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은 그에게서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렸다. 그는 훗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선거에 패했을 때 “마치 인생이 끝나버린 것과 같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지난 2003년, 미국 시티그룹의 ‘제이미 디몬(Jamie Dimon)’ 사장. 그는 이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모든 것이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 무려 16년 간 동고동락하던 샌디 웨일(Sandy Weil)은 그에게 회사를 떠나 줄 것을 요구했다. 샌디의 요구를 거절할 명분도, 힘도 그에게는 없었다.

이사회는 이미 그의 사퇴에 동의한 상태였다. 사내에서 퇴진 소식을 모르고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는 듯했다. 디몬은 기자회견장으로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고, 준비된 원고를 천천히 읽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고육책이었을까.

그는 복싱 클럽에 나가 샌드백을 두들겼으며, 자신처럼 고난을 겪은 위대한 지도자들의 전기를 읽었다. 시티그룹의 사장이자, 미국 금융가의 거물 기업인으로 화려한 조명을 늘 받던 그는 1년 6개월 정도를 집에서 이런 식으로 소일해야 했다. 대중의 뇌리에서도 곧 잊혀졌다.

지난 2001년 포드자동차에서 축출된 자크 내서부터 휼렛패커드의 여제 칼리 피오리나, 그리고 IBM의 존 에이커스(John Akers)까지, 사내의 파워게임에서 밀려난 경영자들은 치욕의 순간을 곱씹으며 훗날을 도모한다. 지미 카터나 제이미 디몬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현업에 복귀하는 이는 드물다. 제프리 소넨펠드(Jeffrey A. Sonnenfeld) 예일 비즈니스 스쿨 교수의 한 조사에서도 이러한 점은 확인된다. 그는 지난 1988~92년 교체된 상장기업 최고경영자들의 현업 복귀율을 조사했다. 조사대상자의 43%는 아예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또 22% 가량은 실권이 없는 고문직을 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회사를 떠나기 전과 같은 중량의 직위로 화려하게 복귀한 사례는 전체의 35%에 불과했다. 이들의 운명을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경영월간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무엇보다, 차가운 이성에 기반한 적절한 대응을 첫 번째 요건으로 꼽는다. 정교한 재기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10명중 3명만이 성공적인 복귀

‘눈물의 얼음 여왕.’ 지난해 휼렛패커드의 전 CEO인 칼리 피오리나와 인터뷰를 한 국내 한 일간지가 그녀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지난 2005년 휼렛패커드에서 축출되던 때를 떠올리며 여러 차례 눈물을 내비쳤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서구의 경영자들에게도 간단치 않은 과제이다.

무엇보다, 성공에 대한 기억은 스스로를 과거에 붙들어 맨다. 재기에 성공하는 경영자들이 많지 않은 배경을 가늠하게 한다. 피오리나도 아직 휼렛패커드 CEO직과 견줄 수 있는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재기에 성공한 세계적 기업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릴까.

또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고 화려한 조명을 다시 받게 되는 것일까. 세계 정보통신업계의 스타경영자인 애플컴퓨터의 스티브 잡스를 보자. 지난 1985년 그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컴퓨터에서 쫓겨났다. 친구인 마이크 머레이(Mike Murray)는 그가 권총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잡스는 성정이 불같은 데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그는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자신의 집에서 두문불출한 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첫 기착지는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에서 자전거 한 대와 두툼한 침낭을 구입해 유럽을 떠돌며 노숙 생활을 한다.

훗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데는 이러한 유럽에서의 낭인 생활이 한몫을 했다. 분노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리적 판단도 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인맥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지인들을 고난의 행군에 동참시키라는 것.(박스기사 참조) 잡스에게도 친구의 안위가 걱정돼 한달음에 집에 달려온 마이크 머레이가 있었다. 이들은 당사자가 흘려보내기 쉬운 점을 짚어줄 수 있다.

일자리를 구하고, 현업에 복귀하는 데도 이러한 인맥은 여러 모로 큰 도움이 된다. 이밖에 헤드헌터들을 만나 실무적인 조언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조언이다. 탁월한 판단력으로 승승장구하던 때의 기억은 잊어버리는 편이 낫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자신의 가치를 다시 입증하는 것(prove your mettle)이다. 마지막 단계이다. 실패한 기업인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는 일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미국인의 삶에는 두 번째 기회 따위는 없다(There are no second acts in American lives)’는 피츠 제럴드의 발언은 미국 사회의 냉혹한 현실의 벽을 상징한다. 하지만 예외는 있기 마련. 괄목할 만한 업적에도 재선에 실패하며 자신의 불운에 울었던 지미 카터는 지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아이티, 보스니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한반도 핵분쟁 등을 성공적으로 중재하면서 자신이 결코 한물간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성공적으로 입증했다.

시티그룹의 제이미 디몬 전 회장은 더욱 극적이다. 복싱 체육관에서 샌드백을 두들겨대던 그는 자신을 쫓아낸 샌디 웨일을 찾아간다.

그리고 식사를 하며 자신에게도 여러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한다. 우연이었을까. 그는 이날 모임 이후 6개월 만에 시카고에 위치한 대형은행인 뱅크원(Bank One)의 최고경영자로 선임됐다. 지난 2003년 이 은행은 35억달러 규모의 막대한 수익을 낸다. 주가는 무려 85%가 껑충 뛰었다.



뱅크원은 제이미 디몬 회장의 주도하에 제이피모건(JP Morgan Chase)과 합병을 했으며, 그는 합병 회사의 사장으로 선임됐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다시보는 현대차 위기의 뿌리

Industry |韓·美 자동차 애널리스트 이원 분석

[이코노믹리뷰 2006-09-06 09:09]

(현대차가 요즘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몽구 회장은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대외적으로는 원고에 노사분규 등으로 바람잘날이 없습니다. 여기에 일본과 인도의 자동차 업체들이 불과 500만원대의 저가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어, 자칫하다간 현대차가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감마저 듭니다. 저는 현대차 오너가 물러나고, 통찰력을 지닌 전문경영인이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현대차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정 회장의 구속사태는 이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는 데, 현대차가 그만 이 좋은 기회를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죠. 막강한 금력으로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려놓은 업보를 어이할까 두렵습니다. 작 년 9월에 서울증권 조원갑 연구원, 그리고 피츠 제럴드  SA연구원과 함께 분석해본 현대자동차 진단 기사네요. 글로벌 경쟁의 격화, 일본 업체들의 분전 등 현대차의 고전을 불러온 원인들을 폭넓게 분석하고 있어 여전히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PK&WISE ·이코노믹리뷰 공동기획
합종연횡 세계 자동차 업계
현대차가 넘어야할 장애물은

현대자동차의 주가는 올 들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올해 초 10만원부근까지 올랐던 주가가 7만원대로 하락하자 시장에서는 공격적인 해외 투자, 최고경영자의 독선적인 경영 스타일 등을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지적하며 위기라는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정몽구 회장의 구속사태는 위기론에 기름을 부었다.

주가가 두달만에 8만원선을 회복한 것은 지난달 31일이었다. 이번에는 현대자동차가 악재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마침내 재도약의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각에서는 10만원선 회복을 점쳤다.

“멀리보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업황을 보고 기업 변화를 예측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조선분야 최고의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이종승 NH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넓게 보아야 현상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세계 자동차업계에는 합종연횡의 바람이 거세다. 제너럴모터스에 이어 포드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제휴를 요청했다.

미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알리는 경보음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 시장의 강자들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앞세워 현대자동차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제너럴모터스가 이번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몸집을 줄이며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는 중국 내 영업이익률도 부당거리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이자 미국시장에 정통 하다는 평가를 받는 스트래터지 애널리틱스(SA. Strategy Analytics)의 피츠 제럴드(Fitz Gerald)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 그리고 서울증권의 조인갑 자동차 담당 연구원과 함께 세계 자동차 업계에 부는 합종연횡의 바람과 더불어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원적 분석을 했다.

기자 : 디트로이트가 총체적 위기를 겪자, 현대차의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하지만 제너럴모터스가 올 상반기 흑자를 냈다. 풍전등화에 비유되던 처지를 감안해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

피츠 제럴드 : 효자상품인 GMT900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SUV모델이 미국 시장에서 선전한 덕분이다. 그리고 이 자동차에 기반을 둔 신 모델도 조만간 선을 보이게 될 것이다.

GM has had success with the launch of its new GMT900 based full-sized SUVs and will be launching a fully redesigned version of its full-sized pickup trucks, also based on GMT900 architecture.

기자 : 이 회사가 그동안의 부진을 훌훌 털고 다시 살아나는 징후로 볼 수 있는가.

피츠 제럴드 : 상반기에 흑자를 낸 것이 좋은 조짐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윤을 지속적으로 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시장을 파고들 만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해야 하고, 근로자들을 대폭 줄여야 한다. 가시밭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제너럴모터스는 화석연료시대의 강자였지만, 앞으로는 상당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GM's profitable first half may be a sign of good things to come but GM has a long way to go to remain profitable. Continued workforce cuts, managing its retired workforce, sales of business units, successful launches of new products and negotiating a favorable contract with the UAW Union are all hurdles that GM faces.

기자 : 주요 주주인 커코리언이 르노-닛산과의 제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데, 제휴가 성사될 것으로 보는가.

피츠 제럴드 : 당초 제너럴모터스의 재활 프로그램에는 르노-닛산과의 제휴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더욱이 상반기에 흑자를 냈으니, 구태여 다른 기업과 제휴를 추진할 필요가 있겠는가. 르노-닛산 북미법인의 실적이 썩 신통치 않았던 것도 상당한 부담거리다.

The two companies may continue to have talks but GM's turnaround plan does not rely on a strategic alliance with NissanRen-ault. But talks have seemed to stall with GM's recent profit reports as well as poor results of the Nissan unit in North America.

특히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 제휴를 체결할 경우 카를로스 곤이라는 강력한 인물이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왜고너 회장의 입장에서 옥상옥이 될 수 있는 그의 존재를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기자 : 포드가 제휴 상대로 부상하는 배경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합종연횡이 성사될 경우 세계 자동차 업계에 지각 변동이 생기지 않겠는가.

피츠 제럴드 : 우선, 미국 업체들의 경우 (손실을 보고 있는) 여러 브랜드가 다른 회사로 매각되거나, 아예 폐기처분될 가능성이 있다. 포드의 랜드로버나 재규어도 후보군에 속한다. 제너럴모터스의 폰티악이나 뷰익도 오랫동안 이러한 루머에 시달려 왔다.

Brands may be sold or dropped from an automaker's lineup such as Ford's Land Rover and Jaguar divisions. Pontiac and Buick divisions have long been rumored to be in danger as well.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은 미국업체들의 위기를 일거에 해소할 구원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999년 닛산의 사장으로 부임해 불과 2년 만에 회사를 회생시켰으며, 이에 앞서 미쉐린에서도 탁월한 실적을 올린 주인공이니, 이러한 평가는 결코 지나치지 않다. 미국 업체들이 제휴를 통해 일본 업체의 고객지향 마인드를 수용하고, 철저한 군살빼기를 단행된다면? 또 르노-닛산이 북미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면? 현대자동차를 화제에 올려보았다.

기자 : 미국 업체들과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제휴가 성사된다면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피츠 제럴드 : (당장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제너럴모터스는 도요타와 더불어 시장 지배자로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 더욱 날렵하고 특정 부문에 집중하는 자동차 메이커로 거듭나지 않겠는가.

GM and Toyota will remain dominant OEMs as Toyota continues its success and GM becomes a more lean, focused automaker.

미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지금보다 더 강화된다면 현대자동차 입장에서야 썩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조인갑 : 미제 승용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음료수를 마실 때 불편을 겪어야 한다. 음료수 받침대가 없기 때문이다. 덩치는 크고 모양은 나는 데 정작 실용적인 면이 떨어지는 게 미국차의 특징이다. 경기가 위축되고, 유가는 올라가면서 주머니는 얇아지는 데, 캐딜락, 링컨은 여전히 덩지가 크다.

소비자들이 도요타의 캠리로 돌아서는 데도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비자 기호 파악에 둔감하던 미국 업체들이 이번 경영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몸집을 대폭 줄이고, 소비자들의 기호를 세밀히 파악하는 마케팅 능력을 강화한다면 새로운 반전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자 : 당장 미국 업체들이 차량 판매에 엄청난 인센티브를 걸며 출혈 경쟁을 하는 것도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지 않은가. 미국 시장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것도 부담거리다.

조인갑 : 현대차의 경우 미국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작년 점유율이 2.6%. 올해 7월 현재 3.1%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올해 1∼7% 누적 점유율도 2.9%에 달한다. 하지만 시장 전체 규모가 감소하고 있는 점이 문제다. 점유율이 높아져도 수요가 뒷걸음질치고 있어서 효과가 반감하고 있다. 내수시장보다는 해외시장이 중요한 데, 좀처럼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대차에 위협을 주고 있는 업체는 비단 미국의 전통 강자들뿐만이 아니다. 상하이자동차, 난징자동차 등 중국의 국영자동차 업체들은 영국의 MG로버, 한국의 쌍용차를 매입하며 타도 한국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시장 규모 면에서도 중국은 현재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자동차 시장이다.

기자 :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다고 들었다. 미국시장의 침체를 만회하고도 남는 수준이 아닌가.

조인갑 : 하지만 중국의 시장 상황이 더 걱정이다. 중국은 무한경쟁 시장이다. 완성차 업체의 수익률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률은 작년에 13%대에서 올해는 6%대까지 떨어졌다. 물론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가격 인하폭이 크기 때문이다.

기자 : 상하이, 난징자동차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피츠 제럴드 : 중국 업체들이 아직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현대차는 중국 경쟁자들로부터 밸류 세그먼트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Hyundai will face competition in the value segment from Chinese competitors that are looking to expand into world markets.

지금 당장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라면 중국제 승용차를 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정부는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해외 자동차 업체들에 중국 업체와의 합작을 요구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일부 모델을 중국 업체들이 조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유명 업체들이 정작 기술 이전을 꺼리자, 해외 업체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데, 상하이자동차가 인수한 우리나라의 쌍용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세계적 자동차 업체들의 합종연횡 바람, 중국 업체들의 추격, 미국 시장의 위축, 경쟁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중국 시장, 연례행사가 된 노조 파업 등은 현대자동차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묘수는 없을까.

기자 : 현대차는 프리미엄 시장 진출을 공언하고 있는데, (당신이) 최고경영자라면 같은 결정을 내렸겠는가.

피츠 제럴드 : 현대차가 단기간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성능대비 가격이 저렴한 중저가 차량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이 문제다. 현재의 고객을 유지하면서 자동차 브랜드를 프리미엄 영역으로 끌고 가기는 극히 어렵다.

Hyundai must continue to make strides in quality to overcome the consumer's perception of Hyundai as a "value" or "economy" car. It can be difficult to take move a brand into the premium segment while retaining current customers.

미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는 후륜, 혹은 4륜 구동이어야 하고, V8파워여야 한다. 또 프리미엄 SUV차량도 갖춰야 BMW나 캐딜락, 그리고 메르세데스와 경쟁해 나갈 수 있다.

For the US market, a premium brand needs to be V8 powered with rear or all wheel drive to compete with Audi, BMW, Cadillac and Mercedes. Luxury SUV's are also needed to compete in today's luxury market.

기자 : 재규어를 비롯해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를 사들이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는 지적을 하는데. 포드가 재규어나 볼보를 곧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피츠 제럴드 : 재규어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영국 회사로 받아들여진다. (포드에 매각됐음). 현대자동차로서야 이미 미운 오리 취급을 받고 있는 재규어 브랜드를 되살리기보다는 한국의 자체 브랜드를 선보이는 편을 선호하지 않겠는가.

Jaguar has instant name recognition worldwide but is thought of as a British company. Hyundai may wish to build its own brand and tout Asian engineering instead of reviving the troubled Jaguar brand.

조인갑 : 해외 공장의 투자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 재규어까지 인수하면 잘못하면 동반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해외 현지 공장을 안착시켜야 할 때이다. 그리고 자체 브랜드를 선보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참고로, 포드는 재규어를 지난 1989년 인수한 이후 100억 달러 가량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 그리고 영국의 JCB그룹 등이 재규어에 여전히 관심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 : 철강 부문 계열화 문제도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싶다. 자동차 100년 역사상 철강 부문을 수직 계열화한 전례가 없다. 잘 나가던 때의 제너럴모터스도 시도한 적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인갑 :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본다. 우선, 포스코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 탓에 공격적인 투자를 못했다. 현대차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가 단독으로 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배경의 하나이다. 철강 수요는 단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현대 기아차가 2008년까지 연간 600만대를 생산해 자동차 업계 세계 5강의 반열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경기가 꺾이고 위축이 될 때이다. 특히 해외 경기가 둔화되면 자동차와 철강 부문이 모두 어려워져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피츠 제럴드 :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기자 :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 스타일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전제적이라는 게 비판의 핵심인데, 어떻게 보는가.

피츠 제럴드 : 그는 현대자동차에서 주요 의사 결정을 하는 인물이다. 그가 구속됐을 때, 제품 개발 등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이 전면 중단된 것은 그 영향력을 가늠하게 한다.

He is know for keeping tight controls over Hyundai. Product development decisions were stalled while he was jailed and has put many projects behind schedule.

하지만 세계 자동차 업계에는 유독 전제적인 스타일의 최고경영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전제적이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 포드의 창업자 가문은 미 자동차 업계의 영웅인 아이아코카를 해고할 때, 난 당신이 싫다는 단 한마디 말만 던졌다.

기자 : 정몽구 회장을 직접 만난다면 무엇을 물어 보고 싶은가.

피츠 제럴드 : 포뮬러원 경주에 들어갈 계획이 없는지 궁금하다. 글로벌 마케팅 전략에 대해 묻고 싶다.

I would ask him about global marketing strategies such as entering Formula 1 racing or other racing series.

기자 : 국내외 여건이 쉽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주가가 8만원선(8월 31일 기준)을 회복하면서 본격적인 회복의 기지개를 켜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조인갑 : 내년에 경제성장률이 3~4%정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더욱이 내년에는 현대차가 제시할 수 있는 신차 카드가 없다. TG, 쏘나타, 산타페, 아반떼 등을 다 선보였다. 외국기업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7월 파업 탓에 3분기 실적도 안 좋을 것이다. 8만원 중반 대까지 오르면 포지션을 줄일 것을 권하고 싶다. 추세적으로 상승하기는 어렵다.

기자 : 끝으로 5년 이상 현대자동차 주식을 보유할 의사가 있는가.

피츠 제럴드 : 답변하기 어렵다. 다만 현대자동차는 향후 5년 동안 지금과 같은 수준의 기술 개발을 꾸준해 해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조인갑 : 물론이다. 도요타가 캠리나 렉서스를 선보이고, 시장에 정착하기까지 10∼15년 정도가 소요됐다. 하지만 현대차가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한 것은 왕자의 난 이후 정몽구 회장이 미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이후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앨러배마에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시련이 적지 않겠지만,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켜봐야 할 때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COVER |조지 소로스, 북핵과 한국경제를 말하다

[이코노믹리뷰 2006-10-25 21:48]


“대 국으로서 소국을 존중하는 나라는 하늘의 이법을 즐기는 자로, 천하를 보존할 수 있으며, 소국으로 대국을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법을 두려워하는 자로, 그 나라를 능히 보존할 수 있다” (이대사소자以大事小者, 낙천자야樂天者也. 이소사대자以小事大者, 외천자야畏天者也, 낙천자樂天者, 보기천하保其天下 외천자畏天者 보기국保其國)

외교 정책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전국시대 위나라 양혜왕의 질문에 대한 맹자의 답변이다. 강국이라고 해서 교만하지 않고, 소국을 존중하면 그 위세를 사해에 떨칠 수 있으며, 작은 나라로 큰 나라의 심중을 깊이 헤아리면 국민이 나라를 잃고 각지를 떠도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상호존중의 정신을 강조한 대목인데, 동서고금을 뛰어넘어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경구이다. 하지만 작은 나라를 존중하고 떠받들면서 천하를 보존한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고대 로마부터 구(舊)소련에 이르기까지, 강대국들의 패도정치는 주변국에 고통을 안겨줌과 동시에 자국의 몰락을 재촉했다.

성인들은 항상 교만을 경계했다. 지난 17일 우리나라를 방문한 세계 헤지펀드계의 제왕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소로스매니지먼트 회장은 미국 또한 이러한 패도의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해 온 대표적 인물.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의 국민을 모욕하고, 무시하는 행태가 결국, 테러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

지난 2004년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낙선 운동을 벌여 관심을 모은 바 있는 그는, 특히 북핵 사태로 위기가 고조된 이번 방문길에서 “북한이 다시 핵실험에 나선다고 해도 한국경제에 별다른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며, 북미 대립이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해 주목을 받았다.

북핵 사태로 햇볕 정책의 폐기 요구가 어느 때보다 거세지는 등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린 참여 정부에는 말 그대로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발언인데, 칼 포퍼의 열린사회론을 계승한 조지 소로스 회장의 사상, 그리고 이 노회한 투자가가 북핵 사태를 낙관하는 배경 등을 심층 분석해 보았다.

햇볕정책 유효…정부, 당근 남겨둬야
6자 회담국 현상유지책이 핵실험 불러
경협 중단은 상대방 막다른 골목 몰아

2차 북핵실험 투자기회 될 수 있어
미·일 대북 경제제재 원칙적 찬성
미국, 힘 앞세운 패도외교 중단해야

소로스 인터뷰
“2차 핵실험 배제 못해…
투자자에겐 또 다른 기회”

“미국과 일본이 대북제재에 나선 배경을 이해한다. 경제제제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는 효과적 압박수단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당근(carrot)을 한 두 가지 남겨 놓아야 하지 않겠나” 세계 헤지펀드계의 제왕으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76. George soros) 소로스 매니지먼트 회장.

지난 1992년 파운드화의 집중 매도로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굴복시켰으며, 2004년에는 부시의 낙선 운동을 벌이며 세계적 석학 촘스키와 더불어 반(反)부시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한 그는,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세계각지를 다니며 ‘열린사회’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리는 인물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호를 이끌게 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화상 대화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그가 지난 17일 다시 우리나라를 찾았다. 팬 사인회와 기자회견으로 이어지는 빽빽한 일정 탓이었을까. 다음날 오후 5시 광화문 교보빌딩의 한 레스토랑에서 열린 인터뷰 내내 그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요카이(妖怪)’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소로스도 세월을 비껴가지는 못하는 듯 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책을 읽어 보라”며 심드렁한 얼굴로 답변을 피하거나, 지루한 듯 책상 위에 놓인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하지만 북핵 사태를 둘러싼 위기 국면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는 국제 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에 대해서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데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도 대북 경제제재에 동참해야 하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경협 중단 여부는 전적으로 한국정부가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당근을 몇 개 남겨두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해, 사실상 경협중단을 반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한국의 경제협력 중단은 자칫하면 국제사회의 전방위 압박으로 궁지에 몰린 상대방(북한)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북 경협 중단을 요구하는 보수진영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나름의 해법인 셈인데, 정부는 지난 18일 경협의 큰 줄기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공표한 상태다.

소로스는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의 ‘속내’를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북한의 경제는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으며, 다시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있다. 특히 6자 회담 참가국들이 현상유지(status quo)를 원했기 때문에(핵실험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로스는 특히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반발해 북한이 2차 핵실험에 나선다 해도 국내 금융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첫 번째 핵실험이 실패로 끝났으며, 당연히 2차 실험을 하게 될 것으로 관측하기도. 모든 일이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소로스는 2차 핵실험으로 일부 외국인이 한국내 운용자금을 홍콩이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면 “(오히려) 새로운 투자 기회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또 다른 당근을 제공해야 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 북한 핵실험이 일각의 우려와 달리, 한국 금융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배경이 궁금하다.

북한의 핵카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결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시장은 이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 국제 사회가 2차 핵실험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북한이 2차 핵실험에 다시 나선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는가.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전세계에 알리려는 욕구가 강하다. 하지만 첫 번째 핵실험이 실패로 끝났다. 당연히 2차 실험을 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모든 일이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Not very much. I think that they are definitely excited to demonstrate that they have a nuclear weapon. The test was a failure. and so they will definitely try second time. so it is natural they are being warned against it. it is nothing unexpected.)

- 상황을 장밋빛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가. 한국이나 일본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중국이나 홍콩으로 자금을 옮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분명 있다.

아마도, (그들이 옮겨간다면)또 다른 구매(투자) 기회가 될 것이다. (Maybe, that provides effective buying opportunity.)

북한을 압박하고 나서면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일까.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한미공조 못지않게 민족공조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참여정부 입장에서야 이방인들의 말을 그대로 들을 수는 없지 않을까.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대북경제협력의 큰 줄기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물론 국내 보수진영에서는 금강산 관광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이 핵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며 이러한 방침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조지 소로스는 참여정부의 대북경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비판적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번 경제 제재조치도 부적절하다고 보는가.

일본과 미국이 제재에 나선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줄을 차단하는 일본의 정책도 지지한다. 양국의 제재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I think that the UN resolution and the actions taken by Japan in cutting off money to North Korea is other right response. )

- 참여정부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사업을 중단하라는 전방위적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동의하는가.

한국정부가 판단할 문제이다. 하지만 당근 몇 개 정도는 남겨두는 편이 더 낫다고 본다.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직접적으로 험한 행동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아직도 잃어버릴 것이 더 있어야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It is a matter of judgement whether South Korea should take away those two carrots which are out there. I think it is good to have some carrots left. So North Korea can not do something nasty directly to South Korea. Then it still has something to lose.)

- 방한중인 미 라이스 국무장관이 한국정부에 북한의 화물선 수색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칫하다 무력충돌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일본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이 이와 비슷하다. 화물을 수색하는 것도 적절한 대응이다. (I think what Japan has done. Searching cargo is just the right response.)

- 원론적인 논의를 해보자. 국민의 정부, 그리고 햇볕정책을 계승한 참여정부는 북한에 아낌없이 많은 것을 베풀어왔다. 햇볕에도 옷을 벗지 않는 상대에 계속 러브콜을 보내야 하는가

나는 계속해서 햇볕정책을 지지해 왔다. 물론 햇볕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이 불가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서울은 휴전선에서 매우 가깝다. 북한을 제재할 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다. 유일한 제제 수단은 당근을 다시 빼앗는 일이다. 일본이 취하고 있는 조치가 바로 이것이다. (I have continued to support the sunshine police in principle, not necessarily in details because there may have been some mistake in execution. It is very important to realize that we have no military option against North Korea because Seoul is too close to the border. So we have no sticks. The only stick we have is by taking away carrots. and that is what Japan has done. )

“진정으로 전쟁을 원하는 자는 미리 전의를 밝히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한 군사전문가의 말이다. 역사를 돌아봐도, 전쟁 승리를 원하는 국가는 대부분 상대방을 안심시켜 높고 기습을 단행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북한의 남침으로 촉발된 한국전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이 떠들썩하게 핵개발 사실을 알리는 속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한 배경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실제 핵무장을 위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절박함의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 경제는 극도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또 다시 겨울이 오고 있다. (The testing of nuclear weapon was the act of desperation on the part of North Korea. North Korea can not afford to stand still. The economy is in big trouble. and winter is coming.)

- 한국에서는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미국의 책임론이 불거져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미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6자 회담 참가국들은 현상 유지를 원했다. (The other party of six party talks basically wanted to keep everything unchanged.) 북한은 이러한 상태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they did not want to move too much. but North Korea can not afford to stand still.)

- 당신은 지난 2004년 부시 대통령 낙선 운동을 펼친 바 있다. 부시에 대해 특히 모질게 행동하는 배경이 무엇인가.

세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9·11테러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테러 이후 1년6개월 동안 미 행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행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은 곧 비애국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이라크 침공이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배경이기도 하다.

힘의 적절한 분배가 사라지게 됐으며, 부시 대통령에게만 어마어마한 권력이 집중되었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했으며, (이 때문에 )테리리스트들의 입지를 강화했다.

“물극필반(勿克必反).” ‘사물이 극에 달하면 처음으로 되돌아온다’는 의미이다(주역). 극한 대립을 빚고 있는 북한의 핵실험 사태를 지켜보며 이번 위기가 사태해결의 전조가 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미약하게나마 들려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하면 미-북간의 오랜 갈등은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인가.

-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아올 것으로 낙관하는가. 일각에서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북한 정부는 핵무기 보유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나는) 그들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한다. (After they succeed in showing that they actually have detonating bomb, they will go back to negotiating table. )

미국은 6자 회담의 틀 안에서 북한과 일대 일로 대화를 나누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대목이 나를 낙관적으로 만드는 배경이다. 6자 회담은 한미일의 공조를 이끌어내는 데 매우 유용한 틀이다. (My understanding is that the United States has said it is willing to talk with North Korea one on one within the frame of the six party talks. That makes me optimistic. That is peaceful solution. And I think having a six party framework is very useful in keeping South Korea Japan, China, United States in coordination.)

- 당신말대로 북한이 회담에 돌아오면 미국은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는가.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면 미국이 안전보장을 하고, 다른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6자 회담의 틀내에서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평화적인 해결 방안이다. (I think that they should help to bring North Korea back to the negotiating table. At that time, it is very important that the United States should be willing to provide some security guarantees. and other inducement, other carrots.)

근본적으로 네오콘처럼 자신들의 뜻을 전세계에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 미국은 마샬플랜 등을 통해 자국은 물론 인류를 위해 노력해왔다. 문제는 과거처럼 세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로스는 ‘칼 포퍼’의 열린사회론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사회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칼포퍼의 가르침에서 형성된 자신의 철학이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발휘했다고 고백했다. 어떤 내용인지 물어보았다.

- 투자를 하는 데도 심오한 철학이 필요한 것인가. 칼포퍼의 철학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해 달라.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철학이 필요하다. 내 책에서는 철학적 틀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서 역사를 이해하고 있다. 이 틀을 적용해서 현대사회를 진단하고 있는데, 그만큼 현실을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해석을 통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 끝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 최근 미국과의 FTA협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은데, 한미 FTA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그런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해줄 수 없다.

조지 소로스는 누구인가

외환위기 장본인 지목에 억울함 토로
“그 당시 외환 거래 손놓고 있었다”

“저는 유대인입니다. 나치독일이 가족이 살던 헝가리를 점령한 것이 1944년이었으며, 아버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나치 패전후 소련이 다시 헝가리를 점령했는데, 정부가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소로스는 단연 중량감이 느껴지는 거물급 인사다.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대통령이 그를 위성으로 연결해 외환위기 극복 방안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던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모 경제지 미국 특파원은 그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2년 동안 공을 들여야 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젊은 시절 폭압적인 정권 탓에 사선을 넘나들며 혹독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 소수자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늘 따뜻하다.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의 입장에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 방식’의 분석을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소로스는 아시아 외환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데 한몫을 한 그가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소로스는 아시아 외환 위기를 6개월 정도 앞두고 자신은 외환거래를 하지 않았다며 연루설을 강력히 부인해 왔다.

한편 그는 이번 방문길에 교보문고에서 팬 사인회를 열어 이채를 띠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인지, 반응은 썩 신통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국내 외국인 소로스에 동의

“한국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불안감 적어”

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북핵 사태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19일 오후, 기자는 세계적인 시장 조사기관인 ‘스트래터지 애널리틱스(SA. Strategy Analytics)’가 주최하는 한 세미나 현장(리츠칼튼)을 찾아 스스로를 유태인이라고 밝힌 피터 킹(Peter King)연구원을 만났다.

기자는 홈네트워킹 부문의 내로라하는 전문가인 그를 통해 외국인들이 한반도 핵사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두 아이를 두고 있다는 피터 킹 연구원은 우선, 북한이 처한 어려움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 사태가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우회적 답변이었다.

그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입에 올리며 자신의 논지를 펼쳐나갔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김일정’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굉장히 불안정한 여건에 있다는 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남북한의 군사 대치상황을 지적하며 대북 제재에 조심스러운 접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지 소로스의 방문 사실을 알려주자, 그야말로 한반도 전문가라며 추켜세우기도.

향후 시나리오를 묻자, 적어도 북한에 관한 한 전문가들의 예측은 늘 빗나간다며 말을 꺼린 그는, 다만 “핵은 상당히 비싼 무기”라며 핵무기 개발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SC제일은행의 크리스 홀란즈 부행장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지난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사태후 외국인 투자 건수가 오히려 더 늘어났다는 자료를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홀란즈 부행장은 “한국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불안감이 적다”며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당장 북핵 사태가 투자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맥킨지 '中시장 新트렌드10'

Special Report |강추! 맥킨지 리포트 '中시장 新트렌드10' (맥킨지에서 지난해 발표한 중국시장 트렌드 동향 보고서입니다. 책 한권짜리 리포트였는 데요, 전부 읽고서 기사로 풀어쓰려니까 영 수월하지 않더군요. 맥킨지가 컨설팅 부문의 독보적인 기업이라는 것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중국 현지에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트렌드를 꾸준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맥킨지의 중국시장 보고서, 한번 읽어보시죠)
 
“GM이 아닌 도요타의 사회적 자본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피터 드러커’로 통하는 윤석철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2차 대전 이후 강력한 경쟁우위를 자랑해오던 미국 기업들은 자동차·가전 등 굴뚝 산업 부문에서 경쟁 기업들에 속속 패권을 내주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 산업과 달리, 여전히 강력한 패권을 행사하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미국의 컨설팅 기업들이다. 보스턴 컨설팅·모니터 그룹·맥킨지·IBM글로벌 서비스 등은 전 세계에 걸쳐 구축한 정보 네트워크를 앞세워 세계 지식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매년 혹은 분기별로 발표하는 세계 시장 분석 리포트는, 이들 지식기업의 탁월한 역량을 가늠하게 한다. 맥킨지가 지난 8일 발표한 중국 시장 분석 리포트 (Serving the new Chinese consumer)를 기자가 직접 분석해 보았다.



진단 1. 중국 내륙 지방은 미래의 블루오션

중 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주로 베이징·상하이, 그리고 광저우 등 대도시 공략에 주력해 왔다. 이들 지역은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중국 전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기본 인프라 또한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제3의 지역이 중국의 성장엔진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맥킨지의 분석이다.

중국 내륙 지방에 위치한 가오춘(Gaochun)을 보자. 이 곳은 상하이·베이징·광저우 등에 가려 거의 주목받지 못한 지역이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소비재 부문의 다국적 기업 중역들도 가오춘의 위치를 중국 지도에서 정확하게 찾아내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맥킨지는 전한다.

하지만 불과 인구 10만명 정도의 이 지역은 요즘 들어 잠재력있는 소비 시장으로 서서히 조명받고 있다. 중국 전역에 걸쳐 가오춘과 같은 소비시장이 무려 1만2000여 개에 달한다는 게 맥킨지의 분석이다. 일부 소비재 기업이나 유통업체가 이들 지역 공략의 득실을 저울질하는 배경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해결해야 할 난제도 적지 않다. 바로 광활한 지역에 분포해 있는 이들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들 외곽지역은 유통·물류망이 아직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으며, 적어도 수 년 간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다.

특히 일부 지역의 경우 성향이 서로 다른 소수 민족이 많다 보니, 마케팅 전략을 짜기도 수월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 지역 공략에 소극적인 기업들은 장래의 유망 시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맥킨지는 강조했다.



진단 2. 대도시 근로자는 내일의 중산층

다 국적 기업들은 지금까지 대도시에 거주하는 부유층 공략에 주력해 왔다. 맥킨지는 그러나, 이들 부유층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한 새로운 소비 계층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는 데, 바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중산층이다. 이들의 구매력은 중국 시장을 근본적으로 다시 규정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산층은, 오늘날 대도시 공장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맥킨지는 도심 저소득층을 형성하고 있는 공장 근로자들이 앞으로 20여 년에 걸쳐 중산층 대열에 합류해 나갈 것으로 관측했다. 일부 발 빠른 기업들이, 이들에 주목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 국의 코카콜라나 프록터앤갬블은 이미 중국의 신흥 중산층을 효율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을 쏟고 있다. 반면 상당수 기업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추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여전히 대도시의 부유층만 주요 타깃층으로 설정하고 있다.

맥킨지는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점차 두터워지고 있는 중산층의 잠재력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시장 선점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단 3. 기술력 뛰어난 중국 기업 사들여라

중 국 정부는 이미 기업 부문의 혁신을 주요 아젠더로 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해외 기술 의존도를 현재의 50%에서 30%로 줄이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연구개발 지출을 국내총생산의 1.2%에서 2.5%로 높여 나가기로 했다.

중 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전략이 먹혀들고 있음일까. 중국 기업들 가운데는 미국이나 유럽 기업의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주목할 만한 성과물을 내는 곳들이 등장하고 있다. 통신장비 회사인 후웨이(Huway Technologies)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상당히 공격적인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데, 3만여 명의 근로자의 절반 가량이 연구개발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시스코 등과 특허권 분쟁을 빚기도 했지만, 현재 이 회사는 중국 토종 기업 중 가장 많은 180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지난해 중국 기업들이 세계지적재산권협회(WIPO)에 신청한 특허 건수는 2452건으로,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특히 네덜란드의 전자회사인 필립스가 신청한 2492건보다 적어 아직까지 격차가 적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기도 했다.

하 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기업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 맥킨지는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다국적기업이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술력이 뛰어난 중국 기업들을 통째로 사들이거나, 지분 일부를 매입한 뒤 좀 더 가다듬어 새로운 상품 출시에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중국에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하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진단 4. 관시도 업그레이드 하라

관 시란 중국 특유의 인맥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 내 사업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로 평가받아 왔다. 서양의 합리주의 문화에 익숙한 미국이나 유럽인들로서는 공무원의 지시 한 마디에 막혔던 현안이 한순간에 해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른바 관시의 위력을 절감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시장경제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관시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맥킨지는 다국적 기업들이 인맥관리에 좀 더 체계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 선, 중앙 정부의 권한 이양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서,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중앙의 관료만 상대하면 됐으나, 이제는 대상이 더욱 확산된 셈이다. 더욱이 인맥의 성격이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는 점도 부담거리다.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 초기와 달리 고위 공무원과의 친교만으로 선례를 무시하고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관시가 점차 퇴색하고 서서히 공적인 관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권한 이양으로 규제권을 쥔 공무원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맥킨지는 지방분권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다국적 기업들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고위 공무원들과 꾸준히 교유하면서 자사와 중국정부의 이해가 서로 일치할 수 있는 지점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진단 5. 중국 소비자, 브랜드 로열티 떨어져

중 국은 브랜드의 천국이다. 맥킨지는 이번 리포트 설문 조사에 참가한 응답자의 80% 가량이 종종 브랜드 상품을 구입한다는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응답자의 69%는 자금 사정에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브랜드 상품을 더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변했는 데, 이는 영국이나 미국보다 더 많은 수치였다.

중국 소비자들의 브랜드 선호현상은 다국적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브랜드에 대한 이들의 로열티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예컨대, 일본 소니의 가전제품을 선호하는 중국 소비자들은 열 명 중 세 명꼴로 소니 제품 가격이 자국의 창훙 브랜드보다 10% 이상 비쌀 경우 자국 제품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했다.

중국 소비자들은 특히 매장에서 영업 사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종 구매 단계에서 다른 브랜드를 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의 65% 가량이 그들이 애초 구입하기로 한 브랜드가 아닌 다른 브랜드 상품을 종종 사는 경우가 있다고 응답했다. 한 브랜드 상품을 꾸준히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면서도, 특정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는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중국 소비자들의 특징인 셈이다.

맥킨지는 이에 따라 잘 훈련된 영업 사원들을 매장에 배치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진열대의 상태 등을 철저히 관리 감독하고 소비자들을 상대로 자사 상품의 특징을 설명하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미국의 암웨이가 방문판매를 통해 중국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진단 6. 텔레비전 광고 효과 현저히 떨어져

중 국 국영 텔레비전인 CCTV는 다국적 기업들에 가장 인기가 높은 광고 매체의 하나다. 이 방송국의 광고 수입은 지난 2000년 이후 5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텔레비전 광고 효과가 높지 않다는 점이라고 맥킨지는 강조했다. 중국 소비자들은 광고 메시지를 쉽게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광고가 방영되는 도중 아예 다른 곳으로 잠시 이동하거나,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시간이 유럽이나 미국의 시청자들보다 훨씬 더 많았다. 중국 내 방송 광고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음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잘 먹혀드는 현장 판매에 좀 더 주력할 필요가 있다.

맥킨지는 영업사원들을(할인점이나 백화점을 비롯한) 판매 현장에 파견해 판촉활동을 전개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맥킨지는 특히 중국 소비자들이 아직도 상품의 기능을 중시하는 점을 감안해 판촉 활동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단 7. 감성 중시 마케팅도 관심을 기울여야

중 국 소비자들은 제품의 기능을 중시한다. 소비자들이 제품의 기능보다 이미지를 더 중시하는 유럽이나 미국과는 다르다. 맥킨지에 따르면 “브랜드를 왜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83% 가량의 소비자가 품질이 더 낫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반면 65%는 브랜드 제품이 그들의 가치를 더 높여주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이러한 점을 마케팅에 활용한다.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은 탐폰 브랜드의 광고를 내보내면서 기능상의 장점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명한 의사를 광고에 등장시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상품을 활용해야 할 지를 설명하도록 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러한 공식도 빠르게 바뀌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소비재 시장이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브랜드 간 품질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게 되면,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제품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다. 벌써 소비자들의 감성을 파고 드는 다국적 기업들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소비재 회사인 프록터앤갬블(Proctor&Gamble)도 샴프 브랜드 헤드앤숄더(Head &Shoulder) 마케팅의 초점을 비듬방지(fighting dandruff)에서 모발을 위한 새로운 삶(new life for hair)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고 맥킨지는 전했다.



진단 8. 中청소년, 부모세대보다 민족주의 정서 강해

중 국 청소년들 또한 부모 세대에 비해 브랜드 상품을 선호하고, 패션 흐름에 대해서도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65% 가량의 응답자가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성인들(47%)에 비해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휴대폰의 경우 80%가 브랜드 제품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중국 청소년들은 미국이나 유럽과 뚜렷이 다른 특성을 보여주었는 데, 그들은 무엇보다 민족적 자부심이 무척 강했으며, 부모 세대에 비해 전통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성향을 보여주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88% 가량이 중국 브랜드를, 65%는 외국 브랜드를 선호한다고 답변했다.

부모세대에 비해 훨씬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성장한 중국 청소년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 더 근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편이라고 맥킨지는 분석했다. 휴대폰이나 MP3플레이어 등을 선호하면서도 부모 봉양 등 전통적인 가치와 더불어 민족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는 양태를 보인 것.

따라서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이러한 정서를 거스르는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것은 금기다. IBM의 개인용 컴퓨터 사업 부문을 인수한 레노보나,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유가공업체인‘맹뉴(Mengniu Dairy)’는 청소년들의 민족주의 정서를 잘 파고드는 마케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슈퍼걸·super girl) 제작을 지원하고 있는 데, 중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이 프로그램 방영에 힘입어 판매량이 방영전에 비해 세 배 가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낫다.

이 밖에 레노보는 회사 홈페이지에 자사 건물이 프랑스의 에펠탑·호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내려보고 있는 사진을 싣고 있다. 중국 청소년들이 서유럽이나 북미 지역 청소년들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책·신문, 그리고 잡지를 읽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진단 9. 유연 생산체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중 국 경제가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면서, 그동안 가려져 온 여러 부작용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기반시설 확충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교통 정체, 잦은 정전이 발생하고 있으며, 임금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중국 현지 공장의 생산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이다.

우선, 중국인 중간 관리자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근로자 관리나 문제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현장에서 불거지는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생산 공정이 서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일부 공장의 경우 전체 근무 시간의 40% 가량을 놀면서 보내는 근로자들이 적지 않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매니저들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맥 킨지는 중국 근로자들의 낮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연생산 시스템(lean manufacturing system)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시스템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을 대만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영입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렴한 인건비만을 좇아 중국에 진출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으며, 각국의 기업들은 인건비 못지않게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겨내기 어렵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고 맥킨지는 진단했다.



진단 10. 중국 인수합병 시장에도 관심 기울여야

지 난해 중국 내 인수합병(M&A)은 1800여건에 달했다. 지난 1998년에 비해 무려 9배 이상 증가한 수치긴 하지만, 거대한 중국 시장의 크기를 감안할 때 그다지 많은 인수합병 건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 정부의 규제 등으로 중국 내 인수합병 활동은 상대적으로 침체된 상태를 면치 못했다.

지난 2004년 현재, 외국인 직접 투자에서 인수합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 사정은 바뀌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산업이 속속 외국 자본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산업의 경우 과잉 생산이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어, 인수합병대상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국영 기업이나 일부 민간 부문의 기업들 중에서도 매물로 나오는 곳들이 증가할 전망이다. 물론 중국의 인수합병 시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맥킨지는 조언했다. 우선, 기업 가치 산정 방식이 낙후돼 있는 데다 정보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독자적인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 데, 평가 항목으로 미래의 현금 흐름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합자회사 대부분이 ‘누적 투표제(accumulative voting)’를 도입하고 있지 않아 다국적 기업들의 이사회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사회를 직접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고재정책임자나 최고 기술책임자를 선임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맥킨지는 전했다.





맥킨지가 제시하는 中 공장 생산성 끌어올리는 법



“생산 현장 위계질서 허물어 뜨려라”



시 스템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중국의 유교문화는 종종 유연생산 시스템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유교문화권의 근로자들은 상급자들에게 이의를 좀처럼 제기하지 않으며, 관리자들도 생산현장의 잡다한 일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을 그들의 위신을 깎아 먹는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유연생산 시스템의 효율적 운용에 상당한 장애로 작용한다는 것이 맥킨지의 진단이다. 따라서 팀제를 도입하되, 근로자들의 급여를 소속팀의 성과에 연동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중국 근로자들의 정서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맥킨지는 지적했다.

맥킨지는 구체적인 처방전도 제시했다. 노련한 전문가(savvy instructor)를 생산 현장에 파견해 중국 근로자들 사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위계 의식을 허물어 나가라고 조언했다. 물론 부서별 장벽을 허물고, 상호협력의 분위기를 고취시킴으로써 생산성을 한 단계 높여가기 위한 것이다.

특 히 한국이나 일본·대만 등에서 전문가를 고용해 이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권고하기도 했다. 중국 근로자들의 학습 속도가 매우 빠른 점은 긍정적인 요소다. 중국인들이 특별히 명석하다기 보다 기술을 배워야 좀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중국 내 30개 공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 공장들이 높은 제품 결함률과 비효율적인 공장 운영 탓에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공장에 비해 이윤이 20~40%가 적었다는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만약 조사대상 중 평균적인 수준의 공장이 운영 효율이 가장 높은 공장 수준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렸다면, 연간 2500만달러 가량의 이윤을 더 창출할 수 있었을 것으로 맥킨지는 분석했다.


프라할라드와 맥킨지 리포트

“저소득층 시장 공략” 한목소리

“빈 민층 시장을 잡아라.” 인도의 세계적인 경영 석학인 프라할라드 미시간 경영대학원 교수가 지난 2004년 자신의 저서에서 제시한 이 한 줄의 아이디어가 지금 세계적인 기업들을 뒤흔들고 있다. 유명 기업인들이 경영 현장에 그의 이론을 접목시키며 신흥 시장 공략의 수위를 바짝 죄고 있는 것.

프라할라드의 이론을 경영현장에 적극 접목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 노키아와 모토롤라다. 지난 2004년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 이하로 하락하는 등 일시적인 부진을 겪었던 노키아가 인도·중국 등 신흥시장을 적극 공략하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모토롤라도 불과 수만 원대의 휴대폰을 앞세워 아프리카·인도·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저소득층을 적극 공략하며 지난 2분기에도 3위인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도 비슷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2006년 분기 리포트(The Mckinsey Quarterly)에서 소득 수준이 낮아 지금까지 다국적 기업들의 공략대상에서 제외돼 온 중국의 내륙 지방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이들 지역이 가까운 장래에 중국의 신 성장 엔진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중국의 중산층에 주목하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입사원에 과장업무를 맡겨라

스코브가드 한국 P&G 본부장
“과감한 권한이양이 성장동력…
신입사원에 홍보 의사결정 맡겨”

“입사 3개월차 신입사원에 언론 홍보 책임을 맡겼다.
과감한 권한 부여야말로 한국 P&G성장의 원동력이다.”

한국 P&G에서 대언론 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원중(27) 씨.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 글로벌 소비재 기업의 입사 시험에서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지난 9월 입사한 그는, 8세에 필리핀으로 건너갔다 대입을 앞두고 다시 국내로 유턴했다. 한국말은 물론 영어 구사능력이 뛰어나다.

형과 단둘이 서울서 생활하고 있다는 그는, 요즘 친구들의 부러움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회사의 올해 공채에 지원서를 낸 대졸자만 무려 3000여명. 신입사원 14명을 뽑았으니 경쟁률만 무려 200대1을 훌쩍 넘었다.

근무여건이 뛰어난 데다 ‘인재 양성소’로 불릴 정도로 직원 교육시스템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회사니, 지원자들이 대거 몰린 것도 납득할 만하다. 이베이(ebay)의 맥 휘트먼 사장, 제너럴일렉트릭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 등은 모두 이 회사 출신이다. “운이 좋았다”고 활짝 웃는 김씨가 입사 후 첫 발령을 받은 부서는 대외업무총괄본부(홍보).

입사지원서에 근무 희망 부서로 기재한 곳이다. 그가 국내 기업에 들어갔다면 직장 상사나 선배들을 위해 복사나 커피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김씨는 한국 P&G의 대언론 홍보업무 관련 주요 의사결정을 직접 내린다.

부서에 첫배치된 신입사원에게 대언론 홍보 업무를 바로 맡기는 회사. 바로 한국 P&G만의 독특한 직원 양성 시스템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직원들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권한에 따른 책임 부과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측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경력직 사원을 뽑지 않는 배경도 가늠하게 한다.

우수한 자질을 지닌 신입사원을 선발해 엄격한 훈련을 거쳐 자사의 경영 철학에 맞는 인재로 키워낸다는 것. “한국 기업들이 보고 따라했으면 하는 사내 제도를 한 가지만 꼽아 달라”. 지난 23일 도곡동에 위치한 이 회사 본사에서 만난 스티브 스코브가드 인력개발본부장은 기자의 질문에 ‘조기책임제’를 꼽았다.

이 회사 직원들은 입사하자마자, 국내 회사 중견 기업들의 고참급 직원들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를 처리한다. 김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P&G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신입사원 채용을 고수하는 걸 보면 영락없이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지난 1980년대의 국내 기업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P&G는 도요타에 가까운 회사입니까, 아니면 미국의 GE에 가까운 회사입니까”. 스코브가드 본부장에게 두번째 질문을 던져본 배경이기도 하다.

“제너럴일렉트릭(GE)에 가깝습니다. 직원들을 성과에 따라 구분하고, 최하 등급을 받은 직원들에 대해서는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각종 교육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GE와는 달리) 사실상 퇴사를 요청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 회사의 실적은 어떤 편일까? 지난해 P&G의 글로벌 계열사들은 평균 두자릿수의 성장세를 보였다. 사실, 경력 대신 신입사원선발을 고수하는 시스템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장점도 있지만, 순혈주의를 고집한다는 일각의 비판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적이 좋으니 모든 비판은 잠잠해지기 마련.

이 회사 직원들이 일년에 받는 사내 트레이닝 시간만 무려 200시간. 최근들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전략적인 사고를 도와주며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임직원들과의 대화스킬을 다루는 프로그램(Global Communica-tion Skill)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고 스코브가드 본부장은 덧붙였다.

홍영대 GE코리아 상무
“될성부른 떡잎 조기확보
미래의 잭 웰치 육성한다”

“FMP는 제너럴일렉트릭이 10년을 내다보며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그룹의 핵심 인력들이다. 미래의 잭웰치 혹은 제프리 이멜트인 셈이다.”

‘제프리 이멜트와 라플리’ 미제너럴일렉트릭과 피앤지(P&G)를 이끌어 가는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라플리가 제너럴일렉트릭의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두 사람이 최소한 분기별로 한번씩 만나 경영 현안을 놓고 깊숙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는 게 GE코리아의 설명.

그래서일까. 두 회사에는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두 사령탑의 취임 초 경영 사정이 최악이었다. 제프리 이멜트는 미국 본토를 강타한 9·11 테러 발생직전 부임했으며, 라플리도 한해 전 전임 회장 더프 야거로부터 형편없는 경영 성적표를 물려받고 고심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손꼽히는 스타 경영자들이다. 라플리에게는 ‘포스트모던’한 경영자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며, 이멜트도 문화혁명에 비견되는 사내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성장의 정체라는 거대기업의 고질적인 병을 해결해 나갔을까.

지난 6월 이화여대에 위치한 포스코관의 한 강의장. GE-맥킨지 글로벌 리더십 강좌의 분임별 토론이 한창 진행중인데, 대학생들이 참가한 토론을 주재하고 있는 GE코리아 직원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아직 신입사원 티를 벗지 못했다.

이들이 바로 GE코리아의 직원인 FMP(Financial Management Planner)들이다. 이날 기자에게 리더십 강좌에 대해 설명한 백주현 씨도 그 중의 한 명. FMP는 제너럴일렉트릭이 10년을 내다보며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그룹의 핵심 인력들이다. 미래의 잭 웰치 혹은 제프리 이멜트인 셈이다. 한국P&G 직원들이 입사하자마자 중책을 떠맡듯이, 이들도 주요 현장에 바로 투입된다.

리더십교육의 주요 프로그램들도 모두 이들 FMP들이 직접 기획해낸 작품들이다. 이들은 2년 동안 6개월 단위로 주요 계열사의 재무 부문으로 보직을 옮겨 다니며 매번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는다.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모두 업무에만 매달린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빡빡한 교육 스케줄에도 참가해야 하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일 겁니다. ”홍영대 GE코리아 상무의 설명이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지원했거나, 2년 미만의 직장생활 경험을 지닌 이들은 초고속 승진을 보장받는다. 일반 직원들이 매니저가 되는데 20년 정도가 걸린다면, 이들은 같은 직위에 오르는 데 불과 10년 정도가 소요된다는 게 홍 상무의 설명이다. 육사나 해사, 공사의 사관후보생들인 셈이다.

물론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대부분 영어 능력이 뛰어나고 명문 대학을 졸업한 재원들입니다.

특히 다른 직원들에 비해 한 가지 더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는 데, 바로 리더십입니다.” GE코리아가 리더십을 중시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5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제프리 이멜트 회장에게 다시 눈을 돌려보자.

당시 그는 수행원을 단 한명도 대동하지 않았으며, 한국에서 행한 연설문도 직접 작성했다.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불필요한 경비를 초래할 필요가 없다는 회장 본인의 판단에서라고. ‘에코마지네이션’이라는 신성장 전략을 앞세워 저성장의 악순환을 부순 것도 이멜트의 힘이라는 게 중론.

창의적인 아이디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열정을 갖춘 리더는 조직의 운명을 가름하는 핵심 자원이다. “GE는 연 8%에 달하는 빠른 매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매년 나이키 정도 규모의 회사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인재확보와 교육에 이 회사가 왜 매년 10억달러를 쏟아 붓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제프리 이멜트는 성장 중시 전략을 감안해 직원 평가시스템에도 다섯 가지 요소를 새로 반영했다. 외부 지향성(external focus), 명확한 사고(clear thinking), 상상력(imagination), 포용력(inclusiveness), 그리고 전문성(expertise)이다. 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를 엿보게 하는 항목들이다.

INTERVIEW| 세계적인 인재전략 전문가 조세미 컨설턴트

“인재전쟁서 승리하려면 ‘인사가 만사’ 실천에 옮겨라”

조세미 컨설턴트는 인재전략 부문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와 부즈앨런해밀턴을 거쳤으며, 지금은 독립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작년 11월 국내에서 발표한 저서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는 국내에서 6만여 권이 팔리는 등 높은 인기를 끌었다. 영국 런던에서 체류중인 그녀와 지난 23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 세계적 CEO들과 폭넓게 교류하고 있다고 들었다. 요즘 어떤 문의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인도와 중국이 세계 경제의 신성장 엔진으로 부상하면서 이 지역 인재들의 주가도 많이 높아지고 있다. 현지에서 사업을 이끌어나갈 현지의 인재(local talent)들에 대한 문의가 많은 편이다. 또 과거 서구우위의 일방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아시아인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 아시아를 이해하려는 시도,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구체적인 사례를 공개할 수 있는가.

스위스 UBS의 아시아 퍼시픽 체어맨인 로리 탭너(Rory Tapner)를 보자. 그는 얼마 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아시아 근로자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사내에서 역할 바꾸기극을 도입했다는 얘기였다. 입장을 바꾸어 롤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부서장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시아 자회사 여직원의 역할을, 이 여직원이 부서장의 역할을 각각 담당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는 계기가 된다.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시니어 매니저들은 대부분 서양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재단하는 경향이 강한데, 중요한 것은 이미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가 이들의 사업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가늠하게 한다.

-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계 인재 찾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의 중국 사무소의 채용 전략을 도와주고 있다. 이 고객사는 향후 4∼5년간 지금까지의 추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다양한 글로벌 경험을 갖춘 중국계 인재들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중국계 인재들을 찾고 계발하는 프로젝트다.

- 인도나 중국은 인재들이 넘쳐나는 나라들이다. 다른 나라에서 중국계 인재를 찾는 배경이 궁금하다.

글로벌 기업들의 눈높이에 맞는 인재들은 이 지역에도 여전히 적다. 아직까지 이러한 격차(Gap)가 생각보다 상당히 크다.

-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인재경영을 주창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이러한 분위기를 런던 현지에서도 느끼는가.

요즘 학계, 정부, 그리고 기업에서 칼럼이나 강의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최근에는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자신의 수업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 국내에서 인재경영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으로 보통 삼성을 꼽는다. 동의하는가.

삼성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다. 삼성의 인재전쟁 전략은 가히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친분이 있는 한 한국계 미국인 학생이 내게 털어놓은 이야기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첨단 과학 분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가 삼성 TV를 장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삼성전자가 만든 인사과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력서도 내지 않은 그가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TV구입 때 무심코 적어 넣은 학교 및 전공, 주소 전화번호를 비롯한 인적사항을 무심히 넘기지 않은 것이었다. 삼성의 치밀한 소싱전략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말하는 CEO는 많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기업만이 인재전쟁의 승자가 될 수 있다.

-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볼 때, 인재 양성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은 없는가.

삼성이나 LG에 입사하면 한국은 물론 해외의 자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여전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무척 강하다. 삼성에 입사한다고 하면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할래”라는 식의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뿌리를 내리고 근무하기보다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회사라는 생각이 강하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가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많이 바뀌어 나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기업들의 경우 나이나 성별이나 인종, 그리고 학연, 지연을 떠나서 성과로만 평가하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선입견이 강한 것 같다.

- 맥킨지와 부즈앨런에서 근무했으니, 이 컨설팅 회사들의 교육 시스템에 정통하지 않겠나. 한국기업과 어떤 점이 다른가.

맥킨지나 골드먼삭스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이 뛰어나다. 맥킨지에 입사했을 때 경영대학원에 다시 입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렸을 정도다. 이 회사에는 이공계나 인문계 출신자들도 적지 않은데, 모두 사내 경영대학원 코스를 거쳐야 한다. 세계적인 투자 회사인 골드먼삭스는 아예 자체 대학을 세우기도 했다.

- 이베이의 인사부문 담당자가 맥킨지 시절의 동료라고 들었다. 직함이 독특하다고 들었다.

글로벌인재 전략의 트렌드 중 하나가 ‘HR’이라는 말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맥킨지 동료이던 액셀로드가 이베이의 인재관리 담당이(Chief Talent Officer)로 이동했다. 인사 부서는 행정적인 기능보다는, 탤런트 매니지먼트 이런 쪽으로 바뀌고 있다. 전략적인 역할 수행이 중시되고 있다.

지금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인재전쟁중이다.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에서 어느 기업이 더 많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는가는 바로 전쟁 중 어느 나라가 더 많은 최신무기를 갖추고 있는가와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들은 앞장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직장상사 공략 노하우 베스트 7

상사의 잔소리까지도
대학 노트에 정리해 봐라”
 

(하버드 비즈니스리뷰는 세계 경영자들의 바이블입니다. 마이클포터부터 프라할라드까지, 내로라하는 경영학자들이 이 월간지에다 자신의 글을 기고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경영자들이 놓쳐서는 안될 메가 트렌드나 인재 전쟁서 승리하기 위한 노하우 등 첨단 동향이 기고문의 주종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는 선입견을 지니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월간지에는 실용적인 팁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때로는 국내 처세 서적에 실릴 법한 류의 글들도 적지 않아 기자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이 글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는데요,  사실 직장상사 경영노하우야말로 무엇보다 먼저 익혀야할 지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대가서도 고참을 제대로 구슬려야 몸과 마음이 편한 것 아니겠습니까 )


직장 상사는 늘 애증의 대상이다. 툭하면 경영자에게 불려가 터지고, 후배 사원들에게 치받친다. 말 그대로 ‘넛 크래커’에 끼인 호두 신세다. 애꿎은 부인에게 화풀이도 해보지만, 가슴 한 구석은 늘 서늘하다. 그런데‘동네북’ 취급을 받던 그가 요즘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당신의 상사를 관리하라(Managing Your Boss).’세계적 경영월간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겨울 호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직장 상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직장 상사가 경제전쟁 시대의 중추로 부상하고 있다는데,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소개하는 상사경영법 일곱 가지를 정리했다. (편집자주)

【직장 상사 관리 노하우 7가지】
-상사 업무 스타일 대학노트에 정리하라
-시시콜콜한 정보가지 패키지로 제공하라
-상사의 전략적 목표에 '눈높이를 맞추라'
-장·단점 분석하고 맞춤형 정보 제공하라
-자신의 강점과 약점, 기질을 분석하라
-평정심을 유지하는 노하우를 길러라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라

●제언 1. 직장 상사의 업무 스타일을 분석하라

소비재 분야의 한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는 P상무는 요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지난해 초 부임한 벽안(碧眼)의 신임 사장이 ‘골칫거리’다. 그는 전임자와는 업무 스타일부터 판이하게 다르다. 전 사장은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P상무를 불러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이번 사장은 구두 보고를 선호하지 않는다.

시장 점유율, 소비자 기호, 업계 현황 등을 수집하는 일은 이제 온전히 그의 몫이 됐다. 한 걸음이라도 더 영업 현장을 뛰어야 한다는 지론의 그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실적 하락도 하락이지만 신입사원시절로 돌아간 듯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느라 이중고(二重苦)를 치르고 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서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까지, 직장 상사는 늘 애증의 대상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겨울호는 하지만 ‘상사를 경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직장 상사는 전략적 동반자이자, 고급인맥·정보의 수원지이다. 그의 업무 스타일을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업무 스타일이란 무엇일까. 기준은 다양하지만,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 경영자를 ‘듣는 이(Listener)’와, ‘읽는 이(Reader)’로 구분한 바 있다. 이러한 차이에 따라 보고방식도 달리해야 상사공략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조언한다. 전자에게는 현안을 구두로 설명하고, 메모나 약식 보고서를 나중에 제시하는 편이 더 나은 반면, 후자에게는 보고서를 먼저 올리고, 간단히 배경을 덧붙이는 쪽이 유리하다. 유능한 직장인은 이러한 차이를 간파하고 상사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이 월간지는 분석했다.

●제언 2. 정보는 多多益善…상사를 유식하게 만들어라

미 크라이슬러 부활의 주역인 아이아코카. 그도 포드가문과 마찰을 빚다 첫 직장인 포드자동차에서 쫓겨나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말단 사원에서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상사와 한두 차례 신경전을 벌여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회사를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은 이러한 불화를 서로 다른 ‘품성(personality conflict)’이나 기질, 가치관의 차이 탓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타고난 품성이나 기질 등에도 차이가 있으니 이러한 갈등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시각은 다르다.

업무처리 방식이나, 서로에 대한 기대치, 무엇보다 우선순위(priority)에 대한 몰이해가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조직 구성원들이 정작 이러한 핵심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할까.

같은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취미에서 경조사까지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아도, 상사가 부하직원이 원하는 바를 대부분 알고 있으리라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부하직원의 기대치나, 로드맵, 업무 만족도, 불만사항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상사는 드물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의 단절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정보는 어느 정도까지 공유해야 할까’ 직장인들이라면 한번쯤 갖게 되는 의문이다. 하지만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업무 절차별로 상사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라(keep the boss informed through processes)’고 강력히 권고한다. 성공적인 직장 경력을 지닌 직원들은 상사와 부하직원이 전략적 동반자가 돼야 한다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제언 3. 상사의 목표(goal)를 정확히 파악하라

이희성 인텔 사장은 작년 말 한 컴퓨터 회사의 제품을 판매하는 모 홈쇼핑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해 화제를 불러모은 바 있다. 직접 출연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가 홈쇼핑에서 자사 제품의 강점을 설명하는 모습은 매우 신선했다는 평가다.

그의 등장이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다. 무엇보다, CPU 제조업체인 인텔이 요즘 마케팅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지난 2005년 미국 본사의 최고경영자가 부임한 후 탄력을 받고 있는 쪽이 마케팅 부문이다. AMD가 맹추격을 하자, 기술의 인텔이 마케팅 활동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

직장 상사의 전략 목표, 수단 등을 파악하는 일은 업무 스타일 파악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한다.

전략 목표가 상급자와 달라 서로 알력을 빚다 물러난 외국계 기업의 부회장이다. 그는 가격 인하를 통한 시장 점유율 확대를 추구하다, 이윤을 더욱 중시하던 상급자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시장 점유율 증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파악했으나, 상사의 생각은 달랐던 것. 두 사람은 가격 책정 권한을 놓고 알력을 빚다 실적이 악화되면서 모두 물러나야 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이 부회장이 상사와 자신의 전략 목표가 같다고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정보 부재는 마치 눈가리개를 한 채 나는 것과 같다(fly blind)’.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비유다. 상사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되,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제언 4. SWOT분석으로 장단점을 분석하라

스티브 잡스 애플 컴퓨터 CEO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사람들의 기호를 한발 앞서 내다보는 직관의 힘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전통적인 여론 조사를 미덥지 않게 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시장 조사를 거쳐 제품을 출시할 때쯤이면, 소비자들의 기호는 이미 바뀌어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그는 직원들에게 까다롭기로도 정평이 나있다. 괴팍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신이 창립한 애플에서 한때 쫓겨나는 등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칼날 같은 성품도 무뎌지기는 했지만, 이 슈퍼스타에게는 이러한 꼬리표가 아직도 따라다닌다.

슈퍼스타는 물론 상급자들은 자신의 단점을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상사의 강점과 약점, 업무 스타일, 니즈 등을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직원들은 자신의 상사가 강점을 발휘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데 앞장섰다고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제시했다. 조직 내, 혹은 사적인 고민거리는 무엇인 지, 또 다른 부서장들과의 관계는 어떤지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가 요즘 회사에서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 지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상사에게, 의지할 수 없는 부하 직원보다 더 당혹스러운 존재는 없다(Few things are more disabling to a boss than a subordinate on whom he cannot depend)고 조언한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때 지속할 수 있다.

●제언 5. 신뢰가 보약…맹목적 분노는 毒藥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가장 잘나가는 스타경영자인 그도 GE의 플라스틱 사업 부문장 시절에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지난 1994년 대표적 휴양지인 보카라톤에서였다. “내년에도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당시 잭 웰치는 해고 가능성을 내비쳤다. 스타경영자들도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성장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방식의 차이가 직장 생활의 성패를 상당부분 좌우한다. 무엇보다, 직장 상사에 대한 맹목적 불신은 문제를 꼬이게 만든다.

최악의 사례가 상사를 ‘공공의 적’정도로 취급하며 그의 권위에 공개적으로 도전하는 직장인들이다. 이들은 부서장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진다.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는 느낄 수 있겠으나, 결과는 재앙에 가깝다. 무엇보다 건설적인 비판은 불가능해진다.

회의는 생산적인 토론장이 아니라, 싸움터로 비화되곤 한다. 상사의 입장에서도 자신에게 적의를 느끼는 부하 직원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인간적으로도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하는 직장인들은 적지 않다. 물론 상사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구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각에 이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지적했다.

●제언 6.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자신의 장단점 분석하라

손자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무엇보다, 자신의 타고난 기질(predisposition)이나 품성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타고난 기질은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받지 않는 한 쉽게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욱’하는 성질 탓에 숱한 문제를 양산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해결방안은 명확하다. 과거의 경험을 반추해보고, 자신의 반응을 미리 내다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이끌어내면 된다. 직장인 대부분은 회의에서 이견이 노출될 때, 아니면 사소한 말다툼을 벌일 때, 자신이 어디로 튀었는지 과거의 경험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경력 관리를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기질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제언 7. 갈등해소 테크닉을 익혀라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한 젊은 중간관리자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자신이 여러 사람이 얽힌, 감정적 문제에 대한 대응이 서투르다고 판단했다. 직장 내 호칭부터, 타부서 직원들의 전횡까지, 그는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상사에게 도움을 청해, 혼자서는 생각해내기 어려웠을 법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 본능을 누그러뜨릴 방안에 부심하던 또 다른 직장인은 회의 중 감정이 상할 때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자신의 엉크러진 심기를 추스른 뒤 상사를 찾아갔다. 그가 더 정돈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상사와 갈등을 빚는 이들 가운데 자신의 후배 직원들에게 관대한 민주적 성향의 직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러한 가치를 중시하다 보니, 비민주적이고 전제적인 상사에게 더욱 비판적이기 쉽다는 의미다. 이들은 업무능력이나 대인관계 등에서 평판이 좋다.

하지만 ‘사내 갈등으로 정작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고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전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노무현 대통령 리더십 분석



①노무현 대통령의 통치리더십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공언했듯이 소위 ‘역발상’의 대가이다. 신년 벽두부터 아무도 예상치 못한 4년 연임제의 개헌을 문득 제의하고 나선 것이 그 실례이다. 노 대통령은 전에 문득 한나라당에 대연정(大聯政)을 제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제의는 노 대통령이 소위 ‘역발상’을 통해 최고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른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발상’은 어디까지나 득천하(得天下)의 방략에 불과할 뿐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역발상으로 치천하(治天下)에 성공한 제왕은 존재한 적이 없다. 일찍이 전한(前漢)제국 초기에 육가(陸賈)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에게 이같이 헌책(獻策)한 바 있다.

“마상(馬上)에서는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필히 마하(馬下)로 내려와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자칫 후대의 사가에 의해 득천하에 필요한 마상(馬上)의 전술(戰術)과 치천하에 필요한 마하(馬下)의 치술(治術)을 구분치 못한 대통령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상의 전술은 군웅(群雄)이 천하의 우이(牛耳: 주도권)를 놓고 다툴 때 쓰는 것으로 현대의 선거전에 비유할 수 있다. 원래 출마(出馬)한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기습전(奇襲戰)과 복병전(伏兵戰), 공성전(空城戰) 등 다양한 기병술(奇兵術)이 필요하다. 특히 세가 불리할 때 이런 기병술이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역발상’이 큰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병술을 구사한 인물로 삼국시대의 조조(曹操)를 들 수 있다. 조조는 짐짓 약병(弱兵 : 짐짓 미약한 모습을 보임)으로 적장의 교만을 부추겨 방심케 만들거나, 요병(耀兵 : 무력시위)으로 적을 지레 겁먹게 만들거나, 의병(疑兵 : 허수아비 등을 이용한 거짓 용병)으로 적이 착각토록 만들거나, 기병(奇兵 : 예상외의 용병)으로 적이 예상치 못한 시점을 택해 출기불의(出其不意 : 뜻밖에 나섬)로 적의 허점을 찌르거나 하는 등의 기막힌 기병술을 구사했다. 이는 상식을 뛰어 넘는 ‘역발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 등의 기막힌 역발상을 통해 단일후보가 된 뒤 충청도민에게는 ‘행정수도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수도권 주민에게는 ‘불편하고 시끄러운 것의 이전’을 내세워 표를 긁어모았다. 그는 역발상의 기병술로 득천하에 성공한 셈이다.

이회창 후보, 정병술(正兵術)만 고집하다 낙마
당시 대병(大兵)의 위용을 과신한 이회창 후보는 승패의 분수령이 충청 회전(會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제휴마저 뿌리친 채 정병술(正兵術)만을 고집하다가 참패를 자초했다. 그는 비록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영남을 근거로 대병을 모아 권토중래(捲土重來)의 호기를 맞이했으나 결국 노 후보의 기습공격을 받고 낙마(落馬)하고 만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지라도 ‘역발상’의 당사자인 자신의 주착(籌策)에 스스로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에 입성 한 노 대통령은 응당 역발상의 유혹을 단호히 끊고 만민을 위해 고루 덕을 베푸는 황도무친(皇道無親)의 대정(大政)을 펼쳐야만 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치천하에 임하면서도 시종 역발상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최고 통치권자의 ‘역발상’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최고 통치권자가 국가대사를 결정할 때 늘 좌우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은 뒤 신중한 사려를 거쳐 결단을 내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미 천하를 거머쥔 뒤에는 대규모 반란을 진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말 위에서 호령할 일이 없는 법이다. 쟁천하(爭天下)의 회전(會戰)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말 위에서 내려와 천하에 임해야만 한다. 더 이상 싸울 대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말 위에서 진두지휘할 경우 공연히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노 대통령의 출신배경과 입신과정은 여러 면에서 한고조 유방(劉邦)과 닮아 있다. 유방 역시 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자랑하는 천하의 웅걸(雄傑) 항우(項羽)를 패퇴시키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출신배경·입신과정 한고조 유방과 닮아
진시황의 급서로 군웅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당시 천하인은 모두 항우의 천하평정을 의심치 않았다. 당시 항우는 누대에 걸쳐 장군을 배출한 명족 출신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각종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당대 최고의 무용(武勇)을 자랑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국 싸움은 일개 농부 출신인 유방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항우가 자신의 출신배경과 무용을 과신한 나머지 소위 대세론에 입각해 姑息的(고식적)인 방법으로 천하를 차지하려고 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이를 두고 사마천(司馬遷)은 《사기》‘항우본기’에서 항우의 패망원인을 이같이 분석한 바 있다.

‘항우는 패왕(覇王)의 업을 이룬다는 명목을 내세워 오직 힘만으로 천하를 정복하려고 했다.’

항우는 여러 면에서 이회창 후보와 닮았다. 당시 이 후보는 대선예비전으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의 대승에 도취한 나머지 무명의 노 후보가 적장으로 발탁된 것을 보고 고식적인 대세몰이에 안주한 나머지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이는 삼국시대 당시 천하의 효장(驍將) 관우(關羽)가 오나라의 어린 장수 육손(陸遜)을 업신여기다가 패퇴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후보는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병가의 기본원칙을 무시함으로써 두 번에 걸쳐 통한의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유방은 젊은 시절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방은 현재의 역장(驛長)에 해당하는 정장(亭長)으로 있다가 법을 어겨 처형을 당하게 되자 이내 비적(匪賊)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진시황의 죽음을 계기로 천하가 혼란스럽게 되자 이를 틈타 한 지역의 반군(叛軍)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젊은 시절 상고를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다가 토방 속의 독공(獨功)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세인의 이목을 끈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원래 평민 출신인 유방은 귀족 출신인 항우와 달리 민심을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그가 진제국의 도성인 함양(咸陽)을 점거했을 때 장로들을 불러 놓고 법삼장(法三章)을 약속한 사실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단 3개의 조항으로 이뤄진 ‘법삼장’은 진제국의 혹법(酷法) 하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신민들에게는 해방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민심 잡는 법 숙지한 ‘5공 청문회’ 스타
이는 노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여의도로 입성한 뒤 마침 세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은 소위 ‘5공 청문회’에서 거침없는 논변과 격정적인 몸짓으로 청문회 스타가 되어 열렬한 지지층을 확보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민심을 잡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막강한 항우를 패퇴시키고 천하를 거머쥔 유방은 보위에 오른 뒤 자신과 전혀 다른 출신배경을 가진 유자(儒者)들을 크게 경멸했다. 《사기》‘고조본기’에 따르면 유방은 건국공신인 역이기( 食其)를 공개적인 석상에서 ‘우유(愚儒)’로 비난하는가 하면 유자들이 쓰는 유관(儒冠)에 방뇨키도 했다. 이는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잘 배운 사람’ 운운하며 서울의 강남 지역민과 조선일보, 삼성그룹, 서울대 출신 등을 특권층으로 몰아가며 적대감을 드러낸 것과 닮아 있다.

유방과 노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이런 모습은 별다른 기반도 없이 자력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사람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들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력으로 입신양명한 자들의 공업(功業)이 굉대(宏大)한데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이들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려의 유신(儒臣)들이 비록 충절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기슭에 있는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간 것도 한미한 가문출신인 이성계의 전력(前歷)을 천시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전대의 명족 출신이 한미한 출신의 개업과 개국을 있는 그대로 평가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세인들이 자력으로 입신양명한 사람을 추앙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역대 모든 왕조의 개국조가 소위 하나 같이 위보(僞譜)를 만들어 조상을 미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보를 만들어 조상을 미화하는 전래의 방안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 스스로 자신이 이룬 굉대한 공업에 대한 만족감으로 한미한 출신 및 전력으로 인한 허전함을 메우거나, 자신의 전력에 대한 세인들의 낮은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그리 쉽지 않은 데 있다. 당사자의 자부심과 세인의 인색한 평가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갭이 존재키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예상치 못한 화난(禍難)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대표적인 예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주원장 역시 유방과 마찬가지로 탁발승과 비적 등의 행각을 벌이다가 ‘역발상’을 통해 원대 말기의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일약 몸을 일으켜 천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원래 그는 천하에 보기 드문 추남(醜男)이었다. 그러나 영정(影幀)에 그려진 그의 모습은 이와 정반대로 현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위보(僞譜)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성이 주씨인 점에 착안해 사대부들이 공자 다음으로 존숭한 남송대의 주희(朱熹)를 자신의 조상으로 꾸미려고 시도키도 했다.

자격지심 때문에 폭군이 된 명태조 주원장
주원장은 보위에 오른 뒤 자신의 한미한 출신배경과 불미한 전력으로 인해 늘 자신의 출신 및 전력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병적인 반응을 보였다. 명나라 개국 초에 빚어진 수많은 筆禍事件(필화사건)은 모두 이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력을 연상시키는 모든 글을 보면 곧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여겨 당사자를 가차없이 혹형으로 다스렸다. 그가 후대에 폭군으로 비난받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원장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한미한 출신배경과 불미한 전력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인해 세인들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전력을 연상시키는 글만 보면 병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는 유방에게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점이다.

유방은 주원장과 달리 재위 도중에 육가(陸賈)를 비롯한 유자들의 간언을 전격 수용했다. 당시 육가는 유방을 계도하기 위해 12편에 달하는 책을 지어 시간을 두고 한 편씩 유방에게 바치며 군왕의 길을 가르쳤다. 유방은 열린 마음으로 육가의 가르침을 흔쾌히 받아들여 이내 군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는 주원장과 달리 보위에 오른 뒤 이내 육가 등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역발상’의 유혹에서 벗어난 셈이다.

이는 스스로를 구시대의 평민이 아니라 새 시대에 부응하는 명족의 일원으로 간주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유방의 일거수일투족은 군신(群臣)들의 모범이 되었다. 황제는 일상적인 업무에 간섭하지 않고 대신 이를 직접 처리하는 대신들을 선임하고 감독한다는 군도(君道)의 대원칙이 성립된 것은 바로 유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원칙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수천 년 동안 그대로 이어졌다.

유방과 주원장의 엇갈린 행보는 두 사람의 이질적인 성정과 무관치 않았다. 유방은 음습(陰濕)한 습기를 띠고 있는 주원장과 달리 밝은 면의 양성(陽性)의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이룬 공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유방은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도량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주원장이 희대의 폭군이라는 오명을 얻은 데 반해 유방이 후대인의 칭송을 받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 대통령 역시 성정 면에서 주원장보다는 유방에 가깝다.

전형적 소양체질… 책략 부족하나 소신 뚜렷
일찍이 구한말의 위대한 사상가인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는 사람의 체질을 사상론(四象論)에 입각해 4개의 유형으로 나눈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유방과 노 대통령은 전형적인 소양(少陽)체질에 속한다. 이에 반해 주원장은 장막 뒤에서 계책을 짜는 데 능한 책사 유형의 소음(少陰)체질에 속한다.

소양인은 소음체질에 비해 책략이 부족하기는 하나 소신이 뚜렷하고 일 처리에 뛰어난 재주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현우(賢愚)를 아주 잘 파악한다. 노 대통령의 확신에 찬 조리 있는 언변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양인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발 벗고 나서기 때문에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원한을 살 여지가 많다. 자신의 재주에 대한 신념이 지나치고 사사로움에 치우친 나머지 자칫 경박한 사람으로 몰릴 위험이 크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격정을 여과 없이 토로하면서 코드 인사를 계속하는 것도 이런 체질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소양인은 특히 자기가 현재 지니고 있는 부와 명예 등을 가볍게 보는 까닭에 이를 노리는 밑의 사람들로부터 늘 모함을 당할 소지가 크다. 소양인이 자주 폭발적인 슬픔에 잠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소양인이 남의 일에 희생적이고 대의명분 앞에서 비분강개하는 전형적인 무인(武人)의 기질인 데 따른 것이다. 눈물을 잘 흘리는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고 운운하며 걸핏하면 지존의 자리인 대통령직을 내걸고 승부수를 던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성정을 지닌 사람이 가장 주의할 대목은 신중한 대처를 요하는 외치분야이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바람에 대미관계와 북핵문제 등에서 우리의 입지가 협소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에 터져 나온 ‘평화의 바다’ 파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서 전국 각 대학의 교수들이 지난 한 해의 의미를 한마디로 압축한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를 선택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노 대통령에 대해 충정 어린 고언에 해당한다.

원래 ‘밀운불우’는 《주역》의 《소축괘》(小畜卦)와 《소과괘》(小過卦)의 괘효사(卦爻辭)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비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구름이 꽉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를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을 말한다. 현재까지 《주역》에 관한 최고의 주석가로 알려진 삼국시대 위나라의 王弼(왕필)은 이를 두고 이같이 풀이해 놓았다.

“《소과괘》에서는 음기가 위에서 성한 기세를 하고 있음에도 전혀 베풀지 못하고 있어 ‘밀운불우’라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소축괘》에서는 오히려 양기가 강한 까닭에 음기가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해 ‘밀운불우’라고 한 것이다.”

《소과괘》의 ‘밀운불우’는 음기의 인물이 군주의 자리에 앉아 아래의 신민(臣民)들과 제대로 호응하지 못하는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주원장의 등극이 이에 해당한다. 《소축괘》의 ‘밀운불우’는 덕이 매우 작아 대덕(大德)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소덕(小德)에 그치고 있는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현재 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최하의 지지도를 기록 중인 것은 시종 민심과 괴리된 코드인사와 오기정치를 계속한 데 따른 후과로 보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제라도 특단의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헌 등으로 불리한 국면을 반전시키려는 역발상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다행히 노 대통령은 유방과 같이 밝은 면의 성정을 지니고 있다. 《소과괘》의 ‘밀운불우’처럼 주원장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소축괘》의 ‘밀운불우’처럼 유방의 길을 따를 것인지는 전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노 대통령이 결심하기에 따라서는 잔여 임기 1년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IBM의 전략가들을 만나다

인도 전략가들이 한국기업에 던지는 조언
“인도서 이노베이션 역량 키워라”

(인도 뱅갈로르를 방문하고 돌아온 지도 벌써 두달 가량이 지났네요. 작년 12월 글로벌 IBM의 초청으로 인도 IBM을 둘러볼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25개 나라 기자들이 뱅갈로르로 집결했지요. 인도 방문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나라에 대한 악명(?) 탓에 걱정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뱅갈로르는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어 선선하고, 호텔 시설도 상당히 수준급이더군요. MS, IBM 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단지는 국내 대학 캠퍼스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전체적인 인상은 깔끔했습니다.  리셉션을 담당하고 있는 인도 여자들도 매우 예쁘고요. :) 이 곳에서 글로벌 IBM의 대인도전략을 총괄하는 영국인 캐논-브룩스(IBM의 부회장입니다)와, IBM인도의 쉥커 아나스와미 사장을 만났습니다. 흔치 않은 기회였지요. 무엇보다, 이노베이션과 인벤션의 차이를 설명하는 캐논-브룩스의 설명이 인상적이더군요.  맘씨좋게 생긴 캐논-브룩스에게는 퇴임후 구도를 묻는 무례한 질문도 던져보았습니다. 자 그들의 말에 귀를 한번 기울여보시죠)

마이클 캐논-브룩스와 쉔커 아나스와미. 중국과 더불어 IBM의 양대 성장 엔진인 인도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전략가들이다. 지난 5∼6일 두 사람을 뱅갈로르에서 각각 만나 인도시장 현황, 한국 기업들을 위한 조언 등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두 사람은 각각 IBM 부사장과 IBM인도 사장직을 맡고 있다.(편집자 주)

인도 시장에서 IBM의 성장속도가 무척 빠르다. 샘 팰미사노(Sam Palmisano) 회장이 요즘 당신에게 가장 강조하는 사안은 무엇인가.

아나스와미 모든 부문에서 2등과의 격차를 확실히 벌릴 것을 요구한다. (IBM은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50% 이상 성장했다. )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시장, 어느 쪽이 더 유망하다고 보는가.

아나스와미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다. 두 시장은 매우 다르다(They are very different mareket). 다만 인도는 값싼 노동력을 보고 많이 오는데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Many companies come to realize there is much more in India). 인도인들은 사업가적 기질이 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품질이 뒷받침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인도는 혁신의 전진기지이다(We can become global delivery of innovation).

캐논-브룩스 인도 시장은 서비스, 소프트웨어 개발, 금융, 소매(retail) 부문이 강하다. 반면 중국은 생산, 물류, 자재, 구매를 비롯한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에 경험이 풍부하고, 이 부문에서 기술력을 갖춘 인력들이 많다. (남상긍 팀장은 중국은 땅이 워낙 넓어 항공, 선박, 트럭 등을 결합시켜 물품이나 서비스를 유통시키는 노하우가 발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

베트남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IBM의 세 번째 성장 엔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캐논-브룩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We are certainly optimistic). (하지만) 고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양질의 인력이 필요한데, 베트남은 아직 이러한 인적 자원을 길러내기 위한 초기단계에 있다. 잠재력만큼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베트남은 물론 폴란드, 남미 여러 나라가 잠재력이 있다.

아시아의 부상은 한국 기업의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기업들의 전략에 아쉬운 점은 없는가

캐논-브룩스 한국 대기업들은 (무엇보다 ) 인도나 중국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아직도 값싼 인력을 공급하는 나라 정도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제조업 부문에서는 숙련된 기술을 지닌 고급 인력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다.

한국 기업들은 연구개발(R&D) 부문을 한국에 묶어 두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연구개발센터를 세우고, 현지 인력의 경험과 통찰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Korea is specific. They need to start looking India as a pools of high value of skill).

우리는 정보의 시대에서 인재 시대로의 이행을 목도하고 있다(We are moving from information age to talent age). IBM이 인도를 혁신 허브(innovation hub)로 여기는 배경을 잘 생각해야 한다.

아나스와미 한국 기업들은 스스로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또 인도에서 어떤 부문을 레버리지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인도에서 소형차들을 생산해서 다른 지역에 수출을 한다. 소형차 세그먼트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인도 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금융을 비롯한 일부 영역은 아직도 지분 제한 등 여러 규제가 있지 않은가.

아나스와미 20년전 전이라면 허가를 받아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현 총리가 재무장관으로 있을 때 규제를 대거 폐지했다. 규제를 없애고 투자 유치를 활발히 해서 외국기업들이 일할 수 있는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물론 아직까지 소매(retail)이나 텔레콤 사업 등에는 정부규제가 남아 있다.

바티같은 통신 회사도 지금 주식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월마트가 마이너리티 주주로서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세는 개방이다. 인도는 글로벌 경제로 빠른 속도로 통합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도 아직도 매우 열약하다는 평가다.

아나스와미 바꾸어 생각하면, 한국 기업들이 두드려볼 수 있는 영역이 많다는 얘기도 되지 않겠는가. 최근에 인도 정부는 공항이라든지, 항만 공사 등에 관심이 많다. 해외 업체들이 많은 인도 기업과 조인트 벤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 부문 말고도 같이 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을 것 같다.

인도 시장 진출을 고려중인 한국 기업들이 IBM이 오랜 세월 이 나라에서 형성한 경험이나, 통찰력을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캐논-브룩스 IBM 부사장은 인터뷰에서 혁신(innovation)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시티은행 출신으로 IBM의 양대 성장 엔진인 인도와 중국시장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전략가인 그가 이해하는 ‘혁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브룩스 부사장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요즘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단어는 무엇인가. 모토롤라의 에드 전더 CEO는 부임 후 혁신이라는 한 단어에 집착했다고 말한 바 있다.

캐논-브룩스 이노베이션이다. 하지만 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는 쓰는 사람마다 정의가 각각 다르다. 대부분 인벤션(invention)을 이노베이션과 혼용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노베이션은 인벤션과 다르다.

인벤션에 통찰력(insight)이 결합된 것이다. 에드전더가 말하는 이노베이션은 인벤션에 가깝다고 본다. 혁신은 중요하다.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말했듯이, 혁신하지 않으면 상품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인도 시장에서 IBM만 혁신의 주체는 아니다. 인포시스나 위프로가 장래에 IBM의 입지를 뒤흔들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가.

캐논-브룩스 이들은 분명 강력한 경쟁자들이다(We certainly have strong competitor). 하지만 우리는 (인프로나 인포시스에 없는) 핵심 역량을 갖추고 있다(We can differentiate ourselves).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디자인이나, 설계는 우리만이 할 수 있다. 고객에게 경쟁력 있는 솔루션을 제공해줄 수 있다.

위프로나 인포시스가 특정 부문에서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시장 리서치, 컨설팅 전 부문에 걸쳐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파트너를 기업들이 찾는 추세인 점도 우리에게 유리하다.

중국과 인도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 혹시 당신의 은퇴에 대비해 IBM이 어떤 대책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다.

캐논-브룩스 승계플랜에 대해 묻는 것이라면 답변하기 어렵다. IBM에는 인재가 넘친다.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를 넘고, 특히 유럽이나 북미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높은 35%에 달할 것으로 IBM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는 분석한 바 있다. 베이비 붐 세대의 대량 은퇴를 앞두고 있는 미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한 편이다. )

“컨설팅 펌을 인수함으로써 비로소 통찰력(insight)을 얻게 됐다”고 브룩스는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IBM이 중국의 광둥은행 지분 인수에 참가한 배경은 무엇일까. 은행업 진출 가능성을 물어 보았다.

광둥은행 투자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억측이 구구하다. IBM이 은행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가.

캐논-브룩스 아니다(we are not getting into banking industy). 금융비즈니스가 중요하지만, 금융업을 직접 하려는 의사는 없다. 광둥은행이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이 은행에 투자를 하기는 했지만, 경영이나 이사진에 포진하고 있지는 않다. 중국 전체 은행사업의 혁신(innovation)을 돕기 위한 것이다.

차이나 펀드(China Fund)를 만든 배경도 궁금하다.

캐논-브룩스 차이나 펀드는 중국 정부의 요청으로 중국의 많은 기업들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혁신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사업을 시작해 일정 기간이 지난 신생 업체가 투자 대상이다. 금융 및 기술 전문적인 지식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중국기업들이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기금이다.

사실, IBM과 중국정부가 협력한 지는 꽤 됐다. 지난 1991년에 중국에 진출한 최초의 다국적 기업이었다. 중국정부는 이미 12년 전에 아이티 산업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으며, 우리는 전략을 함께 디자인했다. 최근 들어서는 해외 기업의 아웃소싱 비즈니스 유치전략을 중국정부와 함께 만들었다.

글로벌 기업 발상 전환의 현장

“빵집 주인에게도 배울 건 배워야…”

글로벌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 상품 개발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지만 과거에 비해 연구 개발의 한계 효용은 떨어지고 있다. 기업 규모가 지금보다 작고, 기업 경쟁이 덜 치열했던 지난 1950∼1980년대에는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고용하고, 관련 설비를 증설하는 것만으로도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며 이러한 공식도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다. 경쟁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상대 기업의 비교우위를 잠식해 들어간다. 산업 간 경계가 흐릿해지며 예상치 못한 기업이 강력한 적수로 등장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기업들이 직원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우선 IBM은 잼이라는 불리는 브레인스토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간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나’, ‘이노베이션’등 과제가 주어지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 세계의 이 회사 직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게시판에 올린다. ‘텍스트 애널라이저’라는 툴을 통해 주요 키워드를 뽑아낸다.

각계의 의견을 분석하고, 직원들의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명확히 해 내는 것이다. 외부에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회사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지식 네트워크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대표적 회사가, 이른바 C&D(Connect and Develop)전략으로 널리 알려진 프록터앤갬블.

‘C&D’란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 세계인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이를 통해 비교우위를 만들어 가는 연구개발 시스템. 북미시장의 히트상품인 프링글스 프린트는 C&D전략의 산물이다. 이 회사는 이탈리아 볼로냐에 위치한 한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대학교수의 도움으로 동물 문양이 새겨진 감자 칩을 선보일 수 있었다.

BMW는 텔레매틱스 관련 의견을 고객들에게 직접 받고, 우수 의견을 제출한 이들을 본사에 초청해 엔지니어를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 지역의 플루보그(www.fluevog.com)사도 고객들에게 직접 신발 디자인을 받는다. 스웨덴의 가구업체인 이케아도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디자인 공모전을 열어 당선작을 가구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다.


인도 뱅갈로르를 가다

Special ReportⅠ大변신! 이노베이션 허브 인도 뱅갈로르를 가다

[이코노믹리뷰 2006-12-20 23:24]


“아시아 영토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 지역에서 해마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오랜 기간 어둠과 악, 그리고 고통에 잠겨 있는 그곳의 원주민들에게 빛과 진리의 은혜를 퍼뜨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찰스 그랜트, <역사서 제국(EMPIRE)> 중에서

대영 제국의 식민지 경영 기구인 동인도 회사에서 근무하던 찰스 그랜트. 그에게 인도는 영 가망이 없어 보이는 야만의 땅에 불과했다. 만약 그가 다시 태어나, 오늘날 이 나라의 눈부신 변화를 본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는 인도 현지의 콜센터는 세계화의 상징이 되었다.

미국의 한 패스트 푸드 업체는, 드라이브인 매장의 업무를 인도 콜센터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운전자가 햄버거를 주문하면, 인도 콜센터의 직원이 이를 접수한다. 그리고 다시 미국에 주문 내역을 빛의 속도로 전송한다. 콜센터도 진화한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인도의 부상을 예리하게 보여준 바 있지만 인도는 또 다른 혁명을 준비중이다. 세계 산업지도를 뒤흔들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경합을 벌이는 격전지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 12월 3∼8일 한국IBM의 초청으로 인도의 첨단 정보통신 집적지인 뱅갈로르의 IT산업 단지를 돌아보고, 전문가들과 만나 내린 결론이다.

바티에서 셀코인디아, 피노까지
혁신적 비즈니스모델 각축장

인도 전통 복장을 한 아가씨들, 터번을 머리에 둘러쓴 각국의 기자들, 새(鳥)점을 통해 운수를 예고해주는 점술가… 행사장의 흥겨운 분위기 탓이었을까. “영국인들은 인도를 미국의 기업가들이 하듯, 편하게 바라보지는 못하는 면이 있어요. 아무래도 미국과는 상황이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지난 13일 빅블루 IBM의 초청으로 인도 뱅갈로르(Bangalore)로 몰려든 25개 나라 기자들의 환영 리셉션 행사장. IBM의 인도·중국 시장 전략 담당자인 ‘마이클 캐논-브룩스(Michael J Cannon-Brookes)’부사장은 영국 출신의 한 기자에게 비교적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애증(愛憎)의 감정이 교차한다고 할까. 인도는, 유럽인 특히 영국인들에게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아시아의 구 식민지, 하지만 지금은 중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의 떠오르는 신흥강자…. 캐논-브룩스도 영국인이다. 하지만 인도를 방문해 당혹감을 느끼는 게 어디 유럽인뿐일까.

지난 5일 오전, 뱅갈로르의 IBM글로벌 딜리버리 센터로 통하는 혼잡한 도로.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삼륜 자동차인 ‘오토리샤’가 굉음과 더불어 곡예 질주를 하는 가운데 한국 기자 세 명이 타고 있는 차량 뒤로 소 두 마리가 따라 붙는다. 인도인들은 신호를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명씩 도로를 건넌다.

앰버시 골프링크(Embassy Golf Links) 바로 옆에 위치한 IBM 글로벌 딜리버리 센터는, 잘 정돈이 돼 있었으며 웅장했다. 깔끔한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건물을 배경으로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십여 마리의 새떼는 이곳이 인도라는 점을 다시 일깨워준다.

“수네트라 바네르지(인도IBM 홍보담당자), 소 한마리만 끌어다 IBM 건물 앞에 세우면 정말 완벽한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유럽에서 온 한 컴퓨터 월간지 기자는 여러 시간대가 공존하는 인도의 본질을 꼭 집어냈다. 아마도 더 정확하게 표현한 이도 없을 듯하다.

저임 인력시장 이노베이션 허브 진화

다른 시간대가 존재하는 곳은, 비단 인도 뱅갈로르의 도로나 IBM 글로벌 딜리버리 센터만은 아니다. 기자가 묶었던 이스타(ista)호텔 옆의 신축 건물 공사현장.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인도인들은 인도 경제의 한 단면을 상징한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웃소싱을 검토하고 있는 미국의 한 패스트푸드 업체(M사)를 보자.

햄버거와 음료 등을 판매하는 이 회사는 요즘 차를 탄 고객들의 주문을 받는 ‘드라이브인(drive-in)’ 매장 직원들의 업무 일부를 인도의 ‘콜센터’에 위탁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지금까지는 매장 직원이 주문을 받고, 햄버거나 음료 등을 직접 고객에게 전달해 주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도에 있는 콜센터 직원들이 전화 주문을 받고, 이 주문 내역을 미국에 있는 매장의 단말기에 바로 띄우게 된다. 미 드라이브인 매장의 직원들은 이 정보를 확인하고 고객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업무만 담당하게 된다. 업무를 주문 수령과 배달로 나누고, 첫 번째 일을 인도에 아웃소싱한 것이다.

이 패스트푸드 업체가 누릴 장점은 명확하다. 무엇보다, 인도 현지 콜센터 직원들의 인건비가 매우 낮다. 노사분규 등에 대한 부담도 떨쳐 버릴 수 있다. 가격 경쟁력과 업무 효율성 등 양수겸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패스트푸드 업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가격 경쟁력 확보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인도 시장에 아웃소싱을 하거나, 진출하던 기존 구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인도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실험장이자, 각축장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남상긍 한국IBM 글로벌 비지니스 서비스 전략기획 팀장은 인도가 글로벌 기업의 ‘혁신 허브(innovation hub)’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업무 프로세스 변화, 그리고 신기술의 아이디어는 이들 기업의 네트워크를 통해 순식간에 전파되면서 각 부문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바티(Bharti)나 셀코인디아(Selco India), 피노(Fino), 그리고 정보통신 업체인 인포시스, 위프로 등은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선도적인 업체들이다. 낙후돼 보이는 인도 경제의 또 다른 단면이다.

통신회사 바티 “핵심역량 빼고 모두 아웃소싱”

인도의 민영 통신업체‘바티’는 마케팅과 고객관리(customer management)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외주를 주었다. 회사의 업무를 여러 부분으로 쪼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문만 남겨둔 것. 노키아, 에릭슨, IBM 등에 연구개발을 비롯한 대부분의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성적표는 어떨까? 지난해 수익은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했으며, 가입 고객도 지난 2년 동안 700만명에서 1800만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바티의 비즈니스 모델은 인도 투자를 원하는 세계 각국의 통신 회사들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바티는 무엇보다 아웃소싱의 강점을 보여준다.

뱅갈로르에 위치한 ‘셀코인디아’는 저소득층을 겨냥한 헤드램프(headlamp. 머리에 다는 램프)로 대박을 터뜨렸다. 셀코인디아와 제휴 관계에 있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이 회사의 램프를 구입한 꽃 판매업자들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자, 이 회사의 매출도 덩달아 높아진 것.

동이 트기 전 들판에 나가 꽃을 바구니에 담아 시장에 판매하던 업자들은 지금까지는 한손에 양동이를, 나머지 한손에는 랜턴을 들고 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머리에 태양열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램프를 쓰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양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돼 더 많은 꽃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

저소득층을 겨냥한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로 높은 주목을 받고 있는 회사는 비단 셀코인디아뿐만이 아니다.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와 모토롤라는 일찌감치 수만원대의 벌크형 저가 단말기를 앞세워 인도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IBM도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 중이다.

지난 6일 IBM인도 딜리버리 센터에서 기자와 만난 ‘구루두스 버너버(Guruduth Banavar)’ 인도 서비스 혁신 리서치 센터장(SIRC, Services Innovation & Research Center). 그는 인도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장 유리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경매 서비스’의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박스기사 참조)

바티도, 건강관리에서 교육, 그리고 소비부문에 이르기까지 저소득층을 겨냥한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를 비롯한 지구촌의 광범위한 저소득 계층을 타깃으로 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속속 선을 보이고 있는 것.

이밖에 정보통신 기업인 인포시스나 위프로도 부가가치가 높은 컨설팅 시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며 글로벌 강자들에게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인도 시장은 분명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세계 산업지도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이노베이션의 전진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IBM을 비롯한 글로벌 무대의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인도 투자를 늘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韓기업, 인도 시장서 통찰력 배워라

현대자동차는 인도 시장에 진출한 가장 성공적인 한국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13일 인도 뱅갈로르에서 만난 쉔커 아나스와미 (Shanker Annaswamy) IBM인도 사장도 한국 기업들은, 소형차 부문이라는 타깃 시장을 명확히 정하고, 인도에 진출한 현대차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막연한 환상을 지니고 인도 시장에 진출하는 경향이 있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처음부터 인도와 이웃나라의 소형자동차 시장을 타깃으로 정하고, 값싼 저임 노동력과 기술력을 결합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는 이 회사의 ‘맞춤 전략’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강점과 약점은 항상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지난 13일 광진구에 위치한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 JD파워의 제임스 파워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삼성과 달리,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브랜드라기보다는 한국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매우 강한 편이다”고 지적했다.

경쟁업체인 도요타와 달리, 현대차의 해외 진출은 관세·비관세 장벽 우회나, 저렴한 노동력 확보가 주종을 이뤄 왔는데, 삼성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이나 디자인 등 핵심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을 해외의 최적지에서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

인도 진출도 비슷한 사례. 저임 근로자나 수출 전진 기지 확보 차원에서 접근했지, 현지의 고급 인력들을 충분히 활용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다. 예컨대, 인도에는 자동차의 핵심 경쟁력을 좌우할 임베디드(내장)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또한 풍부하지만, 국내업체들은 아직까지 이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지 연구개발(R&D)센터가 없기 때문이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는 자동차에 설치돼 있는 내장 운용 프로그램. 운전자 졸음을 감지하거나 기후에 따라 자동으로 밝기를 조절하는 전조등, 그리고 텔레매틱스를 비롯한 지능형 시스템 등에 내장된 프로그램이 모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다.

충돌을 막아주거나, 목적지를 스스로 찾아가며, 차선이탈을 경고하는 똑똑한 미래형 E카(E-Car)의 주춧돌이다. 인도 엔지니어들은 프로그램 알고리즘을 짜는 데 탁월한 역량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인도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캐논-브룩스 부사장은 “한국 기업들은 R&D 활동을 한국에 묶어 두려는 경향이 있다”며“연구개발 센터를 해외에 세우고, 현지 인력이나 업체의 경험, 통찰력(insight)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NTERVIEW버너버 IBM 서비스 혁신 연구센터 소장

“하루 1000원 버는 어부 주머니 노린다”

소득수준이 낮은 인도의 어부들을 겨냥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부들을 비롯해 불과 1∼2달러를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지니스 모델을 디자인하려 하고 있다. 관련 프로젝트를 연구개발센터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서버 컴퓨터를 이용한 경매 시스템을 통해 어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가 과연 어부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지 궁금하다.
우선 어부들은 자신이 잡은 어종과 수량, 그리고 희망 가격 등을 문자 메시지로 보낸다. 서비스 사업자가 어부들이 보낸 정보를 수집해 유통 업자들에게 넘겨준다. 유통업자와 어부들이 서로 거래할 수 있는 가상의 경매시장을 통해 최적의 조건으로 판매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부들은 지금까지는 대개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자신에게 익숙한 시장에서만 거래했다. 더 높은 호가를 부를 수 있는 원거리의 유통업자들을 파악할 수 없어 손해를 봐야 했다. 하지만 이제 기술의 힘을 빌려 여러 시장에다 내다 팔 수 있는 것이다. 훨씬 큰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익성이 있겠는가. 이들이 불과 하루 1∼2달러 소득으로 생활한다는 점을 잊은 것은 아닌가.
저 소득층을 겨냥한 서비스의 수익성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를 보라. 유세프 교수는 이러한 모델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이미 보여 주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먹혀들 수 있는 이유는 물론 엄청난 규모의 저소득층 인구 덕분이다.

유통 업자와 어부들을 연결하는 경매 서비스 요금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가. 하루에 1달러 버는 이들한테 50센트를 요구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이 가입할 수 있는 요금 체계를 고려하고 있다. 개개인을 고객으로 보면 작은 수익이지만, 저소득층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충분히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

인도 현지 기업 가운데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앞세워 성공한 사례가 있는가.
인도의 은행인 피노(Fino)가 IBM과 함께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인도의 시골 지역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소액 예금을 받고, 또 소액의 돈을 빌려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IBM과 더불어 개발하고 있다. (아직 이 업체의 성공여부를 단정할 수 없지만 )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점은 이미 방글라데시에서 입증이 됐다.
하지만 뛰어난 비즈니스 모델도 기술적인 뒷받침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막대한 양의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대용량의 서버, 관리자, 정교한 애플리케이션 등이 필요하다. 현재 그 서버, 서버 호스팅, 애플리케이션 디자인 개발, 데이터 센터 운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모토롤라나 노키아가 이미 저가 휴대폰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어떤 점이 다른가.
(내 입장에서는) 모토롤라나 노키아의 성공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저소득층을 겨냥한 비즈니스 모델은 인도에서만 먹힐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인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저소득층이 20억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 대단히 독특한 발상이다. 당신은 어디에서 이러한 영감을 얻는가.
인도 출신의 경영학자 프라할라다가 통찰력을 던져주었다. 피노(Fino), 어부들의 사례는 모두 프라할라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물론 비즈니스 모델로 구체화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연구소에서 개발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기술을 한두 가지 더 소개해 달라.
UIMA의 사례를 제시하고 싶다. (텍스트 사이의 관련성을 찾아내는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이다. 지난 2003년 발표한 이 기술을 응용하면, 운전하는 차나, 앞을 달리는 차의 속도, 교통정체 패턴 등 실시간 데이터를 호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지능형 시스템 구축에 활용할 수 있다.)

끝으로 한국 업체들은 인도의 고급 두뇌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당신은 지식경영을 위한 툴을 설계할 수 있는가.
사실, 지식경영이라는 용어는 무척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지식경영 툴의 용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도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더라도 회사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지식경영 툴이 필요하다면 이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전략가들이 한국기업에 던지는 조언
“인도서 이노베이션 역량 키워라”

마이클 캐논-브룩스와 쉔커 아나스와미. 중국과 더불어 IBM의 양대 성장 엔진인 인도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전략가들이다. 지난 5∼6일 두 사람을 뱅갈로르에서 각각 만나 인도시장 현황, 한국 기업들을 위한 조언 등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두 사람은 각각 IBM 부사장과 IBM인도 사장직을 맡고 있다.(편집자 주)

인도 시장에서 IBM의 성장속도가 무척 빠르다. 샘 팰미사노(Sam Palmisano) 회장이 요즘 당신에게 가장 강조하는 사안은 무엇인가.

아나스와미 모든 부문에서 2등과의 격차를 확실히 벌릴 것을 요구한다. (IBM은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50% 이상 성장했다. )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시장, 어느 쪽이 더 유망하다고 보는가.

아나스와미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다. 두 시장은 매우 다르다(They are very different mareket). 다만 인도는 값싼 노동력을 보고 많이 오는데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Many companies come to realize there is much more in India). 인도인들은 사업가적 기질이 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품질이 뒷받침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인도는 혁신의 전진기지이다(We can become global delivery of innovation).

캐논-브룩스 인도 시장은 서비스, 소프트웨어 개발, 금융, 소매(retail) 부문이 강하다. 반면 중국은 생산, 물류, 자재, 구매를 비롯한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에 경험이 풍부하고, 이 부문에서 기술력을 갖춘 인력들이 많다. (남상긍 팀장은 중국은 땅이 워낙 넓어 항공, 선박, 트럭 등을 결합시켜 물품이나 서비스를 유통시키는 노하우가 발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

베트남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IBM의 세 번째 성장 엔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캐논-브룩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We are certainly optimistic). (하지만) 고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양질의 인력이 필요한데, 베트남은 아직 이러한 인적 자원을 길러내기 위한 초기단계에 있다. 잠재력만큼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베트남은 물론 폴란드, 남미 여러 나라가 잠재력이 있다.

아시아의 부상은 한국 기업의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기업들의 전략에 아쉬운 점은 없는가

캐논-브룩스 한국 대기업들은 (무엇보다 ) 인도나 중국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아직도 값싼 인력을 공급하는 나라 정도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제조업 부문에서는 숙련된 기술을 지닌 고급 인력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다.

한국 기업들은 연구개발(R&D) 부문을 한국에 묶어 두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연구개발센터를 세우고, 현지 인력의 경험과 통찰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Korea is specific. They need to start looking India as a pools of high value of skill).

우리는 정보의 시대에서 인재 시대로의 이행을 목도하고 있다(We are moving from information age to talent age). IBM이 인도를 혁신 허브(innovation hub)로 여기는 배경을 잘 생각해야 한다.

아나스와미 한국 기업들은 스스로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또 인도에서 어떤 부문을 레버리지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인도에서 소형차들을 생산해서 다른 지역에 수출을 한다. 소형차 세그먼트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고, 인도 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금융을 비롯한 일부 영역은 아직도 지분 제한 등 여러 규제가 있지 않은가.

아나스와미 20년전 전이라면 허가를 받아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현 총리가 재무장관으로 있을 때 규제를 대거 폐지했다. 규제를 없애고 투자 유치를 활발히 해서 외국기업들이 일할 수 있는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물론 아직까지 소매(retail)이나 텔레콤 사업 등에는 정부규제가 남아 있다.

바티같은 통신 회사도 지금 주식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월마트가 마이너리티 주주로서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세는 개방이다. 인도는 글로벌 경제로 빠른 속도로 통합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도 아직도 매우 열약하다는 평가다.

아나스와미 바꾸어 생각하면, 한국 기업들이 두드려볼 수 있는 영역이 많다는 얘기도 되지 않겠는가. 최근에 인도 정부는 공항이라든지, 항만 공사 등에 관심이 많다. 해외 업체들이 많은 인도 기업과 조인트 벤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 부문 말고도 같이 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을 것 같다.

인도 시장 진출을 고려중인 한국 기업들이 IBM이 오랜 세월 이 나라에서 형성한 경험이나, 통찰력을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캐논-브룩스 IBM 부사장은 인터뷰에서 혁신(innovation)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시티은행 출신으로 IBM의 양대 성장 엔진인 인도와 중국시장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전략가인 그가 이해하는 ‘혁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브룩스 부사장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요즘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단어는 무엇인가. 모토롤라의 에드 전더 CEO는 부임 후 혁신이라는 한 단어에 집착했다고 말한 바 있다.

캐논-브룩스 이노베이션이다. 하지만 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는 쓰는 사람마다 정의가 각각 다르다. 대부분 인벤션(invention)을 이노베이션과 혼용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노베이션은 인벤션과 다르다.

인벤션에 통찰력(insight)이 결합된 것이다. 에드전더가 말하는 이노베이션은 인벤션에 가깝다고 본다. 혁신은 중요하다.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말했듯이, 혁신하지 않으면 상품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인도 시장에서 IBM만 혁신의 주체는 아니다. 인포시스나 위프로가 장래에 IBM의 입지를 뒤흔들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가.

캐논-브룩스 이들은 분명 강력한 경쟁자들이다(We certainly have strong competitor). 하지만 우리는 (인프로나 인포시스에 없는) 핵심 역량을 갖추고 있다(We can differentiate ourselves).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디자인이나, 설계는 우리만이 할 수 있다. 고객에게 경쟁력 있는 솔루션을 제공해줄 수 있다.

위프로나 인포시스가 특정 부문에서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시장 리서치, 컨설팅 전 부문에 걸쳐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파트너를 기업들이 찾는 추세인 점도 우리에게 유리하다.

중국과 인도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 혹시 당신의 은퇴에 대비해 IBM이 어떤 대책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다.

캐논-브룩스 승계플랜에 대해 묻는 것이라면 답변하기 어렵다. IBM에는 인재가 넘친다.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를 넘고, 특히 유럽이나 북미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높은 35%에 달할 것으로 IBM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는 분석한 바 있다. 베이비 붐 세대의 대량 은퇴를 앞두고 있는 미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한 편이다. )

“컨설팅 펌을 인수함으로써 비로소 통찰력(insight)을 얻게 됐다”고 브룩스는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IBM이 중국의 광둥은행 지분 인수에 참가한 배경은 무엇일까. 은행업 진출 가능성을 물어 보았다.

광둥은행 투자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억측이 구구하다. IBM이 은행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가.

캐논-브룩스 아니다(we are not getting into banking industy). 금융비즈니스가 중요하지만, 금융업을 직접 하려는 의사는 없다. 광둥은행이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이 은행에 투자를 하기는 했지만, 경영이나 이사진에 포진하고 있지는 않다. 중국 전체 은행사업의 혁신(innovation)을 돕기 위한 것이다.

차이나 펀드(China Fund)를 만든 배경도 궁금하다.

캐논-브룩스 차이나 펀드는 중국 정부의 요청으로 중국의 많은 기업들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혁신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사업을 시작해 일정 기간이 지난 신생 업체가 투자 대상이다. 금융 및 기술 전문적인 지식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중국기업들이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기금이다.

사실, IBM과 중국정부가 협력한 지는 꽤 됐다. 지난 1991년에 중국에 진출한 최초의 다국적 기업이었다. 중국정부는 이미 12년 전에 아이티 산업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으며, 우리는 전략을 함께 디자인했다. 최근 들어서는 해외 기업의 아웃소싱 비즈니스 유치전략을 중국정부와 함께 만들었다.

글로벌 기업 발상 전환의 현장

“빵집 주인에게도 배울 건 배워야…”

글로벌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 상품 개발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지만 과거에 비해 연구 개발의 한계 효용은 떨어지고 있다. 기업 규모가 지금보다 작고, 기업 경쟁이 덜 치열했던 지난 1950∼1980년대에는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고용하고, 관련 설비를 증설하는 것만으로도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며 이러한 공식도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다. 경쟁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상대 기업의 비교우위를 잠식해 들어간다. 산업 간 경계가 흐릿해지며 예상치 못한 기업이 강력한 적수로 등장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기업들이 직원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우선 IBM은 잼이라는 불리는 브레인스토밍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간의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나’, ‘이노베이션’등 과제가 주어지면,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 세계의 이 회사 직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게시판에 올린다. ‘텍스트 애널라이저’라는 툴을 통해 주요 키워드를 뽑아낸다.

각계의 의견을 분석하고, 직원들의 아이디어나 메시지를 명확히 해 내는 것이다. 외부에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회사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지식 네트워크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대표적 회사가, 이른바 C&D(Connect and Develop)전략으로 널리 알려진 프록터앤갬블.

‘C&D’란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 세계인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이를 통해 비교우위를 만들어 가는 연구개발 시스템. 북미시장의 히트상품인 프링글스 프린트는 C&D전략의 산물이다. 이 회사는 이탈리아 볼로냐에 위치한 한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대학교수의 도움으로 동물 문양이 새겨진 감자 칩을 선보일 수 있었다.

BMW는 텔레매틱스 관련 의견을 고객들에게 직접 받고, 우수 의견을 제출한 이들을 본사에 초청해 엔지니어를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 지역의 플루보그(www.fluevog.com)사도 고객들에게 직접 신발 디자인을 받는다. 스웨덴의 가구업체인 이케아도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디자인 공모전을 열어 당선작을 가구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다.

뱅갈로르=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