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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CEO 회고 ‘내가 본 모피아’

분류없음 | 2011.09.15 11:25 | Posted by 영환

늘 명분 앞세우는 ‘현실주의자’ 위정자 문제점도 다 알고 있어”

전직 CEO 회고 ‘내가 본 모피아’

2009년 11월 03일 09시 21분 
참여정부 때 줄곧 홀대를 받던 재무부 출신의 경제관료들이 중도·서민 행보를 내세운 CEO 대통령의 집권 2기를 맞아 한국경제호의 전면에 화려하게 부상하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비바람에 흔들리던 한국경제호의 키를 잡은 ‘모피아’의 특징을 전직 민간 CEO의 시선으로 집중점검해 보았다. <편집자 주>


아직도 매서운 겨울철 찬 기운이 행인들을 움츠러들게 하던 지난 1993년 3월4일,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호텔. 

이날 저녁 이 호텔에는 50대 초중반으로 중후한 풍채를 지닌 기업인 30여명을 태운 검은색 세단들이 미끄러지듯 모여들었다. 얼마 후 이들은 성원을 확인한 뒤 36층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바로 이 회동이 재계의 숨은 ‘실세인’ 30대 그룹 기조실장 회의의 첫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던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취임 후 제안한 기조실장 모임의 공식 출범의 장이었다. 막강한 기조실장들이 만난 이면에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5·6공으로 대변되는 군부정권 통치를 종식하고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한 문민정부는 재계의 요주의 대상이었다. 군부통치에 협조하고, 특히 대권에 도전까지 한 재계에 대한 신정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미운털이 박힌 현대그룹은 산업은행에서 설비 투자자금을 융통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주요 그룹에서 최고경영자를 지낸 김명수(가명·70) 씨는 당시 재계는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고 회고한다. 30대 기조실장 모임에 참석했던 그는 당시 재계 전반의 고민을 귀띔한다. 

정부의 소유구조 재편 시도를 막아내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집권 초반의 사정의 바람은 매섭기만 했다. 하나회로 대표되는 정치군인들을 일거에 제거하고, 고위공무원들의 재산을 공개하게 한 문민정부의 위세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김명수 씨는 비서실의 임직원들은 총수들의 불안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주무부서 장관은 총수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성의 있는 조치들을 촉구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문어발식 다각화의 폐해를 지적하며 핵심사업에서 벗어나 있는 계열사들을 정리하라는 요구였다. 

주요 그룹의 총수들은 살벌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례적인 ‘자구책’을 내놓는다. 
당시 기조 실장들의 이 회동은 롯데호텔, 혹은 신라호텔에서 번갈아가며 열렸다. 

지난 27일 기자와 만난 김명수 씨도 당시 이 회의에 참석했던 멤버들 중의 하나였다. 


강만수 대통령 경제정책 특보강만수 대통령 경제정책 특보
기조실장, 윤진식·강만수를 만나다 
“정부의 거센 요구를 받아들여 계열사들을 정리하면서도 사실상 비껴가는 방안을 결국 택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이러한 조직적인 대응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30대 그룹이 정리한 계열사는 주로 생산 활동이 거의 없는 명목상의 회사였다.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 같은 개혁조치를 뚝심 있게 추진했다. 

그러면서도 재벌 그룹의 소유구조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당시 이 회의에 참석했던 김 전CEO는 당시 기조실장들 회의에는 현 정부의 고위 관료가 된 인사들도 참석했다고 회고한다. 문민정부는 임기 내내 평지풍파가 그칠 날이 없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노동관계법 개정 등 메가톤급 이슈는 정국을 뒤흔들었다. 

30대 그룹의 기조실장들은 경제 부처의 국장급 관료들을 초청해 재계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때로는 장관들과 회동하기도 했다. 

1996년 7월23일, 롯데호텔에서 진념 당시 노동부 장관을 초빙해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고용방식이 유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진식 현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강만수 위원장도 그 시절 보았던 관료들입니다. 윤진식 정책실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성품이 유순하고, 무던한 유형의 인물이었습니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도 비슷했어요.” 그가 만난 관료들은 한결같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MB정부, MOFIA 가치에 눈떠
“정책의 득실을 정확히 따질 줄 아는 전문가 집단이었다”는 것이 그의 회상이다. 당시 만난 경제 관료들은 대체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관료들은 왜 일이 안 되는 건지 세련되게 설명하는 사람들입니다. 대체적으로 그들이 내세우는 첫 번째 논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재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경제 관료들이 내세우는 또 다른 명분은 “후대의 안녕을 위해서”이다. 결국 수용할 수 없다는 게 골자다. 이들은 대의명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편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인사청문회에서 ‘모피아’라는 표현 자체에 강력한 불쾌감을 피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경제관료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가늠할 식견 또한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인사권자의 의지를 결코 거스르지 않는 ‘대세 순응형’이기도 했다는 것이 그의 회고이다.

“고시에 패스해 고위 공무원에 오른 인물들이 인사권자가 지닌 문제를 왜 모르겠어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 삭히고 ‘예, 예’ 말하고 그냥 그렇게 가는 것이죠.” 

그는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 모피아의 대부 격인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금융위원회 정책분과에서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굉장히 스마트한 관료”였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하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집권에 성공한 국민의 정부가 외환위기 진화의 총대를 메면서 대우그룹, 현대그룹 등에 잇달아 메스를 대기 시작했고, 경영자들 상당수가 이 후폭풍에 옷을 벗고 물러나며 ‘회한’을 곱씹어야 했다.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도 재무부 과장 시절 율산 사태로 옷을 벗은 쓰라린 경험이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관계에 화려하게 복귀한 이 전 장관은 참여정부 때 다시 경제부총리로 중용되며 뒤늦은 관운을 한껏 과시한 바 있다. 

그런 그도 낭인시절 민간 경제연구소 창업을 추진하며 주변의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죠. 모피아들이 계속 득세하는 건 권력자들이 그들을 쓰기 때문입니다. 위정자들의 어젠다를 효율적으로 집행할 ‘실무능력’과 ‘세’를 보유하고 있거든요.”

김 전 CEO는 당시 30대 그룹의 기조실장 모임에서 만난 경제관료들을 이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윤진식 청와대정책실장윤진식 청와대정책실장
위기 국면에서 강력한 팀워크 발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진동수 금융위원장, 강만수 대통령 경제정책특보, 윤진식 청와대 정책 실장,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등 이른바 ‘모피아(MOFIA)’를 대표하는 관료들도 대체적으로 이러한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김 전 CEO의 진단이다.

임종룡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도 비슷하다. 1959년 전라남도 출신으로 영동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81년 행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모피아들은 빅 3 대학 출신으로 강력한 ‘세’를 이루고 있으며, 실행능력이 뛰어나다. 
경험도 풍부하다. 

이헌재 전 장관은 외환위기 진화의 소방수로 전격 투입돼 IMF조기 졸업에 혁혁한 공헌을 세운 전과가 있다.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도 청와대 비서관시절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위기의 심각성과 더불어 구제금융 신청의 필요성을 강력히 진언한 바 있다. 

일사불란한 팀워크가 강점이다. 금융위기 진화에 가장 적합한 집단이라는 평이 나오는 배경이다.

집권 초 모피아로 대변되는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들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대립각을 세우던 이명박 대통령이 올 들어 이들 경제관료들을 중용하고 있는 이면에도 이러한 현실적인 판단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정권의 부침에 구애받지 않는 이들의 화려한 관운은 늘 화제를 불러모은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진동수 금융위원장
담대한 비전 ‘결여’가 가장 큰 문제
5·6공을 비롯해 문민정부, 참여정부도 모두 집권 초기 관료사회와 대립각을 세우다가 종래에는 관료들을 중용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뛰어난 업무 처리능력을 보여주는데, 편애하지 않을 인사권자들이 어디 있겠냐는 것이 김 전CEO의 진단이다.

민간으로 치면,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던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 ‘닛산’에 전격 투입돼 회사를 구한 ‘카를로스 곤’에 비유할 수 있다. 

상명하복의 사고가 강한 CEO 출신 인사권자의 심중을 파고들 ‘실무능력’과 ‘강력한 추진력’을 두루 갖춘 것이 모피아들이다.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이 대표적 실례이다. 

중도 실용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총사령관 격인 그는 대통령의 이른바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의 기치를 가장 묵묵하고 충실히 실천할 적임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에 입성한 한 여성 보좌관이 공식적인 토론 자리에서 관료들에게 망신을 당한 뒤 민간 경제연구소의 리포트를 구독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결코 녹록지 않은 관료집단의 내공을 가늠하게 한다. 

이들 모피아 관료들의 강점은 약점이기도 하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헤아릴 경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사령탑으로 장기집권하던 ‘경제기획원’출신들에 비해 시야가 좁다는 단점을 빼놓을 수 없다. 

참여정부가 집권 초 제시한 동북아 중심 국가나, 금융허브와 같은 담대한 ‘전략’들이 현 정부 들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 전CEO는 이들이 한국경제호에 옮겨붙은 불을 끄는 데는 탁월하지만, 불타버린 터에 올릴 건물의 설계도를 그려낼 상상력은 부족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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