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Statistics Graph

 

'키신저'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8.15 닉슨-키신저, 애증의 파트너십-외서 서평
 
Book Review |애증의 파트너십, 닉슨-키신저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8-12 11:33


Nixon and Kissinger: Partners in Power
(Robert Dallek / HarperCollins / April 2007 / 757 Pages / $32.50)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의 서평입니다. 이번 주부터 국내 시장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원서를 대상으로 서평을 진행합니다. 최신 정보를 더 빠르게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


“여전히 비열하구만?” “…….”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안보보좌관이자 국무장관인 키신저에게 내뱉은 분노에 찬 독설이다. 키신저는 당황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막은 이렇다. 닉슨이 백악관 집무실을 나간 직후, 키신저가 사람들에게 닉슨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그런데 하필 이 말이 마이크로폰을 통해 닉슨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키신저에 따르면 (닉슨은) ‘흐리멍텅하고’ ‘심술궂고’‘신경질적이며’ ‘가식적인’ 인간이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인간적인 자연스러움이 부족하다는 것까지 언급됐다. 키신저는 닉슨에게 곧바로 사과했지만 그 사과로 닉슨의 분노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more..1971년 닉슨 금태환 중지선언






닉슨의 마음 속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키신저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키신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닉슨과 키신저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그들의 주요 업적이 미국 외교사의 랜드마크로 인정될 만큼 미국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외교적 업적을 남겼다. 상식적으로 위대한 업적의 이면에는 비전의 공유, 리더와 추종자, 존경과 신뢰 등의 값지고 아름다운 요소가 존재하는데, 독설과 증오가 묻어나는 이들의 대화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어떻게 상징적이고 도드라지는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기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기억과 달리 기록은 왜곡되거나 쉽게 사라지지 않기에, 그 남겨진 기록을 통해 우리는 많은 숨겨진 사실과 교훈을 얻는다.

동굴 벽에 그려진 벽화가 그러했고, 파피루스에 적힌 고대 상형 문자가 그러했다. 현대사의 수많은 의문과 비리도 기억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록에 의해 폭로되고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

역사학자 로버트 달렉의 《닉슨과 키신저: 권력의 파트너, Nixon and Kissinger: Partners in Power》는 바로 그 기록이 전하는 사실과 교훈을 다룬 책으로, 닉슨과 키신저 파트너십의 이면에 숨겨진 둘 사이의 애증의 역사, 그리고 미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닉슨과 키신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외모는 물론 성격도 지향하는 목표도 달랐다. 그렇다면 이 둘이 힘을 합칠 수 있도록 연결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수단이었다. 같은 수단으로 다른 목적을 추구했기에 증오와 불만에도 불구하고 씨줄과 날줄로서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닉슨의 목적은 재선이었다. 닉슨에게 있어 재선은 자신이 ‘위대한 대통령이었음’을 증명하는 보증수표였다.

키신저는 야망이 있는 남자였다.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가장 기록에 남는 국가안보보좌관이자 국무장관이 되고자 했다.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닉슨과 키신저는 외교 문제를 선택했다. 외교 문제가 부각되면 국내의 비판이나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키신저는 그 점에 있어 탁월한 능력으로 닉슨을 도왔다. 매일 키신저를 내치는 즐거운 공상을 할 만큼 증오하고 혐오하면서도 닉슨은 키신저에게 의탁했고,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을 멸시하는 키신저에게 닉슨은 기회를 주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닉슨 정부의 특징은 미국내 정치적 목표를 위해 국제 관계를 폭넓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즉 닉슨 정부의 역사는 국내의 비난과 위협을 외교 사안으로 물타기를 시도한 역사였다.

닉슨은 스스로를 속이고 의회, 법원, 언론, 대중도 속였다. 키신저는 대통령의 이러한 속임수 행위를 뒤에서 적극 돕거나 아니면 묵인했다. 이들의 행위는 저자의 표현대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악마와 거래를 맺는 것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였다.

윌리엄 사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이 두 남자는 확신했다. 끊임없는 거짓말이 국가를 위한 옳은 일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이들이 쌓은 업적이 단지 수단이라면 이들의 업적도 기형적인 업적이 아닐까. 실제로 저자는 의문을 던진다.

베트남 전쟁의 종식. 하지만 왜 4년 반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 전쟁은 더 빨리 끝날 수 없었던 걸까? 사이공 정부가 공산 정권으로부터 보호될 수는 없었는가? 더군다나 베트남 전쟁 종결 이후 1973년 키신저가 수상한 노벨평화상은 과연 정당한가?

닉슨과 키신저가 이룩한 가장 찬란한 업적이라는 ‘중국과의 국교수립’도 그렇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실제로 그 일을 해낸 사람은 누구였는가? 모스코바를 겨냥해 북경의 초거대 공산 정권과 균형을 이뤄낸 것이 과연 유용한 것이었는가?

소비에트 연합과의 긴장완화(데탕트)는 과연 지혜롭고 가치가 있는 것이었나? 미소전략무기제한회담(SALT)과 무역 협정이 닉슨과 키신저가 믿었던 대로 과연 국제 안정과 평화를 이룩했는가?

중동문제도 마찬가지다. 닉슨 정부가 그 문제를 너무 느리게 처리한 것은 아닌가? 제4차 중동 전쟁(Yom Kippur War)을 막을 수는 없었는가? 시나이 반도에 대한 소련의 공수부대 파견에 대응하여 미국의 방위 수준인 데프콘을 상향한 것이 문제였던 것은 아닌가?

저자는 이들이 아이러니 하다고 말한다. 비밀주의자였지만 오히려 이들이 남긴 기록은 그 어떤 대통령들보다 그들 스스로를 더 발가벗길 만큼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이들의 업적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결과적으로, 닉슨과 키신저의 파트너십이 미국 역사상 가장 주목할만한 협력 중의 하나였고 그들 상호간에 통하는 관심과 세계에 대한 지식이 몇 가지 도드라진 업적으로 나타났지만, 외교 정책에 대한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통제가 베트남, 캄보디아, 칠레, 동아시아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합쳐졌을 때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닉슨과 키신저의 파트너십을 통해 교훈을 제시한다. 능력, 지식, 경험이 반드시 외교 정책에 있어 성공적 결과를 내놓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보다는 능력을 갖춘 리더를 지니는 것이 확실히 낫다. 하지만 지혜의 독점이란 없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제퍼슨이 조언했듯, 민주주의 시스템의 본질 요소는 ‘끊임없는 경계(각성)’다. 리더의 판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좌절과 실패에 너무나 쉽게 부서진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이러한 충고와 조언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서로가 옳다고 여기고 서로가 애국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지혜의 독점이란 없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다른 목적을 위해 같은 수단을 공유하는 모습을 본다. 하지만 아니다. 기형적인 것만 양산할 뿐이기 때문이다.

닉슨과 키신저의 애증의 파트너십 속에 우리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어 착찹한 느낌이 든다.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