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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9 장미의 이름, 슬레이터, 한국 경영학
 
Interview |채서일 전 한국경영학회장(현 고려대 교수)

[이코노믹리뷰 2007-03-28 07:27](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출연했던 영화, 장미의 이름을 최근 본 적이 있습니다. 숀 코넬리와 더불어 훗날 대배우로 성장하는 앳된 모습의 슬레이터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 '카나리아를 먹은 고양이의 얼굴' 미국의 모 평론가가 슬레이터의 외모를 평가한 말인데요.

슬레이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더군요. 음흉한 듯 하면서도 왠지 천진스러워 보이는 미소는 그의 전매특허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숀 코넬리를 도와 살인사건의 배후를 파고듭니다. 살인을 저지른 중세 사원 사제의 흉악한 진면목을 백일하에 드러내게 되는데요.  저는 얼마전 한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다시 방영하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 사제를 보면서 불현듯 엉뚱한 상상을 떠올렸습니다.

21세기의  '사제'들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너무 많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굳이 정치인들을 떠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매일매일 부대끼며 생활하는 주변의 동료부터, 직장 상사, 그리고 동창들중에도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분들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만나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신문에서  국가 수반을 겨냥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묵은 찌꺼기를 여과없이 털어놓는 일부
보수 인사들,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가린 채 항상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진보진영의 운동가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저는 CNN한국방송을 하면 마치 나라가 결딴이라도 날 듯이 말하는 분들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대학에서 근무하는 일부 지식인들도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변화를 외치면서도 오히려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잇속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변화와 혁신은 남의 얘기일뿐입니다.  학문의 속성 자체가 현실 참여 지향적인 경영학에 종사하는 분들도 이런 흐름에서 비껴서 있지 않습니다.

학자들이 활발하게 현실에 참여하는 미국과 여러모로 대비됩니다. 프라할라드라는 학자는  무려 7년전 신흥시장 저소득층의 부상 가능성을 예측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시장 진출의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다른 학자들도 블로그 등을 통해 일반 대중들과도 활발하게 교감하며 한 사회의 지적 수준을 높여나가는 데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영학계는 너무 고루합니다.
마치 중세적 가치의 '보수'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배격하던 <장미의 이름>의 사제와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칠까요. 저는 한국기업의 위기는 한국경영학계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한국경영학회장을 지낸 분을 만나 이런 생각이 비단 저만의 우려는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채서일 고려대 교수의 얘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시죠.




“일류 글로벌 기업은 저만치 가는데
국내 경쟁 기업 동향은 왜 캐묻는지…”

경영학자보다는 미술이나 음악, 공학 등 다른 분야 출신들이 더 유연하고 창의적이지 않겠습니까.
학문의 새로운 돌파구도 이들이 만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왜 자꾸 다른 기업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 CEO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습니다. 대부분 경쟁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척 관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글로벌 무대에서 일류로 도약하기는 어렵습니다.”지난 20일 오후 고려대 경영대학원 6층.

채서일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경영학회장)는 시종일관 ‘직설적’이었다. 질문을 꺼내기 무섭게, 쏘는 듯한 답변으로 기자를 무안하게 만든다. 창의적 발상으로 운명을 뒤바꾼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묻자 질타와 더불어 “사고의 틀을 깨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회귀적 사고의 유효기간은 끝났다는 것 .

변화의 속도는 눈부시다. 자동차 산업을 보자. 한 기업의 성공 방정식을 다룬 경제경영서가 여전히 독자들의 발길을 끄는 와중에 그 기업이 시장 점유율이나 이윤율 하락 등 위기의 ‘징후’로 흔들린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북미와 일본 시장의 실적 악화로 부심하고 있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대표적이다.

포드자동차도 창업자 가문출신의 후계자인 윌리엄 클래이 포드 주니어의 리더십을 분석한 경제경영서들이 대형서점에 풀리던 시기에 이미 위기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채 교수가 ‘이노베이션’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기업들은 혁신을 외치지만, 게임의 법칙이 바뀐 사실은 여전히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최근 제기한 ‘한국경제 위기론’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절대 강자인 인텔이 문화 인류학자들을 과감히 영입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코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내실 있게 변화에 차근차근 대응해나가고 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독창적 사고법 덕분에 몸값이 상종가이다.

채서일 교수는 이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결코 에둘러 가는 법이 없었다. 국내 기업의 속살을 사정없이 파고 들던 비판의 칼날은 자신이 속한 교수 사회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았다. 더욱 신랄했다. 독창적 사고의 부재가, 비단 기업인들만의 고질병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날 경영학의 위기를 자주 입에 올렸다. 민간 기업에 더 이상 사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도, 혹은 신통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신녀(神女)에 비유할 수 있을까. 상상력의 부재, 민간 기업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폐쇄적인 평가 시스템은 한국 경제의 도약을 가로막는 질곡이다.

경영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 현실과의 소통이 중요한 분야다. 하지만 미국과 비교해 볼 때 국내 경영학계의 실상은 참담하다. “미국 경영자들은 경영 월간지인 하버드비즈니스리뷰나 슬로언매니지먼트를 많이 읽는 편입니다.경영 전략은 물론 사례 분석을 비롯해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경우 중간관리자들을 위한 글도 눈에 띈다. 상사와 잘 지내려면 어떤 점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스타 사원을 관리하려면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다룬 글이 대표적이다. 필진도 화려하다. 다이아몬드 이론의 마이클 포터, 신흥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자랑하는 미시간 경영대학원의 프라할라드교수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이 잡지에 글을 싣는다.

이들의 통찰력은 평소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기 쉬운 기업인들의 ‘자양강장제’이다. 경영학계의 경쟁력은 고스란히 민간 기업의 강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 기업인들은 우리나라 경영학자들의 글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

학자들이 대부분 딱딱한 논문을 주로 발표하다 보니, 바쁜 시간을 쪼개 이를 펼쳐 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 채 교수의 설명이다. 실질적인 도움을 거의 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상아탑의 울타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특출한 성과가 보도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프라할라드 미시간 경영대학원 교수는 일찌감치 저소득층 시장의 잠재력을 파악, 다국적 기업 진출의 주춧돌을 놓았으나 국내에는 아직 이러한 성공사례가 거의 보고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들이 팝스타라면 국내 경영학자들은 마치 중세 성당의 고루한 사제를 방불케 한다.

한국적 토양에서 프라할라드 교수처럼 미래 예측 능력이 돋보이는 학자들의 등장은 요원하다. 돌파구는 없을까. 채 교수는 교수 평가 시스템의 보강을 강조한다.

“평가 기준을 더 다양하고 탄력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주로 교수들의 논문만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경영학이 실수요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

뛰어난 강의 능력도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또 신문이나 잡지 등에 대중적이면서도 뛰어난 글을 기고하는 교수들도 동등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채 교수는 지적했다. 현장과의 교류를 강화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해결 방안으로 ‘이종 교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학문적 배경이 다른 인재들의 꾸준한 영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라는 것. 이노베이션은 익숙함과의 결별이다. 같은 학문을 전공한 학자들은 사물이나 현상을 역시 유사한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경영학자보다는 미술이나 음악, 공학 등 다른 분야 출신들이 더 유연하고 창의적이지 않겠습니까.

학문의 새로운 돌파구도 이들이 만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경영학자들 중에는 공학도가 적지 않다. 명성이 자자한 디자인 기관인 아이디오(IDEO)의 CEO인 톰 캘리, 일본의 세계적 경영학자 오마에 겐이치도 모두 공대 출신이다. 인문학이 새로운 조명을 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상을 낯설게도, 낯선 것을 익숙하게도 만드는 ‘마술은 이 학문의 새로운 매력이기도 하다. 교수 평가시스템의 변화, 그리고 다른 분야 전공자들의 수혈. 그가 바라보는 문제 해결의 키워드이다. 하지만 그는 정작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고백했다. 10년 전부터 경영학과 입학생 자격 요건을 문과로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의를 해왔지만, 아직도 변화는 요원하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삼성그룹이 헤드쿼터를 왜 뉴욕으로 옮기지 않는지 아직도 수수께끼입니다.” 채 교수가 이날 인터뷰 말미에 툭 털어놓은 말이다. 변화와 개혁을 단행하지 못하는 주체들에 대한 아쉬움으로도 읽혔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같은 노(老)교수의 역할을 강조했다.

“젊은 교수들은 미국에서 배운 최신 이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나이 든 교수는 이런 (통찰력 있는) 얘기를 좀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를 )너무 시니컬한 인물로 그리지는 마세요.” 마지막으로 경영서를 한권 추천해 달라고 하자, 웃음을 띤 채 “뭘 들었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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