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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조선 시대 블로거를 만나다

[이코노믹리뷰 2006-08-14 08:06]19세기 전반에 활동한 문인, 홍길주가 남긴 저작을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번역한 고전입니다.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이 이코노믹리뷰에 기고한 글입니다.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 창고》


몇 년 전에 총리 인준을 두고 인사청문회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 중 - 당사자가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 나온 실언이겠지만 - 참 어이없는 말 하나가 튀어 나왔다.

“총리가 될 줄 알았으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인데….”

비웃고 싶은가. 비웃기에는 위 문장에서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면 누구도 이 문구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아는가.

우리는 나중에 해가 될 씨앗을 뿌릴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과 함께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인생 뭐 있어”라고 단정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다.

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배웠다. 어디서? 도덕 교과서에서!

바로 신독(愼獨 -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고 경계한다)이다. 보는 사람이 없다고, 알 사람이 없다고 하여 막 살아서는 안 된다고 우리 선조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특히, 신독은 선비에게는 규범 그 자체였다. 선비들이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삶의 기준’ 혹은 ‘모범’을 보여야 했던 존재였다면, 오늘날 신독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일지는 자명해진다.

복잡하고 쪼잔하기까지 한 오늘날 세상에서 옛 선비들이 신독을 지키고, 스스로를 수양한 결과물을 우리는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읽고 있다.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경계하는 내용이 담긴 고전을 읽으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19세기 조선 지식인의 생각 창고》(돌베개)는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문인이었던 항해 홍길주가 남긴 저작을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의 저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3년에 걸쳐 번역한 고전이다.

이 책에는 홍길주가 살았던 당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들, 당대 학계와 문단의 흐름, 문학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 사소한 일상사에서 문장과 학술에 이르기까지 총 441가지의 글이 들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19세기 지식인의 관심사와 통찰력, 사유의 너비 등을 상세하게 살펴보고, 일상사에 대한 관심, 생활문화 소비문화와 관련된 보고, 여가 활동의 구체적 표방과 실천, 지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 등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다양한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다.

고전이라 하면 보통 딱딱한 내용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딱딱하지 않다. ‘상상 창고’라는 제목에서 보듯 홍길주의 글쓰기 방식이 매우 현대적이고 다방면을 글쓰기의 주제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역자 정민에 따르면 홍길주의 글에는 ‘홍길주의 머릿속을 휘돌아 나간 온갖 생각들과 기억들이 자유로운 형식 속에 경쾌하게 펼쳐져 있다.’ 즉 오늘말로 표현하자면, 인터넷 블로그(blog)에 쓰인 글처럼 단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유롭게 기술되어 자신의 생각이 자유롭게 표현되어진 것이다. 한 사례로 ‘때에 맞는 문장’편을 보자.

“추위를 막는 옷으로는 면포만한 것이 없다. 값비싼 비단은 보기에만 아름다울 뿐이다. 쓰기에 편리한 그릇으로는 금석과 대나무만한 것이 없다. 주옥이나 서패(犀貝)는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창달한 문사는 때에 맞아야 한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화려한 문체는 실용에는 합당함이 없다. 재주와 덕은 풍족하여 정치에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넓은 학문과 유창한 말도 세상일에는 보탬이 없다. 천하에서 기이한 보배라고 일컫는 사람이라 해서 진실로 모두 일을 맡길 만한 그릇은 아니다.” - ‘때에 맞는 문장’ 중에서

면포에서 금석·대나무로, 그리고 재주와 덕으로 생각이 자유롭게 옮겨가고 있다. 홍길주는 이러한 글쓰기 속에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정수들도 함께 넣어놓고 있다. 예를 들어, 리더가 취해야 할 것에 대해 홍경주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에게는 좋은 것을 가려서 굳게 지키고, 남에게서는 장점을 취해 아울러 받아들이니, 이를 일러 군자라 한다. … 종종 친하게 알고 지내는 여러 사람의 인품의 높고 낮음을 논하는 자는, 반드시 그 자신이 여러 사람의 가장 아래에 해당한다.”

아마도 요즘 관리자나 팀장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에 대해 나 또한 칭찬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이다. 알아줌을 만나 감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진 사람이나 똑같이 지닌 바다. … 일을 느슨하게 결단하면 문제가 더욱 커진다. 차라리 과감하게 하다가 잘못되는 것이 낫다. … 간악함을 막음이 너무 지나치면 속임수가 더욱 심해진다. 차라리 알면서 관대하게 하는 것이 낫다.”

홍길주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홍길주는 배움에 있어서도 여느 선비들과 다른 접근 태도를 보였다.

그는 스스로가 배움이 넓지 못한 데다 나이 들어 점점 게을러져 책과 멀리 지냈음을 고백하면서,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지 않다. 산과 시내, 구름과 새나 짐승, 풀과 나무 등의 볼거리 및 손님과 하인들이 주고받는 자질구레한 말들,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 속에 독서가 있다’고 스스로의 배움 방식을 말한다. 현대 사회에 필수요소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19세기 판 시도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홍길주는 낡은 지식, 관념화된 의미를 대물림하는 타성화된 독서를 거부했다. 연암 박지원식으로 표현하면 ‘마른 먹과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 눈을 부비며 좀 오줌 쥐 똥을 엮어 토론하는, 취해 죽겠다면서 술지게미와 묽은 술만 배 터지게 먹는’ 독서에 대해 거부하고, 일상의 삶과 유리될 수 없고, 유리되어서도 안 되는 평범한 것 속에서 삶에 유용한 의미를 찾는 것을 독서로 보았던 것이다.

열린 눈으로 바라볼 때 모든 것은 문자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홍길주가 남긴 고전은 그래서 그가 쓴 글 자체가 주는 재미와 값진 배움뿐만 아니라, 문자로 된 책에서 벗어나 유리되어서는 안 되는 우리 일상적 삶을 접목하여 성찰하는 계기 또한 함께 남겨주고 있다.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www.summ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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