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Statistics Graph

 

'임종'에 해당되는 글 1

  1. 2007.03.07 '시한부환자, 병원, 그리고 모멸'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시한부 환자는 당장 퇴원하라”

[이코노믹리뷰 2005-12-09 09:39]('시한부 환자가 있다면 당장 병원에서 퇴원시켜라' 저자인 야마자키 후미오 박사의 주장입니다. 시한부 환자는 의사나 간호사들에게 사실상 잊혀진 존재이며 인간다운 대우를 받기도 어렵다는  내용입니다. 병원이란 재활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시한부 환자가 병원에서 맞는 임종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그들이 얼마나 비참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지, 의사들을 지배하는 연명지상주의는 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오넷 코리아 권춘오 편집장이 이코노믹리뷰에 기고한 서평입니다.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야마자키 후미오 지음/김대환 옮김/상상미디어/1만1000원

오 늘 이 시간에도 치유 가망성 제로에 가까운 수많은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 치료 과정은 고통스럽다. 완치될 가망성이 없는 그 환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은 어떤 의미일까. 하루, 아니 1분, 1초라도 더 이 세상에 남아 있기를 진정 원하는 걸까. 정말 실낱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1분, 1초의 생명 연장일까.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상상미디어)은 이러한 의문을 현직의사가 정면으로 제기한 책이다. 이 책은 실제 병원의 현실을 목도한 저자의 경험을 통해 병원에서 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입장이 어떠한지를 깊이 성찰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동안 나는 1만명이 넘는 환자를 진찰했다. 그들 대부분이 건강을 되찾아 퇴원했다. 그러나 300명에 가까운 환자들의 죽음도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지금과 같은 병원이라면 ‘인간이 죽음을 맞이할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불치의 병에 걸려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면, 결코 내 마지막 생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말이다. 시한부 환자들이 병원에서 어떤 과정을 겪기에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치료의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는 의료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방치되기 십상이다. 근본적으로 병원은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 병든 환자를 치료해 사회에 복귀시키기 위한 곳이고, 항상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원에 방치된 환자는 죽는 순간까지 의사나 간호사, 심지어 가족들로부터도 소외된 채 고독한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 의사나 간호사의 관심은 치료 가능한 병에만 있지 정작 죽어 가는 환자에게는 있지 않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위한 의료 시스템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인간다운 죽음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례로 저자가 밝힌 ‘한 남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자.

“입원 2주 후부터 그는 절망의 늪에 빠졌다. 회진하는 의사와 가래를 빼주러 오는 간호사들을 그저 매섭게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손발을 버둥거리며 항의할 만한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입원 5주째, 그는 혼자 일어설 힘조차 잃고 말았다. … 가래를 빼낼 때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기관 속으로 튜브를 들이밀었기 때문에 그의 고통은 배가 되었다. … 그 무렵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금도 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요도에 카테테르가 삽입되었고, 엉덩이에는 하루 종일 종이 기저귀가 채워지게 되었다. … 그로부터 1주일 후 그는 눈을 뜨지 못하고 말도 할 수 없게 된 채, 정말이지 인간으로서 그 어떤 뜻도 나타낼 수 없는 상태에서 숨을 거두었다. 솔직히 말해 의사와 간호사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의료 행위는 피곤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 어쨌든 모든 것이 끝났다. 의사들이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그의 부인에게 ‘남편의 시체를 해부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저자는 위 사례처럼 비참하기 그지없는 죽음이 병원에서는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오늘날 병원이란 말기 환자에게 일분일초라도 생명만 연장시키면 된다는 ‘연명지상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의학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공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는 “죽어 가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경외도 애도의 마음도 없다. 단지 연명지상주의의 현대 의학교육을 받은 의사의 의무감만 남아 있다”고 신랄하게 현대 병원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소중한 이별의 시간을 나누는 대신 목숨을 다소 연장시키려고 의료기기에 둘러싸여 고통에 가득 찬 시간만 보내고, 인공호흡기 등 각종 의료기기에 둘러싸여 중환자실에서 초췌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죽어가야 한다면, 병원은 죽음을 앞둔 인간에게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옥과도 같은 장소이지 않을까.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우리에게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2005년 8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매년 사망인구의 절반 가량인 11만 5000여 명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고 한다. 이들 중 태반은 저자의 말대로 발달된 의료 기술과 장비 덕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답게 죽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것은 일분일초의 생명 연장보다는 후회 없이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 것, 즉 인간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권리에 대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를 위해 기계음이 들리는 칙칙한 중환자실이 아닌 음악이 있고, 쾌적하고 밝고, 가족들과 소중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그 움직임의 하나일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든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큰 논란거리가 될 소지를 갖고 있다. ‘희망을 갖고 치료를 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와 ‘치유 가능성이 제로이다’라는 의학적 논란뿐만 아니라, ‘사람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깊은 철학적 성찰과 사회적 합의, 가치관의 충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보다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 가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죽음이 선택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는 논란이 있을지언정, 인간은 누구나 죽고, 그 죽음은 존엄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 책은 그 존엄한 죽음의 권리와 그에 반하는 사회적 통념의 중간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고 현재 무엇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존엄한 죽음의 권리냐, 생명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냐. 참 어려운 문제다.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