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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동남아 전략적요충지 '미얀마' 깜짝 방문
기사등록 일시 [2012-05-14 16:00:59]
아웅산 수치 여사와도 회동할 예정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 회담, 3국 공동선언문 채택을 끝으로 한·일·중 정상회담 일정을 모두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우리나라 정상으로는 29년 만에 미얀마를 깜짝 방문했다.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국가인 미얀마는 중국·인도 등 아시아 열강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시전략을 공표한 미국의 세력 다툼이 치열한 동남아의 '전략적 요충지'여서, 이 대통령의 방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미얀마 대통령궁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관계의 발전 방안 등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양국 관계가 발전의 계기를 맞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경제통상 분야 협력 확대, 에너지 자원 분야 협력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또 양국 간 개발경험 공유, 문화·인적 교류 증진을 비롯해 실질적인 협력 증대 방안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이 대통령은 이어 미얀마에 진출한 국내 기업인들, 동포 대표 등과 오찬 간담회도 열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중국과 인도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미얀마는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다투는 중국, 인도 양국의 세력 다툼이 치열한 동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버마라는 국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태평양사회의 일원임을 천명한 미국도 중국 봉쇄전략의 일환으로 베트남은 물론, 미얀마에도 높은 관심을 표시하는 등 열강들 사이에서 지정학적 가치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라는 공통분모를 매개로 전통우방인 북한과의 군사협력이 활발한 편인 점도 눈길을 끈다.

이에따라 이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 문제와 관련, 미얀마측과 어떤 수위의 발표를 합의할 지 여부도 주요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한 것은, 1983년 북한공작원들의 폭탄 테러로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등 고위급 관료들이 무더기로 목숨을 잃은 ‘아웅산 테러 사태’가 발발한 이후 무려 29년만이다.

이 대통령의 방문은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으로부터 미얀바 방문 제안을 요청받은데 따른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번 방문길에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회담을 추진하고 있어 성사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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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수치 여사 "민주화·경제성장 함께 가야"
기사등록 일시 [2012-05-15 17:26:20]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미얀마를 국빈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오후 양곤시내 한 호텔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와 단독 면담을 열고 민주화와 산업화, 교육과 인권 문제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아웅산 수치 여사가 미얀마 국민들을 위해, 민주화와 인권신장 등 여러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일관되게 지켜왔다”며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기수인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존경심을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동시에 그보다 더 중요한 민주화를 함께 이룬 나라”라며 “우리 국민들은 그 점을 높이 평가하고 긍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얀마에서도 경제 성장이라는 중요 과제도 있지만, 민주화가 함께 이뤄지는, 그런 변화를 맞을 수 있도록 한국 국민들도 관심을 갖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역설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민주주의가 희생되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했고 경제를 살리는 만큼 민주주의가 함께 중요한 과정이라고 얘기했다”며 “수치 여사도 전적으로 공감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치 여사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미얀마의 실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수치 여사가 꿈꾸는 그러한 버마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이에 대해 “한국과 버마는 서로 유사한 공통점이 많다”며 “그 중 하나가 정의와 자유, 번영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고, 아울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수치 여사는 “정의와 자유, 그리고 번영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고 둘이 같이 가야 한다”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와 번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존엄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참 민주주의는 국민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며 “참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해 이뤄지는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는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데, 세계가 도와주고 있다”며 “세계의 도움이 특정 그룹, 특정 개인, 특정 정부에게 이용되는 게 아니고 국민들에게 이런 도움이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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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Maker |고전 전문가가 본 이명박 리더십

이코노믹리뷰|기사입력 2008-01-01 20:57


◇“말(馬) 위에서 천하 얻었으면 말에서 내려와 천하 다스려야”◇

●국민 마음 움직인 건 이념 아닌 먹고사는 문제

●得國 성과에 도취 治國에서 칼 휘두르면 안 돼

●실용정부 최대 과제는 탈이념·탈구태·탈불신

                                                                  
CEO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민식(民食)의 중요성을 꿰 뚫었기 때문이다. 이는 공자가 역설한 선부후교(先富後敎)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그의 ‘불도저 리더십’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는 국민들도 많은데….

정 계 입문 이전에 이미 샐러리맨 신화를 쓴 바 있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둠으로써 사상 초유의 ‘CEO 출신 대통령’이라는 신화마저 만들어냈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CEO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의 당선은 기본적으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짙다. 이는 그간 참여정부가 보여준 경제실패의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참여정부는 시종 소모적인 이념대립을 조장해 국론분열을 극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규모와 국가부채를 눈덩이처럼 키워 재정 위기를 초래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 결과는 바로 투자환경의 악화로 인한 경제지표의 동시 하락과 ‘부익부빈익빈’으로 상징되는 민생의 파탄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그의 당선은 기본적으로 《맹자(孟子)》에서 승전(勝戰)의 3대 요소로 거론된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 중 천시에 기인하는 바 크다. 그러나 그의 승리에는 천시뿐만 아니라 지리와 인화도 크게 작용했다. 텃밭인 영남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등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압도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은 것은 물론 대선 전에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각계 인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낸 것이 그 증거이다.

국민 이념성향 운운하는 건 난센스

일 각에서는 그의 승인(勝因)을 놓고 국민들의 이념적 성향이 진보에서 보수로 이동한 데 따른 결과로 보고 있으나 이는 요설(饒舌)에 불과하다. 서민들은 애초부터 자신들의 이념적 성향에는 관심도 없었다. 오직 먹고사는 소위 민식(民食) 문제 해결 여부에 따라 정권에 대한 지지와 철회의사를 드러낸 것일 뿐이다. 굳이 이념적 관점에서 분석할지라도 이번 대선은 오히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선택했던 중도성향의 40∼50대 유권자들이 이 당선자가 내세운‘경제대통령’에 크게 공명한 데 따른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통치에서 ‘민식’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민식’의 실패가 예외 없이 민란(民亂)으로 표출돼 끝내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진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동양에서 이를 가장 먼저 통찰한 인물이 바로 관중(管仲)이었다.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춘추시대 전기에 첫 패업(覇業)을 이룬 그는 《관자(管子)》에서 이같이 역설한 바 있다.

“창름(창고)이 가득 차야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알게 되고, 의식(衣食)이 족해야 영욕(榮辱 : 영광과 치욕)을 알게 된다.”

관 중의 이런 입장은 소위 ‘선부후교(先富後敎)’를 역설한 공자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부민(富民)’을 전제로 한 ‘교민(敎民)’을 역설한 바 있다.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부민’이 전제되지 않는 한 예의염치를 가르치는 ‘교민’ 또한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게 그의 확고한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당선자가 외교국방과 교육문제 등 당면 현안을 모두 ‘민식’ 문제의 해결에서 풀겠다고 공약한 것은 현안의 정곡을 뚫은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그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경제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그는 선거기간 중 이같이 역설한 바 있다.

민식(民食) 공약은 정곡을 뚫은 것

“대한민국이 어렵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리더십 부재 때문이다. 말만 잘하고 능력과 경험, 책임감이 없는 3무(無)세력 대신 일 잘하는 실용주의 세력을 선택해 달라.”

그는 ‘실용주의’에서 그 요체를 찾은 셈이다. 사실 이는 초고속성장을 이끌고 있는 중국 지도자들의 기본 노선이기도 하다. 최근 후진타오는 새로 선출된 당 중앙위원들에게 이같이 주문한 바 있다.

“우리는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입각해 미래를 향한 확고한 믿음과 도전정신을 가져야만 한다.”

원 래 미국에서 꽃을 피운‘실용주의’는 동양이 수천 년 전부터 추구해 온 ‘실사구시’ 정신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에서 유래한 이 말은 청대에 공리공담(空理空談)을 일삼는 성리학자들을 성토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경세치용(經世致用)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는 국리민복(國利民福)과 무관한 일체의 논의를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현대에 들어와 ‘실사구시’로 치국에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덩샤오핑(鄧小平)을 들 수 있다. 소위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기치로 내건 그는 그 어떤 이념도 국리민복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고 역설하며 개혁개방을 실천에 옮겼다. 현대 중국의 초고속성장은 바로 ‘흑묘백묘론’의 개가(凱歌)가 아닐 수 없다.

BBK사건과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 숱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 당선자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결코 도덕성에 둔감한 것도 아니었다. BBK사건과 관련한 검찰발표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절반에 가까운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의 압승은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그를 통해 경제회생을 이루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그만큼 크다는 증좌이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자칫 샌드위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그의 압승은 바로 국민들의 이런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용주의에 기초한 ‘경제대통령’ 구호가 서민들의 여망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역대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와 균형발전 등 시종 정략적 행보를 일삼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민식’ 문제를 소홀히 해 결국 실패한 정권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는 기본적으로 득국(得國)과 치국(治國)의 방략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야전(野戰)으로 치러지는 득국과정은 묘당(廟堂)에서 이뤄지는 치국과정과 판이하게 다르다. 전한(前漢) 제국 초기에 가의(賈誼)는 《신서(新書)》에서 그 차이를 이같이 갈파한 바 있다.

“마상(馬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할 수는 있으나 치천하(治天下)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역대정부는 득국의 성과에 도취한 나머지 치국에서마저 ‘개혁’을 구실로 시종 말 위에서 칼을 휘두르는 득국의 행보로 일관한 게 사실이다. 이들이 하나같이 국민들의 커다란 기대 속에 힘찬 출범(出帆)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에 이르러 난파 직전의 초라한 모습으로 귀범(歸帆)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상(馬上)에선 치천하(治天下)할 수 없어

‘샌 드위치론’이 비등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춘추시대 당시 진(晉)·초(楚) 강대국 사이에 낀 정(鄭)나라와 사뭇 닮아 있다. 당시 정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민식’ 문제 해결을 통한 부국강병밖에 없었다. 당초 춘추시대 최고의 현상(賢相)으로 일컬어지는 정나라 재상 자산(子産)은 부국강병을 위한 강력한 법치로 적잖은 원성을 산 바 있다. 그러나 3년 뒤에 ‘민식’문제가 해결되자 백성들은 이구동성으로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이는 ‘민식’에 따라 백성들의 태도가 돌변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당선자 역시 향후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치 못할 경우 그에 따른 절망과 분노는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민식’ 해결에 성공키 위해서는 먼저 뛰어난 인재를 곁에 포진시키는 작업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초야의 인재를 두루 발탁하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까지 과감히 포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제 환공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관중을 재상으로 삼고, 당태종(唐太宗)이 적 편에 서 있었던 위징(魏徵)을 발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치국요람(治國要覽)인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태종이 늘 숙연한 태도로 위징에게 경의를 표하며 정치상의 득실에 관한 자문을 구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 모두 치국의 요체가 바로 조야(朝野)와 우적(友敵)을 막론하고 당대의 인재를 과감히 발탁하는 용인(用人)에 있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던 셈이다.

일찍이 관중은 용인의 요체로 사람을 쓸 때 믿지 못할 자는 아예 뽑지 않고, 일단 뽑은 후에는 전적으로 일을 맡기면서 신뢰하는 ‘지(知)·용(用)·임(任)·신(信)’을 든 바 있다. 치국의 성패는 바로 인재를 알아보고 탁용(擢用)하는 지현(知賢)에 달려 있다고 갈파한 것이다. 《열자(列子)》는 ‘지현’의 의미를 이같이 풀이해 놓았다.

“치국의 성패는 지현(知賢)에 있지, 자현(自賢: 군주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함)에 있지 않다.”

주 나라의 건국 원훈인 주공(周公)이 인재가 찾아오면 먹던 음식을 뱉으며 감던 머리를 쥐어 싸고 달려나가고, 제환공이 밤에 화톳불을 피워놓고 인재를 기다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세에 최고통치권자가 자고자대(自高自大)에 빠지면 치국에 실패하는 것은 물론 자칫 나라가 뒤집히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당선자는 벌써부터 그의 독선과 오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독선과 오만은 최고통치권자가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한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최대의 적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당태종조차 말년에는 위징의 간언을 물리치고 원정에 나섰다가 크게 후회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신의 능력 하나만으로 지존의 자리에 오른 인물은 하나같이 독선과 오만에 빠졌다. 입지전적인 성공신화를 써온 이 당선자 역시 이런 우려를 자아낼 만한 언급을 수차례 한 바 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지도자는 절대 역사를 만들 수 없다. 가능하다고 생각해 힘을 모으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

국 민역량을 하나로 결집시켜 전진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는 있으나 자칫 그의 ‘불도저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킬 만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가 적잖은 국민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대운하건설 공약을 강행할 경우 이런 우려는 현실화될 소지가 크다. 한때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방편으로 ‘하면 된다’는 구호가 난무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당시의 상황과 다르다.

이 당선자는 ‘자고자대’로 일관한 노 대통령과 달리 참모들의 직설적인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심사숙고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일단 희망적이다. 득국에 이어 치국에서마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이미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실제로 그는 노 대통령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그와 반대되는 노선을 걸으면 된다. 그러나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과제를 능동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불도저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첫 째 탈이념(脫理念)의 경제회생이다. 이는 실사구시의 실용주의에 입각한 ‘민식’ 문제의 해결을 의미한다. 취임 초기부터 연일 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해 각종 경제지표를 점검하고 국익을 위한 세일즈 정상외교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둘 째 탈구태(脫舊態)의 정치개혁이다. 이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지역갈등 및 이념대결 구도에 편승해 입신한 인물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을 의미한다. 결코 논공행상이라는 소의(小義)에 얽매여 치국평천하의 대의(大義)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셋 째 탈불신(脫不信)의 사회정립이다. 그는 이미 대선 전에 BBK사건으로 혹독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를 재임기간 내내 감계(鑑戒)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선 10여일 전에 공표한 재산의 사회 환원 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민식’에 목을 매고 있는 서민들이 믿고 따르게 된다. 사상 최초로 등장한 CEO 출신 대통령의 성패는 바로 이 3가지 과제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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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이명박
opic |풍수학자가 본 대선 후보들

[이코노믹리뷰 2007-03-15 17:48](풍수나 관상, 점.  우리가 미신이라고 부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3국은 특히 미신적 요소들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 공중파 방송의 사극 연개소문에 등장하는 수양제도
태자시절, 자신이 빨리 황제가 될 수 있는 터를 골라달라고 지관을 닥달하지요. 그의 아버지도 겉으로는 풍수학이 지닌 논리적 허점을 맹공하면서도 아내의 묘지를 명당으로 골라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동양적 정서가 아닌가 합니다.

고백하건데, 기자된 입장에서 이런 식의 기사를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언론에서 풍수를 통해 대권주자의 운을 가늠해본다는 것은 왠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대선이 열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운명에 울고, 또 다른 이는 웃게 될 것입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그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한걸음 앞서 파악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강렬한 욕구. 담당 데스크들은 이럴 때  저간의 기류를 과감히 거부할 수 없나 봅니다. 사실 저도 매우 궁금합니다.


현재 1위 이명박 후보
“묘 앞에 저수지가 있으니…”

위정자들은 풍수지리에 대해 전통적으로 이중적 행태를 보여왔다. 멀게는 중국의 5대 16국 시대를 종식하고 대륙의 통일을 이뤄낸 수 문제부터, 가깝게는 아들을 임금으로 만든 조선의 흥선대원군까지, 공개적으로야 풍수지리를 미신이라고 애써 무시하면서도 유명 지관들을 풀어 전국의 명당을 수배했다.

조상이나 가족 묘가 위치한 선영을 애써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까지 자신은 물론 후손들의 복을 기원했다. 풍수지리설의 비과학성을 질타한 수 문제는 부인의 묘자리를 당대의 지관인 소길에게 고르게 했으며, 흥선대원군은 술사에게 부탁해 2대를 이어 왕이 나올 수 있다는 충청도 예산에 부친의 묘를 이장했다.

대선에 나선 적이 있는 대한민국의 여론 지도층도 예외는 아니다. 이회창 씨는 지난 2004년 선친의 묘를 이장했으며, 다음해엔 이인제 전 대선 후보가 선영을 이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1995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2001년)도 선영을 이장한 적이 있다.

미신은 동양의 지도자나 지식인들에 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천형이다. 대선레이스에서 낙마한 고건 전 서울시장의 부친 고형곤 박사는 타계전 자신의 무덤을 직접 지정했다. 고씨는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베르그송과 후설을 전공한 대학자였지만 풍수지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최근 풍수와 대선 승리의 함수를 분석한 책을 발표한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평생을 풍수지리를 연구해온 학자이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풍수학적인 관점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를 것으로 예상해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선영이나 생가가 가장 탁월한 풍수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는 대선주자는 누구일까.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나, 천정배 의원 등도 생가나 선영이 모두 길지이다. 대선 출마설이 다시 불거져 나오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결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생가와 선영을 바라보고 있는 주산이 모두 종을 엎어놓은 듯한 금성의 모양이다.

이러한 풍수의 특징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는 자리라는 점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다만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생가의 입지가 험난한 시대, 위기의 시대에 거친 광야에서 깃발을 들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양새이다.

타고난 지도자의 땅이지만, 문제는 난세에 빛을 발하며 평시에는 힘을 잃을 지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를 과연 난세로 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어떨까. “묘 앞에 작은 저수지를 조성해 물을 가두어 뒀다. 하지만 물빛 또한 누런빛으로 탁하기 그지없다. 무엇하나 이로움이 없겠다.”

그가 또 다른 풍수지리 연구가인 지종학 풍수지리 연구소장의 말을 빌려 평가한 대목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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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더를 말한다③ 이명박 전 서울시장

[이코노믹리뷰 2007-02-27 21:09](기자출신의 신동준씨가 이코노믹리뷰에 기고한 리더십 관련 글입니다. 신동준씨는 한겨레와 조선일보 정치부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지금은 21세기 정치연구소 소장을 지내고 있습니다. 순자, 맹자, 춘추좌전 등을 편역한 국내에서 몇 손가락안에 꼽히는 고전 전문가이기도한 그가 분석한 이명박 리더십을 한번 음미해보시죠 .) 

天時만난 경제 리더십 …
‘후보검증’관문 통과가 관건

“정주영과 이명박의 만남은 춘추시대 말기 월왕 구천과 범리를 떠오르게 한다. 범리의 계책으로 천하를 제패한 구천은 패업에 도취한 나머지 범리를 제거코자 했다.”

“이 전 시장의 용인술은 ‘아무나 쓰지는 않지만 누구나 쓴다’는 말로 요약된다. 사람을 들이기 전에 철저히 검증하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함께 일해 보자는 말로 일을 맡긴다는 것이다. 이는 용인술의 요체를 꿴 것이다.

“최고 통치권자에게는 국가대사와 세계정세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복잡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안목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주장 속에는 전 국민을 격동시키는 역동적인 비전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유 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이 최근 소위 ‘후보검증’ 논란에 휩싸여 적잖이 곤혹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그에 대한 ‘후보검증’ 공세는 전방위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그의 지지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데 따른 후유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선두주자에 대한 강한 견제심리가 작동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전 시장 측이 드러내고 있는 불만 역시 일종의 '행복한 비명'에 가깝다.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는 범여권이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장차 외부 인사를 영입해 후보로 내세울지라도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 시장 측이 ‘후보검증’ 논란에 시종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후보 검증’ 처음 제기한 사람은 노 대통령

당 초 이 전 시장에 대한 ‘후보검증’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는 올해 초의 신년회견에서 직설어법을 구사해 “실물경제를 좀 안다고 경제를 잘하는 게 아니다”며 이 전 시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이 전 시장의 고공행진을 돕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부동산문제를 포함한 노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가 워낙 극명하게 드러난 데 따른 것이었다.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지난해 말부터 연일 고공행진을 한 데에는 바로 노 정권의 경제실패가 이 전 시장의 '경제전문가' 이미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 사실과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최 근의 여론흐름을 보면 경제문제가 이슈화되면 될수록 노 정권의 실정과 이 전 시장의 ‘경제전문가’ 이미지가 더욱 대비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지구조가 더욱 확고해질 공산이 크다. 이는 노 정권의 경제실패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전 시장 측 역시 노 정권의 경제실패를 집중 부각시켜 이 전 시장의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속셈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내 경선은 물론 올해 말의 대선에서도 ‘경제리더십’을 둘러싼 대선주자들 간의 불꽃 튀는 설전을 예고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 전 시장으로서는 일종의 천시(天時)를 만난 셈이다.

이 전 시장은 천시뿐만 아니라 인화(人和)도 얻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지난 1999년에 《신화는 없다》는 자서전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에는 한 가난한 노점상 소년이 고학으로 고려대에 입학해 6·3시위의 주동자가 되어 감옥에 갔다가 현대건설에 들어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회장이 된 후 정계에 성공적으로 입문하기까지의 역정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 책을 보면 오늘의 이 전 시장은 고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신임과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전 시장이 인화를 얻은 구체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경제실패 집중 부각시켜 지지율 올려

이 전 시장과 정 전 회장의 만남은 춘추시대 말기에 천하를 제패했던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범리를 연상시킨다. 이 전 시장이 학창시절의 수옥(囚獄) 경력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에 무난히 입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람을 단박에 알아보는 정 전 회장의 지감(知鑑)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범리가 월왕 구천의 신임을 얻어 핵심 가신(家臣)으로 등용된 일에 비유할 수 있다.

월 왕 구천은 일시 오왕(吳王) 합려(闔閭)를 격파하고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를 장악했으나 이내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부왕 합려의 패사(敗死)를 설원(雪寃)코자 한 오왕 부차(夫差)와의 회계(會稽) 대회전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구천은 부차의 시종이 되어 수년 동안 간고(艱苦)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이때 구천은 범리의 계책을 받아들여 절치부심(切齒腐心)한 끝에 은밀히 세력을 길러 마침내 부차를 제압하고 장강 일대를 제패하게 되었다. 이는 정 전 회장이 태국 건설현장에서 커다란 손실을 보았다가 이후 이 전 시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아파트 건설을 전담하는 한국도시개발주식회사 등을 설립해 비약적인 발전의 발판을 마련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를 제압한 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 중원의 패자로 군림하던 진(晉)나라와 자웅을 겨뤄 마침내 천하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때 그는 자신이 이룬 패업에 도취한 나머지 자신의 패업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대부 문종(文種)과 범리를 제거코자 했다. 《사기》 ‘월왕구천세가’에 따르면 당시 이를 눈치 챈 범리는 재빨리 구천의 곁을 떠난 뒤 이름을 ‘치이자피’로 바꿔 큰 재부(財富)를 쌓았다. 당시 범리의 말을 듣지 않은 문종은 끝내 구천 곁에 남아 있다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하고 말았다.

이는 정 전 회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에 만족치 않고 마침내 대권에 뜻을 품고 국민당을 창당할 당시 이 전 시장이 전정 회장과 결별한 뒤 독자행보를 걸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신화는 없다》에 따르면 당시 이 전 시장은 정 전회장의 정계진출을 적극 만류하며 김영삼 후보를 도와줄 것을 권했다고 한다.

결국 전 정회장의 대권도전은 좌절된 데 반해 이 전 회장은 정치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에 김영삼 대통령의 민자당 후보로 나와 제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범리가 정치인에서 경제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과 달리 이 전 시장은 당대의 경제인에서 일약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무난히 성공한 셈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전 시장의 경제인으로서의 화려한 역정은 현대그룹 및 한국경제의 초고속 성장과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여기에는 오너로서의 정 전 회장과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이 전 시장의 초상이 뚜렷이 각인돼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정계입문 이후의 역정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수십 년 동안 정치권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여러 차례 대권에 도전했던 김영삼 및 김대중 후보에게 무모하게 도전장을 냈다가 이내 좌절하고 말았다.

현 재 이 전 시장은 비록 정치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고는 하나 또 하나의 신화를 쓰기 위해 험난한 대권고지에 도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전 시장은 정 전 회장과 달리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이는 전 세계 CEO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가 박 전 대표를 누르고 경선에 승리한 뒤 마침내 본선에서마저 범여권 후보를 제압하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전 시장에게는 이를 낙관케 하는 몇 가지 뛰어난 장점이 있다. 우선 그가 철저히 일 중심의 인사원칙을 고수하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캠프에 합류한 정치권 인사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짧게 “열심히 잘 하자”는 말로 환영사를 대신했다고 한다. 이는 거두절미하고 본론만을 말하는 정 전회장의 리더십을 배운 듯하다.

아무나 쓰지 않지만 누구나 쓴다

이 전 시장의 캠프 사람들은 그가 보여주는 용인술(用人術)을 두고 ‘아무나 쓰지는 않지만 누구나 쓴다’는 말로 그 특징을 요약하고 있다. 사람을 들이기 전에 철저히 검증하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함께 일해 보자는 말로 일을 맡긴다는 것이다. 이는 용인술의 요체를 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춘추시대 초기에 활약한 관중(管仲)은 주군인 제환공(齊桓公)을 첫 패자(覇者)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는 제환공에게 이같이 건의한 바 있다.

“먼저 현자(賢者)를 몰라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자를 알았다고 해도 그를 등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현자를 등용할지라도 아무런 임무를 주지 않으면 등용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등용하여 임무를 주었을지라도 그를 믿지 않으면 결코 패업(覇業)을 이룰 수 없습니다.”

관중은 바로 용인술의 극치인 ‘지용임신(知用任信)’의 이치를 밝힌 것이다. 관중은 본래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을 쓸 때 믿지 못할 자는 아예 선발하지 않고, 일단 선발한 후에는 전적으로 일을 맡기면서 신뢰했다. 제환공이 관중의 도움을 얻어 첫 패업을 이룬 것도 이런 용인술과 무관치 않았다.

‘지용임신’의 원칙은 원인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현장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이 실무와 현장 중심으로 사람을 기용하면서 일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찾아서 하는 개척 정신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지용임신’의 용인술은 이 전 시장이 지닌 여러 덕목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용임신’의 원칙이 주효키 위해서는 반드시 일을 잘한 사람을 포상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고취하는 방책이 필요하다. 한비자(韓非子)는 이를 소위 ‘신상진능(信賞盡能)’으로 표현했다. 이 전 시장은 묵묵히 일하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칭송하거나 캠프에 새로 합류한 신참자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는 등의 용인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에 펴낸 《온 몸으로 부딪쳐라》에서 이같이 말한 바 있다.

“회의에서 너무 결론이 빤하게 흐르면 CEO는 일부러라도 딴죽을 걸어야 한다. 핵심 인재에게만 신경 쓰고 중위권 그룹에 신경 쓰지 않는 리더는 일류 감독이 아니다.”

이 는 ‘신상진능’ 원칙의 현대적 적용으로 볼 수 있다. 능력 위주의 ‘지용임신’ 원칙과 경쟁원리를 도입한 ‘신상진능’의 원칙은 이 전 시장이 지닌 뛰어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대권도전에 성공할 경우 이는 ‘지용임신’ 및 ‘신상진능’ 원칙의 개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시장에게는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다. 우선 그의 통치에 관한 기본 입장이 너무 소략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는 《신화는 없다》에서 이같이 말한 바 있다.

“통 치라는 개념 아래에서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공복(公僕)이라는 말은 이론일 뿐이다. 통치 아래에서 공직자들은 국민 위에 군림한다. 그러나 경영개념을 도입한 정치는 그렇지 않다. 자치지역 혹은 국가를 위해 더 많이 벌고, 벌어들인 것을 국민이라는 고객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인식을 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통치를 일종의 억압개념으로 파악한 것부터 잘못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통치를 기업경영으로 환원시키는 단순논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이는 국가기관을 사회의 일부분으로 간주하는 서양의 개인주의적 접근방법에서는 가능한 것이기는 하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 전래의 역사문화적 전통과는 괴리된 인식이다. 동양에서는 국가를 사회의 일부분으로 상정한 적이 없다.

통치는 기업이 돈을 더 많이 벌어들여 국민이라는 고객에게 환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최고 통치권자에게는 자국의 역사문화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국가대사와 세계정세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보다 복잡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안목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주장 속에는 전 국민을 격동시키는 역동적인 비전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신화는 없다》에서는 통치차원의 비전은 잘 보이지 않고 ‘경제전문가’도 아닌 ‘경영전문가’의 이미지만이 크게 부각되어 있는 것이다.

통치차원의 비전은 잘 안 보여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비록 세계 경제 10대국에 들어간다고는 하나 그 내막을 보면 속빈 강정에 가깝다. 국내적으로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국외적으로는 기술과 노임 면에서 일본 및 중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 상황에 안주했다가는 IMF 못지 않은 위기상황이 초래될 공산이 큰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전 시장이 내세우는 ‘경제리더십’에는 남북운하개통과 같은 토목공사 차원의 마스터플랜만이 크게 부각되어 있다.

그 의 ‘경제리더십’에 대해 박 전 대표가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경제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반드시 경제를 직접 해봐야 경제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인다. 실제로 이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전 시장의‘경제리더십’은 아직 정밀하게 검증받은 바가 없다. 과연 그가 ‘경제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인 것이다.

이 전 시장이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제시한 소위 ‘MB독트린’ 역시 같은 차원의 지적을 면키 어렵다. 그는 북핵문제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적극적인 대북지원에 나서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내에 3000달러로 높이겠다는 추상적인 제안을 하는 데 그쳤다. 국가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차기 대권주자의 비전으로는 너무 허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경제리더십’ 및 ‘안보리더십’ 등에 관한 정밀한 검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전 시장이 과연 경선에서 승리한 뒤 본선에서마저 범여권 후보를 누르고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일련의 ‘후보검증’ 관문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통과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 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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