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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소설가 김홍신이 말하는 경영학원론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9-05 18:24 | 최종수정 2007-09-05 18:48




“창업-수성 원리 발해史에 다 있어”



그는 생각보다 더 왜소했다. 지친 기색도 역력했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 꼭 이렇지 않았을까. 흉노에 항복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비운의 사나이. 남성을 거세하는 궁형을 택한 이 외로운 남자는 동시대인들의 조롱거리였다.

명예를 목숨처럼 여겨야 할 태사령이 구차하고 비루한 삶을 택했다는 손가락질이었다. 하지만 한신, 장량, 유방, 항우, 이사, 이릉…. 중국사를 수놓은 인물들은 그의 손을 거치면서 화려하게 다시 되살아났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도 영고성쇠의 요인을 알려주는 불멸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3년간 소설을 집필하며 두문불출한 전직 국회의원. 단식 농성을 하고‘공업용 미싱’ 발언으로 홍역을 치르던 격정의 소유자는,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달 18일 오후 4시 30분, ‘소설가’ 김홍신은 자택에서 기자를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맞았다.

발해는 그의 정신세계를 오롯이 부여잡고 있는 주제인 듯했다. 김씨의 작업공간이기도 한 2층 서재는 족히 만여 권은 되어 보이는 책들로 그득했다. 벽면 한쪽에 발해와 당, 그리고 통일신라 영토를 표시한 지도가 붙어 있고 책상 한편에 발해사 관련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화제를 자연스레 《대발해》로 옮겨 갔다. 이 열 권짜리 대하소설은 출간 한 달여만에 3쇄를 인쇄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저술 작업에 몰두해왔지만, 중국 현지를 돌아보고 작품을 기획한 준비기간까지 더하면 8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STRATEGY

  고구려는 당의 장기전에 휘말려 패퇴
  발해는 적국의 본토 기습으로 맞대응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는 달랐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을 떠올리는 기습작전으로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무예의 대당 선제공격이 국운(國運) 바꿔

사마천은 자신의 울분을 한 글자 한 글자 사기에 새겨 넣었다. 한 무제가 분노의 과녁이었다. 김씨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구려 패망 후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이 얼마나 되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그가 기자에게 거꾸로 묻는다. 무려 20만이었단다. 하지만 발해는 철저하게 파괴된 고구려의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섰다.

뛰어난 지도자, 그리고 국민의 헌신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기적을 만들어 냈다. 총선 패배 후 3년 만에 은둔을 깨고 발해의 건국과 패망을 다룬 장편소설로 다시 돌아온 그는, ‘민족’이라는 주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발해, 그리고 고구려의 영고 성쇠를 불러온 요인은 무엇일까.

“고구려는 가볍게 무장한 기병들을 적군의 배후로 침투시켜 적의 보급부대를 궤멸시키고, 본대는 들판의 곡식을 모두 불태운 뒤 성에서 장기전을 펼쳤습니다. 바로 청야 전술입니다. 당 태종도 결국 이러한 전략을 뒤집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패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씨는 지도자의 냉철한 상황 판단 능력을 번영의 첫 번째 요소로 꼽았다. 따지고 보면 고구려가 당나라에 패망한 것도 당의 ‘진지전’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당은 전면전을 피하고 국경에서 크고 작은 분란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당의 전략가들은 적성국인 고구려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장기전으로 선회했는데, 이러한 전략은 중국 삼국시대 책사들이 자신의 주군들에게 진언하던 책략이었다. 고구려는 당 제국의 이 두 번째 전략을 무너뜨릴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패망했다. 하지만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는 달랐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blitzkrieg)을 떠올리는 기습작전으로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무예는 당시 발해의 명장이던 장문휴 등을 앞세워 당나라 영토에 속했던 산둥반도, 그리고 만리장성 인근의 마도산을 점령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적의 허를 정확히 지른 것이다.

며느리인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 현종은 본토가 침략 당하자 신라에 원군을 청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대무예의 당 기습작전은 동아시아의 권력지형을 흔든 사건이었다. 발해는 이후 200년 수성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발해의 후계자들은 안녹산의 난을 비롯해 당 내부의 분열을 적절히 활용하며 세를 불려나간다.


        HUMAN CAPITAL
  부역과 세금의 중과는 만병의 근원
  한민족 신바람의 문화 정확히 꿰뚫어야


흥과 한의 국민 정서 정확히 간파해


뛰어난 지도자들은 기업이나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흐르는 강물 위에서 노를 젓지 않으면 자꾸 뒤로 밀려나게 된다는 이치를 그들은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기자의 메모수첩을 자신의 책상 앞으로 바짝 당겨놓는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지도를 쓱쓱 그리며 목청을 한껏 올렸다.

웅혼한 기상도 전략의 뒷받침을 받아야 위력이 배가되는 법이다. 지난 1980년대 미국 시장에서 GE와 맞장을 뜨던 ‘웨스팅하우스’가 잭 웰치 부임 후 변화의 가속페달을 밟은 GE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다, 결국 문을 닫고 만 것도 비슷한 이치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노자의 한 대목이다. 백성들의 무서운 힘을 물에 비유한 경구다. 1994년, 그는 삼성전자 수원 반도체 공장의 여직원 기숙사를 방문했다 한 공원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한 여자 공원이 자신은 식사 때에도 국이나 물을 잘 먹지 않는다고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는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화장실에 들락거리다 보면 업무에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한 소설(칼날위의 전쟁) 취재차 방문한 자리였다. 그는 그녀의 말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았다고 한다.

바로 한민족 특유의 신바람이다. 지도자가 아무리 닦달을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한 국민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열정, 그리고 헌신성은 뛰어난 리더십의 영도를 받아 하나로 모아질 때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김씨가 요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로자들의 기를 살리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세를 확산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서 미국의 반도체 장비 업체인 도날슨, 스웨덴의 볼보그룹까지, 인본주의적 경영을 앞세운 기업이 성과를 높이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런 풍토에서는 촌음을 아껴가며 자신의 업무에 매진하던 90년대 삼성전자 사업장의 여공들과 같은 헌신적인 태도와 정열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기업경영도, 나라 운영도 한국인 고유의 특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결실을 맺기 어렵다고 그는 강변했다. 한국인은 분위기에 휩쓸리면 걷잗을 수 없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반면 한번 가라앉으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체면을 매우 중시해 자신을 존중해 주는 이에 대해서는 보은을 아끼지 않는다.

대조영, 대무예를 비롯한 발해의 역대 군왕들이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함으로써 백성을 편하게 한 배경이다. 뛰어난 지도자의 리더십,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앙상블을 이뤄야 강국이 될 수 있다. 기업으로 논의를 좁혀봐도 이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랜드 비전으로 국민들 일치단결 불러

“나라가 망할 때면 지도층의 사치가 기승을 부리고, 내분이 격화됩니다. 또 민심 이반이 두드러지며, 지도자의 혼암함이 극에 달하는 공통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꼭 이와 같습니다.”부동산을 둘러싼 계층 간의 갈등이 대표적 징후라고 그는 지적한다.

발해의 마지막 왕 대위해는 민심을 살피지 않고, 남색에 빠져 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에 200년 역사의 나라를 송두리째 바치고 말았다.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배경이다. 그가 국내 기업인들의 중국 진출 동향에 아쉬움을 피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투자가 주로 한족들의 본거지 격인 상하이나 베이징 등에 편중돼 있으며, 우리 조상들의 영토였던 동북 3성은 투자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하지만 기업에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동북3성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다.

그는 무엇보다 중국의 의도를정확히 간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공정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결국 지금의 북한 땅에 대한 영유권 소유가 아니겠어요. 당이 진지전으로 고구려를 무너뜨렸듯 중국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영토 확장의 명분을 서서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의 목소리는 역사학자 이덕일 씨와 닮아 있다.

이씨는 아시아의 대형 중국에 맞서 몽골 등과 동이족 국가들의 연합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역사적 소명, 먹거리 문제 등을 하나로 꿰는 비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조영은 고구려 고토 회복이라는 원대한 비전으로 고구려 유민, 말갈부족의 에너지를 결집시켰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인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대선의 계절이다. 이상적인 대통령 감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사마천은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 준 절대 군주에 대한 회환을 평생 곱씹으며 살아야 했다. 사기 자체가 한 무제를 향한 넋두리이기도 했다. 정치를 다시 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술활동이 자신이 천직이라고 답변했다.

《김홍신이 분석한 드라마 대조영》

“70대 측천무후 너무 젊고 대조영 활약상 대부분 허구”

발해의 창업자인 대조영. 그는 국제 정세를 꿰뚫어 보고 당과 거란의 대립, 또 돌궐의 부상을 적절히 이용해 세 불리기와 건국에 활용한 전략가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뜻밖에도 김홍신 씨는 기자의 이러한 분석에 쉽사리 동의를 하지 않았다. 대조영의 실체를 제대로 가늠하기에는 사료(史料)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발해 자체 기록은 3대 대흠무의 둘째 공주 정혜와 넷째 공주 정효의 무덤에서 나온 비석에 적힌 약 1500자 정도의 기록 외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김씨는 발해의 역사를 복기할 수 있는 유물은 현재로서는 거의 남아있는 게 없다고 털어놓는다. 이러한 한계는 드라마에서도 확인된다.

대조영은 늘 신출귀몰한 무인으로만 그려진다. 또 고구려 보장왕의 조카와 결혼도 하지만 모두 허구의 산물이다. 사료 부족이라는 한계를 상상력을 발휘해 메웠다. 중국 역사의 유일무이한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도 67세에 황위에 오르는데, 드라마에서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세밀한 고증보다 시청률이 우선순위인 드라마의 특성을 감안해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는 사료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의 역사책을 분석하고, 재해석했다. 구당서, 신당서, 발해국지, 위서, 한서,후 한서, 책부원구, 요사, 요동고, 유취국사, 자치통감, 속일본기, 일본기략을 주로 참조했다.
■ 작가 김홍신은 194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인간시장》이 국내 최초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560만권 이상이 팔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96년부터 2003년까지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종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500여 표 차이로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패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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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당신은 조조인가 원소인가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6-25 07:18


삼국지경영학 / 최우석 / 을유문화사


희대의 ‘간웅(奸雄)’. 비천한 환관 집안에서 몸을 일으켜 중국대륙 통일의 기틀을 놓은 한 사내에게 늘 따라다니던 꼬리표이다.

그는 고비마다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하며 운명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후한 말엽의 혼란한 시기에 홀연히 등장해 뛰어난 지도자의 전형을 남긴 이 주인공이 바로 조조이다.

그는 난세의 지도자였다. 손자병법 해설서를 저술할 정도로 군략에도 뛰어났으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뛰어난 시도 많이 남겼다.

순욱, 순유, 곽가, 가후를 비롯한 인재들을 매우 아끼고 보듬었다. 하지만 그가 중국 대륙의 패권을 놓고 원소와 부딪쳤을 때 패배는 자명해 보였다.

후한 최고 명문가의 적장자. 당시 청주, 병주를 비롯한 황하 이북 일대의 패권을 거머쥐고 있던 원소의 주변에는 인재들이 구름같이 몰렸다.

저수와 전풍은 장량이나 진평에 비견할 수 있는 전략가들이었다. 하지만 조조는 관도대전에서 승리했고, 원소는 패배 뒤 화병으로 생을 마감한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변수는 무엇일까. 바로 용인의 기술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원소는 모사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작은 일에는 밝았으나, 국면을 좌우할 큰일에는 어두웠다. 불우한 이웃에는 인정을 베풀었으나, 정작 공을 세운 모사들에 대한 논공행상에는 소극적이었다.

평민출신의 유방에게 패해 중국의 패권을 넘겨준 초나라의 귀족 항우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했던 것.

실제로 순욱, 곽가를 비롯한 조조의 일급 참모들은 한때 원소 측 진영에 가담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계책을 중시하는 조조진영에 가담해 결국 원소의 몰락을 재촉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최고경영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인재들을 내모는 원소형 CEO일까, 아니면 조조와 같은 포용력있는 리더일까.’

박영환 기자(ble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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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삼국지
“유비는 양아들 죽인 비정한 아버지” (북리뷰 코너에 올렸던 제 서평이네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맹목적 동경을 말끔히 지워버린 책이었는데요. 동시에 중국이 동아시아 역사에 드리우고 있는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글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관우를 모신 사당이 서울에 있습니다. 모두 조선에 대군을 파견했던 명나라 장수들의 요구로 사기 진작 차원에서 떠밀리 듯 조성한 사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닙니다.  태국같은 나라를 가도 해태상, 관우상을 떠올리게 하는 석상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청나라 말 서구열강의 이권쟁탈 각축장으로 전락한 뒤 빠른 속도로 쇠락하던 중국. 아시아의 이 빅 브러더의 영향력이, 이제는 현실의 정치 경제 , 문화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이 원산지인 텍스트의 비판적 독해의 필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는 배경입니다.


[이코노믹리뷰 2005-02-01 15:00]

《삼국지 바로 읽기》

동탁은 북지(北地)에서 항복한 반란군 수 백 명 속으로 들어가 앉더니, 그들의 혀를 자르고 손과 발을 절단했으며 눈을 뽑아 큰 가마솥에 삶았다. 참수된 머리는 불태웠으며 여자들은 사병들에게 주어 종이나 첩으로 삼게 했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탁’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한나라 황실을 침탈한 간흉이자 폭정을 일삼은 악당. 잔인하고 비정했으며, 가혹한 형벌로 사람을 위협하고 작은 원한도 반드시 보복했다고 나관중의 <삼국지〉는 전한다.

그가 사망했을 때, 낙양의 백성들이‘배에 심지를 꼽아 불을 붙이니 기름이 흘러 넘쳤으며, 그 머리를 차고 놀았다’고 하니, 그의 폭정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분노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삼국지만 놓고 보면, 그는 희대의 폭군이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왕윤과 양아들인 여포에게 무참히 살해되고, 후대인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는 비운의 인물인 동탁은, 하지만 한때는 주변의 칭송을 한 몸에 받던 무장이었다고 한다.

역사서인 《위서》의 동탁전은 장수로서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의로운 일을 즐겼고 변방의 강족과도 잘 어울렸다. 진심으로 그들과 교류해, 강족의 우두머리들은 1000여 마리의 가축을 동탁에게 주기도 했다. 재능이 있고 용감했으며 두 개의 화살통을 차고 말을 탄 상태에서 활을 번갈아 쏠 수가 있었다.”

그가 불과 3000여 명의 정예병으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한나라 수도인 낙양을 일거에 점령할 수 있던 데는 이러한 리더십도 한몫을 했던 것.

그는 인재들도 두루 포용했다. 훗날 조조 진영에 가담하는 명참모 가후와, 최측근 이각·곽사 등 뛰어난 장수들은 그가 변방 무장 시절부터 중용하던 인물이었다.

동탁은 또 집권 후에도 중신들을 대부분 기용하고 이름 높은 선비들을 불러들여 민심 안정에도 온 힘을 기울였다. 당대 최고의 관료인 왕윤, 순상 등이 동탁 군부 정권에 참여했으며, 특히 백성들의 추앙을 받던 채옹은 굵직굵직한 개혁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동탁의 통치를 뒷받침한 동탁정권의 이데올로그였다.

동탁은 특히 수도를 당시 낙양에서 장안으로 옮긴 뒤 화폐 개혁을 전격 단행하며 개혁가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화폐개혁은 구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한편, 기득권 세력이 음성적으로 지니고 있던 방대한 자금을 끌어내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생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회심의 카드였던 셈이다.

물론 멋대로 황제를 바꾸려고 하거나, 도읍을 옮긴 것은 그가 저지른 대표적인 실기였다. 하지만 리더십과 통솔력만 놓고 보면 남다른 데가 있던 그가, 훗날 희대의 살인마이자 폭군으로만 폄하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삼국지 바로 읽기》의 저자 김운회 동양대학교 교수는, 동탁이라는 ‘특정인물 죽이기’는 중국인의 ‘중화 영웅 만들기’, 이른바 촉한공정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라고 단언한다. 한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한 유비나 제갈공명, 관우, 장비 등을 중국 민족의 영웅으로 그리다 보니, 동탁이나 여포, 조조, 노숙 등 다른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폄하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변방 출신인 동탁이나, 몽골 출신인 여포는 출신 성분 탓에 더욱 형편없는 인물로 매도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촉한공정의 가장 큰 피해자인 셈이다.

반면 이러한 촉한공정의 가장 큰 수혜자는, 동서고금을 초월해 가장 뛰어난 전략가로 알려진 제갈공명이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 따르면 그는 적벽대전에서 한겨울 동남풍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에 화공을 가해, 관도대전으로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었던 조조에 치명타를 안겨준다.

또 그가 빈성 위에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위나라 사마의의 수 만 대군을 물리치거나, 짚으로 만든 조각배로 화살 10만여 개를 주어온 일화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베트남 지역인 남만을 정벌해,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모두 놓아준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후한서》 《진서》 《위서》 등 정사에 따르면, 그가 군권을 쥐게 된 것은 유비 사후였다고 한다. 유비가 살아 있을 때 그는 줄곧 내정을 담당했으며, 군사쪽에는 거의 관여하지 못했다. 그의 놀라운 전과들이 창작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제갈공명은 또 유비 사후, 유비의 아들인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위나라 정벌에 나서지만, 오장원에 진출한 5차 북벌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위나라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지 못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제갈공명이 사마의 부자를 몇 번씩 죽일 뻔하고, 위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것처럼 풀어가지만, 정작 위나라 서부지역의 방위사령부이던 장안의 외곽 방어기지인 미성조차 그는 무너뜨리지 못했다.

위나라의 최고 병법가 사마의를 어린아이 다루듯 농락한 그가, 다섯 차례의 북벌에서 위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한 것은 삼척동자가 보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또 삼고초려를 한 유비에게 그가 제시했다는 천하 삼분지계도, 나관중의 《삼국지》가 무능력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오나라의 노숙이 주군인 손권에게 일찌감치 제시한 계책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 또한 친아들인 유선의 순조로운 왕위계승을 위해 양아들인 유봉을 죽이기도 했으며, 부인과 자식을 언제든지 갈아 입을 수 있는 의복에 비유하는 등 냉혈한이었다.

또 두 형수를 모시고 위나라의 오관을 통과하며 여섯 장수를 베었다는 관우의 ‘오관참장’ 이야기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물론 《삼국지》가 상상력에 바탕을 둔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등장 인물들에 대한 윤색은 어느 정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러나 삼국지를 소설로만 받아들이기에는 그 폐해가 지나치게 크다고 말한다.

흔히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지만, 《삼국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략과 음모, 이간질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다.

특히 중국사 전체에서 볼 때 별다른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위, 촉, 오 등 삼국의 이야기를 부풀리고 성역화하는 일에 이문열 씨 등 국내 유명작가들이 나서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나관중의 《삼국지》는 유비나 제갈공명을 배출한 중국이 위대한 나라라는 인식을 전파함으로써, 중화주의를 주변 국가에 퍼뜨리고 있다”면서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지적인 토대가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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