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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03 "삼국시대라뇨, 남북국시대가 맞습니다"
 
Book Review |《역사용어 바로쓰기》

[이코노믹리뷰 2006-09-04 00:18]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의 서평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역사용어에 얼마나 왜곡된 역사의식이 반영돼 있는 지를 깨닫게 하는 책이네요.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역사비평사/
2006년 8월/328쪽/12,000원

“삼국시대는 없었다”

이 책은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중인 35명의 학자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잘못 쓰이거나
주체에 따라 달리 쓰이는 40개의 역사용어를 재검토하고 있다.

요 즘도 가끔 등장하는 ‘이조백자’라는 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풀어 쓰면 ‘이씨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백자’다. 박씨나 김씨가 조선 시대의 임금이었던 적이 없는 데 굳이 ‘이씨 조선’, 즉 ‘이조’라니 이 용어를 만든 이가 누군지 대략 짐작이 가지 않는가. 이조백자라는 말은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이 조선 왕실을 폄하하고 강제 병합을 정당화하려는 정치·문화적 의도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다 한 용어로 통일되는 경우가 있고, 완전히 다른 용어로 대체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용어를 지은 주체와 그 주체의 역사의식 때문이다. 한때 노동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었던 시기에 ‘근로자’란 말이 대세(?)였다가 지금에 와서 보편적으로 ‘노동자’라는 말이 쓰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다사다난했던 우리 역사를 보면, 부적절한 시대에 부적절한 용어들이 참 많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적절한 용어로 대체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대체는커녕 뿌리깊은 나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용어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 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 용어다.

《역사용어 바로쓰기》(역사비평사)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역사 용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쓰여진 책으로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경제학·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중인 35명의 학자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잘못 쓰이거나 주체에 따라 달리 쓰이는 40개의 역사용어를 재검토하고 있다.

저자들이 지적한 용어들은 우리가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적합하지 않게 쓰인 것이 정착한 것, 학문적 검토 없이 잘못된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다가 학술용어로 정착한 것, 관용적으로 잘못 써왔거나 의미가 탈색되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것들이다.

한국의 고대사를 보자. 우리는 교과서에서 삼국시대를 배웠다. 하지만 고구려·백제·신라·이 세 나라가 당시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는 고작 98년(562년∼660년)에 불과하다 한다. 저자는 여기에 가락국, 즉 가야의 존재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야는 고구려·백제·신라와 대등하게 병존했으며, 바닷길을 잘 이용했고 이로 인해 같은 시대의 신라보다 훨씬 더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가야를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던 약한 나라로만 인식하고 있을까? 그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주장한 식민사학의 결과다.

19세기 말부터 일제의 역사가들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는데, 이는 고대 왜(倭) 왕권이 가야 지역을 정벌하여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 두어 남한을 경영했다는 주장이다. 이후 광복이 된 후에도, 일제의 이러한 선전에 물들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열등감에 빠져 가야사는 거의 거론되지 않은 채 50년이 흘렀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을 보면 가야가 고대 왜국의 지배나 백제 혹은 신라의 지배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발굴된 유물에서는 풍부한 부와 기술, 특히 제철 기술 능력을 통해 가야의 힘과 독자적인 문화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삼국시대는 부적절한 용어며, 올바른 용어는 ‘사국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 북쪽에는 분명히 발해가 존재했다. 발해는 건국자와 주민 구성에서 이중성을 띠고 있었지만, 건국된 뒤에 고구려 계승을 표방했다. 발해 무왕은 727년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따라서 당시를 정확하게 반영한 용어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라 남북국시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이 공식 조약 명칭인지 아닌지, 독립운동이 맞는 용어인지 민족해방운동이 맞는 용어인지, 신사유람단이란 용어가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이 표현 자체가 맞는 것인지 아닌지, 반탁과 신탁의 존재, 한국전쟁이 과연 맞는 용어인지 등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용어, 대중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용어, 여론을 반영하는 대중매체의 용어 속에는 그 용어를 만든 주체의 인식이 교묘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정확한 용어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 ‘그거나 이거나 다 똑같은 걸 두고 하는 말 아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광주에서 일어난 쿠데타군의 학살극을 두고 아직까지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쓴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용어로서 우리에게 그리고 후손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이 남긴 가치와 교훈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

책의 서문에서 강정숙 박사는 “말은 의식을 구속하고 제약한다. 잘못된 용어로 쓰인 역사는 잘못된 역사 이해와 역사 인식을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바로 쓰고 바로 붙이는 일, 역사용어를 바로 이름 짓고 부르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근대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주요한 개념어들을 대개 일본에서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적합하지 않은 의미 혹은 연상이 특정 용어와 연결된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에 역사용어 재검토는 곧 한국사회의 제대로 된 ‘근대사회 만들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재검토에 들어간 40개의 역사 용어는 근현대사 과정에서 형성된 용어의 숫자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이러한 단어부터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 역사용어의 전면적 재검토를 위한 자극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이 책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역사 이해와 역사 명명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 미래의 문제임을 인식하자. 그리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들이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역사 바로 세우기는 바로 용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www.summ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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