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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c |풍수학자가 본 대선 후보들

[이코노믹리뷰 2007-03-15 17:48](풍수나 관상, 점.  우리가 미신이라고 부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3국은 특히 미신적 요소들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 공중파 방송의 사극 연개소문에 등장하는 수양제도
태자시절, 자신이 빨리 황제가 될 수 있는 터를 골라달라고 지관을 닥달하지요. 그의 아버지도 겉으로는 풍수학이 지닌 논리적 허점을 맹공하면서도 아내의 묘지를 명당으로 골라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동양적 정서가 아닌가 합니다.

고백하건데, 기자된 입장에서 이런 식의 기사를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언론에서 풍수를 통해 대권주자의 운을 가늠해본다는 것은 왠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대선이 열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운명에 울고, 또 다른 이는 웃게 될 것입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그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한걸음 앞서 파악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강렬한 욕구. 담당 데스크들은 이럴 때  저간의 기류를 과감히 거부할 수 없나 봅니다. 사실 저도 매우 궁금합니다.


현재 1위 이명박 후보
“묘 앞에 저수지가 있으니…”

위정자들은 풍수지리에 대해 전통적으로 이중적 행태를 보여왔다. 멀게는 중국의 5대 16국 시대를 종식하고 대륙의 통일을 이뤄낸 수 문제부터, 가깝게는 아들을 임금으로 만든 조선의 흥선대원군까지, 공개적으로야 풍수지리를 미신이라고 애써 무시하면서도 유명 지관들을 풀어 전국의 명당을 수배했다.

조상이나 가족 묘가 위치한 선영을 애써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까지 자신은 물론 후손들의 복을 기원했다. 풍수지리설의 비과학성을 질타한 수 문제는 부인의 묘자리를 당대의 지관인 소길에게 고르게 했으며, 흥선대원군은 술사에게 부탁해 2대를 이어 왕이 나올 수 있다는 충청도 예산에 부친의 묘를 이장했다.

대선에 나선 적이 있는 대한민국의 여론 지도층도 예외는 아니다. 이회창 씨는 지난 2004년 선친의 묘를 이장했으며, 다음해엔 이인제 전 대선 후보가 선영을 이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1995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2001년)도 선영을 이장한 적이 있다.

미신은 동양의 지도자나 지식인들에 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천형이다. 대선레이스에서 낙마한 고건 전 서울시장의 부친 고형곤 박사는 타계전 자신의 무덤을 직접 지정했다. 고씨는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베르그송과 후설을 전공한 대학자였지만 풍수지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최근 풍수와 대선 승리의 함수를 분석한 책을 발표한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평생을 풍수지리를 연구해온 학자이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풍수학적인 관점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를 것으로 예상해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선영이나 생가가 가장 탁월한 풍수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는 대선주자는 누구일까.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나, 천정배 의원 등도 생가나 선영이 모두 길지이다. 대선 출마설이 다시 불거져 나오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결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생가와 선영을 바라보고 있는 주산이 모두 종을 엎어놓은 듯한 금성의 모양이다.

이러한 풍수의 특징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는 자리라는 점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다만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생가의 입지가 험난한 시대, 위기의 시대에 거친 광야에서 깃발을 들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양새이다.

타고난 지도자의 땅이지만, 문제는 난세에 빛을 발하며 평시에는 힘을 잃을 지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를 과연 난세로 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어떨까. “묘 앞에 작은 저수지를 조성해 물을 가두어 뒀다. 하지만 물빛 또한 누런빛으로 탁하기 그지없다. 무엇하나 이로움이 없겠다.”

그가 또 다른 풍수지리 연구가인 지종학 풍수지리 연구소장의 말을 빌려 평가한 대목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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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더를 말한다 ④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코노믹리뷰 2007-03-15 17:48](고전 전문가인 신동준씨가 이코노믹리뷰에 기고한 대권주자 리더십 분석 시리즈 '다시 리더를 말한다' 의 하나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신동준씨는 한겨레신문, 조선일보 등에서 정치부 기자생활을 했으며, 지금은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장학퀴즈를 석권한 수재이기도 한데, 참고로 신동준씨의 주장은 이코노믹리뷰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

“수신제가는 이뤘는데 치국평천하는 과연…”

강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인 박근혜 전 대표. 여론지지도는 이명박 전 시장보다 뒤지고 있으나 당심(黨心)만큼은 앞서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뢰’와‘원칙’을 내세워 수신제가에는 성공한 것 같은데, 과연 사생활이 깨끗한 지도자는 응당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사상 최초로 부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수신제가 차원의 덕목인 ‘신뢰’와 ‘원칙’ 이외에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차원의 덕목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더불어 한나라당의 자랑이다.

현재 박 전 대표 측은 비록 여론지지도에서는 이 전 시장에게 뒤지고 있으나 당심만큼은 이 전 시장을 10% 넘게 앞서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는 2∼3주 간격으로 실시하는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이 전 시장 측도 결코 경선 승리를 낙관할 수만도 없다. 이 전 시장 측이 일반인들의 참여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싶다.

신실한 사람 알아보는 지인지감(知人之鑑) 지녀
사실 박 전 대표 측이 당심의 우위를 주장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실(信實)한 사람을 능히 알아보는 특유의‘지인지감(知人之鑑)’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사람을 쓸 때 섣불리 판단하거나 선입견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당사자의 이모저모를 유심히 관찰한 뒤 나름대로 판단이 섰을 때 비로소 손을 내민다. 또한 일단 신뢰를 보낸 사람에게는 결코 도중에 그 신뢰를 거둬들이는 일이 없다.

박 전 대표가 구사하는 용인술의 특징은 대략 ‘신뢰’와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주변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재를 포진시켜 수시로 자문을 받고, ‘원칙’에 입각해 자신에게 불리할지도 모를 조기경선에 동의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박 전 대표가 배신자에 대한 응징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신뢰’와 ‘원칙’에 대한 신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괴한의 피습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와중에 “대전은요?”라고 물은 뒤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대전으로 내려가 역전승을 일궈 냄으로써 한나라당을 배반한 염홍철 전 시장을 응징한 것이 그 실례이다.

박 전 대표가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부친이 최측근이었던 김재규의 돌연한 배신으로 급서하고 자신 또한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등의 뼈저린 경험이 이런 용인술의 근인(根因)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곧 ‘신뢰’와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교언영색(巧言令色)’과 ‘면종복배(面從腹背)’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그의 한 측근은 “얄팍한 수를 쓰거나 잘 보이려고 애쓰는 이들의 속셈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말로 그 특징을 요약한 바 있다.

용인술은 신뢰·원칙…선덕여왕과 흡사
이제마(李濟馬)의 사상론(四象論)에 비춰볼 때 박 전 대표의 이런 용인술은 그가 전형적인 소음(少陰)체질인 사실과 무관치 않다. 소음체질은 본래 ‘당여(黨與)’에 능하다. ‘당여’는 사석에서의 담론을 즐기며 주변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물을 포진시키는 일련의 행보를 말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 형의 인물은 대개 소음인이다. 이들은 머리가 총명하고 판단력이 빨라 조직을 만드는 데 장기를 발휘한다. 박 전 대표가 바로 이런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당여’에 능한 대표적인 인물로 삼국시대의 제갈량(諸葛亮)을 들 수 있다. 제갈량은 ‘지감’에 뛰어나 사람의 현부(賢否)를 잘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사적인 자문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병법에 조예가 깊었던 마속(馬謖)을 곁에 두고 늘 병법과 관련한 사담을 즐기며 총애한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그는 마속이 군령(君令)을 어겨 패배를 자초했다는 이유로 눈물을 흘리며 소위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단행했다.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어긴 데 따른 가차없는 응징을 가한 것이다. 그가 오장원(五丈原)에서 진몰(陣沒)하기 직전에 위연(魏延)의 배반 가능성을 예상하고 강유(姜維)에게 미리 대비책을 일러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국시대 당시 진수(陳壽)는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이같이 평해 놓았다.

“공명(孔明)의 위정(爲政)과 형벌은 준엄했지만 촉나라 백성은 아무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공평하고 상벌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갈량이 뛰어난 인재에 대해서는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자문을 구하는 등 한없는 ‘신뢰’를 보내지만 일단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어길 경우 가차없이 베어버린 것을 칭송한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주변에 자신이 대표로 있던 시절에 기용한 인물을 포진시켜 끝없는 ‘신뢰’를 확인시키면서 ‘원칙’에 입각해 조기경선의 결단을 내린 것도 제갈량의 이런 행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성의 신분으로 지존의 자리에 올라 ‘신뢰’와 ‘원칙’의 용인술을 구사한 인물로 신라시대 중기의 선덕여왕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재위 16년 동안 안팎으로 커다란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해내 마침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는 점에서 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신라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 등이 모두 그녀의 치세 하에서 입신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한 기본철학이 바로 ‘신뢰’와 ‘원칙’ 이었다.

선덕여왕이 보위에 오를 당시만 하더라도 신라의 귀족들은 물론 중국의 당나라조차 여왕의 존재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삼국사기》‘선덕왕본기 12년조’에 따르면 당시 신라 사신을 맞은 당태종(唐太宗)은 거만하게도 이같이 말한 바 있다.

“너의 나라는 부인을 군주로 삼은 까닭에 주위 나라들이 무시하고 있다. 이는 군주 없이 적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 내가 장차 종친 한 사람을 보내 신라왕을 삼고자 하나 그가 홀로 가서 신라왕 노릇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땅히 군사를 보내 보호하고자 한다.”

중국사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명군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당태종도 군사출동을 간청하는 선덕여왕의 ‘걸사(乞師)’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 군왕에 대한 폄하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당시까지 여황제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당태종 사후 그의 후궁 출신이 전무후무한 여황제인 즉천무후(則天武后)로 즉위해 당태종 자신도 이루지 못한 고구려 정복의 대업을 이룬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당태종은 선덕여왕을 얕볼 입장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신라는 선덕여왕이 보위에 오를 당시 안팎으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백제의 의자왕이 선왕 때 잃은 한강 유역의 땅을 되찾기 위해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연계해 신라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이때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 등을 적극 활용해 이 위기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훗날 김춘추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도록 만드는 디딤돌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지난 2004년 초 탄핵역풍 속에서 난파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을 떠맡아 그해 5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이끌어냄으로써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킨 일에 비유할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의 의원 및 당원들은 박 전 대표로부터 크고 작은 은덕을 입은 셈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올해 말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이는 박 전 대표의 전공(前功)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가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선덕여왕과 사뭇 닮아 있다. 선덕여왕은 재위 기간 중 결국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설령 결혼을 했을지라도 남편이 일찍 죽어 이후 재혼치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리더십 면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유사한 면을 보이고 있다.

선덕여왕의 리더십을 두고 《삼국사기》는 ‘관인명민(寬仁明敏)’으로 규정해 놓았다. 이는 너그럽고 인자하면서도 현명하다는 뜻이다. 선덕여왕의 ‘관인명민’한 리더십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소위 ‘지기삼사(知幾三事)’의 고사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선덕여왕이 재위 당시 당나라에서 보낸 족자를 보고 이내 3가지 기미(機微)를 알아차린 것을 말한다. 모란꽃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옥문지(玉門池)에 개구리가 울자 백제 군사가 여근곡(女根谷)에 쳐들어온 것을 알았고, 임종 전에 본인이 언제 죽을지를 미리 알고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당부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는 물론 설화이기는 하나 그녀의 ‘관인명민’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크게 공감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박 전 대표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인명민’하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 원래 ‘관인명민’은 무사무욕(無私無欲)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욕(私欲)이 앞서는 사람은 인색한 까닭에 결코 관인(寬仁)할 수 없다. ‘관인’하지 못한 사람은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까닭에 암우(暗愚)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의 ‘무사무욕’한 행보는 그의 에세이집인 《결국 한 줌, 결국 한 줌》의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은 결코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그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바라보게 한다. 모든 만남은 이별로서 끝이 나고 모든 소유는 상실로서 끝이 난다. 이승은 영혼을 닦는 유일한 도장이라고나 할까.’

박 전 대표는 관세음보살과 같이 사물을 관조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무사무욕’에 입각한 순정(純正)한 구도자의 자세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여승(女僧) 묘심화가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소회가 뒷받침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박 의원을 처음 만났을 때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어쩌면 하얀 목련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자라는 느낌은 없었다. 성의 구별을 초월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랬다. 처음 보는 순간 박 의원은 관세음보살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미혼으로 있는 박 전 대표를 보고 묘한 동질감을 느낀 나머지 자신의 구도(求道) 의지를 투영시켜 구세(救世)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의 현현(顯現)으로 간주했을 공산이 크다.

원래 불가에는 수많은 보살이 있으나 관세음보살만큼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취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보살은 없다. 관세음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발로키테슈 바라(Avalokite vara)’이다. 이는 우주 삼라만상을 자유자재한 입장에서 관조(觀照)하여 살핀다는 뜻으로 ‘관자재(觀自在)’가 원의에 가깝다. 그러나 ‘관세음’ 역시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관자재’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표의 행보를 보면 관세음보살의 ‘중생제도’ 행보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이는 그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뒷받침한다.

‘곧 사라질 그것들을 위해 정신을 쏟다보니 정말 세상에 온 나그네의 참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닦고 잠시 머물다 가는 그 동안이라도 이 세상을 사람들이 살기에, 아니 머물기에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다 가는 인생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이는 온 세상의 중생이 제도될 때까지 헌신할 것을 다짐한 관세음보살의 서원(誓願)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의 대권 도전은 관세음보살의 서원을 현실 속에 구현코자 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는 이런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한 줌, 결국 한 줌》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위대한 일, 명예와 공이 따르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는 우선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속적인 권력과 공명(功名) 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무사무욕’의 자세가 약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가 얼마나 이상적인 통치관을 갖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찍이 맹자는 이같이 설파한 바 있다.

‘군자에게는 3가지 낙(樂)이 있다. 부모구존(父母俱存: 양친 모두 생존해 있음)·형제무고(兄弟無故: 형제가 아무 탈이 없음)가 일락( 一樂)이고,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음)·부부작어인(俯不 於人: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음)이 이락(二樂)이고, 득천하영재이교육(得天下英才而敎育: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함)이 삼락(三樂)이다. 군자에게는 이 세 가지 ‘낙’이 있을 뿐이다.’

박 전 대표가 언급한 내용은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 중 이락(二樂)에 해당한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용인술이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은 수신제가(修身齊家) 차원의 덕목일 뿐이다. ‘수신제가’의 덕목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인의 장막’에 갇혀 있지는 않는가
격동의 세월인 난세에는 힘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통치가 요망된다. 춘추전국시대에 법가(法家)와 병가(兵家) 등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역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많은 국민들은 여론조사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강력한 ‘경제리더십’을 원하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이 지지율에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게 그 증거이다. 이는 결코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 등의 개인적인 덕목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최근 개그맨 유재석 씨를 예로 들어 이같이 언급한 바 있다.

“유씨의 인기 비결은 무엇보다 가식이 없고, 진실되고, 사생활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진실되게 국민을 대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하여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질 수 있고 나라의 선진화도 앞당길 수 있다.”

과연 박 전 대표가 주장하듯이 사생활이 깨끗한 지도자는 응당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미·일·중·러 등 4강국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과연 이런 자세로 4강국과의 외교협상을 제대로 전개할 수 있을까. ‘사생활이 깨끗한 리더십’은 개인 차원의 수제(修齊)논리를 치평(治平)의 논리로 확대 해석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이런 논리는 ‘신뢰’와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참모와의 관계를 주군과 가신의 관계로 변질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대표 시절에 주변으로부터 이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신뢰하는 몇몇 사람에 둘러싸여 그들을 중심으로 일을 하는 ‘인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

‘관인명민’의 리더십을 발휘한 선덕여왕도 재위 기간 중 자신의 등극에 반대하거나 주저했던 많은 사람들을 적극 포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 바 있다. 당태종이 노골적으로 선덕여왕을 폄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박 전 대표가 ‘인의 장막’에 가려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도량으로 사방의 인재들을 두루 포용할 필요가 있다. 선덕여왕의 협애(狹隘)한 ‘관인(寬仁)’이 아닌 즉천무후의 굉활(宏闊)한 ‘관인’이 절실히 요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가 장차 사상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수신제가 차원의 덕목인 ‘신뢰’와 ‘원칙’ 이외에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차원의 덕목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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