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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더를 말한다 ⑧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코노믹리뷰 2007-05-09 13:21]

“決을 缺한 관용의 리더
君道냐 臣道냐 선택 갈림길에”

손학규 전 지사와 함께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그는 선량(善良)과 관용(寬容)이라는 뛰어난 리더십을 갖고 있지만 난세에는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데…

덩샤오핑(鄧小平)은 신언서판(身言書判)에서 볼품이 없었다. 그러나 결단력을 갖고 ‘카이팡(開方)’을 강력히 밀어붙임으로써 마오쩌둥을 능가하는 위대한 인물이 됐다. 우유부단한 김 전 의장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때 정동영 전 의장과 더불어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손꼽힌 인물이다. 그러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후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느낌을 주고 있다. 실제로 그의 행보를 보면 강력한 경쟁자인 손 전 지사에게 ‘중도개혁’의 대표주자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다.

원래 두 사람은 경기고와 서울대 동기로 오랫동안 절친한 친구로 지내왔다. 학창 시절에는 오히려 손 전 지사가 훨씬 강경한 노선을 걸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은 경원(敬遠)이다. 상호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비록 민주화운동을 함께 하기는 했으나 서로 뿌리가 다르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김 전 의장이 밝힌 다음과 같은 소회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손 전 지사와 나는 중요한 역사적 고비마다 선택을 달리 했다. 지난 1980년의 군부 쿠데타 때 나는 국민 속으로, 그는 공부하러 영국으로 갔다. 이후 그는 민자당에, 나는 정통야당인 민주당에 참여했다.”

민주화운동 도중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손 전 지사를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삶으로 일관한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는 취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오랫동안 범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거론된 자신의 입지를 보다 강화하겠다는 속셈이 선명히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자칫 민주화 투사의 경력을 구실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옹졸한 협량(狹量)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인권운동가 출신인 김 전 의장은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크게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아직까지 1% 안팎의 지지율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 증거이다. 이는 정치 초년생에 해당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에게 이보다 더 치명적인 지적은 상황 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실제로 적잖은 사람들은 현재 노정되고 있는 범여권의 지지부진한 신당통합 논의를 두고 그에게 책임의 일단을 묻고 있다. 정계개편을 주도할 만한 혜안과 결단력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나름대로 매우 뛰어난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선량(善良)과 관용(寬容)의 덕목이 그 것이다. 치세는 성군의 칭송을 받을 만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상황이 그의 이러한 덕목을 용납지 않고 있는 데 있다.

때 못 만난 선량과 관용의 리더십
난세에는 ‘선량’과 ‘관용’이 오히려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 《춘추좌전》(노소공 20년 B.C. 52))조에 이를 뒷받침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당시 가장 탁월한 정치가로 소문난 정(鄭)나라 재상 자산(子産)은 임종 전에 후임자인 유길(游吉)에게 이같이 당부한 바 있다.

“내가 죽게 되면 그대가 틀림없이 집정(執政)이 될 것이오. 진정한 유덕자(有德者)만이 관정(寬政)으로 백성을 복종시킬 수 있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맹정(猛政)으로 다스리느니만 못하오. 무릇 불은 맹렬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이를 두려워하므로 불에 타 죽는 사람이 많지 않소. 그러나 물은 유약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친근하게 여겨 쉽게 가지고 놀다가 이로 인해 매우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되오. 그래서 관정을 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오.”

자산이 몇 달 동안 앓다가 죽자 이내 유길이 집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차마 맹정을 펴지 못하고 관정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정나라에는 도둑이 기승해 마침내 환부지택(  之澤: 갈대가 무성한 못)에 무리 지어 살게 되었다. 유길이 크게 후회했다.

“내가 일찍이 자산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보병을 출동시켜 환부지택에 숨어 지내는 도둑들을 토벌하여 모두 죽여 버렸다. 그러자 도둑이 점차 뜸해졌다. 이를 두고 훗날 공자는 이같이 평했다.

“참으로 잘한 일이다. 정치가 관대해지면 백성이 태만해진다. 태만해지면 엄히 다스려 바르게 고쳐놓아야 한다. 정치가 엄하면 백성이 상해를 입게 된다. 상해를 입게 되면 관대함으로 이를 어루만져야 한다. 관이제맹(寬以濟猛: 관대함으로 백성들이 상처 입는 것을 막음)과 맹이제관(猛以濟寬: 엄정함으로 백성들의 태만함을 고침)으로 정치는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백성들이 이미 크게 지쳐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는 것이 거의 가하다네. 중원에 은혜를 베풀어 4방을 안무해야 하리”라고 했다. 이는 관정의 필요성을 말한 것이다. 또 “궤수(詭隨: 간사한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를 좇지 말고 조심하여 사악한 자 경계하세. 응당 구학(寇虐: 약탈하며 잔혹한 자)을 막아야 하니 그들은 일찍이 법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라네”라고 했다. 이는 맹정의 필요성을 말한 것이다.

이어‘“먼 곳을 안무하고 이웃과 가까이 하여 우리 국왕을 편안케 하리”라고 했다. 이는 화목으로 나라를 편히 할 필요성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다투거나 조급하지 않고, 강하지도 유하지도 않네. 정사가 뛰어나니 백록(百祿)이 모여드네”라고 했다. 이는 관정과 맹정이 잘 조화된 지극한 정치를 말한 것이다.

자산이 세상을 떠났을 때 공자는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말하기도 했다.

“그는 고인(古人)의 자혜(慈惠)를 이은 사람이었다.”

자산은 공자사상의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공자는 생전에 그를 만나지는 못했으나 깊이 사숙(私淑)했다. 자산이 공자에게 끼친 사상적 영향은 《논어》가 4개장에 걸쳐 공자가 자산을 극찬한 대목을 수록해 놓은 사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우유부단은 위정자의 치명적 약점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위정자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우유부단(優柔不斷)에 있다. 김 전 의장이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극히 치명적이다. 실제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 중에는 그의 관용이 열린우리당 내에서 친노세력의 발호와 사이비 개혁세력의 득세를 불러왔고, 이는 참여정권의 오만을 부추겨 마침내 지금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고금동서의 역사를 개관할 때 지도자에게 ‘우유부단’만큼 나쁜 것은 없다. 안타깝게도 김 전 의장은 바로 이런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가 대권에 대한 욕심을 거두고 뛰어난 최고통치권자를 만나 자신의 뜻을 펴고자 하는 신도(臣道)의 길을 걸을 요량이면 이는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오래 전부터 범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의 일원으로 거론되어 왔다.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는 보다 과감한 군도(君道)의 길을 걸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 2월 당대표로 있던 시절에 전당대회를 치른 뒤 이를 무사히 치른 사실 자체에 감격해하는 모습밖에 보이지 못했다. 천하대사를 읽는 그의 식견에 의문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많은 의원들의 탈당 러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해체까지 점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와해 직전에 있는 열린우리당의 대표가 되어 전당대회를 무사히 치른 사실에 자못 감격해 한 나머지 기자들 앞에서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성원이 안 돼 당이 난관에 부딪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지난 며칠 밤 오금이 저렸다. 전당대회장인 체육관이 텅 비는 꿈을 꿔 자다가 깨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반대로 해석할 경우 그가 얼마나 소심한 인물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난해 6월 당의장에 취임할 때 ‘독배’를 마시겠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대표를 마친 뒤 기자들 앞에서 당시의 심경을 이런 소어(笑語)로 대신한 바 있다.

“독배를 실제로 마셔보니 참으로 썼다.”

그가 비록 우스갯소리로 이같이 말하기는 했으나 당시 그의 각오는 처절한 바가 있었다. 의장직 사퇴서를 양복 안주머니에 늘 넣고 다닌 것이 그 실례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한 성실한 인물이다. 비록 지도력 부재라는 지적을 받기는 했으나 당의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향후 그의 행보는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그는 대선에 임하는 자신의 기본입장을 이같이 피력한 바 있다.

“민주주의 가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현재 나의 지지율은 매우 낮지만 모든 순간에 그곳에 있었던 것을 기약해 줄 것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으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식의 무모한 대선 행보는 결코 취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고고한 선비정신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축록전(逐鹿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자칫 삼국시대 당시의 원소(袁紹)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를 일이다.

본래 원소는 명문 출신인 데다가 용자(容姿)가 수려하고 나름대로 관인(寬仁)한 풍모까지 갖춰 그야말로 천하인의 신망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대의 모든 인사들이 원소에게 끈을 대기 위해 안달을 했다. 그야말로 모든 점에 한 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조조에게 무참히 패해 분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 그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삼국지》‘위서?원소전’에 그 해답이 나온다.

“원소는 위용(威容)과 기관(器觀: 그릇과 식견)이 있어 당세에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겉으로는 관대해 보였으나 내심 능력 있는 사람을 미워했고, 일을 꾸미기만 좋아할 뿐 결단력이 없었다.”

이 기록은 일면 높이면서도 일면 폄하하는 소위 ‘일포일폄(一褒一貶)’의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삼국지》의 이런 평가는 포(褒)보다는 폄(貶)에 무게를 두었다고 보아야 한다. 원소의 결정적인 약점은 바로 ‘호모무결(好謀無決)’에 있었다. 일을 꾸미기만 좋아할 뿐 결단력이 없는 것을 말한다. 난세를 구제코자 하는 사람으로 가장 결정적인 약점은 바로 ‘호모무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전 의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량’과 ‘관용’이 난세에서는 오히려 족쇄로 작용할 소지가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도자의 결단력 부족은 마치 전쟁터에 군사들을 이끌고 가 마침내 적군이 코앞에까지 닥치는 데에도 가장 좋은 상황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전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휘하 장졸들의 궤멸을 의미한다. 난세의 상황에서 통치자가 결단력을 결여하면 수많은 인민들이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설령 잘못된 결단을 내릴지언정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제2공화국 당시 장면(張勉) 총리는 도처에서 연일 시위가 일어나 자칫 나라가 전복될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데도 이를 만연히 대처하다가 끝내 패퇴하고 말았다. 그는 훗날 권좌에서 물러난 뒤 《사실의 전부를 기술한다》라는 자서전을 통해 이같이 변명한 바 있다.

“국민이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은 민주당의 기본정책이었다. 국민이 혼돈을 미워하고 자유의 부산물을 미워하게 될 때 건전한 자유는 가능한 것이다.”

그의 말은 원론적으로 보면 나무랄 수 없다. 전 국민이 혼돈을 미워하여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 때 사실 ‘건전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나라가 결단나게 되는 것은 어찌할 것인가. 모든 통치행위는 당시의 상황과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국민 전체의 삶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소위 ‘족식(足食)’의 문제가 일차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한다. ‘족식’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예절도 알고 문화도 정립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 및 자유와 같은 이념도 그 이후에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족식’의 당장 급한 상황에서 민주와 자유 자체가 국민들의 삶을 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래 원소는 소위 ‘풍도(風度)’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지녔다. ‘풍도’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통치자에게는 ‘신언서판’보다도 더욱 중요한 덕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결(決)’이다. ‘결’은 난세의 상황에서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풍도’가 뛰어난 인물을 들라면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들 수 있다. 그는 뛰어난 외교가이자 재상이었다. 저우언라이를 삼국시대의 인물에 비유하면 제갈량에 가장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우언라이의 뛰어난 ‘풍도’는 강력한 결단력을 지닌 마오쩌둥(毛澤東)이 있었기 때문에 빛날 수 있었다. 마오쩌둥은 ‘풍도’ 면에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결단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결합이 오늘의 중국을 만든 결정적인 배경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두 사람이 죽은 후 현대 중국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을 들라면 덩샤오핑(鄧小平)을 들 수 있다. 덩샤오핑의 경우는 사실 ‘풍도’ 면에서 보면 볼품이 없었다. 그는 ‘풍도’면에서 볼 때 결코 정상에 오를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지존의 자리에 올라 소위 ‘카이팡(開方)’을 강력히 밀어붙임으로써 현대 중국사에서 마오쩌둥을 능가하는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이는 바로 그의 결단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덩샤오핑의 경우 ‘풍도’는 저우언라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결단력만큼은 뛰어났던 것이다. 이는 삼국시대 당시 사마의(司馬懿)의 모습을 닮은 것이기도 하다. ‘풍도’ 면에서 볼품이 없었던 사마의는 칭병(稱病)하여 몸을 낮추고 있다가 당대의 권신인 조상(曹爽)의 전횡이 극에 이르렀을 때 일거에 반격을 가해 조씨 일당을 궤멸시킨 뒤 권력을 틀어쥐었다.

덩샤오핑 역시 소위 ‘샤팡(下方)’으로 인해 한때 시골의 공장에서 공원으로 근무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때를 기다리며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장칭(江靑)을 위시한 사인방(四人幇)의 전횡이 극에 이르렀을 때 일거에 사인방을 때려눕히고 중앙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리더는 신언서판과 결(決)을 겸비해야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아무리 뛰어난 ‘풍도’를 갖춘 인물일지라도 ‘결’을 갖추지 못할 경우 난세에서는 결국 패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신언서판’과 ‘결’을 동시에 구비한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김 전 의장의 행태를 보면 여러 면에서 원소와 사뭇 닮아 있다. 그는 지나치게 ‘올바른 정치’라는 명분에 얽매여 있다. 그가 현재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는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범여권의 대통합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4·25재보선에서 드러났듯이 열린우리당의 해체가 대세로 굳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은 김 전 의장이 하기에 달려 있다. 나름대로 결단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난세에 ‘선량’과 ‘관인’을 시종 자신의 미덕으로 삼고자 하면 군도(君道) 대신 신도(臣道)를 취하는 게 타당하다. 신도의 길을 걸으면서 대선 레이스에 참여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가 끝내 본선에 나서게 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그가 최소한 이번 대선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신고
다시 리더를 말한다 ⑤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이코노믹리뷰 2007-03-27 22:36] (고전전문가인 신동준씨가 이코노믹리뷰에 기고한 손학규전 경기지사의 리더십 분석 칼럼입니다. )


飛龍의 고육책인가
보따리장수의 궁여지책인가

탈당이 과연‘비룡재천’의 고육책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궁여지책이 될지는 전적으로 그의 행보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한나라당의 관계는‘계륵(鷄肋)’에 비유할 수 있다.
버리기는 아까우나 이내 버려도 아무 탈이 없는 관계인 셈이다.

한나라당이 자랑하는‘빅3’ 중 한 사람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마침내 탈당을 결행했다. 나흘간에 걸친 ‘산사(山寺)구상’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무능한 진보’와 ‘수구 보수’를 혁파키 위한 ‘중도개혁’ 세력의 결집이다. 그는 백범기념관에서 가진 탈당 기자회견에서 “현 상태로는 정당의 건강한 자기혁신과 미래지향적인 정치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그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한나라당은 원래 민주화세력과 근대화세력이 30년 군정을 종식시키기 위해 만든 정당의 후신이지만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지난 14년 동안 몸을 담고 있었던 친정에 거친 독설(毒舌)을 퍼부은 셈이다. 그는 자신의 탈당행보를 두고 최근의 인기드라마 ‘주몽’을 예로 들어 주몽의 고구려 건국 행보에 비유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탈당 시기 등을 감안할 때 “정치의 기본 틀을 바꾸는 데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탈당을 선택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중도개혁 세력 정치세력화 가능할까
그럼에도 정작 문제는 손 전 지사의 행보를 단순히 궁여지책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다는 데 있다. 우선 그의 탈당을 계기로 대선 정국이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경선이 반쪽짜리로 치러질 공산이 커졌다.

이는 한나라당의 집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도 한나라당은 압도적인 국민지지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빅2’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경선을 무사히 치를 경우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아무리 열린우리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단장하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위기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손 전 지사가 기대하는 중도개혁 세력의 정치세력화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탈당 직전에 손 전 지사는 국민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2위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크게 밀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일각에서 손 전 지사의 ‘리더십 부재’를 운위한 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그의 성향이 한나라당의 보수성향과 잘 부합하지 않는 사실과 결코 무관치 않다. 이는 최근 한 논객이 한나라당 내에 머물고 있던 손 전 지사를 두고 ‘금의야행(錦衣夜行)’으로 평가한 사실을 통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금의야행’은 말 그대로 ‘밤에 비단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이는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로 원문에는 ‘의수야행(衣繡夜行)’으로 되어 있다.

일찍이 초한전(楚漢戰) 당시 항우는 유방에 앞서 진(秦)제국의 도성인 함양(咸陽)으로 쳐들어가 아방궁(阿房宮)을 비롯하여 모든 궁전을 불사른 뒤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부하 한 사람이 이같이 간했다.

“이곳 진나라 땅은 사방이 험한 산으로 막히고 땅이 기름지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잿더미로 변한 함양에 더 이상 머물기가 싫었던 항우는 속히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고 싶은 나머지 이같이 일갈했다.

“부귀하게 되어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 그리하면 과연 그 누가 나를 알아 볼 수 있겠는가.”

《한서(漢書)》는 《사기》의 이 대목을 그대로 옮기면서 ‘의수(衣繡)’를 ‘의금(衣錦)’으로 바꿔 놓았다. 이것이 훗날 바뀌어 ‘금의야행’이라는 성어로 굳어진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 있는 손 전 지사의 존재의미를‘금의야행’으로 표현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에 머무는 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 전 지사의 탈당은 ‘금의야행’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의사인 셈이다.

원래 손 전 지사로서는 경선 룰에 대대적인 수술을 가하지 않는 영남을 중심으로 한 당내 보수세력의 협조를 기대키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10% 미만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손 전 지사는 이 전시장과 박 전 대표 등의 소위 ‘빅2’에게 결코 위협요인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손 전 지사가 ‘빅2’로부터 끊임없는 구애를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빅2’의 입장에서 볼 때 손 전 지사를 자신들의 ‘러닝메이트’로 삼을 경우 보수세력의 표를 확고히 다진 가운데 중도세력의 표까지 유인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원래 손 전 지사는 비록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지지도 조사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전문가 그룹인 기자들과 중소기업인의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늘 1위를 차지해 왔다. 그는 비록 젊은 날에 극좌이론에 함몰된 것이 사실이나 훗날 이를 모두 학문과 경국(經國)의 이론으로 승화시킨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치인에 가깝다. 그는 지난 2000년에 펴낸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에서 이같이 술회한 바 있다.

“나는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시절에 급진적인 이념과 사고를 지녔다. 정부홍보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경제도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망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북한까지도 정부가 선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악독하고 처참한 사회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의 통치리더십과 관련한 혜안은 지난 대선 때 이회창 후보는 촛불시위에 참석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는 오히려 미군을 위문하러 간 대목에서 약여하게 드러나고 있다.

폭넓은 시야와 탁월한 분석능력을 겸비한 ‘안보리더십’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좌우를 넘나들며 다양한 삶을 체득한 손 전 지사의 역정을 고려할 때 그가 지닌 경륜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교육자 집안 출신인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와 같은 귀족적인 냄새가 전혀 없다. 기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그를 두고 ‘꿈과 현실이 조화를 이룬 인물’로 평가하며 선호하는 대선 주자 1위로 꼽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본래 모습에 가까운 장(場)을 찾아낼 경우 얼마든지 새로운 상황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엘리트지만 귀족적인 냄새는 안나
만일 손 전 지사가 중도개혁 세력의 세 결집에 성공할 경우 이번 대선은 기본적으로 보수-중도개혁-진보의 대결구도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이는 한나라당-중도개혁 세력 중심의 범여권-민주노동당 및 친노계열 간의 대결을 의미한다. 현재 적잖은 사람들은 손 전 지사가 중도개혁을 기치로 제3의 길을 선택할 경우 중도를 선호하는 여러 세력들의 화학적 대결집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나라당 수뇌부가 손 전 지사의 이탈을 계기로 자칫 보수-중도개혁-진보의 대결구도가 형성될까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우려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지난 1997년의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조순 씨와의 통합을 계기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었으나 결전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박찬종 씨의 반발을 막지 못해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2002년의 대선에서 이 후보는 또다시 주변의 만류에 귀가 솔깃한 나머지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연대를 포기함으로써 충청권의 이탈을 막지 못해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손 전 지사의 탈당 행보는 한나라당 수뇌부로 하여금 과거의 악몽을 상기토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엄밀히 볼 때 이번 대선 정국은 손 전 지사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삶이 이론과 실천, 보수와 개혁, 좌파와 우파, 이상과 현실, 지조와 타협이 하나로 통합돼 있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현재 그의 지지율은 극히 낮지만 ‘중도개혁’의 상징으로 부상한 그가 흡인해낼 수 있는 잠재적인 지지층은 결코 간단치 않은 것이다. 그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손 전 지사와 한나라당의 결별은 일찍이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이는 ‘계륵(鷄肋)’에 비유할 수 있다. 이는 버리기는 아까우나 이내 버려도 아무 탈이 없는 관계를 뜻한다.

삼국시대 당시 조조(曹操)는 서촉(西蜀)의 유비(劉備)를 제압한 뒤 이내 서촉에서 발원하는 장강(長江)을 따라 강남으로 쳐내려가 손권(孫權)마저 굴복시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고자 했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서촉의 관문인 한중(漢中)으로 쳐들어갔으나 의외로 유비의 강력한 저항으로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중을 포기하고 철수하자니 애석하기 그지없고,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전진하자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조는 이내 결단하여 한중의 군사를 모두 거두어 장안(長安)으로 철군키로 했다. 그는 드디어 철군의 결심이 서자 야간의 군호(軍號)를 ‘계륵’으로 정했다. 《삼국지》무제기(武帝紀)의 주(注)에 인용된 ‘구주춘추(九州春秋)’는 ‘계륵’이라는 군호가 결정된 당시의 배경을 이같이 기록해 놓았다.

“위왕(魏王) 조조가 환군할 생각으로 군호를 ‘계륵’으로 정했다. 관속(官屬)들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이때 행군주부(行軍主簿) 양수(楊修)가 곧 행장을 수습해 돌아갈 준비를 하자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묻기를, ‘어떻게 환군할 것을 알았소’라고 했다. 이에 양수가 대답키를,‘무릇 계륵이란 것은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맛이 없는 것이오. 이는 한중을 비유한 것이오. 군호를 보고 대왕이 환군코자 하는 것을 알게 되었소’라고 했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는 조조의 심중을 헤아린 양수가 이내 죽음을 당한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삼국시대 당시 조조는 버리기 아까운 한중을 과감히 포기하고 철군을 결정했다. 그의 이런 결정이 현명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손 전 지사 역시‘계륵’에 해당하는 한나라당을 과감히 이탈하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손 전 지사에게 한나라당은 계륵?
그의 결단은 《주역》건괘(乾卦)의 구사(九四) 효사(爻辭)에 비춰볼 때 시의적절한 것이기도 하다. 《주역》은 비룡(飛龍)이 되기 직전 단계에 있는 용이 모습을 ‘혹약재연(或躍在淵) 진무구(進无咎)’로 표현해 놓았다.

‘혹약재연’은 용이 연못 위로 뛰어오르거나 연못 속으로 물러나기를 거듭하면서 하늘로 뛰어오르지도 못하고 연못 속으로 깊이 숨지도 못하는 불안한 상황을 지칭한 것이다. ‘진무구’는 전진을 결행해도 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공자는 이같이 풀이했다.

“현자(賢者)의 지위가 오르내림이 무상한 것은 사악(邪惡)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진퇴(進退)가 일정치 않은 것 또한 무리를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군자의 진덕수업(進德修業)은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는데 있다. 그래서 ‘무구’라고 한 것이다.”

‘혹약재연’의 ‘혹(或)’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래로 지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가운데로 인간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을 말한 것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라도 의혹(疑惑)이 뒤따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과 맺은‘계륵’의 관계는 바로 ‘혹약재연’에 비유할 수 있다. ‘진무구’는 어떤 길을 선택할지라도 험로(險路)를 걸을 수밖에 없으나 큰 허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고래로 ‘비룡재천(飛龍在天)’으로 나아간 모든 인물은 결정적인 시기에 결단을 유예(猶豫)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주역》은 이를 ‘진무구’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비룡재천’을 꿈꾸고 있는 손 전 지사 역시 나름대로 ‘진무구’의 노선을 선택한 셈이다. 실제로 그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진무구’를 선택한 자신의 심경을 이같이 밝힌 바 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심정으로 새로운 정치질서 창조의 길에 저 자신을 던지고자 한다.”

이는 한나라당을 새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던 당초의 의도가 실패로 끝났음을 자인한 것인 동시에 새로운 정치질서의 구현을 위해 온 몸을 내던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탈당 직전에 언급한 ‘백천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이 말은 뜻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정진한다는 불가(佛家)의 화두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에서는 통상 ‘백척간두, 갱진일보(更進一步)’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이미 충분히 향상했으나 다시 더욱 분발하여 앞으로 나아가다’의 뜻으로 불가 화두의 원의에 가깝다. 우리말의 ‘백척간두’가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로 올라가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과는 정반대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으나 단지 시기의 선택을 놓고 고민했다는 뜻으로 이 말을 한 셈이 되었다.

현재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찬반여론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볼 때 ‘비룡재천’의 뜻을 세운 사람에게 탈당에 따른 비난은 큰 문제가 아니다. 잠룡(潛龍)이 그 모습을 드러낸 현룡(見龍)이 된 뒤 ‘비룡’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은 법이다.

‘비룡재천’의 관건은 결정적인 시기에 결단을 내리는 데 있다. 결단을 유예할 경우 ‘비룡재천’의 기회를 다시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은 일단 ‘비룡재천’의 기회를 잡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질서 실현 여부 미지수
현재로서는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가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옳다. 이는 그가 탈당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정치질서의 창조’를 화두로 내세운 사실을 통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겠다’며 기존의 정당과 정파를 ‘낡고 무능한 집단’으로 싸잡아 비판한 그가 그들에게 구애의 손짓을 보내는 것은 곧 탈당의 취지를 무색케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 정황을 감안할 때 대략 그는 일단 시민사회세력과 손을 잡는 방식을 통해 중도개혁 세력의 입지를 서서히 확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탈당 직전에 중도개혁성향의 제3정치세력인 ‘전진코리아’의 창립대회에 참석해 “새로운 정치질서의 출현을 위해 그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역설한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말한 ‘새로운 정치질서’는 말할 것도 없이 중도개혁 세력의 대통합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손 전 지사가 기대하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그의 구상대로 실현될지 여부를 점치기가 힘들다. 그가 ‘드림팀’의 일원으로 언급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모두 현재까지는 손 전 지사의 이런 구상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잠재적인 우군인 범여권의 반응이 환영일색인 것만도 아니다. 나아가 소위‘이인제 학습효과’등을 감안할 때 10% 미만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한 그의 탈당이 중도개혁 세력 결집의 기폭제로 작용키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 또한 만만치 않다.

그의 탈당이 과연‘비룡재천’의 고육책이 될지, 아니면‘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궁여지책이 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그가 앞으로 어떻게 행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 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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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한미 FTA, 중산층 붕괴 초래”

[이코노믹리뷰 2006-06-16 08:36]지난해 이해영 한신대국제관계학부 교수가쓴 책입니다. 이교수는 한미FTA에 대해 늘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해 왔는데요. 협상이 막바지 고비를 향해 달리고 있는 지금 그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보시죠)


● Book

낯선 식민지, 한미 FTA | 이해영/ 메이데이

한미 FTA 옹호논리를 반박한 학술서. 저자는 FTA가 대미종속 심화, 성장 잠재력 약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에서나 등장할 법한 ‘식민지’라는 단어가 눈길을 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다.

FTA야말로 두 나라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상생(相生)의 길이라고들 하는 데, 저자는 왜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것일까.

저자인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의 주장은 크게 세 갈래다. 우선 한미 FTA가 우리 경제를 미국의 초국적 자본에 예속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는 빗장을 대거 풀게 되는 국내 서비스나 농업 부문이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미국 기업의 공세를 견뎌낼 수 있을 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특히 외환 위기 이후 규제 장벽을 낮춘 국내 금융시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개방은 국민 경제의 성장 잠재력 약화, 국부 유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 교수가 이번 자유무역협정을 사실상 한미 두 나라의 수직적 경제 통합 협정이 될 것으로 단언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협정이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저자가 보기에는 논리의 비약이다. FTA 체결이 수출과 고용 증가라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정부 주장은 검증을 거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수년째 한국경제를 괴롭히는 고용 없는 성장의 추세가 FTA 협정 체결로 바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 특히 법률·회계 등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서비스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져도 전체적인 고용증대가 아니라, 소수의 국내 고급 인력들의 고용을 늘리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양국간 교역량 및 수출 증가 등 가시적 성과를 배제할 수는 없다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

이 교수는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의 후생 수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중요한 협정이 충분한 사전 논의 과정을 생략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그가 이번 ‘자유무역 협정’의 성격을 고도로 정치적이라고 보는 배경이기도 하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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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더를 말한다 ④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코노믹리뷰 2007-03-15 17:48](고전 전문가인 신동준씨가 이코노믹리뷰에 기고한 대권주자 리더십 분석 시리즈 '다시 리더를 말한다' 의 하나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신동준씨는 한겨레신문, 조선일보 등에서 정치부 기자생활을 했으며, 지금은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장학퀴즈를 석권한 수재이기도 한데, 참고로 신동준씨의 주장은 이코노믹리뷰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

“수신제가는 이뤘는데 치국평천하는 과연…”

강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인 박근혜 전 대표. 여론지지도는 이명박 전 시장보다 뒤지고 있으나 당심(黨心)만큼은 앞서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신뢰’와‘원칙’을 내세워 수신제가에는 성공한 것 같은데, 과연 사생활이 깨끗한 지도자는 응당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사상 최초로 부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수신제가 차원의 덕목인 ‘신뢰’와 ‘원칙’ 이외에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차원의 덕목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더불어 한나라당의 자랑이다.

현재 박 전 대표 측은 비록 여론지지도에서는 이 전 시장에게 뒤지고 있으나 당심만큼은 이 전 시장을 10% 넘게 앞서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는 2∼3주 간격으로 실시하는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이 전 시장 측도 결코 경선 승리를 낙관할 수만도 없다. 이 전 시장 측이 일반인들의 참여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싶다.

신실한 사람 알아보는 지인지감(知人之鑑) 지녀
사실 박 전 대표 측이 당심의 우위를 주장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실(信實)한 사람을 능히 알아보는 특유의‘지인지감(知人之鑑)’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사람을 쓸 때 섣불리 판단하거나 선입견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당사자의 이모저모를 유심히 관찰한 뒤 나름대로 판단이 섰을 때 비로소 손을 내민다. 또한 일단 신뢰를 보낸 사람에게는 결코 도중에 그 신뢰를 거둬들이는 일이 없다.

박 전 대표가 구사하는 용인술의 특징은 대략 ‘신뢰’와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주변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재를 포진시켜 수시로 자문을 받고, ‘원칙’에 입각해 자신에게 불리할지도 모를 조기경선에 동의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박 전 대표가 배신자에 대한 응징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신뢰’와 ‘원칙’에 대한 신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괴한의 피습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와중에 “대전은요?”라고 물은 뒤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대전으로 내려가 역전승을 일궈 냄으로써 한나라당을 배반한 염홍철 전 시장을 응징한 것이 그 실례이다.

박 전 대표가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부친이 최측근이었던 김재규의 돌연한 배신으로 급서하고 자신 또한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등의 뼈저린 경험이 이런 용인술의 근인(根因)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곧 ‘신뢰’와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교언영색(巧言令色)’과 ‘면종복배(面從腹背)’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그의 한 측근은 “얄팍한 수를 쓰거나 잘 보이려고 애쓰는 이들의 속셈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말로 그 특징을 요약한 바 있다.

용인술은 신뢰·원칙…선덕여왕과 흡사
이제마(李濟馬)의 사상론(四象論)에 비춰볼 때 박 전 대표의 이런 용인술은 그가 전형적인 소음(少陰)체질인 사실과 무관치 않다. 소음체질은 본래 ‘당여(黨與)’에 능하다. ‘당여’는 사석에서의 담론을 즐기며 주변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물을 포진시키는 일련의 행보를 말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 형의 인물은 대개 소음인이다. 이들은 머리가 총명하고 판단력이 빨라 조직을 만드는 데 장기를 발휘한다. 박 전 대표가 바로 이런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당여’에 능한 대표적인 인물로 삼국시대의 제갈량(諸葛亮)을 들 수 있다. 제갈량은 ‘지감’에 뛰어나 사람의 현부(賢否)를 잘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사적인 자문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병법에 조예가 깊었던 마속(馬謖)을 곁에 두고 늘 병법과 관련한 사담을 즐기며 총애한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그는 마속이 군령(君令)을 어겨 패배를 자초했다는 이유로 눈물을 흘리며 소위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단행했다.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어긴 데 따른 가차없는 응징을 가한 것이다. 그가 오장원(五丈原)에서 진몰(陣沒)하기 직전에 위연(魏延)의 배반 가능성을 예상하고 강유(姜維)에게 미리 대비책을 일러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국시대 당시 진수(陳壽)는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이같이 평해 놓았다.

“공명(孔明)의 위정(爲政)과 형벌은 준엄했지만 촉나라 백성은 아무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공평하고 상벌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갈량이 뛰어난 인재에 대해서는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자문을 구하는 등 한없는 ‘신뢰’를 보내지만 일단 자신이 내세운 ‘원칙’을 어길 경우 가차없이 베어버린 것을 칭송한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주변에 자신이 대표로 있던 시절에 기용한 인물을 포진시켜 끝없는 ‘신뢰’를 확인시키면서 ‘원칙’에 입각해 조기경선의 결단을 내린 것도 제갈량의 이런 행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성의 신분으로 지존의 자리에 올라 ‘신뢰’와 ‘원칙’의 용인술을 구사한 인물로 신라시대 중기의 선덕여왕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은 재위 16년 동안 안팎으로 커다란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해내 마침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는 점에서 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신라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 등이 모두 그녀의 치세 하에서 입신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한 기본철학이 바로 ‘신뢰’와 ‘원칙’ 이었다.

선덕여왕이 보위에 오를 당시만 하더라도 신라의 귀족들은 물론 중국의 당나라조차 여왕의 존재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삼국사기》‘선덕왕본기 12년조’에 따르면 당시 신라 사신을 맞은 당태종(唐太宗)은 거만하게도 이같이 말한 바 있다.

“너의 나라는 부인을 군주로 삼은 까닭에 주위 나라들이 무시하고 있다. 이는 군주 없이 적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 내가 장차 종친 한 사람을 보내 신라왕을 삼고자 하나 그가 홀로 가서 신라왕 노릇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땅히 군사를 보내 보호하고자 한다.”

중국사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명군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당태종도 군사출동을 간청하는 선덕여왕의 ‘걸사(乞師)’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 군왕에 대한 폄하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당시까지 여황제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당태종 사후 그의 후궁 출신이 전무후무한 여황제인 즉천무후(則天武后)로 즉위해 당태종 자신도 이루지 못한 고구려 정복의 대업을 이룬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당태종은 선덕여왕을 얕볼 입장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신라는 선덕여왕이 보위에 오를 당시 안팎으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백제의 의자왕이 선왕 때 잃은 한강 유역의 땅을 되찾기 위해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연계해 신라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이때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 등을 적극 활용해 이 위기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훗날 김춘추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도록 만드는 디딤돌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지난 2004년 초 탄핵역풍 속에서 난파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을 떠맡아 그해 5월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이끌어냄으로써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킨 일에 비유할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의 의원 및 당원들은 박 전 대표로부터 크고 작은 은덕을 입은 셈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올해 말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이는 박 전 대표의 전공(前功)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가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선덕여왕과 사뭇 닮아 있다. 선덕여왕은 재위 기간 중 결국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설령 결혼을 했을지라도 남편이 일찍 죽어 이후 재혼치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리더십 면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유사한 면을 보이고 있다.

선덕여왕의 리더십을 두고 《삼국사기》는 ‘관인명민(寬仁明敏)’으로 규정해 놓았다. 이는 너그럽고 인자하면서도 현명하다는 뜻이다. 선덕여왕의 ‘관인명민’한 리더십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소위 ‘지기삼사(知幾三事)’의 고사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선덕여왕이 재위 당시 당나라에서 보낸 족자를 보고 이내 3가지 기미(機微)를 알아차린 것을 말한다. 모란꽃에 벌과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옥문지(玉門池)에 개구리가 울자 백제 군사가 여근곡(女根谷)에 쳐들어온 것을 알았고, 임종 전에 본인이 언제 죽을지를 미리 알고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당부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는 물론 설화이기는 하나 그녀의 ‘관인명민’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크게 공감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박 전 대표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인명민’하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 원래 ‘관인명민’은 무사무욕(無私無欲)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욕(私欲)이 앞서는 사람은 인색한 까닭에 결코 관인(寬仁)할 수 없다. ‘관인’하지 못한 사람은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까닭에 암우(暗愚)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의 ‘무사무욕’한 행보는 그의 에세이집인 《결국 한 줌, 결국 한 줌》의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은 결코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그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바라보게 한다. 모든 만남은 이별로서 끝이 나고 모든 소유는 상실로서 끝이 난다. 이승은 영혼을 닦는 유일한 도장이라고나 할까.’

박 전 대표는 관세음보살과 같이 사물을 관조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무사무욕’에 입각한 순정(純正)한 구도자의 자세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여승(女僧) 묘심화가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소회가 뒷받침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박 의원을 처음 만났을 때 하얀 연꽃이 핀 줄 알았다. 어쩌면 하얀 목련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자라는 느낌은 없었다. 성의 구별을 초월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랬다. 처음 보는 순간 박 의원은 관세음보살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미혼으로 있는 박 전 대표를 보고 묘한 동질감을 느낀 나머지 자신의 구도(求道) 의지를 투영시켜 구세(救世)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의 현현(顯現)으로 간주했을 공산이 크다.

원래 불가에는 수많은 보살이 있으나 관세음보살만큼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취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보살은 없다. 관세음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발로키테슈 바라(Avalokite vara)’이다. 이는 우주 삼라만상을 자유자재한 입장에서 관조(觀照)하여 살핀다는 뜻으로 ‘관자재(觀自在)’가 원의에 가깝다. 그러나 ‘관세음’ 역시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관자재’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표의 행보를 보면 관세음보살의 ‘중생제도’ 행보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이는 그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뒷받침한다.

‘곧 사라질 그것들을 위해 정신을 쏟다보니 정말 세상에 온 나그네의 참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닦고 잠시 머물다 가는 그 동안이라도 이 세상을 사람들이 살기에, 아니 머물기에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다 가는 인생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이는 온 세상의 중생이 제도될 때까지 헌신할 것을 다짐한 관세음보살의 서원(誓願)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의 대권 도전은 관세음보살의 서원을 현실 속에 구현코자 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는 이런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한 줌, 결국 한 줌》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위대한 일, 명예와 공이 따르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는 우선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속적인 권력과 공명(功名) 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무사무욕’의 자세가 약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가 얼마나 이상적인 통치관을 갖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찍이 맹자는 이같이 설파한 바 있다.

‘군자에게는 3가지 낙(樂)이 있다. 부모구존(父母俱存: 양친 모두 생존해 있음)·형제무고(兄弟無故: 형제가 아무 탈이 없음)가 일락( 一樂)이고,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음)·부부작어인(俯不 於人: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음)이 이락(二樂)이고, 득천하영재이교육(得天下英才而敎育: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함)이 삼락(三樂)이다. 군자에게는 이 세 가지 ‘낙’이 있을 뿐이다.’

박 전 대표가 언급한 내용은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 중 이락(二樂)에 해당한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용인술이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은 수신제가(修身齊家) 차원의 덕목일 뿐이다. ‘수신제가’의 덕목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인의 장막’에 갇혀 있지는 않는가
격동의 세월인 난세에는 힘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통치가 요망된다. 춘추전국시대에 법가(法家)와 병가(兵家) 등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역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많은 국민들은 여론조사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강력한 ‘경제리더십’을 원하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이 지지율에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게 그 증거이다. 이는 결코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 등의 개인적인 덕목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최근 개그맨 유재석 씨를 예로 들어 이같이 언급한 바 있다.

“유씨의 인기 비결은 무엇보다 가식이 없고, 진실되고, 사생활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진실되게 국민을 대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하여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질 수 있고 나라의 선진화도 앞당길 수 있다.”

과연 박 전 대표가 주장하듯이 사생활이 깨끗한 지도자는 응당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미·일·중·러 등 4강국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과연 이런 자세로 4강국과의 외교협상을 제대로 전개할 수 있을까. ‘사생활이 깨끗한 리더십’은 개인 차원의 수제(修齊)논리를 치평(治平)의 논리로 확대 해석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이런 논리는 ‘신뢰’와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참모와의 관계를 주군과 가신의 관계로 변질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대표 시절에 주변으로부터 이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신뢰하는 몇몇 사람에 둘러싸여 그들을 중심으로 일을 하는 ‘인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

‘관인명민’의 리더십을 발휘한 선덕여왕도 재위 기간 중 자신의 등극에 반대하거나 주저했던 많은 사람들을 적극 포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 바 있다. 당태종이 노골적으로 선덕여왕을 폄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박 전 대표가 ‘인의 장막’에 가려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도량으로 사방의 인재들을 두루 포용할 필요가 있다. 선덕여왕의 협애(狹隘)한 ‘관인(寬仁)’이 아닌 즉천무후의 굉활(宏闊)한 ‘관인’이 절실히 요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가 장차 사상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수신제가 차원의 덕목인 ‘신뢰’와 ‘원칙’ 이외에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차원의 덕목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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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기자가 직접 참가한 GE-맥킨지 리더십 교육현장

[이코노믹리뷰 2006-06-28 08:42](글로벌 기업들의 리더십 교육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저는 작년에 이화여대에서 열린 맥킨지와 GE의 리더십 교육현장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두 회사 모두 명성이 자자한 글로벌 기업이다 보니,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도 상당히 컸지요. 

첫인상은 뭐 국내 기업들의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을 떠올린다고 할까요. GE의 교육프로그램이 국내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다보니,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익히 보아온 내용들이 주류를 이뤘죠. 참가자들간에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됐고, 팀별 협동심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눈에 띄었습니다.

정작 관심을 끈 것은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GE의 FMP들이었습니다.이 회사에서 미래의 제프리 이멜트나 잭웰치로 키우려고 선발하는 우수사원들인데요. 사관생도에 비유해야 할까요. 출발선부터 일반 직원들과는 다른 이들을 뽑아서 그룹을 이끌 동냥으로 육성하겠다는 포석입니다.

이 기사를 내고 난 뒤 맥킨지쪽 담당자에게 강한 항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두 회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 GE리더십교육현장이라는 제목으로 나갔다는 거였습니다.( 기사 서두에 등장하는 제목은 나중에 수정을 한 겁니다. ) 글로벌 기업들은 자부심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뭐, 좋은 현상이겠죠.



남학생은 과외선생님, 여학생은 학부모
과외비 협상하며 리더십 배운다

“협상에 나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한 협상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신촌에 위치한 이화여대 교정. 기자가 방문한 포스코관의 한 강의실에서는 제너럴일렉트릭(GE)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20대 남녀 대학생 여덟 명이 두 팀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주고받고 있었다. 각 팀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설전을 벌이면서 교실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시험 일정이 겹쳐 한 강좌의 기말고사 시험 일정을 바꾸고자 하는 대학생과, 문제 유출을 염려해 일정 변경을 수용하지 않는 교수, 주요 프로젝트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휴가를 내려는 팀원과 이를 말리는 팀장, 그리고 자료 제출요구를 놓고 사내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두 여직원….

대부분이 쉽게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과제들인 데, 참가자들이 어렵사리 합의를 도출해도 즉석에서 새로운 과제가 다시 부여되기도 한다. 한동안 옥신각신하던 한 참가 그룹의 ‘역할 분담 게임’이 끝나자, 진행자인 맥킨지의 1년차 컨설턴트인 윤정숙씨가 또 다른 과제를 부여한다.

“과외비를 협상해 보세요. 남학생이 과외 선생님을, 그리고 여학생이 학부모를 담당해 보세요.”남학생 참가자인 지상현씨가 한 달 과외비로 50만원을 받고자 원하는 과외 교사를. 그리고 여성 참가자인 김초롱씨가 학부모 역할을 각각 맡았고, 잠시 후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주고, 50만원을 받고 싶습니다.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과외교사 역)”“과외비를 성과급으로 지급했으면 좋겠어요. 우선 이번 달에는 30만원을 드리고 아이 성적에 따라 급여를 다시 책정해 나가고 싶네요. 받아드리실 수 있죠. (학부모 역)”

학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 여학생의 태도가 자연스러워서인지,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보가 터진다. 두 사람의 설전이 오가는 동안 나머지 학생들은 이들의 대화 습관이나, 논리상의 맹점, 그리고 태도를 일일이 모니터 한 뒤 느낀 점을 전해준다.

한 남학생이 “과외비를 성과급으로 책정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았다”고 지적하자, 여학생이 “성과급으로 하지 않으면 대학생들이 열심히 가르치겠냐”고 반문한다. 고등학교 교사인 어머니가 실제로 과외선생들에게 성과급을 관철시켜 효과를 보았다는 게 그녀의 전언.

맥킨지의 윤정숙 컨설턴트는 “협상에 나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한 협상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한다”며 전문적인 조언을 건네기도.

역할 분담 게임이 끝나자, 참가 학생들은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신문지를 오려 붙여 만든 바퀴로 경주를 하며 이틀 동안 다진 팀워크를 테스트 받는 데, 일등을 한 팀에게는 상당한 경품이 주어진다고.

문제해결 능력+협동심 고취
리더십 사관학교로 불리는 제너럴 일렉트릭과 맥킨지가 공동 진행하는 이번 행사는 올해 ‘8 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80명의 남녀 대학생들이 참가했는데, 대학생들의 입 소문이 퍼지면서 경쟁률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출신 대학이나 지역 등 심사자의 편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목은 아예 요구하지 않았다고.‘자신만의 리더십 색깔을 찾아라(Color Your Leadership)’는 주제로 진행된 올해 워크숍은 회사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미리 경험해 보며 적응력을 기르는 한편, 협동심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짜여진 것이 특징.

참가자인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차지혜씨는 “요즘은 한 학기 수업 중 절반 이상이 팀 과제물 진행과 발표로 이루어진다. 수업과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성과를 도출하는 활동이 늘어나고 있어 요즘 대학생들에게 리더십은 중요한 관심사”라며 변화된 대학 현실을 설명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회사 1∼2년차 FMP(Financial Management Program)들이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점. 백주현 GE FMP는 “GE는 금융부문에서 근무할 FMP를 별도로 선발해 운용하고 있다”며 “큰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서 운용한다”고 말했다.

맥킨지에서는 1∼2년차 자원 봉사자들이 프로그램에 참가해 행사 진행 등을 도왔다. 이번 워크숍을 기획한 GE 코리아 인사부의 홍영대 상무는 “GE와 맥킨지는 양 사가 보유하고 있는 리더십 프로그램과 노하우를 우리 사회, 특히 미래의 리더인 젊은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리더십교육 왜 붐인가




“딱지치기를 해도 리더가 있는데…”리더는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리더가 타고나는 것이라면 리더십 프로그램이 아마도 지금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다. 유명기업이나 코칭스쿨 등이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너럴일렉트릭의 리더십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다.

뉴욕 크로톤에 위치한 크론토빌 연수원은 각국의 유명 기업인들이 다녀가는 필수코스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유명 경영대학원들이 운영하고 있는 리더십 코스 또한 GE 프로그램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MIT 슬론 스쿨이 지난 2003년 도입한 사흘 일정의 비전 설정(visioning)과 역할 분담 코스, 그리고 리더십 프로그램을 보자. 경영대학원생들은 역할 분담 게임을 하며, 전문적인 코치들로부터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된다. GE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리더십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는 국내외에서 더욱 커지고 있는 데, 구성원들에게 리더의 자질을 함양하는 일이야말로 조직의 건전한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경진 GE 전무는 “놀이터에서 딱지치기를 해도 놀이를 리드하는 리더가 반드시 있다”며 “리더는 일상 곳곳에 존재하며, 대부분 노력하면 바뀌고 개발된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본성에 맞는 리더십 스타일을 찾고 이를 개발해 나가려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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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영어 |존 코터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

[이코노믹리뷰 2006-07-23 20:21]

"Management is about coping with complexity"

존 코터(John Kotter)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지난 1980년 불과 33세의 나이에 이 대학원의 정교수로 부임할 만큼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는 석학이다. 지난 2002년 액센추어에 의해 50명의 경영구루에 선정되기도 했다. 《변화의 핵심 (Heart of Change)》, 《변화 이끌기 (Leading Change)》 등 그의 주요 저작에 실린 발언을 발췌해 실었다.

●Leaders establish the vision for the future and set the strategy for getting there; they cause change.

지도자는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그들은 변화를 불러온다.

●We know that leadership is very much related to change. As the pace of change accelerates, there is naturally a greater need for effective leadership.

리더십은 변화와 관련돼 있다.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질수록, 효율적인 리더십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게 마련이다.

●Effective leaders help others to understand the necessity of change and to accept a common vision of the desired outcome.

효율적인 리더는 구성원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돕는다. 어찌 리더가 제시한 비전을 수용하지 않겠는가.

●They motivate and inspire others to go in the right direction and they, along with everyone else, sacrifice to get there

그들(리더)은 구성원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한다. 물론 다른 조직원들처럼 스스로도 헌신과 희생을 감내한다.

●Good communication does not mean that you have to speak in perfectly formed sentences and paragraphs. It isn't about slickness. Simple and clear go a long way.

이상적인 대화란 완벽한 문장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형식의 완벽함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메시지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물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Management is about coping with complexity.

경영이란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A leader needs enough understanding to fashion an intelligent strategy.

지도자란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효율적인 전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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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영어 |저가항공사 사우스웨스트의 전 회장 허브 캘러허

[이코노믹리뷰 2007-02-02 06:12]

“There are many different paths, not one right path.”

저가 항공사 사우스웨스트의 전 회장 허브 캘러허(Herb Kelleher). 저렴한 비행기 요금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저가항공특수를 불러온 주인공인 그는 젊은 시절 법원에 근무하며 나름의 성공방정식을 파악했다고 한다. 스타일이 극과극인 변호사 두 명을 지켜보며, 성공에도 제 3의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A motivated employee treats the customer well. The customer is happy so they keep coming back, which pleases the shareholders.

성취동기가 높은 근로자들은 고객들을 가족처럼 대한다.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들이 다시 올 것이고, 주주들은 기뻐할 것이다.

●A company is stronger if it is bound by love rather than by fear.

회사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공포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Most people think of us as this flamboyant airline, but we’re really very conservative from the fiscal standpoint.

사람들은 사우스웨스트를 튀고 싶어 안달이 난 항공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매우 보수적인 회사이다. 적어도 자금운용에 관한 한 그렇다.

●We never got dangerously in debt and never let costs get out of hand.

우리는 과도한 부채를 지거나, 비용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치솟는 것을 허용한 바 없다.

●Succession planning has been a major priority at Southwest for quite some time. We have come up with a winning combination of talent for our company reorganization.

조직의 물갈이가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첫 번째 과제였다. 우리는 조직 재편을 담당할 훌륭한 인재풀을 확보하고 있다.

●When you and your organization are true to yourselves -when you deliver results and a singular experience -customers can spot it from 30,000 feet.

스스로에게 충실해보라. 고객들에게 훌륭한 경험을 제공해 보라. 그들은 3만피트 밖에서도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

●There are many different paths, not one right path. That’s true of leadership as well.

길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올바른 리더십에도 정답은 없다.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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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베조스, 변화무쌍한 천재경영자

Global Leadership|③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

[이코노믹리뷰 2006-04-06 03:45] (영화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헤리 코닉 주니어가 출연했고,나머지 배우들은 제가 영화에 문외한인 탓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당시 지역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던 천재 소년이 등장하는 데, 이 소년은 천재성을 인정받아 한 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센터에서 다른 천재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지요.

미국이란 나라는 얼마나 넓습니까. 이 소년은 자신을 압도하는 다른 천재들을 지켜보며 좌절하고, 결국 이 센터에서 탈락하고 마는 뭐 그런 스토리였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당시 이 영화가 제프 베조스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프 베조스로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떠들석하게 만들 정도로 천재 소년이었다고 하죠.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베조스의 리더십을
한번 분석해보죠)

온라인의 월마트 꿈꾸는
변화무쌍한 천재 경영자

“오프라인 매장은 고객들에게 마치 스포츠 게임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나,
일대일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젊은 아버지를 유난히 따르던 야윈 몸집의 천재 소년. 자신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주던 그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10세 때의 일이었다. 가족들은 담담하게 그에게 이를 알려주었다. 이민자 출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할 무렵, 17세이던 그녀는 이미 그를 임신하고 있었다.

친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손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유독 깊어서였을까. 미 정부기관인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Atomic Energy Commision)에서 고위 공직자로 근무하던 외할아버지는 유독 그를 사랑했다. 할아버지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과학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과시한 아들을, 부모는 텍사스(Texas) 지역의 과학 영재 학교(Miami Palmetto Science School)에 보냈다. 당시, 이 소년의 놀라운 능력을 상세히 분석한 책(Turning on Bright Minds)까지 발매됐을 정도이니 그는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였던 셈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을 꿈꾸던 이 소년이 바로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Amazon)’의 창립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브라질의 아마존 강에서 영감을 얻어 이름을 지은 이 회사의 지난 2004년 실적은 눈부셨다. 69억달러 매출에 5억8800만달러 순이익을 올렸다.

회사 가치만 해도 무려 180억달러(올 1월말 기준)다. 지난 2003년 아마존은 처음으로 연간 기준 순이익을 냈으며, 이후 매년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매출 규모도 오프라인 최대 서점인 ‘반스앤노블’을 압도하며 닷컴 종말론을 예고하던 세간의 예측을 비웃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는 것. 매출 규모에서 가늠할 수 있듯이, 아마존은 더 이상 책만 파는 온라인 서점이 아니다. 티파니의 보석 상품에서 모토롤라의 레이저(Razr) 휴대폰, 그리고 구치 명품 가방까지, 여러 영역을 활발히 파고들며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는 물론 오프라인의 절대강자인 월마트를 위협하는 공룡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회사인 ‘블루 오리진’을 통해 어린 시절의 꿈인 우주 여행을 추진하고 나서며 화제를 불러모은 베조스는 2003, 2004년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하는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됐다. 개인 재산만 아프가니스탄의 연간 국내 총생산을 웃도는 45억달러.

하지만 베조스의 리더십은 다른 경영자들에 비해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가려져 왔다. 대중적인 이미지가 그의 이해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독특한 웃음소리로 외부에 괴짜 경영자로 더 많이 알려져 온 베조스 리더십의 특징은 합리성·치밀함, 그리고 융통성 등으로 요약된다.

“매사에 고집을 피우는 한편 때로는 융통성도 발휘해야 한다. 언제 어느 쪽을 선택할 지가 관건일 뿐이다. ” 베조스의 말이다. 그는 원칙을 고수하되, 이에 얽매여 더 큰 이익을 방기하는 경영자는 아니다. 지난 2003년 대외 광고 중단 선언은 그의 지향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광고 중단 결정, 시장에 충격파
세스 고딘이 아마존 사례 다뤄

《보랏빛 소가 간다》. 지난 2003년. 세계적인 경영학자 세스 고딘(Seth Gordin)이 발표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광고가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는데, 당시 그에게 영향을 준 기업이 바로 베조스가 이끌고 있는 아마존(Amazon)이었다.

고딘에게 영감을 준 것은, 같은 해 베조스의 ‘광고 중단 선언’이었다. 광고비를 대폭 줄이고, 이를 제품 배송 비용을 줄이는 데 활용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브랜드 가치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닷컴 기업의 광고 중단 선언은 미디어 기업은 물론 학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브랜드는 소비자들을 묶어두는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식이었다. 이베이가 지난 1998년 거액을 들여 전문 경영인인 맥 휘트먼(Meg Whitman)을 전격 영입한 것도,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갬블, 장난감 기업인 하스브로스 등을 거친 그녀의 브랜드 관리 능력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구글에서 검색을, 이베이에서 온라인 경매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베조스가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광고 집행을 과감히 중단한 배경은, 그의 의사결정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료에 입각해 모든 것을 측정하고, 판단이나 본능을 철저히 배격한다는 것.

평소 광고의 효용성에 심각한 의문을 품고 있던 그는, 미국의 두 도시를 지정해 일정 기간 광고를 집행한 반면, 나머지 도시에서는 광고 집행을 중단했다. 그리고 나서 매출을 서로 비교했는데, 결과는 명확했다.

브랜드 가치 하락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지만, 배송 비용 인하는 고객 로열티를 높여 장기적으로 회사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베조스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합리성이다. ‘측정할 수 있는가’. 그가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오는 팀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과학 영재 스쿨에 다닌 그는, 의사 결정시 수치를 중시한다. 그리고 항상 꼼꼼하고 치밀한 접근으로 지속적으로 비교 우위를 창출해 왔다. 아마존이 인터넷 도서 시장의 후발 주자였지만, 단기간에 놀라운 성공을 거둔 배경이기도 하다.

우수한 인력에 대한 편집광적인 집착도 그를 이해하는 또 다른 코드다. 피 면접자의 논리상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크라테스식 질의응답 방법은 그의 전매특허다. 베조스는 화이트보드에 차트를 그려놓고 후보자들의 강점과 약점을 면밀하게 비교했으며, 후보자의 자격요건이나 능력에 대한 단 한 가지의 의문이라도 남아 있을 경우 결코 그를 채용하지 않았다.

다른 면접관들은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라는 그의 등쌀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특히 직원을 선발할 때마다 채용 기준을 한 단계씩 더 높여 나갔는 데, 물론 전체 인력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직원들의 능력을 판별하는 잣대도 독특했다.

애플의 자회사에서 근무하다 아마존으로 옮겨온 쉘카판(Shel Kaphan)이 대표적인 사례. 회사를 열두 번이나 옮겼으며,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던 그를 베조스는 첫 번째 직원으로 선발했다. 컴퓨터 시스템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데 따른 것이었다.

창의력도 인재 선발의 주요 기준이었다. “창의적이지 못한 이들과 함께 보내기에 인생은 지나치게 짧다.” 아내를 구할 때조차 그는, 창의력이 풍부한 배우자를 원했다고 <와이어드(Wired)>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원칙에 얽매여 소탐대실하는 경영자는 아니다. 혁신을 중시했지만, 경쟁자의 기술을 재빨리 들여오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유명 테니스 스타와 자선 테니스 경기를 하고, 속없어 보이는 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이면에는 이처럼 집요하고 끈질긴 면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반스앤노블의 역공, 헬기 사고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수차례 극복한 배경이기도 하다.

헬기사고에서 구사일생
지난 2003년 3월, 그는 헬리콥터 사고로 머리에 부상을 당했다. 베조스가 타고 있던 헬리콥터가 강풍에 휘말려 갑자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목장을 매입하기 위해 텍사스 외곽 지대의 후보지를 돌아보던 중이었다. 이 사고로 생과 사를 오가는 아찔한 순간을 겪어야 했던 그는 사고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사고는 영화 속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진행됐습니다. 헬기가 추락하는 순간, 심오한 인생의 진리 따위가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이렇게 바보같이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습니다. ”그는 회사로 곧 돌아왔는 데, 헬리콥터를 다시는 타지 않겠다는 게 복귀의 일성이었다.

지난 1997년 반스앤노블스의 역공도 위기감을 높였다. 아마존이 맹렬한 공세로 시장을 잠식하자, 이 공룡기업은 역으로 온라인 도서 판매사이트를 개설하며 반격에 나섰다. 시장 조사 전문기관인 포레스트 리서치(Forest Research)는 이 거대 오프라인 기업의 역공이 아마존 몰락의 서곡이 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주가는 100달러에서 6달러로 폭락했다. 하지만 그는 투자자들을 초청해 기업설명회를 여는 등 발빠르게 대처하며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베조스는 당시 투자자들에게 지금은 아마존 주식을 구입해야 할 때가 아니지만, 조만간 주가상승과 더불어 실적향상을 이뤄내겠다는 약속을 했다. 불과 3 년뒤 그는 사상 최초로 연간 수익을 내면서 이를 입증해냈다.

그의 뛰어난 상황대처 능력을 가늠하게 하는 부분이지만, 베조스에게도 최근 경영환경의 빠른 변화는 상당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온라인 업체와 오프라인 업체, 그리고 온라인과 온라인 업체간의 맞대결이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띠고 있다.

저가 할인매장인 월마트는 이제 아마존이나, 이베이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존의 입지를 위협할 더 강력한 적은 오프라인 기업인 월마트나 시어스 백화점이 아니라 구글이나 이베이, 그리고 야후를 비롯한 온라인 업체들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들은 활발한 인수 합병을 통해 상대방의 강점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며 온라인 세상의 패권을 꿈꾸고 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베조스는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우선 가장 강력한 적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해야 하는 지상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베조스가 밝히는 나의 경영철학

▷ 인사가 만사…채용을 신중히 하라

▷원칙을 지키되 융통성도 발휘하라

▷ 쉬운 돈벌이 방안이 항상 선은 아니다

▷ 의사결정시 직감보다 데이터를 중시하라

작은 사항들을 꾸준히 개선해 나가라


온라인 서점 창업 배경은

“헤지펀드서 온라인서점 성공예감”

첫 출발부터 범상치 않았다. 프린스턴대 졸업반이던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앤더슨컨설팅 인텔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채용을 제안했기 때문. 하지만 그는 신생 기업인 피텔에 입사했다. 컬럼비아 대학 교수 출신들이 세운 벤처 회사였는데, 시스템 구축이 그의 주요 업무였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인 뱅커스 트러스트로 이직했다. 안정적인 직장보다 자신의 꿈을 펼칠 곳을 찾던 그는 이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가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곳은 세 번째 직장인 헤지펀드 ‘디이 쇼(DE Shaw)’에서였다. 창업자 데이비드 쇼(David Shaw)는 예술적인 재능과 더불어 직관력, 그리고 분석 능력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고, 제프 베조스와 호흡이 잘 맞았다. 고객사를 상대로 금융부문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게 그의 담당업무였다.

그는 이 곳에서 승승장구하며 불과 입사 1년여 만에 수석 부사장의 자리에 오른다. 당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인터넷 분야에서 유망 사업을 찾는 중책을 맡은 베조스가 데이비드 쇼에게 제시한 신사업 아이템은 인터넷 도서 판매.

난상토론 끝에 얻은 결론이었지만 회사측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그는 아내와 더불어 창업 준비에 나선다. 프린스턴 대학의 동기생들을 비롯한 15명의 투자자들에게 200만달러 가량 종잣돈을 확보했다. 회사 이름은 처음에는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로 지었지만, 곧 아마존으로 바꾼다.

홈페이지는 고객들이 매장을 직접 방문할 때 느끼는 편리함을 그대로 맛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도서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경보가 울리도록 해두었는 데, 사업시작 2~3달 만에 경보를 해제하지 않고서는 시끄러워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론 물리학자를 꿈꾸던 그가 진로를 바꾸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프린스턴대 재학 시절, 이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동급생 3명은 그의 좌절과 더불어 진로 변경을 불러왔다. 이들은 마치 뇌구조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고 그는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천재소년으로 통하던 그에게는 최초의 지적 좌절이었던 셈이다.


온·오프라인 유통전쟁 결과는

“온라인 업체가 최후의 승자”

“오프라인 점포 중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편리함을 주거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업체들만이 살아남는다.”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의 예측이다. 백화점 노르드스톰과, 캐주얼 브랜드 갭이 대표적이다. 노르드스톰은 일대일 고객응대서비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갭은 젊은이들의 취향을 매장 설계 등에 적극 반영하며 고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궁극적으로 쇼핑을 마치 흥미로운 스포츠 게임을 보는 듯 만들 수 있어야 오프라인 매장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명.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올해 2월호에서 오프라인 매장도 온라인 매장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흡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장래에도 인터넷이 대세라는 베조스의 생각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베조스는 앞으로 온라인 기업들의 비교 우위가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한다. 예컨대, 인터넷과 더불어 개인용 컴퓨터의 부팅 속도가 빨라지면 5분 길이의 작은 비디오 클립을 상품 설명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아마존에서 가수나 작가, 저자 등이 자기의 음반이나, 도서 등을 직접 홍보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온라인 매장들의 강점인 정보 활용이 한 차원 더 높아질 것임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가 오프라인 서점이 경쟁상대는 아닐 것으로 관측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밖에 생필품 대부분도 앞으로 인터넷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대부분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온라인 매장들의 기동성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학자인 슈워르츠가 이끄는 GBN도 비슷한 예측을 하고 있다. 대형 밴 차량이 주택가를 항상 돌면서, 온라인에서 주문받은 생필품을 거의 실시간으로 배달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2011/10/03 - [분류 전체보기] - 킨들 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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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총리, 전장서 예를 찾다

다시 리더를 말한다 ② 고건 전 총리

[이코노믹리뷰 2007-02-15 07:42] (송 양지도. 전쟁터에서 도를 찾다가 결국 적에게 패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후인 송양을 비꼬는 고사성어입니다. 고건 전 총리도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한때 주변의 높은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후보 대열에서 스스로 탈락하고 말았지요. 혹시 적군이 강을 다 건널때까지 기다리던 송양의 우를 되풀이한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직접 쓴 기사는 아니고, 고전연구가인 신동준씨가 풍요로운 고전 지식을 활용해 저술한 글이지요.


신동준씨는 한겨레와 조선일보 등에서 정치부 생활을 오래 했는 데,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전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성악설로 널리 알려진 순자를 국내에 평역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분석한 고건 전총리의 리더십을 한번 보시죠:)



“시대 거부한‘愼獨 리더십’…
臣道의 길을 이탈하지 못했다”

“고 전 총리는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결단을 내린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의 행보는 현실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역대 대통령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행보와 대조를 이룬다”

다산 정약용
“고 전 총리는 다산 정약용의 저서《목민심서》에서‘현명한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의‘지자이렴(知者利廉)’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때문에 그가 취한 행보는 《중용》에서 말하는‘신독(愼獨)’에 가깝다.”

조조“난세에 천하를 놓고 다툴 때는‘신독(愼獨)의 리더십’이 어울리지 않는다. 조조처럼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재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해 쓰는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용인술이 필요하다.”

최근 범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던 고건(高建) 전 총리가 문득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된 인물이 중도에 불출마선언을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특히 고 전 총리는 지난해 중반기까지만 해도 줄곧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려온 까닭에 그를 잠재적인 대통령 감으로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던진 충격은 매우 컸을 것이다.


대선 경쟁은 기병술이 동원되는 野戰
본래 대선 경쟁은 온갖 기병술(奇兵術)이 동원되는 야전(野戰)에 비유할 수 있다. 야전을 지휘하는 장수는 결코 일시적인 승패에 희비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전투를 하다 보면 적의 기습공격을 받아 대병(大兵)을 잃고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전투에서 줄지어 승리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상승무적(常勝無敵)의 기세를 자랑할지라도 마지막의 대회전(大會戰)에서 승리를 거머쥐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대선의 최종 회전에서 승리키 위해서는 먼저 출마자 스스로 필승의 신념을 지니고 도중의 모든 난관을 기필코 돌파해 나가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결단을 내린 적이 없었던 듯하다. 이러한 관측이 맞는다면 고 전 총리의 행보는 현실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역대 대통령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행보와 커다란 대조를 이루는 셈이다.


큰 틀에서 보면 고 전 총리의 하마(下馬) 선언은 기본적으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그의 조심스런 행보와 무관치 않다. 고 전 총리가 존경한 역사적 인물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라고 한다. 정조(正祖)의 총임(寵任)을 받았던 다산은 순조(純祖) 연간에 노론의 견제에 걸려 전남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무수한 역저(力著)를 남겼다. 고 전 총리가 주목한 다산의 저서는 공직자의 직무수행 교범이라고 할 수 있는 《목민심서(牧民心書)》였다. 그는 《목민심서》에서 ‘현명한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의 ‘지자이렴(知者利廉)’이라는 구절을 찾아내 자신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 전 총리가 취한 행보는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신독(愼獨)’에 가깝다. ‘신독’은 말 그대로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조차 신중한 사려와 행보를 취하는 군자의 기본자세를 말한다. ‘신독’을 두고 다산은 《중용자잠(中庸自箴)》에서 ‘신독은 성(誠)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성’은 ‘성신(誠信)’을 뜻한다. ‘중용’이 곧 ‘성’이고, ‘성’은 곧 ‘신독’에 의해 이뤄진다는 게 다산의 논리였다.



40년 화려한 官歷…깨끗한 사생활
고 전 총리는 다산의 이런 논리를 적극 수용한 듯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확실히 ‘중용’에 입각한 ‘신독’의 길이었다. 그가 제3공화국 이래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선을 포함한 서울시장을 2번 역임하고 총리직을 중임하는 등 40여 년에 달하는 고위 관직 생활 중 단 한 번도 금전과 여인 등으로 인한 스캔들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독’을 삶의 기본철학으로 삼은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조 중기의 명신인 김집(金集)을 들 수 있다. 그의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김집은 조선조 예학(禮學)의 조종인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효종 때 이조판서가 되어 북벌(北伐)을 계획하다가 김자점(金自點) 등의 방해로 이내 관직을 사임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조선조 예학의 태두가 된 인물이다. 김집과 고 전 총리는 평생 ‘신독’을 기본철학으로 삼아 여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그러나 ‘신독’은 비록 군자의 길이기는 하나 원래 청관(淸官)에게 어울리는 신도(臣道)의 길이다. 난세에 천하를 놓고 다투는 소위 ‘축록전(逐鹿戰)’은 신도가 아닌 군도(君道)의 길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역대 대선전은 말 그대로 ‘군웅축록(群雄逐鹿)’의 각축전이었다. ‘축록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재능 있는 자를 과감히 발탁하는 소위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용인술(用人術)이 필요하다. 이는 평생을 ‘신독’의 청관으로 살아 온 고 전 총리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愼獨의 행보… 조조의 리더십과 상반돼
군웅축록’의 난세에 ‘유재시거’의 용인술을 절묘하게 구사한 대표적인 인물로 조조(曹操)를 들 수 있다. 그는 형수를 취하고 뇌물을 받은 소위 ‘도수수금(盜嫂收金)’의 인물일지라도 재능만 있다면 과감히 발탁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쟁천하(爭天下)의 요체가 오직 재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하는 소위 ‘유재시거’에 있다는 사실을 통찰한 데 따른 것이었다. ‘유재시거’는 《목민심서》의 ‘지자이렴’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신독’의 행보를 취해 온 고 전 총리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원래 ‘도수수금’은 《사기》‘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찍이 유방(劉邦)은 항우(項羽)를 치러 갔다가 대패하여 정신 없이 도주하던 중 흩어진 군사를 간신히 수습해 형양(滎陽) 땅에서 진평(陳平)을 아장(亞將)으로 삼아 한왕(韓王) 한신(韓信) 밑에 예속시킨 바 있다. 이때 휘하 장수인 주발(周勃)과 관영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진평을 이같이 헐뜯고 나섰다.


진평은 집에 있을 때는 형수와 사통했고, 위(魏)나라를 섬겼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망하여 초나라에 귀순했고, 초나라에 귀순하여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도망하여 우리 한나라에 귀순한 자입니다. 그는 여러 장수들로부터 금품을 받으면서 금품을 많이 준 자는 후대하고, 금품을 적게 준 자는 박대했습니다. 진평은 반복 무상한 역신(逆臣)일 뿐입니다.”


유방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곧 진평을 천거한 위무지(魏無知)를 불러 질책했다. 그러자 위무지가 유방에게 이같이 대꾸했다.


신이 응답한 것은 그의 능력이고, 대왕이 물은 것은 그의 행동입니다. 지금 만일 그에게 미생(尾生) 및 효기(孝己)와 같은 행실이 있다 할지라도 승부를 다투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바야흐로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대항하고 있는 까닭에 신은 기모지사(奇謀之士: 기이한 계책을 내는 뛰어난 책사)를 천거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계책이 나라에 이로운지만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도수수금’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기의 ‘미생’은 홍수로 인해 물이 불어나는데도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남의 장소인 다리 밑에서 한없이 기다리다 물에 빠져 죽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효기’는 뛰어난 효성으로 이름이 높았던 은(殷)나라의 중흥군주인 고종(高宗)의 아들이다. 위무지는 잘못된 천거를 나무라는 유방에게 아무리 효성과 신의가 뛰어난 인물일지라도 난세를 타개한 지략(智略)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일갈(一喝)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방은 위무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도 못내 안심이 안 되어 당사자인 진평을 불러 반복무상한 행보를 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진평이 이같이 응답했다.


당초 신은 위왕(魏王)을 섬겼으나 위왕은 신의 말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왕을 떠나 항왕(項王:항우)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항왕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면서 오직 항씨 일가와 처남들만을 총신(寵信)했습니다. 설령 뛰어난 책사가 있다 한들 중용될 여지가 없기에 저는 초나라를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대왕이 사람을 잘 가려 쓴다는 얘기를 듣고 대왕에게 귀의케 된 것입니다. 신은 빈손으로 온 까닭에 여러 장군들이 보내준 황금을 받지 않고서는 쓸 돈이 없었습니다. 만일 신의 계책 중 쓸 만한 것이 있으면 저를 채용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황금이 아직 그대로 있으니 잘 봉하여 관청으로 보내고 저를 사직시키십시오.”


이에 유방이 진평에게 사과하고 후한 상을 내린 뒤 호군중위(護軍中尉)에 임명해 제장들을 지휘케 했다. 그러자 제장들이 더 이상 진평을 헐뜯지 못했다. 유방이 항우를 제압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데에는‘유재시거’의 대원칙에 입각해 진평을 과감히 기용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삼국시대의 조조가 동탁(董卓)과 이각, 장수(張繡) 등에게 차례로 몸을 의탁하며 반복무상한 행보를 보인 책사 가후를 자신의 군사(軍師)로 과감히 발탁한 것은 유방의 ‘유재시거’ 행보를 흉내낸 것이다. 조조의 이런 선택은 전적으로 옳았다. 북방의 맹주 자리를 놓고 원소(袁紹)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결전을 벌인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가후의 계책이 결정적인 승인(勝因)으로 작용한 사실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공직생활 내내 ‘신독’의 행보를 보여 온 고 전 총리에게는 ‘유재시거’와 같은 과감한 인사를 기대키가 쉽지 않다. 고 전 총리가 오랫동안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참모들을 적극 활용해 이를 하나의 대세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고 전 총리는 비록 관원의 최고직위를 뜻하는 극품(極品)의 자리를 2번이나 역임하는 등 화려한 관력을 보유키는 했으나 극상(極上)의 자리인 군위(君位)와는 인연이 멀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본래 군위는 지존무비(至尊無比)인 까닭에 품계가 없다. 아무리 극품의 자리에 여러 차례 오를지라도 군위에 비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선이 있을 때마다 극품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들이 대권에 강한 의욕을 내비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동양 3국의 역대 인물 중 고 전 총리와 유사한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을 고르라면 단연 5대10국(五代十國)의 시대에 활약한 풍도(馮道)를 들 수 있다. 풍도는 특이하게도 불과 채 10년도 안 되는 왕조가 명멸하는 와중에 재상을 연거푸 역임했다. 이는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제3공화국에서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고위직을 역임한 고 전 총리의 관력 역시 전무후무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풍도는 당(唐)제국이 무너진 후 60여 년 동안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 지속된 소위 5대10국(五代十國)의 시기에 활약한 인물이다. 당시 황하 중하류 북쪽에서는 후량(後梁)과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5왕조가 명멸했다. 장강 중하류 남쪽에서는 오(吳)와 남당(南唐), 오월(吳越), 초(楚), 민(??), 남한(南漢), 전촉(前蜀), 후촉(後蜀), 형남(荊南), 북한(北漢) 등 10국이 난립했다. 남쪽은 여러 나라가 난립해 병존한 데 반해 북쪽에서는 5왕조가 차례로 명멸한 점에 차이가 있다. 이들 왕조를 흔히 ‘5대10국’으로 통칭한다.


5대10국 시대에 활약한 풍도와 닮아
당시 5대10국 중 가장 짧은 왕조는 후한으로 만 4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이는 중국사는 물론 전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짧은 왕조에 속한다. 후량은 만 7년, 후주는 만 9년, 후진은 만 10년밖에 존재하지 못했다. 가장 긴 후당의 경우도 겨우 만 14년에 불과했다.


10년 안팎의 5왕조가 난립한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로 5년마다 되풀이 된 6공화국 역대 정권의 파행(跛行)과 사뭇 닮아 있다. 그러나 5왕조는 6공화국보다 오히려 나은 면이 있었다. 5왕조는 최고 권력자의 교체로 끝난 데 반해 6공화국은 하부 인사들까지 일거에 교체되는 격변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5왕조가 왕조교체로 명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면 평온을 유지한 데에는 풍도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고 전 총리가 전대미문의 ‘탄핵정국’ 속에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끈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풍도는 5왕조에서 8성(姓)의 11명에 달하는 천자를 잇달아 섬기면서 고위 관리로 30년, 재상으로만 20여 년을 지냈다. 이는 고 전 총리가 총리직을 포함한 고위관원으로 40여 년을 살아온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풍도가 여러 왕조에 걸쳐 오래도록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청렴한 자세와 뛰어난 자질 때문이었다. 만 4년짜리 왕조가 명멸하는 미증유의 혼란 속에서 그나마 백성들이 큰 어려움 없이 난세를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풍도와 같은 현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명대 말기의 이탁오(李卓吾)는 ≪장서(藏書)≫의 마지막 장에서 풍도를 이같이 평한 바 있다.


맹자는 사직이 소중하고 군주는 가볍다고 말한 바 있다. 풍도는 이 말을 참으로 잘 이해한 사람이다. 백성들이 창끝과 살촉을 맞는 고통에서 벗어난 것은 바로 풍도가 백성들을 편안하게 부양하는 데 힘쓴 결과이다.”


풍도는 자신이 다섯 왕조를 두루 섬겼다는 지적을 받을지언정 차마 무고한 백성이 날마다 도탄에 빠져 있게 할 수는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탁오가 풍도를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풍도가 백성의 존망을 자신의 영욕(榮辱)보다 위에 둔 데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풍도는 평생을 두고 정당치 못한 재화는 집안에 쌓아 두지 않았다. 또한 질박하고 검소한 옷과 음식에 만족했다. 특히 그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했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출신 가문을 따지지 않고 재능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아꼈다. 고 전 총리 역시 청렴한 삶을 살아오면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풍도는 훗날 자서전인 《장락로자서(長樂老自序)》에서 자신은 집안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키 위해 헌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러 면에서 풍도와 유사한 삶을 살아온 고 전 총리가 훗날 자서전을 쓰면 《장락로자서》와 유사한 내용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한 번도 국민들의 박수 속에 퇴임하는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했다. 특히 5년 단임제를 채택한 이후 정권교체의 시기가 빨라져 마치 5대10국 당시에 단임 왕조가 명멸하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풍도를 닮은 고 전 총리가 당선될 경우 나라를 보다 안정되면서도 중도 통합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공산이 컸다.


그러나 풍도가 비록 지존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지라도 5대10국의 난세에 찬연한 빛을 발했듯이 고 전 총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고 전 총리가 앞으로도 계속 국가원로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아 갈 것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 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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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리더십 분석



①노무현 대통령의 통치리더십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공언했듯이 소위 ‘역발상’의 대가이다. 신년 벽두부터 아무도 예상치 못한 4년 연임제의 개헌을 문득 제의하고 나선 것이 그 실례이다. 노 대통령은 전에 문득 한나라당에 대연정(大聯政)을 제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제의는 노 대통령이 소위 ‘역발상’을 통해 최고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른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발상’은 어디까지나 득천하(得天下)의 방략에 불과할 뿐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역발상으로 치천하(治天下)에 성공한 제왕은 존재한 적이 없다. 일찍이 전한(前漢)제국 초기에 육가(陸賈)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에게 이같이 헌책(獻策)한 바 있다.

“마상(馬上)에서는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필히 마하(馬下)로 내려와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자칫 후대의 사가에 의해 득천하에 필요한 마상(馬上)의 전술(戰術)과 치천하에 필요한 마하(馬下)의 치술(治術)을 구분치 못한 대통령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상의 전술은 군웅(群雄)이 천하의 우이(牛耳: 주도권)를 놓고 다툴 때 쓰는 것으로 현대의 선거전에 비유할 수 있다. 원래 출마(出馬)한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기습전(奇襲戰)과 복병전(伏兵戰), 공성전(空城戰) 등 다양한 기병술(奇兵術)이 필요하다. 특히 세가 불리할 때 이런 기병술이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역발상’이 큰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병술을 구사한 인물로 삼국시대의 조조(曹操)를 들 수 있다. 조조는 짐짓 약병(弱兵 : 짐짓 미약한 모습을 보임)으로 적장의 교만을 부추겨 방심케 만들거나, 요병(耀兵 : 무력시위)으로 적을 지레 겁먹게 만들거나, 의병(疑兵 : 허수아비 등을 이용한 거짓 용병)으로 적이 착각토록 만들거나, 기병(奇兵 : 예상외의 용병)으로 적이 예상치 못한 시점을 택해 출기불의(出其不意 : 뜻밖에 나섬)로 적의 허점을 찌르거나 하는 등의 기막힌 기병술을 구사했다. 이는 상식을 뛰어 넘는 ‘역발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 등의 기막힌 역발상을 통해 단일후보가 된 뒤 충청도민에게는 ‘행정수도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수도권 주민에게는 ‘불편하고 시끄러운 것의 이전’을 내세워 표를 긁어모았다. 그는 역발상의 기병술로 득천하에 성공한 셈이다.

이회창 후보, 정병술(正兵術)만 고집하다 낙마
당시 대병(大兵)의 위용을 과신한 이회창 후보는 승패의 분수령이 충청 회전(會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제휴마저 뿌리친 채 정병술(正兵術)만을 고집하다가 참패를 자초했다. 그는 비록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영남을 근거로 대병을 모아 권토중래(捲土重來)의 호기를 맞이했으나 결국 노 후보의 기습공격을 받고 낙마(落馬)하고 만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지라도 ‘역발상’의 당사자인 자신의 주착(籌策)에 스스로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에 입성 한 노 대통령은 응당 역발상의 유혹을 단호히 끊고 만민을 위해 고루 덕을 베푸는 황도무친(皇道無親)의 대정(大政)을 펼쳐야만 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치천하에 임하면서도 시종 역발상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최고 통치권자의 ‘역발상’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최고 통치권자가 국가대사를 결정할 때 늘 좌우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은 뒤 신중한 사려를 거쳐 결단을 내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미 천하를 거머쥔 뒤에는 대규모 반란을 진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말 위에서 호령할 일이 없는 법이다. 쟁천하(爭天下)의 회전(會戰)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말 위에서 내려와 천하에 임해야만 한다. 더 이상 싸울 대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말 위에서 진두지휘할 경우 공연히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노 대통령의 출신배경과 입신과정은 여러 면에서 한고조 유방(劉邦)과 닮아 있다. 유방 역시 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자랑하는 천하의 웅걸(雄傑) 항우(項羽)를 패퇴시키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출신배경·입신과정 한고조 유방과 닮아
진시황의 급서로 군웅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당시 천하인은 모두 항우의 천하평정을 의심치 않았다. 당시 항우는 누대에 걸쳐 장군을 배출한 명족 출신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각종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당대 최고의 무용(武勇)을 자랑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국 싸움은 일개 농부 출신인 유방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항우가 자신의 출신배경과 무용을 과신한 나머지 소위 대세론에 입각해 姑息的(고식적)인 방법으로 천하를 차지하려고 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이를 두고 사마천(司馬遷)은 《사기》‘항우본기’에서 항우의 패망원인을 이같이 분석한 바 있다.

‘항우는 패왕(覇王)의 업을 이룬다는 명목을 내세워 오직 힘만으로 천하를 정복하려고 했다.’

항우는 여러 면에서 이회창 후보와 닮았다. 당시 이 후보는 대선예비전으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의 대승에 도취한 나머지 무명의 노 후보가 적장으로 발탁된 것을 보고 고식적인 대세몰이에 안주한 나머지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이는 삼국시대 당시 천하의 효장(驍將) 관우(關羽)가 오나라의 어린 장수 육손(陸遜)을 업신여기다가 패퇴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후보는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병가의 기본원칙을 무시함으로써 두 번에 걸쳐 통한의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유방은 젊은 시절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방은 현재의 역장(驛長)에 해당하는 정장(亭長)으로 있다가 법을 어겨 처형을 당하게 되자 이내 비적(匪賊)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진시황의 죽음을 계기로 천하가 혼란스럽게 되자 이를 틈타 한 지역의 반군(叛軍)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젊은 시절 상고를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다가 토방 속의 독공(獨功)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세인의 이목을 끈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원래 평민 출신인 유방은 귀족 출신인 항우와 달리 민심을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그가 진제국의 도성인 함양(咸陽)을 점거했을 때 장로들을 불러 놓고 법삼장(法三章)을 약속한 사실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단 3개의 조항으로 이뤄진 ‘법삼장’은 진제국의 혹법(酷法) 하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신민들에게는 해방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민심 잡는 법 숙지한 ‘5공 청문회’ 스타
이는 노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여의도로 입성한 뒤 마침 세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은 소위 ‘5공 청문회’에서 거침없는 논변과 격정적인 몸짓으로 청문회 스타가 되어 열렬한 지지층을 확보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민심을 잡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막강한 항우를 패퇴시키고 천하를 거머쥔 유방은 보위에 오른 뒤 자신과 전혀 다른 출신배경을 가진 유자(儒者)들을 크게 경멸했다. 《사기》‘고조본기’에 따르면 유방은 건국공신인 역이기( 食其)를 공개적인 석상에서 ‘우유(愚儒)’로 비난하는가 하면 유자들이 쓰는 유관(儒冠)에 방뇨키도 했다. 이는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잘 배운 사람’ 운운하며 서울의 강남 지역민과 조선일보, 삼성그룹, 서울대 출신 등을 특권층으로 몰아가며 적대감을 드러낸 것과 닮아 있다.

유방과 노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이런 모습은 별다른 기반도 없이 자력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사람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들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력으로 입신양명한 자들의 공업(功業)이 굉대(宏大)한데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이들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려의 유신(儒臣)들이 비록 충절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기슭에 있는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간 것도 한미한 가문출신인 이성계의 전력(前歷)을 천시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전대의 명족 출신이 한미한 출신의 개업과 개국을 있는 그대로 평가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세인들이 자력으로 입신양명한 사람을 추앙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역대 모든 왕조의 개국조가 소위 하나 같이 위보(僞譜)를 만들어 조상을 미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보를 만들어 조상을 미화하는 전래의 방안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 스스로 자신이 이룬 굉대한 공업에 대한 만족감으로 한미한 출신 및 전력으로 인한 허전함을 메우거나, 자신의 전력에 대한 세인들의 낮은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그리 쉽지 않은 데 있다. 당사자의 자부심과 세인의 인색한 평가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갭이 존재키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예상치 못한 화난(禍難)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대표적인 예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주원장 역시 유방과 마찬가지로 탁발승과 비적 등의 행각을 벌이다가 ‘역발상’을 통해 원대 말기의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일약 몸을 일으켜 천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원래 그는 천하에 보기 드문 추남(醜男)이었다. 그러나 영정(影幀)에 그려진 그의 모습은 이와 정반대로 현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위보(僞譜)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성이 주씨인 점에 착안해 사대부들이 공자 다음으로 존숭한 남송대의 주희(朱熹)를 자신의 조상으로 꾸미려고 시도키도 했다.

자격지심 때문에 폭군이 된 명태조 주원장
주원장은 보위에 오른 뒤 자신의 한미한 출신배경과 불미한 전력으로 인해 늘 자신의 출신 및 전력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병적인 반응을 보였다. 명나라 개국 초에 빚어진 수많은 筆禍事件(필화사건)은 모두 이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력을 연상시키는 모든 글을 보면 곧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여겨 당사자를 가차없이 혹형으로 다스렸다. 그가 후대에 폭군으로 비난받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원장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한미한 출신배경과 불미한 전력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인해 세인들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전력을 연상시키는 글만 보면 병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는 유방에게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점이다.

유방은 주원장과 달리 재위 도중에 육가(陸賈)를 비롯한 유자들의 간언을 전격 수용했다. 당시 육가는 유방을 계도하기 위해 12편에 달하는 책을 지어 시간을 두고 한 편씩 유방에게 바치며 군왕의 길을 가르쳤다. 유방은 열린 마음으로 육가의 가르침을 흔쾌히 받아들여 이내 군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는 주원장과 달리 보위에 오른 뒤 이내 육가 등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역발상’의 유혹에서 벗어난 셈이다.

이는 스스로를 구시대의 평민이 아니라 새 시대에 부응하는 명족의 일원으로 간주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유방의 일거수일투족은 군신(群臣)들의 모범이 되었다. 황제는 일상적인 업무에 간섭하지 않고 대신 이를 직접 처리하는 대신들을 선임하고 감독한다는 군도(君道)의 대원칙이 성립된 것은 바로 유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원칙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수천 년 동안 그대로 이어졌다.

유방과 주원장의 엇갈린 행보는 두 사람의 이질적인 성정과 무관치 않았다. 유방은 음습(陰濕)한 습기를 띠고 있는 주원장과 달리 밝은 면의 양성(陽性)의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이룬 공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유방은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도량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주원장이 희대의 폭군이라는 오명을 얻은 데 반해 유방이 후대인의 칭송을 받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 대통령 역시 성정 면에서 주원장보다는 유방에 가깝다.

전형적 소양체질… 책략 부족하나 소신 뚜렷
일찍이 구한말의 위대한 사상가인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는 사람의 체질을 사상론(四象論)에 입각해 4개의 유형으로 나눈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유방과 노 대통령은 전형적인 소양(少陽)체질에 속한다. 이에 반해 주원장은 장막 뒤에서 계책을 짜는 데 능한 책사 유형의 소음(少陰)체질에 속한다.

소양인은 소음체질에 비해 책략이 부족하기는 하나 소신이 뚜렷하고 일 처리에 뛰어난 재주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현우(賢愚)를 아주 잘 파악한다. 노 대통령의 확신에 찬 조리 있는 언변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양인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발 벗고 나서기 때문에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원한을 살 여지가 많다. 자신의 재주에 대한 신념이 지나치고 사사로움에 치우친 나머지 자칫 경박한 사람으로 몰릴 위험이 크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격정을 여과 없이 토로하면서 코드 인사를 계속하는 것도 이런 체질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소양인은 특히 자기가 현재 지니고 있는 부와 명예 등을 가볍게 보는 까닭에 이를 노리는 밑의 사람들로부터 늘 모함을 당할 소지가 크다. 소양인이 자주 폭발적인 슬픔에 잠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소양인이 남의 일에 희생적이고 대의명분 앞에서 비분강개하는 전형적인 무인(武人)의 기질인 데 따른 것이다. 눈물을 잘 흘리는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고 운운하며 걸핏하면 지존의 자리인 대통령직을 내걸고 승부수를 던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성정을 지닌 사람이 가장 주의할 대목은 신중한 대처를 요하는 외치분야이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바람에 대미관계와 북핵문제 등에서 우리의 입지가 협소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에 터져 나온 ‘평화의 바다’ 파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서 전국 각 대학의 교수들이 지난 한 해의 의미를 한마디로 압축한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를 선택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노 대통령에 대해 충정 어린 고언에 해당한다.

원래 ‘밀운불우’는 《주역》의 《소축괘》(小畜卦)와 《소과괘》(小過卦)의 괘효사(卦爻辭)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비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구름이 꽉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를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을 말한다. 현재까지 《주역》에 관한 최고의 주석가로 알려진 삼국시대 위나라의 王弼(왕필)은 이를 두고 이같이 풀이해 놓았다.

“《소과괘》에서는 음기가 위에서 성한 기세를 하고 있음에도 전혀 베풀지 못하고 있어 ‘밀운불우’라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소축괘》에서는 오히려 양기가 강한 까닭에 음기가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해 ‘밀운불우’라고 한 것이다.”

《소과괘》의 ‘밀운불우’는 음기의 인물이 군주의 자리에 앉아 아래의 신민(臣民)들과 제대로 호응하지 못하는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주원장의 등극이 이에 해당한다. 《소축괘》의 ‘밀운불우’는 덕이 매우 작아 대덕(大德)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소덕(小德)에 그치고 있는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현재 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최하의 지지도를 기록 중인 것은 시종 민심과 괴리된 코드인사와 오기정치를 계속한 데 따른 후과로 보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제라도 특단의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헌 등으로 불리한 국면을 반전시키려는 역발상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다행히 노 대통령은 유방과 같이 밝은 면의 성정을 지니고 있다. 《소과괘》의 ‘밀운불우’처럼 주원장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소축괘》의 ‘밀운불우’처럼 유방의 길을 따를 것인지는 전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노 대통령이 결심하기에 따라서는 잔여 임기 1년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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