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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6 유비는 양아들 죽인 비정한 아버지
 
“유비는 양아들 죽인 비정한 아버지” (북리뷰 코너에 올렸던 제 서평이네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맹목적 동경을 말끔히 지워버린 책이었는데요. 동시에 중국이 동아시아 역사에 드리우고 있는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글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관우를 모신 사당이 서울에 있습니다. 모두 조선에 대군을 파견했던 명나라 장수들의 요구로 사기 진작 차원에서 떠밀리 듯 조성한 사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닙니다.  태국같은 나라를 가도 해태상, 관우상을 떠올리게 하는 석상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청나라 말 서구열강의 이권쟁탈 각축장으로 전락한 뒤 빠른 속도로 쇠락하던 중국. 아시아의 이 빅 브러더의 영향력이, 이제는 현실의 정치 경제 , 문화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이 원산지인 텍스트의 비판적 독해의 필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는 배경입니다.


[이코노믹리뷰 2005-02-01 15:00]

《삼국지 바로 읽기》

동탁은 북지(北地)에서 항복한 반란군 수 백 명 속으로 들어가 앉더니, 그들의 혀를 자르고 손과 발을 절단했으며 눈을 뽑아 큰 가마솥에 삶았다. 참수된 머리는 불태웠으며 여자들은 사병들에게 주어 종이나 첩으로 삼게 했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탁’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한나라 황실을 침탈한 간흉이자 폭정을 일삼은 악당. 잔인하고 비정했으며, 가혹한 형벌로 사람을 위협하고 작은 원한도 반드시 보복했다고 나관중의 <삼국지〉는 전한다.

그가 사망했을 때, 낙양의 백성들이‘배에 심지를 꼽아 불을 붙이니 기름이 흘러 넘쳤으며, 그 머리를 차고 놀았다’고 하니, 그의 폭정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분노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삼국지만 놓고 보면, 그는 희대의 폭군이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왕윤과 양아들인 여포에게 무참히 살해되고, 후대인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는 비운의 인물인 동탁은, 하지만 한때는 주변의 칭송을 한 몸에 받던 무장이었다고 한다.

역사서인 《위서》의 동탁전은 장수로서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의로운 일을 즐겼고 변방의 강족과도 잘 어울렸다. 진심으로 그들과 교류해, 강족의 우두머리들은 1000여 마리의 가축을 동탁에게 주기도 했다. 재능이 있고 용감했으며 두 개의 화살통을 차고 말을 탄 상태에서 활을 번갈아 쏠 수가 있었다.”

그가 불과 3000여 명의 정예병으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한나라 수도인 낙양을 일거에 점령할 수 있던 데는 이러한 리더십도 한몫을 했던 것.

그는 인재들도 두루 포용했다. 훗날 조조 진영에 가담하는 명참모 가후와, 최측근 이각·곽사 등 뛰어난 장수들은 그가 변방 무장 시절부터 중용하던 인물이었다.

동탁은 또 집권 후에도 중신들을 대부분 기용하고 이름 높은 선비들을 불러들여 민심 안정에도 온 힘을 기울였다. 당대 최고의 관료인 왕윤, 순상 등이 동탁 군부 정권에 참여했으며, 특히 백성들의 추앙을 받던 채옹은 굵직굵직한 개혁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동탁의 통치를 뒷받침한 동탁정권의 이데올로그였다.

동탁은 특히 수도를 당시 낙양에서 장안으로 옮긴 뒤 화폐 개혁을 전격 단행하며 개혁가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화폐개혁은 구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한편, 기득권 세력이 음성적으로 지니고 있던 방대한 자금을 끌어내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생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회심의 카드였던 셈이다.

물론 멋대로 황제를 바꾸려고 하거나, 도읍을 옮긴 것은 그가 저지른 대표적인 실기였다. 하지만 리더십과 통솔력만 놓고 보면 남다른 데가 있던 그가, 훗날 희대의 살인마이자 폭군으로만 폄하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삼국지 바로 읽기》의 저자 김운회 동양대학교 교수는, 동탁이라는 ‘특정인물 죽이기’는 중국인의 ‘중화 영웅 만들기’, 이른바 촉한공정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라고 단언한다. 한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한 유비나 제갈공명, 관우, 장비 등을 중국 민족의 영웅으로 그리다 보니, 동탁이나 여포, 조조, 노숙 등 다른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폄하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변방 출신인 동탁이나, 몽골 출신인 여포는 출신 성분 탓에 더욱 형편없는 인물로 매도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촉한공정의 가장 큰 피해자인 셈이다.

반면 이러한 촉한공정의 가장 큰 수혜자는, 동서고금을 초월해 가장 뛰어난 전략가로 알려진 제갈공명이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 따르면 그는 적벽대전에서 한겨울 동남풍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에 화공을 가해, 관도대전으로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었던 조조에 치명타를 안겨준다.

또 그가 빈성 위에서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위나라 사마의의 수 만 대군을 물리치거나, 짚으로 만든 조각배로 화살 10만여 개를 주어온 일화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베트남 지역인 남만을 정벌해,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모두 놓아준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후한서》 《진서》 《위서》 등 정사에 따르면, 그가 군권을 쥐게 된 것은 유비 사후였다고 한다. 유비가 살아 있을 때 그는 줄곧 내정을 담당했으며, 군사쪽에는 거의 관여하지 못했다. 그의 놀라운 전과들이 창작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제갈공명은 또 유비 사후, 유비의 아들인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위나라 정벌에 나서지만, 오장원에 진출한 5차 북벌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위나라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지 못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제갈공명이 사마의 부자를 몇 번씩 죽일 뻔하고, 위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것처럼 풀어가지만, 정작 위나라 서부지역의 방위사령부이던 장안의 외곽 방어기지인 미성조차 그는 무너뜨리지 못했다.

위나라의 최고 병법가 사마의를 어린아이 다루듯 농락한 그가, 다섯 차례의 북벌에서 위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한 것은 삼척동자가 보기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또 삼고초려를 한 유비에게 그가 제시했다는 천하 삼분지계도, 나관중의 《삼국지》가 무능력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오나라의 노숙이 주군인 손권에게 일찌감치 제시한 계책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 또한 친아들인 유선의 순조로운 왕위계승을 위해 양아들인 유봉을 죽이기도 했으며, 부인과 자식을 언제든지 갈아 입을 수 있는 의복에 비유하는 등 냉혈한이었다.

또 두 형수를 모시고 위나라의 오관을 통과하며 여섯 장수를 베었다는 관우의 ‘오관참장’ 이야기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물론 《삼국지》가 상상력에 바탕을 둔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등장 인물들에 대한 윤색은 어느 정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러나 삼국지를 소설로만 받아들이기에는 그 폐해가 지나치게 크다고 말한다.

흔히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지만, 《삼국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략과 음모, 이간질에 불과하다는 것.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다.

특히 중국사 전체에서 볼 때 별다른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위, 촉, 오 등 삼국의 이야기를 부풀리고 성역화하는 일에 이문열 씨 등 국내 유명작가들이 나서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나관중의 《삼국지》는 유비나 제갈공명을 배출한 중국이 위대한 나라라는 인식을 전파함으로써, 중화주의를 주변 국가에 퍼뜨리고 있다”면서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지적인 토대가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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