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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소설가 김홍신이 말하는 경영학원론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9-05 18:24 | 최종수정 2007-09-05 18:48




“창업-수성 원리 발해史에 다 있어”



그는 생각보다 더 왜소했다. 지친 기색도 역력했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 꼭 이렇지 않았을까. 흉노에 항복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비운의 사나이. 남성을 거세하는 궁형을 택한 이 외로운 남자는 동시대인들의 조롱거리였다.

명예를 목숨처럼 여겨야 할 태사령이 구차하고 비루한 삶을 택했다는 손가락질이었다. 하지만 한신, 장량, 유방, 항우, 이사, 이릉…. 중국사를 수놓은 인물들은 그의 손을 거치면서 화려하게 다시 되살아났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도 영고성쇠의 요인을 알려주는 불멸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3년간 소설을 집필하며 두문불출한 전직 국회의원. 단식 농성을 하고‘공업용 미싱’ 발언으로 홍역을 치르던 격정의 소유자는,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달 18일 오후 4시 30분, ‘소설가’ 김홍신은 자택에서 기자를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맞았다.

발해는 그의 정신세계를 오롯이 부여잡고 있는 주제인 듯했다. 김씨의 작업공간이기도 한 2층 서재는 족히 만여 권은 되어 보이는 책들로 그득했다. 벽면 한쪽에 발해와 당, 그리고 통일신라 영토를 표시한 지도가 붙어 있고 책상 한편에 발해사 관련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화제를 자연스레 《대발해》로 옮겨 갔다. 이 열 권짜리 대하소설은 출간 한 달여만에 3쇄를 인쇄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저술 작업에 몰두해왔지만, 중국 현지를 돌아보고 작품을 기획한 준비기간까지 더하면 8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STRATEGY

  고구려는 당의 장기전에 휘말려 패퇴
  발해는 적국의 본토 기습으로 맞대응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는 달랐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을 떠올리는 기습작전으로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무예의 대당 선제공격이 국운(國運) 바꿔

사마천은 자신의 울분을 한 글자 한 글자 사기에 새겨 넣었다. 한 무제가 분노의 과녁이었다. 김씨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구려 패망 후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이 얼마나 되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그가 기자에게 거꾸로 묻는다. 무려 20만이었단다. 하지만 발해는 철저하게 파괴된 고구려의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섰다.

뛰어난 지도자, 그리고 국민의 헌신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기적을 만들어 냈다. 총선 패배 후 3년 만에 은둔을 깨고 발해의 건국과 패망을 다룬 장편소설로 다시 돌아온 그는, ‘민족’이라는 주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발해, 그리고 고구려의 영고 성쇠를 불러온 요인은 무엇일까.

“고구려는 가볍게 무장한 기병들을 적군의 배후로 침투시켜 적의 보급부대를 궤멸시키고, 본대는 들판의 곡식을 모두 불태운 뒤 성에서 장기전을 펼쳤습니다. 바로 청야 전술입니다. 당 태종도 결국 이러한 전략을 뒤집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패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씨는 지도자의 냉철한 상황 판단 능력을 번영의 첫 번째 요소로 꼽았다. 따지고 보면 고구려가 당나라에 패망한 것도 당의 ‘진지전’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당은 전면전을 피하고 국경에서 크고 작은 분란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당의 전략가들은 적성국인 고구려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장기전으로 선회했는데, 이러한 전략은 중국 삼국시대 책사들이 자신의 주군들에게 진언하던 책략이었다. 고구려는 당 제국의 이 두 번째 전략을 무너뜨릴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패망했다. 하지만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는 달랐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blitzkrieg)을 떠올리는 기습작전으로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무예는 당시 발해의 명장이던 장문휴 등을 앞세워 당나라 영토에 속했던 산둥반도, 그리고 만리장성 인근의 마도산을 점령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적의 허를 정확히 지른 것이다.

며느리인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 현종은 본토가 침략 당하자 신라에 원군을 청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대무예의 당 기습작전은 동아시아의 권력지형을 흔든 사건이었다. 발해는 이후 200년 수성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발해의 후계자들은 안녹산의 난을 비롯해 당 내부의 분열을 적절히 활용하며 세를 불려나간다.


        HUMAN CAPITAL
  부역과 세금의 중과는 만병의 근원
  한민족 신바람의 문화 정확히 꿰뚫어야


흥과 한의 국민 정서 정확히 간파해


뛰어난 지도자들은 기업이나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흐르는 강물 위에서 노를 젓지 않으면 자꾸 뒤로 밀려나게 된다는 이치를 그들은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기자의 메모수첩을 자신의 책상 앞으로 바짝 당겨놓는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지도를 쓱쓱 그리며 목청을 한껏 올렸다.

웅혼한 기상도 전략의 뒷받침을 받아야 위력이 배가되는 법이다. 지난 1980년대 미국 시장에서 GE와 맞장을 뜨던 ‘웨스팅하우스’가 잭 웰치 부임 후 변화의 가속페달을 밟은 GE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다, 결국 문을 닫고 만 것도 비슷한 이치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노자의 한 대목이다. 백성들의 무서운 힘을 물에 비유한 경구다. 1994년, 그는 삼성전자 수원 반도체 공장의 여직원 기숙사를 방문했다 한 공원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한 여자 공원이 자신은 식사 때에도 국이나 물을 잘 먹지 않는다고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는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화장실에 들락거리다 보면 업무에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한 소설(칼날위의 전쟁) 취재차 방문한 자리였다. 그는 그녀의 말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았다고 한다.

바로 한민족 특유의 신바람이다. 지도자가 아무리 닦달을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한 국민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열정, 그리고 헌신성은 뛰어난 리더십의 영도를 받아 하나로 모아질 때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김씨가 요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로자들의 기를 살리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세를 확산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서 미국의 반도체 장비 업체인 도날슨, 스웨덴의 볼보그룹까지, 인본주의적 경영을 앞세운 기업이 성과를 높이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런 풍토에서는 촌음을 아껴가며 자신의 업무에 매진하던 90년대 삼성전자 사업장의 여공들과 같은 헌신적인 태도와 정열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기업경영도, 나라 운영도 한국인 고유의 특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결실을 맺기 어렵다고 그는 강변했다. 한국인은 분위기에 휩쓸리면 걷잗을 수 없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반면 한번 가라앉으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체면을 매우 중시해 자신을 존중해 주는 이에 대해서는 보은을 아끼지 않는다.

대조영, 대무예를 비롯한 발해의 역대 군왕들이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함으로써 백성을 편하게 한 배경이다. 뛰어난 지도자의 리더십,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앙상블을 이뤄야 강국이 될 수 있다. 기업으로 논의를 좁혀봐도 이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랜드 비전으로 국민들 일치단결 불러

“나라가 망할 때면 지도층의 사치가 기승을 부리고, 내분이 격화됩니다. 또 민심 이반이 두드러지며, 지도자의 혼암함이 극에 달하는 공통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꼭 이와 같습니다.”부동산을 둘러싼 계층 간의 갈등이 대표적 징후라고 그는 지적한다.

발해의 마지막 왕 대위해는 민심을 살피지 않고, 남색에 빠져 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에 200년 역사의 나라를 송두리째 바치고 말았다.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배경이다. 그가 국내 기업인들의 중국 진출 동향에 아쉬움을 피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투자가 주로 한족들의 본거지 격인 상하이나 베이징 등에 편중돼 있으며, 우리 조상들의 영토였던 동북 3성은 투자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하지만 기업에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동북3성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다.

그는 무엇보다 중국의 의도를정확히 간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공정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결국 지금의 북한 땅에 대한 영유권 소유가 아니겠어요. 당이 진지전으로 고구려를 무너뜨렸듯 중국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영토 확장의 명분을 서서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의 목소리는 역사학자 이덕일 씨와 닮아 있다.

이씨는 아시아의 대형 중국에 맞서 몽골 등과 동이족 국가들의 연합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역사적 소명, 먹거리 문제 등을 하나로 꿰는 비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조영은 고구려 고토 회복이라는 원대한 비전으로 고구려 유민, 말갈부족의 에너지를 결집시켰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인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대선의 계절이다. 이상적인 대통령 감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사마천은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 준 절대 군주에 대한 회환을 평생 곱씹으며 살아야 했다. 사기 자체가 한 무제를 향한 넋두리이기도 했다. 정치를 다시 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술활동이 자신이 천직이라고 답변했다.

《김홍신이 분석한 드라마 대조영》

“70대 측천무후 너무 젊고 대조영 활약상 대부분 허구”

발해의 창업자인 대조영. 그는 국제 정세를 꿰뚫어 보고 당과 거란의 대립, 또 돌궐의 부상을 적절히 이용해 세 불리기와 건국에 활용한 전략가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뜻밖에도 김홍신 씨는 기자의 이러한 분석에 쉽사리 동의를 하지 않았다. 대조영의 실체를 제대로 가늠하기에는 사료(史料)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발해 자체 기록은 3대 대흠무의 둘째 공주 정혜와 넷째 공주 정효의 무덤에서 나온 비석에 적힌 약 1500자 정도의 기록 외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김씨는 발해의 역사를 복기할 수 있는 유물은 현재로서는 거의 남아있는 게 없다고 털어놓는다. 이러한 한계는 드라마에서도 확인된다.

대조영은 늘 신출귀몰한 무인으로만 그려진다. 또 고구려 보장왕의 조카와 결혼도 하지만 모두 허구의 산물이다. 사료 부족이라는 한계를 상상력을 발휘해 메웠다. 중국 역사의 유일무이한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도 67세에 황위에 오르는데, 드라마에서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세밀한 고증보다 시청률이 우선순위인 드라마의 특성을 감안해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는 사료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의 역사책을 분석하고, 재해석했다. 구당서, 신당서, 발해국지, 위서, 한서,후 한서, 책부원구, 요사, 요동고, 유취국사, 자치통감, 속일본기, 일본기략을 주로 참조했다.
■ 작가 김홍신은 194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인간시장》이 국내 최초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560만권 이상이 팔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96년부터 2003년까지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종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500여 표 차이로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패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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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역사용어 바로쓰기》

[이코노믹리뷰 2006-09-04 00:18]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의 서평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역사용어에 얼마나 왜곡된 역사의식이 반영돼 있는 지를 깨닫게 하는 책이네요.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역사비평사/
2006년 8월/328쪽/12,000원

“삼국시대는 없었다”

이 책은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중인 35명의 학자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잘못 쓰이거나
주체에 따라 달리 쓰이는 40개의 역사용어를 재검토하고 있다.

요 즘도 가끔 등장하는 ‘이조백자’라는 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풀어 쓰면 ‘이씨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백자’다. 박씨나 김씨가 조선 시대의 임금이었던 적이 없는 데 굳이 ‘이씨 조선’, 즉 ‘이조’라니 이 용어를 만든 이가 누군지 대략 짐작이 가지 않는가. 이조백자라는 말은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본이 조선 왕실을 폄하하고 강제 병합을 정당화하려는 정치·문화적 의도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다 한 용어로 통일되는 경우가 있고, 완전히 다른 용어로 대체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용어를 지은 주체와 그 주체의 역사의식 때문이다. 한때 노동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었던 시기에 ‘근로자’란 말이 대세(?)였다가 지금에 와서 보편적으로 ‘노동자’라는 말이 쓰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다사다난했던 우리 역사를 보면, 부적절한 시대에 부적절한 용어들이 참 많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적절한 용어로 대체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대체는커녕 뿌리깊은 나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용어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 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 용어다.

《역사용어 바로쓰기》(역사비평사)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역사 용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쓰여진 책으로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경제학·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중인 35명의 학자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잘못 쓰이거나 주체에 따라 달리 쓰이는 40개의 역사용어를 재검토하고 있다.

저자들이 지적한 용어들은 우리가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적합하지 않게 쓰인 것이 정착한 것, 학문적 검토 없이 잘못된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다가 학술용어로 정착한 것, 관용적으로 잘못 써왔거나 의미가 탈색되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것들이다.

한국의 고대사를 보자. 우리는 교과서에서 삼국시대를 배웠다. 하지만 고구려·백제·신라·이 세 나라가 당시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는 고작 98년(562년∼660년)에 불과하다 한다. 저자는 여기에 가락국, 즉 가야의 존재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야는 고구려·백제·신라와 대등하게 병존했으며, 바닷길을 잘 이용했고 이로 인해 같은 시대의 신라보다 훨씬 더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가야를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던 약한 나라로만 인식하고 있을까? 그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주장한 식민사학의 결과다.

19세기 말부터 일제의 역사가들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는데, 이는 고대 왜(倭) 왕권이 가야 지역을 정벌하여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 두어 남한을 경영했다는 주장이다. 이후 광복이 된 후에도, 일제의 이러한 선전에 물들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열등감에 빠져 가야사는 거의 거론되지 않은 채 50년이 흘렀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을 보면 가야가 고대 왜국의 지배나 백제 혹은 신라의 지배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발굴된 유물에서는 풍부한 부와 기술, 특히 제철 기술 능력을 통해 가야의 힘과 독자적인 문화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삼국시대는 부적절한 용어며, 올바른 용어는 ‘사국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 북쪽에는 분명히 발해가 존재했다. 발해는 건국자와 주민 구성에서 이중성을 띠고 있었지만, 건국된 뒤에 고구려 계승을 표방했다. 발해 무왕은 727년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따라서 당시를 정확하게 반영한 용어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라 남북국시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이 공식 조약 명칭인지 아닌지, 독립운동이 맞는 용어인지 민족해방운동이 맞는 용어인지, 신사유람단이란 용어가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이 표현 자체가 맞는 것인지 아닌지, 반탁과 신탁의 존재, 한국전쟁이 과연 맞는 용어인지 등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용어, 대중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용어, 여론을 반영하는 대중매체의 용어 속에는 그 용어를 만든 주체의 인식이 교묘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정확한 용어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 ‘그거나 이거나 다 똑같은 걸 두고 하는 말 아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광주에서 일어난 쿠데타군의 학살극을 두고 아직까지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쓴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용어로서 우리에게 그리고 후손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이 남긴 가치와 교훈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

책의 서문에서 강정숙 박사는 “말은 의식을 구속하고 제약한다. 잘못된 용어로 쓰인 역사는 잘못된 역사 이해와 역사 인식을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바로 쓰고 바로 붙이는 일, 역사용어를 바로 이름 짓고 부르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근대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주요한 개념어들을 대개 일본에서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적합하지 않은 의미 혹은 연상이 특정 용어와 연결된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에 역사용어 재검토는 곧 한국사회의 제대로 된 ‘근대사회 만들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재검토에 들어간 40개의 역사 용어는 근현대사 과정에서 형성된 용어의 숫자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이러한 단어부터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 역사용어의 전면적 재검토를 위한 자극제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이 책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역사 이해와 역사 명명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 미래의 문제임을 인식하자. 그리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들이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역사 바로 세우기는 바로 용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www.summ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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