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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은 1990년대 이후 ‘좌우’로 흔들려온 간판 공기업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부침(浮沈’)을 겪어온 이 공룡기업은 현 정부 들어서도 다시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민간 경영인 출신 CEO를 맞아들인 가운데 ‘좌파 정부’가 쪼갠 자회사들을 재통합하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라 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이 공룡기업을 분할하며 자회 사간 ‘경쟁의 효율성’을 내세웠다. 반면 현 정부 들어 재통합 논의가 고개를 들면서 이번에는 ‘규모의 경제’ 이론이 득세한다.

덩지를 다시 키워야 연료의 대량 구매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강동원 전 농수산물 유통공사 감사는 하지만 공기업 개혁의 문제는 결국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여정부 당시 공기업 수장 일부는 인사권자를 ‘고졸’이라고 비하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감사활동을 방해하는 구태를 거듭했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서는 한동안 사라졌던 군장성 출신의 감사들이 재등장하며 공기업 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강동원 전 감사를 지난 8일 인터뷰했다.



감사실장이 하루는 제게 와서는 조언을 하더군요. 사장이 의견이 있냐고 물으면 ‘가만히 있다 이의 없다고만 말하면 된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사장을 대할 때는 어떤 말투로 얘기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어요.


다들 편히 있다 가는 자리가 공기업의 ‘감사’인데요. 그때는 왜 그렇게 각박하게 구셨습니까.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최고경영자가 정치권 거물의 후원으로 이 공기업에 입성한 분이었습니다. 국내 최고 학부 출신의 명망가가 운영을 하는 공기업의 운영 실태가 가히 충격적이었어요.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 실태야 공공연한 비밀이 아닙니까. 다들 알고서 부임하는 줄 알았습니다.
(전임 감사가) 인수인계를 좀 해줄 줄 알았는데…. 감사실도 문패만 내걸고 있었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어요. 전체 직원이 6명에 불과했어요. 간부를 빼면 4명에 불과했죠.


IMF 이전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매일우유 등이 모두 공사 소속이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 인원으로 감사업무를 감당할 수 있습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합니다.(웃음) 감사실장은 자꾸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고 하구요. 저녁 회식을 하자고 했더니 그의 답변이 놀라웠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그런 전례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웃음) 전임 감사들이 감사실 직원들과 저녁 식사 한번 한 적이 없었다는 얘깁니다. 지금이야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웃기도 합니다만, 당시에는 정말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 보시지 그랬습니까.
부임 열흘 만에 이사회가 열렸는데, 감사실장이 제게 조언을 하더군요. 사장이 의견이 있냐고 물으면 ‘가만히 있다 이의 없다고만 말하면 된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사장을 대할 때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말투’까지도 일일이 알려주더군요.(웃음)


‘감사’를 거의 왕따로 만드는 분위기였나 봅니다.
사장 중심의 집행부가 감사실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어요. 해외 지사는 3년, 지사는 2년마다 감사를 했는데, 그나마 (직원들이) 지사 감사를 나가면 그냥 놀다가 왔어요. 고스톱 치고 향응도 받고, 그러다 돌아온 거죠. 본사는 감사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경영진을 견제할 감사 자리에 기무사 출신의 장성이 다시 왔다는 점입니다. 참여정부 때 사라진 군 출신 감사가 현 정부 들어 다시 등장한 거죠. 군인들이 농수산물 유통 분야에서 과연 어떤 형태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솔직히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군 출신 감사들처럼 모르는 척 하지 그러셨어요
취임 9개월이 지나니 퍼뜩 정신이 들었어요. ‘인사명부’를 가져다 임직원 현황을 꼼꼼히 분석했습니다. 석 달 정도 말 그대로 수능 공부하듯이 자료를 점검했습니다. 경남 김해의 장미수출단지를 비롯해 현장도 부지런히 탐방했습니다.


뾰족한 수가 보이던가요.
생일을 맞은 직원들에게 거의 매일 이메일로 축하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판에 박은 듯한 내용은 지양했습니다.

그 직원의 고민거리를 먼저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형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견제는 없었습니까.
감사원에 투서를 보낸 이들도 있었습니다. 감사가 자꾸 엉뚱한 일을 벌여서 농림부가 예산을 삭감할 것이라는 식의 ‘비난’도 나돌았어요. 사내에 사장과 감사 등 ‘태양이 둘’이라는 비판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군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을 어떻게 돌파했습니까.
감사일지 1년 치를 내부 인트라넷에 공개했어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비난이 거셌어요.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는 음해였어요.


결국 그 승부수가 먹혀들지 않았습니까.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청렴도 평가에서 수위를 차지했습니다.
부임한 지 일 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입니다. 미국 출장을 다녀오니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32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도 청렴도 측정 결과 공사가 당당하게 수위를 차지한 거죠. 유통공사가 한국전력을 비롯한 모든 공기업들을 제치고 1등을 한 겁니다.


국내 공기업 평가는 규모가 작은 공기업에 불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한전 등을 제쳤어요.
덩지가 큰 공기업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평가를 하니 큰 기업은 항상 앞서가고, 석탄공사, 광업진흥공사 등 열악한 곳들, 농업 관련 공사들은 항상 뒤처질밖에요. 그런데 농수산물유통공사가 3년 연속 ‘1등’을 했습니다. 이변이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치하를 할 만했군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감사 일지를 화제로 삼으며 제게 기록물을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라고도 하셨습니다.


5공이나 6공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농수산물유통공사에도 당시 군 출신 감사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왔습니다. 공사 직원인 운전기사는 사장을 출근시킨 뒤 그 집으로 이동해 다시 사모님 잔심부름을 했습니다.


장군 출신 감사들이 온갖 추태를 부렸군요.
장군뿐이겠습니까. 가족들도 마치 상전처럼 굴었어요. 감사의 대학생 딸은 반말로 공사 소속의 운전수를 툭하면 호출했어요.

그러면 기사는 즉각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런 감사들이 과연 공기업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을까요. 낙하산의 폐해죠.


본인은 ‘낙하산’이 아니라고 보십니까.
‘낙하산’이라고 다 똑같은 ‘낙하산’은 아닙니다. 전문성이 있어야겠죠.(웃음) 그리고 현 정부에서 그런 비판을 하는 인물들 중에는 자신이 과거 공기업에서 ‘낙하산 감사’로 근무한 사례가 ‘다반사’입니다.


참여 정부는 공기업 평가에 성과주의 잣대를 도입하지 않았습니까.
참여정부 시절, 공기업 CEO 연봉이나 임직원 인센티브를 보면 회사별로 천차만별입니다. 경영자의 경영성과를 반영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입니다.


참여정부는 한전 민영화를 사실상 포기했어요. 현 정부는 이 공룡기업의 재통합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입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한전을 쪼개 발전사들이 경쟁하게 되면 효율성을 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현 정부는 조직을 통합하면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잘못된 정책이라면 ‘궤도’를 선회할 수 있는 건 아닙니까.
정책 효과를 거둘 때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됩니다. 한전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정책 기조를 통째로 바꿔버리면 ‘혼란’만 가중될 뿐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유력 정치인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공기업 수장이 된 서울대 출신은 대놓고 대통령을 험담했습니다. 대통령이 고졸 출신이어서 될 일도 안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임직원들이 있는 데서 하곤 했습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어떻습니까. 현 정부 출범 이후 뚜렷이 나아진 점이 있습니까.
뒷 걸음질하고 있습니다. 감사 자리에 기무사 출신의 장성이 다시 왔어요. 참여정부 때 사라진 군 출신 감사가 현 정부 들어 다시 등장한 거죠. 다시 과거로 회귀했다고 봐요.


감사 시절 경영자와 타협할 여지는 없었습니까.
이 공기업 사장은 국내 최고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유력 정치인의 지지를 등에 업고 참여정부 공기업 수장이 된 그는 대놓고 대통령을 험담했습니다.

대통령이 고졸 출신이어서 될 일도 안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임직원들이 있는 데서 하곤 했습니다.


하극상을 저지른 셈이군요.
자신이 좌파 정부의 인사로 낙인이 찍히는 걸 두려워한 측면도 있는 것 같고…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다 놓아버린 탓이 큽니다. 통제가 되지 않았어요.


현 정부가 참여정부의 ‘실패’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까.
공기업 평가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담금질해야 합니다. 공기업 평가위원이 15명 정도입니다.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수백여 개의 공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현 정부가 요청을 한다면 제가 감사 시절 얻은 개혁의 노하우를 충분히 공개할 의사가 있습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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