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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7일 오전 11시, 바르샤바 중심가에 있는 폴란드 중앙은행(NBP)의 사무실. 자섹 코트로브스키(Jacek Kotlowski) 폴란드 중앙은행 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재작년 금융위기 당시를 떠올린다. 지난 2008년 9월, 리먼사태는 폴란드 경제를 뒤흔든 악재였다.

폴란드도 실업률이 치솟고, 부동산이 급락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하지만 폴란드 경제는 금융위기의 파고를 비교적 조기에 극복했다. 지난해(2009년) 유럽연합 국가중 유일하게 1.7% 플러스 성장을 하는 저력을 발휘한 것. 폴란드 정부의 위기 극복에는 선제적 조치가 주효했다.

폴란드 중앙은행(NPB)이 금리를 인하한 시점이 지난 2007년 11월. 미국에서 신용 위기가 확산되며, 컨츄리와이드를 비롯한 모기지 전문업체의 도산이 꼬리를 물며 위가감이 서서히 고조되던 시기였다. 부동산 버블경보는 증시 활황세에 묻혀 곧 자취를 감춘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들도 당시 위기의 징후를 읽지 못했다.


폴란드, 금리 인상 시기 '조율'

지난 2007년 말, 전 세계 인수합병 건수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투자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인 CDO를 세계 각국에 판매했다. 폴란드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는 선제적 조치였다. 유럽연합이 같은 시기 기준 금리를 잇따라 인상한 것과 대조적이다. 2009년 초에도 재차 금리를 인상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

폴란드 중앙은행은 최근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에는 금리 인상 시기가 문제이다. 폴란드 경제가 지난해 유럽연합 국가 중 유일하게 1.7%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자, 물가 인상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금융당국의 금리인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재작년 미국 발 금융 위기 이후 폴란드 주택시장은 위기 이전의 가격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 시내의 아파트 평당 가격은 평균 1000만 원 대에 달한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 문제는 이 나라의 독특한 대출 관행. “폴란드인들은 대개 집값의 50% 가량을 은행에서 대출받습니다. 대출은 폴란드 돈인 즐로티가 아니라 스위스 프랑화로 진행됩니다”.

자섹 코트로브스키 중앙은행 경제연구소 부소장은 폴란드의 대출 관행을 화제로 삼는다. 스위스 프랑화 대출을 받는 이면에는 대출 부담을 한 푼이라도 줄이려는 계산이 있다. 즐로티에 비해 금리가 낮은 프랑화로 대출을 받아 상환 부담을 덜려는 복안이다. 금리가 낮은 일본 엔화로 돈을 빌려 아파트를 산 뒤 원화로 원리금을 되갚는 격이다.

문제는 스위스 프랑화의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진 것. 스위스 프랑화가 금융 위기 이후 금, 달러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각광받는으며 수요가 높아진 결과다. 여기에다 아파트 값도 소폭이긴 하지만 하락 추세인 점도 부담거리.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툭하면 발목을 잡는 부실덩어리 이웃국가들도 마찬가지.


‘소비 위축 부른다’ 부작용 해결 과제로

유럽의 더블딥 위기설은 주기적으로 고개를 들며 금리 인상의 발목을 잡는다. 폴란드는 지난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했지만, 아직 통화는 자국 화폐인 ‘즐로티’를 사용하고 있다.

자섹 코트로브스키자섹 코트로브스키
폴란드 바르샤바 중심가의 쇼핑몰들은 요즘 세일중이다. 잊을만 하면 고개를 드는 더블딥설에 움츠러든 소비자들이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못하자 내건 유인책이다. 바르샤바 시내의 폴란드 주요 상가에는 아직도 40~50%대의 할인 표지를 내건 상점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믈라바 현지에 있는 전자제품 공장들도 ‘피크 타임’이 사라졌다고 아우성이다.

폴란드는 재정파탄으로 흔들리는 유럽국가들로 부심하는 반면, 대한민국은 미일 양국이 주도하는 환율전쟁 이 부담거리다. 자국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경제 안정을 꾀하려는 자국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 원화나 즐로티화의 가치 상승은 양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은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성장 속도가 둔한데다, 각종 경기 지표도 혼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경제 위기 재발 가능성은 상반기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추세적인 경기 회복세를 낙관하기도 시기상조.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이나, 집권 민주당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른 일본은 당분간 양적 완화 정책에 매달릴 개연성이 크다. 세계경제의 양대 강국이 주도하는 화폐 가치 절하 움직임은 2차 대전 이후 보호무역조치를 떠올리게 한다.

한폴란드 양국이 직면한 딜레마이다. 정책 금리를 올리면 달러가 유입되고, 달러가 유입되면 원화 가치가 오를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 두나라 모두 금리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환율전쟁,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이 겹치면서 중앙 정부의 운신의 폭은 오히려 좁아지고 있는 양상.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무르익고 있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은 것이 양국의 딜레마다.

일찌감치 금리를 수차례 인상한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호주에 이어 브라질이 올 들어 이미 2차례 금리를 올렸다. 선제적 금리 인상 조치를 취한 국가들은 대부분 자원 부국들이다.자원 부국인 뉴질랜드도 3년 만에 금리 인상을 했다. 한국은행이 좌고우면하다가 ‘실기(失期)’했다는 비판에 고개를 드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폴란드는 한국은행이 안고 있는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창(窓)이다.
두 나라는 모두 세계경제협력기구(OECD) 내에서도 경제성장률이 높은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의 우등생이다.
양국이 직면한 상황에는 물론 편차가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비교적 높고,
부동산 시장이 정책 운용의 폭을 좁히고 있는 점도 또다른 공통점이다.


양국 금융당국 고민 ‘이심전심’

금리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한·폴란드 양국경제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조기 극복한 우등생에 속한다. 환율전쟁의 여파로 기준 금리 인상 등 정책 운용 여지가 좁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기준 금리 인상의 파고를 다각도로 헤야려 봐야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정치적인 변수들도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혀들며 금리인상 시기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정책담당자들의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섹 코트로브스키 폴란드 중앙은행(NPB) 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자국의 금리 인상 필요성에는 원칙상으로 공감하면서도 금리 인상 여부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지난 2007년 11월, 선제적인 금리인상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양국 금융 정책 당국자들의 고민을 가늠할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이 내릴 결정에 관심이 모아지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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