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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미국은 열린 사회의 적”

[이코노믹리뷰 2006-10-20 11:12] 조지 소로스라는 인물을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그는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으로 아시아권에서는 지난 97년 외환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물론 그는 외환위기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합니다. 작년  말에도 마찬가지더군요.

저는 작년에 헤지펀드계의 제왕으로 불리는 이 거물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매경에서 주최한 지식포럼 참석차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때마침 오류의 시대라는 자신의 저서 한국판을  발표하면서 기자들을 불렀습니다. 현장에서 대면한 그의 인상은 사실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 일부가 좀 자세한 내용을 질의하면 책을 읽어보라며 면박을 주더군요.  안경을 자꾸 만지작 거려  간담회에 응하면서도 마치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죠. 훗날 알게 됐습니다만,  그는 당시 우리나라 방문길에 여자친구인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부모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국제 금융계의 이 거물급 인사도 아마 마음이 콩밭에 가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당시 소로스가 방문한 시기가 북핵 사태가 터진 직후여서 북핵 사태의 향방을  묻는 질문이 꽤 많았습니다.

당시 소로소는 인민이 굶주리는 북한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며, 북핵문제가 곧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는데, 아니나다를까 그의 예측대로 상황은 풀려나갔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세상의 온갖 정보가 모여드는 세계 금융계를 주름잡던 솜씨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자, 권춘오 네오넷 코리아 편집장이 쓴 '리뷰'를 읽어보시죠. 세상사를 명철하게 바라보는 소로스만의 비법에 귀를 기울여 보시죠.









오류의 시대 - 테러와 전쟁이 남긴 것들
조지 소로스 지음/전병준 옮김/네모북스
2006년 10월/296쪽/1만3000원

소로스는 미국이 당면한 문제, 유럽연합의 실패, 민주주의 확산 과정의 어려움, 지구 에너지 위기, 그리고 핵 확산 등 현 시점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들을 논한다.

과 제를 하나 내줄까 한다. 자, 이제부터 ‘코끼리’에 대해 절대 생각하지 말자. 머릿속에 코끼리란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말 것! 10초 동안 그렇게 해보자. 시계를 10초 동안 보면서, 자 시작~ 10, 9, 8, 7, 6, 5, 4, 3, 2, 1!

어떤가? 과제에 성공했는가? 성공했다면 당신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거나 거짓말쟁이다. 조지 레이코프라는 저명한 언어학자가 인지과학 입문에서 학생들에게 내는 첫 과제가 바로 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과제에 성공한 학생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코끼리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지과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프레임(frame)을 설명하기 위한 테스트이다. 프레임(frame)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따라서 어떤 세력이 프레임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는 그 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과 같다.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왜 미국의 진보주의가 보수주의에 연패하고 있는지를 진보주의가 보수주의가 만든 튼튼한 프레임의 덫에 걸렸고, 거기서 빠져나올 노력도 의식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지 소로스가 최근 저술한 《오류의 시대》(네모북스)는 이런 관점에서 위의 레이코프 교수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삼인)와 일맥상통한다. 우리에게는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으로서 헤지펀드의 귀재, 그 이미지가 ‘외환 위기를 뒤에서 조종한 환투기꾼’이자, 탐욕스러운 유대인이라는 딱지가 붙은 소로스와 미국 진보주의의 대표주자격인 레이코프 교수가 일맥상통한다니, 의외이기는 하지만 ‘프레임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미국이 오류에서 벗어나 열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이론과 그 이론의 실천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소로스는 미국의 어떤 프레임을 (프레임이라는 용어를 그가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시키려는 것일까? 그것은 칼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로의 전향이다. 여기서도 탐욕스러운(?) 소로스와 포퍼가 잘 매치되진 않지만, 소로스는 포퍼의 수제자이다.

소로스는 헝가리에서 태어나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동시대의 모든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나치의 온갖 박해를 받았고 신분을 위장하여 단신으로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소로스는 외로움과 배고픔의 고통으로 살았다. 그렇게 항상 억압적인 상황에서 성장한 소로스가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그곳에서 접한 포퍼 교수의 ‘열린 사회’는 그의 이상향과도 같은 것이었다.

열린 사회란 전체주의 정치체제의 이념적 허구성과 비도덕성, 사회 전체의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차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적 사회로 전체주의와 반대되는 개인주의 사회이다.

포퍼는 열린 사회만이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사회라고 정의하면서 열린 사회의 최대의 적으로 역사주의라 불리는 전체론, 역사적 법칙론, 유토피아주의를 꼽았다.

즉 열린 사회는 개인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며, 이분법이 아닌 다양한 의견과 제안이 존재하는 사회다. 그리고 사회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하고 여기에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포퍼의 영향을 받은 소로스에게 있어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데 오늘날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미국이다. 소로스조차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라고 말할 정도다. 열린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공정한 세계 질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이 바로 그것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 소로스의 생각이다.

소로스는 9·11 사태 이후 이라크 침공에 이르기까지 부시 정부는 잘못된 어젠다를 설정, 무력 사용을 강조하되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협력이 필요한 문제는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더군다나 세계의 나머지는 미국의 장단에 맞춰 춤추고 있다. 이러한 소로스가 군사력에 기반한 패권주의로 국제사회질서를 엉망으로 만든 부시 대통령을 싫어하는 건 자명한 일.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2004년 대선 당시 2500만달러를 재선 반대운동에 쏟아부었던 일화는 바로 이러한 반 부시 운동의 일환이었다.

부시의 당선을 두고 그가 이 책에서 말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졌다. 그가 재선한 것이다. 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에 무엇이 잘못됐나?”는 말은 미국 사회에 변화의 필요성이 이제 거의 벼랑 끝에 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소로스는 미국이 변화하려면, 우선 오해에서 비롯된 무의미한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는 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소로스는 오늘날의 미국과 히틀러의 나치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 스스로도 불쾌한 비유라고 하는 그 첫 번째 공통점은 나치의 민족사회주의와 미국의 종교적 근본주의가 라이프스타일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부시행정부와 나치는 모두 두려움의 정치에 몰두했으며, 나치의 독일이나 지금의 미국에서의 정치적 생명은 의회 밖에서 시작됐고 국가에 의해 주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총2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소로스는 그가 바라보는 보편적인 문제점들을 논하고, 역사상 현 시점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들을 제시한다. 즉, 열린 사회로서 미국이 당면한 문제, 열린 사회로서 유럽연합의 실패, 민주주의 확산 과정의 어려움, 보호의 책임을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국제공동체의 부재, 지구 에너지 위기, 그리고 핵 확산 등이다.

‘환투기꾼’과 ‘자선가’란 상충되는 수식어가 공존하는 조지 소로스. 이 책은 이제 76세의 나이가 되어 그 스스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로스가 지금까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어떤 활동을 펼쳐왔는지를 상세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소로스에 대한 우리 사회가 가진 단편적인 뉴스와 이미지, 그리고 편견을 넘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는 한 방편의 제안으로서 눈여겨 볼 만한 책이다.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www.summa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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