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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한국경제 갈 길을 묻다

 

[이코노믹리뷰 2006-05-31 09:57]작년 창간 기념호에 실린 역사학자 이덕일씨와, 한정주 작가 인터뷰 기사입니다. 벌써 1년가량이 지나긴 했지만, 다시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 여럿있습니다. 이덕일 선생은 당시 참여정부에 매우 비판적이셨는데, 지금은 어떠신 지 모르겠습니다. 


“도학만 외친 조광조 중종과 결별…
개혁성공 열쇠는 포용력과 융통성”

코드인사 선호 의자왕, 나당 연합군에 무너져
금광왕 최창학은 정치 올인의 위험성 보여줘
조선조 대동법 선구자 김육의 리더십 배워야

부동산은 이해관계 첨예…조광조도 토지개혁엔 소극적
대통령은 이해집단 폭넓게 수용한 정조 통치술 배워야
재벌, 비자금 조성 비난받을 일…소학부터 다시 읽어라

프랑스 크레타유 태생의 미국 역사학자 자크 바전(Jacques Barzun)은 살아 있는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올해로 100세가 된 그는, 유럽사를 가로지르는 폭넓은 지식으로 당대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제’역할을 수행해 왔다. 역사가의 책무는 그런 것이다.

<이코노믹리뷰>는 두 명의 역사학자와 연쇄 인터뷰를 가졌다. 가깝게는 강남 주택의 버블 논쟁에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속사태, 그리고 멀게는 수도 이전까지,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한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보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과, 한정주 고전연구회장이다.

- 요즘 최대 이슈는 강남 주택의 버블 여부다.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는가.

(이덕일) 동양 토지제도의 기본인 정전제를 보자. 우물 정자에 네모를 그리면 모두 아홉 개의 농지가 조성되는 데, 이 중 8개는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국가에 세금으로 바치는 게 기본 구도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훈구파를 비롯한 힘있는 계층이 토지 소유를 늘려나가면서 여러 부작용을 불러왔다.

토지나 주택을 둘러싼 논란은 이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있었다.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은 (버블을 판단할 기준도 모호하지만)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혁가로 널리 알려진 조광조조차 부분적인 토지개혁을 주창했을 뿐이다. 출신 성분 자체가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 한미 자유무역 협정(FTA)를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마치 조선시대의 개항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덕일) 개화사상의 선구자인 오경석은 서양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야 조선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확신한 인물이었다. 역관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병인양요 당시 주요 정보를 대원군에게 건네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대원군이 역관들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쇄국을 고집하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다. 기회를 성공으로 바꾸는 것은 항상 당사자들의 땀과 눈물이다.

- 정부가 추진한 수도 이전이 성공했다면 집값 억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겠는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정주) 경제학자가 아니니, 수도 이전의 편익과 비용을 정교하게 측정하는 건 능력 밖이다. 하지만 과거의 사례를 볼 때 수도 이전은 대부분 정치적인 의도 속에서 진행되는 사례가 많았다.

고려 말 신돈을 앞세워 개혁을 추진하던 공민왕이나, 귀족 가문에 포위돼 있던 의자왕이 수도 이전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덕일) (수도 이전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주장이 모두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더 원대한 수도 이전의 비전을 제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정교한 프로그램이 뒷받침했다면, 수도 이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정조의 화성 축성을 본받을 필요가 있었다.

- 정조가 추진한 화성 축성이 후세 사가들의 지속적이고, 뜨거운 주목을 받는 배경은 무엇인가.

(이덕일) 정조의 화성 축성 프로젝트를 면밀히 고찰해 보자. 수원성 앞에 십자로를 조성하고, 상가를 유치하는 것이 한축이다. 화성 천도를 통해 조선의 상업혁명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였다. 또 화성 근처에 만석보라는 인공 저수지와 대유둔이라는 농장을 조성해 농사를 짓는 것이 또 다른 축이었다.

농업혁명을 추진했던 것이다. 당시 천도 추진은, 분명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 노론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조와 남인들의 )숨은 뜻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정조는 결코 적대 세력을 상정하고, 불만을 부추기는 식의 접근을 하지는 않았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사실상 죽게했으며, 자신조차 제거하려한 노론조차 포용했다. 참여정부와는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다.

-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마다 반발이 상대적으로 심한 것도 이러한 원죄 탓인가?

(이덕일)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본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 월간지에 실은 적이 있다. 당시 (그에게 )조선후기 정조의 통치술을 배워야 한다는 제언을 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이해 집단을 폭넓게 포용하는 정치를 추구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불행하게도 정조가 아니라, 숙종의 길을 걸었다. 증오의 정치를 양산했다는 뜻이다. 수도이전 문제를 보자. 큰 정책은 긍정적인 면을 강조해야 한다.

“수도를 이전해서 우리나라 전체 모습이 이렇게 바뀐다.” “3만달러로 나가는 데 이런 측면이 있다”등 비전을 제시하면서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항상 반대 세력을 설정해놓고 추진하니 반발이 심하며 되는 일도 없고 힘만 빠지는 것이다.

(한정주) 조광조는 도학 정치만을 부르짖다 한때의 최대 지원군이던 중종을 개혁 전선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 포용력과 융통성은 개혁 성공을 위한 두 가지 키워드다.

- 이른바 코드 인사를 현 정부가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정주) 삼국시대, 백제의 의자왕은 거대 호족 세력인 8대성 출신의 귀족들을 모두 내몰고, 40여 명에 달하는 자신의 아들들을 주요 직책에 임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코드에 맞는 인물들을 배치했던 셈이다.

정책 추진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그는 훗날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만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사는 만사다. 당파를 초월해 능력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뿐만 아니다. 일반 기업의 입장에서도 인사는 중요하다. 친위 부대로 인력을 구성해서는 험난한 경쟁을 헤쳐나갈 수 없다.

- 정부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덕일) 요즘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의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조의 사림 세력을 재평가한 책이다. 사림파가 과연 정당성을 부여받을 만한 정치집단이었는지에 대한 회의의 산물이다. 사림이 집권하자마자 당쟁이 격화됐으며, 특히 조일 전쟁이 터졌을 때도 극도로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집권 전후가 다른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무능한 세력이 아니었던가는 생각이 든다. 1970∼80년대 기대를 걸었던 386도 비슷하다. 집권 후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다. 사림은 그나마 당대의 최고 지식인들이었다. 조광조도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으나, 다시 과거에 응시해 급제했다.

하지만 386은 사림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집단이다.

- 불투명한 정부 정책 탓에 국내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옮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동의하는가.

(이덕일) 정부가 기업을 이끌어나가기에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본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국민소득 2만달러가 아니라, 3만달러 시대도 조기에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한정주) 기업인들은 이윤을 찾아 움직이는 존재다. 법가인 상앙은 전국 시대에 당시 상인들을 벌레에 비유한 바 있는 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들이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법가사상의 집대성자인 한비자가 상인을 다섯 가지 벌레의 하나에 비유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익을 좇는 존재들이라는 인식이 당시에도 이미 존재했던 셈이다. 공장 이전도 비슷한 맥락이다.

-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구속은 어떻게 보는가.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있다.

(이덕일) 재벌가 구성원들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특권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십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비밀벽에 감춰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비난받을 행동이다. 더욱이 각종 회사를 설립해 식구들에게 일감을 독식하게 한 것도 윤리를 잊어버린 행동이다.

재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도 곤란하지만, 무조건적 옹호도 피해야 한다. 이들은 소학부터 다시 읽어야 할 듯 하다.

(한정주) 일제시대의 금광왕 최창학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백수건달이던 그는 일제말기 운좋게 금광을 발견해 거대한 부를 움켜쥔 인물이다. 광구를 분할해 당시 일본재벌인 미쓰이나 미쓰비시에 매각해 현재 가치로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그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훗날 대가를 치른다.

독립 운동가들에게 돈 한 푼 쓰지 않던 그는, 김구 선생에게 줄을 섰다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후 고생만 하다 재판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 국내 재벌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 가히 리더십의 위기라고 부를 만하다. 기업가나 정책 담당자들에게 전범이 되는 인물은 없는가.

(이덕일) 조선 시대의 김육이다. 대동법을 전국에 확산시킨 인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실천적인 경세가였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좁고 불편하게 만든 길을 넓혔으며, 화폐 사용 확대를 추진했다. 대동법의 목적은 조세정의의 실현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 제도 실시로 조선의 경제 전체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됐다.

김육은 동시대에 태어났다면 한국 경제의 수장인 재정경제부 장관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이 밖에 남덕우전 총리도 뛰어난 정책가다.

이밖에 조선시대 역관이던 변승업은 처세의 비결을 알려주는 인물이다. 역관 출신으로 도성 제일의 부자가 된 그는 말년에 재산을 상당부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나라의 권력을 독차지하고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 집안치고 권세가 3대를 이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정주) 현군이던 중국의 당태종, 공신들을 가혹하게 제거했던 조선의 태종, 그리고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등을 꼽고 싶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것도 분명하다. 기회를 성공으로 바꾸는 것은 항상 당사자들의 땀과 눈물이다.”
- 이덕일 -

“개혁이란 (광대가) 줄을 타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좌우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두 세력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일이 성패를 좌우한다.”
- 한정주 -

- 위대한 인물은 많지만, 이들 중 개혁에 성공한 이들이 드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덕일) 정교한 개혁 프로그램의 부재. 그리고 반대 세력을 포용하지 못하는 편협함 탓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아젠더의 부재가 개혁을 좌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컨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던 것도, 골품제로 갈갈이 찢겨 있던 신라 사회에 삼국 통일이라는 아젠더를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정주) 고대 그리스의 개혁가 솔론을 보자. 귀족과 빈민층의 양보를 이끌어낸 그는, 결국 민중의 방종과 타락을 억제하지 못해 참주정(독재)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개혁이란 (광대가) 줄을 타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좌우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두 세력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일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 이러한 논리를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

(한정주)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모든 인간은 사악하고, 자유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제도가 아무리 훌륭하게 바뀌어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개혁은 실패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2006년 국내 상황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국내 노동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규직 근로자가 비정규직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직원을 채용하면서 돈을 받은 일부 간부들의 도덕적 타락을 떠올려 보라. 이들은 우리 사회에 불신의 골을 깊게 했다.

- 대북지원이 퍼주기식 접근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다음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어떻게 보는가.

(이덕일) (한반도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중국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세를 넓혀가고 있으며, 특히 북한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만주뿐만 아니라, 북한 지역을 자국의 역사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국의 역사라는 것은 자국의 땅이라는 의미다.

동북공정이 의도하는 바는 뚜렷하다. 북한 정부가 무너질 경우 괴뢰정권을 세우거나, 직접 접수할 수 있는 역사적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구한 말, 우리 선조들이 지적으로 모자란 사람들이어서 일본에 나라를 강점당했던 것이 아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거대 국가 중국은 민주 정체가 아니어서 더욱 위협적이다.

(한정주) 고구려가 지배하던 만주는 사실 주인이 없는 지역이다. 주인이 계속해서 갈렸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을 앞세워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측과 공동 조사단을 만들어 이 문제를 풀어보는 방안도 좋지 않겠는가.

- 끝으로 역사가로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달라 .

(이덕일) 역사를 고찰해 볼 때, 한 민족은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다툴 때 수난의 역사를 겪었다. 조선 시대에도 당쟁이 결국 살육전으로 비화됐고, 지금도 칼로 얼굴을 긋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에너지를 안이 아니라, 밖으로 돌릴 수 있는 아젠더를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나 실패했다. 원대한 꿈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젠더를 제시해야 할 때다.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니라, 몽골족과 만주족을 아우르는 범 동이족이다. 이들과의 범 민족 연합을 구상해야 할 때다.

역사물 제작 바람 ‘왜’

“이순신·주몽 만나며
답답한 현실 잊으려나”

역사물 제작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주말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한 데 이어, 올 들어서도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건국 과정을 담은 드라마가 화제다. 태왕사신기를 비롯한 후속 작품들도 줄줄이 예정돼 있는 상황. 역사물이 인기를 얻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배가 부르면 조상의 묘자리나 족보부터 챙긴다고 하지 않는가. 먹고 살만해 지니 조상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전 연구가인 한정주씨의 말이다. 그는 최근 제작방영된 사극을 비교해보면 과거와는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화려한 복장, 그리고 색감이다.

역사물 제작은 이런 맥락에서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그는 덧붙인다.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는 것. 반면 이덕일 소장은 역사물 열풍이 답답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기제라고 설명한다. 역사물 제작 바람이 반갑기는 하지만 마냥 환영할 수만도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콘텐츠 기획 능력의 부족도 이러한 움직임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이 소장은 분석했다. 현대극에 비해 좀 더 쉽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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