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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 임금이 울고 갈 정도의 태평성대였다. 미국 경제는 쑥쑥 성장했지만, 물가는 바닥이었다. 클린턴 행정부 치세 말기였다.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시장 전문가들은 대부분 ‘신경제’의 도래를 확신했다. 하지만 시장은 ‘비이성적 과열’을 보이고 있었다.

“기업들의 주가가 펀더멘털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점에는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한 맹신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이러한 상승 흐름을 되돌릴 변수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신경제는 붕괴되지 않고, 영원하리라고 보았던 거죠”

신경제 불패신화 비판한 루빈

로 버트 루빈(Robert Rubin) 씨티그룹 고문이 회고집《In an uncertain world》에서 밝힌 대목이다. 그의 예상대로 시장은 파열음을 냈고, 버블은 이번에도 꺼졌다. 줄줄이 문을 닫은 정보통신기업들을 대체한 것은 첨단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미국 월스트리트였다.

지난 2000년 닷컴 버블이 터진 이후 금융권의 모기지 대출붐은 ‘내집 장만’이라는 미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에 불을 붙였다. 부동산은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신성장 동력으로 화려하게 부상했다.

부동산 담보 대출 비용은 90%대로 치솟았다. 그리고 지난 2005년, 한 여성 애널리스트는 또 다시 ‘비이성적 과열’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 주인공이 바로 메레디스 휘트니(Meredith Whitney)로 투자 은행인 오펜하이머 소속 애널리스트다. 그녀는 미 증권가의 떠오르는 신데렐라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 유수의 경제주간지,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 인사로 부상했다.

“채무 변제능력이 없는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집값 하락으로 상환을 포기하면서, 은행들이 사상 유례가 없는 부실을 떠안게 됐습니다.” 그녀는 작년 7월에는 씨티그룹의 주택담보 대출 부실화에 깊은 우려를 피력하며 경영진을 상대로 연간 배당금 지급을 줄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대차대조표상 자산을 늘리기 위한 자구책인데, 이 은행의 최고경영자는 석달 후 그녀의 제언을 실행에 옮겨 다시 한번 그녀의 선견지명을 가늠하게 했다. 은행과 신용평가 기관의 야합을 거세게 비판해 투자자들의 높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투자은행 소속의 애널리스트가 고객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줄곧 팔자 주문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있을 때마다 메리디스와 같은 비관론자는 항상 있었지만 은행권이 부실을 털어내게 되면 주가가 곧 반등했다는 것이 이러한 비판의 핵심이다.

메리디스의 반론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우선, 오는 12월부터 발효되는 미국의 회계기준(FAS 141 R)을 근거로 든다. 이번 금융위기의 해법은 우량은행이 부실은행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지만,새로운 규정이 활발한 은행간 인수합병 움직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도 집값 하락에 따른 금융위기로 냉각될 소지가 큰 것도 부담거리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어려운 구도이다. 미국의 주요은행들은 주택가격이 20~25%가량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하락폭이 최대 40%선에 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그녀는 전망한다. 자산 담보부 증권시장이 붕괴된 데다, 신용경색으로 은행들의 모기지 담보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 택 가격이 하락하면 은행권의 비우량 자산 규모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미 행정부가 7000억 달러를 투입해 부실을 털어내도 집값이 하락하면 추가 부실이 발생하게 된다.

지난 2월 월가 위기 예언한 루비니

미국의 유명 프로레슬러인 레이필드가 남편인것도 또 다른 화제거리다.

‘누리엘 루비니 (Nouriel Roubini)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도 이번 월가 금융위기를 예고했다. 지난 1997년 아시아를 휩쓸었던 외환위기를 예견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루비니 교수는 지난 2006년 당시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며 서브프라임의 해일이 다시 미국의 금융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을 예고한 시나리오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의 경제 정책 자문관, 예일대 교수, IMF 컨설턴트를 지내는 등 관계와 학계를 두루 경험한 루비니 교수는 올해 2월에도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예고하는 글을 게재해 예언자라는 자신의 명성을 입증했다.

금융 재앙의 12단계라는 글에서 불과 7개월 뒤 월가를 휩쓸게 될 투자은행들의 수난시대를 족집게 같이 집어냈던 것.

요즘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r-emonitor.com)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추이를 궁금해하는 전 세계 전문가와 네티즌들의 방문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상아탑의 학자로 머무르지 않고,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치며 풍부한 경험을 쌓은 그는 세계 경제를 시스템적인 시각에서 통찰하는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4년 발간한 《BAILOUT BA-ILIN》은 국제 금융시스템의 작동원리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그런 그는 미행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이후의 사태 전개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루비니 교수는 ‘U자형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경기 침체 기간이 18개월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 경제가 경기 침체라는 길고 긴 터널에 막 진입했다고 경고한다.

그가 바라보는 미국경제는 여전히 어둡다. 미국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털어낸다고 해도 이러한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경기침체는 올해 1월 이미 시작됐으며, 이번 구제 금융 조치는 미국 경제가 장기불황으로 고통을 겪은 일본의 전철을 밟는 일을 막아주는 버팀목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그 가 제시하는 위기 타개책은 무엇일까. 루비니 교수는 이번 구제 금융안과 관련해서, 부실 금융기관의 비건전 자산을 털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가계의 모기지 부채를 탕감해주는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자본 부족 사태에 내몰린 금융권에 대해서도 부실자산을 털어내는 동시에 우선주 인수방식으로 공적 자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처방전을 제시했다.

눈 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계 부실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지 않고서는 이번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미 국의 집값이 추세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메리디스 휘트니도 최대 40% 집값 하락을 예상한 바 있다.

루비니 교수는 이 두 가지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공적기관인 ‘홈(HOME. Home Owners Mortgage Enterprise)’의 설립을 제안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의 처방전이 대부분 지난 1929년 미국의 대공황 직후 미 행정부가 실시한 위기타개책의 상당 부분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금융 주 철저히 외면한 버핏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세 번째 주인공이다. 지난 90년대에도 닷컴 주식을 철저히 외면해 새로운 흐름에 둔감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는 2000년대 들어서도 금융주 매수에 소극적이어서 역시 워런 버핏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파생상품에 회의적이다.

“(금융권에서는) 파생상품이 위험을 분산해 세상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그런 메커니즘은 결코 작동하지 않았다. 당신은 위험을 월가의 다섯 개 은행이 아니라, 지구촌 전역으로 분산하는 편이 더 나을 뻔했다는 견해를 피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모든 지역이 동시에 위험에 휩싸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

일찌감치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깊이 인지하고 있던 그가 자신의 자서전인 《Snowball》에서 한 발언이다.

메레디스 휘트니나 누리엘 루비니와 달리, 명시적으로 금융위기 가능성을 피력하지는 않았지만 일찌감치 신용위기 발발의 위험을 각인하고 있었음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당신이 싫어하는 많은 일들이 발생할 수 있으며, 경제는 확실히 가라앉고 있다. 내가 결코 좋아하는 게임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침체가 단기간에 그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으나 나는 경기침체가 더 길어지고 그 파급효과도 더 깊어질 것으로 내다본다(The economy is definitely tanking).”

그는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가 몰고올 경기 침체 심화에 대해서도 같은 책에서 상당한 우려를 피력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미 행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결정 이후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 투자 결정을 내렸으며, 한 방송사에 출연해 지금이 투자 적기임을 강조했다. 메레디스 휘트니나 누리엘 루비니와는 명확히 엇갈리는 대목이다. 그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이미 투입된 AIG 지분인수에도 상당한 관심을 피력한 바 있다.

“지금 투자하지 않는 건 노년을 위해 성욕을 아끼는 꼴”이라고 발언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미국 경제의 장기 침체 가능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피력하고도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의 지분 인수에 나선 것은 큰 경기 흐름보다는 개별 종목의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그의 투자 성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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