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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號 금융 개혁의 선봉에 서다



2010년 05월 04일 0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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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커룰’에 금융계 수장들 바짝 긴장…금융산업 재편 시나리오 무성


1980년 미국 남부 조지아주 플레인스. 4년 간의 워싱턴 정가 생활을 끝내고 고향집으로 돌아온 지미 카터는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잠을 청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조약인 캠프데이비드협정을 이끌어낸 주인공. 탈규제를 주도한 그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가였다. 무명 영화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은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렸다.

그는 선거에서 패해 고향으로 돌아온 뒤 느낀 절망감을 훗날 회고한 바 있다. “마치 인생이 끝나버린 것 같았다”는 것. 워싱턴 정가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던 ‘카터’의 뇌리에서는 한 인물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바로 그가 직접 발탁한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다. 이 고집 센 인물은 카터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원들의 애증의 대상이었다.

카터의 재선 가도에 먹구름을 몰고 온 인물이 바로 이 경제전문가였다. 그가 줄기차게 추진한 ‘고금리 정책’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이반시켰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폴 볼커를 미국 중앙은행인 FRB의 수장에 선임한 때가 바로 미국 대선 한 해 전인 1979년이었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미국의 선거는 전통적으로 ‘경제 이슈’가 표심의 향방을 좌우하는 심판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카터 대통령은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비롯한 외교안보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지만,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막대한 전쟁 비용이 투입된 베트남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중동 국가들의 자원 민족주의는 카터 행정부의 위기를 부른 판도라의 상자였다.

주요 산유국들은 석유 값을 하루 아침에 3배씩 인상했고, 미 정부가 찍어낸 달러는 중동 국가들로 흘러들었다. 산유국들은 다시 이 달러를 유럽이나 자국에 위치한 미국 은행의 지점에 예치했다. 이 돈은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으로 풀려나갔다.

이 돈은 다시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으로 유입됐다. 풍부한 유동성은 고삐 풀린 말처럼 미국 전역을 훑고 다니며 물가를 끌어올렸다. 지난 1979년 미국의 물가는 한 해에 두 자리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국에서는 미국인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삐 풀린 달러는 화마와 같이 미 유권자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미국을 태워버릴 듯 한 기세의 인플레이션을 진압할 경제 소방수로 발탁된 인물이 폴 볼커 뉴욕 FRB 의장이었다.


카터의 재선을 좌절시키다
케인즈학파 소속의 경제학자들은 ‘경기 침체’와 ‘물가 인상’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무력했다. 그들은 새로운 경제 현상 앞에서 한계를 노출했다.

밀턴 프리드먼을 대표로 하는 통화주의학파도 대공황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카터 대통령이 폴 볼커를 FRB의 신임 의장으로 인선한 배경으로 다음해 대통령 선거를 감안한 참모들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한몫을 했다.


민주당의 선거 참모들은 이 경제 전문가가 물가 인상의 불길을 진화하고, 경기 침체의 악순환도 끊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론’과 ‘실무’ 양쪽을 두루 경험한 드문 경제 전문가인 폴 볼커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약관화’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금리를 올리면 실업률이 상승한다는 점이 딜레마였다.

실업률 상승은 미국 국내 총생산(GDP)의 하락을 부를 개연성이 컸다.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필립스 곡선’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카터 대통령의 선거 참모들은 민주당원인 폴 볼커가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로 고통을 겪는 유권자들의 고민을 덜어줄 절묘한 정책의 조합을 선택할 것으로 기대했다.

재선을 앞둔 카터 대통령으로서는 실업률 상승이나 국내 총생산 하락은 용인하기 힘든 ‘금기’였다. 하지만 FRB의 수장에 오른 이 경제 전문가는 잇달아 금리를 올리며 카터 캠프의 분노를 산다.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의 회교 혁명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은 다음 해 ‘중요한 것은 경제’라는 선거 슬로건으로 대선 경쟁에서 카터를 제압한다. 폴 볼커가 민주당 의원들의 공격 타깃이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고금리 정책을 고수하며 카터 대통령의 재집권 시나리오를 허물어뜨렸다는 비판이었다.

그런 폴 볼커는 재작년 민주당의 선거승리와 더불어 화려하게 정치 무대에 컴백한다.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이 그의 공식 직함이다. 폴 볼커는 87년 퇴임 후에도 ‘미스터 클린’으로 불리며 국제 금융가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아왔다.

대통령에 맞서서도 원칙과 소신을 저버리지 않은 중앙은행장을 향한 존경의 표시였다. 그런 그가 오바마의 지원 속에 전격 제시한 금융개혁안이 바로 자신의 이름을 딴 ‘볼커룰’ 이다.


미스턴 클린, 월가와 전쟁에 나서다
오바마 대통령이 ‘폴 볼커’라는 강력한 금융 개혁의 전도사를 앞세운 이면에는 ‘위기감’이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재작년 월가의 금융 위기를 발판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오바마 행정부는 투자은행을 비롯한 월가의 강력한 저항에 가로막혀, 지금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데 실패했다.

개혁 의지가 아예 없다는 비판도 꼬리를 물었다. 지난 30년대, 루즈벨트(FDR)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쥔 이면에는 미국 사회를 뒤흔든 대공황의 충격이 있었다. 그는 10년 가까이 지속된 이 전대미문의 금융 위기에서 대선 승리와 미국 사회 개혁의 기회를 엿보았다.

상업은행·투자은행의 분리를 골자로 한 ‘글래스·스티걸 법’ ‘뉴딜정책’은 미국 사회를 휩쓴 위기감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를 부른 미국의 상업, 투자은행들은 불과 1년여 만에 위기의 후폭풍에서 벗어나며 오바마호 개혁의 명분을 뒤흔들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청문회에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 위기는 불가항력의 사태였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등 과거로 신속히 회귀하고 있는 모습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월가의 노련한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할 거물급 인사의 부재도 오바마호의 위기감을 부추겼다.

클린턴 행정부에 입각해 활동하던 제임스 루빈 전 재무장관은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공교롭게도 2008년 금융 위기를 잉태한 장본인의 하나였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인선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적임자를 찾기 힘든 배경이었다.

정치권과 힘겨루기 경험이 풍부한데다, 금융이란 한 우물만 파온 폴 볼커는 FRB 의장직을 사퇴한 후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며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를 부른 위기의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는 드문 전문가였다.

글로벌 금융산업 지도를 뒤흔들 수 있는 강력한 규제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볼커룰은 정치적 타협을 배격하고 늘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해 온 이 원칙주의자의 작품답게 파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


투자은행·상업은행 반드시 분리하자
볼커룰의 주요 내용을 보면 시장점유율 10%를 넘기는 매머드급 인수 합병(M&A)을 불허한 대목이 눈에 띈다.

은행 지주회사 내 모든 계열사의 트레이딩 계정 거래와 더불어 헤지·사모펀드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분리하는 것이 그 골자다.

지난 1929년 대공황 직후 피폐해진 미국 사회의 금융 시스템을 닦고 조인 ‘글래스 스티걸’ 법안의 부활이다. 2008년 금융 위기를 부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고질적 병폐에 대한 반성이 그 출발점이다. 성장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주요 은행들은 ‘대규모 차입(leverage)’을 일으켜 투자 위험이 높은 금융 상품을 사들였다.

볼커룰은 미 금융 시스템에 내재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이번 금융개혁안은 이처럼 소신이 뚜렷하며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 전문가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국제 금융산업에 미칠 후폭풍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지적도 꼬리를 문다.

정치적 타협을 배격하고 늘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해 온 이 원칙주의자가 독일계라는 점도 흥미를 끈다. 역사상 가장 유능했던 재무장관으로 꼽히는 제임스 루빈은 유태계로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이며 클린턴 행정부 시절 관계에 진출했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수장이던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도 역시 유태계로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이다. 조지 소로스도 헝가리에서 탈출한 이민 2세이며,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투자은행의 창업주들도 유태인들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독일계 미국인을 앞세워 유태인들이 주도하는 월가를 상대로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볼커를 월가와의 전면전의 수장으로 내세운 이면에는 폴 볼커의 강한 뚝심이 있다.

지난 1980년, 레이건 행정부가 집권에 성공한 뒤에도 그는 이런 소신을 꺾어본 적이 없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미국은 영원하다’는 신념이 바로 그것이다. 레이건 시절 미국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 사태는 그의 이러한 소신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다.


투자은행에서 월가 생리 체득
지난 1981년, 미국의 농민들이 대거 ‘워싱턴’으로 상경했다. 이들은 트랙터를 몰고 도심 한복판을 행진하며 볼커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사상 초유의 고금리 직격탄을 맞고 소속 회사가 문을 닫자 앙심을 품은 한 남자는 FRB 건물에 무기를 들고 난입하는 소동을 벌였다.

이자율이 20%선으로 치솟으며 미국인 수백 만 명이 일자리를 대거 잃었고, 소비는 급락했다. 자동차 회사들이나 건설회사 등은 파산 상태로 내몰렸다. 대공황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이들도 하나 둘씩 늘었다. 워싱턴 정가의 정치인들은 직장을 잃은 유권자들의 눈물겨운 호소가 꼬리를 물자 볼커를 의회로 불러냈다.

“민간 기업들이 고금리정책의 여파로 파산하고,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이제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폴 볼커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공세에 자신은 미국의 먼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은 폴 볼커의 고금리 정책이 미국 중산층의 미래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가시돋친 발언을 쏟아냈다. 그런 그가 지난 1987년 FRB 의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자,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수장인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은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이 다루기 힘든 경제 전문가의 퇴진을 반색했다.

지난 1987년 두 번째 임기를 끝으로 FRB 의장직에서 물러난 폴 볼커는 세계은행 총재인 ‘짐 울펜슨(Jim D. Wolfensohn)’이 운영하던 월가의 소규모 투자은행에 둥지를 튼다.

투자은행 근무 시절은 미 행정부에서 주로 거시 정책을 담당하던 이 경제 전문가가 월가의 생리를 파악하게 된 호기였다.

폴 볼커는 민간 분야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다. 지난 2001년 엔론 회계 부정의 여파로 문을 닫은 컨설팅사 ‘아서앤더슨’ 사태는 그의 뛰어난 역량을 가늠하는 무대였다. 그는 당시 회계와 컨설팅 업무의 분리를 제안했고, 이 의견은 개혁안에 그대로 반영된다.


금융산업 수장들, 볼커안에 촉각
그는 이해 당사자들의 원망, 감정, 기대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에서 핵심을 추려내 대안을 제시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왔다. 유태인 홀로코스트 희생자들과 스위스 은행 간의 분쟁을 중재한 것이 대표적 실례다.

그는 특히 민간기업 규제 방안을 만드는 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골자로 한 이번 볼커룰도 그의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평이다.

시장이 항상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며, 정부의 적절한 개입은 불안전한 시장을 보완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볼커룰’에는 벌써부터 반시장적이라는 비판도 꼬리를 물고 있다. 폴 볼커의 정책은 항상 숱한 논란을 빚어온 뜨거운 감자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 규제안이 대한민국을 비롯한 금융 산업 후발 주자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그가 주도한 지난 1970~80년대 미국의 고금리 정책, 아서 앤더슨을 비롯한 민간 기업의 규제 방안 등은 불안전한 금융 시장의 본질을 꿰뚫은 경제 전문가의 통찰력의 산물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번 금융개혁안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아직 미지수다.

각국의 금융정책 담당자들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골자로 한 볼커룰을 주시하고 있는 것도 평생을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이 노 경제 전문가의 집념 어린 행보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경수 한국은행 금융연구원장은 “우리(금융회사들)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단계다. 위험을 줄이겠다는 것이 (특정국가) 금융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며 미국발 규제 강화의 흐름을 경계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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