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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에서 금융 위기의 본질 보다

미래 예측의 고수 ‘바톤 빅스’의 노하우 분석



2010년 04월 20일 11시 29분조회수:544
“미국 경제 조기 회복” 적중…비관론 전파한 루비니 압도한 ‘선견지명’ 발휘



2008~2009년에 걸쳐 투자은행에서 해고된 전직 금융가들은 하릴없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배회했다.

한때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던 그들은 금융 위기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더 이상 자신들을 반기는 화려한 회사는 없었다.

투자은행의 부서 일부가 통째로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세월을 절감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투자 은행가들의 호시절에 마침표를 찍었다.

위기의 발단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투자은행 직원들이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을 다니며 판매한 파생금융상품은 마치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 집값의 하락세가 위기의 첫 단추였다. 2004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올리자 이 시한폭탄의 안전 장치도 풀렸다. 모기지 상환을 감당하지 못해 도피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한때 연 10%에 달하는 고수익의 파생금융상품을 사들인 금융기관들은 잇달아 파산 상태로 내몰렸다.

지난 1929년, 세계를 뒤흔들던 대공황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투자전략가인 ‘바톤 빅스(Barton Bigg)’는 그 순간 빛을 발했다.


작년 초 미국 시장 호조세 예측
2009년 초, 이 투자 전문가는 미국 경제가 바닥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한 경제주간지에 실린 독점 인터뷰 기사는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비롯한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와는 한참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풍경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실업자들은 뉴욕의 센터럴 파크를 배회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재생 에너지 개발 바람은 에탄올의 연료인 옥수수를 비롯한 주요 곡물의 품귀 현상을 불러왔다.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곡물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미국에는 배를 곯는 ‘신 빈민층’이 급증했다.

바톤 빅스는 모건스탠리 시절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리서치 관련 부서를 만든 주인공인 그는 월가에서 30여 년 간 근무하며 미국은 물론 글로벌 증시의 부침을 경험한 전문가였다.

그에게는 미국 제일의 투자 전략가라는 호칭이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지난 2003년 모건스탠리를 떠난 뒤 투자자문사를 창업한 이 전문가도 이번만큼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게 세간의 평이었다.

바톤 빅스의 예측에서 20세기 초 미국 최고의 경제학자이던 ‘어빙 피셔’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이들도 늘어났다.

영국의 케인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당대의 경제학자는 단 한 번의 예측 실수로 패가망신한 불운의 인물이었다. 지난 1929년, 그는 미국 경제의 추세적인 상승세를 예상했다. 대공황을 불과 한 달 앞둔 시기였다.


역사에서 금융 위기의 본질 파악
1920년대, 미국 전역에는 고속도로가 깔리고 자동차와 전기가 대랑 보급되었다. ‘포효하는 20년대(roaring twenties)’로 불리던 초고속 성장이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피셔는 알지 못했다.

텔레비전에 등장해 미국 경제 조기 회복론을 설파하던 이 천재 경제학자가 자식들에게 물려준 것은 천문학적인 빚더미였다.

거시경제의 흐름을 잘못 예측한 대가는 이처럼 컸다. 바톤 빅스는 선배 경제학자의 실수를 반면교사의 사례로 삼았다. 올 들어 미국 경제는 봄 기운이 완연하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주요 경제 지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암울했던 분위기들이 조금씩 걷히고, 해빙 무드가 확산되고 있다.

인텔(Intel)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의 실적도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양상이다. 비관론자들도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호재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흥청망청 소비에 탐닉하며 부의 효과를 즐기던 미국 국민들은 저축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빚을 조금씩 털어내면서 가계 재정의 건전성도 호전되고 있다.

바톤 빅스는 이러한 변화를 누구보다 일찍, 비교적 정확히 예측했다. 그가 미국 경제의 흐름을 정확히 내다본 배경에는 ‘폭넓은 지식’을 빼놓을 수 없다.

바톤 빅스는 역사, 전쟁사, 금융사를 두루 공부하며 전쟁과 금융 위기의 함수관계를 통찰한 ‘르네상스형’ 투자 전략가다.

그는 금융 위기의 프레임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분석해온 ‘하이브리드(Hybrid)형’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정확한 경제 예측을 하는 배경은 지난 30년 간의 실전투자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금융 분야 한 우물을 파온 이 투자 전략가는 레이건 시대의 신자유주의, 클린턴 행정부의 등장,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부상과 몰락, 러시아의 채무 불이행 선언과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파산, 기술주의 광풍과 거품의 붕괴 등을 두루 경험한 백전노장이다.

그는 역사는 주식. 채권을 비롯한 주요 재테크 수단을 맹신한 부자들의 수난사였으며, 군중 심리가 적나라하게 분출되는 광기와 비이성의 장이었다고 지적한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이 선진국에서 발발한 뒤 주변 국가로 급속히 전염돼 나갔으며, 부의 지도를 일거에 재편했다.

독일의 전격전에 우왕좌왕하며 패닉 상태로 빠져들던 프랑스 국민들, 그들을 사로잡던 비이성적인 군중 심리 등은 모두 재작년 금융 위기의 데자뷔이다. 위기는 바람처럼 퍼져나가며 부의 지도를 재편한다.


20세기를 되돌아보면 주식이나 채권은 대체적으로 부의 유지에 유용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패전국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부동산이나 금을 비롯한 현물의 보유는 때로는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나은 점이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어요. 투자자들이 역사를 더 잘 알수록, 그들의 선택도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프랑스 국민·리더들의 패착이 반면교사
바톤 빅스는 2차 세계 대전의 당사국인 프랑스를 자주 인용한다. 당시 유럽에는 불온한 기운이 떠돌았고, 프랑스는 철의 요새인 마지노선을 구축했다.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했다. 구데리안, 롬멜 등 뛰어난 장군들이 프랑스를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한 달여.

프랑스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곧 휴지가 돼버렸다. 전쟁은 이 나라 부자들이 평생 땀 흘리며 구축한 부를 한순간에 지워버렸다. 바톤 빅스는 그 결과가 재앙에 가까웠다고 강조한다. 이 나라 기업들의 주식과 정부가 발행한 채권은 ‘휴지 취급’을 받았다.

전쟁은 유럽 대륙 부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2차 세계대전은 평생 땀 흘리며 모은 막대한 부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투자자들의 수난사다. 독일군에 장비를 공급한 르노 등이 수혜 기업이었을 뿐이다.

동쪽으로 총부리를 돌린 히틀러의 제국군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슬라브 민족 거주 지역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그들은 전차와 보병, 항공기의 유기적인 협조를 특징으로 하는 기동전을 전술 운용의 핵으로 활용했다.

프랑스의 패배는 대안상품의 득세를 부른다. 금이나 은을 비롯한 귀금속, 시골의 농장을 보유한 이들이 신 부유층으로 부상했다. 바톤 빅스는 전쟁이나 금융 위기는 주식이나 채권 등의 폭락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전쟁은 예측을 비웃는 위기의 본질도 가늠하게 한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할 것으로 내다본 이들은 거의 없었다. 부동산발 금융 위기나, 롱텀캐티펄 매니지먼트의 붕괴, 러시아 정부의 채무불이행선언을 내다본 금융 전문가들도 드물었다.

나폴레옹은 유럽의 왕정복고 체제를 다시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고, 영국은 다시 전화에 휩싸였다. 웰링턴의 전쟁 승리는 영국의 국채를 사들인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막대한 이득을 안겨준다. 엘바 섬을 탈출한 전쟁 영웅에 고무된 이들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노무라, 게이샤에 집착하다
“전문가들은 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화제로 삼습니다. 그들은 벤처 버블이나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고통을 겪고 나서야 이러한 생각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곤 합니다.”

16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 20세기 초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 밀레니엄 시대의 정보통신 기술주들은 이러한 점을 일깨워주는 반면교사의 사례다.

행간을 읽어야 진실이 보인다는 바톤 빅스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에 직면한 일본의 현실을 실례로 든다.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로 태평양의 제해권을 상실하며 몰락의 길로 접어들지만 군부가 통제하는 언론은 연일 승전보를 울려댄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가 여전히 팔려나간 배경이다. 하지만 전투에 나선 장군들이 사라져버린 사실을 파악한 회사가 있었다.

바로 지난 1997년 한국 경제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로 금융 위기의 도래를 알린 노무라증권이 그 주인공이다. 노무라증권은 당시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한 장군들의 단골 기생인 ‘게이샤’들로부터 이 정보를 파악해 발 빠르게 대응한다.

이 금융회사는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모두 팔아버리고 미 맥아더 전시사령부가 패전국 일본에서 육성하게 될 민간 기업 투자 지분을 늘렸다.

바톤 빅스는 행간에 감추어진 진실을 파악하고, 대중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것이 투자의 요체라고 강조한다.

정부는 늘 전쟁이나, 금융 위기 관련 정보를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군부 또한 2차 세계대전 중 작은 승리를 부풀렸고, 패배는 가급적 감추었다.

지난해 대한민국 정부가 금융가의 애널리스트들을 상대로 입단속에 나선 배경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바톤 빅스는 증시에서 앞으로 닥쳐올 변화의 조짐을 읽고, 자신의 주변에서 증시의 향후 움직임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금융 위기는 10년 주기로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 위기는 동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투자 수단을 망가뜨린다.

그가 모건 스탠리의 아시아 투자 펀드 청산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도 이러한 원칙에 충실한 결과였다.

지난 2003년, 모건스탠리는 투자 손실을 기록 중인 ‘아시아 펀드’ 운용을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본 시장에 주로 투자하던 이 펀드의 원금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자 회사 측은 이 펀드를 청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바톤 빅스는 당시 이 결정에 반대한다.


시류에 부화뇌동하는 것은 금물
“아시아에는 여전히 내재가치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산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저는 펀드를 굳이 청산하지 않고 자산 포트폴리오를 바꿔 투자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 보았어요.

아시아 시장에 공포심을 느끼는 때가 바로 투자에 나설 적기였어요(Hedge Hogging 중에서)“

모건스탠리는 바톤 빅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고, 그는 딘 위터스(Dean Witters)와 합병 직후 회사를 떠났다. 경제 사가이자, 투자전략가의 혜안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가 작년 1월 미국 경제의 회복세를 예견한 것도 이러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바톤 빅스의 예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미국 경제와 증시가 모두 큰 폭으로 하락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앞으로 증시가 상승할 것이라는 게 이 투자전문가의 예측이다.

중국 증시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편다. 그는 자신의 투자 성공 노하우로 역사 공부를 강조했다.

“20세기를 되돌아보면 주식이나 채권은 대체적으로 부의 유지에 유용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패전국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부동산이나 금을 비롯한 현물의 보유는 때로는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나은 점이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어요. 투자자들이 역사를 더 잘 알수록, 그들의 선택도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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