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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라일리 GM아태본부 사장. GM대우의 전 사장이지요. GM의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총괄하는 사장으로 영전해 홀연히 한국을 떠났던 그가 어젯밤 다시 입국했습니다. 자신의 자서저인  <CEO 닉라일리, 열정>기자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직도 GM대우 이사회 회장직을 맡고 있어 한달에 한두차례 우리나라를 방문하고는 있으니까, 급작스러운  방한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출판 간담회 참석차 따로 시간을 쪼개 한국에 오기는 썩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매우 바쁘다'는 하소연을 여러차례 했습니다.

골치아픈 일이 오죽 많겠습니까. 그런 그가 책까지 발표하고, 또 출판간담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 회사에 얽힌 감회가 남다르기 때문일겁니다. 이번 자서전도 지난 2002년 GM대우 사장으로 부임해 이 회사 회생을 주도하던 당시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직원들과 막걸리 파티를 하고, 축구를 차던 기억.

구조조정 과정서 노조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마음고생을 하던 순간들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또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던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도 , 당시 GM협상단의 일원이었던 닉 라일리는 비교적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내생애에)두번 다시 하기 어려운 경험이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습니다.

미운정 고운정이 든 탓일까요.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을 침이 마르게 칭찬하더군요.  자신의 이해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하고, 윤리의식도 유럽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는 내용입니다. 라일리는 GM대우를 바꾸어 놓았지만, 국내 근로자들 또한 닉 라일리를 바꾸어 논 듯 했습니다.

푸른눈의 CEO는 한국 근로자들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데, 우리근로자들은 국내에서 늘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는 걸까요. "한국 근로자들이 뛰어날지는 모르겠지만,  현대.기아자동차는 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혹시 현대.기아차에 해줄 조언은 없는가" 라일리에게 이 질문을 던진 이윱니다.

출판 간담회인지 덕담 식의 부드러운 질의응답이 오가는 상황이었지만, 기자는 굳이 닉 라일리에게 까칠한 질문 한가지를 던졌습니다. 그의 태도가 상당히 진지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했는 데, 그는 역시 노련했습니다. 현대. 기아자동차는 글로벌 무대에서 강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그런 그들에게 자신이 조언을 던지는 일은 적당하지 않다며 슬그머니 넘어가더군요.

다만 한국노동시장에 대해서는 외부의 우려섞인 시선이 적지 않으며, 작은 사건이 대외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작은 사건이란 아마도 올해초 국내 산업계를 강타한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의 파업 사태를 지칭하는 듯 했습니다.  한동안 시끄러웠죠.

하지만 그가 지닌 나름의 해법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라일리는 80대 20의 접근법, 즉 경영진이 80을 양보하고, 노조는 20을 양보하는 방식이어야 양자간의 협상이 결실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회사측이며, 이러한 점을 십분 이해하고 노조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GM본사 측에도 여러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이더군요. 회사측의 열린 태도를 강조하는 대목으로 읽혔습니다.

기자가 닉 라일리 사장을  지근거리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답변 스타일을 보면 그가 매우 신중하고 사려깊은 인물이라는 점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책에 대해서도 주로 성공 사례를 다루다 보니, GM대우가 직면한 어려움을 균형감있게 서술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고백도 하더군요.

한미 FTA에 대한 답변도 비교적 솔직했습니다. 한미FTA가 타결됐지만, 당장 미국업체들이 한국시장에서 재미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번 협상타결을 계기로 미국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늘어나겠느냐고 묻자 '조금(a little)'이라고 답변하더군요. 수입자동차 점유율이 불과 3.5%정도인 데다, 독일과 일본업체가 주도하는 국내 수입차시장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다만 수입차의 수입 점유율이, 예컨데  10%이상으로 확대될 경우 미국업체들이 파고들 수 있는 여지도 커지지 않겠냐며 반문했습니다. 국내 애널들이 내놓은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라일리가 직접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는 점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요.

그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거꾸로 기자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했는데, 이번 한미FTA 협정을 국회가 비준할 것인지를 물어보더군요. 농민을 비롯한 이해 계층의 반발이 그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던가 봅니다.

인터뷰는 불과 한 시간 남짓했고, 덕담이 주로 오가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라일리의 사람됨과 더불어 고민을 엿보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원화 가치의 상승과 더불어, 불안정한 국내 노사관계,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은 그의 골칫거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세계 시장에 먹힐수 있는 독자모델의 수출 차종을 선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그를 괴롭히는 듯 했습니다.

끊임없이 한국 공장의 생산성을 높여나가고, 노사관계를 더욱 단단한 지반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더군요.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외부환경이 가파른 속도로 바뀌다 보니, GM대우에서의 성공이 결코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더 잘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농담도 잘 하더군요. 두번째 책을 낼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의 얼굴을 책에서 보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라며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신간 표지에 닉   라일리 사장의 얼굴이 인쇄돼 있습니다). 소주를 잘 먹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의 고향인 웨일즈에서 부모님이 작은 호텔을 운영했는 데, 이 호텔바에서 종종 술을 먹으며 내공을 기른 탓이라고 고백하더군요. :)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라일리. 그는 GM의 전 회장 잭스미스를 가장 존경한다고 밝혔는데요. 라일리의 진솔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일까요. 한시간 남짓한 기자 간담회장을 빠져나오며, 저는 갑자기 그의 보스였던 잭 스미스가 어떤 인물일지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

아울러 아쉬움도 떨쳐버리기 어려웠습니다. 히딩크부터 라일리까지, 이방인들은 한국에 와서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왜 우리들은 안되는 걸까요. 라일리는 이날 기자 간담회를 끝낸 뒤 바로 인천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P.S: 참석자 한명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구소련 붕괴후 무주공산이 된 동유럽 시장에 군침을 흘리던 GM이 대우자동차의 기세를 꺾어놓기 위해 IMF발발을 배후에서 조정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또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을 도울 방안은 없겠느냐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이라며 일축했습니다. 당시 대우자동차 인수를 추진했던 것은 본사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GM유럽이었다는 겁니다.

또 김우중 전 회장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은 없으며 GM대우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결국,  뛰어난 아이디어로 오늘날 GM대우의 주춧돌을 놓는 데 공헌한  그의 노고에  보은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모법답안을 내놓더군요. 편한 자리다 보니, 아주 많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

*한스미디어. <CEO 닉 라일리, 열정>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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