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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0-10 16:21 |최종수정2007-10-10 16:39


“뉴질랜드 영화산업에 글로벌 기업 생존법 있어”

아 시아 영화계에 합종연횡의 바람이 거세다. 세계 영화 배급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절대 반지’ 할리우드에 맞서 아시아인의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며 ‘공동전선’ 구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첫 번째 결실이 바로 아시아영화인공동협력기구(APN: Asia Producer Network).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뉴질랜드, 태국, 싱가포르 등 영화 강국들이 대거 가입한 이 영화인 단체에서 단연주목을 받고 있는 국가가, 바로 피터 잭슨의 킹콩, 반지의 제왕 두 편으로 단숨에 세계 영화계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뉴질랜드다. 국내 영화시장의 15%에 불과한 작은 시장.

우리나라의 10%에 불과한 인구… 숱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대외 지향적인 시장중시 정책으로 영화 강국의 반열에 오른 뉴질랜드 영화계는, 자국의 뛰어난 인력은 물론 활발한 해외 아웃소싱으로 전성기를 이끌며 아시아 각국의 영화계는 물론 정부에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또 다른 싱가포르식 모델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우리나라를 방문한 뉴질랜드 영화인들을 지난 4일 광화문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만나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이 나라 영화 산업의 강점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앤 드루 프렌치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 상무관, 텔레비전 뉴질랜드의 아시아 다운언더 앵커·프로듀서인 멜리사 리 , 폴 캐런 게플(GEFL)그룹 대표이사, 피이트 리이브 오클랜드 영화인 협회 대표이사, 수전 오드 필름 뉴질랜드 프로젝트 매니저 그리고 장동준 한국영화제작자협회 국장 등이 이날 대담에 참석했다.

●亞 영화인 단결 할리우드 독점 허물어야

●실미도·JSA, 세계서 통할 잠재력 갖춰

●한국 배급사, 마케팅능력은 크게 떨어져

뉴질랜드 영화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킹콩은 뉴질랜드의 이미지를 싹 바꾸었습니다.

(멜 리사 리) 요즘 들어 대학마다 영화 관련 학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젊은이들 중에서도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피터 잭슨, 러셀 크로 등이 눈에 띄는 활동을 하다 보니,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죠. 사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기란 과거에 뉴질랜드에서는 불가능했거든요.

정부가 영화산업의 파괴력에 눈을 뜬 덕분이겠죠.

어린 나이에 영화를 제작해 공모전에 제출하는 ‘신동(神童)’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피 이트 리이브) 최근에 제가 지켜본 11세 소년 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 요즘 뉴질랜드에는 여러 영화 작품 공모제가 활발합니다. 특정 주제를 주고 두 시간 여동안 필름을 찍어 제출하면 이를 평가해 시상을 하는 대회였는데, 이 소년이 자신이 찍은 필름을 제출했어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천혜의 자연환경, 그리고 마오리족으로 이름이 알려진 나라가 영화 강국으로 부상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피 이트 리이브) 뉴질랜드 영화 산업은 그 저변이 매우 두텁습니다. 이미 100 여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최근 들어 르네상스를 맞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 자체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경쟁력이 강한 배경은 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영화 시장 규모가 한국의 7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영화 산업의 역사가 깊은데다 특히 늘 해외 시장 개척을 염두에 두다보니 눈높이도 높아졌고 인재풀도 상당히 폭넓은 편입니다.

작은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점이 더 놀랍습니다. 아시아의 싱가포르와 비슷합니다.

(멜리사 리) 연간 2600억원 규모이니, 한국의 1조2000억원에 비하면 작은 시장이긴 합니다, 하지만 인구 차이도 감안해야겠죠. 뉴질랜드 인구는 한국의 10%에 불과합니다. 영화시장이 결코 작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관광과 영화 촬영지 등을 연계한 클러스터도 경쟁력 강화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장 동찬)클러스터가 뉴질랜드 영화 산업 경쟁력의 근간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도움은 되겠지요. 하지만 영화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창의적인 발상이 작품성과 흥행을 좌우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고가 유연한 인재들, 그리고 마케팅 노하우의 소유자들은 세계 전역에 있습니다.

영화 클러스터가 중요하긴 하지만 뛰어난 작품의 필요충분 조건은 아닙니다. 반지의 제왕, 그리고 킹콩을 만든 피터 잭슨을 볼까요. 뉴질랜드인인 그는 영화 킹콩을 만들면서 음향 작업은 미국에서, 촬영은 뉴질랜드에서 각각 담당했습니다. 영화처럼 세계화된 활동분야가 있겠습니까.

‘수전 오드’ 프로젝트 매니저는 나이가 지긋한 편인데요, 老전문가들이 영화산업 부흥의 원동력은 아닌가요.

(수전 오드) 영화제작자가 되려면, 나이가 이 정도는 돼야 합니다. 제가 그렇게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나요. 이거 섭섭한데요. (웃음) 영화판에 몰려드는 젊은이들은 뉴질랜드에도 꽤 많은 편입니다.

할리우드는 전 세계 영화업자들의 ‘꿈’이자, 공적(公敵)이기도 한데요. 제작자 연합 결성에 나선 것도 할리우드를 의식한 때문인가요.

(폴 캐런)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원동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전 세계 배급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영화제작사들, 그리고 문화적 헤게모니가 주효한 덕분입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작가들은 독창적인 영화 시나리오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유력한 자산인 셈이죠.

배우가 아무리 뛰어나도 스토리가 약하면 영화가 힘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자국 고유의 문화에 바탕을 둔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작가들의 스타일이 시너지를 일으킬 경우, 할리우드 영화를 누를 수 있는 스토리의 비교 우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봅니다.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가 할리우드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인 셈이군요.

(폴 캐런) 그렇습니다. 배우가 뛰어나도 스토리가 엉망이라면 영화가 빛을 볼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곧 ‘스토리텔링’입니다.

멜리사 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다룬 시나리오 집필을 준비 중인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나요.

(멜 리사 리) 한국을 떠난 지 30년 이상이 지났습니다. 솔직히,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또 정체성은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타임지에 실린 위안부 할머니의 사진 한 장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타임의 표제는 그들이 내 몸을 더럽히더니, 이제 내 영혼까지 짓밟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 영화 중 지금까지 몇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까. 세계 시장에서 먹힐 만한 작품이 있습니까.

(피 이트 리이브) 3~4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중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실미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어 더빙을 비롯해 후반 작업만 좀 더 잘 했으면 해외 시장에서도 인기몰이를 할 잠재력이 충분한 작품들이었습니다.

한국 영화 중 해외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영화는, 전쟁 영화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건가요.

(멜리사 리) 아닙니다. ‘밀양’같이 이산의 아픔을 지닌 보편적 영화도 충분히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고 봅니다. 보편적 메시지야말로 흥행의 기본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CJ를 비롯한 대규모 제작사들의 해외 시장 마케팅 역량에 대해서도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까.

(멜리사 리) 해외 시장에서조차 영화 소개를 영어로 하는 작품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번역 내용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어렵거나, 외국인들이 보기에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뉴질랜드 영화계가 한국 영화의 해외 시장 개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장 동찬) 한국 영화는 세계인에게 먹힐만한 코드를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점은 마케팅 능력입니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놓고도 해외에 이를 알릴 수 있는 노하우가 떨어지는 편입니다. 뉴질랜드는 일찌감치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마케팅 역량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그들이 이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양국의 영화 편당 제작비, 그리고 마케팅 비용 등이 비슷한 것도 두 나라의 합종 움직임을 불러온 주요 배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웨타 프로덕션에서 이미 한국영화 공동제작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영화인가요.

(피이트 리이브) 영화 한 편은 지금 제작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한 편은 제작 대기 중입니다. 제작비 규모가 각각 300억원, 그리고 100억원 정도입니다.

뉴질랜드는 총리가 문화부 장관을 겸임할 정도로 영화 산업에 상당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지요. 정부가 영화 산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나요.

(앤 드루 프렌치) 뉴질랜드 정부의 영화산업 육성 열의는 대단합니다. 총리가 문화부 장관을 겸임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영화산업이 뉴질랜드 경제에 주는 파급 효과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산업이 뉴질랜드 경제에 미치는 승수 효과(multiply effect)가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들을 상대로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지원하는 파격적 정부 보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앤 드루 프렌치) 뉴질랜드 정부는 영화가 ‘뉴질랜드적 콘텐츠’를 담고 있다고 판단되면 제작비 전액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또 심사를 통과한 제작자에게 뉴질랜드 내 영화제작 비용의 15%를 보조금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번 APN 결성에는 한국이나 뉴질랜드 정부가 혹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까.

(장동찬)아닙니다. 민간의 움직임입니다. 한국 영화의 침체로 더욱 절실해진 해외시장 확대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외국 영화 국내 촬영 유치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수전 오드, 필름 뉴질랜드 프로젝트 매니저

국제적인 로케이션 자문 관리, 뉴질랜드 스크린 프로덕션 인프라스트럭처 및 역량 조사, 공동의 사안에 대한 현지 업계와의 교류 등을 담당하고 있다. 필름 뉴질랜드 대표로 현재 두편의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멜리사 리, 텔레비전 뉴질랜드의 아시아 다운언더 앵커·프로듀서

텔 레비전 뉴질랜드 아시아 다운언더의 인기시리즈 앵커이자 프로듀서. 오클랜드공대에서 스크린 라이팅(Screen writing)을 전공했다. 선데이뉴스, 뉴질랜드헤럴드 등을 거쳐 1994년 텔레비전 뉴질랜드에 기자 및 뉴스캐스터로 입사했다. 아시아비전의 창설자이자 사장이기도 하다.

●피이트 리이브 오클랜드 영화인회의 대표이사

오클랜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복수전공했다. 뉴질랜드의 영화, 텔레비전 산업에서 프로듀서와 포스트 프로덕션 감독으로 지난 20년간 활동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산 증인이다.

●앤드루 프렌치 뉴질랜드 무역 산업 진흥청 참사관 겸 상무관

뉴질랜드 무역산업진흥청 서울 사무소에서 3년간 근무했다. 한국-뉴질랜드 무역 및 투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폴 캐런 게플(GEFL)엔터테인먼트 그룹 대표이사

지 난 2005년 미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작에 지명된 영화 ‘아이크’를 제작한 유명 프로듀서로, 지금까지 5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아이크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총리간의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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