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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이론 남기고 영면한 경영 구루 ‘프라할라드’


“중저가 그린 비즈니스에 성장의 열쇠 담겨 있다”

2010년 05월 25일 10시 45분조회수:257
노 키아·필립스 성장 이끈 전략가…저소득층 공략 이론의 선구자


“우리 모두는 케인지안이다” 지난 1960년대 통화주의 학파의 좌장인 밀턴 프리드만이 남긴 이 발언은 영국이 배출한 이 천재 경제학자가 남긴 거대한 족적을 가늠하게 한다. 지난 4월 말 타계한 프라할라드 미시간대학 경영대학원 교수도 ‘포스트 피터 드러커’ 시대를 다툰 경영구루이자, 경영학계의 ‘케인즈’였다.

그가 남긴 유산은 화려하다. SK그룹의 ‘따로 또 같이 경영(시너지 경영)’, 노키아의 신흥시장 전략(피라미드 이론)에 이르기까지, 이 경영학자가 남긴 전략적 사고는 글로벌 기업들의 ‘관성적 사고’를 뒤흔든 신선한 충격이었다. <편집자 주>


지난 2000년 초, 인도 캘커타, 프라할라드 미시간 경영대학원 교수는 ‘오토리샤(인도의 간이 운송수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인도인들의 복색은 남루했다. 햇볕에 그을린 검은 피부는 그들의 고단한 일상을 가늠하게 했다.

가난한 인도인들의 하루 수입은 1~2달러. 우리 돈으로 1000~2000원 남짓한 돈이다. 하루 종일 뜨거운 뙤약볕을 쬐며 고된 노동을 하고도 입에 ‘풀칠’ 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것이 인도 빈민들의 고달픈 운명이었다.

인도의 소비자들은 경영자들에게는 비용절감의 수단에 불과했다. 인도 사회의 냉대와 가난에 지친 현대판 ‘불가촉천민들’이 휴대폰을 비롯한 첨단 제품을 조작하는 모습은 발리우드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면이었다.

프라할라드 교수는 서구인들의 이러한 우월주의적 시선을 지웠다. 원주민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그들의 가치관, 소비성향, 지향성을 포착하고자 했다. 인도인들의 몸짓과 말투, 태도는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창’이었다.

인도의 저소득층은 프라할라드의 시선 속에서 비로소 휴대폰을 비롯한 첨단상품, 샴푸, 마이크로 파이낸싱을 비롯한 금융 상품을 갈구하는 소비자로 화려하게 재등장한다.

이 경영학자의 인도 방문은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신흥시장 공략의 대선회를 부르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소득 피라미드’의 맨 아랫부분에 위치한 인도의 저소득층은 수억 명에 달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신흥시장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프라할라드 교수가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 이면에는 그의 깊은 우려가 있었다. ‘식스시그마’를 비롯한 생산성 혁명에 나선 글로벌 기업들은 점차 좌표를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과감한 도전보다는 비용 절감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현주소였다.

이러한 변화를 강제한 주역이 바로 미국과 유럽시장 공습에 나선 일본의 전통 제조업체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습격했던 일본의 선박들이 40여 년 후 다시 싣고 온 무기는 이번에는 성능 대비 가격이 저렴한 ‘자동차’였다.
도요타, 혼다를 비롯한 일제 자동차들은 고효율, 저비용의 ‘제로 전투기’를 떠올리게 했다.

프레데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 기법은 포드 자동차를 찍고 일본에 건너가서 꽃을 피웠다. 미국에서 버림받은 데밍 교수의 품질관리 기법은 일본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피라미드 ‘하층’에 주목…빈민도 소비자다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 노스웨스턴 교수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공세에 맞설 해법으로 ‘리엔지니어링’을 제시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원료 조달, 생산, 마케팅을 비롯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 공정을 분야별로 잘게 쪼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그의 제언이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식스 시그마를 비롯한 품질관리 기법을 앞다퉈 현장에 적용했다. 잭 웰치가 바로 이러한 ‘리엔지니어링 시대’의 대표 주자였다. 마이클 해머 교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드는 전략의 효용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경영진들이 느긋하게 회의실에 모여 장기 전략을 고민하는 것은 무용하다고 그는 분석했다. 프라할라드는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게리 하멜 교수와 더불어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던 이 경영 구루는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다. 인도, 중국, 브라질, 그리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저소득층들에서 성장의 기회를 포착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프라할라드의 제언에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소득 수준이 높은 고객들에 집중하는 프리미엄 전략은 제품의 이미지도 높이고, 수익성도 제고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카드였다.

이 러한 전략을 포기한 채 저소득층 공략의 고삐를 죄라는 제언이 그들에게는 생뚱맞게 들렸던 것. 이 경영석학의 고언을 적극 수용한 것은 바로 핀란드의 휴대폰 업체 노키아였다.

“가난한 나라들이 휴대폰 부문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예언자로 불리던 노키아의 요르마 올릴라는 일찌감치 인도나 브라질,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신흥 시장의 잠재력을 깨달았다.

노 키아가 수만 원 대의 초저가 폰을 선보인 이면에는 이러한 통찰이 있었다. 이 글로벌 기업이 지난 2000년 이후 휴대폰 시장에서 장기 집권한 이면에는 이 경영 구루의 선견지명이 있었다.

노키아는 고가의 휴대폰으로 유럽,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중저가 휴대폰으로 신흥시장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노키아의 신흥시장 공략 ‘한수 지도’
지난 2006년,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은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 전략은 이 글로벌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한 주춧돌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신흥시장의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것도 바로 이러한 명품 전략에 힘입은 결과였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꿈틀거리고 있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고가 제품 라인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 회사가 강점을 지닌 프리미엄 제품 가격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중저가 시장을 공략할 제품 라인이 아직 마땅치 않은 이중고가 수익성의 악화를 부채질했다. 그가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이선으로 후퇴한 배경이다.

노키아를 비롯한 글로벌 휴대폰 업체들이 신흥시장의 저소득층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배경으로는 이 시장의 숨은 잠재력을 꼽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공략 대상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던 거대 시장은 성장에 부심하는 경영자들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저소득층 시장 공략의 선두 주자는 바로 휴대폰 단말기 업체들이다. 노키아, 모토롤라 등이 이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는 배경으로는 이업종 진출의 거점 역할을 하는 휴대폰 시장의 매력을 꼽을 수 있다. 휴대폰은 저소득층 소비자들을 파고들 ‘플랫폼’이자, 신규 사업 진출의 거점이다.


저소득층 시장은 ‘이노베이션’의 요람


금융, 엔터테인먼트, 소비재, 의료부문 등으로 가지치기를 하는 출발점이었다. 인도의 의료서비스업체 복시바(Voxiva)가 대표적 실례이다. 그들의 신흥 시장 공략 붐에 불을 붙인 주인공이 바로 프라할라드 교수였다.

프 라할라드 교수의 통찰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인도나 중국, 브라질을 비롯한 신흥시장 저소득층 소비자들의 주거 환경, 식수, 위생, 교통수단에 주목하고 있다. 간단한 전기 충격으로 오염 물질을 분해하는 ‘소형 정수기’ 등이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올해 초 발생한 아이티 지진 사태는 이러한 장비를 테스트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경연장이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디에스엠(DSM), 로열필립스(Royal Philips),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 아이앤지(ING)등도 시장 공략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프라할라드 교수는 신흥시장을 바라보는 글로벌 기업들의 시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주인공이다.

신흥시장을 자국에서 한물간 상품이나 서비스 하치장 정도로 폄하하던 글로벌 기업들은 핵심 인재들도 현지에서 수혈하고 있으며, 제품이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도 현지 인력의 도움을 얻어 개발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 개발도 탄력을 받고 있다. 빅블루 IBM은 수 년 전부터 인도의 어부들을 상대로 경매 정보를 제공하는 경매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저소득층 시장은 혁신(innovation)의 창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프라할라드의 선견지명에 감명을 받은 이들이 비단 요르마 올릴라를 비롯한 푸른 눈의 경영자들만은 아니다.


‘따로 또같이 경영’ 90년대에 예고
이석채 KT그룹 회장은 지난해 취임 전부터 책 한 권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프라할라드 교수가 지은 <새로운 혁신의 시대>가 바로 그것이다. 유선전화를 비롯한 주 수익원이 급락하고 있는데다, 딱히 성장의 해법을 찾기도 힘든 통신기업 경영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CJO쇼핑의 이해선 사장도 프라할라드 미시간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의 팬을 자처하는 경영자이다.

이 사장도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소비자 포럼에서 이 경영구루의 이름을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프라할라드 교수는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의 전략적 사고의 틀을 바꾸었으며, 글로벌 기업의 ‘시장 분할(segmentation)’ 방정식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주인공이다. 성장에 부심하는 경영자들에게 늘 담대한 도전을 주문하는 경영 구루이자 휴머니스트였다.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 있지 않지만, 그가 90년대 초 저술한(Competine For Future)는 훗날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풍미하는 이종(異種)분야의 시너지, 제조업의 서비스화 등에 대한 청사진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그를 경영학의 미래로 부르는 배경이다.

그 가 남긴 통찰의 출발점은 바로 인도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다. 저소득층의 숨은 욕구를 통찰하고, 이 시장이 수익성도 있다는 점을 꿰뚫어 본 것이 이 경영학자의 뛰어난 점이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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