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Statistics Graph

〈덕혜옹주〉 집필한 권비영 작가

“덕혜옹주가 저를 돕는 것 같아요”

2010년 03월 30일 14시 08분
일본 기모노를 입은 앳된 모습의 소녀가 비석처럼 서 있었다. 보랏빛 ‘소국’을 든 채 이쪽을 애절하게 바라보던 그녀가 바로 고종의 막내딸인 ‘덕혜옹주’다. 권비영 작가는 3년 전 사료 조사차 방문한 일본 대마도에서 조선의 이 마지막 황녀와 ‘조우’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생생한 꿈속에서였다. 비극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 간 덕혜옹주의 굴곡 많은 일생을 그린 역사 소설 <덕혜 옹주>가 요즘 화제다.

역사 소설로는 드물게 30만 권 이상이 팔려 나가며 최근 장안의 ‘지가(紙價)’를 높인 이 소설의 작가 권비영씨를 3월24일 만났다. 집필 배경과 더불어 소설 성공의 노하우에 귀를 기울였다. <편집자 주>



소설이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인가요. 40만 권 가까이 팔리지 않았습니까.
“덕혜옹주는 망국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습니다. 일본인(대마도 귀족)과 정략결혼을 했고, 외동딸도 정신병을 앓다 자살하는 등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독자 반응을 보면 (제가) 그녀의 고통을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는 평이 주종입니다. 이런 디테일이 독자들을 사로잡은 건 아닐까요.”


특강 요청도 줄을 잇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10년 무명의 서러움도 깨끗이 씻어 버린 건가요.
“제가 아들만 둘입니다. 둘 다 장성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하루는 제게 책이 그렇게 많이 나갔는데 자기들한테 돌아오는 것이 없냐는 농담을 건네더군요(웃음).

언론사의 인터뷰나 특강 요청도 꼬리를 뭅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말대로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제가 유명 인사가 돼 있더군요.”


지난 1995년 등단한 후 발표한 작품들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역사소설을 쓴 적이 있었습니까.
“역사소설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역사소설 독자들은 지금까지는 주로 남성들이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여성 독자들이 대거 합류했습니다.
“출판사 홈페이지나 서점의 독자 후기 코너를 보면 여성 독자들의 반응이 주종을 이루는 편입니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눈물짓는 덕혜옹주의 심리를 묘사한 단어가 강렬하면서도 문장은 간결해서 그 슬픔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는 후기도 자주 눈에 띕니다.”


화장품 회사가 남성 고객에 눈을 돌린 격이군요. 기획 단계에서 여성 독자들을 염두에 두셨습니까.
“덕혜옹주의 ‘신원(伸寃)’ 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절실했습니다. 황녀의 고귀한 삶을 살지 못한 여인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여성 독자들을 겨냥해서 만든 작품은 아닙니다. 작가가 할 일도 아니죠. 작가가 여성이었고, 주인공도 여성인 점이 공교롭게도 여성 독자들을 움직인 건 아닐까요. 3년 전 첫 기획을 한 이후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덕혜옹주>가 대박을 터뜨린 후 왕실의 가족사를 다룬 소설들도 봇물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조선 황실 황녀의 삶을 다룬 책이 1978년에도 다섯 권짜리로 출시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조명을 못 받았는데, 이번에 <덕혜옹주>가 큰 주목을 받자 이 책이 다시 두 권짜리로 서점에 등장했습니다.“


덕혜옹주 사료 조사에만 무려 1년 가까이 소요됐다면서요.

“책을 쓰기 위해 기획부터 자료 조사, 집필에 각각 1년 정도가 소요됐어요. 일본 대마도에도 세 차례 정도 다녀왔습니다.

덕혜옹주의 삶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수 많은 밤을 지샜습니다. 하지만 역사소설이 이 정도의 반향을 얻을 것으로는 내다보지 못했어요. 출판사 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웃음).”


출판사도 광화문 대형서점 앞에서 ‘게릴라 마케팅’을 펼치며 측면 지원에 나섰는데요.
“하얀 마스크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젊은이들이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갑작스럽게 모여들어 팻말을 치켜듭니다.

이 팻말에 있는 덕혜옹주의 사진이 서점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저도 마케팅 현장을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출판사 측이 상당히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저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작품 소재로 왜 덕혜옹주를 택했습니까. 대한민국 역사에는 자랑스러운 여성들도 많지 않습니까.
“3년 전, 한 신문사가 대한제국을 재조명하는 사진을 실었습니다. 기모노를 입고 있는 사진 속 여인이 바로 덕혜옹주였죠.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찍은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처연했습니다.

그녀의 삶을 소설 속에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린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기사 내용 중에는 덕혜옹주 관련 부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덕혜옹주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덕혜옹주가 권비영 작가를 파트너로 택한 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일본 대마도에 위치한 덕혜옹주의 묘소에 절을 하며, (당신의) 억울하고 힘든 삶을 재조명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기도했어요.

저는 당시 변변한 사료조차 확보할 수 없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대마도 방문 사흘째 되는 날이었어요. 꿈속에 현몽해서는 비석처럼 서 있었죠.”


죽은 사람이‘현몽(現夢)’해서 무슨 말을 하던가요.
“기모노를 입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모습이었는데, 한 손에는 제가 묘소에 두고 온 소국을 쥐고 있었습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죠. 제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더군요. 말을 섞지 않아도 눈빛에 드러나는 그녀의 고통과 바람을 한눈에 알 수 있었죠. 이 소설은 작가인 제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장치가 보랏빛 ‘소국’이었던 셈이군요. 혹시 차기작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정유재란 때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 많이 끌려가지 않았습니까. 그 얘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덕혜옹주를 집필할 때처럼 자료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습니다. 조만간 일본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하기에 이상적이라는 평도 꼬리를 뭅니다. 러브콜이 있었습니까.
“영화 쪽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는 지금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군데서 러브콜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저작자 표시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