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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19 과거에서 배우는 北 리스크
  2. 2011.12.19 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체제 구축
 

과거에서 배우는 北 리스크

NEXT NORTH KOREA | 2011.12.19 16:28 | Posted by 영환

금융 등 경제 요인이 시장 지배… 증시는 ‘집단지성’의 정수

北 리스크 보다 강한 폭발 변수는?

2010년 11월 30일 09시 52분

‘코끝을 간지럽히는 ‘미풍’일까, 지축을 흔드는 ‘허리케인’일까.’ 지난 11월23일 터진 북한의 연평도 도발 사태는 메가톤급 악재였다. 말년 휴가를 받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해병과 주민들이 포탄에 산화하자 여의도 금융가에서는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투자 고수들이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분주히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이번 연평 사태의 후폭풍은 아직까지는 ‘미풍’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반응. 국내 증시가 불과 이틀 만에 ‘기력’을 거뜬히 회복하자, ‘북한 리스크’ 회의론도 확산되고 있다.

북 한 리스크는 ‘싼값에 주식을 거둬들일 수 있는’ 기회라는 워렌 버핏식 분석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교전의 후폭풍이 ‘찻잔속의 태풍’으로 그치자, 국내 금융 시장이 ‘조기 경보기’의 촉수를 상실한 것은 아닌지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남북한 양측이 지난 1990년 이후 무력 충돌을 빚은 횟수는 6차례. 여기에는 이번 논란의 실마리를 풀 힌트가 있다. 양측 간 교전이 터질 때마다 전면전의 위기감이 높아지지만, 코스피지수 하락은 소폭에 그친다.


그리고 주가는 다음 날부터 상승해 15거래일 뒤에는 평균 8% 이상 오르는 것. 천안함 사태도 유사하다. 해군 장병들이 함정 침몰로 떼죽음을 당하는 준 전시사태가 발발했지만, 주식 시장은 반짝 하락 뒤 빠른 속도로 회복세를 되찾았다.

국내 증시가 ‘안보 불감증’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연평 해전을 비롯해 국지전의 양상을 복기해보면 국내 증시가 북한 변수를 간과하고 있다고 볼 근거는 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남 북 양국이 ‘국지전’을 신호탄으로 냉각기를 맞으며 고성을 지르고 등을 돌리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해빙 무드’로 접어드는 등 안정세를 되찾았기 때문. 국내 증시를 뒤흔드는 변화는 전쟁 등 정치 변수보다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를 비롯한 금융 위기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대표적 실례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폭격을 맞은 미국, 유럽의 은행들이 국내 시장에서 달러를 회수하자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증시가 급락하는 등 자본시장의 위기감이 바람처럼 확산되 나간 것. 국내 증시가 걸프전 발발 소식에 30% 이상 급락세를 보인 것도 비슷한 이치다.

미국과 이라크가 맞대결을 펼치며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원유 수급 차질우려가 커진 결과였다. 미·이스라엘 양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설이 거세질 때마다, 국내 증시를 비롯한 주요 증시의 주가가 혼조세를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러한 패턴을 보이는 것이 비단 국내 증시만은 아니다. 미국도 경제 변수에 민감한 특성을 보여 왔다.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미국 본토를 공격한 지난 2001년 9.11 사태 직후, 뉴욕 증시는 대혼란에 빠지며 대공황의 우려가 깊어졌으나 곧 회복세를 보인다.

뉴욕증시는 7개월의 시차를 두고 다시 하락을 거듭하다가 지난 2004년부터 추세적 상승세를 타며 부동산 버블을 잉태한다. 물론 북한의 도발을 과거의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승계를 준비하는 등 체제 전반에 일대 변화를 꾀하고 있는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증시가 일시적으로 흔들려도, 장기적으로는 합리적 판단을 했다는 점. 지난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론이 촉발한 양국의 전쟁위기가 그 방증이다.

남한측과 협상에 나선 북한 대표가 협상 테이블에서 ‘서울 불바다론’을 터뜨리자, 대한민국 증시는 요동을 친다. 이날 하루 증시 하락폭은 무려 10%. 거의 패닉 상태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당일 85억 원, 다음 날인 22일에는 196억 원을 순매도하는 등 위기의 징후는 뚜렷했다.

서 울 시민들의 대응도 위기를 부채질한다. ‘라면’ ‘과자’ 생수를 비롯한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자 혼란은 전국으로 급속도로 확산된다. 소말리아, 파나마를 비롯한 분쟁 지역에 적극 개입하고, 중국대사관에 오폭을 하는 등 호전적인 대외정책을 취해온 클린턴 행정부가 북미 협상에 실패하자, 북한 타격설이 급속히 확산된데 따른 결과다.


韓증시, 94년 북핵 위기 결말 예측

지 난 1990년대 이후 한반도를 뒤흔든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북핵 위기가 터진 3월 중, 종합주가지수는 5.6% 하락하는데 그쳤다는 점이다. 시장이 단기적으로 흔들렸어도, 점차 안정을 회복했다는 방증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북한이 NPT(핵확산방지협약)을 탈퇴한 지난 2003년 1월10일, 주가는 당일 하락했다가 다음 날 다시 상승했다. 이 두 가지 사례가 가리키는 지점은 명확하다. 정보의 저수지이자, 집단 지성의 정수인 증시가 일시적으로 비이성적일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합리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북한이 민감한 시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들어 ‘북한 리스크’를 전면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 리스크를 장기적으로 ‘증시’보다 더 정확히 판단할 전문가는 없다.

2 차 세계대전사 연구로 명성이 높은 투자자 바톤 빅스(Barton Biggs)는 “영국의 주식 시장은 독일에 패하기 직전인 1940년 여름 내내 바닥에서 움직이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며 “시장의 지혜(wisdom of market)는 매혹적"이라고 강조했다(출처: Wealth War & Wisdom).

미래에셋증권도 지난 11월26일 보고서에서 ”북한발 (연평 도발) 악재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주가가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 점은 시장이 빠른 속도로 이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증시는 흔히 세상의 모든 정보가 흘러드는 저수지에 비유된다. 대한민국, 미국 증시는 경제정보를 가점을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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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체제 구축

NEXT NORTH KOREA | 2011.12.19 15:20 | Posted by 영환

(출처: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수석연구위원 논문)

 
이미 2008년 8월 14일 김정일이 뇌혈관계 이상으로 쓰러졌다 회복된 이후 미국의 정보기관은 김정일이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29%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핵심 정보 소식통들은 김정일의 생존 가능 기간을 3년 정도로 예상했는데, 김정일이 뇌혈관계 이상으로 쓰러진 후 약 3년 4개월 만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의 건강 상태와 김정은 후계체계 구축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정일 건강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필요성

북한의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2009년 1월 8일 3남 김정은의 생일날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하여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에 통보하였다. 이후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은 외부세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매우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그리하여 2009년 말 북한의 권력을 김정일이 60%, 김정은이 30%, 장성택, 김영춘, 오극렬, 리제강 등 김정일의 최측근들이 나머지 10%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북한 내부에서 나올 정도로 김정은은 단기간에 중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김정은은 현재 북한의 주요 엘리트들의 인사뿐만 아니라 대내외 정책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해외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후계자 지명 사실을 ‘오보’나 ‘소설’로 간주하는 등 최근 북한 국내정치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입장을 보이는 전문가와 언론인들은 무엇보다도 김정은이 아직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라는 점 때문에 북한에서의 후계자 결정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들이 북한의 후계자 결정에 대해 불신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또한 김정일의 건강에 대한 자신감 상실과 초조감이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을 급속도로 진척시키고 있는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러므로 김정일의 건강상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2009년 1월 이후 북한의 국내정치 및 대내외 정책의 급변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2008년 뇌혈관계 이상 이후 김정일의 공개 활동

김정일 총비서는 2008년 8월 중순 뇌혈관계 이상 증세로 쓰러져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비서의 건강이상이 외부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8년 9월 9일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그가 불참하면서부터였다. 김 총비서는 199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이래 이듬해 4월 군 창건 60주년 열병식부터 98년 정권수립 50주년, 2007년 군 창건 75주년 열병식까지 모두 10차례 열병식에 빠짐없이 참석해왔다. 북한은 각종 기념일의 5주년이나 10주년이 되는 해를 ‘꺾어지는 해’라 부르며 성대하게 기념해왔으므로, 와병이 아니라면 김 총비서가 정권수립 60주년 기념행사와 같이 중요한 자리에 불참할 다른 이유를 생각하기는 힘들다.

2008년 9월 1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은 한 국회의원은 김 총비서의 건강 상태에 대해 “8월 중순 수술 이후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아 많이 좋아진 상태이지만 일부 언어장애가 있고, 신체 일부 부위도 아직까진 마비증상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른 국회의원은 “아주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국정원이 설명했다”고 말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김 총비서가 “양치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고도 말했다.

이처럼 외부에서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북한은 9월 10일 제43회 생일을 맞은 시리아 대통령에게 김정일 명의의 축전을 보내고, 9월 중순에는 러시아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전문을 보냄으로써 건강이상설을 불식시키려 하였다. 그리고 10월 4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총비서가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62주년을 맞아 김일성종합대학 팀과 평양철도대학 팀간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북한 중앙TV를 통해 10월 11일 김 총비서의 군부대 시찰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방송은 김정일의 축구경기 관람 관련 사진이나 동영상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리고 10월 11일 공개한 사진은 풀과 나무색으로 미루어보아 촬영시점이 10월이 아니라 7~8월께로 추정되면서 오히려 외부세계에 김정일 중병설 의혹을 고조시키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후 2008년 11월 2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총비서가 북한군 ‘만경봉’팀과 ‘제비’팀 간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하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하였다. 북한이 김정일의 사진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선택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의 김 총비서는 붓기가 아직 빠지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왼손은 힘없이 무릎위에 늘어뜨려져 있었으며 키높이 구두가 아닌 ‘컴퍼트’ 신발을 착용하고 있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당시 김정일에게 약간의 건강이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업무를 볼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08년 11월 24일 김 총비서가 중국과 국경지대인 평안북도 신의주의 락원기계련합기업소와 신의주화장품공장 비누직장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동년 8월 건강이상 이후 김 총비서가 처음으로 지방 산업현장 나들이에 나선 셈이다. 이후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회복세를 보여 왔고, 정신적인 부분이나 사고력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아랫사람들에 대한 장악력도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회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뇌졸중 후유증과 우울증

한편 김정일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과거와 달리 경호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혼자 종종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뇌졸중을 겪은 사람들이 보통 PSD(Post Stroke Depression)라는 일종의 우울증을 앓는다고 지적한다. 이 우울증에 결린 사람들은 눈물을 자주 흘리고 또 술과 담배를 몹시 찾는다고 한다. 실제로 김정일이 뇌졸중을 겪은 이후 올해 흡연과 음주를 다시 시작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2009년 2월 25일 회령담배공장을 방문한 길에 연기를 내뿜으며 담배를 피는 김정일의 사진을 외부에 전송했다. 또 동년 4월 14일 북한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열린 고 김일성 주석 97회 생일기념 ‘축포야회’ 때도 귀빈용 간이 관람석의 김 총비서 앞 탁자 위에 재떨이가 놓여 있는 장면이 이틀 뒤인 16일 오전 방송된 북한 조선중앙TV의 화면에 비쳐졌다.

젊었을 때 김정일은 애연가였지만 2001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 끊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담배는 심장을 겨눈 총과 같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금연 필요성을 강조해왔는데 뇌졸중 이후 다시 흡연을 시작한 것이다. 또 김정일은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다가 재기한 후 독한 술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2009년 1월 방북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식사를 함께 하며 상당히 도수가 높은 북한산 술을 오랜 시간 마셨다.

2009년 김정일이 예년에 비해 훨씬 왕성한 현지 지도에 나선 것도 우울증 증세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신경과 전문의는 대개 뇌졸중 후 우울증 증상이 있을 경우 불면증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에 운동을 자주할 것을 권유한다고 한다. 때문에 김정일이 자주 지방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많이 움직이라는 의사의 권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건강 회복과 악화

김정일의 건강 상태는 2009년에 회복과 악화를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동년 5월부터 김정일은 지병인 당뇨성 만성신부전증 악화로 일주일에 평균 2~3회 정도 혈액투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서둘러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실시한 배경에는 김정일의 병(신부전증)이 투석 치료를 받아야할 만큼 악화된 것도 주요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의 건강 위기가 내부 동요로 확산될 가능성을 핵 실험을 통해 차단하려 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 기능이 망가져 혈액 투석 치료를 받게 되면 대개 주당 3회(회당 3~4시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투석 치료 환자의 대부분은 ‘실제로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다’라는 느낌을 가진다고 전문의는 말한다.

2009년 6월경에는 김정일의 신체 마비 증상이 서서히 악화되어 북한 의료기관에서는 김정일의 건강이 현대 서양의학으로는 더 이상 호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최후 수단으로 한의학(북한에서는 동약 치료법이라 부름)이나 안마와 같은 ‘자연치료법’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정일의 지방 시찰에는 안마사가 항시 동행하고 김정일은 매일 수시로 안마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김정일은 약간 경사진 길을 걸을 때에도 숨이 차고 힘들어 두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걷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총비서는 작년 7월 8일 오전 평양체육관에서 김일성 주석 15주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하여 동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에 이어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외부세계에 거동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일은 조선중앙TV를 통해 녹화 중계된 추모대회에서 다소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으로 입장해 주석단에 앉았으며, 대회 시작 후 일어서서 김일성 주석에 대한 추모묵념을 하기도 하는 등 3개월 전과 큰 변화 없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다만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하거나 앉아서 자료를 읽을 때 화면에 잡힌 그의 머리 윗부분은 카메라가 정면에서 비출 때와 달리 머리숱이 많이 빠져 있는 게 드러났으며, 행사장에 입장할 때나 앉아 있을 때 대체로 무표정한 가운데 다문 입 오른쪽 꼬리가 다소 비뚤어지게 올라간 모습이 확인됐다.

 

김정일의 건강 상태에 대한 CIA와 접촉 인사들의 평가

김정일의 건강 상태와 관련, 조선일보 2009년 7월 11일자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김정일이 향후 5년 동안 생존할 확률이 29%에 불과하다고 우리 당국에 통보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CIA는 김 위원장이 뇌졸중과 당뇨병의 합병증 등으로 5년 내 사망할 가능성이 71%에 달한다고 분석했다”고 소개했다. CIA의 이 같은 추정치는 김 총비서의 나이, 질병, 신체조건 및 뇌졸중을 맞은 시기와 그 이후의 신체조건 변화 등을, 의료 관련 데이터베이스와 비교 분석해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CIA는 김정일의 현장 지도 사진 등 공개 정보 외에 우리 정보당국이 입수한 김정일의 뇌 사진과 고급 정보원들의 증언 등 각종 정보와 첩보를 종합해 김 총비서의 건강 상태를 지표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7월까지만 해도 외부세계에서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회의적으로 보는 평가가 많았지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8월 4일 방북하여 김정일을 직접 면담한 이후 그가 상당한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클린턴은 9월 21일 방송된 CNN의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 그가 본 김정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고 전하면서 “그가 북한에 대한 확실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평양 공연을 위해 러시아 문화사절단을 이끌고 방북해 2009년 9월초에 김정일을 면담한 파벨 오브샨니코브 러시아 21세기관현악단 단장 겸 수석지휘자는 9월 15일자 요미우리(讀賣)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기억이나 말투가 확실했다. 양손도 자유롭게 움직였고 담배도 피웠다”고 말했다. 오브샨니코브는 김정일이 자신과 면담하는 동안 말보로 담배를 피우고 차도 마셨으며, 악수를 할 때는 손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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