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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차지혁, 비운의 사나이

NEXT 로컬(Local) | 2007.02.21 19:47 | Posted by 영환

다시보는 차지혁, 비운의 사나이

다시 한번 출사표 던진 비운의 천재 차지혁




[이코노믹리뷰 2005-05-26 10:15] (차지혁씨를 만나본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훌쩍 지났네요. 그와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어 , 차지혁씨가 아니신지요"  솔직히 저는 그를 사기꾼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바 있는 그의 얼굴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차씨의 진면목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지요. 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가지 점만은 명확하더군요.그가 상당히 똑똑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우 선 구사하는 단어의 수준이 남다른 데가 있었어요. 뭐라고 할까요. 매우 정교하다고 할까요.

인터뷰 내내 신세한탄, 억울함을 털어놓아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책을 2만권 읽었다는 그의 주장이 허풍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차씨는 여러차례 불만을 털어놓더군요. 자신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라면을 먹다가 그의 전화를 받았는 데, 다시 라면을 먹으려고 하니 퉁퉁 불어 도저히 입에 대지를 못하겠더군요. 차씨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토라진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휴대폰 메시지와 함께 가수 이승철의 〈인연〉을 배경음악으로 띄워 보세요. (당신의) 애틋한 마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풍운아(風雲兒) 차지혁 씨(47)가 5년여의 은둔 생활을 끝내고 다시 출사표(出師表)를 던지며 재기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1999년 벤처기업 ‘미다스칸’을 설립하고 비상(飛上)을 꿈꾸다 사기공모 등의 혐의로 날개가 꺾이며 오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그의 복귀 일성(一聲)은, 뜻밖에도 휴대폰 부가 서비스인‘컬트링’이었다. 신세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컬러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신(新)개념 서비스라는 게 그의 설명.


지난 17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개인 사무실(지인 회사의 사무실 한켠을 빌려 쓰고 있다)에서 만난 차씨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정으로 지난 5년간 치열한 반성과 더불어 뼈를 깎는 자기 개발 노력을 거듭해 왔다고 고백했다. 초췌한 얼굴에 움푹 들어간 눈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가 보낸 풍상의 세월을 웅변하고 있었다.


“셋방을 전전했습니다. 조그만 골방에 묻혀 사업 구상과 연구에 골몰하다 보면 간혹 과거 교도소 생활로 다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차씨가 이 기간 동안 출원하거나 등록한 특허 건수만 무려 100여 건. 이 특허를 활용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작품이 휴대폰 부가서비스인 ‘컬트링’인 셈이다.


지난 1990년 단돈 2만3000원의 자본금으로 자동차 관리업체 ‘트리피아’를 설립해 그 해 1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차씨의 화려한 이력 탓일까? 기자는 그에게 “휴대폰 부가 서비스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기존의 컬러링 서비스는 음성 통화 시장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컬트링은 서비스의 범위를 SMS, 무선 인터넷, 컬러링등 데이터 통신 시장으로 넓혔다는 점에서 획기적입니다. ”아직까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그 누구도 개척해보지 못한 이른바‘블루오션(Blue Ocean)’시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서비스의 특징은, 문자 메시지 비용만으로 휴대폰 메시지를 배경 음악과 함께 전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자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나 장윤정의 〈어머나!〉등을 배경 음악으로 지정해 함께 보낼 수 있다. 메시지 사연을 읽다 보면 전송자가 지정한 음악이 동시에 은은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울려 퍼지게 된다는 게 차씨의 설명이다.


특히 음악을 듣거나, 다른 문서 업무를 처리하면서 굳이 휴대 전화를 확인하지 않고도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를 컴퓨터 화면 상에서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큰 강점이다.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업무시간 대부분을 보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메신저 상에서 바로 상대편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날릴 수도 있으며, 인터넷 전화 환경을 갖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메신저 상에서 바로 통화도 할 수 있다는 게 차씨의 설명이다. 차씨는 조만간 이동통신 3사에 이러한 내용의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실패한 벤처기업인 경험도 소중한 자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투자자를 울린 희대의 사기꾼, 21세기판 봉이 김선달, 대중선동에 능수능란한 한국의 히틀러. 사실 그에 대한 비판 여론은 아직도 만만치 않다.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이라도 팔았지만, 저는 물건도 없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피해를 안겼다는 게 지난 92년 저를 심문한 젊은 검사의 말이었습니다.”


차씨는 92년 트리피아 부도 후 그를 심문하던 당시 20대 검사의 발언을 담담히 회고한다. 그는 지난 1999년 미다스칸 주식 공모 과정에서도 사기공모, 과대광고 등의 혐의로 고발됐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평가는 어느덧 세인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면서 그를 두고두고 고통스럽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격 복귀 선언을 하게 된 배경은 “두려움 탓이 컸다”고 그는 고백한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역사의 뒷 무대로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4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자신을 겨냥한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에게도‘패자부활’의 기회를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물론 옥석을 가려야 합니다. 머니게임을 하다 몰락한 벤처기업인인지, 아니면 치열하게 기술 개발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기업인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한 벤처 기업인들의 경험도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입니다. ”


차씨는 특히 과거 자신의 도덕성을 통째로 허물어뜨렸던 여직원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이며 무죄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인터뷰 내용이 실린 월간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천 의원은 이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차씨의 무죄를 주장한 바 있다.

기자는 차씨에게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넌지시 던져 보았다. 자신의 주장대로 무죄라고 하더라도 그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서랍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지난 1999년 미다스칸 공모에 참가했던 투자자들의 명단이었다. “투자 판단에 따른 손실은 투자자들의 몫입니다. 법적인 책임에서는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까지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추후 재기에 성공하면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 척박한 토양의 국내 벤처 업계에도 훈훈한 전례를 세워나가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차씨는 지금도 사무실에 아침 6시면 출근해 새벽 2∼3시가 돼야 퇴근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요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탐독하고 있다고 한다.


IQ 174의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차씨는 과거의 실패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그는 ‘조급증’ 탓이었다고 말한다. 지난 87년 대선 당시 평화민주당 캠프에서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을 조직하다 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나자 스스로 당을 박차고 나온 그는, 지난 13대 총선을 앞두고 후보 수십여 명의 선거 기획 의뢰를 수주하며 정치권에서 상종가를 기록한 바 있다.


그가 훗날 벤처기업 설립과정에서 발휘한 기획 능력도, 이때의 경험이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이러한 성공이, 자신을 주변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하는 ‘독불장군’으로 변모시킨 것 같다고 차씨는 고백했다. 그는 이제 인내의 미덕을 새삼 절감하게 됐다고 말한다. 일본의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끈질긴 견제를 극복하고, 훗날 ‘미가와’ 시대를 활짝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는 새가 울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다”는 그는, 지난 12일에는 지인들에게 빌린 도토리 79개로 사이월드에 자신만의 온라인 사무실(cyworld.nate.com/digitalboy)을 열어 1촌 맺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IQ 174의 천재…기다림의 미학 배웠다


차씨는 창의력이 뛰어난 인물로 유명하다. 지난 2000년에도 시내 곳곳에 단말기를 설치해 이를 통해 고객들이 제품을 살 수 있는 가상백화점과, 돈 없이 물건을 살 수 있는 ‘노머니 매직서비스’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면서 역시 차지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명성이 명불허전(名不虛傳)은 아닌 듯 했다. 그가 지난 2000년 저술한 《청년 차지혁 그 꿈과 야망은 늙지 않는다》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이 눈에 띈다. 치질 치료 약재가 첨가된 화장지, 선적립 마일리지가 들어 있는 역발상 신용카드 운용시스템 등은 지금 보아도 새롭다.


이날 인터뷰 중 그가 즉흥적으로 제안한 ‘은행 매장을 활용한 상품 마케팅’도 이른바 차지혁식(式) 재기(才器)를 가늠하게 했다. 그가 제시한 은행 내 백화점 상품 매장 설치 아이디어를 보자. 백화점과 은행이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백화점에서 한 주 동안 가장 높은 인기를 얻은 제품을 은행 점포에서도 판매한다는 게 골자다. 은행 방문객들은 송금. 환전 등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면서 물건도 구입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지난 2000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회장을 만나 게임서비스와 온라인 쇼핑몰을 제안했는 데, 이 사장이 이를 거부했다는 비사(秘事)도 공개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당시 그의 제안을 수용했다면 인터넷 포털 업계의 판도가 변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차씨는 요즘 후속 사업 준비 작업에도 골몰하고 있다. 직장인과 어린이들을 겨냥한 경제 포털 사이트가 그가 준비 중인 회심의 카드이다. 어린이들이 주식 거래를 실연해볼 수 있고, 특히 직장인들도 이곳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고수들에게 주식 거래를 위탁할 수 있다고 일부 기능을 귀띔했다.


이 경제 포털사이트가 출범하면 국내 증권산업 분야에도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그는, 아울러 한 업체와 손잡고 유무선 도메인 표준화 작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재기에 성공한다면 될성부른 벤처 기업에 투자하는 재단 ‘꿈은 현실로’를 세우고 싶습니다. 이 곳은 최고경영자의 학벌이나 인맥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창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조직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도 모두 이를 위한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 그가 인터뷰 막바지에 밝힌 포부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관중의 인재등용 노하우

“말을 대신해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해 날지 말라”

길고 긴 번역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스승인 고 권우 홍찬유 선생은 뜻밖에도 ‘관중’을 공부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주군인 제환공을 패자 지위에 올려놓고 춘추시대 열국을 평정한 사나이. 유학을 평생의 가르침으로 삼아온 스승의 입에서, 유가에서 전통적으로 배격하는 관중이라니….

고개를 갸웃했다. 노자, 장자, 묵가까지 제자백가 사상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하지만 읽으면 읽어볼수록 원전의 문장 하나 하나가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매주 서울역 인근에 있는 대우학술재단에 모여 유학 사상을 집대성한 ‘성리대전’을 강독하던 학자 네 명이 전격 의기투합했다.

번역은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작업에 비유할 정도로 고단했다. 무엇보다, 문장이 난삽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지만, 의미가 턱하니 막힐 때에는 한학자들을 찾았다. 초역에만 2년 이상이 걸렸고, 작년 말 관중은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무려 7년여의 길고 긴 작업이었다. 그동안 스승은 타계하고, 정부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바뀌었다.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값만 무려 5만원. 사실, 잘 팔리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에나 등장하는 패도 정치가로 알려진 관중에 누가 관심이 있으랴.

하지만 ‘관중’은 뜻밖에도 출판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시내 주요 대형 서적의 고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정해년 새해, 수천년 전 중국 대륙을 풍미하던 이 남자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오후 인천 경인교대에서 만난 공동번역자 고대혁 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먹고 살 기반이 있어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긴다는 뜻이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수출 3000억달러를 돌파했지만, 체감 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춥고 어둡다.

“관자에게서 21세기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의 원형을 본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 교수는 기자의 이러한 가설에 순순히 동의를 한다. 관중은 말 그대로 민생문제 해결을 가장 중시하던 정치가였다.

간웅으로 널리 알려진 조조가 관중의 사상에 심취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젊은 시절, 조조는 첫 임지에 부임해 일을 낸다. 당시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던 수백여 개의 사당을 모조리 허물어버리는 대담한 행동을 했는데, 미신보다는 백성들의 민생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사고 덕분이었다.

관중은 특히 갈등을 풀어내고, 비전을 제시하며, 인재를 발탁하는 일에 발군이었다. ‘말을 대신해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해 날지 마라.’ 관중이 남긴 인재 운용의 첫 번째 원칙이다. 지도자가 일을 맡기고도 시시콜콜 간섭하며 달리는 말에 발길질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뜻이라고 고 교수는 지적한다.

관중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인재를 추천하는 데 결코 망설임이 없던 배경이다. 진시황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동문 한비자를 모함해 죽여버렸으나, 자신도 훗날 비슷한 운명에 처하는 이사는 관중을 배웠어야 했다.


일을 맡기고 시시콜콜 간섭하면 득보다 실 많아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원칙을 견지하기란 때로는 얼마나 힘든 것인가. 국내 일부 대기업그룹 오너들은 내로라하는 인재를 발탁하고도, 수시로 갈아치우거나 작은 실수를 빌미 삼아 옷을 벗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첨단 경영기법을 이식했지만, 회사별로 명암이 엇갈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이명환 전 동부그룹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른바 ‘시스템 경영’의 성패는 경영자의 용인관(用人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제환공은 관중 사후에 간신들을 등용했다 결국 죽어서도 한동안 관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아야 했다.

관중에게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리더십은 시스템의 중시다. 문제를 푸는 데 한 사람의 독단을 배제하고, 많은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보탤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유가에서 이상향으로 통하는 요순시대를 보자. 당시에도 후계자 그룹간의 암투,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민생고는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요순임금이나, 관중은 여느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원탁회의를 열어 참석자들과 머리를 모았다. 특히 공은 언제나 자신이 발탁한 인재에게 돌렸으며, 과는 자신의 몫이었다. 구성원의 장점을 중시했으며, 한 가지 단점으로 섣불리 이들의 능력을 폄하하지 않았다.

관중은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하라고 했다. “사실, 너무 이상적인 얘기들이 아닐까요” 고 교수가 제자들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중의 리더십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세계적인 검색 기업인 구글은 조그만 벤처기업 시절부터, 사내 인사평가위원회를 통해 인재를 발탁했다. 사내추천에만 의지하다, 자신의 입지를 우선시해 A급 인재를 추천하지 않는 직원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관중은 마굿간 우리를 구성하는 목재의 사례를 들며 이러한 이치를 이미 설파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여 년 전이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현대판 관중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있겠습니까. ”고 교수는 재치 있게 비켜간다. “인재는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라고 해서 관중 만한 인물이 없겠습니까. 다만 이들을 알아볼 수 있는 국민들의 역량이 문제가 되겠지요.”

관중은 누구인가

“제갈량이 흠모한 춘추시대 대정치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로 널리 알려진 춘추시대의 정치가 관중. 훗날 춘추시대 열국의 정치무대를 좌우하는 대정치가로 성장하지만, 그도 젊은 시절 자신의 지식을 무기로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입신양명을 꾀하던 숱한 제자 백가 지식인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외무고시가 없던 춘추전국시대의 유가, 종횡가, 법가 등은 자신들의 부국강병 이론이나, 치도를 앞세워 군주들에게 지식을 세일즈하는 지식보부상이었다. 자신의 이론이 받아들여지면 경륜을 펼칠 기회를 제공받았으나, 이는 드문 경우에 불과했다.

공자나 맹자도 평생을 떠돌며 자신을 채용해줄 주군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관중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단한 행운아였다. 그는 제나라의 왕권을 다투는 여러 공자들 가운데 공자 규의 참모 노릇을 하면서 입신양명을 꿈꾸었다.

흥미로운 점은 절친한 친구인 포숙아가 공자 규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훗날 왕위에 오르는 제환공의 참모를 담당하게 되면서, 두 사람이 정치적인 라이벌로 부상하게 된다는 점이다. 관중은 제환공의 배에 화살을 날리며 목숨을 노리는 승부수를 띄우지만, 거사는 실패하고 포숙아가 지지한 제환공이 제나라의 왕위를 잇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진가를 알고 있는 포숙아의 천거로 왕위에 오른 제환공을 보필하는 재상자리에 오르게 되고, 자신의 경륜을 펼쳐 그를 패자 자리에 올려놓게 된다. 관중은 흔히 법가 사상의 시조 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중국 최고의 기재로 통하는 제갈공명이 융중에 머물던 무명시절에 자신을 관중에 비유하곤 할 정도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대정치 사상가로 인정받아 왔다. 재상 자리를 자신의 친구에게 양보한 포숙아,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객을 재상자리에 발탁한 제환공 모두 관중 못지않게 대단한 인물들임에는 틀림없다.


낸시랭, 그리고 천정배

NEXT 로컬(Local) | 2007.02.21 19:43 | Posted by 영환

낸시랭, 그리고 황신혜

●팝 아티스트 시대 활짝 연 낸시 랭
“비엔날레서 뜨는 과정 자체가 마케팅 교과서”

(낸시랭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팝아티스트와 인터뷰를 한지도 벌써 1년여가 훌쩍 지났네요. 주로 기업인들과 인터뷰를 하다, 톡톡튀는 20대 아가씨와 인터뷰를 하려니 영 쑥스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첫만남에서 낸시랭에 대해 지니고 있던 편견은 여지없이 부숴졌지요. 그녀는 적극적이었으며, 미술사에 대해서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일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낸시랭은 세상의 풍파도 적지 않게 겪었구요. 특히 자고나면 바뀌는 세상의 염량세태를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는 아가씨였죠. 그녀는 언론에 비치는 다소 가벼운 이미지와는 달리, 내적으로도 성숙한 인물이었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비엔날레에서 속옷으로 퍼포먼스를 연출한 그녀의 용기를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그녀에게서 작년말 한차례 전화가 왔었는 데요, 동화백화점내의 개인 작품 전시관 오픈행사에 와줄 수 없냐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 낸시랭은 요즘 여러 광고에도 등장하며 잘 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초심을 잊지 말고 오래 가는 예술가가 됐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그는, 방송 토론프로그램 패널들의 질문을 능수 능란하게 비껴 나갔다. 하지만 홍익대 주변의 클럽하우스 M2에 가본 적이 있는 지를 묻는 큰 딸뻘의 팝 아티스트라니…. 이날 한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참석해 튀는 발언으로 천 장관을 당혹하게 만든 20대 여성이 바로‘낸시랭(Nancy Lang)’이다. 그녀는 요즘 방송 토론프로그램의 패널로, 패션업체의 아트디렉터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주목받고 있는 팝 아티스트다.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패션 회사 쌈지의 본사. 2003년 열린 세계 예술인들의 꿈의 무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속옷 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낸시 랭은 ‘뜻밖에도’ 예술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털어놓으며 ‘진지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특히 국내 미술계의 보수적인 풍토(風土)에 대해 직격탄을 날려, 톡톡 튀는 이미지의 그녀를 떠올리던 기자를 잠시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벼움과 무거움, 속된 것과 성스러움을 두루 갖추고 있는 낸시 랭 특유의 예술세계의 특성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면서도 정작 대중문화를 고급문화에 비해 저열한 것으로 취급하는 국내 미술계의 행태는 이율배반적입니다. 미국만 봐도 앤디 워홀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구분이 이미 깨졌으며, 매튜 바니도 열광적인 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 미술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는 그녀는, 그러나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이들의 해방구인 홍익대 주변이나 강남 청담동 일대에서는 그녀에게 사인과 더불어, 손을 앞으로 쥐고 엉덩이를 뒤쪽으로 쭉 내뻗는 ‘낸시 랭 포즈’를 부탁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그녀의 이러한 상품성에 눈을 뜬 것은 몇몇 기업들이다. 변덕스러운 젊은 소비자들의 코드를 읽어내는 팝 아티스트를 보면서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낸시 랭은 지난달 캐딜락 신차 발표회장에서 ‘터부 요기니’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회사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쌈지의 천호균 사장은 생면부지의 그녀를 ‘아트 디렉터’로 전격 영입하며 그녀의 이름을 딴 낸시 랭 브랜드 런칭의 전권을 부여했다. 낸시 랭은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해외에서도 루이 뷔통은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세계적인 일본 작가와 손잡고 그의 예술세계를 제품에 반영해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프라다나 에르메스도 세계적인 작가를 영입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도-비록 일부이지만-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천 장관과는 오랜 시간을 같이하지는 못했지만 프리메이슨에 대한 대화를 잠깐 나누었다고 귀띔하는 그녀는, 요즘 낸시 랭 브랜드 런칭을 기념하는 패션쇼를 준비하며 분주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청담동의 트라이베카에서 패션쇼를 열게 되는 데, 평범한 소녀들을 모집해 퍼포먼스와 패션쇼가 어우러진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만화책 《오렌지 보이》가 그녀가 요즘 탐독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신재철 LG CNS사장, 재기의 마술사

(커버 4) 쓸쓸한 퇴장...화려한 재기

유순신이 말하는 재기 방정식

"신재철을 보면 정답이 보인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직 장인들의 운명은 평탄치 않습니다. 승승장구하다가도 한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오랜 칩거끝에 마지막에 웃는 역전의 용사들도 있기 마련이지요. 현대의 직장인들뿐일까요. 고전은 우리에게 "충신은 하사받은 마차가 헐기도 전에 내쳐지고, 애첩은 미모가 시들자마자 버림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오래전부터 전해왔지요.

신재철 LG CNS사장은 이런 맥락에서볼때 이례적인 존재입니다. 납품비리로 무관의 생활을 무려 2년이다 했으나, LG CNS의 사장으로 지난해 화려하게 복귀했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신사장의 복귀에 돋보기를 들이댄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 기사와 관련해서는, 당사자인 신재철 사장의 반론이 있었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그는 잡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고 말했는 데, 물론 잘못된 부분은 전적으로 기자의 책임입니다. )

" 급작스럽게 물러나셔야 했는 데, 억울하지는 않으셨어요. 납품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결국 문제를 일으킨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하 직원들이 저지른 실수 또한 내 책임입니다.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 헤드헌팅 업체인 유앤파트너스(YOU&PARTNERS)의 유순신 사장.

지난 13일 삼성동에 위치한 이 회사 집무실에서 만난 유 사장은 지난 2005년 한 구직자와 나눈 대화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60세를 바라보고 있던 이 전직 최고경영자는ꡐ납품 비리ꡑ라는 유탄을 맞고 뜻하지 않게 옷을 벗어야 했다. 검찰 수사는 그의 명성을 허물어 버렸다.

자 신의 명성에 일대 오점을 남긴 사건. 이 경우 누구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대개는 책임을 부하 직원들에게 돌리면서 전 직장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나가기 마련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비리 기업인이라는 낙인이 한번 찍히면 재기는 영 어려워진다.

하 지만 그는 자신의 책임을 오히려 순순히 시인했다.ꡒ설사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더라도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역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ꡐ진실ꡑ이라는 평범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진리를 새삼 재확인 하게 됐습니다. ꡓ

당 시 이 구직 인터뷰에 응했던 전직 최고 경영자가 바로 신재철 현 LG CNS사장이다. 한국IBM의 최고 경영자로 7년간 근무하며 이 회사를 탄탄한 토대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컴퓨터를 납품하며 담당 직원들이 발주처에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며, 그는 시련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2년여의 실직자 생활을 거쳐야 했다. 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의 한국 자회사에서 CEO로만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신 사장은 지난 2004년부터 야인 생활을 했다. 그에게는 납품 비리 기업인이라는 ꡐ꼬리표ꡑ도 늘 따라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대개 선택하는 길은 크게 두 갈래이다.

분 노를 속으로 삭이면서 외부 행사나 모임 등에 발길을 뚝 끊고 두문불출하는 것이 그 하나다. 체면을 중시하는 국내 기업인들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거나, 직장에서 좌천될 경우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고 여러 모임에도 일절 나오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최악의 자충수이다.

자칫하면 외부 인맥의 도움을 스스로 차단하고, 본인도 자신감을 잃고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유 사장은 지적한다. 하지만 신재철 LG CNS 사장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쉬는 동안에도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또 아내와 유럽여행을 하며 격무에 지친 몸을 돌보았다.

업계와의 인연의 끈도 놓지 않았다. 강남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업계 후배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자청했다. 조급하게 복귀를 서두르지도 않았다. 유 순신 사장은 그에게 여러 차례 현업 복귀를 권했으나, 그는 이러한 제안을 고사했다. 아직까지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변하는 정보통신업계에서 무려 2년간 야인 생활을 했지만, 업계에서는 그를 잊지 않았다. 그는 재작년 LG CNS의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재기 성공 방정식 몸에 익혀라

그 는 성공적인 재기의 교과서이자 전범(典範)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흔하지 않은 사례다. 한때(女帝) 여제 소리를 듣던 휴렛 팩커드의 칼리 피오리나나, 애플컴퓨터의 존 스컬리 등은 실적 부진에 더해 파워 게임에서 밀려 현직에서 물러난 뒤 아직까지도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들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엔론의 전직 경영자들과는 달리, 도덕성면에서 질타를 받은 적도 없고, 한때 시장에서도 촉망받는 경영자들이었으나, 한번 낙마하고 나니 재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은 냉혹하다. 한번 실패한 경영자에게 러브콜을 보내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ꡒ 칼리 피오리나는 주주나 동종업계에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혁신적인 기업이 아니라면, 재계보다는 정치권에서 그녀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ꡓ 유 사장의 분석이다. 하물며 납품 비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인물을 뽑으려고 할까.

신 사장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무엇보다, 그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을 잘 깨닫고 있었다.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유 사장은 그와 대비되는 국내 5대 그룹 출신의 한 전직 최고 경영자를 반면교사의 사례로 들었다.

이 전직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후임자로 7~8세나 어린ꡐ새파란ꡑ인사가 내정이 되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잡 인터뷰에서 이 그룹이 위치해 있는 여의도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다 보면 과거에 얽매이고 생산적이지 못한 일에 감정을 소모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 는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의 임직원들과도 만나지 않았으며, 사적인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자학을 하거나, 전 직장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은 금물이다.ꡒ30년 동안 경력을 쌓았는데 얼마나 고마운 회삽니까.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같이 협력할 수 있는 회사로 가고 싶습니다.ꡓ

유 사장은 그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객관적인 상황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재기에 성공하는 해외 경영자들은 결코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으며, 때로는 자신을 축출한 인사에 대해서도 과감히 먼저 손을 내밀 줄 알았다. 씨티그룹의 제이미 디몬 전 회장이 대표적이다.

유 사장은, 자신을 내친 회사에 분노를 표출하는 전직 CEO와 인터뷰를 하면서 역설적으로 폭넓은 시야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쉬는 동안 건강을 추스르는 한편, 인문서적을 읽고 사회공헌활동에도 나서 보라고 조언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숲속에 있다보면 숲이 보이지 않는다.

세 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부지런히 사람들과 교유하며 세상 흐름을 파악하는 한편, 자신이 활동했던 업계와의 끈도 놓지 말아야 한다. 분노를 느끼거나 자괴감에 빠져 있기에는 세상 변화가 너무 빠르다. 무엇보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적극 활용해 나가야 한다. 유 사장이 구직자들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널리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ꡒ기회는 항상 옵니다. 가정일도 적극적으로 돕는 한편, 조직생활에 매여 있다보니 소원했던 사람들도 부지런히 만나세요. 그리고 앞으로 20년 동안은 무엇을 할 것인지 포부를 밝히세요. ꡓ

무 엇보다, 꾸준한 ꡐ평판(reputation)관리ꡑ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평판은 자신의 경력이자 직장 생활의 성적표이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도, 직장에서 같이 일하기 어려운 인력으로 낙인이 찍히면 불이익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조직 내 간부 사원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부하직원들의 평가에 신경을 써야 한다. 또 후배 직원들은 자신의 조직 로열티에 대한 윗선의 평가를 꾸준히 신경 써야 한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신 사장의 이러한 위기 탈출의 방정식이 세계적인 경영 월간지인 《하버드비즈니스 리뷰》가 최근호(The Tests of A Leader)에서 밝힌 재기에 성공한 유명 경영자들의 여러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고수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하나로 통하는 법이다.







베인&컴퍼니 이성용 사장 인터뷰


Management |베인&컴퍼니 이성용 사장이 밝히는 임원으로 살아남는 6가지 방법(이 성용 사장은 5공화국 시절, 청와대에서 미군 연락장교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습니다. 지난해 8월 이사장을 이 회사 본사에서 인터뷰했으니, 다섯달 가량이 벌써 지났네요. 하지만 이 사장의 인상은 지금도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우리말 발음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어른들이 늘 하는 말씀처럼 똑소리가 나는 인물이었습니다. 뛰어나니 이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의 수장으로 근무할 수 있는 거겠죠. 이사장이 밝히는 임원으로 살아남는 6가지 방법, 자 귀를 기울여 보시죠.  


[이코노믹리뷰 2006-08-04 15:42]


“전략적 사고 첫걸음은 열린 태도
인적 네크워크부터 리모델링 하라”

“임원진을 혁신해야 비로소 회사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기업 베인&컴퍼니 코리아의 이성용 사장은 지난달 20일 이 회사 본사에서 가진 기자와의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국내 기업의 임원들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기업의 별’이라는 통념과 달리, 상당수가 윗선에서 던져주는 일만 처리하다 보니 전략적 사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국내 임원들의 취약한 경쟁력으로는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이성용 사장은, 특히 “동종 업계는 물론 사내 교류마저도 꺼리는 폐쇄적인 태도부터 포기해야 한다”며 전략적 사고의 첫걸음은 열린 태도에 있음을 강조했다. 인적 네트워크의 리모델링부터 하라는 주문이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5공 시절 청와대에서 미8군 연락장교로도 복무한 이 사장은, 전 세계 20개 나라에 32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 컨설팅회사 한국 법인의 대표이자, 베인&컴퍼니 본사 글로벌 디렉터로서 동북아시아 IT부문과 한국금융 서비스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임원들이 꼭 실천해야 할 자기혁신법 6가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당장 손에 들어라
●일년에 일주일 정도는 전략을 고민하라
●외국의 경쟁사 정기적으로 방문하라
●경쟁사 임원 동향을 부지런히 파악하라
●경쟁사 정보는 공급사에서도 확보하라
●FTA는 위기이자 기회, 영어부터 시작하라

-세계적 컨설팅 기업의 수장이다 보니, 많이 바쁜 것 같다. 서울시 자문위원단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삼성테스코 이승한 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자문위원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조만간 (서울시측에서 논의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 자문위원단에는 5~6명 정도의 외부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서울시가 도쿄나 밀라노, 그리고 싱가포르 등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단 모임에서 도시 브랜드 제고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음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임원들》이라는 책을 저술 했는데, 국내 임원들의 자화상을 냉정하게 분석했다는 평가다.

국내에는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서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국내외 유명 최고경영자의 자서전이나 경영전략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임원들로서는 딱히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고치려 해도 도움을 구할 곳이 흔치 않다. 오랫동안 컨설턴트로 기업임원들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바를 정리하게 된 배경이다.


-해외 기업인들과 견주어 볼 때 국내 기업임원들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장점부터 살펴보자면 단기 현안을 처리하는 역량이 탁월하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손익 관리를 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3~5년을 멀리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역량이 부족하다. 시야가 매우 좁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생각없이 한다고 하면 지나칠까.

대기업의 경우 한 기업에서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하고 요직을 거쳐 임원직에 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러 기업을 두루 거쳐야 지식의 폭도 더 깊어지게 마련인데, 이러한 점에서 외국에 비해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있는 셈이다. 자사 브랜드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해외에서 근무해본 경험도 적다.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데도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한국적인 상황도 감안해야 하는 데, 평가가 지나치게 박한 것이 아닌가.

자질은 뛰어나지만, 시스템이 문제다. 우선, 임원들에 대한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기업들이 드물다. 얼마 전 필드에서 한 재벌 그룹 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 데, (그에게 ) 골프 회원권 금액의 50%를 임원 교육에 쓴다면 임원 역량이 열 배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농담 섞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최고 인재를 모아 놓고도 이들의 역량을 강화할 교육에 지속적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내 기업의 평가 시스템도 때로는 장애로 작용한다. 대부분 연간 단위로 평가를 받고 재계약을 맺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회장이 3~5년 장기 비전을 강조해도, 임원들 입장에서야 그 때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장기 비전에 시큰둥한 데도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국내 기업의 토양도 따져봐야 한다.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보니 스스로 사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임원들을 만나보면 오너의 의사를 파악하는 나름의 비법을 자랑스레 털어놓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임원이라는 자리는 전리품이 아니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임원들의 전략적 스킬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기회를 한 걸음 앞서 포착하고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비단 최고경영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국내 임원들은 인맥을 넓히고 제대로 활용하는 데도 상당히 서툰 편이다. (내가 만나본 ) 임원 상당수가 경쟁 기업의 임원들은 막론하고, 심지어 사내 임원들과도 교류하지 않는 폐쇄적인 태도를 지닌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임원들도 많이 공부를 한다고 하는 데,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다.


-국내 정서상 경쟁 기업 임원과 교류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할까. 왜 다들 제너럴일렉트릭(GE)만 배우려고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잭 웰치나 빌 게이츠를 입에 올리지만, 국내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배우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국내 상황에 정통한) 경쟁 기업의 임원들이 서로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

경쟁사에서는 일을 어떻게 하는지 배울 게 많다. 경쟁기업 임원들과 만난다고 해서 기밀문서를 주고받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스스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멀리하는 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임원이 되고, 롱런하는 데도 네트워크가 의외로 많이 작용을 한다. 좋은 쪽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피터 드러커나 잭 웰치의 경영 사상을 학습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대가들에 집착한 나머지, 가까운 곳에 있는 정보의 보고(寶庫)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해외 석학들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내게도 ) 피터 드러커는 영감의 원천이다. 특히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책은 임원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프로페셔널로 산다는 것이 어떤 뜻인 지,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무엇인 지 등을 논하고 있는 데, 경영자로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전략적 스킬을 키우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선, 1년 중 적어도 일주일은 회사의 각 사업부를 전략적 관점에서 검토해 보라. 3년 후 상사나 오너와 어떤 비즈니스 사안을 논의하게 될지, 현재와는 어떤 점이 다를지,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깊이 검토해 보라. 부서가 당면한 전략적 문제에 대해 일지로 기록해야 한다.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 상사와 친밀한 관계라면 이를 연간 주기로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함께 고민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공급업체가 누구보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라. 특히 경쟁사에도 납품을 하는 회사라면 양질의 정보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이 대표는 다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데, 본인이 직접 실천하고 있는 방안이 있다면.

진부한 말이지만, 배우고 익히는 데 결코 게을러서는 안 된다. 글로벌한 시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해외 저널도 꾸준히 읽어봐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권해주고 싶다. 고개를 절로 끄덕거릴만한 사례가 적지 않다.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글로벌한 시각을 배울 수 있다. <포브스>도 추천할 만하다. 모두 간결하고도 명확해서 (나처럼)항상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딱이다. (웃음)


-업종부터 임원 개개인의 업무스타일까지, 차이점이 적지 않은 데 일률적으로 이러한 지침을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인맥을 넓히고,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 것은 말 그대로 공통분모일 뿐이다. 임원 스스로의 유형을 파악해서 대처해야 한다. 예컨대, 전술적 스킬에 탁월한 이른바 마셜형 리더를 보자. 그는 우선 부하 직원과 자신이 담당해야 할 책임의 몫을 분명히 파악하는 편이 낫다. 이들은 스스로의 경영 노하우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권한이양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임원 자신이, 과연 인맥 활용에 뛰어난 브래들리형 리더인지, 관리 감독에 탁월한 아이젠하워형 리더인지 등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본인의 리더십 못지 않게 부하직원이나 상사의 성격·리더십 유형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업을 혁신하기 전에 임원직을 혁신해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만나본 국내 임원들 중 전략적 스킬이 가장 탁월한 기업인 한 명만 꼽아달라.

한 사람을 딱히 지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본받아야 할 역할 모델은 역시 은행권의 임원들이다. 특히 신한은행 임원들이 은행권에서는 가장 탁월한 것 같다. 맨손으로 신한은행을 일으켰다는 자부심 덕분인지 열정이 대단한 데다, 특히 국내 금융권과 달리 덜 관료적이어서 얽매인 사고를 하지 않는 점도 강점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임원들이 거의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근접해 있다.


-국내외 기업인들 사이에서 성장이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고민하는 임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나.

국내 기업들이 의외로 성장을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큰 돈을 벌고 있지만, 예외적인 사례다. 통틀어 따져보면 많은 기업들이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VK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문을 닫는 기업도 적지 않다. 성장을 하려면 해외시장에 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 경쟁의 정도가 세다는 점이다.

외국에 나가면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니 여러모로 어렵다. 국내 시장에는 중견 기업만 해도 브랜드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어 시장을 파고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해외 시장은 다르다. 결국 주판알을 튕겨보고 갈 데가 없으니 현금만 쌓아놓고 있다. 임원들의 전략적 사고가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끝으로, 뜨거운 감자인 한미 FTA도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사실, 수년 전 컨설팅 시장의 빗장을 열 때도 논란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경영 혁신의 노하우를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거의 시차 없이 습득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고객사들의 평가다. 금융 부문도 비슷하다. 국내에 진입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결국 국내 인력들을 채용해야 한다.

이들은 외국 기업의 노하우를 익혀 스스로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가장 큰 이슈는 영어다. IT 분야 고급인력이 많은 데 영어 탓에 수출을 못하고 있다. 영어를 할 수 있으면 앞으로는 더 많은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데, 지금까지는 그것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이면우, 이공계현실을 비판하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펌글)
 
 
(월간조선에 실린 서울대 이면우 교수의 글입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긴 합니다만, 이공계 회피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오죽하면 제너럴일렉트릭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자국의 이공계 전공자 격감을 거론하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겠습니까. 문제는 세상을 바꾸는 이노베이션의 주체들이 공대출신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죠. 미국에서도 젊은 나이에 거대한 부를 일궈낸 인물중에는 공대 출신들이 많지요. 공대 출신이 기업은 물론 관계를 주름잡고 있는 인도나 중국을 두려워하는 배경입니다.
 
아마도 이런 반론을 하실 분들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게 어디 이공계 뿐이냐고. 워렌 버핏, 칼리피오리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인문학을 전공한 거물들 가운데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거나, 한때 주도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공계 전공자가 가늠하지 못하는 인문학의 가치가 또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 하지만 말이죠. '그들이' 이런 얘기에 꿈쩍이나 하겠습니까. 이 교수님,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시지 말고, 차라리 될성싶은 대선후보 진영에나 참가해보시죠. :)


많은 사람들이 이공계 교육의 위기를 얘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공계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다. 이건 아주 간단명료한 문제다. 살고 싶으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나 는 1991년 '서울공대 백서'를 발간했다. '서울대학은 국내 최고의 대학도 아니고, 세계 400위 안에도 못 드는 관악산의 최고대학'이라는 게 백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대학은 지금도 관악산의 최고 대학일 뿐이다.

2002 년 대선 때 서울대 폐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관악산 골짜기의 골목대장 밖에 안 되는 대학을 없애서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 나는 '서울공대 백서'와 1992년에 펴낸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오늘날 우리 공학교육의 위기는 5년 내지 10년 후 국가 전체의 위기로 냉큼 대두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IMF가 터지자 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 같이 예견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건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공계 교육이 왜 국가위기를 진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바퀴는 두 개다. 하나는 국가 경쟁력이고 하나는 가계부 작성이다. 돈을 잘 벌어야 하고, 번 돈을 잘 써야 하는 이치다. IMF는 벌이는 없고 가계부 작성도 엉망이었기 때문에 온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계부 작성을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엉망이었던 가계부 정리는 대충 끝났다. 구멍난 곳을 메우는 데 150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벌이를 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 'W 이론'에서 나는 세계 1등 기술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은 고스톱 판과 포커 판의 게임처럼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 2등이나 3등은 가산만 탕진할 뿐이다.

당 시에는 "도대체 무슨 얘기냐"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이제 이 얘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예전에는 인구 1억 명이면 내수시장만으로 국가를 지탱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요새는 인구가 문제가 아니다. WTO 등 글로벌 네트워킹 때문에 인구가 10억 명이 넘어도 기술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이외에 팔아먹을 것이 없다.

제주도를 천혜의 관광지라고 하지만 1년에 비오는 날이 100일이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는 부적격이다. 발리나 하와이에 가 본 사람들은 내 얘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관광국가로 먹고 살기에 우리의 문화유산은 너무 빈약하다.

벌 이가 없으면 아무리 가계부를 잘 써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원천은 과학기술 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 학생들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있느냐는 우리나라가 5년 후, 10년 후 어디로 갈 것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는가? 답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삼성전자가 핸드폰을 하나 만들 때 퀄컴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판매가의 15% 정도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설비와 부품을 일본에서 모두 수입해야 한다. 앞으로 남고 뒤로 믿지는 장사다. 그것도 삼성전자의 얘기다.

정부는 '2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을 위해 5대 성장전략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독자적인 기술 없이 어떻게 5대 성장 전략 사업을 키우겠다는 말인가?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들

지난해 서울공대생 23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적 어도 100명에서 150명의 공대생이 머리를 싸매고 골방에서 법전을 외워대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그것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나도 늦기 전에 고시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며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은 채 고시공부의 언저리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서울공대 학부생 5500명 가운데 10% 이상이 고시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니던 한 학생이 다시 대입 시험을 봐서 서울의대에 입학했다. 면접장에서 제자를 만난 물리학과의 한 교수는 기가 막혀서 '물리 과목은 다 맞았겠지'라고 했다고 한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돈 잘 버는 의사·한의사·변호사가 되겠다고 작심한 아이들에 비교하면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에 불과하다.

나는 이 제자들이 딱하기만 하다. 눈치 빠르게 일찌감치 돈 버는 쪽으로 갈 것이지 서울공대에는 왜 들어왔다는 말인가.

서울공대나 자연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모두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특출나게 잘 했고, 과학기술을 연구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졌던 친구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가 '이공계 공부해야 이렇게 비전이 없는데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서 이공계 공부를 계속 할 거냐'면서 이 아이들을 끊임없이 고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 대덕의 연구원들은 밤 12시까지 연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연구자 학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20대, 30대에 습득한 기술과 이론들은 순식간에 과거의 것이 되고 만다. 이공계 연구인력의 정년은 대부분 40대다.

이공계 인력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을 기다리는 건 '사오정'이라는 운명이다. 과학기술 인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길에는 존경과 냉소가 뒤섞여 있다.

이 들이 한국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라는 걸 어렴풋이 인식한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활동을 지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싫다. 국민의 이해 부족과 낮은 지위와 보수 때문에 이공계 출신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런데도 당신들은 자식들을 이공계에 보낼 것인가? 의대와 한의대에, 법과대학과 상과대학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개인차원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사회차원의 비합리적 선택이 되는 현상을 미리 알고, 차단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몫이다.

재벌 총수들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재벌기업 총수에게 "왜 기술력도 확보되지 않은 공장들을 자꾸 늘려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의 대답이 똑같았다. "이교수, 그러니까 이공계 출신들이 눈치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요.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총수가 이끌던 거대 재벌기업 두 개는 IMF 전후에 무너졌다. 그때 한 재벌 총수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생산성 향상, 그거 별 의미가 없어요. 5~6% 이윤이 남는데 30% 생산성 향상시켜 봐야 기껏 2% 포인트 이윤을 더 남기는 겁니다. 공무원들하고 골프 치고, 술 먹고 해서 큰 프로젝트 하나 따오면 20%, 30% 이윤이 남아요. 로비 잘하는 게 생산성 향상시키는 것보다 열 배는 쉽게 돈 버는 일입니다."

공 장을 세워서 은행 돈을 빌리고, 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덩치를 키워 정부의 특혜를 받고…. 그런 식으로 기업들은 살아왔다. 그 체질이 지금도 과히 많이 바뀌지 않았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를 나온 사람들은 재벌기업의 비서실, 기획실, 마케팅실에 근무하면서 정·관계에 포진한 동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지금도 이공계 졸업생들은 '당신들이 중요하다'는 말만 듣지 계속 벽지 공장을 돌게 된다. 이공대 졸업생들의 좌절은 여기서 시작한다. 엔지니어들이 말도 못 하고 속을 끓이는 사이에 몇 년 후배인 법대·상대 출신들은 쭉쭉 승진을 한다.

이공계 졸업생은 승진에 한계가 있다. 경영진에 많이 기용되지를 못한다. 벽지의 공장에 처박혀 있으니까 '촌닭 같아서'임원으로는 못 쓰겠다는 것이다.

그 래도 과거에는 엔지니어들에게 프라이드가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성을 향상시켰다고, 품질개선을 했다고 총수와 간혹 악수할 기회도 있었다. 1960년대, 1970년대에 기업들이 외국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면, 영문 매뉴얼을 보고 가동시키는 일을 서울공대 출신들이 했다. 복잡한 영어 매뉴얼을 보고 다들 기겁을 하는데 그나마 서울공대생들이 그걸 해낼 수 있었다.

요즈음은 그 일을 외국에서 공부한 교포 출신들이 대체한다. 영어 실력이 서울공대생들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에서 '서울공대 나온 친구들이 기술을 알면 얼마나 더 아나, 교포 2세가 낫다. 미국에서 대학교 2학년 다니다가 왔다는데도 또랑또랑하고 매너 좋고, 아무나 만나도 섭섭하게 안 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

왜 대학들은 이렇게 기술 경쟁력이 없는 공대생들을 양산하고 있을까?서울공대는 물론이고 대다수 공과대학이 이론 교육에 치중한다.

강 의 시간에 외국 이야기만 들으니 학생들은 감흥이 일지 않는다. 학생들이 '우리가 직접 실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으면 교수들은 '여기서는 못해'하고 의욕을 꺾어 버린다.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너희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받는다.

서울공대 교수의 학위논문 80% 가까이가 이론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인 셈이다. 우리 공대생들은 실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유학 가면 다 촌닭이 된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수들은 '실험실습비도 없고, 실험장비도 없다, 어차피 나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느냐'며 항변한다.

그러니 이공계 출신들은 유학 가서도 다 이론 쪽으로 간다.

기업은 해외협동이 있을 수 없다. 수요도 없고 공급도 없다. 기업과 대학 사이에 오가는 연구비는 기업들이 이공계 학생들을 조달하려는 차원에서 에이전시한테 주는 커미션일 뿐이다.

최근 들어 서울공대의 커트라인이 웬만한 지방의 의과대학보다 떨어진다. '공대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한다는 사실이 신문에 자꾸 보도되니까 공대가 더 죽는다'며 정원 미달 사실을 숨기는 것을 대책으로 들고 나오는 교수도 있다.

입 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져 수학·과학 '보충반'을 편성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수준의 학생들을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하라는 말이냐'고 한탄하는 동료 교수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 과연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학교육을 했느냐'고 묻는다.

최근 정부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겠다', '병역 혜택을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이런 대중적 구호를 보면 옛날 전봇대에 붙어있던 술집 여종업원 호객 구호가 생각난다. '침식 제공, 선불 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구호를 보면 "아, 저곳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건 산업기술이고, 그것을 이끌어 가는 것이 이공계 교육'이라는 사실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이 몇 개의 사탕을 나눠 주는 것으로 이공계 교육을 살려낼 방도는 없다.

내 실험실의 졸업생들 중 11명이 국제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졸업생들은 물론 교수인 나 역시 자부심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국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 이것이 우리 이공계의 현주소다.

이공계 기피의 역사적 뿌리

우 리 사회는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조의 문화로 회귀하고 있다. 기술을 중시하고 이공계가 우대를 받았던 1960년대 이후의 시기는 기술을 냉대한 긴 역사에서 잠시 반짝한 예외적인 시기였다. 역사 속에서 내 선배 과학자 기술자들은 모두 처절한 최후를 맞았다.

신라 무영탑의 전설은 아주 로맨틱하다. 탑 만들기에 동원된 석공은 오랫동안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스스로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 탑 만드는 데 동원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가정이 파탄난다' 불사에 동원된 석공들에게 오두막 하나씩 지어 주고 거기서 아내가 밥을 지어 주게 했을 법한데도 위정자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영탑의 전설이 주는 교훈은 '석공에게 시집가면 죽는다'였을지 모른다.

에밀레종 설화도 마찬가지다. 공명 설계는 컴퓨터 기술로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신라 시대에 종을 만들려면 보통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독촉과 질책을 받았으면 끓는 쇳물에 제 아이를 넣어 볼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흉내만 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대대손손 축복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아들을 제물로 바쳐 맑고 그윽한 소리를 만들어낸 신라의 종 만드는 기술자가 그 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설화 역시 '주조 기술자가 되려면 자식을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새벽 안개처럼 은은하게 사방에 퍼지게 했을 것이다.

조 선시대 기술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천민 계층이었다. 장영실을 보자. 관노 출신 천민인 장영실은 당시 지극히 예외적으로 종 6품까지 벼슬이 올랐다. 세종이 신임을 하니 문반들의 시기 질투가 대단했다. 문반들은 '천민이 종 6품까지 올라가는 것을 좌시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 아래 세종에게 온갖 간언을 했으나 세종이 듣지 않았다.

그러다 장영실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공주의 가마 손잡이가 부러져 공주의 가마가 구르고 말았다. 왕족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면 모반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세종도 감싸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가마 손잡이에 미리 톱질을 해 놓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당시 돌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후 아무도 장영실이 어떻게 됐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과학 기술자로 출세하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관존민비

국 내의 몇 개 안 되는 과학관에 가서 보면 서양 과학자들은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전부 기록돼 있는데 우리나라 과학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출생연도만 밝혀져 있을 뿐 사망연도는 물음표로 처리돼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말로가 안 좋았다는 증거다.

나는 1990년대에 '손빨래 세탁기', '골고루 전자레인지', '따로따로 냉장고' 등을 개발해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제품 6개를 만들었다. 이 덕에 199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시상식 전날 예행연습이 있다고 해서 불려갔다. 단상에 올라가는 걸음걸이가 씩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몇 번을 단상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연습하러 나온 여고 합창대원들 앞에서 서울공대 교수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었다.

이 튿날 시상식장에서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시상을 맡은 이수성 국무총리는 나와 함께 서울대학 교수로 일했던 분이다. 그의 연설이 이어지는 10여 분 내내 나는 객석을 등진 채 그를 바라보고 서 있어야 했다. 시상식의 주인은 상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맨 앞에 앉아 사진기를 들고 있던 아내는 나의 뒤통수만 실컷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상품 개발로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는 나는 수상 소감 한 마디 못해 보고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조선 시대 장영실의 얘기가 아니라, 1996년 서울공대 교수가 겪은 일이다. '이러니 다들 관료가 되려고 하지 누가 과학기술자가 되려고 하겠나' 하며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십면초가

나 는 1986년부터 우리의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1992년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우리 경제가 십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의 산업구조는 선진국에서 도입한 낙후기술과 설비에 저임금을 결합한 허약 체질이었다.

주문자 상표를 부착한 얼굴 없는 수출로 우리 상품은 저급품으로 분류돼서 외국의 저소득층에 팔려 나갔다. 유통망과 애프터 서비스 시스템이 없어 단골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져 실속 없는 산업팽창이 이뤄졌다.

1975 년을 기점으로 우리 산업의 틀을 바꿔야 했다. 1975년까지만 해도 '저임금 양산조립'은 한국에게 보장된 독무대였다. 그렇지만 기술도입과 단순 모방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했고, 값싼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라는 넘을 수 없는 산이 눈앞에 있었다.

1975년의 기술도입료가 전년도에 비해 갑자기 4배나 늘어났다. 이때부터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어야 했는데 우린 그걸 하지 못했다. 기술 도입료와 로열티가 계속 올라가자 기업들은 현장 작업자들만 다그쳤다.

지 금도 관료와 기업인들은 '고임금 저효율이 해소되어야 경제위기가 해소된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말인가? 이웃집에서 카시미론 솜 이불을 팔아대는데 낡은 솜틀 기계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 것은 1975년식 사고방식이다. 제조업은 기술정보, 상품기획, 연구개발, 설계, 설비계획, 부품조달, 생산, 판매기획, 판매, 사후관리 등 대략 10단계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우리의 제조업은 상품기획과 연구개발 설계는 해외기술의 도입으로 대체했고, 판매 및 사후관리 단계는 외국 바이어들에게 기대 왔다. 우리 손으로 직접 담당하였던 것은 생산부분 뿐이다.

우리 제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응급 처방은 무엇일까. 우선 선진 제품의 모방에 심취했던 역개발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창의적인 연구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상품 기획을 해 본적이 없다.

선진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도입하고 모방설계를 했으며, 세계시장에서 소비자 구매욕이 입증된 상품만 골라 뒤늦게 기획에 착수하였다.

나는 1989년 산학협동을 통해 '하이 터치'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상품을 개발하자는 게 목표였다.

1989 년에 만든 입체형 컴퓨터 키보드는 손목의 피로를 덜어 주는 제품이었다. 1993년에 출시되어 1조원 이상 팔린 맥킨토시 키보드보다 4년 앞선 기획 상품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은 '이제까지 이런 제품을 본 기억이 없다'는 이유로 대량생산을 망설였다.

'그렇게 좋은 키보드라면 왜 IBM에서 아직까지 개발을 하지 않았겠는가'가 업체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우리 기업은 남의 것을 모방만 해왔기 때문에 남이 안 하는 것을 만들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비 슷한 시기에 나는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자동 진공청소기를 개발했다. 최근 필립스가 제작해 국내에서 한 대에 200만원 이상으로 팔리는 자동 진공청소기와 똑같은 모양과 기능의 제품이다. 차이가 있다면 필립스는 진공청소기에 자동 감지장치를 장착했다는 것뿐이다.

자동 진공청소기의 기획 아이디어를 냈지만, 어느 전자제품 업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산학협동을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인들 머리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삼부가 이론'을 발견했다.

경영혁신은 죽지 않으려고 하는 일

신제품 개발을 위한 상품기획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기업의 관리자들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개발을 기피한다.

첫째,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이유다.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면 제품 원가가 올라가고 판매가도 높아지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량산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가 나온다. 나는 직육면체로 만든 제품의 모서리를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곡선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기업 쪽에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곡면으로 바꾸면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신뢰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논리다. 새로운 기능이 첨가되면 부품이 늘어나고 고장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기업 측에서는 '삼부가 이론'으로 신제품 개발에 반대했다.

어 떤 기업이 일류기업인가? 일류기업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산업분야를 개척하고 최고 혹은 최초의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이 기업을 모방한 다른 기업들이 덩달아 돈을 벌어야 한다. 즉 보고 따라 하는 이류기업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렇다면 초일류기업이란 무엇인가? 국적과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전세계의 일류기업들이 초일류 기업의 기술과 상품 경영철학을 본받아서 큰 이익을 내야 한다. 초일류로 분류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몇 개 밖에 없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한국에는 불행하게도 초일류 기업이 없다.

삼성은 일류기업이지 초일류기업이 아니다. 삼성이 '신경영'을 추진할 때 삼성 임원들의 방마다 '잭 웰치'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나는 삼성 임원들에게 '삼성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잭 웰치를 쫓아갈 수 없다'고 얘기했다.
삼성 사람들이 '왜 안 되냐'고 묻기에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 잭 웰치는 현재 1등이거나 가까운 장래에 1등이 될 수 있는 2등을 빼놓고는 다 잘라냈다. 삼성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그룹이 공중 분해되어도 좋은가? 잭 웰치가 한 번에 10만 명을 감원했다. 한국적 정서를 이겨내고 수만 명을 감원시킬 자신이 있나? 잭 웰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서 직접 서류 나르고 재떨이 던지며 경영혁신에 달라붙었다. 당신 회사의 회장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 관계자들은 '신경영을 하려는 총수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고 항변했다. 나는 '경영 혁신은 총수의 의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안 하면 죽기 때문에 하는 것이 경영혁신'이라고 했다.

그러면 삼성 관계자들은 대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죽기 살기로 경영혁신을 안 하는데 왜 삼성은 안 죽습니까?'

내 대답은 이렇다. '지금 사방에 암 걸려서 링거 꼽고 누워있는 환자들이 수두룩한데 폐병 걸린 환자를 죽일 수는 없지 않나?' 한국에서 경영혁신을 하겠다는 기업들은 대개 '전담추진반'을 둔다. 전담추진반은 보통 상무급이 팀장이 된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상급자인 사장들의 목을 자르겠는가?

IMF 경영혁신의 최대 피해자는 연구인력

IMF 이후 제일 먼저 잘려나간 것이 '전담추진반'에 연줄을 확보하지 못한 연구소의 연구인력들이었다.

총수가 직접 나서서 '우리 기업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밤새워 고심했다면 연구인력은 제일 마지막 감원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했다.

이 게 대한민국 기업의 비극이고, 나라의 비극이다. 한국은 기업의 회장이 구설수를 외면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잭 웰치는 '전담추진반'을 두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감원대상을 고르고, 자르고, 불필요한 부서와 인력을 잘라 냈다.

1997년 초 한 경영자 모임에서 내게 강연을 요청했다. 당시 '가격 경쟁력만이 살길이다'는 구호가 위력을 떨치던 시절이었다. 나는 강연을 하면서 '아직도 가격 경쟁력을 강조하는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기업활동에서 가능한 한 끝까지 피해야 할 것이 바로 경쟁사와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가격경쟁이란 최후의 승자 하나만이 남을 때까지 출혈을 하면서 계속해야 하는 죽음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나서서 '죽음의 경기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아직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제품들은 제조원가가 높은 반면에 판매가가 낮아서 가격 경쟁력을 따질 시기를 지난 지 오래다. 우리 제조업은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에 비해 높은 금융 비용과 부동산 가격, 물류 비용, 로열티, 실질 임금 등이 높아 '5고'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울타리를 친 내수시장에서 국내 가격을 높게 받아 연명해 왔다. 마치 친척들에게는 비싼 값을 받고 일반인에게는 싼 값에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긴 것과 같다.

운 동경기에서 우리 팀이 계속 실점을 하면 관중들은 '작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의 과거 작전은 가격 경쟁력이었으나, 가격 경쟁력 작전으로 가서는 중국은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상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길은 가격을 높여서 받을 수 있는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는 길뿐이다. 제품가격을 높이고도 물건을 파는 방법은 독특한 제품, 경쟁상대가 없는 고부가 제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겠다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 중국에는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은 물론 화상 네트워킹과 마케팅 능력이 있고, 일본에는 기술력이 있는데 우리가 무슨 근거로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까? 해답은 창의력에 있다.

우리에게 창의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모든 걸 해 봤는데 아직까지 안 해 본 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혹시 창의력이 있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나 스스로 경험을 통해 우리가 창의력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창의력을 가지고 소규모 실험을 해서 세계시장에 성공여부를 타진한 다음 군단 병력에게 파는 식으로 가야 한다. 우리의 3대 효자 상품인 휴대폰, LCD, 자동차 산업은 5년 안에 중국의 추격을 받아 자멸할 운명이다.

'가격 결정권'만이 살길이다

글로벌 마켓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마켓을 독점 내지 선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가격 결정권만 가지면 우리는 동양의 맹주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가격결정권을 가지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내가 내놓은 아래의 물음들에 독자들이 응답을 해주었으면 한다.

' 정부가 5년 이내에 이공계 기피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을 내놓을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기업이 5년 이내에 정부지원 없이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보는가?' '대학이 5년 이내에 스스로 교육개혁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학부모들이 내 자식만은 편안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고, 자녀에게 이공계 대학 진학을 권유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항목이든 "10%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응급실로 가야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우 리 산업은 도시가스에 밀려 설 자리를 뺏긴 구공탄 공장에 비유될 수 있다. 생산성을 향상해 하루에 구공탄을 10%씩 더 찍으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날 수 있을까? 구공탄 공장의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답은 둘 다 '아니오'이다.

도시가스가 도입되는 초기에 '도시가스로 업종을 전환하라'고 했다면 연탄공장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웃기지 마라. 온돌방이 존재하는 한, 겨울철이 존재하는 한 구공탄은 영원하다.' 연탄공장은 그렇게 전의를 불 태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음가게와 냉장고, 우마차와 용달차, LP와 CD 모두 똑같은 원리다. LP 5000장을 모은 음악 애호가에게 CD로 바꾸라고 한다면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오스트리아에 여행 갔을 때 밥 굶으면서 산 오페라 판, 유학할 때 아내에게 잔소리 들어가며 산 클래식 전집,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그래서 음악 애호가도 이렇게 외친다. "클래식이 존재하는 한, 아니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LP는 영원하다." 그러나 지금은 축음기 생산이 중단되어 더 이상 LP를 들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과거의 산업구조가 일직선인 주로를 눈감고 뛰기만 하면 되는 마차 경주였다면, 지금의 산업구조는 폴로 게임이다. 말의 눈을 절대 가리면 안 되고 주로도 일직선이 아니고 그라운드다. 어디로 갈지 모르며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빨리 설 줄 알아야 하고 세 박자 쉬었다가 달릴 수도 있고, 세 걸음 뛰다가 정지도 해야 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마차 경주 챔피언들이 폴로 복장을 하고 나와서 설치고 있는 형국이다.

요즈음 우리의 국가 목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다. GNP로 국가의 비전을 내세우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의식은 거의 필리핀 수준이다. 우리에게는 '이웃을 돕겠다', '인류에 혹은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 희박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기 조차 힘들다. 원래 패러다임의 전환은 극히 일부가 시도하는 것이고 시도한 사람 중에 극히 일부가 성공한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조선조의 한 왕이 정승들에게 "광풍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초가삼간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의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광풍이 쇠잔해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지도계층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사방의 문을 열어 놓으면 초가집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방 안에 있던 민초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 바람에 날려가서 죽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끈질기게 버텨왔다. 7년 전쟁에서 절반에 가까운 민초들이 사라진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이공계의 위기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이공계의 위기에는 기업과 대학, 사회 전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잭 웰치의 얘기에서 거론했듯이, 이공계의 위기는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달라붙어야 할 문제다. 정책 구호나 유인책 몇 가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대학이나 이공계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기업, 우리 사회 전체가 이공계 기피현상의 최종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살고 싶으면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고건 전총리, 전장서 예를 찾다

다시 리더를 말한다 ② 고건 전 총리

[이코노믹리뷰 2007-02-15 07:42] (송 양지도. 전쟁터에서 도를 찾다가 결국 적에게 패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후인 송양을 비꼬는 고사성어입니다. 고건 전 총리도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한때 주변의 높은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후보 대열에서 스스로 탈락하고 말았지요. 혹시 적군이 강을 다 건널때까지 기다리던 송양의 우를 되풀이한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직접 쓴 기사는 아니고, 고전연구가인 신동준씨가 풍요로운 고전 지식을 활용해 저술한 글이지요.


신동준씨는 한겨레와 조선일보 등에서 정치부 생활을 오래 했는 데,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전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성악설로 널리 알려진 순자를 국내에 평역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분석한 고건 전총리의 리더십을 한번 보시죠:)



“시대 거부한‘愼獨 리더십’…
臣道의 길을 이탈하지 못했다”

“고 전 총리는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결단을 내린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의 행보는 현실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역대 대통령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행보와 대조를 이룬다”

다산 정약용
“고 전 총리는 다산 정약용의 저서《목민심서》에서‘현명한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의‘지자이렴(知者利廉)’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때문에 그가 취한 행보는 《중용》에서 말하는‘신독(愼獨)’에 가깝다.”

조조“난세에 천하를 놓고 다툴 때는‘신독(愼獨)의 리더십’이 어울리지 않는다. 조조처럼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재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해 쓰는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용인술이 필요하다.”

최근 범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던 고건(高建) 전 총리가 문득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된 인물이 중도에 불출마선언을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특히 고 전 총리는 지난해 중반기까지만 해도 줄곧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려온 까닭에 그를 잠재적인 대통령 감으로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던진 충격은 매우 컸을 것이다.


대선 경쟁은 기병술이 동원되는 野戰
본래 대선 경쟁은 온갖 기병술(奇兵術)이 동원되는 야전(野戰)에 비유할 수 있다. 야전을 지휘하는 장수는 결코 일시적인 승패에 희비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전투를 하다 보면 적의 기습공격을 받아 대병(大兵)을 잃고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전투에서 줄지어 승리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상승무적(常勝無敵)의 기세를 자랑할지라도 마지막의 대회전(大會戰)에서 승리를 거머쥐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대선의 최종 회전에서 승리키 위해서는 먼저 출마자 스스로 필승의 신념을 지니고 도중의 모든 난관을 기필코 돌파해 나가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결단을 내린 적이 없었던 듯하다. 이러한 관측이 맞는다면 고 전 총리의 행보는 현실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역대 대통령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행보와 커다란 대조를 이루는 셈이다.


큰 틀에서 보면 고 전 총리의 하마(下馬) 선언은 기본적으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그의 조심스런 행보와 무관치 않다. 고 전 총리가 존경한 역사적 인물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라고 한다. 정조(正祖)의 총임(寵任)을 받았던 다산은 순조(純祖) 연간에 노론의 견제에 걸려 전남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무수한 역저(力著)를 남겼다. 고 전 총리가 주목한 다산의 저서는 공직자의 직무수행 교범이라고 할 수 있는 《목민심서(牧民心書)》였다. 그는 《목민심서》에서 ‘현명한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는 뜻의 ‘지자이렴(知者利廉)’이라는 구절을 찾아내 자신의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 전 총리가 취한 행보는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신독(愼獨)’에 가깝다. ‘신독’은 말 그대로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조차 신중한 사려와 행보를 취하는 군자의 기본자세를 말한다. ‘신독’을 두고 다산은 《중용자잠(中庸自箴)》에서 ‘신독은 성(誠)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성’은 ‘성신(誠信)’을 뜻한다. ‘중용’이 곧 ‘성’이고, ‘성’은 곧 ‘신독’에 의해 이뤄진다는 게 다산의 논리였다.



40년 화려한 官歷…깨끗한 사생활
고 전 총리는 다산의 이런 논리를 적극 수용한 듯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확실히 ‘중용’에 입각한 ‘신독’의 길이었다. 그가 제3공화국 이래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선을 포함한 서울시장을 2번 역임하고 총리직을 중임하는 등 40여 년에 달하는 고위 관직 생활 중 단 한 번도 금전과 여인 등으로 인한 스캔들이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독’을 삶의 기본철학으로 삼은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조 중기의 명신인 김집(金集)을 들 수 있다. 그의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김집은 조선조 예학(禮學)의 조종인 김장생(金長生)의 아들로 효종 때 이조판서가 되어 북벌(北伐)을 계획하다가 김자점(金自點) 등의 방해로 이내 관직을 사임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조선조 예학의 태두가 된 인물이다. 김집과 고 전 총리는 평생 ‘신독’을 기본철학으로 삼아 여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그러나 ‘신독’은 비록 군자의 길이기는 하나 원래 청관(淸官)에게 어울리는 신도(臣道)의 길이다. 난세에 천하를 놓고 다투는 소위 ‘축록전(逐鹿戰)’은 신도가 아닌 군도(君道)의 길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역대 대선전은 말 그대로 ‘군웅축록(群雄逐鹿)’의 각축전이었다. ‘축록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청탁(淸濁)을 불문하고 재능 있는 자를 과감히 발탁하는 소위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용인술(用人術)이 필요하다. 이는 평생을 ‘신독’의 청관으로 살아 온 고 전 총리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愼獨의 행보… 조조의 리더십과 상반돼
군웅축록’의 난세에 ‘유재시거’의 용인술을 절묘하게 구사한 대표적인 인물로 조조(曹操)를 들 수 있다. 그는 형수를 취하고 뇌물을 받은 소위 ‘도수수금(盜嫂收金)’의 인물일지라도 재능만 있다면 과감히 발탁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쟁천하(爭天下)의 요체가 오직 재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하는 소위 ‘유재시거’에 있다는 사실을 통찰한 데 따른 것이었다. ‘유재시거’는 《목민심서》의 ‘지자이렴’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신독’의 행보를 취해 온 고 전 총리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원래 ‘도수수금’은 《사기》‘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오는 구절이다. 일찍이 유방(劉邦)은 항우(項羽)를 치러 갔다가 대패하여 정신 없이 도주하던 중 흩어진 군사를 간신히 수습해 형양(滎陽) 땅에서 진평(陳平)을 아장(亞將)으로 삼아 한왕(韓王) 한신(韓信) 밑에 예속시킨 바 있다. 이때 휘하 장수인 주발(周勃)과 관영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진평을 이같이 헐뜯고 나섰다.


진평은 집에 있을 때는 형수와 사통했고, 위(魏)나라를 섬겼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망하여 초나라에 귀순했고, 초나라에 귀순하여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도망하여 우리 한나라에 귀순한 자입니다. 그는 여러 장수들로부터 금품을 받으면서 금품을 많이 준 자는 후대하고, 금품을 적게 준 자는 박대했습니다. 진평은 반복 무상한 역신(逆臣)일 뿐입니다.”


유방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곧 진평을 천거한 위무지(魏無知)를 불러 질책했다. 그러자 위무지가 유방에게 이같이 대꾸했다.


신이 응답한 것은 그의 능력이고, 대왕이 물은 것은 그의 행동입니다. 지금 만일 그에게 미생(尾生) 및 효기(孝己)와 같은 행실이 있다 할지라도 승부를 다투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바야흐로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대항하고 있는 까닭에 신은 기모지사(奇謀之士: 기이한 계책을 내는 뛰어난 책사)를 천거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계책이 나라에 이로운지만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도수수금’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기의 ‘미생’은 홍수로 인해 물이 불어나는데도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남의 장소인 다리 밑에서 한없이 기다리다 물에 빠져 죽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효기’는 뛰어난 효성으로 이름이 높았던 은(殷)나라의 중흥군주인 고종(高宗)의 아들이다. 위무지는 잘못된 천거를 나무라는 유방에게 아무리 효성과 신의가 뛰어난 인물일지라도 난세를 타개한 지략(智略)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일갈(一喝)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방은 위무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도 못내 안심이 안 되어 당사자인 진평을 불러 반복무상한 행보를 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진평이 이같이 응답했다.


당초 신은 위왕(魏王)을 섬겼으나 위왕은 신의 말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왕을 떠나 항왕(項王:항우)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항왕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면서 오직 항씨 일가와 처남들만을 총신(寵信)했습니다. 설령 뛰어난 책사가 있다 한들 중용될 여지가 없기에 저는 초나라를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대왕이 사람을 잘 가려 쓴다는 얘기를 듣고 대왕에게 귀의케 된 것입니다. 신은 빈손으로 온 까닭에 여러 장군들이 보내준 황금을 받지 않고서는 쓸 돈이 없었습니다. 만일 신의 계책 중 쓸 만한 것이 있으면 저를 채용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황금이 아직 그대로 있으니 잘 봉하여 관청으로 보내고 저를 사직시키십시오.”


이에 유방이 진평에게 사과하고 후한 상을 내린 뒤 호군중위(護軍中尉)에 임명해 제장들을 지휘케 했다. 그러자 제장들이 더 이상 진평을 헐뜯지 못했다. 유방이 항우를 제압하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데에는‘유재시거’의 대원칙에 입각해 진평을 과감히 기용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삼국시대의 조조가 동탁(董卓)과 이각, 장수(張繡) 등에게 차례로 몸을 의탁하며 반복무상한 행보를 보인 책사 가후를 자신의 군사(軍師)로 과감히 발탁한 것은 유방의 ‘유재시거’ 행보를 흉내낸 것이다. 조조의 이런 선택은 전적으로 옳았다. 북방의 맹주 자리를 놓고 원소(袁紹)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결전을 벌인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가후의 계책이 결정적인 승인(勝因)으로 작용한 사실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공직생활 내내 ‘신독’의 행보를 보여 온 고 전 총리에게는 ‘유재시거’와 같은 과감한 인사를 기대키가 쉽지 않다. 고 전 총리가 오랫동안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참모들을 적극 활용해 이를 하나의 대세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고 전 총리는 비록 관원의 최고직위를 뜻하는 극품(極品)의 자리를 2번이나 역임하는 등 화려한 관력을 보유키는 했으나 극상(極上)의 자리인 군위(君位)와는 인연이 멀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본래 군위는 지존무비(至尊無比)인 까닭에 품계가 없다. 아무리 극품의 자리에 여러 차례 오를지라도 군위에 비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선이 있을 때마다 극품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들이 대권에 강한 의욕을 내비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동양 3국의 역대 인물 중 고 전 총리와 유사한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을 고르라면 단연 5대10국(五代十國)의 시대에 활약한 풍도(馮道)를 들 수 있다. 풍도는 특이하게도 불과 채 10년도 안 되는 왕조가 명멸하는 와중에 재상을 연거푸 역임했다. 이는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제3공화국에서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고위직을 역임한 고 전 총리의 관력 역시 전무후무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풍도는 당(唐)제국이 무너진 후 60여 년 동안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 지속된 소위 5대10국(五代十國)의 시기에 활약한 인물이다. 당시 황하 중하류 북쪽에서는 후량(後梁)과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5왕조가 명멸했다. 장강 중하류 남쪽에서는 오(吳)와 남당(南唐), 오월(吳越), 초(楚), 민(??), 남한(南漢), 전촉(前蜀), 후촉(後蜀), 형남(荊南), 북한(北漢) 등 10국이 난립했다. 남쪽은 여러 나라가 난립해 병존한 데 반해 북쪽에서는 5왕조가 차례로 명멸한 점에 차이가 있다. 이들 왕조를 흔히 ‘5대10국’으로 통칭한다.


5대10국 시대에 활약한 풍도와 닮아
당시 5대10국 중 가장 짧은 왕조는 후한으로 만 4년도 지속되지 못했다. 이는 중국사는 물론 전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짧은 왕조에 속한다. 후량은 만 7년, 후주는 만 9년, 후진은 만 10년밖에 존재하지 못했다. 가장 긴 후당의 경우도 겨우 만 14년에 불과했다.


10년 안팎의 5왕조가 난립한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로 5년마다 되풀이 된 6공화국 역대 정권의 파행(跛行)과 사뭇 닮아 있다. 그러나 5왕조는 6공화국보다 오히려 나은 면이 있었다. 5왕조는 최고 권력자의 교체로 끝난 데 반해 6공화국은 하부 인사들까지 일거에 교체되는 격변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5왕조가 왕조교체로 명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면 평온을 유지한 데에는 풍도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고 전 총리가 전대미문의 ‘탄핵정국’ 속에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끈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풍도는 5왕조에서 8성(姓)의 11명에 달하는 천자를 잇달아 섬기면서 고위 관리로 30년, 재상으로만 20여 년을 지냈다. 이는 고 전 총리가 총리직을 포함한 고위관원으로 40여 년을 살아온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풍도가 여러 왕조에 걸쳐 오래도록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청렴한 자세와 뛰어난 자질 때문이었다. 만 4년짜리 왕조가 명멸하는 미증유의 혼란 속에서 그나마 백성들이 큰 어려움 없이 난세를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풍도와 같은 현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명대 말기의 이탁오(李卓吾)는 ≪장서(藏書)≫의 마지막 장에서 풍도를 이같이 평한 바 있다.


맹자는 사직이 소중하고 군주는 가볍다고 말한 바 있다. 풍도는 이 말을 참으로 잘 이해한 사람이다. 백성들이 창끝과 살촉을 맞는 고통에서 벗어난 것은 바로 풍도가 백성들을 편안하게 부양하는 데 힘쓴 결과이다.”


풍도는 자신이 다섯 왕조를 두루 섬겼다는 지적을 받을지언정 차마 무고한 백성이 날마다 도탄에 빠져 있게 할 수는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탁오가 풍도를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풍도가 백성의 존망을 자신의 영욕(榮辱)보다 위에 둔 데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풍도는 평생을 두고 정당치 못한 재화는 집안에 쌓아 두지 않았다. 또한 질박하고 검소한 옷과 음식에 만족했다. 특히 그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했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출신 가문을 따지지 않고 재능 있는 사람을 누구보다 아꼈다. 고 전 총리 역시 청렴한 삶을 살아오면서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풍도는 훗날 자서전인 《장락로자서(長樂老自序)》에서 자신은 집안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키 위해 헌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러 면에서 풍도와 유사한 삶을 살아온 고 전 총리가 훗날 자서전을 쓰면 《장락로자서》와 유사한 내용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한 번도 국민들의 박수 속에 퇴임하는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했다. 특히 5년 단임제를 채택한 이후 정권교체의 시기가 빨라져 마치 5대10국 당시에 단임 왕조가 명멸하는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풍도를 닮은 고 전 총리가 당선될 경우 나라를 보다 안정되면서도 중도 통합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공산이 컸다.


그러나 풍도가 비록 지존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지라도 5대10국의 난세에 찬연한 빛을 발했듯이 고 전 총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고 전 총리가 앞으로도 계속 국가원로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살아 갈 것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 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힐튼리조트, 포터이론으로 분석해보니

Topic |국내 진출한 힐튼 글로벌리조트 돌아보니

[이코노믹리뷰 2007-02-15 23:00] (힐튼 리조트의 초청으로 지난주 남해에 위치한 이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서울에서 여수공항까지 딱 45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이곳에서 다시 한시간 정도를 달리니 힐튼 리조트의 정경이 나타났는데요. 첫인상은 겨울철이고, 나무가 모두 헐벗어서인지 좀 을씨년스럽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월요일이어서 내방객도 많지 않구요. 하지만 메인 식당과 숙소, 그리고 글프장 등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싹 바뀌고 말았죠. 뭐라고 할까요. 리조트 전체가 바다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잠을 청하든, 식사를 하든, 아니면 골프를 치든 바다가 항상 주위에 있었죠.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기사를 쓸때는 한 가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칫하다간 힐튼쪽의 입장만을 대변해줄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포터의 다이아몬드 이론을 적용해 이 리조트의 경쟁력을 분석해보았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과유불급인가요? 마이클포터가 한국땅에서 너무 고생을 하나요. 아 참 그리고, 기사에 등장하는 재즈가수 린 힐튼은 힐튼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리조트의 메인 식당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


리조트와 마이클 포터 만나니
남해가 몰디브로 바뀌었네

‘투명한 쪽빛 바다.’ 탄성이 절로 난다. 상큼한 공기, 스쳐 가는 바람에 수면위에서 수천 수만개의 빛의 조각들이 명멸을 한다. 바다를 따라 흐르듯 이어져 있는 도로변의 벚나무, 올망졸망 늘어서 있는 작은 민가들. 지난 5일 차창 밖으로 바라본 경상남도 남해의 첫인상이다.

봄이 성큼 다가온 주변의 풍광은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자랑거리는 비단 볼거리가 다는 아니다. 이 곳에서 잡히는 횟감은 육질이 좋기로도 유명하단다. 이날 가이드 역할을 자청한 택시 기사의 자랑이 대단하다. “씹히는 맛이 그만입니더. 타지 사람들은 한번 혀끝에 배인 그 맛을 영 잊지 못합니더.”

현대하이스코 공장, 광양 등을 지나 남해대교를 건너자, 이순신 장군의 전몰 유적지를 알리는 팻말이 시선을 끈다. 나지막한 산, 바다, 그리고 역사적인 유적도 이곳에는 풍부하다.

하지만 낮에는 화려하던 남해는 밤만 되면 또 다른 ‘속살’을 드러낸다. 밤 10시, 여느 도시 같으면 불야성을 이뤘을 시간이지만 시내 전체는 벌써 어둠 속에 깊숙이 잠겨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거제도와 생활수준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조선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거제도는 요즘 분위기가 썩 좋고, 땅값도 많이 올랐습니다. 남해는…”기자를 남해 시내로 안내하던 택시 운전기사는 말끝을 흐린다.

“김두관 군수, 참 열심히 일했는데, 타지에 가서 고생만 하고 있지 뭐…” 이 섬 출신의 인사를 맥없이 화제에 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 자원 말고는 딱히 자랑할 거리가 없는 것이 이곳의 딜레마다.

낮과 밤은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군민수도 불과 5만여 명. 남해군이 오죽하면 군민 1% 늘리기 운동에 나섰을까.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훌쩍 떠나버린 남해 군민들의 평균 연령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지역 출신 군수들이 나서보지만 역부족이다. 그런데 작년말부터 이 소도시에 조그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다시 늘어나고 있다. 또 이들을 겨냥한 생맥주집, 치킨집도 점점 늘어 활력을 더하고 있다.

남해에는 요즘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번영은 유산이 아닌 창조하는 것”
“번영이란 창조되는 것이지 유산으로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Prosperity is created, not inherited)”다이아몬드 이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경영 전략의 대가 마이클 포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의 말이다.

작년 10월 남해에 문을 연 한 글로벌 리조트는 이 지역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있다. 불과 석 달 가량이 지났지만 리조트 분양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추가 분양을 위해 리조트 세 동을 추가로 건설 중이다. 젊은이들도 늘었다.

주인공은 힐튼 남해 골프&리조트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던 남해를 바꾸어 놓고 있는 이 글로벌 기업의 저력은 무엇일까.

마이클 포터의 다이아몬드 이론은 이 지역의 경쟁력을 분석하기 위한 유용한 분석틀이다. 다이아몬드의 첫 번째 꼭지점이 바로 생산 조건인데, 무엇보다 남해는 이 점에서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날씨가 따뜻하고,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바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떠 있는 섬 주위로 순식간에 안개가 피고 사라지며 이국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회사 측이 조성한 나무 목책 산책로도 눈에 띈다. 골프장 주변의 야산 주변을 감아 돌며 관광객들을 전망이 탁 트인 장소로 이끈다. 겨울철에 골프를 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장점. 제주도와 달리, 겨울철에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눈이 내리지 않는다.

갯벌을 막아 만든 매립지 위에 리조트를 세워서일까. 바다에서는 섬을 배경으로 안개가 순식간에 피어났다 사라지며, 무수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골프를 칠 때도, 식사를 할 때도, 리조트에서 잠을 청할 때도 바다는 늘 함께 있다.

포터가 말한 생산조건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는 탁트인 풍광, 다시 말해 ‘뷰(View)’이다. 생산 조건의 또 다른 구성 요소는 바로‘종업원들의 경쟁력’이다. 무엇보다 검은색 두건 형태의 모자에, 같은 색의 깔끔한 캐주얼 복장으로 통일했다.

이들에게는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사기 진작을 위해 정기적으로 총지배인이 시내에서 볼링 대회를 개최한다. 평균연령이 30대 초반인데, 이들이 바로 요즘 남해 시내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힐튼 측은 리조트 오픈과 더불어 160명 가량을 고용했으며, 앞으로도 채용 규모를 꾸준히 늘려나갈 계획이다.

올해 6월께면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오픈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더 많은 젊은이들을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글로벌 기업은 이들을 서비스정신이 투철한 인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리조트의 ‘수요 조건(Demand Condition)’은 어떤 편일까. 마이클 포터가 제시한 다이아몬드의 두 번째 꼭지점이다.

시장의 크기도 크기지만, 소비의 질이 중요하다는 게 포터의 지적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 비해 시장 규모가 열세이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기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진출했다 토종 기업들에 밀려 턱턱 나가떨어지는 곳이 바로 한국 시장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힐튼도 국내에서는 유독 신라호텔 등 토종브랜드들에 맥을 못추고 있다. 리조트 내 목욕탕에도 버튼하나만으로 데스크를 부를 수 있는 호출 장치를 설치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다이아몬드의 세 번째 꼭지점은 바로‘관련 및 지원분야 (Related & Suppor-ting Industry)’다. 스웨덴의 울루 클러스터(cluster)나, 미국의 실리콘 밸리 등 관련 산업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정보와 지식을 나눌 수 있는 단지를 뜻한다.

여기에는 물류나 정부의 지원 등도 포함된다. 생산조건이나, 수요조건과는 달리 관련 및 지원분야는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여수까지는 불과 45분 정도가 걸리지만, 여수에서 이곳까지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또 리조트로 통하는 도로는 폭이 비좁고, 중앙선도 없다. 이에따라 리조트측은 올 여름에는 여수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도로를 이용하지 않고도 바다를 경유해 리조트에 올 수 있는 쾌속선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남해군이 ‘보물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호재이다. 생태공원, 원예 예술촌 등 지역 특성을 활용한 관광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힐튼 측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배경이다. 남해군은 힐튼 리조트로 통하는 좁은 2차선 도로의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마지막 항목인 이 기업의 전략적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전략과 경쟁이 사업성패 좌우
‘린 힐튼(Lynn Hilton)’을 보자. 넉넉한 체구의 흑인 여자 가수다. 이 리조트에서 활동 중인 그녀는 흑인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고음의 보컬을 자랑한다. 닐스 총지배인은 뉴욕 맨해튼에서 활동하던 그녀를 영입했다.

그녀를 불러온 것은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다. 본관 건물도, 마치 독일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떠올리게 한다. 다이아몬드의 네 번째 꼭지점은 전략과 경쟁(Strategy & Rivalry)이다.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는 게 포터의 지적이다.

생산조건, 수요조건, 관련 분야 지원분야 등을 파악하고, 약점을 보완하며, 강점은 강화하는 것이 바로 전략가의 몫이다. 닐스 총지배인은, 힐튼 인터내셔널이 무려 2년 간을 관광지로서 남해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를 면밀히 분석하며 진출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고 전한다.

J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전라남도가 갯벌에 조성하는 토지의 분양가 수준을 놓고 농림부와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지리한 대치를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모두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고개를 가로젓던 아프리카의 몰디브를 세계적인 명소로 키워낸 역량은 바로 이 회사 성공의 자양분이기도 하다. 힐튼이 떠오르는 아시아 시장의 공략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싱가포르에 있던 아시아 태평양 지역본부의 기능 일부를 별도로 떼어냈다.

또 이 기능을 담당할 지역 본부를 일본에 세우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공략의 수위를 높여나가고 있다. 용의주도한 접근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쟁요소는 어떨까. 제주도에 있는 리조트는 물론 일본, 중국의 글로벌 리조트들도 모두 잠재적 경쟁상대다.

해외 리조트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남해리조트가 이들 경쟁사들에 비해 비교우위가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마이클 포터는 “경쟁이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노무현 대통령 리더십 분석



①노무현 대통령의 통치리더십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공언했듯이 소위 ‘역발상’의 대가이다. 신년 벽두부터 아무도 예상치 못한 4년 연임제의 개헌을 문득 제의하고 나선 것이 그 실례이다. 노 대통령은 전에 문득 한나라당에 대연정(大聯政)을 제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바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제의는 노 대통령이 소위 ‘역발상’을 통해 최고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른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발상’은 어디까지나 득천하(得天下)의 방략에 불과할 뿐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역발상으로 치천하(治天下)에 성공한 제왕은 존재한 적이 없다. 일찍이 전한(前漢)제국 초기에 육가(陸賈)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에게 이같이 헌책(獻策)한 바 있다.

“마상(馬上)에서는 천하를 얻을 수는 있으나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필히 마하(馬下)로 내려와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자칫 후대의 사가에 의해 득천하에 필요한 마상(馬上)의 전술(戰術)과 치천하에 필요한 마하(馬下)의 치술(治術)을 구분치 못한 대통령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상의 전술은 군웅(群雄)이 천하의 우이(牛耳: 주도권)를 놓고 다툴 때 쓰는 것으로 현대의 선거전에 비유할 수 있다. 원래 출마(出馬)한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기습전(奇襲戰)과 복병전(伏兵戰), 공성전(空城戰) 등 다양한 기병술(奇兵術)이 필요하다. 특히 세가 불리할 때 이런 기병술이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역발상’이 큰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병술을 구사한 인물로 삼국시대의 조조(曹操)를 들 수 있다. 조조는 짐짓 약병(弱兵 : 짐짓 미약한 모습을 보임)으로 적장의 교만을 부추겨 방심케 만들거나, 요병(耀兵 : 무력시위)으로 적을 지레 겁먹게 만들거나, 의병(疑兵 : 허수아비 등을 이용한 거짓 용병)으로 적이 착각토록 만들거나, 기병(奇兵 : 예상외의 용병)으로 적이 예상치 못한 시점을 택해 출기불의(出其不意 : 뜻밖에 나섬)로 적의 허점을 찌르거나 하는 등의 기막힌 기병술을 구사했다. 이는 상식을 뛰어 넘는 ‘역발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 등의 기막힌 역발상을 통해 단일후보가 된 뒤 충청도민에게는 ‘행정수도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수도권 주민에게는 ‘불편하고 시끄러운 것의 이전’을 내세워 표를 긁어모았다. 그는 역발상의 기병술로 득천하에 성공한 셈이다.

이회창 후보, 정병술(正兵術)만 고집하다 낙마
당시 대병(大兵)의 위용을 과신한 이회창 후보는 승패의 분수령이 충청 회전(會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제휴마저 뿌리친 채 정병술(正兵術)만을 고집하다가 참패를 자초했다. 그는 비록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영남을 근거로 대병을 모아 권토중래(捲土重來)의 호기를 맞이했으나 결국 노 후보의 기습공격을 받고 낙마(落馬)하고 만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지라도 ‘역발상’의 당사자인 자신의 주착(籌策)에 스스로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에 입성 한 노 대통령은 응당 역발상의 유혹을 단호히 끊고 만민을 위해 고루 덕을 베푸는 황도무친(皇道無親)의 대정(大政)을 펼쳐야만 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치천하에 임하면서도 시종 역발상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최고 통치권자의 ‘역발상’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최고 통치권자가 국가대사를 결정할 때 늘 좌우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은 뒤 신중한 사려를 거쳐 결단을 내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미 천하를 거머쥔 뒤에는 대규모 반란을 진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말 위에서 호령할 일이 없는 법이다. 쟁천하(爭天下)의 회전(會戰)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말 위에서 내려와 천하에 임해야만 한다. 더 이상 싸울 대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말 위에서 진두지휘할 경우 공연히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노 대통령의 출신배경과 입신과정은 여러 면에서 한고조 유방(劉邦)과 닮아 있다. 유방 역시 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자랑하는 천하의 웅걸(雄傑) 항우(項羽)를 패퇴시키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출신배경·입신과정 한고조 유방과 닮아
진시황의 급서로 군웅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당시 천하인은 모두 항우의 천하평정을 의심치 않았다. 당시 항우는 누대에 걸쳐 장군을 배출한 명족 출신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각종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당대 최고의 무용(武勇)을 자랑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국 싸움은 일개 농부 출신인 유방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항우가 자신의 출신배경과 무용을 과신한 나머지 소위 대세론에 입각해 姑息的(고식적)인 방법으로 천하를 차지하려고 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이를 두고 사마천(司馬遷)은 《사기》‘항우본기’에서 항우의 패망원인을 이같이 분석한 바 있다.

‘항우는 패왕(覇王)의 업을 이룬다는 명목을 내세워 오직 힘만으로 천하를 정복하려고 했다.’

항우는 여러 면에서 이회창 후보와 닮았다. 당시 이 후보는 대선예비전으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의 대승에 도취한 나머지 무명의 노 후보가 적장으로 발탁된 것을 보고 고식적인 대세몰이에 안주한 나머지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이는 삼국시대 당시 천하의 효장(驍將) 관우(關羽)가 오나라의 어린 장수 육손(陸遜)을 업신여기다가 패퇴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후보는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병가의 기본원칙을 무시함으로써 두 번에 걸쳐 통한의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유방은 젊은 시절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방은 현재의 역장(驛長)에 해당하는 정장(亭長)으로 있다가 법을 어겨 처형을 당하게 되자 이내 비적(匪賊)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진시황의 죽음을 계기로 천하가 혼란스럽게 되자 이를 틈타 한 지역의 반군(叛軍)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젊은 시절 상고를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다가 토방 속의 독공(獨功)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세인의 이목을 끈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원래 평민 출신인 유방은 귀족 출신인 항우와 달리 민심을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그가 진제국의 도성인 함양(咸陽)을 점거했을 때 장로들을 불러 놓고 법삼장(法三章)을 약속한 사실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단 3개의 조항으로 이뤄진 ‘법삼장’은 진제국의 혹법(酷法) 하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신민들에게는 해방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민심 잡는 법 숙지한 ‘5공 청문회’ 스타
이는 노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여의도로 입성한 뒤 마침 세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모은 소위 ‘5공 청문회’에서 거침없는 논변과 격정적인 몸짓으로 청문회 스타가 되어 열렬한 지지층을 확보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민심을 잡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막강한 항우를 패퇴시키고 천하를 거머쥔 유방은 보위에 오른 뒤 자신과 전혀 다른 출신배경을 가진 유자(儒者)들을 크게 경멸했다. 《사기》‘고조본기’에 따르면 유방은 건국공신인 역이기( 食其)를 공개적인 석상에서 ‘우유(愚儒)’로 비난하는가 하면 유자들이 쓰는 유관(儒冠)에 방뇨키도 했다. 이는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잘 배운 사람’ 운운하며 서울의 강남 지역민과 조선일보, 삼성그룹, 서울대 출신 등을 특권층으로 몰아가며 적대감을 드러낸 것과 닮아 있다.

유방과 노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이런 모습은 별다른 기반도 없이 자력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사람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들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력으로 입신양명한 자들의 공업(功業)이 굉대(宏大)한데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이들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려의 유신(儒臣)들이 비록 충절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기슭에 있는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간 것도 한미한 가문출신인 이성계의 전력(前歷)을 천시한 사실과 무관치 않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전대의 명족 출신이 한미한 출신의 개업과 개국을 있는 그대로 평가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세인들이 자력으로 입신양명한 사람을 추앙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역대 모든 왕조의 개국조가 소위 하나 같이 위보(僞譜)를 만들어 조상을 미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보를 만들어 조상을 미화하는 전래의 방안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 스스로 자신이 이룬 굉대한 공업에 대한 만족감으로 한미한 출신 및 전력으로 인한 허전함을 메우거나, 자신의 전력에 대한 세인들의 낮은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그리 쉽지 않은 데 있다. 당사자의 자부심과 세인의 인색한 평가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갭이 존재키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예상치 못한 화난(禍難)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대표적인 예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주원장 역시 유방과 마찬가지로 탁발승과 비적 등의 행각을 벌이다가 ‘역발상’을 통해 원대 말기의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일약 몸을 일으켜 천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원래 그는 천하에 보기 드문 추남(醜男)이었다. 그러나 영정(影幀)에 그려진 그의 모습은 이와 정반대로 현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위보(僞譜)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성이 주씨인 점에 착안해 사대부들이 공자 다음으로 존숭한 남송대의 주희(朱熹)를 자신의 조상으로 꾸미려고 시도키도 했다.

자격지심 때문에 폭군이 된 명태조 주원장
주원장은 보위에 오른 뒤 자신의 한미한 출신배경과 불미한 전력으로 인해 늘 자신의 출신 및 전력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병적인 반응을 보였다. 명나라 개국 초에 빚어진 수많은 筆禍事件(필화사건)은 모두 이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력을 연상시키는 모든 글을 보면 곧 자신을 비웃는 것으로 여겨 당사자를 가차없이 혹형으로 다스렸다. 그가 후대에 폭군으로 비난받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원장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한미한 출신배경과 불미한 전력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인해 세인들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전력을 연상시키는 글만 보면 병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는 유방에게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점이다.

유방은 주원장과 달리 재위 도중에 육가(陸賈)를 비롯한 유자들의 간언을 전격 수용했다. 당시 육가는 유방을 계도하기 위해 12편에 달하는 책을 지어 시간을 두고 한 편씩 유방에게 바치며 군왕의 길을 가르쳤다. 유방은 열린 마음으로 육가의 가르침을 흔쾌히 받아들여 이내 군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는 주원장과 달리 보위에 오른 뒤 이내 육가 등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역발상’의 유혹에서 벗어난 셈이다.

이는 스스로를 구시대의 평민이 아니라 새 시대에 부응하는 명족의 일원으로 간주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유방의 일거수일투족은 군신(群臣)들의 모범이 되었다. 황제는 일상적인 업무에 간섭하지 않고 대신 이를 직접 처리하는 대신들을 선임하고 감독한다는 군도(君道)의 대원칙이 성립된 것은 바로 유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원칙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수천 년 동안 그대로 이어졌다.

유방과 주원장의 엇갈린 행보는 두 사람의 이질적인 성정과 무관치 않았다. 유방은 음습(陰濕)한 습기를 띠고 있는 주원장과 달리 밝은 면의 양성(陽性)의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이룬 공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유방은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도량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주원장이 희대의 폭군이라는 오명을 얻은 데 반해 유방이 후대인의 칭송을 받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 대통령 역시 성정 면에서 주원장보다는 유방에 가깝다.

전형적 소양체질… 책략 부족하나 소신 뚜렷
일찍이 구한말의 위대한 사상가인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는 사람의 체질을 사상론(四象論)에 입각해 4개의 유형으로 나눈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유방과 노 대통령은 전형적인 소양(少陽)체질에 속한다. 이에 반해 주원장은 장막 뒤에서 계책을 짜는 데 능한 책사 유형의 소음(少陰)체질에 속한다.

소양인은 소음체질에 비해 책략이 부족하기는 하나 소신이 뚜렷하고 일 처리에 뛰어난 재주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현우(賢愚)를 아주 잘 파악한다. 노 대통령의 확신에 찬 조리 있는 언변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양인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발 벗고 나서기 때문에 칭찬을 듣기도 하지만 원한을 살 여지가 많다. 자신의 재주에 대한 신념이 지나치고 사사로움에 치우친 나머지 자칫 경박한 사람으로 몰릴 위험이 크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격정을 여과 없이 토로하면서 코드 인사를 계속하는 것도 이런 체질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소양인은 특히 자기가 현재 지니고 있는 부와 명예 등을 가볍게 보는 까닭에 이를 노리는 밑의 사람들로부터 늘 모함을 당할 소지가 크다. 소양인이 자주 폭발적인 슬픔에 잠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소양인이 남의 일에 희생적이고 대의명분 앞에서 비분강개하는 전형적인 무인(武人)의 기질인 데 따른 것이다. 눈물을 잘 흘리는 노 대통령이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고 운운하며 걸핏하면 지존의 자리인 대통령직을 내걸고 승부수를 던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성정을 지닌 사람이 가장 주의할 대목은 신중한 대처를 요하는 외치분야이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바람에 대미관계와 북핵문제 등에서 우리의 입지가 협소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에 터져 나온 ‘평화의 바다’ 파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서 전국 각 대학의 교수들이 지난 한 해의 의미를 한마디로 압축한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를 선택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노 대통령에 대해 충정 어린 고언에 해당한다.

원래 ‘밀운불우’는 《주역》의 《소축괘》(小畜卦)와 《소과괘》(小過卦)의 괘효사(卦爻辭)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비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구름이 꽉 차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를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을 말한다. 현재까지 《주역》에 관한 최고의 주석가로 알려진 삼국시대 위나라의 王弼(왕필)은 이를 두고 이같이 풀이해 놓았다.

“《소과괘》에서는 음기가 위에서 성한 기세를 하고 있음에도 전혀 베풀지 못하고 있어 ‘밀운불우’라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소축괘》에서는 오히려 양기가 강한 까닭에 음기가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해 ‘밀운불우’라고 한 것이다.”

《소과괘》의 ‘밀운불우’는 음기의 인물이 군주의 자리에 앉아 아래의 신민(臣民)들과 제대로 호응하지 못하는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주원장의 등극이 이에 해당한다. 《소축괘》의 ‘밀운불우’는 덕이 매우 작아 대덕(大德)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소덕(小德)에 그치고 있는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현재 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최하의 지지도를 기록 중인 것은 시종 민심과 괴리된 코드인사와 오기정치를 계속한 데 따른 후과로 보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제라도 특단의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헌 등으로 불리한 국면을 반전시키려는 역발상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다행히 노 대통령은 유방과 같이 밝은 면의 성정을 지니고 있다. 《소과괘》의 ‘밀운불우’처럼 주원장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소축괘》의 ‘밀운불우’처럼 유방의 길을 따를 것인지는 전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노 대통령이 결심하기에 따라서는 잔여 임기 1년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신동준 고전 연구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정치부 기자로 10년간 활동했다. 열국지와 춘추좌전 등을 편역했다.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운영중이며,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