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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로컬(Local)/NEXT 로컬 엑스퍼트'에 해당되는 글 90

  1. 2009.11.17 “동고동락하던 日동문들 선거혁명 이끌어”
  2. 2009.09.06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의 '귀거래사'
  3. 2009.09.04 봉준호 감독이 '해운대'를 만들었다면
  4. 2009.09.03 죽은 알튀세르가 아모레퍼시픽을 바꿀 수 있나
  5. 2009.09.02 LA흑인 폭동서 약소민족 슬픔 본 강창희 어바인 시장의 귀거래사
  6. 2009.09.01 홍대 최연소교수가 말하는 '디자인 경영'
  7. 2009.08.26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이 회고하는 한국사의 거목 '김대중'
  8. 2009.08.22 귀곡자 읽는 금융전문가, '시장'을 말하다
  9. 2009.08.18 통섭의 원리 전쟁사에 다 나와있다
  10. 2009.08.17 GE코리아사장, 공룡기업의 변화를 말하다
  11. 2009.08.15 미네르바 박대성,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를 말하다
  12. 2009.07.08 고 김용내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의 '중도론' (2)
  13. 2009.07.08 개성공단 살리려면 ㅁㅁㅁ을 포기해야...-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14. 2008.12.22 (로컬엑스퍼트)역학자, MB와 대운하를 말하다
  15. 2008.09.01 까르푸는 철수 직전 왜 신규점포를 인수했을까?
  16. 2008.08.28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17. 2007.09.13 소설가 김홍신 '한국식 경영을 말하다'
  18. 2007.07.09 삼성출신 영입인사들은 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나
  19. 2007.06.02 이혁병 ADT캡스 사장 '경영'을 논하다
  20. 2007.05.25 新성장동력 한국에 있다-황수 GE코리아 사장
  21. 2007.05.20 재벌 회장님들, 소학부터 다시 읽어야
  22. 2007.03.16 풍수학자가 본 대선후보들
  23. 2007.02.23 이채욱 GE회장의 'CEO경영학'
  24. 2007.02.23 KTX열차에서 'IT세상'을 논하다
  25. 2007.02.22 트렌드 콕 집어내는 5가지 노하우
  26. 2007.02.22 미래학 전문가 4인의 격정토로
  27. 2007.02.21 메가스터디 김기훈 스타강사가 말하는 '나만의 경영학원론'
  28. 2007.02.21 대선후보들, 관중의 용인술을 배워라
  29. 2007.02.21 이성용 베인앤컴퍼니 사장의 임원학
  30. 2007.02.21 이면우, 이공계 현실을 비판하다
 

“동고동락하던 日동문들 선거혁명 이끌어”

하토야마 총리 ‘幕後 해결사’ 윤성준 동아시아 고문

2009년 09월 28일 16시 42분

조슈·사쓰마번의 하급무사들이 천황과 연대해 에도막부를 전복한 일대 사건. 민주당의 8.30 선거 압승은 일본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메이지 유신’에 흔히 비유된다.

자민당은 지난 2005년 우정민영화 이슈로 거둔 '대승'을 고스란히 헌납했고, 이 현대판 막부 정권의 ‘장기집권’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윤성준 하토야먀 총리 사무실 동아시아 고문은 한일 정치무대의 막후 해결사이다. 그는 메이지 유신의 재평가를 주문한다.

이 ‘왕정복고’로 국민 총동원 체제를 구축한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군국주의'를 향해 폭주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윤성준 동북아 고문의 진단은 하토야마호의 첨예한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남북한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공존공영’은 하토야마 ‘우애론(Fraternity)’의 핵심이다.

혈혈단신으로 소련에 건너가 담판을 짓던 할아버지의 피는 6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너머 그 손자(하토야마)에게도 면면히 흐른다.

재일 한국인의 참정권 부여에 전향적이며, 이웃나라들과의 ‘우애’를 강조하는 신정권의 등장은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다.

한 국 정부가 하토야마호의 성공을 도와야 한다고 윤 고문이 강조하는 배경이다. 일본의 명문 ‘히토쓰바시’를 나와 한일 정치 무대의 막후(幕後) 해결사 역할을 해온 윤성준 고문은 일본에서 한반도를 향해 부는 거대한 바람의 실체를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히토쓰바시대학에서 한일학생회의를 창설하고, 초대위원장을 지냈다.




일본 정치권의 권력 교체를 절감하십니까. 민주당 의원들의 방한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잇달아 곧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한일 관계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해 봅니다. 권력 교체를 절감하는 ‘때’라…글쎄요.(웃음)

‘간 나오토’ 부총리가 수장인 국가전략국은 정권 교체 후 가장 각광 받는 조직입니다. 총리 직속의 이 조직은 관료 위주의 행정구조 타파와 예산 낭비 척결을 밀고 나갈 임무를 맡고 있어요. 요즘 국가전략국에 배치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없느냐는 요청을 종종 받습니다.


하토야마 사무실 소속의 동아시아 담당 고문을 맡았어요. 총리가 뭐라고 하시던가요.
무엇을 해줬으면 좋겠느냐고 묻더군요. 동북아 고문을 말씀드렸습니다. 중국 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거든요. 집주소를 물어보았는데, 얼마 후 친서를 보내왔습니다.

평소 일본인들이 잘 쓰지 않는 구체적인 표현도 눈에 띄고…그냥 의례적인 인사는 아니었어요. 편지가 감동적이었습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늘 그런 식입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할아버지가 자민당을 창당한 거물급 정치인인데요.
지난 2005년 11월에 한일수교 40주년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일본 극단인 ‘다카라즈카’가 서울에서 공연을 크게 했습니다.

자민당에서도 의원단이 오고, 민주당에서도 5명이 왔어요. (야당의) 얼굴 격인 ‘하토야마’ 간사장도 왔습니다. 당시 몇몇 의원이 이명박 시장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습니다.


‘다카라즈카’라면 여자 배우들이 ‘남장’을 하고 나와, 뮤지컬을 공연하는 그 극단 말인가요.
‘남자는 도쿄대’로 보내고, ‘여자는 다카라즈카’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는 유명한 극단입니다. 일본 문화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서양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각색해 공연하는데, ‘베르사유의 장미’가 대표적입니다. 이 극단 출신 현역 국회의원들만 10여명에 달할 정도입니다. 총리 부인이 바로 ‘다카라즈카’ 출신이지요.


하토야마 총리의 ‘첫 인상’은 어떤 편이었습니까. 여 배우와 결혼할 정도라면 자유분방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4년 이상 그를 알고 지냈습니다만,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걸 본적이 없습니다.

단 한 차례도 찡그리는 모습을 못 봤어요. 한번도 떠들썩하거나 그런 적이 없습니다. 회담이 성사되면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로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토야마 총리가 다섯 차례 방한했는데, 매번 그림자처럼 동행했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비결이 있나요.
사로잡았다기보다 제가 감동을 받은 거죠. 하토야마는 지난 2006년 동서대 강의 차 한국에 와 이수현 씨 묘소를 참배했어요.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국인 청년 말입니다. 이 씨의 묘비가 부산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간 거죠. 이 대통령을 예방하러 갈 때도 국산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지난 6월 이명박 대통령 예방도 ‘막후 접촉’의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능력을 높이 산 건 아닙니까.
당시 이치무라 의원이 ‘전략적 한일의원 연맹’ 소속 의원들의 대통령 예방을 부탁했어요.

청 와대를 비롯한 요로에 알아보니 하토야마 간사장이 방한한다면 가능하겠다는 답변을 들었죠. 이치무라 의원에게 바로 한국 정부의 의중을 전달했습니다. 처음 부탁이 올 때만 해도 야당의 간사장이어서 예방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대표가 되셨고 정권 교체 가능성도 높아져 갔죠.


야당 당수가 대통령을 독대하는 것은 외교상으로 드문 일이 아닙니까. 우여곡절도 많았다면서요.
일본 총선을 앞둔 5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가 선거 자금 문제로 사퇴했어요. 한국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습니까.

서거 당일 오다치 민주당 의원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오전 8시30분경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는 하토야마 대표의 방한에 문제가 없는지를 타진했습니다.


거물급 정치인들이 한번 회동하기가 그렇게 힘든 거군요. 일본은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일본은 ‘막후 정치’의 나라입니다. 흔히 ‘네마와시’라고 합니다. 물밑에서 다 합의가 되면 (당사자들은) 만나서 박수 치고 헤어지는 겁니다.


모리 전 총리가 김윤환 의원 사망 5주기에 보낸 화환도 ‘윤 고문의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모리 총리가 김윤환 의원에게 화환을 보낸 일은 당시에도 정가의 화제였습니다.

일 본의 대정치가가 사망한 지 5년이 지난 한국의 정치인을 위해서 ‘꽃’을 보냈는데, 국내 언론에 이 미담을 다룬 기사가 실리면서 알려지게 된 거죠. 당시 모리 총리가 이 기사를 보고 매우 좋아했어요. 저는 하토야마 총리를 만나기 전에 자민당 일도
도와드렸거든요.


손뼉도 서로 마주쳐야 박수가 나지 않습니까. 일본 정계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이 치무라 고우치로 국회의원과 히토쓰바시(동경상대) 시절 ‘웅변부’를 만들었어요. 대학 시절 술도 마시고 때로는 싸움도 하면서 사귄 일본인 친구들이 자민당을 비롯한 정치권에 많이 진출했어요. 한국에서 6명이 한달 가량 전국토를 순례한 적도 있습니다.

하토야마의 정책보좌관 출신인 82학번 오다치 참의원도 친한 친구입니다.


젊은 시절 의기투합한 일본인 친구들이 선거혁명에 공헌했어요. 일본 국민들이 왜 하토야마를 선택했다고 봅니까.
일본 근로자 상당수가 파견 근무자입니다. 젊은이들도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들은 꿈이 없습니다. 계층 간 이동도 막혀 있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이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자민당은 국민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민주당이 일본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수권 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민주당 정권이 등장해도 ‘잠정 정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각의 시각이었죠. 수권 정당의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런 표현을 안 합니다. 자민당이 150석 아래면 영원히 야당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120석도 채 되지 않습니다. 민주당만 308석입니다.


‘아베’나 ‘아소타로’ 전 총리도 집권 초 상당한 기대를 모았습니다만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나카소네는 고이즈미 때 이미 (자민당의)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진단했어요. 문예춘추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들은 유효기간이 지난 자민당의 수명을 인공호흡기로 연장한 정권이었어요. 고이즈미는 우정민영화의 깃발을 들고 등장했지요. 자민당을 깨부셔서 개혁하겠다고 했지만 빈부 격차만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


나카소네가 그런 얘기를 했다니 놀라울 뿐이네요. 대처, 레이건과 삼각동맹을 형성한 보수세력의 원조 격이 아닌가요.
정치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여야를 떠나 정말 대단합니다. 나카소네 전 총리도 그렇겠지요.

패전의 아픔을 딛고 일본을 세계 최고 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역이 바로 일본 국민들입니다. 그들이 희망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자민당 정치인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겠군요. 관료들은 늘 개혁의 걸림돌이 아니었습니까.
민주당 각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단히 학구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자민당 정책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조목조목 지적해온 전문가들이 장관이나 차관 및 정무관을 맡았어요. 정치인들이 관료조직을 대거 장악했습니다.

통합·조율 기능도 대폭 강화해 나갈 겁니다. 의사결정은 사무차관 회의에서 이뤄졌는데, 이제는 정치가들의 몫 입니다. 관료들이 써준 내용만 읽는 대독 장관, 부장관은 더 이상 없을 겁니다.


중소기업 법인세를 큰 폭으로 줄이면서도, 고속도로 통행료를 없애고, 보육비를 늘리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포퓰리즘’이 아닌가요.
그 부분은 정말 대단한 오해입니다.

일본의 한 해 예산이 207조엔 정도입니다. 고속도로 무료 통행을 비롯해 민주당 공약을 다 포함시켜도 지출 규모는 연 16조8000억엔 정도면 가능합니다. 당장 시급한 예산부터 집행해 나갈 겁니다.

불요불급한 공공 지출을 줄여나가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 초기지만 거의 전쟁을 치르듯 하고 있어요.


공공 지출을 대폭 줄인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요. 더욱이 지금은 경제위기 국면이 아닙니까.
‘군마현’은 최근까지 수상을 지낸 후쿠다 부자를 비롯해 나카소네 야스히로, 오부치까지 자민당 거물 정치인들이 지배해온 강력한 지역구입니다.

(자민당 정부는) 지금까지 이 지역에 '얀바댐'을 건설하며 엄청난 돈을 투입해 왔습니다. 민주당은 댐 건설을 중지시켰습니다. 거의 70% 정도가 완성됐지만 중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토야마 집권이 한반도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대북한 수교에서 위기 돌파의 동력을 찾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아베 전 총리는 북한 제제를 옹호했습니다.

그게 외교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외교는 가치관이 다른 나라와 대화를 나누는 행위라는 게 하토야마의 기본 철학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 입장을 중시하시는 듯 합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큰 틀 안에서 복합적인 것을 풀어나갈 것으로 봅니다.


‘우애론’의 연장선상인가요.
하토야마는 일본의 시사월간지인 지 9월호에 기고한 ‘나의 정치철학’에서 자신의 지향점을 분명히 했어요.

자유와 평등이 중요한 가치이지만 원리주의에 빠지면 참화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둘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는 이념이 바로 우애라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외교정책도 이런 철학이 밑바탕입니다.


원리주의에 빠지면 참화로 이어진다는 대목이 눈길을 끕니다.
하토야마 총리가 최근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비서가 죽은 사람 명의로 헌금을 한 게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만, 세법 위반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3시간 만에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다는 점입니다. 하토야마는 소통을 늘 중시하는 정치인입니다.


오자와가 북한을 곧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듭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하게 될까요.
한국민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인들은 납북자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봅니다. 피부에 와닿기로는 핵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 한이 송환한)일본인 납북자의 유골이 DNA 감식결과 가짜로 밝혀졌을 때 그 박탈감이 얼마나 컸는지 잘 모를 겁니다. 오자와의 평양 방문도 여러 시나리오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내밀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는 상황이거든요. 결국 미국, 한국과의 공조속에서 북일 대화가 진행될 것으로 봅니다.



이 명박 정부는 하토야마호의 본질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국 정부가 가급적 독도나 신사참배 문제를 이슈화하지 않기 바랍니다. 일본 정치권에는 안보파, 개헌파 등 강경파들이 꽤 있습니다. 자칫 이들의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북일 수교 이후 일 건설업체들이 대거 평양에 진출해 시장 선점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요.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미일 양측이 대북관계 정상화의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소외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일본은 ‘네마와시’를 중시합니다. 그게 일본 정치입니다. 일본이 한국 정부를 따돌리고, 북한과 수교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늘 우애의 정신을 역설해 왔습니다. 오자와 이치로가 150~160석에 달하는 그룹이 있어도 당분간 하토야마 총리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일본에서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한반도를 향해 불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독도나 신사참배 문제 등 민감한 문제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본 정치권에는 안보파, 개헌파 등 강경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계 개편에 성공하면 자칫 일본이 국가주의로 다시 치달을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하토야마호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해요.

좌파 정권으로 규정한 것부터 그렇습니다. 민주당 정권을 길게 봐야 합니다. 물론 자민당도 지켜봐야 합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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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관리는 결국 리더십 문제…직원 마음 사야 건전성도 좋아져”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에게 듣는 금융 CEO 리더십

2009년 04월 13일 18시 27분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는 것을‘탁’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
온전한 병아리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영자가 독주해서는 결코 ‘줄탁동시’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조언을 경청해야 합니다.



이화언(65) 전 대구은행장은 ‘아름다운 퇴장’의 주인공이다. 박수 갈채를 받을 때 무대에서 내려왔다. 올해 초 은행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의 ‘용퇴’ 결정은 금융가에 잔잔한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는 늘 이슈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4년 전 대구은행장에 부임할 당시에도 ‘지속가능경영’을 새로운 경영 화두로 제시하며 자산 경쟁에 ‘올인’하던 이 분야 게임의 법칙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대구은행은 대한민국 금융산업을 선도하는 이른바 ‘녹색경영’의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9일 대구시 대명동 센트로 펠리스에 있는 개인사무실에서 이 전 행장을 만나 그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그는 한시간 남짓한 인터뷰 끝자락에 기자의 팔 위에 손가락으로 사자성어 하나를 꾹꾹 눌러 썼다. 40년 은행원 생활에서 터득한 리더십의 요체가 바로 상생의 정신을 강조한 줄탁동시이다.



Q. 경영 일선에서 용퇴하신 지도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어제(8일)부터 센트로 펠리스에 있는 개인사무실로 출근해 책도 보고 지인들도 만나며 소일하고 있습니다.

Q. 요즘 시장 환경은 ‘살얼음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은행장 용퇴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최고경영자의 주요 임무가 바로 후계자 승계입니다. 하춘수 신임 행장은 37년간 같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한 인물입니다. (제가) 행장 시절 혼신의 힘을 기울여온 지속가능경영을 완성할 적임자입니다.

Diversity in the Ecological Soup
Diversity in the Ecological Soup by jurvetson 저작자 표시



Q. 금융계는 노장들이 맹활약을 하는 대표적 분야가 아닌가요. 대구은행 출신인 라응찬 회장도 70대입니다.
(저 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토박입니다. 이 지역 은행에서만 40년을 일했습니다. 그런 제가 (다른 분야)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웃음) 나이(44년생)도 적지 않고요. 은행장으로 재임하며 지역 사회와 교유하고, 지속가능경영의 ‘주춧돌’을 놓았으니 그 결과에 만족할 따름입니다.

Si es que en el fondo son unos buenazos...
Si es que en el fondo son unos buenazos... by Guesu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신한금융지주 수뇌부들과는 대구은행 시절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지 않습니까.
라응찬 회장도 대구은행 비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지점장도 지냈습니다. 라 회장뿐만이 아닙니다. 신한은행에는 대구은행 출신들이 꽤 많습니다. 이인호 신한은행 전 행장은 중앙지점에서 (저와) 같이 근무한 인연도 있습니다.

신한 은행 직원
신한 은행 직원 by acote1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Q. 그때 왜 안 옮기셨어요.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웃음)


Q. 두 은행이 신용관리 시스템이 뛰어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겠군요.
지 난 1974년대 박영복 사기 사건이 도화선이 됐습니다. 금융권이 공동으로 ‘신용분석사’ 자격증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저를 포함해 21명이 처음으로 자격증을 땄습니다. 제가 바로 1기 신용분석사입니다. 희대의 사기꾼 덕분에 평생을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지식을 얻은 셈이죠.(웃음)

Faces of the fallen
Faces of the fallen by Nurpu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박영복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이 대한민국 은행들의 여신관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셈이군요.
‘금 록통상’을 운용하던 박영복은 쓸모없는 ‘돌산’의 가치를 부풀려 엄청난 돈을 대출받았습니다. 그리고 부도를 내버려 은행들의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지난 외환위기 때 한보·기아 사태에 버금가는 대형 사건이었죠. 이 사기 사건을 계기로 국내은행에 신용조사부서들이 신설됩니다.


Q.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다시 위기설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국내 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교한 신용관리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최고경영자는 리스크 관리 전문가의 리더십을 존중해야 합니다.


Oh my God I look Cute!!
Oh my God I look Cute!! by creativesam 저작자 표시비영리



Q. 지난 10년간 두 차례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비결이 바로 그것인가요.
저 뿐만이 아니라 (대구은행에는) 전문성을 갖춘 신용분석사 300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기업 영업점의 RM(Relationship Manager), SRM(Senior Relationship Manager)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서울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혹시 대출 외압은 없었습니까. 당시 한보나 기아 등이 파국으로 치달을 때였습니다만.
대 구은행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지분이 전혀 없습니다. 정부가 은행의 신용분석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없는 거죠. 당시 한보, 기아차가 회사채 지급 보증 요청을 했습니다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외환위기를 무난히 극복한 것도 이들 신용분석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Chinese New Year in Dalian - risk evaluation
Chinese New Year in Dalian - risk evaluation by GraemeNicol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춘추시대 오자서나 범리 등은 모두 ‘기미(예측)’의 달인들이었다고 합니다. 지구온난화가 은행 경영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보셨습니까.
대구은행은 지역에 거점을 둔 지방 은행입니다.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지속가능경영이 생존의 조건입니다. 지구온난화가 굴뚝기업은 물론 금융기관의 경영에 미칠 리스크를 면밀히 따져보았습니다.

Q. 다들 ‘자산 경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지방 은행이 ‘녹색경영’을 주창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우 리, 신한, 국민, 하나 등 4대 은행과 규모 경쟁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작지만 알차고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을 숙고했습니다. 그리고 정답은 녹색경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기업도 시민사회의 일원입니다. 국내 금융기관 중 지속가능보고서를 발표하기는 대구은행이 처음입니다.

Green Leaf of a Bio Plant in Nature
Green Leaf of a Bio Plant in Nature by epSos.de 저작자 표시




Q. 이 보고서는 제작 때부터 화제를 불러모으지 않았습니까.
지속가능보고서인만큼 환경 부담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친환경 용지와 콩기름 잉크를 사용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최고경영자는 위험 관리 분야의 총책임자격인 ‘CRO(Chief Risk Manager)’등
리스크 관리 전문가의 리더십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Q. 지역사회를 ‘은행 서비스’에 붙들어 매기 위한 ‘심모원려’로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대구는 대구은행의 거점이 아닙니까.
대 구 에서 무려16개 은행이 각축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구은행은 절반에 가까운(44%)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녹색경영도, 지속가능경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역사회와 교유하면서 공동체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Remembrance Day 2008
Remembrance Day 2008 by ViaMoi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MB정부의 녹색성장은 제조업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요.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은 녹색성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제 가 서울에서 만난) 한 건설업체 CEO분과 똑같은 질문을 던지시는군요. 환경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대출을 많이 해주거나, 이자도 깎아줄 수 있습니다. 총수익의 4.5% 규모, 130억원 정도를 지속가능경영에 꾸준히 지출하고 있습니다. 국내 금융권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Q. 시류에 휩쓸리다 텃밭이 허물어지며 경영난에 봉착한 기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재임기간 중 경영 성적표는 어땠습니까.
은행장으로 취임하던 지난 2005년, 당기순이익은 1753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순익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지난해는 2612억원에 달했습니다. 2006년 2405억, 2007년 2608억원을 각각 기록했습니다.

Q. 비결이 무엇인가요.
대 구은행은 이 지역 점포 수만 160개에 달합니다. 다른 은행들을 압도하는 수준입니다. 직원들 대다수가 토박이들입니다. 속된 말로 고객사의 밥그릇과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손금처럼 들여다볼 정도입니다. (저만 해도) 대구은행에 신입사원으로 입행해 무려 40년간 잔뼈가 굵었습니다. 하 행장도 마찬가지입니다.

Warning!!!...Tiger in training...:O))
Warning!!!...Tiger in training...:O)) by law_keve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Q.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이기도 합니다. 지역사회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점이 새로운 도전을 어렵게 하지는 않습니까.
지 역 경제 전반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대구은행에서도) 며칠 전에도 신용보증기금에 50억원가량을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포스코를 비롯해, 구미의 전자단지 등이 국가 경제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역 경제도 곧 좋아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Inauguración de la Planta Manufacturera Posco México (06/08/09)
Inauguración de la Planta Manufacturera Posco México (06/08/09) by Gobierno Federa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사업 포트폴리오가 금융지주사들에 비해 취약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좀 더 멀리 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대 구경북은 다른 지역보다 녹색성장 시대를 이끌어가기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린에너지 연구생산 기반과 더불어 환경 클러스터(Cluster)도 잘 조성돼 있습니다. 특히 환경 부문은 지역은행의 성장엔진으로 부상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IA Summit 2007 Mind-Map
IA Summit 2007 Mind-Map by Kaeru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손자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 인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승의 요건으로 사람을 꼽았습니다만.
행장으로 취임한 후 늘 저를 사로잡은 화두이기도 합니다. 직원들을 먼저 감동시켜야 합니다. CEO레터를 매주 쓰며 직원들에게 경영방침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Shake your Booty!
Shake your Booty! by Carlo Nicor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편지가 상당히 진솔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내밀한 개인사를 공개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재 미가 없으면 직원들이 읽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직원들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편지 중간중간에 제가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은행원으로 살아온 삶을 진솔하게 반영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야 클릭 수도 높일 수 있습니다.(웃음)

Q. 줄탁동시가 바로 이러한 경영철학을 반영한 건가요.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 온전한 병아리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영자가 독주해서는 결코 줄탁동시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조언을 경청해야 합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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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의 화려한 아케이드는 시인 보들레르를 만들었다. 파리의 화려한 색채와, 훗날 백화점으로 진화하는 도심의 상가인 ‘아케이드’의 풍경은 시인의 감수성을 일찌감치 결정했다.

central arcade
central arcade by campru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도시 하층민들의 비참한 삶의 현실은 화려한 도시 생활에 충실하던 이 젊은 시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인류 최초 ‘모던 보이’의 등장이자, ‘광장’보다 ‘밀실’을 선호하는 도심형 인간형의 출현이다.


#총독부 기사 이상은 ‘경성(서울)’의 모던 보이였다. 현란한 빛과 소리, 웃음이 뒤섞인 경성의 밤거리는 ‘무한 자유’의 무대였다.

일본의 식민 지배 현실은 그의 관심권 밖이었다. 건강 악화로 시골 성천에서 요양을 하면서도 늘 경성의 미쓰코시백화점과 카페를 떠올렸다. 경성의 소비문화의 세례를 받은 모던 보이 ‘이상’은 늘 제국의 중심지인 ‘동경행’을 꿈꾸었다.

Potential Shopping Queen?
Potential Shopping Queen? by Cougar-Studio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Profile / 하지현(43)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통쾌한 비즈니스 심리학》, 《당신의 속마음》, 《도시 심리학》을 발표한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정신분석학회 편집이사이자 기획이사로 활동하고 있다.Profile / 하지현(43)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통쾌한 비즈니스 심리학》, 《당신의 속마음》, 《도시 심리학》을 발표한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정신분석학회 편집이사이자 기획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도시는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다시 도시를 만든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는 경제 현상 이면의 진실을 심리학의 프레임으로 분석하는 ‘스토리 텔러’이다.

히트상품·서비스의 이면에 감추어진 소비의 역사성에 주목한다. 심리학은 물론 사회학, 역사학의 경계를 질주한다.

혼마치(명동)에 있던 미쓰코시백화점은 시인 ‘이상’이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산하는 욕망의 해방구였다.

하 교수는 미쓰코시에서 스타벅스가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배경을 읽어낸다.

커피 한잔을 마셔도 자신만의 ‘미각(味覺)’에 충실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 스타벅스는 현대의 ‘미쓰코시’다.

“스 타벅스에서는 주문에만 길게는 몇 분이 걸리지 않습니까. ‘아이스 화이트 초콜릿 모카’, ‘그란데’, ‘모카 푸라푸치노’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상품이 있는 데다, 다시 기호에 따라 휘핑크림을 얹어 자신의 입맛에 꼭 맞는 맞춤 커피를 제작할 수 있어요 .”

Starbucks coffee - Starbucks coffee...
Starbucks coffee - Starbucks coffee... by Man in a bowler hat (Epzibah)...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다방커피의 진화다.

하 교수는 히트상품에는 이러한 원리가 고스란히 작동한다고 진단한다. ‘남과 다른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의 분출이다. 다방, 카페, 그리고 미쓰코시백화점을 예찬하던 ‘모던보이’ 이상은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는 글로벌 소비자들의 정체성을 엿보는 열쇠이다. 미국의 아메리칸 돌스(American dolls)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형을 꾸미고 싶은 소녀 고객들의 바람을 파고들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이 브랜드의 매장을 방문한 소녀들은 인형에게 옷을 사입히고, 헤어스타일도 바꿔준다.

Family's picture
Family's picture by MiriamBJDoll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영국의 ‘헤어스타일 닷컴(www.hairstyler.com)’도 머리모양이 늘 못마땅한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이 사이트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에 직접 올린 뒤 인기 연예인들의 머리 모양을 돌아가며 적용해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프린트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사이트와 제휴를 맺은 미용실에 프린트를 제출해 입맛대로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종합솔루션을 제공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스타벅스가 매장이 급증하면서 위기를 맞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급격한 표준화는 이 브랜드의 비교우위를 허물었다. 휴대폰 영상통화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모던 보이’들은 간섭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 또한 매우 강하다. 하 교수는 정신과 상담에서도 이러한 추세를 엿본다.

그는 군대생활을 견디지 못해 탈이 난 젊은 환자들의 실례를 든다. “고참들이 얼마나 괴롭혔으면 탈이 났을까 다들 동병상련의 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요즘 신병들은 구타나 폭언이 아니라, 단순한 집단생활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Alert
Alert by moviment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취침을 해야 하는 군 생활이 그들에게는 트라우마인 셈이다. 실연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버리는 나약한 20대들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촛불집회도 젊은 세대의 달라진 정신 세계를 엿보는 창이다.


괴물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만약 영화 <해운대>를 만들었다면 아마 일본의 핵실험으로 해일이 부산을 덮쳤다는 식으로 그리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는 분명 백전 백패하고 말았을 겁니다.


“개인의 경제적 선택조차 심리학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요즘 소비자들이거든요. 촛불집회가 정치 투쟁으로 변질되자 그들은 전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거죠.” 시민단체들은 기업으로 치면 소비자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마케터였던 셈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복잡한 사회 ‘이론’ 따위에는 시큰둥하다. 재미도 필요조건일 뿐이다. 《넛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도 투자, 연금 등 실생활에 밀접한 문제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솔루션을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하 교수의 분석이다. 하 교수는 <해운대> 성공의 이면에도 주목한다.


by bradburyjaso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괴물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만약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아마 일본의 핵실험으로 해일이 부산을 덮쳤다는 식으로 그리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는 분명 백전백패하고 말았을 겁니다.”

운동권이면서도 개그맨인 이수근을 좋아할 수 있는 이들이 요즘 신세대들이다.
스토리가 마케팅 수단으로 부상하는 것도 바로 이지점이다.

일본에서 인기를 모은 광고의 한 장면을 보자. 연인에게 버림받은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고 실연의 아픔을 딛고 화장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가 조용히 응시한다.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립스틱’. 브랜드 이름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소비자들은 기업이 판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따위는 안중에 없다.

The UnValentine :
The UnValentine : "Think of a day that describes Valentine's day and rhymes with cupid." by Jesse Drap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스토리는 소비자들을 제품이나 서비스에 묶어두는 공감의 증폭장치이다. 도시나 국가 브랜딩에서도 스토리 마케팅이 맹위를 떨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보들레르·이상에 소비자 파악 열쇠
태양조차 가릴 정도로 화려한 ‘아케이드’ 상가에 반한 프랑스의 ‘보들레르’는 자신의 심미적 취향을 중시하던 ‘개인주의자’였다. 그러면서도 생계를 잇기 위해 자신의 원고를 사줄 출판사를 찾아야 하던 ‘근로자’였다.

하 교수는 도시라는 공간적 환경변수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없다고 진단한다.
기생 ‘금홍이’와 성천에서 유희를 즐기던 이상은 총독부에서 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스타벅스’를 선호하면서도 봉지커피 또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현실의 이면에는 이러한 삶의 조건들이 있다.

Spitalfields part VI
Spitalfields part VI by wili_hybrid 저작자 표시



대한민국의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또 다른 보들레르, 이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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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로 마케팅을 말하다-신상원 아모레퍼시픽 컨설턴트

2009년 08월 24일 17시 24분조회수:182
“지미추가 오바마 사로잡은 이유
종교학자 엘리아데에 물어보세요”



굽이 높은 명품 숙녀화 한 켤레가 화려한 조명 속에서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다. 한 켤레에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는 숙녀화 브랜드인 ‘지미추’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을 사로잡았다.

jimmy choo shoe sketch
jimmy choo shoe sketch by KyleF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유명 연예인들을 비롯한 명사들이 이 컬트 브랜드의 추종자들이다. 할리 데이비슨을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지미추’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눈길에서는 황홀함이 읽힌다.

신상원 아모레퍼시픽 컨설턴트는 명품을 바라보는 여성 소비자들의 눈길과 표정에서 하얀 손수건을 머리에 쓰고 예배를 올리는 크리스챤을 떠올린다.

St Bridget's church
St Bridget's church by mudpig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매장 조명은 교회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햇빛에 비유할 수 있다. 고급 진열대는 성스러운 창, 십자가 등 교회의 상징격이다.

‘종교’와 ‘명품’은 어쩌면 쌍생아 인지도 모른다. 신상원 컨설턴트가 ‘미르체아 엘리아데’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루마니아가 배출한 세계적인 사상가로 종교의 본질을 깊숙이 탐구한 인문학자이다.

Red Oracles in Trance !
Red Oracles in Trance ! by Anoop Negi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지난 1945년 《성과 속》을 발표한 ‘엘리아데’보다 ‘명품’이 각광 받는 이면의 진실을 더 정교하게 파고든 전문가는 없다고 신 컨설턴트는 단언한다.

발터 벤야민의 ‘미학자의 아우라’도 명품 이해의 지름길이다. 그는 종교학과 경영학의 행복한 만남을 시도한다.

서울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인 그는 그리이스·로마신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동서양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무의식을 엿본다.

Papa Freud, conflicted, with cigar
Papa Freud, conflicted, with cigar by Carla216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신 컨설턴트는 신데렐라 신화의 서사구조가 인류 보편의 사고를 보여준다고 진단한다. 그의 컨설팅은 이런 식이다.

신 화의 상징체계로 무의식을 유추해내고, 또 이러한 방법론을 기업문화 분석에도 적용한다. 마케팅 부문에서 요즘 ‘스토리텔링’이 각광 받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막장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양면성을 성공적으로 파고든 히트상품이다.

신화의 서사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면 소비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코드가 보인다. 노키아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신흥시장 소비자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문화인류학자들을 활용한다.

Ruff N' Stuff
Ruff N' Stuff by Shavar Ros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이들은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소비자 니즈를 분석한 노키아 돌풍의 일등 공신이다. 지난 2003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한 그는 기업문화팀 소속이지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별동대’이다.

서울대 운동권에서 활동하던 그는 인문학으로 한 사회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고백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사회의 작동 방식을 정교하게 진단하고, 변화의 원리를 제시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변화의 주요 동력은 민간 기업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시민사회와 더불어 사는 기업, 환경과 공존하는 기업은 변화의 전령사입니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원군입니다.”


기업에도 임직원들을 규율하는 집단 무의식이 있다.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를 엿보는 일에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프로이트는 꿈으로 무의식을 파악했다. 그리고 개인의 의식세계를 여러 층위로 쪼개 사고의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기업문화를 분석하는 데도 비슷한 ‘프로세스’를 적용한다는 것이 신 컨설턴트의 설명이다.


현장에서 고객들을 직접 만나는 직원들은 지쳐 있었고, 상당수가 이 직업이 천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 연구원이 제시한 처방전이 바로 요정을 뜻하는 ‘아리엘’이었다. 현장 판매 직원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토테미즘적 장치였다.



아모레 ‘아리따움’에 토테미즘 접목
토요타자동차 임직원들은 헌신적이다. 퇴근길에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공정 개선방식을 논의하는 지식근로자들이 바로 이 회사의 자산이다.

nummi28 NUMMI Assembly Plant Tour, Fremont CA 2000
nummi28 NUMMI Assembly Plant Tour, Fremont CA 2000 by CanadaGoo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경영진은 늘 높은 목표치를 제시하며, 각종 교육 프로그램으로 근로자들의 의식화를 유도한다. 그들은 개미처럼 일하면서도 행복하다.

토 요타 성공의 이면에는 막부시대 이래 상명하복식 문화에 익숙해진 일본인들이 있다. 하지만 불만에 가득 찬 근로자들이 ‘가이젠(改善)’의 기치를 들고 ‘업무 프로세스’를 닦고 조일 수 있을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해내는 기업문화는 토요타자동차 성장의 초석이다.


토요타 경영진은 일본 전통문화위에 자사 고유의 특성을 더해 세계 최고의 전사들을 만들어냈다. 반면 삼성이나 GE는 제국주의적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 컨설턴트는 토요타에서 프랑스의 유명 사회학자 알튀세의 잔영을 읽는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 사회학자는 학교, 교회 등 이데올로기 도구에 주목했다. 이 이데올로기 도구들은 한 사회 구성원들을 ‘호명’하며 정체성을 부여하는 의식화 시스템이다.

토요타자동차는 세미나, 교육 등으로 자사 임직원들의 의식화를 유도한다. 토요타의 교육 조직들은 한 국가의 학교, 군대 등에 비유할 수 있다.

Conquerors
Conquerors by Gabo Morales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신 컨설턴트는 알튀세의 이론에 기업문화 구축의 실천적인 방법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아리따움’에 이러한 사회학적 방법론을 적용해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고 귀띔한다.

아리따움은 이 회사가 자체 구축한 화장품 유통망이다. “아리따움은 작년에 첫 출범한 화장품 프랜차이즈입니다.

그 전에는 소매점에 물건을 공급했는데, 직접 매장을 운영하며 물건을 팔기 시작했으니 비즈니스 모델의 급진적인 변화이지요.”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이 변해도 임직원들의 정체성과 문화는 과거에 머무르며 불협화음을 낼 수있다.

회사 측은 신 컨설턴트에게 매장직원 분석을 의뢰했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현장에서 고객들을 직접 만나는 직원들은 지쳐 있었고, 상당수가 이 직업이 천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 컨설턴트가 제시한 처방전이 바로 요정을 뜻하는 ‘아리엘’이었다. 현장 판매 직원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토테미즘적 장치였다.

Summer totem
Summer totem by cuellar 저작자 표시비영리



그리고 1년여가 지났다. 아리따움 판매 직원들은 일하면서 감동의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고백했다. 이 회사에서 비전을 찾는 데 성공했다고도 털어놓았다. 신 컨설턴트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진단한다.

“저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감동을 받습니다. 직원들의 달라진 태도를 보면서 ‘아, 내가 정말 일을 잘하고 있구나’ 하는 보람을 느꼈어요.”

프랑스에는 인류학, 종교학을 기업 경영에 접목한 ‘ACG’라는 회사가 있다.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퇴사를 유도하는 솔루션 제작이 주특기이다.

그는 쌍용차도 평소 이 솔루션을 적용했다면 노사 간 극렬한 대립·투쟁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 컨설턴트가 분석한 한국의 대표 기업문화는 어떤 유형일까. 삼성은 고도로 개방된 제국주의형 문화이다. 반면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등은 뜻밖에도 ‘학자형’ 문화가 지배적이다.

그는 공무원 사회를 떠올려 보라고 주문한다. 응집력과 애사심이 있지만 개방성이 떨어지고 집단의 유지만을 염두에 둔다.

The Scholar
The Scholar by Renée Ann Wirick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기업가형에서 교류의 정도가 떨어지면 이러한 학자형으로 서서히 옮겨간다는 것이 신 컨설턴트의 진단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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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흑인폭동 때 달란트 깨달아 정치가로 더 큰 꿈꾸고 있어”

 

강석희 어바인 시장 미국 성공기

2009년 05월 12일 14시 20분조회수:315
‘캘 리포니아주 어바인(Irvine)의 ‘버락 오바마’. 강석희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장이 지난해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미 〈LA타임스〉는 강 시장을 오바마 미 대통령에 비유하며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에서 가전업체 영업사원 출신인 그가 거둔 쾌거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한인 1세대 최초 민선시장으로 주목받는 그를 지난 7일 오전에 만나 성공 비결, 포부 등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국회의원 중 일부는
사진 촬영 등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인다.
정치중심지인 워싱턴을 꼭 방문해
한인들의 권익 향상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달라.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지사가 이끄는 캘리포니아는 늘 공화당의 텃밭이었다. 북으로 로스앤젤레스, 남으로 샌디에이고와 인접한 미국의 100대 도시 ‘어바인’은 민주당의 침투를 막는 보루 격이었다.

Cars and Coffee 07.jpg
Cars and Coffee 07.jpg by VOD Car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백 인 노령층의 비중이 매우 높은 이 지역 유권자들은 친 공화당 성향이 강한 편이었다. 살기 좋은 도시로 소문이 나면서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들이 많이 몰렸다. 강석희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장은 공화당의 텃밭에서 작은 기적을 연출했다.

Opa
Opa by babymellowde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지 난 1977년 미국에 건너간 한인 1세대인 그는 불리하리라는 예상을 비웃으며 작년 말 선거에서 상대당의 경쟁자를 누르고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쉽지 않은 승부였다. 아시아계 후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이 집중 공략 대상이었다.

강사장은 선거운동 기간 무려 2만여가구를 일일이 방문해 그들을 설득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결국 강 시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전자제품 할인점인 ‘서킷시티’ 영업사원 시절 인생 경험이 성공의 자양분이었다고 승인을 분석한다.

Brown Skin + Heavy Coat + Backpack = ?
Brown Skin + Heavy Coat + Backpack = ? by drp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강 시장이 영업사원 시절 소비자들의 집을 방문하며 익힌 ‘30초 룰’은 유권자 공략에 톡톡히 한몫을 했다. 소비자들은 영업사원의 말을 30초 이상 듣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그는 이 짧은 순간을 파고들 메시지, 그리고 전달 방식을 담금질해야 했다.

“당시를 되돌려 보면 저를 이끈 것이 바로 ‘달란트(운명)’가 아닌가 싶습니다. 20대 초에 미국으로 건너와 영업사원으로 밑바닥 생활을 하다 결국 정치 무대에 진출한 인생역정이 바로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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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kor document by shapeshift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불과 24세의 나이에 두 살 어린 신부와 결혼을 하고 지난 1977년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파란만장한 세월이었다. 한창 혈기방장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나이였다.

첫 직장이 바로 작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파산한 전자제품 할인점인 ‘서킷시티(Circuit City)’였다. 주민들은 전자제품을 가가호호 방문판매하는 젊은 동양인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paradox v2.0 (1 of 2)
paradox v2.0 (1 of 2) by pochacco20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아시아인들을 우습게 보는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시선은 캘리포니아의 혹염을 잊게할 정도였다. 강 시장은 서킷시티 입사 4개월 뒤 판매 콘테스트에서 당당히 수위를 차지했다.

서 부 지역 사장이 영업사원 전원을 저녁식사에 초청해 콘테스트 결과를 발표하던 순간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간당 2.5달러, 한 달에 400달러를 버는 영업사원 생활은 거칠 것 없던 청년이 겸양의 미덕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로 작용했다. 벼도 익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생면부지의 땅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고통을 감내한 강 시장의 경험은 훗날의 어바인 시장 당선을 예비하는 과정이었다. 명문대 출신의 젊은 영업사원은 “‘400달러’의 소중함을 이때만큼 절감한 적도 없다”고 회고한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들이 사탕수수밭에서 하층근로자로 일하던 고난의 땅이었다.

One and Two Half Dollars
One and Two Half Dollars by EricGjerde 저작자 표시비영리



개성상인의 둘째 아들은 수난의 미 한인사를 이처럼 새로 썼다. 서킷시티는 그가 훗날 정치무대에 데뷔하며 배워야 할 덕목들을 모두 배운 기회의 무대였다. 인생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그는 유치원이 아니라 서킷시티에서 배운 셈이었다.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사건이 지난 1992년 터진 ‘LA폭동’ 사태였다. 폭도로 변한 흑인들은 로스앤젤레스 시내 전역을 휩쓸고 다녔다. 한 젊은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방영되며 오랫동안 잠자던 흑인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Riot in Beijing – China
Riot in Beijing – China by cromacom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불 과 3년 전(1989년) 동서냉전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으며,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시기에 ‘불길’은 미국 내부에서 솟아오르며 엉뚱하게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한인들을 집어삼켰다.

“텔레비전으로 로스앤젤레스 폭동 사태를 지켜보며 분노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한인상가 750여곳이 화재로 전소되거나 치유하기 힘들 정도의 큰 피해를 봤습니다.”
경찰은 부유층 거주지역을 철통경비했으나, 한인상가는 관심밖이었다. 흑인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된 배경이다.

한 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인정을 받고 고속 승진을 하며 아시아계 최초로 매니저가 된 그였다. ‘로드니 킹’ 사건은 그러나 미국 내 한인들의 위상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뼈아픈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집을 사고 아이들 교육하는 재미에 여념이 없던 그의 삶도 바꾸어놓았다.

서킷시티 시절 고객이던 김기순 한미연합회 설립자는 그가 사회활동의 첫걸음을 떼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한미장학 재단의 이사로 참석해 한인사회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인재 발굴의 소임을 맡긴 것. ‘래리 에이그런(Larry Agron)’ 전 어바인 시장은 그를 정치무대로 안내한 멘토였다.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결국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하버드 법대 출신의 래리 에이그런 시의원이 바로 정치 초년생이던 제게 소중한 가르침을 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


그레이트 파크 대역사는 大運될 것
어 바인시는 뉴욕 센트럴파크의 두 배 규모인 ‘그레이트 파크(Great Park)’를 조성 중이다. 그는 “임기 동안 대단위 역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토로한다. 일생에 한번 찾아오기 어려운 기회라고도 했다.

Fenway Park
Fenway Park by werkunz1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이번 방한길에도 국내 건설업체를 비롯한 관련 업체들의 참여를 적극 권유하며 이 프로젝트 알리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냐는 질문에 “꿈을 안 꾸는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는 이번에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정치인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tribune Chávez & monarch of Spain indict each other of default  ►media coverage◄
tribune Chávez & monarch of Spain indict each other of default ►media coverage◄ by quapan 저작자 표시



그는 한국 국회의원 일부는 워싱턴 대신 다른 지역을 방문하고, 사진 촬영 등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이는 편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중심지인 워싱턴을 꼭 방문해 미 국회의원들과 한인들의 권익 향상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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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교수에게 듣는 경영과 디자인

“한국의 CEO들, 다빈치 경영 나서라”

2009년 06월 30일 09시 31분조회수:548
이 연주 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교수는 ‘디자이너 경영론’의 전도사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통섭형 지식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열혈팬인 그녀는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야말로 인문학·공학 CEO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차세대 경영자군 이라고 강조한다.

이연주 교수를 지난달(6월) 24일 ‘리카트리나’ 본사에서 만나 재계 경영 트렌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디자인 경영론에 귀를 기울였다.


Q. 홍익대 국제디자인 전문대학원 역사상 최연소(36) 전임교수로 채용되지 않았습니까. 경쟁자들이 다 쟁쟁했을 텐데요.
(세 계적 디자이너 양성의 산실로 불리는) 로데 아일랜드 디자인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공업 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갭(Gap) 등 유명 브랜드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한 경험을 높이 산 것 같습니다.


Q. ‘신정아 사태’로 임용과정에서 ‘에피소드’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또 가짜가 아닌가는 의혹의 눈초리가 매서웠다고요.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로 한창 나라 전체가 들썩일 때였어요. 나이가 어리다 보니 혹시 이력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다녔어요.

(웃음) (홍익대에서) 면접을 거의 10여차례는 본것 같습니다. 저만 따로 불렀어요.

신정아
신정아 by 류동협 저작자 표시




Q. 후쿠다 보고서가 삼성그룹 디자인 경영의 허실을 지적한 지도 10여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디자인 경영은 ‘상식’이 되지 않았나요.
하지만 디자인 경영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심지어는 업계에서도 쓰는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르기도 합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저도 전문가들을 연쇄 인터뷰하고 다시 한번 개념을 정리했을 정도니까요.


Q. 디자인 경영이 국내외 기업들 사이에서 지금처럼 각광 받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전날(23일) 대학 총장님이 방문을 해 한참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옛날에는 어떤 조각품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왔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약아서 뭘 내놓아도 놀라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피력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Cemetery 9797
Cemetery 9797 by casch52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메뉴 디자인, CI(Coprorate Identity), BI(Business Identity),
조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경영자는
모두 ‘레이아웃’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브랜딩(branding)’을 모르면
디자인 경영자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브랜딩은 육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Q. 이상봉 씨나 앙드레 김이 각광받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요.
(삼성전자의) 디오스 냉장고는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문양이 들어가 있어요. 하지만 이 냉장고는 결코 앙드레 김답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냉장고에 ‘패턴(pattern)’을 집어넣은 정도입니다. 이 냉장고의 문을 여닫는 방식은 과연 앙드레 김 다운 걸까요.

Moonsun's PIFF 2006 Diary 앙드레김
Moonsun's PIFF 2006 Diary 앙드레김 by toughkidcs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디자인은 물론 기능에서도 고유의 브랜드가 충분히 살아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디자인은 물론 피부가 닿는 옷감이나, 심지어는 냉장고의 문 개폐방식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 특유의 철학이 반영돼 있어야 합니다.


Q. 디자이너 출신이 경영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식당을 청담동에 오픈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프랑스 식당을 낼지, 일본 라면집을 낼지를 선택해야 하죠. 그리고 셰프(요리사)를 누가 할지, 종업원 남녀비율은 어떻게 할지 등도 결정해야 합니다. 브랜드 전략도 정해야 합니다.


Q. 디자이너 CEO가 이 모든 일들을 완벽히 처리할 수 있다는 건가요.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들은 상품이나 프로세스의 최종 형태(파이널 프로덕트)의 모습을 알고 있는 점이 강점입니다.

공대나 인문대 출신 경영자들이 아이디어를 글이나 수식으로 푼다면 디자이너들은 ‘비주얼’하게 표현합니다. 상품화 단계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강점도 있지요.

knitted star dress design | fashion portrait
knitted star dress design | fashion portrait by Adam Foster | Codefo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이 모든 작업을 경영자가 직접 감당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웃소싱이 대세입니다.
말콤 글라드웰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1만 시간 정도 하면 ‘프로페셔널’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강점이 있는 전문가들이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애플 같은 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경영자는 이 전문가들을 조율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Q. 국내 단말기 업체 CEO들은 경쟁의 구도를 ‘B to C’에서 ‘B to B’로 전환해 노키아, 모토로라가 주도하는 휴대폰시장 경쟁의 무게중심을 뒤흔들지 않았습니까. 디자이너 출신들은 이러한 전략 능력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핵심 콘셉트를 비주얼로 표현하는 역량은 디자이너 출신들을 따라갈 수 없겠죠. 마찬가지로 공대나 인문대 출신들이 더 나은 점도 있지 않겠습니까.


Q. 지난 1980년대 디자인은 기업 경영의 한 프로세스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경영자들은 골치 아픈 디자이너를 쉽게 관리하기를 원할 따름이었죠.
디자이너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고, 경영자의 입장에서도 다스리기 힘든 유형이 아닌가요.

디자이너들의 이직을 줄이고, 그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주요 관심사였죠. 하지만 지금은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프로세스를 디자이너 경영자가 직접 감당한다는 의미로 바뀌었어요.


Q. 디자인 경영의 대명사이던 소니는 경쟁에서 한걸음 뒤처져 있지 않습니까.
일본은 장인정신이 투철한 나라지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식사를 하면서 커피를 달라고 하면 디저트 때 나온다며 거부하는 게 일본식 서비스입니다.

My Stack
My Stack by archie4oz 저작자 표시




Q. 디자인 경영이 가장 활발한 업종이 백화점, 할인점을 비롯한 유통 분야가 아닐까요. 국내 기업들의 디자인 경영 수준은 어떤 편입니까.
주요 백화점들을 방문해 보면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층마다 걸어놓았습니다. 또 다른 유통업체는 명품거리를 조성해 명품 브랜드를 모두 한곳에 몰아넣었죠.

하지만 철학을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백화점에 전시된 모든 상품, 브랜드의 콘셉트를 규정하는 고유의 정체성을 엿보기 힘들죠.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들은 상품이나
프로세스의 최종 형태(파이널 프로덕트)의
모습을 알고 있는 점이 강점입니다.
공대나 인문대 출신 경영자들이
아이디어를 글이나 수식으로 푼다면
디자이너들은 ‘비주얼’하게 표현합니다.



Q. 월마트는 ‘애브리데이 로우 프라이스’를 내걸고 있어요. 정체성을 이보다 더 명확히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마트가 한국의 월마트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를 더 알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국내 백화점들도 명품에 집착하지 말고 이러한 부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Q. 제품에서 서비스 쪽으로 경쟁구도가 옮겨가고 있는 상황도 디자이너 경영자의 희소가치를 높이는 요인은 아닐까요.
커피 잔을 디자인하는 것이 제품 디자인 입니다. 그런데 이 과제를 한번 살짝 비틀어봅시다. 커피 잔과 더불어 이 잔에 담길 커피를 ‘디자인’하는 겁니다.

이때부터 경영자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커피의 향은 어떻게 정할지, 커피 잔이 놓일 테이블을 비출 조명은 어떻게 정할지도 감안해야 합니다.

Rhode Island Cinnamon Latte
Rhode Island Cinnamon Latte by Chris Owens 저작자 표시



브랜딩도 고민거리입니다. 제품(커피 잔)에서 서비스(커피 판매)로 시장 공략의 범위가 확대되는 겁니다.


Q. 핵심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인접 분야 확장전략의 전문가처럼 들리네요. 시야가 매우 넓어야 하겠습니다.
핸드백만 디자인해서는 안 됩니다. 메뉴 디자인, CI(Coprorate Identity), BI(Business Identity), 조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경영자는 모두 ‘레이아웃’할 수 있어야 합니다.

armani chocolate
armani chocolate by vitavita15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시 살아온다면 아마도 가장 뛰어난 디자인 경영자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종교인이자 화가였습니다. 또 발명가로 활동했으며, 뛰어난 조각상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사실 학교에서 2년 공부한 뒤 디자인 경영자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훌륭한 디자인 경영자가 될 수 있습니다.

vitrv
vitrv by shingo 저작자 표시비영리




Q. 현재 운영하는 핸드백 브랜드 ‘이카트리나’는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까.
이카트리나는 예카트리나 대제를 뜻합니다. 그녀가 여왕일 때 러시아가 가장 부강했습니다. 당시의 ‘우먼파워’가 핸드백을 비롯한 모든 액세서리, 원단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Q. 디자이너가 디자인은 물론 경영도 감당하려면 ‘비즈니스 플랜’도 명확하게 작성할 수 있어야겠군요.
물론입니다.


Q. 뉴욕에서 핸드백 디자이너로 성공한 가수 출신 임상아 씨도 성공한 디자인 경영자가 아닙니까.
(저 는) 상아 씨와 인연이 있는 편입니다. 패션잡지 ‘보그(Vogue)’에도 같이 등장했습니다. 핸드백 브랜드 오프닝 파티도 도산공원에서 같은 날 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제 제품이 들어가는 스토어들에 임상아 씨도 대부분 들어가 있습니다.


Q. 임상아 씨는 국내에서도 성공한 사업가로 소개되면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이카트리나 제품과 특별한 차이는 있습니까.
제가 만드는 제품이 85만~100만원이고, 임상아 씨 제품은 300만~400만원입니다.(웃음)


Q. 디자이너들은 감각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평소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뒤 가벼운 감상평을 붙여놓습니다. 그러면 한 열흘 뒤에 아이디어들이 술술 나옵니다. 독서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요즘은 《Obsessive Branding Disorder》를 읽고 있습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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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즐겨 부른 휴머니스트 환란 중에도 농민들 잊지 않아”

기획특집- 회고 인터뷰(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숨이 턱 막히고 아득해졌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노 대통령 서거일을 이같이 회고한다.

김 전 장관은 철원 민통선 농민들과 유기농 농법을 논의 중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보가 명치 끝을 찔렀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뒤흔들었다. 김 전 장관이 지난 3월 동교동 김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는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대통령 부부는 접견실에 나란히 앉아 김 전 장관 내외를 반겨주었다.
김성훈 전 장관이 주로 대화를 이끌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종종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김 전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을 이같이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초등학생 시절 조우한 청년 김대중은 역동적이었다.

“한 남자가 리어카를 끌고 갔어요. 어린 나이에도 뭐 하는 사람일까 싶었는데, 남자가 마이크를 들었어요. 그리고 연설을 시작했지요.” 그가 젊은 시절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리어카를 밀던 여자는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

김 전 장관이 김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였다. 국민들을 상대로 사자후를 토해내던 정치인 김대중은 사라지고 늙고 병든 노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을 즐겨 부르던 노(老)대통령도 세월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8일 영면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을 지낸 김성훈 전 상지대 총장을 20일 만나, 전남 신원군 하의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사의 물줄기를 바꾼 대 정치인의 인생역정을 되돌아 보았다.


지난 5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늙고 지쳐 보였습니다.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까.
늙고 지쳐 보였으며, 무기력해 보이고… 그 표현이 참 적절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 by Steven Ha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김 전 대통령이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높이 날아오른 용은 후회하기 마련인가요.
김대중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많습니다. 장남이 고문 후유증으로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자신도 한쪽 다리가 불편합니다.

백주대로상에서 납치돼 수장될 뻔했고, 사형선고도 받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가 가장 안타까워한 것은 민주주의적 가치의 훼손이었습니다.



지난 3월만 해도 만약의 사태를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죠. 당시 대통령 부부를 직접 만나보셨죠.
저희 부부가 동교동을 찾을 때만 해도 비교적 정정하셨어요. 동교동 자택에 들어가니 이희호 여사와 나란히 저희 부부를 맞이하셨습니다.

제가 발표한 책에도 관심을 피력하셨습니다. 당시에도 일주일에 두 차례 ‘투석’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며 영면하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졌고, 부쩍 침울해지셨다고 하죠.
본인이 평생에 걸쳐 구축한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지켜줄 젊은 정치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니, 비통할 만도 하죠.


Former President Noh
Former President Noh by hojusaram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빈소에는 언제 다녀오셨습니까.
오늘(20일)도 새벽 1시까지 빈소를 지켰습니다. 다들 국민의 정부 시절을 회고하며 웃고 떠들다가도 분위기가 또 숙연해지고 그랬죠. 평생의 라이벌이자 정적이던 박 전 대통령의 딸 근혜 씨도 다녀갔습니다.

박근혜 초청 강연회 (3)
박근혜 초청 강연회 (3) by 정호씨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두 분의 인연이 꽤 오래됐다고 들었습니다. 영정사진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지 않던가요.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고향의 봄’을 부르던 그분의 모습도 떠오르고… 김 대통령은 딱 한 가지 노래만 불렀어요.

술이 한잔 얼큰하게 들어가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이 가곡을 불렀어요.

Temptation damnation
Temptation damnation by NYC.andr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제가 하루는 대통령에게 만날 똑같은 노래만 부르냐고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물끄러미 보시면서 어렸을 때 부잡하다는 말을 안 들었냐고 하시더군요.

호남 사투리로 번잡하고 활동적이라는 뜻입니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휴머니스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언제였습니까.
초 등학교 시절이었어요.(웃음)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멀끔히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리어카를 끌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어요. 젊은 여자가 뒤에서 그 리어카를 밀고 있었죠. 이 남자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고, 여자분이 지금은 타계한 첫 번째 부인이었어요. 마이크를 실은 리어카는 이동식 연단이었습니다.


SG105856
SG105856 by maru+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어린 소년의 눈에도 리어카를 끌던 남자가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중앙대 교수로 부임한 뒤에도 유세 현장을 찾아다니셨다고요.
김 대통령은 말이 곧 글이었습니다. 그가 터뜨리던 사자후가 지금도 귓전을 맴돕니다. 맨 앞자리에서 그의 연설을 듣던 대학 교수가 바로 저였어요. 말 그대로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the 44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Barack Obama
the 44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Barack Obama by jmtimage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그 꼬마가 국민의 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이 됐어요. 김 대통령은 용인의 기준도 독특했다고 하죠.
김대중 대통령이 사람 뽑는 방법을 소개하면 깨끗하고 말끔한 사람, 예쁘장한 사람을 선호했어요.

김명자, 박선숙, 한명숙 씨가 다 예쁘지 않았습니까. 장관들도 이목구비가 정상적이고 단정해야 썼습니다. 넥타이도 잘 매야 하고, 면도도 잘해야 하고, 머리도 단정해야 했지요.


20030520-과천-삼보일배
20030520-과천-삼보일배 by KFEM photo 저작자 표시비영리



“김 대통령은 딱 한 가지 노래만 불렀어요. 술이 한잔 얼큰하게 들어가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이 가곡을 불렀어요. 가난한 농민으로 평생을 살다간 아버지, 어머니가 농사를 짓던 고향산하가 늘 그리운 거였겠죠.”


까다로운 리더는 아니었습니까.
농림부 장관 시절은 정말 혹독했습니다. 힘들어서 더 이상 장관직을 감당할 수도 없어 사직서를 제출했어요. 사직서를 안 받아줄까 봐 치과 증명서까지 첨부했습니다. 이가 많이 빠졌어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가 뭉텅이로 다 빠집니까.
2년 반 동안 이가 무려 13개나 빠졌어요. 9개가 조금씩 흔들거리더니 말 그대로 뿌리째 뽑혀 나갑디다.

균형이 무너지니 다른 4개가 같이 빠지더군요. 당시 임플란트 비용으로만 정말 에쿠스 자동차 한 대 값이 들어갔어요. 제 입속에 에쿠스 자동차 한 대를 집어넣은 셈입니다.

Revista Autoesporte Agosto/09 - Audi A6 3.0T vs Mercedes-Benz E350
Revista Autoesporte Agosto/09 - Audi A6 3.0T vs Mercedes-Benz E350 by Fabio Aro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재경부 장관도 아니고 농림부 장관이 할 일이 그렇게 많았습니까.
김 대통령은 농업 문제는 경제 논리로만 풀 수 없다는 신념이 확고했어요. 제가 경제부처 수장들과 다툴 때면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농림부 장관은 농민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자리라는 소신이 뚜렷했습니다. 농민들의 개인 연대보증을 없앤 것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농촌체험
농촌체험 by JaeYong, BAE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당시 한 마을 사람들이 야반도주를 하는 등 큰 사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외환위기 직후 달러값이 급등하지 않았습니까. 다국적기업들은 이 틈을 파고들며 사료나 비료가격을 올렸습니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많은 빚을 지고 야반도주한 농가들이 많았어요. 연대보증으로 한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어깨보증’이라는 개인연대보증을 섰거든요. 국가가 신용보증해야 한다고 (제가) 경제수장들을 설득했습니다만 역부족이었죠.

Free 2 Run
Free 2 Run by Ozyma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누가 그렇게 반대하던가요.
처음에는 신용보증 자금으로 2000억원을 요구했어요. 그런데 정말 씨알도 먹히지 않더군요. 그래서 다시 1000억원으로 요구사항을 낮췄습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반대의 선봉에 있다 보니 역부족이었어요. 너무 분통이 터지고 억울하기도 해서 책상을 치고 퇴장해 버렸어요. 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아마도 대통령 귀에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김 대통령은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었습니까.
대통령이 사흘 뒤 국무회의를 주재하다 ‘어깨보증’의 폐해를 거론하셨어요. 전라남도 나주 동광면, 그리고 진주의 한 마을에도 농민들이 잇달아 야반도주를 했다는데,
농림부 장관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요. 정말 사흘 전 일을 보고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습니다만, 꾹 참았죠.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었네요.
정말 벌떡 일어나서 관계 장관들과 협의해 대책을 보고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다른 장관들은 불만들이 많았죠.

당신이 고자질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였죠. 진념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회의를 요청하니 회의는 무슨 회의냐고 하더군요. 결국 이 문제는 해결이 됐습니다.

If You Put That Picture On The Internet I'll Call My Lawyer
If You Put That Picture On The Internet I'll Call My Lawyer by Jeremy Brooks 저작자 표시비영리




농업분야 단체들을 통폐합할 때 그 반발이 당시에도 만만치 않았을텐데요.
제가 ‘화형식’을 두 번 당했습니다.(웃음) 농협·축협·인삼협동조합이 통합될 때 축협 회장이 국회에서 할복 소동을 벌였습니다.

우리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도 꼬리를 물었습니다. 축협은 결사대를 결성하고요. 김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변함없이 지지해 주었습니다.

Heart of Satan - What it looks like when fireworks explode inside of a storm cloud over a river
Heart of Satan - What it looks like when fireworks explode inside of a storm cloud over a river by Stuck in Custom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농업 관련 단체들을 통폐합하고, ‘수세’를 폐지한 이면에는 리더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군요.
대통령은 매우 흐뭇해하셨어요. 수세를 폐지했으니 농민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냐는 것이었죠.

또 농협·축협·인삼협동조합을 하나로 통폐합했으니 월급도 한 명에게만 주고, 사무실도 하나니 돈을 절약할 수 있어 얼마나 좋냐고 하셨어요. 그리고 큰일을 했으니 선물을 하나 주시겠다고 했어요.


김 대통령이 무엇을 주시던가요.
박연차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휴켐스가 바로 산자부 소유 남해화학에 속해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이 알짜배기 회사를 농협에 넘겨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 돈을 장기분할 상환으로 지불하라고 하셨죠. 농협은 이 회사로 벌떡 일어났어요.



‘농업은 경제논리로만 풀어갈 수 없다’는 김 대통령 평소의 소신을 재차 보여준 겁니까.
그는 농민들의 고통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었어요. 농업 기반을 튼튼히 닦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어요.

자신이 아마도 농민들을 잘 아는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죠. 다음 대통령은 젊고 도시지향적인 인물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거죠.


동아그룹에 얽힌 비사도 흥미롭습니다.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이 김포 매립지를 상업용도로 전환해 달라는 요청을 줄기차게 했습니다.
당시 김종필 총리가 최원석 씨의 아버지와는 부여 동향으로 막역한 사이였어요. 김종필 총리마저도 용도 변경을 해줄 수 없느냐고 물어볼 정도였지요.

엄홍길 리비아 사하라 사막에..
엄홍길 리비아 사하라 사막에.. by 카린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하지만 정태수가 연루된 수서비리보다 더 큰 폭발력이 있는 사안이라며 (제가) 대통령께 절대 불가를 진언했고, 대통령이 이걸 수용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리비아에서 큰돈을 번 최원석 회장이 왜 매립지에 관심을 두는지 물어보았죠.


“초등학교 시절이었어요.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멀끔히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리어카를 끌고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어요. 젊은 여자가 뒤에서 그 리어카를 밀고 있었죠. 이 남자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어요.”



김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역시 북한에 쌀과 비료를 지원한 ‘햇볕정책’인데요. 주관부서가 농림부 아니었습니까.
대통령이 하루는 저를 갑자기 불렀어요. 그리고 북한에 비료를 얼마나 보낼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2000년 봄입니다.

남북한 정상 회담을 앞둔 시기였지요. 당시 유기농 농가가 늘다 보니 비료 소비가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어요. 비료 지원은 이 문제를 풀 ‘묘책’이었죠.


북한에 비료를 얼마나 보냈습니까.
20만t을 보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북한은 밭농사가 중심이니 밑거름과 윗거름을 통틀어서 최소 이 정도가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얼마 후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농림부가 북한에 보낼 비료 10만톤을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6월인데도 이상하게 비가 많이 내렸어요. 제가 남해화학에 내려가서 북한에 실어보낼 비료 준비작업을 했습니다. 극비 사항이었죠.
경운기
경운기 by keizie 저작자 표시



다른 장관들은 다들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 현장에 갔는데, 농림부 장관만 비료를 준비하느라 참석을 못했어요. 억울하지는 않았습니까.
이날 북한 남포항에 도착한 비료들은 모두 제 손때가 묻어 있습니다. 6월에 비가 많이 내려 혹시나 녹을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또 남해화학 대신 적십자사 마크를 붙여야 했습니다.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웃음) 역사의 거름 역할을 한 거죠.


농림부 사람들이 다들 남쪽에 있다 보니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도 터져나왔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자꾸만 ‘닭공장’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대통령을 수행한 각계 전문가들이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거죠. 정세현 씨가 알겠습니까, 아니면 재정경제부 장관이 알겠습니까.


김 대통령은 쌀 지원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었습니까.
당시 쌀은 공급과잉이었습니다. 정부는 WTO 협정으로 쌀 수입량을 해마다 늘려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쌀 소비량은 점차 줄어들고 공급은 늘어서 수급 불균형이 ‘골칫거리’였죠. 이 잉여분의 쌀을 북한에 보내주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국내산은 우리가 먹고, 1~2년 정도 지난 묵은 쌀은 북한에 보내며, 수입분은 맥주·과자·식혜 등을 만들자는 거였죠.

Rice Raider
Rice Raider by Vermin Inc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하지만 당시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은 두고두고 ‘퍼주기식’ 지원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까.
남는 쌀을 북한에 보내 수급 불균형을 해소, 가격안정을 꾀할 수 있었죠. 또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을 인도주의 차원에서 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수단이었습니다.
공짜로 지원한 것도 아닙니다. 미국이 과거 남한에 쌀을 지원한 전례를 참조했습니다. 30년 분할상환 방식으로 북한에 쌀을 지원한 배경입니다.


현 정부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북한이 일단 고개를 숙여야 인도적 지원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 아닌가요.
전국에 쌀 재고가 넘쳐서 지금도 쌀값이 바닥입니다. 추수도 또 다음 달이어서 가격 폭락도 우려됩니다.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의 인권을 왜 거론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바로 배고픔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형제가 굶는 것을 방치하면서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김 대통령의 남북관은 바로 그 지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81/365 - Convinced she can do everything she's ever dreamed of with just a little more space
81/365 - Convinced she can do everything she's ever dreamed of with just a little more space by helgasms!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진보진영의 두 거목이 잇달아 영면했습니다. 두 분의 서거를 계기로 현 정부가 바뀔 것으로 보십니까.
북한 조문특사 파견을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좀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시장 시절, 두 차례 그를 독대한 적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서민·중도 행보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치고 있는 ‘고소영’들이 문제라고 봅니다. 대통령은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분입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2009/07/08 - [로컬(Local) VIEW/로컬 엑스퍼트 VIEW] - 개성공단 살리려면 ㅁㅁㅁ을 포기해야...-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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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펀드 시대 연 장동헌 얼라이언스번스타인자산운용 CEO

“동양고전 《귀곡자》 읽으며 한국 금융시장 연구했죠”

2009년 08월 20일 11시 11분

시장은 바닥을 모른 채 가라앉고 있었다. 금감원 동료들은 민간기업행을 선택한 그를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금융계의 대선배가 동양고전 한 권을 선물한 것은 이듬해(2009년) 봄이었다.

그가 건넨 책이 바로 《귀곡자》였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의 대학자 ‘왕후’의 통찰력을 집대성한 처세서이자 전략의 바이블이다. 중국사의 물줄기를 돌린 ‘합종연횡’의 주인공 소진과 장의가 그의 제자들이었다.

Great Wall of China, Mutianyu
Great Wall of China, Mutianyu by Christopher Ch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장동헌 ‘얼라이언스번스타인(Allian-ceBernstein)자산운용’ 사장은 요즘 이 책을 자주 펼쳐든다. 진퇴 시기를 저울질하는 지혜를 다룬 ‘패합(稗闔)’편이 그 백미이다.

장동헌 사장은 지난 1990년대 말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였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더불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실명(實名)펀드’ 시대를 개막한 주인공이다. 박현주 펀드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자 한국투자신탁은 장동헌 펀드로 맞불을 놓았다.

The Paper Boy
The Paper Boy by from a second story.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순풍에 돛을 단 격이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일반 주식형(골든칩펀드)’은 3000억원(1~6호)어치가 판매됐다. 100억원 규모의 스폿펀드 10여개도 설정됐다. 주식투자 열풍은 실명펀드 전성시대를 불러왔으며, 실명펀드는 다시 주식투자 열기를 지피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10여년, 장 사장은 《귀곡자》의 ‘오합’과 ‘췌마’, ‘비겸’, ‘패합’편에서 자산운용시장 판도를 뒤흔들 ‘묘수’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장 사장과 지존의 자리를 다투던 ‘박현주(미래에셋 회장)’, ‘장인환(KTB자산운용 사장)’등 ‘맞수’들은 한국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거물로 성장했다.

패합:성패는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가 외도에 나선 것은 지난 2005년 이었다. 금감원에서 ‘주식·채권·외환 시장’을 모니터링하며 교란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그리고 지난해 8월 다시 미국계 얼라이언스번스타인자산운용 사장으로 부임하며 시장에 ‘컴백’했다.

“이 회사가 자산규모만 568조원에 달하며, 뉴욕 증시에도 상장된 글로벌 강자라는 점은 인터뷰 무렵까지도 잘 몰랐어요. ‘얼라이언스캐피털’과 ‘샌포드번스타인’이 합병한 회사라는 점도 추후에 알게됐습니다.”

Liberty Hall, The Custom House,The Spire and The IFSC
Liberty Hall, The Custom House,The Spire and The IFSC by infomatique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본사에서는 스타 펀드매니저와 금융감독원을 두루 경험한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대표이사로 인생 3막을 연 장동헌 대표는 요즘 영어 삼매경에 빠져 있다.

종로구 광화문 이 회사 회의실에 설치된 폴리콤사의 화상회의 설비는 그의 고민을 가늠하게 했다. 본사나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지역 자회사들과 콘퍼런스 콜을 해야 하는 일이 부담거리다. ‘MP3플레이어’에 늘 ‘CNN방송’ 파일을 넣고 다니며 늦깎이 공부에 한창이라는 게 장 사장의 ‘하소연’이다.


2분기 미국 경제의 ‘재고 소진(inventory liquidation)’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 2분기 미 GDP는 예상보다 소폭 감소하겠지만 3~4분기 미국 경제가 회복할 것이다.

국내 철강·유화·반도체·정보통신 분야는 경기회복 국면의 수혜 종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췌마:외국계 운용사 ‘노장’에 주목해야

자산운용사의 비교우위는 ‘리서치’다. 국내 업계도 리서치 역량이 일취월장했지만, 글로벌 운용사들에 비해 여전히 한 수 아래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 회사 애널리스트들의 근속연수는 평균 20~30년.

이 글로벌 자산운용사에서만 평균 15년 이상 근무하며 특정 섹터를 분석해 온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애널리스트들이 경쟁우위의 버팀목이다. 단기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전문가들을 장기간 육성해 온 특유의 인력양성 시스템이 주효했다.

tribune Chávez & monarch of Spain indict each other of default  ►media coverage◄
tribune Chávez & monarch of Spain indict each other of default ►media coverage◄ by quapan 저작자 표시



반면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리서치’를 중시하면서도 여전히 단기성과를 앞세우는 경향이 강하다. 리서치 품질이 글로벌 기업들과 격차를 보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장 사장은 매주 발행하는 주간보고서를 실례로 들었다. 본사가 발행하는 보고서는 세계경제 동향의 풍향계이다.

지난달 26일자 보고서는 2분기 미국 경제의 ‘재고 소진(inventory liquidation)’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고 진단한 뒤 3~4분기 미국 경제가 회복할 것으로 관측했다. 장 사장이 국내 철강·유화·반도체·정보통신 분야를 이러한 경기회복 국면의 수혜 종목으로 꼽는 배경이기도 하다.

경기회복과 더불어 재고 물량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수급도 균형을 회복하게 되면서 이 분야가 뚜렷한 약진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Katrina 3rd Anniversary
Katrina 3rd Anniversary by skeletonkrewe © ® 저작자 표시



“한국 기업들은 이들 분야에서 최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가 꿈틀거리면서 이 분야의 수급 상황이 점차 빡빡해지고 있어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거죠.” 그는 지난 4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글로벌 성장주팀의 CIO가 제시한 국내 시장 분석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귀곡자》는 일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췌마’편을 꼽았다. 정보전에서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한 방안을 집대성한 대목이다. 장 사장은 자사의 40~50대 애널리스트들이 이러한 ‘췌마’의 달인들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보는 시장상황은 이렇다.
시장에는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고민도 많다. 주가가 작년 말에 비해 큰 폭으로 오른 점이 부담거리다. 혹시 지금 뛰어들었다가 상투를 잡는 것은 아닌가는 우려 섞인 시선도 고개를 들고 있다.

韓 철강·반도체, 유화섹터 ‘매력적’

장 사장은 이런 투자자들을 상대로 자사의 ‘글로벌 고수익 채권 재간접 펀드’를 추천했다. 300개 글로벌기업들의 우량종목 채권에 투자하는 ‘고수익, 중위험’의 상품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미국 기업의 채권, 그리고 이머징 국가와 기업의 고수익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이 펀드의 자산규모는 6조원이라는 것이 장 사장의 설명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그가 맹활약을 펼치던 지난 1990년대 말에 비해 ‘상전벽해(桑田碧海)’식의 변화를 겪었다.

Coin Stacks
Coin Stacks by Darren Hester 저작자 표시비영리



은행, 증권, 보험사를 구분하던 칸막이가 점차 사라지고 있어 금융사들은 덩지를 불리거나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적자생존의 대회전을 준비 중이다.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금융상품 선택의 폭도 매우 넓어졌다. “시장의 가파른 변화에서 성장의 기회를 엿보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숙명’입니다. 한국의 퇴직연금시장, 그리고 국민연금·한국투자공사를 비롯한 큰손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귀곡자는 형세를 살피고 기세를 타는 방법으로 ‘오합’을, 사람을 움직여 일을 성사시키는 방법으로 ‘모’를 꼽았다. 장동헌 얼라이언스번스타인자산운용 사장이 요즘 주목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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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경영론 펼치는 이면희 CEO코치

“창조적 리더의 조건? 전쟁사에 다 나와있죠”

2009년 08월 11일 17시 37분
Profile / 이면희 CEO코치는 연세대를 나와 미시대학(BBA), 휴스턴 텍사스주립대(MBA)에서 수학했다. 또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금융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 덕성여대 강사, 국민투자자문 수석연구위원을 지냈다. 옥션을 창업해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Profile/ 이면희 CEO코치는 연세대를 나와 미시대학(BBA), 휴스턴 텍사스주립대(MBA)에서 수학했다. 또 펜실베이니아대학와튼스쿨에서 금융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 덕성여대 강사, 국민투자자문 수석연구위원을 지냈다. 옥션을 창업해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천하무수백지호 이유수백지구’ 세상에 완전히 하얀 여우는 없지만 완전히 하얀 여우 털옷은 존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전국시대 《여씨춘추》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 백과전서는 진시황제의 아버지로 알려진 ‘여불위’가 학자들을 동원해 집대성한 지식의 박물지이다.

2008-05-07-002
2008-05-07-002 by Alex //Berlin _ as+photography (out of order)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미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 출신으로 한국경제연구원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던 이면희 CEO코치는 《여씨춘추》에서 당대의 경영자들을 사로잡는 ‘통섭’의 이치를 엿본다. 그는 늘 이런 식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에 앉힌 채 옛날 얘기를 하듯이 복잡한 경영의 원리를 두런두런 속삭이는 스토리텔러다.

Angels Are Messengers From God
Angels Are Messengers From God by Thomas Hawk 저작자 표시비영리



그는 ‘스왓(SWOT)전략’도 손자병법의 원리로 설명한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스왓전략의 중국판입니다.

자신의 강점(Strength)은 물론 약점(Weaknes)을 파악하고, 주변 환경의 ‘이로움(Opport-unity)’과 ‘불리함(Threat)’을 따져야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 그 뼈대거든요.”

그는 ‘노자와 아담 스미스’, ‘여씨춘추와 위키피디아’, ‘묵자와 야구’를 오가며 경영의 원리를 설명한다. 지식의 융합이다.

쉬운 언어로 복잡한 현안의 핵심을 짚어내 잭 웰치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도 태생의 CEO가정교사 ‘램 차란’은 그의 귀감이다. 와튼스쿨에서 ‘금융경제학’을 전공한 이 코치는 박식하다.

Talking Wiki
Talking Wiki by Ross Mayfield 저작자 표시비영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하지만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는‘백면서생(白面書生)’은 아니다.

“통영에서 기름을 팔던 처남이 불현듯 떠올린 아이디어가 바로 인터넷 장터였습니다. 네티즌들이 온라인에서 물건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죠.” 그 ‘아이디어’가 바로 인터넷 기업 옥션의 첫출발이었다.

옥션은 그의 ‘첫사랑’이다.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보았다. 그리고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점도 절감했다. 펜실베이니아 대 와튼 스쿨의 강의실에서 터득한 ‘경영의 원리’들은 현장에서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LOL Expositores
LOL Expositores by Morinoko 저작자 표시비영리



“학자들은 흔히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세스를) 단순화시키면 성과가 좋아지다가도 일정 시점을 넘어가면 다시 나빠지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경쟁의 원리를 경영 현장에 적용하면 생산성이 높아지다 ‘임계점’을 지나면 다시 하락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가 최고경영자들을 상대로 생생한 경영 컨설팅을 할 수 있는 것도 당시의 경험이 한몫을 했다.

유년 시절 친인척들이 운영하는 신발가게에서 사환 생활을 한 컨설턴트 ‘램 차란’은 현장경험 덕분에 비즈니스의 냉정함을 일찌감치 깨우쳤다고 훗날 회고한 바 있다.
옥션은 실전경영학의 도장이었다.

그는 경영자들도 비전이나 전략을 스토리로 풀어낼 수 있어야 구성원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중문화나 전쟁사에 꾸준히 관심을 지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통섭의 원리 戰史에서 배우라
이 코치는 요즘 전사에서 배우는 경영의 원리를 집필 중이다. 뛰어난 전략가들은 사물을 늘 달리보는 역발상의 고수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한니발 시대의 코끼리나, 세계 대전 당시의 탱크 등 저평가된 자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승을 거둔 것이 이들 전략가들이었다. 동서고금을 수놓은 전쟁은 전략의 보고이기도 하다.

Disney - Dumbo the Flying Elephant (Explored)
Disney - Dumbo the Flying Elephant (Explored) by Joe Pennisto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독일의 명장 ‘구데리안’은 별 볼일 없던 전차를 전투의 주역으로 전진배치했다. 그리고, 보병이나 항공기와의 긴밀한 협조속에 불과 6개월 만에 파리에 독일 깃발을 꼽았다.

Salem Tank
Salem Tank by Lawrence Whittemor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보병사단 지원업무에 그쳤던 전차의 재발견이다. 일본이 2차 대전에서 미국과 ‘맞장’을 뜰 수 있던 것도 압도적 무기 덕분은 아니었다.

진주만을 맹폭해 태평양 전쟁 초반 전세를 유리하게 이끈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은 항공기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이어서 시장 주도권을 쥐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던 자원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또 인적·물적 자원을 재조합해 비교우위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항공기와 선박을 결합한 항공모함의 전략적 우위를 십분 발휘한 전투가 바로 진주만 전투였다. 반면 일본이 패전한 것은 태평양전쟁 초반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미국의 물량공세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Ghost Ship
Ghost Ship by TunnelBug 저작자 표시비영리



독일이 1차 세계대전 초반 맹활약을 펼치다 분루를 삼킨 것도 프랑스가 주도하는 참호전의 구도를 깰 전략의 부재 탓이었다.

“장기전에서 승리하려면 평소 부대 운영의 효율성도 높아야겠지만 무엇보다 리더가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전사는 바로 이러한 점들을 보여줍니다.” 전쟁사는 민간기업의 전략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이 코치는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대부분 ‘참호전’을 펼치고 있다고 진단한다.
막대한 물량을 퍼부으며 시장점유율 증대를 꾀하지만 대부분 현상유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1차대전 당시 참호 속에서 적군을 주시하며 한 치의 땅도 넓히지 못한 독일과 프랑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Dead Man's Dump
Dead Man's Dump by kT LindSAy 저작자 표시비영리



고대 지중해 세계의 패자를 결정지은 포에니전쟁부터, 1·2차 세계대전까지, 전쟁사는 ‘발상의 전환’이 승부를 결정짓는 핵심요소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베이의 여제 맥 휘트먼 퇴진의 이면에는 전략 부재가 한몫을 했다.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에서 매년 눈부신 성장을 주도할 묘책이 그녀에게는 더 이상 없었다.

eBay Ceo Meg Whitman giving keynote at eBay Live
eBay Ceo Meg Whitman giving keynote at eBay Live by TechShowNetwork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온라인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나침반 삼아 기업 경영의 방향을 미세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불청객처럼 찾아든 저성장을 정면돌파할 수 없었다.
이 코치는 인터뷰 막바지에 질문을 한 가지 던진다.


경영은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
지난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한국이 압도적인 정보전을 펼친 일본을 상대로 선전을 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냐고.

당시 일본의 정보 분석관은 27명인 데 반해, 한국은 3명에 불과했다. 그는 “데이터에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패턴일 뿐”이라고 답변한다.

과거의 성공은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많은 정보가 때로는 오판을 부른다. 요즘 서울예술대학 최고위 과정이 높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국내 경영자들은 경영학이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사진 등에 열광한다. 전통 경영학이 더 이상 해답을 주지 못한다는 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실과 이론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경영자의 몫이다.

RedHatLinuxCEOJamesWhitehurstILUG-D_2
RedHatLinuxCEOJamesWhitehurstILUG-D_2 by niyam bhushan 저작자 표시



경영자 코치는 그들의 판단을 도울 따름이다. 이 코치는 오는 9월부터 서초·강남구 최고경영자 모임인 ‘EBN포럼’에서 다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전쟁사는 물론, 드라마·영화·음악 등 대중문화에서 강의의 소재를 빌려오는 그의 강좌는 늘 인기가 높다.

경영자들도 자신의 전략을 스토리로 풀어야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Stevie-B The De-Mentor
Stevie-B The De-Mentor by swissrolli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요즘 신규 사업 프로젝트를 검토 중이라는 이 코치는 원어데이, 메가존 등에서 젊은 최고경영자들의 멘토역할을 하고 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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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 GE코리아 사장, 금융위기 이후 GE를 말하다

“밀라노 상인의 광장경영 배우겠다”

2009년 06월 23일 10시 05분조회수:237
발명왕 에디슨이 창업한 미 GE는 〈포춘〉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한 번도 탈락하지 않은 유일한 기업이다.

덩지 큰 복합기업이면서도 벤처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민첩함이 비교우위의 한축이다. 메가 트렌드를 읽고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하는 노하우도 발군이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는 이 거인의 명성을 뒤흔들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소매금융사업의 발목을 잡으면서 주가가 급락하고, 채권 등급이 하락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로부터 10개월. 이 글로벌기업은 다시 한번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GE식 경영의 대명사로 불린 ‘소통 방식’을 되돌아 봄은 물론 포트폴리오를 닦고 조이며 ‘비상(飛上)’의 채비를 마쳤다. 황수 GE코리아 사장을 지난 9일 연세대에서 만났다.


Q GE를 흔히 ‘대기업이지만 구멍가게 같은 회사’라고들 합니다. 덩지가 크면서도 효율성이 높다는 뜻인가요.
한국 기업들은 보통 비서 한 명이 사장 한 명을 보좌합니다. 미 GE는 사장실 비서 한 명이 사장을 포함한 임원 8명의 업무를 처리합니다.

카이로의 구멍가게
카이로의 구멍가게 by 아기곰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지난 2001년, (제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상황입니다.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의 진수였던 셈이죠.(웃음)


Q 다들 시간 관리의 고수들인가 봅니다. 이멜트 회장도 바쁜 와중에 신문·잡지 25종을 본다고 들었습니다.
이멜트 회장은 프록터앤갬블(P&G)을 거쳐 GE에 합류한 마케팅 전문가입니다. (회사가) 지난 2003년 이후 매년 (GDP 대비) 두 배에 달하는 성장을 해온 것도 이러한 노력 덕분이겠죠.

Al Gore, Jeff Immelt, and Tom Friedman 0276
Al Gore, Jeff Immelt, and Tom Friedman 0276 by World Resources Institute Staff 저작자 표시



(이멜트 회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할 당시에도 호텔방에 ‘스테퍼’와 ‘런닝머신’을 설치한 뒤, 운동을 하며 신문을 읽었다는 후문이다.)


Q 하지만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초우량 기업이라는 명성에 흠이 갔습니다. 주가가 급락하고 채권등급이 하락하지 않았습니까.
한동안 지인들을 만나면 회사(GE) 주식을 사라고 권했습니다. 그룹의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떨어졌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6 Ben Franklins
26 Ben Franklins by toasties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현재는 주당 13달러 수준으로 올랐습니다만, 한때는 불과 6달러밖에 안 됐습니다. 당시 주식을 샀던 사람들은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Q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파를 조기수습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씀인가요. 미 언론의 평가는 다른 것 같습니다.
미 언론의 보도 내용은 사실 부정확한 대목이 많습니다. 오래된 데이터를 근거로 기사를 작성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일부 언론은 GE가 장난을 친 게 아니냐는 의혹(분식)까지 제기했어요. 이멜트 회장은 전문가들을 동원해 재무제표를 검증하도록 해 이러한 의혹을 씻어냈죠.

Jurne, Enron
Jurne, Enron by Heart of Oak 저작자 표시




Q 월드컴이나 엔론 사태의 학습 효과 탓이 아니겠습니까.
기업의 덩지가 커질수록 고속성장을 유지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이멜트 회장은 부임 직후 9·11사태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괄목상대의 실적을 올려왔어요.


Q 문제의 근본 원인은 모기지 부문의 엄청난 손실 탓이 아닌가요. 왜 조기에 철수하지 못했습니까.
꼼꼼하게 위험 요인을 주시해 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조짐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GE파이낸스가 활동하는) 금융업 자체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었는데, 그걸 알지 못했던 겁니다.


Q 위기에서 성장의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GE의 장기가 아니었습니까. 이번에는 위기에 휩쓸려버렸습니다.
(사 내에서도) 위기론자들은 있었습니다. 문제는 소수의견으로 치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버린 것입니다. 저만 해도 2007년에 싱가포르에서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에 세계 경제 위기론을 경고했습니다.

SEPPUKU SAM, THE WILD MAN OF OLD JAPAN -- or, How to KILL YOURSELF (After Losing a Game of Tic-Tac-Toe) 切腹
SEPPUKU SAM, THE WILD MAN OF OLD JAPAN -- or, How to KILL YOURSELF (After Losing a Game of Tic-Tac-Toe) 切腹 by Okinawa Sob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하지만 (저도) 이러한 경고를 귓등으로 흘려보냈습니다. 논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기는 했지만, 주류의 견해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Q 타운홀 미팅이나 워크아웃으로 유명한 글로벌기업에서 이러한 병목현상이 빚어진 배경은 무엇인가요.
경영진들이 모여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근본 원인을 심도 있게 논의했습니다.

Tehran Flickies Gathering, All of Us
Tehran Flickies Gathering, All of Us by Hamed Saber 저작자 표시



(회사의) 의견 수렴방식이 아직도 (집단지성으로 대변되는) 시대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습니다. 회사는 근본적인 ‘변화’를 거치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사 내에서도) 위기론자들은 있었습니다. 문제는 소수의견으로 치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버린 것입니다. 아직도 (집단지성으로 대변되는) 시대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습니다. 회사는 근본적인 ‘변화’를 거치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Q 항공기 엔진에서 원전설비까지 만드는 복합기업이 금융에까지 손을 댄 것이 결국 발병이 나게 된 근본원인은 아닐까요.
자동차 회사들이 할부금융사를 세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품의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죠. 에디슨은 전구를 만들었지만,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전력산업에 추후 진출한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Q 한국 재벌기업 비판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문어발식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인가요.
시너지 효과를 꾀할 수 있는 인접 부문으로 꾸준히 활동영역을 넓혀온 것이 GE의 방식입니다. 이멜트 회장은 재임 중 600억달러어치를 매각하고, 800억달러어치를 다시 사들였습니다.

그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부단히 닦고 조이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는 끊임없는 메가트렌드 분석의 산물입니다.


Q 이번 위기에서 또 무엇을 교훈으로 얻었습니까.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으면서 금융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What subprime crisis?  Affordable houses are everywhere.
What subprime crisis? Affordable houses are everywhere. by woodleywonderworks 저작자 표시



(그룹 내에서는) 금융 부문에서 버는 5달러를 제조업에서 버는 1달러와 같은 수준으로 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굴뚝산업 부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된 거죠.


Q 소매금융은 어떻게 처리할 계획입니까.
기업금융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리테일(retail, 소매)’ 분야는 정리하는 수순으로 가게 될 겁니다.

He did.  You can.
He did. You can. by Umpqua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GE는 지난해 일본 소비자금융 서비스업체인 GE컨슈머파이낸스를 일본 중형 대부업체인 신세이은행에 5800억엔(약 5조4240억원)에 매각하기로 한 바 있다.)


Q 회사 전략의 밑그림에 큰 변화는 없습니까. 나이키 정도 되는 회사를 매년 늘려 나간다는 목표치가 지금도 유효합니까.
국내 총생산 성장률도 경제위기의 여파로 위축되지 않았습니까.

GDP 두 배 이상의 성장을 꾀한다는 기본 전략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환경(Ecomagination)’과 ‘건강(Healthymagina-tion)’ 분야를 양대 엔진으로 삼아 고성장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Q 헬씨메지네이션(healthymagination)은 어떤 변화를 염두에 둔 전략인가요. 건강과 상상력의 합성어인 듯합니다.
GM이 최근 파산신청을 하지 않았습니까. GM 문제의 핵심이 바로 퇴직자 의료비용입니다.

2020년이 되면 5명 중 한 명이 65세 노인일 정도로 노령층 비중이 높아질 겁니다. 의료비용에 대한 회사의 보상이 가장 큰 문제로 부상한 배경입니다. 이러한 트렌드를 파고들 전략이 ‘헬씨메지네이션’입니다.

General Electric
General Electric by MatthewBradley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복합기업이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보십니까
GE항공기 엔진 부문은 왜 ‘컨버전스’인지, ‘통섭’인지를 보여줍니다. 비행기 엔진에 고장이 생기면 항공기는 대개 사흘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Media & Platform Convergence
Media & Platform Convergence by Gary Haye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엔진을 뜯어내 이상이 생긴 부품을 확인하고 교체하는 데 이 정도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Q 한국 재벌은 대부분 복합기업의 형태를 갖춘 곳들이 많습니다. 사업 부문이나 계열사 간 시너지를 살릴 수 있다면 상당한 강점이 될 수 있겠군요.
항공기 엔진 부문은 의료기기 사업부의 기술을 받아들였습니다. 인체에 소형 카메라를 집어넣어 이상 부위를 파악하는 기술 덕분에 수리 시간을 사흘에서 단 하루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엔진에 소형 카메라를 투입해 이상 부위를 확인한 뒤 바로 수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Q SK그룹이 최근 폴리실리콘시장 진출 방침을 밝혔어요. 한국 기업들의 환경 분야 진출이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 분야에서 적당한 흉내만 내는 기업들을 ‘그린 워시(Green Wash)’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한국 기업들 중에는 그린 워시가 여전히 많은 편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도 가능하면 독자행보를 하려고 합니다.


금융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룹 내에서는) 금융 부문에서 버는 5달러를 제조업에서 버는 1달러와 같은 수준으로 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Q 오바마 행정부는 녹색성장을 미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경제위기를 탈출하는 양수겸장의 카드로 여기는 듯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파고들 준비가 돼 있을까요.
탄소연료는 인류가 아직도 250년 정도를 쓸 수 있는 양이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방식으로 태워서는 오염배출이 많아 인류가 생존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ecomagination windmill birdsnest stadium
ecomagination windmill birdsnest stadium by kafka4prez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미국도 그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기업들은 발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사업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어요. 21세기의 1년은 19, 20세기와는 속도가 다릅니다.


Q 한국 기업들도 폐쇄성을 버려야 지구촌의 위기에서 성장의 과실을 딸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탈리아 밀라노는 상인들이 매일 거리로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은 거기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구했습니다. 세계적인 패션도시로 부상한 데는 이러한 무형의 노하우도 한몫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Q 한국의 방송·콘텐츠시장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까. 이 분야에서 뚜렷한 진전이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Q 이번 경제위기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예상합니까. 당장 경기회복 시기를 둘러싼 논란도 점입가경입니다.
이멜트 회장이 만난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은 희망적인 메시지들을 전했습니다. 물론 GE의 공식적인 경기 전망은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지금처럼 계속 어렵고 또 악화된다면 모두가 죽는다는 점입니다.


Q 잭 웰치와 제프리 이멜트 두 명의 최고경영자를 모두 겪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잭 웰치 전임 회장은 운이 따르는 경영자였습니다. 1980년대 들어 금융 부문이 급성장했으며, 인수합병으로 성장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반면 이멜트 회장은 고난 속에서 괄목상대의 실적을 올려온 경영자입니다. 이멜트 회장은 부임한 지 이틀 만에 9·11사태를 겪더니 작년에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이번 위기도 잘 수습할 것입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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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박대성은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가짜일까.' 지난달말 박씨를 교대역 인근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만나기 전 제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입니다. 올해 32세인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 과연 이 남자가 지난해 원달러 환율의 추세적 상승과 더불어 한국경제의 위기를 내다본 그 인물이 맞는 지 솔직히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좀 두서가 없다고 할까요. 그는  인터뷰 초반, 자신의 생각을 말로 조리있게 옮기지 못했습니다.  답변도 대부분 짧은 단답식이어서 마감을 앞둔 저로서는 이 인터뷰를 어떤 식으로 정리할 지 솔직히 좀 막막했죠.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그러나 분위기가 무르익자 완전히 딴 사람이 됐습니다. 인터뷰 시작 20여분이 지난 뒤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네르바는 고수였습니다. 주요 사안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흔들리지 않는 '프레임'이 있었습니다.  숲을 보면서 나무도 살피는 균형 감각도 돋보였습니다. 거시경제 진단은 물론 국내 은행권의 영업관행 등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촌철살인의 기지가 번득였습니다.
경제학 서적 너댓권을 읽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의 경지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직권상정으로 국회를 통과한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신방겸영이후 보수화의 길을 걸어온 일본 사회의 사례를 곁들여
설득력있는 반대의사를 피력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의 속성상 늘 분야별 고수들을 찾아다니게 마련입니다.  
이들중에는 이름값을 하는 고수들도 있지만, 기존의 명성이 허명에 불과한 인물들도 적지 않은 편입니다.  제가 본 미네르바는 분명 전자였습니다. 저와 동행한 사진기자는 인터뷰 시간대별 미네르바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카메라 프레임으로 본 그의 눈은 인터뷰 초반 풀려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정도 흘렀을 때 프레임에 잡힌 그의 눈은 빛을 내고 있었다." 제가 느낀 미네르바의 변화와 대동소이한 진단입니다. "여자 친구 얘기는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나를)만났을 때는 경제문제를 물어달라"며 지금까지 만난 일부 기자들의 질문에도 불만을 털어놓더군요.



주가지수 1500은 ‘僞作’…하반기 시장불안 변수 많다”

미네르바 박대성에게 ‘경제 실체’를 묻다

2009년 08월 04일 17시 27분



달러가치 급락은 글로벌 경제를 뒤흔드는 뇌관이었다. 다들 달러가 문제라고들 했다. ‘애디슨 위긴스’나, ‘폴 크루그먼’ 스탠퍼드 교수를 비롯한 유명 경제학자들이 바로 이런 달러 위기론의 선두주자였다.

국내 시중은행이 중소 기업인들을 상대로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한 것도 ‘달러 위기’를 맹신한 결과다.

하지만 이번에도 위기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 투자은행들을 쓸어버렸다. 부동산이 위기의 진앙지였다.

그리고 달러화의 급등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당시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내다본 이가 미네르바 박대성(31) 씨이다.

스스로를 ‘고구마 파는 늙은이’로 칭하던 미네르바는 주가 예측도 정확했다.
그의 예측 능력은 위기 국면에서 맹위를 떨쳤고, 가방끈이 긴 제도권 전문가들은 머쓱해졌다.

미네르바 박대성 씨를 지난달(7월) 29일 교대 인근의 한 로펌에서 만나 지난해 ‘필화(筆禍)’를 겪은 ‘소회’와 더불어, 하반기 경제 예측을 물어보았다.


Q.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정확한 예측을 해냈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전문대 출신이라는 냉소였습니다.
정부에서 한 개인을 그런 식으로 매도한 것 자체가 불합리했어요. 한국사회의 불합리한 병폐입니다.


Q. 요즘은 어떻게 지냅니까.
등산을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갑니다. 달리기도 자주 합니다. (신문) 기고문도 쓰고, 또 언론사 인터뷰도 하며 글도 읽습니다.

Getting interviewed in the Parade by NY1, live.
Getting interviewed in the Parade by NY1, live. by mecredis 저작자 표시




Q.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면서요. 경제학을 더 공부할 계획입니까.
마케팅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 국은 내수시장이 작습니다. 중국이나 일본, 아시아 시장,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데, 상품이나 서비스 혹은 스스로를 어필할 수 있는 마케터로서의 능력이 중요합니다. 자영업자 500만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국내시장에서도 마케팅은 필수입니다.

NYPD - Hogs
NYPD - Hogs by moriza 저작자 표시비영리




Q. 제도권 경제학자들은 지난해 금융위기 국면에서 극히 무력했습니다. 유학을 갈 필요가 있습니까.
(저는) 전체를 통해서 부분을 해석합니다. 이런 메커니즘에 먼저 익숙해져야 합니다. (제도권 전문가들은) 투기자금이 원유시장이나 금융 선물시장에 유입될 때 어떤 파급 효과를 불러올지 오판했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에 치우쳤습니다. 미 금융시스템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가 정확한 예측의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선진 시스템은 한번 돌아보고 싶습니다.


Q. 지난해 원·달러 환율의 흐름을 정확히 예견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혹시 1억원이 지금 있다면 주식에 투자할 의향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Q. 국내 증시가 과열돼 있다고 보는 건가요. 하반기에 이른바 ‘바이 온 딥스(Buy on Deeps)’ 전략을 추천하는 재테크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주가지수가 최근 1500을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지수 1500은 ‘위작’입니다. 정부가 4조원에 달하는 돈을 풀어 증시를 부양한 결과입니다.

하반기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변수들이 많고, 그 폭발력을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좀 더 지켜보며 관망해야 할 때입니다. 단타나 그런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NYSE Panorama
NYSE Panorama by Duo de Hale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주가가 한때 1500을 돌파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수 1500은 ‘위작’입니다. 정부가 증시에 4조원에 달하는 돈을 푼 결과입니다. 하반기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변수들이 많고, 그 폭발력을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Q. 종합주가지수 1500이 ‘위작(僞作)’이라는 건 어떤 뜻입니까.

지금은 ‘보장된 호황기’가 아닙니다. 무역 흑자가 많이 나고 있지만 정상적인 수출입 동반상승의 결과는 아닙니다. 미국이 만약 금리를 올리면 국내에 투자된 자금이 부분적으로 이탈할 겁니다.

자금이탈은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불러오게 마련입니다. 환율 상승과 더불어 금리 조정으로 (자산가격의) 거품이 꺼지면 주가도 조정을 받게 될 겁니다.

Big Bubble
Big Bubble by h.koppdelaney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Q. 국내 증시가 하반기에 큰 폭의 조정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까.

한국 증시는 ‘이중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부가 증시를 떠받쳤으니 그 하락 폭도 크겠죠. 미국에서 금리인상 냄새만 풍겨도 국내에서 반응이 올 겁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버블이 꺼지면 주가가 조정을 받는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겠습니까. 한때 디커플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만, 경기 불황기에는 미국 경기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는 ‘커플링’이 대세입니다.


Q. 한국 정부가 출구전략에 신중한 것도 자산시장에 미칠 영향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인가요.

한국과 미국의 금리는 지난 2005년 역전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전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전 세계가 똑같은 저금리 기조가 아니었어요.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라는 변수도 있었습니다. 금리가 역전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입니다. 제로 금리인 상황에서 금리가 역전되면 100% 돈이 빠져나갑니다.

5 glowing yen
5 glowing yen by TruShu 저작자 표시비영리




Q. 하지만 소비심리를 비롯해 괜찮은 경제지표들을 애써 무시하는 건 아닙니까.

숫 자를 그대로 믿으면 곤란합니다. 낙관과 비관의 신호들이 어지럽게 교차합니다. 하루는 소비심리가 회복됐다고 언론에서 떠들다가, 다음날 갑자기 미 주택가격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소비심리가 회복된 것이지, 소비가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tohu-bohu#6
tohu-bohu#6 by the|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정부가 재정을 더 과감하게 풀면 되지 않을까요.

문제는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미국 등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리스크가 있지 않습니까.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선진국과 비교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물론 북한 리스크가 없다면 미국처럼 돈을 더 많이 써도 상관없겠죠.


Q.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회복 여부를 언제 알 수 있습니까.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재정’으로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소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은행들이 돈을 풀지 않아도 봄기운이 완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 재정의 약발이 떨어지는 3분기나 4분기경이면 그 실체를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 경제가 정말 바닥을 치고, 건강을 회복했는지 알 수 있겠죠.

“The beautiful thing about learning is nobody can take it away from you.”
“The beautiful thing about learning is nobody can take it away from you.” by ginnerobot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Q. 지난해 과다한 해외차입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른 국내 은행도 경영지표가 호전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저축률이 한때는 20%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3% 정도에 불과합니다. 예대마진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은행채를 발행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도입니다. 가계 부채도 많습니다. 은행에 개인예금이 몰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I had an idea that it might happen
I had an idea that it might happen by Pulpolux !!! 저작자 표시비영리




Q. 은행권을 뒤흔들 리스크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수수료를 더 올리고, 대출이자를 인상하는 것만으로는 성장하기는 어렵습니다. ‘투자은행’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지난해 금융위기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금융 파생상품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역설적으로 위기 국면에서 그 피해가 적었던 것은 활동 무대가 국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Piggy savings bank
Piggy savings bank by alancleaver_2000 저작자 표시



Q. 국내 은행들이 스페인 ‘산탄데르’ 모델에 주목하는 것도 해외 시장에서 성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요.

산탄데르은행이 북미, 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파고들 수 있던 이면에는 이 지역이 과거 스페인 영역권이었다는 사정이 한몫을 하고 있어요.

구 식민지 사람들의 소비 습관이나 습성 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략할 수 있던 겁니다. 유럽 업체들이 아프리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잘 들어보지도 못한 은행이 금리를 조금 더 준다고 해서 거래를 트기는 쉽지 않습니다. 국내은행들의 단기 위주 경영방식도 문제입니다.

Cathedral / Catedral
Cathedral / Catedral by . SantiMB .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해법이 있습니까.

글로벌 은행들은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 진출해 기본적인 인프라를 다 깔아놓은 상태입니다. 실적이 안 좋을 때 은행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은 시장 개척에 한창 나서며 물적 기반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성과 부진의 책임을 은행장들에게 묻는다면 해외 시장에서 철수해 국내 영업에 주력할 겁니다. 긴 호흡으로 성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저축률이 한때는 20%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3% 정도에 불과합니다. 가계 부채도 많습니다. 은행에 개인예금이 몰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Q. 하지만 파생상품 투자에 나섰다 천문학적인 손실을 초래한 국내 은행장이 비판의 도마에 최근 올랐습니다.

투자 당시에는 이익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긴 호흡으로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책임을 묻는다면 리스크가 따르는 모든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Q. 중국은 지난 1997년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는 물론,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에도 독야청청하지 않습니까.

중국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인들은 매우 실용적입니다. 사례가 없으면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이론을 믿지 않습니다. 바닷가에 인접한 특구를 만들고 그 득실을 철저히 따져본 뒤 다른 지역에 적용하는 것이 그들의 실용적인 접근방식입니다.

중국은 지난해 가이트너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위안화를 절상하지 않았습니다. 외환시장을 대폭 개방했다 환란을 겪은 한국의 사례를 철저히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환율제도는 마치 고정환율제 같습니다. 변동성이 극히 적은 편입니다. 중국은 한국을 정치, 경제 분야의 테스트 마켓으로 삼고 있습니다.

The Chairman of the Party
The Chairman of the Party by Telstar Logistics 저작자 표시비영리




Q.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은 전 세계 투자고수들의 로망이기도 한데요. 혹시 그를 닮고 싶은 건 아닌가요.

조지 소로스를 만든 게 바로 영란은행 사건이 아닙니까. 캐리 트레이드로 ‘파운드’화에 ‘몰빵’을 해서 돈을 벌었죠. 그의 재귀성 이론에는 관심이 높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엄청난 기부를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George Soros -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Davos 2003
George Soros -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Davos 2003 by World Economic Forum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Q. 지난해 키코 상품을 구입한 중소기업들은 ‘달러위기’를 경고하는 전문가들을 너무 믿었던 것 같습니다. 재테크에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훗날) 돈을 벌어 가난한 이들이나, 대중들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Q. 요즘 가장 자주 보는 지표가 무엇입니까.

미국 주택시장 동향입니다. 거래량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가격의 추이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답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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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 Lounge |김용내 한국학 중앙연구원(舊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사장에게 국민통합을 묻다



◇ “無信不立, 신뢰 없이 정치없어…

충청향우회 총재로 분열 치유할 터”◇


김용내 한국학중앙연구원(舊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사장은 고건 전 총리와 더불어 관가에 30대 초반 국장 시대를 연 정통 관료 출신이다.

‘이립(而立)’을 조금 지난 나이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3공화국 내무부 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도지사를 거쳐 서울시장으로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이끈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새마을운동 노랫소리가 전 국토에 울려퍼지던 시절부터 공직에서 활동했으며, 덕성여대 총장 등 교육자로 후학 양성에도 앞장서온 그는 균형감각이 뛰어난 한국 사회의 대표적 원로이다.

그 런 김 이사장이 나폴레옹의 침공에 맞서 독일 국민에게 애국심과 단결을 호소하던 ‘피히테’의 심정으로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종식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현 정부를 뒤흔들고 있는 혼란의 시대를 중도(中道)의 리더십으로 극복해 선진화를 앞당기자는 게 김용내 이사장의 주장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충청향우회 총재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편집자 주

|Profile|

학력 : 1934년 충남 아산 출생 / 1957년 서울대학교 법학학사 / 1960년 서울대학교대학원 행정법 석사 / 1985년 인하대학교대학원 행정학 명예박사

경력 : 1955년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 1980년~1984년 총무처 차관 / 1987년~1988년 서울시장 / 1989년~1990년 총무처 장관 / 2008년 12월~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Q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가 김 이사장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장학금을 받았다고요.

고등학교(현대고) 1학년인데, 공부를 무척 잘해 다행입니다. 전교생중 한 명에게만 주는 장학금을 최근에 받았어요. 무엇보다 동료 학생들에 대한 배려심이 강한 것이 마음에 들어요.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우렁차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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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112 by xelloss.pe.k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유신 말기 차관급인 공무원연수원장을 하시며 ‘동량지재’들을 가르치셨는데요. 그때 생각이 나시겠습니다.

당시 제가 가르치던 공무원 학생들이 지금은 각 부처의 차관이나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어요. 행시 기수 17~22기들이었습니다.

현 정부에서도 차관들만 10여명에 달합니다. 장관급도 있습니다. 요즘도 ‘선생님 저를 기억하시냐’는 고위공무원들의 연락이 종종 옵니다. 삶의 낙이지요.

▶Q 30대 초반에 내무부국장을, 서울올림픽 때 서울시장을 역임하셨어요. 충청향우회 총재에 선임됐을 때 의외라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35 년간 국민의 공복으로 근무했는데, 공교롭게도 단 한 번도 고향인 충청도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 아쉬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2006년 향우회 총재직을 수락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섭니다. 충청도는 정치, 언론, 사회 각 분야에서 약진했습니다만 국가의 재원 분배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바로잡고 싶어요.

깃발 (the flag)
깃발 (the flag) by chita21 저작자 표시



▶Q 지금까지 영호남 갈등으로 엄청난 국가적 비용을 치렀습니다. 충청 지역을 대변할 단체가 꼭 필요합니까.

분노와 갈등, 대립과 분열의 세기를 넘어 ‘대동(大同)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요. 지역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현안들을 하나둘씩 풀어내다 보면 더 큰 문제에 대한 해답도 보이지 않겠습니까.


▶Q 캉유웨이가 꿈꾸던 그 이상 사회 말인가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요즘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빈자(貧者)와 부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성세대와 신세대, 호남과 영남, 그리고 가족성원의 갈등으로 대한민국은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불안합니다. 소통과 통합의 시대정신은 실종됐습니다.

llorar a lágrima viva
llorar a lágrima viva by nyki_m 저작자 표시


▶Q 지난달 용산 참사는 우리 사회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뾰족한 해법은 과연 없을까요.

경 찰이 의도적으로 인명 피해를 부른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해 6명의 소중한 생명이 스러진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일각에서 서울경찰청장 해임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겠죠. 하지만 대통령의 입장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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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ckr_IMG_0011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내정자를 문책한다면 경찰 조직을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Q 용산 사태로 불거진 서민들의 박탈감도 해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청장 내정자가 (인사권자의 고민을 감안해) 자진 사퇴의 수순을 밟는 게 상생의 길이라고 봅니다.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일각의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Q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이러한 갈등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국론이 분열되고 있습니다만.


장 관에 부임해 텔레비전에 등장하면 벌써 당사자에 대한 이런저런 ‘숙덕공론’이 들려옵니다. 그 사람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출세하더니 달라졌다는 식입니다. 우리나라는 상대방을 감싸안는 포용과 관용보다 맹목적인 비판의 문화가 문제입니다. 향우회나 친목회에 가도 갈등과 파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Fight Club
Fight Club by Kevin Steele 저작자 표시비영리



▶Q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국민들의 ‘팔로워십’에도 최근 정국혼란의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까.

서 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을 만난 적이 있어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양국 사정에 정통한 신 회장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비해 공권력을 불신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물론 양국 국민들의 역사적 경험이 서로 다른 탓도 있겠죠.

부정하고 말살하면 리더가 향도할 수 없습니다. 아놀드 토인비가 극찬한 그 중용의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Q 황우석 박사 구명운동을 하신 것도 이러한 중용의 정신을 중시하기 때문입니까.

황 박사가 실험결과를 조작했는지를 (제가)확인할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줄기세포 조작이 사실이라고 해도 황 박사의 모든 학문적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은 아니라고 봅니다. 패자부활전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많았어요. 황 박사는 심지가 굳은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그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Cheering up Dr. Hwang :-(
Cheering up Dr. Hwang :-( by newflow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위기 돌파의 동력을 어디서 얻어야 합니까.

거대 여당이 야당에 비해 두 배 이상(171석)의 의석수를 보유하고도 왜 지리멸렬한 걸까요. 이명박 대통령은 그 이유를 잘 헤아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족식족병민신지의(足食足兵民信之矣)’를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겨볼 때입니다.


▶Q 춘추시대를 살다 간 유학의 성현인 공자는 ‘정치의 요체’가 어디에 있다고 보았습니까.


자 로가 스승에게 ‘정치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정치는 ‘족식족병민신지의(足食足兵民信之矣)’라는 게 공자의 답변이었어요. 식량을 비축해 백성을 배부르게 하며, 군사를 길러 위태로움을 예방하고, 백성에게 신뢰를 얻는 것을 정치의 요체라고 보았던 거죠. 공자는 특히 신뢰 확보를 국방이나 식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았어요.

공자를 모시는 사찰
공자를 모시는 사찰 by Riki's 2nd Flickr album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Q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 시절 상인들과 장기간 협상을 거쳐 청계천을 복개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레 이건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을 때 <뉴욕타임스>의 집중적인 비판대상이었습니다. 이 권위지는 공화당의 보수일변도의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나셨죠. 대처와 손을 잡고 구소련과 냉전을 승리로 이끈 그는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측근들이 레이건의 침대 머리맡에 <워싱턴타임즈>를 둔 배경입니다.

Make Me America
Make Me America by S.S.K.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레이건의 참모들은 왜 ‘특정 신문’을 침대에 올려놓았습니까.

늘 웃고 쇼맨십도 뛰어난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의 고통스런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겠죠. 통일교 계열의 <워싱턴포스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레이건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루만질 매체였습니다. 대통령에게도 신랄한 비판은 아프기 마련입니다. 대통령이니까 더 아픈 거겠죠.

▶Q 고통스러워도 여론은 수렴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넷 여론조사 지지율이 바닥입니다만.

리 더가 인터넷 여론조사에 ‘일희일비’ 하다 보면 ‘포퓰리즘(populism)’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일방적으로 추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독일이 패망하기 직전 야당인 노동당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했습니다. 히틀러의 유럽 정복을 저지한 영웅치고는 초라한 퇴장이었습니다. 독선적 ‘리더십 스타일’이 반발을 불렀던 거지요.

Winston
Winston by Pig Sty Avenue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그래서 권력을 상실한 건 아닐까요.

처 칠이 수상으로 재직할 때 그는 정치인들의 공적이었습니다. 대처도 ‘선출된 독재자(elected dictator)’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동시대 지도자들은 이제 제2의 처칠이나 대처라는 호칭을 영예롭게 여기지 않습니까.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도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여론대로 움직인다면 리더가 아니라 ‘팔로워(follower)’겠죠.


churchill
churchill by hyperbore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부임 13일 만에 대국민 사과성명을 낸 오바마 대통령도 루스벨트 전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하죠.

역 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예측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FDR)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노변담화를 통해 국민들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대공황의 후폭풍으로 흔들리는 미국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다시 되살려낸 주인공입니다. 그는 국민들은 ‘불안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결정은 과감하고 신속했으며, 인내심 또한 깊었습니다.

NY - Hyde Park: FDR NHS - Senator Robert S. Kerr Memorial Garden - Franklin Delano and Eleanor Roosevelt statue
NY - Hyde Park: FDR NHS - Senator Robert S. Kerr Memorial Garden - Franklin Delano and Eleanor Roosevelt statue by wally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박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세계 각국을 분주히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는 민생 문제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박 대통령은 집념이 무척 강한 지도자였습니다. 한민족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비전이 명확했습니다. 축산 국장을 지낼 때였어요. 청와대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뒤뜰에서 무언가를 삽으로 파헤치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름 없는 ‘풀’들이었어요.


▶Q 무엇을 하고 있던가요.

우리나라 소들이 겨울철이면 먹을 것이 없어 비쩍 마르는데, 이런 풀들을 재배해 소들에게 먹이면 어떻겠냐고 묻더군요. 당시에 소들에게 볏짚를 먹였는데, 겨울철이면 먹을거리를 제대로 공급하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는 가난탈출이라는 목표에 온몸을 던졌습니다.

Naqueles tempos
Naqueles tempos by Eduardo Amorim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그래서 한우를 먹일 ‘풀’을 겨울철에 재배하는 데 성공하셨습니까.

뉴 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분주히 뛰어다녔습니다. 두 나라를 방문해 보니 그 방대한 규모에 놀라면서도 실망을 금치 못했어요. 겨울철인데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목장이 푸른색이었거든요. 우리나라 실정과는 맞지 않았던 겁니다.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니 이번에는 ‘스위스’로 가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다음은 또 일본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돌아다닌 나라들만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Q 지도자의 비전(vision)이 명확했고, 효율적인 실행(execution)이 뒷받침된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군요.

손자는 위대한 장군의 조건으로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꼽았습니다. 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담력이 지도자의 요건이라는 뜻이죠.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유형의 지도자였습니다.

Napoléon 1er
Napoléon 1er by Pierre Éthier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장관을 거치지 않고 실무자들을 불러 지시를 내렸어요. 대단한 열정이었습니다.

▶Q 당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도 많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한우를 활용한 대일무역역조 개선방안도 제시되지 않았습니까.

내 무부장관과 주일 대사를 지낸 엄민영 씨가 대통령을 만나 일본에 한우를 수출하는 방안을 건의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 고베 유키와 가장 육질이 비슷한 소가 바로 한우로, 10만마리만 수출하면 당시 대일무역적자 1억달러를 단숨에 해소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였어요. 말단 공무원에서 고위 관료, 대통령까지 가난탈출이라는 비전의 실현에 앞장섰습니다.

▶Q 박 대통령은 공장 시찰을 나갔다가도 마음에 드는 이들을 발탁했다고 하죠.

박 정희 대통령은 늘 무엇인가를 메모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현지 시찰을 나가서도 메모지를 꺼내 무언가를 작성했습니다. ‘저 사람 참 똑똑하다’ 싶으면 메모를 해두었다 검증을 거쳐서 발탁했어요. 박 대통령은 인재를 발탁할 때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국장 시절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를 국빈 방문할 수 있던 것도 박 대통령의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Q 관계에 입문한 이후 화려한 길을 걸어오셨는데, 이름은 갑자기 왜 개명하셨습니까.

특별한 뜻은 없습니다. 이름자 중에 ‘래’를 ‘내’로 바꾸었습니다. 한글 음운학의 원리에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위대한 군주이자 뛰어난 음운 학자이던 세종대왕의 가르침을 늦게나마 따랐습니다.

▶Q 35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며 많은 지도자들을 만나셨는데, 좋은 지도자의 요건은 무엇인가요.

유라시아 대륙을 풍미했던 칭기즈칸의 ‘신속함’과 더불어 부도옹 덩샤오핑의 ‘인내심’을 두루 갖추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Mongolia, Ulan Bator
Mongolia, Ulan Bator by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유형의 지도자라고 봅니까.

‘운’과 ‘고난’이 늘 함께하는 지도자입니다. 한나라당 경선 국면과 최근 용산 사태를 돌아보면 고난 속에서도 운이 따르는 리더라는 생각이 듭니다.

Korea's new President, 이명박
Korea's new President, 이명박 by hojusaram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Q 정부는 ‘선진화’라는 깃발을 내걸고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선진화의 첩경이 있을까요.

조 선 건국의 설계자인 삼봉 정도전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五常)의 원리를 따서 설계한 것이 ‘사대문’과 ‘보신각’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보신각이 사대문의 중심에 있으며, 인의예지를 상징한 ‘흥인문(동대문)’, ‘숭례문(남대문)’등 도성의 관문에서 정확히 같은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상의 중심이 바로 ‘신뢰(信)’라는 가르침을 형상화한 겁니다. 신뢰란 이처럼 중요합니다. 선진화라는 국가 목표는 결코 높은 GDP만으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국가도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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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단 미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게 묻다

“대북정책 수정 안 하면 개성공단 미래도 불투명”

2009년 06월 16일 09시 21분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남북한 화해협력의 화룡정점인 개성공단이 남북관계 악화의 역풍에 휘말리며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햇볕정책의 산파 역할을 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지난 12일 ‘생명과 평화 포럼’에서 만나 남북 갈등의 배경, 개성공단의 미래 등을 질의했다.

정 전 장관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남북관계 전문가이다.


Q 남북이 다시 개성공단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만났습니다만, 전망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이 이번 회담과 관련해 ‘남북 접촉’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대목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날 회담도)북한의 일방적인 통보로 끝날 개연성이 크다고 봅니다.


Q 공단 철수를 결정한 업체가 등장하면서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의 ‘옥동자’였는데요.
북측 담당자들은 재작년까지 남측 인사들의 체제 비판 발언을 듣고도 못들은척 자리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문책을 받을까 현장을 피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들 식으로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자기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Q 남북관계가 현 정부 출범 이후 불과 일 년여 만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젠가요.
지난 2006년 히로시마에 간 적이 있습니다. 원자탄이 투하된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했는데, 전시관에 가보니 미국의 원폭 투하를비난하면서도 정작 일본의 진주만 공습 관련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Q MB정부가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상대방에 떠넘기고 있다는 뜻입니까.
북한의 개방을 경제협력의 조건으로 제시한 건 문제입니다. 개혁개방은 긴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긴 과정을 하나의 조건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그 과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얘기밖에 더 되나요.


Q 현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문호를 개방해야 도울 수 있다는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상호주의 정신에 합당한 제안은 아닐까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화 원칙이 뼈대입니다. 핵을 먼저 폐기하지 않으면 어떤 지원도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비핵개방화 원칙을 수용할 경우) 북한의 국민소득을 10년 뒤 3000달러 수준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반대급부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은 경제논리로만 따져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Q 왜 그렇습니까.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현재 400달러 정도입니다. 세계 최빈국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단순히 복리로계산해서 두 자릿수로 계산을 해도 10년 후 3000달러가 될 수 없어요. 북한 측은 이러한 부분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있습니다.


Q 북한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더 많은 반대급부를 얻어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은 아닐까요.
이 대통령은 남북간 합의서가 중 기본합의서가 가장 잘돼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이 발언으로 마치 6·15, 10·4 남북합의서를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준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남북한 지도자들이 직접 만나 체결한 합의서는 이 두 가지뿐입니다.


Q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북한도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한때 상당한 기대감을 피력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기업인 출신이니 이념적인 성향에 얽매이지 않을 것으로 본 거죠.

실리를 따지는 데 익숙한 그가 국제 정세를 살펴 국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죠.

북한의 통전부장이 대선전 남한에 와서 참여정부는 물론 이명박 캠프 사람들까지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Q 북한에서도 대선을 전후해 남한의 정권 교체 가능성을 주시하며 물밑에서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군요.
이 대통령 측 인사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관계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그들에게) 했습니다.

하지만 인수위가 출범을 하면서 현 정부를 좀 더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북측이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인수위에서 나오는 얘기가 중구난방이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얘기가 저마다 달라 혼선을 부추겼습니다.


Q 남북관계가 돌어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은 아닙니까. 중국측도 비슷한 우려를 피력했다고 하죠.
지난 5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시고 중국을 방문해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지낸 탕자쉔이 주최한 만찬석상에 참석했어요.

중국관리들은 당시 북한의 대남태도가 4단계를 거치며 변화하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북한이 기업인 출신 대통령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더니 지금은 강력한 반감을 피력한다는게 그들의 전언이었습니다.


북한의 통전부장이 대선전 남쪽에 와서 참여정부는 물론 이명박 캠프 사람들까지 만났습니다. 참여정부에서 알선을 해서 이명박 대통령과인연이 닿는 사람들을 본 거죠. 그때 이 대통령 측 인사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관계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얘기를(그들에게) 했습니다.



Q 중국 측의 이러한 분석을 과연 곧이곧대로 신뢰할 수 있을까요.
(저도) 30년간 북한을 연구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라고 하는 김정운을 본 적도 없으며 그의 후계자등극 여부를 파악하는 일도 제 능력 밖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뒤통수를 보기 때문에 강약점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앞에서 보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요.


Q 보수단체들의 대북 삐라 살포나,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나온 선제타격설 등도 대남기류를 악화시키지 않았습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이 한창일 때여서 북한 측의 반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반감의 정도를 넘어서 거의 분노를 느끼는 단계로 보고 있어요.


Q 하지만,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이른바 ‘퍼주기식 지원’에 비판적인 정서가 일각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스탈린이 죽고 흐루시초프가 등장하면서 중소분쟁이 뜨거워집니다. 북한은 중국에 소련카드를, 소련에는 중국카드를 제시하며 많은 것을 얻어냈습니다.

중국과 소련이 대북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을 입맛대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 정도 지원을 하면서 버릇을 못 고쳤다고 하는 건 성급한 감이 있습니다.

모를 심어놓고 자라지 않는다고 뽑아버리면 죽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입니다.


Q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도 집권 초 비교적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습니까. 클린턴 국무장관도 북한의 후계구도를 언급 했습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금방이라도 일이 터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다른 그림이 펼쳐집니다.

클린턴 행정부도 지난 1998년 강경한 목소리를 내더니 결국 페리 프로세스로(북측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았습니까.

오바마의 파리 발언은 부시의 발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걱정스런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상을 제외한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Q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오바마 정부에 많은 조언을 하고 있는데, 한반도 정세에 별다른 변수는 되지 않을까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메테르니히를 전공했습니다. 메테르니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상으로 외교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죠.

중국의 합종연횡의 대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이쪽과 손잡고 저쪽을 압박하고, 다시 저쪽과 손잡고 이쪽을 압박해 나라를 보존하는 외교의 달인이었습니다.


Q 북한을 춘추전국시대 종횡가들의 방식으로 다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메테르니히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위세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키신저는 배운 대로 조언을 해주지만 북한은 특이한 나라입니다. 내성이 무척 강해진 존재입니다.


Q 원론적인 질문입니다만,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이토록 집착하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중국이 오늘날 ‘기호지세(騎虎之勢)’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미국의 문화, 물자, 투자가 들어가면서 중국은 초고속 성장의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베트남도 비슷합니다. 미국이 수교를 하면서 ‘도이모이’가 속도를 낼 수 있던 겁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집권 8년 중 6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결코 굽히고 나오지 않다가 지난 2006년 핵실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부시 전 대통령은 10월9일 핵폭탄을 맞은 거예요.


Q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는 일련의 행동이 모두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뜻인가요.
북한은 1988년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통일은 누구를 먹거나 먹히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했습니다. 지난 1991년 신년사에서도 이 얘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그 의미를 당시에는 정확히 몰랐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되돌아보니 이 사람들이 무척 다급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동구권이 무너지고 소련이 쪼개졌으며,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일되지 않았습니까.


Q 미국이 북한을 타격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미국은 전선을 동북아에 하나 더 확장할 여력이 없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경제재제의 수위도 너무 강하면 안 되는 입장이 아닌가요.

더욱이 미국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군사행동은 어렵습니다.


Q 경색된 남북관계를 회복할 묘수는 없습니까. 개성공단은 어떤 식으로든 살려야 하는 게 아닐까요.
상대방의 정치문화를 감안해야 합니다. 이것을 외면하고서는 정치적인 돌파구가 생길 수 없습니다.

현 정부는 7·4 공동성명이후(모든 합의서의) 남북간 합의 이행 여부를 검토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나온 남북간 합의서가 400개 정도가 됩니다. 북한에서는 속된 말로 장난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Q 진정성을 입증할 방법이 과연 있겠습니까.
짐승도 몸통이나 머리를 잡고 움직여야 움직입니다. 꼬리를 붙들고 흔들어봐야 몸통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임기 중에 남북관계의 복원발전을 바란다면 6·15공동선언, 10·4선언 존중 의지를 현 대통령이 명확히 천명해야 합니다.


Q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부시 행정부 시절 ABC(Anything But Clinton)를 떠올리게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정책이 결국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 점이 아닌가요.
부시 대통령은 집권 8년 중 6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결코 굽히지 않다가 지난 2006년 핵실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10월9일 핵폭탄을 맞은 거예요. 이후 북한을 달래고, 테러지원국에서도 해제했죠. 하지만 그때는 해가 서산에 넘어간 뒤였습니다.


Q 자칫하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통미봉남(通美封南)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북한은 김정일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을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보고 있어요.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할 당시를 다룬 회고록을 찾아보세요. 북한의 태도 전환이 가시화되는 시점이 오면 남측은 다시 통미봉남의 상황에 내몰릴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미리 해야 합니다.


Q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핵보유국’이 되려는 건 아닐까요. 미국 내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불포기론은 이데올로기적 복선이 깔린 주장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한일 양국의 대미 군사의존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미국에 군사적으로 더욱 의존하게 되고, 미국이 사라는 무기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미 군산복합체, 국방부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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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6 06:36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들에게 베푸는 운명을 타고난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빈한한 운세여서 서민의 리더였지만 베풀고 싶어도 밑천이 없었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수술 칼에 비유할 수 있는 사주입니다.”

●“경인년은 고래로 한반도가 병화에 휩싸이고,급격한 변화가 급물살을 타는 시기예요. 바로 2010년입니다. 대운하 공사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요. 정치권은 중임제 개헌을 추진할 수 있고, 북한체제에 이상이 올 수 있습니다.”

                                                           
“ 큰스님,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건가요.” 모진 세파에 휘둘리던 20대 청년은 무작정 ‘사찰’을 찾았다. 그의 삶은 늘 고달팠다. 가난으로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다. 눈칫밥을 먹는 형편에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웠다. 그는 큰스님에게 고통을 토로했다.

‘비우라’는 말은 공허하게만 들렸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는데 더 이상 버릴 것이 무엇이 있을까. 스님들이 하던 ‘면벽수행(面壁修行)’을 무작정 따라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던 고통스런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는 승려의 길을 포기했다. 결혼도 했으며, 직업도 몇 번 갈아탔다. 성공을 눈앞에 두었다고 생각한 순간 모든 것은 무너져내렸고, 그는 운명을 떠올렸다.

지 난 10월29일, 오후 7시 30분, 신대방 전철역 주변의 한 복덕방. 추워진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드물었고, 40대 여주인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거기가 용하기는 용합니까?” 복덕방 여주인에게 ‘청송철학원’ 가는 길을 물었더니 거꾸로 호기심 어린 질문이 날아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철학원 위치를 묻는 이들이 방문하니 얼마나 영험한지 꽤 궁금했던 모양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이 역리학자가 과거 큰스님을 상대로 고통을 토로하던 김정섭 청송철학원장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온라인에서 그를 부르는 호칭이 됐다.

작년 1월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 한 꼭지가 발단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 더불어 금융시장 혼란을 예측한 그의 발언이 최근 인터넷을 들끓게 한 것. “대선 후 부동산과 주식시장에서 난리가 난다”는 대목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현금을 최대한 보유하라”는 글귀에 이르러서는 말 그대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예측도 적중했다. 역술인들 중 모든 질문에 모범답안을 내놓은 이는 그가 유일했다. 과거 김일성 주석 사망을 예견해서 화제를 모은 심진송 씨를 비롯해 장안의 내로라하는 역술인이나 무속인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는 요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손님 중에는 초대받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다. 내공을 서로 겨뤄보자며 도전장을 내미는 ‘역술인’이나 ‘무속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주식시장이 거꾸러지고, 펀드가 반 토막이 나면서 자신의 앞날이 불안해진 손님들도 부쩍 늘어났다. 하루에 100여명에 달하는 이들이 고민을 토로한다고 김 원장은 귀띔한다. ‘용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정치인 보좌관들도 자주 들른다.

선거 때면 공천 여부가 알고 싶은 국회의원 후보자들도 문지방이 닳도록 오고 간다. 대부분 신원을 숨기지만 공통점이 있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는데, 욕심들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재물이 많은 이들이 권력까지 노리는 거지요.

주식시장 내년 초까지 안정세 유지

그 가 금융시장 대혼란을 예고했던 때는 지난 2006년 10월경이었다. 경제지표는 비교적 양호했다. 주가는 다음해(2007년) 역사적인 고점(2000선)을 돌파했으며, 부동산시장도 가파른 상승 행진을 거듭했다. 당시만 해도 김 원장의 이러한 예측은 뜬금없어 보이기만 했다.

“정해년은 늘 풍요롭고, 사람들도 행복했지요. (저도) 그 속에서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듯한 맹렬한 기세의 ‘불덩어리’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물이 극에 달하면 되돌아온다는 ‘물극필반(勿極必反)’의 원리는 이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의 경고를 무시했던 이들은 그 대가를 치렀다.

요즘 그의 사무실에는 펀드가 망가지면서 삶의 희망도 잃은 이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펀드 열풍에 빚을 얻어 막차를 탔다 빚더미 위에 올라선, 말 그대로 칼날 위에 선 사람들이다. 쥐들이 기둥의 밑둥을 갉아먹어 서까래가 무너지니 무자년은 서민들의 삶이 괴로운 시기이다.

김 원장은 ‘60갑자’의 원리를 근거로 제시했다. 역사적으로도 무자년은 성난 불길이 쇠하고, 서서히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역사는 두 번 되풀이되는데, 희극과 비극을 번갈아 연출한다는 철학자 헤겔의 통찰력은 국내의 한 역술인의 미래예측과 일맥상통한다.

그 의 전망은 공교롭게도 국내 주식시장의 흐름과도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지난해 역사적인 고점인 2000선을 돌파했던 주가는 지난달(10월) 1000선이 무너졌으며, 다시 급등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한동안 연출했다. 기운이 성한 여름이 가고,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닥쳤다는 역리학의 해석과 일치한다.

불안감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금융부문의 위기가 실물부문을 뒤흔들면서 외환위기를 방불케 하는 위기가 급습한다는 루머 탓이다. 그러나 김 원장은 일단 내년 1월까지는 비교적 평온한 시기가 펼쳐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국내 증시도 안정세를 회복하며 변동 규모가 하락하게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 이후는 어떨까. 그는 “대통령에게 물어보라”고 답변한다. 올해 상반기 위축됐던 운의 흐름이 다시 반전되며 정국을 주도해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 대통령이 쥐게 된다는 것이 김 원장의 예측이다.

이 대통령, 날카로운 칼의 사주

이 대통령의 사주는 ‘금’의 기운이 강하다. 김 원장은 ‘수술용 메스’에 비유한다. 헤집고 파헤치며 허무는 속성이 강하다. 국내 최대 건설업체의 최고경영자가 그에게는 천직이었던 셈이다. 지난 10년간 누적된 대한민국호의 환부를 도려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천시와 지리가 그의 편이다. 이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했던 것도 야권 예비주자들의 사주가 상대적으로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이 대통령을 밀어내는 운세는 아니었다.

“ 박 전 대표가 만약 남자로 태어났다면 이 대통령을 압도할 만한 운세의 흐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난에 처한 이 대통령이 위기를 만날 때마다 물을 주는 어머니 역할을 할 사주입니다.” 문제는 금의 기운이 강한 이들은 돌파력이 강하지만 독선적이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는 성향이 강하다. 올해 상반기 미국산 쇠고기 역풍에 밀려 대국민 사과를 할 때조차도, 진실함이 묻어나지 않았다.

맹 목성도 또 다른 한계이다. 이 대통령이 좌충우돌하며 ‘애’를 쓰지만 ‘비전’의 부재로 자칫하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서민들의 삶의 기반만 허물어뜨리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수술용 메스는 단호하게 살을 헤집지만, 자칫하다 환자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노련한 참모들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원장은 유인촌 문화부장관을 예로 들며 안타까움을 피력한다.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이장으로 출연할 때만 해도 그의 얼굴은 맑고 평안해 보였습니다. 지금은 사리분별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이런 분들이 보좌를 하니….”

동북방의 호방한 무장에 불과하던 이성계는 아무런 인연도 없던 유생 정도전을 만나면서 비로소 왕조 창업이라는 거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적인 인연보다 능력을 중시하고, 전 정권에서 근무하던 인사들이라도 과감하게 발탁할 수 있어야, ‘용이 구름을 만난 듯’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

인사는 만사라고 했다. 용도 강태공이나, 정도전 같은 장자방을 만나야 하늘로 오를 수 있다. 역리학자가 내린 진단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식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와 닮아 있는 점이 흥미롭다. 열변을 토하는 그의 왼쪽 팔목에서 흰색 빛깔의 염주가 눈길을 끈다.

“경인년은 고래로 한반도가 병화에 휩싸이고, 급격한 변화가 급물살을 타는 시기예요.” 변화의 방아쇠는 정치 부문이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예측이다. 변화는 두 갈래이다. 하나는 현 정부가 이때를 전후해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밀어붙일 가능성이다.

또 다른 변수는 북한 지도체제가 무너질 개연성이다. 김 원장은 지난 2006년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이미 예고한 바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이 서로 맞물리며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수면 아래 잠겨 있던 대운하도 첫삽을 뜨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경인년(2010년), 한반도에 대변화 엄습

“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복개 공사가 좀 더 대규모로 넓은 지역에 걸쳐 이뤄졌다면 쇠고기 파동을 비롯한 여러 악재들을 피해갈 수 있었을 겁니다. 이 대통령은 물과 인연이 깊은데, (기독교도인 그가) 부족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는 청계천을 추진한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대통령이 대운하를 강행할 것으로 관측하는 배경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운하 건설은 ‘갑론을박’이 뜨거운 사안이지만, 역학자들은 대운하 건설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학성강당을 운영해온 역학자 청곡 김종연 씨가 대표적 실례다.

그의 논리는 명확하다. 한반도의 새어나가는 기운, 즉 설기를 막을 수 있고 관광·문화자원을 확보할 수 있으며, 지속적인 고용창출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반도의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의 운세를 타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들에게 베푸는 운명을 타고난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빈한한 운세여서 서민의 리더였지만 베풀고 싶어도 밑천이 없었다. 남북관계나 국내 정치의 큰 흐름도 이러한 큰 틀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사주와 정책 방향은 밀접한 역학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 원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인사들의 사주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치에 통달하고 정법을 이뤘다.’ 김 원장을 따라다니는 세간의 평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은 어떻게 길러

야 할까. 흔히 주역을 떠올리지만 김 원장은 유학의 조종 공자가 심취했다던 이 책을 손에 들어본 적조차 없다. 사찰에서 선수련을 몸에 익힌 뒤 책을 멀리하고 있다.

“책을 읽기보다는 선수련을 해보라”는 것이 그의 제언이다.

지 식은 때로 명료한 판단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그의 책상은 매우 단출했다. 책상 위에는 노트 한 권과 역술인들의 필수품이라는 만세력 한 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스승에게 전수받은 ‘음양학’과 선수련이 정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젊은 나이에 머리를 깎고 수행을 한 불가적인 기반도 또 다른 강점이다. “국내의 역술인들 상당수는 미래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고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숨가쁘게 변화하는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역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정도전 같은 조선의 재상은 상대방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심안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주를 파악하고 그들을 통제하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일입니다.”

김 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동서고금을 초월해 역리학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배경을 이렇게 분석했다. 하지만 ‘벗’의 집에서 술 한잔을 나누다 지금의 한국일보 자리에서 암살을 당한 정도전의 운명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는 ‘염화미소’만 흘렸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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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까르푸는 철수 직전 왜 신규점포를 인수했을까?

기사입력 2007-10-25 11:57 |최종수정2007-10-25 12:09
“바로 그 궁금증에 협상비법 있다”

‘ 지상병담(紙上兵談)’.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는 고사성어다. 병법 지식에 관해 타의추종을 불허했으나, 진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해 40만 병사의 목숨을 고스란히 땅에 묻은 전국시대 조나라의 젊은 장수 조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금언이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책상물림을 꼬집는 촌철살인의 표현이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장이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할 때도 일각의 시선이 꼭 그랬다. 공무원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았다. 미국에서 잔뼈가 굵은 국제 변호사이자 글로벌 스탠더드의 신봉자. 선진국의 앞선 관행과 제도를 받아들여 막힌 ‘혈(穴)’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지 난 2002년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정도 앞두고 있었으며 노무현-정몽준 연대로 여당이 재집권 희망의 불씨를 거세게 지펴가던 시기였다. 그는 산업자원부 장관이 유력시 됐으며 이 부처 공무원들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몽준 후보의 지지 철회는 그의 운명도 바꾸어 놓았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고, 다시 대선의 계절이다. 야당 유력 후보의 지지율은 경쟁자들을 압도하고 있으며 여당 후보 확정으로 선거 분위기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장은 이번에는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을 파고드는 대신 협상학 책을 손에 들었다.

정치상황은 관심 밖이다. 내로라하는 유명 기업인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 김신배 SK텔레콤 대표이사,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양귀애 대한전선 고문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그가 협상학 책을 손에 든 배경은 안타까움의 발로에서라고 한다.

“OECD국가를 상대로 협상 콤플렉스 지수를 측정해보면 아마도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따지 않겠습니까. 한미FTA가 타결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늘 협상에서 끌려다니다 보니 주눅이 들어있습니다.” 그는 미국 변호사 시절 지켜본 국내의 한 철강기업 사례를 제시 했다.

중고 제철설비 매입에 나섰으나, 협상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노회한 상대 협상가들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이 국내 일류기업의 현주소였다. 국내 기업인들치고 전국시대 6국의 합종을 이끌어내고 재상에 오른 종횡가 소진을 모르는 이들은 드물다. 하지만 그에 필적할 만한 역량의 소유자는 언감생심이다.

전 원장은 바로 세 치 혀로 춘추전국시대 군주들의 마음을 휘어 잡은 소진의 스승 귀곡자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협상만 잘 해도 수천만달러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최근 협상 교육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글로벌기업‘성동격서’전략 배워야

“ 미국 대학 중 협상 강좌가 없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하버드대에서도 협상 프로그램을 운영중입니다. ‘카라스(KARAS)’라는 미국의 협상 전문기관은 지난 35년간 무려 85만 명에게 협상학을 전수해 왔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소진이나 장의에 비견될 협상의 귀재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들은 협상의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글로벌 기업의 첨병 역할을 한다.

‘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서쪽을 친다는 뜻이다. 적을 속이는 일은 병법의 기본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병법서인 손자병법의 저자 손자도 ‘병자는 궤도야(兵者 詭道也)’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글 로벌 기업들은 이 원칙에 충실하다. 지난 2006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프랑스에 본사를 둔 할인점 까르푸를 보자. 국내 토종 유통업체들에 밀리며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자 시장에서는 이 글로벌 기업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곧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이 회사는 한국 시장에서 신규점포 인수에 나섰고 철수 관련 루머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이 한 수(手)는 극적인 반전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는 것이 전 원장의 분석이다. “자사의 ‘배트나(BATNA: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를 최대한 개선하고 활용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였던 셈입니다.” 배트나란 협상 결렬 때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의 대안이다.

전원장의 분석은 이렇다. 무엇보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헐값에 점포를 매각하고 떠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동시에 잠재적인 인수 협상 대상자인 신세계 등을 압박하는 효과도 노렸다. 유력한 인수후보로 통하던 롯데마트가 신규 점포를 인수해 덩치가 커진 까르푸를 인수할 경우 이 회사(신세계)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냈던 것.

결국 인수전에는 신세계는 물론 이랜드까지 뛰어들었고 까르푸는 자칫하면 점포를 헐값 처분해야 했던 상황을 극적으로 뒤집는데 성공했다. 협상의 고수들이 어디 까르푸일까. 포드와 매각 협상 당시 70억달러를 호가하던 대우자동차를 단돈 4억달러에 인수한 GM, 그리고 하이닉스 매각협상에서 의도적으로 협상 초반에 불참하며 한국 측 담당자들을 애먹이던 마이크론의 애플턴 회장은 협상의 대가들이었다.

국내 기업들이 유독 협상 분야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협상을 과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탁구대 위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하고 불규칙한 공의 공방에도 원리와 법칙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천 재 종횡가 소진도 스승인 귀곡자 밑에서 3년 이상을 배웠으며, 또 현장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하고 나서야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이 점을 간과한 채 그의 저력을 단지 천재성의 산물로만 파악하고 지레 겁을 먹고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전 원장은 최근 이러한 협상의 원칙을 정리한 《협상 카리스마》를 최근 선보였다. 협상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열 가지 원리를 정리했다. 삶의 현장에서 간단히 적용할 수 있는 원리는 없을까. 사내 연봉 협상부터 용돈 책정, 그리고 물건 구매까지, 삶은 협상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는 통념과는 달리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솔직하게 될 때 상대방이 가장 편하게 느끼게 되며 이런 편안함이 성공적인 협상의 디딤돌이 된다는 것. 마찬가지로 협상 상대방의 불성실한 태도에 대해서는 결코 온화한 태도로만 일관할 필요도 없다. 화를 낼때 화를 내야한다는 것이 그의 경험칙이다.

◇전성철 원장이 말하는 협상의 10계명

1. 요구에 얽매이지 말고 욕구를 찾아라

2. 양쪽 모두를 위한 창조적 대안을 찾아라

3. 상대방의 숨겨진 욕구를 자극해라.

4. 상생의 협상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라

5. 숫자에 앞서 객관적 기준을 정해라

6. 합리적 논거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라

7. 배트나를 최대한 개선하고 활용해라

8. 좋은 인간관계를 협상의 토대로 삼아라

9. 질문을 꺼려서는 최선의 결과는 요원하다

10. NPT를 활용해 준비하고 또 준비해라

전성철 / 변호사,연구인
출생 1949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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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도미, 미네소타대에서 MBA와 로스쿨을 마치고 맨해튼의 대형 로펌인 ‘리드&프리스트’에서 파트너로 일했다. 지난 2003년 IGM세계경영연구원을 설립해 운영중에 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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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Interview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 위원장

기사입력 2008-02-27 22:24 |최종수정2008-02-27 22:27


◇“공기업 개혁 고삐 바짝 죄겠다”◇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두 달간의 공식활동을 마무리했다. 사공일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 위원장을 만나‘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프로젝트’에 대한 비전을 들어봤다. 사공 위원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을 거쳐 5공화국 재무장관을 지냈으며,세계경제연구원을 설립해 기 로스망, 후쿠야마를 비롯한 글로벌 석학들의 주요 어젠다를 국내에 소개해온 경제학자다.

                                                                    
◇사공일 위원장이 밝히는 MB경제정책◇

●법인세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단계적 인하

●조직개편 요체는 기획·조정 기능의 강화

●한국경제 잠재성장률 7%대로 끌어올릴것

●노동 시장 과거에 비해 더욱 유연해 져야

●규제 혁파, 공기업 개혁 고삐 바짝 죌 것


●“국내 노조 조직률은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노조를 조직하고 있는 일부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다른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결과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행태는 하루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

                                                                    
▶통폐합 대상인 과천 관가의 공무원들이 요즘 좌불안석이라고 합니다. 부처 통폐합 꼭 해야 하는 겁니까.

경제정책은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참여정부의 경우 경제 부총리가 있었지만, 힘이 실리지 않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각종위원회는 정책 혼선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누가 경제 사령탑인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파악하기가 무척 힘이들었습니다.

이번 정부 조직 개편에서 기획조정 기능을 대폭 강화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시정책과 예산 기능을 지닌 기획재정부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행정부와 집권 여당의 정책을 조율할 정무수석이 청와대에 부활한것도 비슷합니다.

▶정부 조직은 난산 끝에 통폐합 안이 가닥을 잡았습니다만, 대외 경제여건이 너무 안 좋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미국경제가 경기 침체(recession)로 치달을지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도논란거리(debatable)였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가 단기간에 그칠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심정적으로이러한 분석에 동의합니다만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3 - an image of the typical suburban home
3 - an image of the typical suburban home by kjell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부실채권의 규모를 현재로서는 누구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미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올해는 느려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몸이 다 자란 성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7% 성장이 과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 7% 성장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10년을 내다보면 7% 성장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경제의 성장 속도가 주춤하고 있습니다만, 지난 수년간 4∼5% 가량의 고속 성장세를 유지해 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난70~80년대만 해도 사정은 달랐습니다.

3%만 성장해도 인플레이션 압박부터 걱정하는 이들이 당시에 적지않았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7% 성장이 안 되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일인당 GDP가 연 5만달러 수준인 미국경제가 이정도인데, 한국 경제와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가 왜 7%를 성장할 수 없겠습니까.

▶미국 경제 고속성장의 이면에는 지난 80년대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한 민간부문의 노력이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직속 국가경쟁력 강화 위원장으로, 어깨가 참 무거우실 것 같습니다.

국가경쟁력강화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든 것은, 경제를 살려달라는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에 대한 화답입니다. 실제로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러한 성격의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Chairman Miller
Chairman Miller by House Committee on Education and Labo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미 레이건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위원회(Industrial Com-petitiveness Committee)를 만든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출범과 동시에 활동을 시작한 것은 유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무엇부터 하실 계획입니까.

규제 개혁과 더불어 공공부문의 구조 개선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해나가야 합니다. 정부의 몸집도 줄여야 합니다. 역사적인 경험에비추어 보면 정부의 덩치가 클 때 규제도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by bethography - melting mama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정부가 국가 경쟁력 향상의 걸림돌이 되는 일이 더 이상은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조기에 회복하기 위한 ‘기반 다지기’ 작업의 일환인가요.

오버히팅(overheating)하지 않고 가려면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길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한국은행이나KDI는 경기과열을 빚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 성장률을 5% 내외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를 7%대로 하루빨리끌어올리는 일이 시급합니다.


▶한국 경제의 기본 체력이 이렇게 바닥에 떨어지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수험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업인들의 투자 의욕이 꺾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국내 기업의 설비 투자는 물론 지난 3년간 뒷걸음질 해온 외국인 직접 투자또한 늘려야 합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환란 이전에는 설비투자 규모가 국내총생산 대비 15% 규모였는데,지금은 9∼10% 수준에 그치고 있는 배경을 한번 고민해봐야 합니다.

외국인들의 직접 투자도 절대 규모는 물론 투자의 품질도 담보돼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들 중국으로 가니까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수년째 뒷걸음질하고 있는 외국인 직접 투자(FDI)의 물꼬를 돌릴 뾰족한 묘수라도 있습니까.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의 규모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투자의 품질도 끌어올려야 합니다. 좋은 일자리 창출의 선결 조건입니다.전략적 우선순위라고 할까요. 규제 개혁과 더불어 법인세를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globally competitive) 수준으로줄여나갈 방침입니다.

▶경직된 노사관계를 부드럽게 만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또한 있습니다만.

전투적인 노사 관계를 상식이 통용되며, 준법정신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전환해나가는 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내 노조 조직률은10% 정도에 불과합니다. 노조를 조직하고 있는 일부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다른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결과적으로사라지게 만드는 행태는 하루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Gil Lebria holding the oust-GMA slogan
Gil Lebria holding the oust-GMA slogan by KarlMarx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다국적 기업들이 가까운 중국이나 아니면 미국 앨라배마 등으로갈 수 있는데 굳이 한국에 투자하려고 하겠습니까. 변화의 첫 단추는 준법입니다. 협력적 노사관계가 무엇보다 정착돼야 합니다.그리고 노동시장도 더 유연하게 바뀌어야 합니다.

rows and rows
rows and rows by jurvetson 저작자 표시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올해 노동계 춘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기업 활동에 우호적인 여건을 조성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에게도 이로운 일입니다.

좋은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해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프랑스나 독일을 비롯해 평등주의적 사고가 강한 유럽 국가들도 사정은다르지 않습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정책기조도 비즈니스 프렌드리한 환경을 조성해 일자리를 늘리는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프로 비즈니스(pro-business. 친기업)가 아니라, 비즈니스 프렌들리입니다.

▶공기업 개혁은 이명박 정부의 개혁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입니다. 공공부문에 과연 메스를 댈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규제 개혁과 공기업 개혁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 배석해 직접 현안을 챙길 예정입니다.

▶참여정부도 한전 발전부문을 분할, 매각하려다 사실상 포기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원칙은 무엇인가요.

민간이 담당할 수 있는 분야는 민간에 넘겨야 한다는 원칙은 확고합니다. 다만, 시장에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성격상 공기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해도, 조직 운영의 효율성은 끌어올려야 합니다.

▶론스타 처리 방향도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의지를 시험하는 장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법부가 판단할 문제이긴 합니다만, 법적 절차(judicial process)를 빨리 끝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TX Rest Area Information Desk detail
TX Rest Area Information Desk detail by Norby 저작자 표시비영리



▶국민들의 높은 기대 속에 출범했던 참여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우리나라의 GDP가 필리핀, 태국, 짐바브웨 등의 절반에 그쳤던 때가 있었습니다. 올해로 건국 60주년을 맞습니다만, 지금처럼풍요로운 삶을 향유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반도체, 휴대폰 등 첨단 제품이 주요 수출품목 목록에 올라 있지만오징어가 외화벌이 수단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_DSD9266
_DSD9266 by titicat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요점은 세계 최빈국의 하나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의 국가로 부상한원동력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국가 지도자가 시대 상황에 부합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적절한 전략을 추진했기때문에 국가 번영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좌파정부의 지난 10년 집권기는 전략 부재의 시대였습니다.

▶개발 연대를 이끌었던 과거 정치 리더들의 전략적 판단이 딱히 뛰어났다고 볼 근거가 있습니까.

박정희 정부가 주도한 수출 산업 육성 정책을 볼까요. 내로라 하는 경제학자들이 수입대체산업 육성전략을 주창하던 때였습니다. 특히아르헨티나,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국가들은 종속이론이 유행하면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수입대체 산업으로 이동시켰습니다.

monte_sarmiento
monte_sarmiento by elbfoto 저작자 표시



박정희 정부가 당시 대외지향적인 수출 정책을 채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사후적으로 보면 당시 여건에서 가장 적절한전략이었습니다. 정부의 역할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바른 국가 비전, 그리고 이를 달성할 전략이 있었기에 한강의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겁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경제가 무너져 내린 때는 언제부터였습니까.

5공 때도 점진적인 대외개방과 안정화라는 시대적인 과제를 잘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글로벌화의 파고를 헤쳐 나갈 전략이 우리에게는 부재했습니다. 경제주권을 박탈당한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자초한 것도 대응 역량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징어가 주요 소득원이던 때와는 국내 기업들의 수준도 달라졌습니다. 이들을 향도할 이명박 정부의 비전, 그리고 전략은 무엇입니까.

앨빈 토플러식으로 말하자면, 지식이 국가의 경쟁력 수준을 좌우하는 제3의 물결을 맞고 있지 않습니까. 정부의 전략은 이렇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

그리고 교육 부문에서 경쟁과 자율을 보장,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인재를 육성하는 일입니다.

goodbye francis
goodbye francis by Kris Kro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DSCF7918
DSCF7918 by VoIPm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국민 소득이 100달러에 불과하던 때와 지금은 정부의 역할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에 맞는 정부 역할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팔미사노 IBM 회장이 지난 12일 다국적 기업 CEO 중 최초로 이명박 당선자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빌려올 통찰력은 없었습니까.

이노베이션을 강조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팔미사노는 지난 2003년 미국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 혁신특위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당시 자신의 이름을 딴 팔미사노 보고서를 발표,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Mplanet - Keynote - Sam Palmisano, IBM
Mplanet - Keynote - Sam Palmisano, IBM by hyku 저작자 표시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한국은 호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유리한 고지에서 국제 경쟁에 임할 수 있는 게 바로 오늘날의 상황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첫 단추는 기본을 지키는 일입니다. OECD국가들의 법질서 준수 실태를 조사한 자료를 인용해 볼까요.

우리나라는 터키, 그리고 멕시코 등에 이어 꼴찌에서 세 번째를 차지했습니다.

기본적인 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금융허브 혹은 물류허브를 논하는 것은 공허합니다. 레토릭(rhetoric)보다는 실행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공일 / 정치기관단체인,연구인
출생 1940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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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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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소설가 김홍신이 말하는 경영학원론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9-05 18:24 | 최종수정 2007-09-05 18:48




“창업-수성 원리 발해史에 다 있어”



그는 생각보다 더 왜소했다. 지친 기색도 역력했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이 꼭 이렇지 않았을까. 흉노에 항복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비운의 사나이. 남성을 거세하는 궁형을 택한 이 외로운 남자는 동시대인들의 조롱거리였다.

명예를 목숨처럼 여겨야 할 태사령이 구차하고 비루한 삶을 택했다는 손가락질이었다. 하지만 한신, 장량, 유방, 항우, 이사, 이릉…. 중국사를 수놓은 인물들은 그의 손을 거치면서 화려하게 다시 되살아났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도 영고성쇠의 요인을 알려주는 불멸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3년간 소설을 집필하며 두문불출한 전직 국회의원. 단식 농성을 하고‘공업용 미싱’ 발언으로 홍역을 치르던 격정의 소유자는,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달 18일 오후 4시 30분, ‘소설가’ 김홍신은 자택에서 기자를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맞았다.

발해는 그의 정신세계를 오롯이 부여잡고 있는 주제인 듯했다. 김씨의 작업공간이기도 한 2층 서재는 족히 만여 권은 되어 보이는 책들로 그득했다. 벽면 한쪽에 발해와 당, 그리고 통일신라 영토를 표시한 지도가 붙어 있고 책상 한편에 발해사 관련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화제를 자연스레 《대발해》로 옮겨 갔다. 이 열 권짜리 대하소설은 출간 한 달여만에 3쇄를 인쇄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저술 작업에 몰두해왔지만, 중국 현지를 돌아보고 작품을 기획한 준비기간까지 더하면 8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STRATEGY

  고구려는 당의 장기전에 휘말려 패퇴
  발해는 적국의 본토 기습으로 맞대응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는 달랐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을 떠올리는 기습작전으로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무예의 대당 선제공격이 국운(國運) 바꿔

사마천은 자신의 울분을 한 글자 한 글자 사기에 새겨 넣었다. 한 무제가 분노의 과녁이었다. 김씨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구려 패망 후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이 얼마나 되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그가 기자에게 거꾸로 묻는다. 무려 20만이었단다. 하지만 발해는 철저하게 파괴된 고구려의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섰다.

뛰어난 지도자, 그리고 국민의 헌신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기적을 만들어 냈다. 총선 패배 후 3년 만에 은둔을 깨고 발해의 건국과 패망을 다룬 장편소설로 다시 돌아온 그는, ‘민족’이라는 주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발해, 그리고 고구려의 영고 성쇠를 불러온 요인은 무엇일까.

“고구려는 가볍게 무장한 기병들을 적군의 배후로 침투시켜 적의 보급부대를 궤멸시키고, 본대는 들판의 곡식을 모두 불태운 뒤 성에서 장기전을 펼쳤습니다. 바로 청야 전술입니다. 당 태종도 결국 이러한 전략을 뒤집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패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씨는 지도자의 냉철한 상황 판단 능력을 번영의 첫 번째 요소로 꼽았다. 따지고 보면 고구려가 당나라에 패망한 것도 당의 ‘진지전’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당은 전면전을 피하고 국경에서 크고 작은 분란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당의 전략가들은 적성국인 고구려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장기전으로 선회했는데, 이러한 전략은 중국 삼국시대 책사들이 자신의 주군들에게 진언하던 책략이었다. 고구려는 당 제국의 이 두 번째 전략을 무너뜨릴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패망했다. 하지만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는 달랐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blitzkrieg)을 떠올리는 기습작전으로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무예는 당시 발해의 명장이던 장문휴 등을 앞세워 당나라 영토에 속했던 산둥반도, 그리고 만리장성 인근의 마도산을 점령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적의 허를 정확히 지른 것이다.

며느리인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 현종은 본토가 침략 당하자 신라에 원군을 청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대무예의 당 기습작전은 동아시아의 권력지형을 흔든 사건이었다. 발해는 이후 200년 수성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발해의 후계자들은 안녹산의 난을 비롯해 당 내부의 분열을 적절히 활용하며 세를 불려나간다.


        HUMAN CAPITAL
  부역과 세금의 중과는 만병의 근원
  한민족 신바람의 문화 정확히 꿰뚫어야


흥과 한의 국민 정서 정확히 간파해


뛰어난 지도자들은 기업이나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흐르는 강물 위에서 노를 젓지 않으면 자꾸 뒤로 밀려나게 된다는 이치를 그들은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기자의 메모수첩을 자신의 책상 앞으로 바짝 당겨놓는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지도를 쓱쓱 그리며 목청을 한껏 올렸다.

웅혼한 기상도 전략의 뒷받침을 받아야 위력이 배가되는 법이다. 지난 1980년대 미국 시장에서 GE와 맞장을 뜨던 ‘웨스팅하우스’가 잭 웰치 부임 후 변화의 가속페달을 밟은 GE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다, 결국 문을 닫고 만 것도 비슷한 이치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노자의 한 대목이다. 백성들의 무서운 힘을 물에 비유한 경구다. 1994년, 그는 삼성전자 수원 반도체 공장의 여직원 기숙사를 방문했다 한 공원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한 여자 공원이 자신은 식사 때에도 국이나 물을 잘 먹지 않는다고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는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화장실에 들락거리다 보면 업무에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발언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한 소설(칼날위의 전쟁) 취재차 방문한 자리였다. 그는 그녀의 말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았다고 한다.

바로 한민족 특유의 신바람이다. 지도자가 아무리 닦달을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한 국민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열정, 그리고 헌신성은 뛰어난 리더십의 영도를 받아 하나로 모아질 때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김씨가 요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로자들의 기를 살리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세를 확산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서 미국의 반도체 장비 업체인 도날슨, 스웨덴의 볼보그룹까지, 인본주의적 경영을 앞세운 기업이 성과를 높이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다. 이런 풍토에서는 촌음을 아껴가며 자신의 업무에 매진하던 90년대 삼성전자 사업장의 여공들과 같은 헌신적인 태도와 정열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기업경영도, 나라 운영도 한국인 고유의 특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결실을 맺기 어렵다고 그는 강변했다. 한국인은 분위기에 휩쓸리면 걷잗을 수 없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반면 한번 가라앉으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체면을 매우 중시해 자신을 존중해 주는 이에 대해서는 보은을 아끼지 않는다.

대조영, 대무예를 비롯한 발해의 역대 군왕들이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함으로써 백성을 편하게 한 배경이다. 뛰어난 지도자의 리더십,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앙상블을 이뤄야 강국이 될 수 있다. 기업으로 논의를 좁혀봐도 이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랜드 비전으로 국민들 일치단결 불러

“나라가 망할 때면 지도층의 사치가 기승을 부리고, 내분이 격화됩니다. 또 민심 이반이 두드러지며, 지도자의 혼암함이 극에 달하는 공통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꼭 이와 같습니다.”부동산을 둘러싼 계층 간의 갈등이 대표적 징후라고 그는 지적한다.

발해의 마지막 왕 대위해는 민심을 살피지 않고, 남색에 빠져 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에 200년 역사의 나라를 송두리째 바치고 말았다.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배경이다. 그가 국내 기업인들의 중국 진출 동향에 아쉬움을 피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투자가 주로 한족들의 본거지 격인 상하이나 베이징 등에 편중돼 있으며, 우리 조상들의 영토였던 동북 3성은 투자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하지만 기업에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동북3성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다.

그는 무엇보다 중국의 의도를정확히 간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공정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결국 지금의 북한 땅에 대한 영유권 소유가 아니겠어요. 당이 진지전으로 고구려를 무너뜨렸듯 중국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영토 확장의 명분을 서서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의 목소리는 역사학자 이덕일 씨와 닮아 있다.

이씨는 아시아의 대형 중국에 맞서 몽골 등과 동이족 국가들의 연합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역사적 소명, 먹거리 문제 등을 하나로 꿰는 비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조영은 고구려 고토 회복이라는 원대한 비전으로 고구려 유민, 말갈부족의 에너지를 결집시켰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인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대선의 계절이다. 이상적인 대통령 감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사마천은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 준 절대 군주에 대한 회환을 평생 곱씹으며 살아야 했다. 사기 자체가 한 무제를 향한 넋두리이기도 했다. 정치를 다시 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술활동이 자신이 천직이라고 답변했다.

《김홍신이 분석한 드라마 대조영》

“70대 측천무후 너무 젊고 대조영 활약상 대부분 허구”

발해의 창업자인 대조영. 그는 국제 정세를 꿰뚫어 보고 당과 거란의 대립, 또 돌궐의 부상을 적절히 이용해 세 불리기와 건국에 활용한 전략가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뜻밖에도 김홍신 씨는 기자의 이러한 분석에 쉽사리 동의를 하지 않았다. 대조영의 실체를 제대로 가늠하기에는 사료(史料)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발해 자체 기록은 3대 대흠무의 둘째 공주 정혜와 넷째 공주 정효의 무덤에서 나온 비석에 적힌 약 1500자 정도의 기록 외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김씨는 발해의 역사를 복기할 수 있는 유물은 현재로서는 거의 남아있는 게 없다고 털어놓는다. 이러한 한계는 드라마에서도 확인된다.

대조영은 늘 신출귀몰한 무인으로만 그려진다. 또 고구려 보장왕의 조카와 결혼도 하지만 모두 허구의 산물이다. 사료 부족이라는 한계를 상상력을 발휘해 메웠다. 중국 역사의 유일무이한 여자 황제인 측천무후도 67세에 황위에 오르는데, 드라마에서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세밀한 고증보다 시청률이 우선순위인 드라마의 특성을 감안해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는 사료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의 역사책을 분석하고, 재해석했다. 구당서, 신당서, 발해국지, 위서, 한서,후 한서, 책부원구, 요사, 요동고, 유취국사, 자치통감, 속일본기, 일본기략을 주로 참조했다.
■ 작가 김홍신은 194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인간시장》이 국내 최초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560만권 이상이 팔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96년부터 2003년까지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종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500여 표 차이로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패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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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삼성 출신 영입인사들은 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나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6-27 10:54 | 최종수정 2007-06-27 20:39




이명환 대표가 밝히는 ‘재계 시스템 경영 무엇이 문제인가’

“오너가 시시콜콜 훈수 두면
초일류 인재도 복지부동하게 되지”

이명환 전 동부그룹 부회장은 시스템 경영의 전도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삼성, 현대, 그리고 효성, 동부를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을 두루 거친 국내 기업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의 부름을 받고 올해 초 경기도 중소기업종합지원 센터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철밥통으로 널리 알려진 공무원 세계에 직무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등 부임 후 숨가쁜 변화를 이끌고 있는 그를 만나 최근 재계 일각에서 불고 있는 시스템 경영 무용론에 얽힌 그의 소회, 그리고 공무원 세계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 등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편집자주>


“안 된다고? 무슨 말이야, 한번 해보기나 했어?”(정주영) “문제가 뭐꼬, 그러면 우얄래”(이병철)" 한국 재계의 두 거목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그리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은 외모만큼이나 사고방식, 용인술도 많이 달랐다. 이명환 경기도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대표이사.

그는 두 경영자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산 증인이다. 지난 20일 오전 경기도 이의동에 위치한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대표이사실. 그는 기자의 방문 사실도 모른 채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책 출간에 대한 덕담을 건네자 기자에게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라며 사무실 의자를 권한다.

그리고는 책장으로 성큼성큼 이동한다. 리처드 스티어(Richard M. Steers)가 저술한 《한국산(Made In Korea)》. 그가 빼들고 온 책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을 조명한 원서이다. 시스템 경영의 요체를 논하는 자리.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을 펼쳐드는 그의 속내는 무엇일까?

“정 회장이 주베일 항만 공사에 저가로 입찰했을 때 다들 현대건설이 망한다고들 수군거렸지요. 하지만 그는 해상 보험조차 들지 않은 채 배를 이용해 대형 블록을 현지로 옮겨 대역사를 일구어 냈습니다. 그의 독창적 문제 해결의 발상에는 국내외 할 것 없이 모두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

당시 주베일 특수로 국내는 인플레를 염려할 정도였다고 한다.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며 시중에 원화가 대폭 풀린 탓이다. 거대한 대형 폐유조선을 활용해 바닷물의 흐름을 차단하고 대역사를 이뤄낸 서산 간척지 사업도 비슷한 사례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명예회장은 탁월한 전략가였다.

손자는 기책(奇策)은 하수(下手)의 전유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신기묘산(神技妙算)의 방책으로 활로를 뚫었다. 항상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인물이었다. 배수의 진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투의 신 ‘한신’에 비유할 수 있을까.

“현대그룹의 99%는 정 회장이 구축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그는 이른바 솔루션 프로바이더였습니다.”하지만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정명예회장의 사후 현대그룹은 외환위기의 직격탄에 더해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급속도로 무너진다. 한 사람의 탁월한 리더에 의존하는 인치 경영의 한계였다.

“정명예회장 같은 뛰어난 경영자는 결코 배워서 익힐 수 없는 타고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의 장점을 따라하기가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뛰어난 리더가 언제까지나 통찰력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이 가도 남는 것은 시스템이라는 설명.

이병철 회장, 뛰어난 인재 발탁 과감하게 권한 위임

“이병철 선대 회장은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 억양으로 ‘문제가 뭐꼬’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경영자들이 소견을 밝히고 나면 ‘그러면 우얄래’라는 추궁이 바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딱 두 마디였다. 하지만 허점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그의 질문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이명환 대표의 회고담이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이 직접 창을 들고 전선을 돌파하기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발탁해 권한을 위임했다. 순욱, 순유, 가후, 그리고 곽가를 비롯해 탁월한 인재들을 무리없이 이끈 조조에 비유되던 배경이다. 이건희 회장의 용인(用人)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직시절, 하루는 이건희 회장이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2차전지 부문이 일본에 뒤지는 이유를 묻고, 기술 열세를 만회할 방법을 묻더군요.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인재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의 국적은 물론 몸값과 더불어 현재의 소재지를 집요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수년 전 산업자원부 기자실을 찾았던 삼성그룹 계열사의 전직 고위인사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회고담이다. 현안을 묻고, 해결책을 구하는 선대 회장의 접근 방식은 2세대에 와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경영자들이 이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비슷하다.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몇 가지 질문으로 핵심을 따지고 들어가는 경영방식은 여전하다. 오너 가문에 전수되고 있는 대표적인 시스템 경영의 실례이다. 삼성그룹은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GE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이 시스템을 중시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시스템 경영을 바라보는 재계 일각의 분위기가 썩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용론’마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성과 경영이라는 용어를 대신 쓰자는 주장도 일부 기업에서 들려온다. “시스템 경영을 이론에 치우친 ‘탁상공론’쯤으로 취급하는데, 어떻게 평가하세요.”

기자는 그에게 다소 껄끄러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아쉬움을 피력한다. “시스템 경영은 기업 경영의 뿌리에 해당합니다. 뿌리가 튼실해야 줄기가 뻗어나갈 수 있고, 과실도 얻을 수 있습니다. ”시스템과 성과를 무 자르듯이 둘로 나누고, 성과가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무지의 방증이라는 것.

그는 성적이 오르지 않는 수험생들에 빗대 현안을 설명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재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십중팔구 공부를 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딴 짓을 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의 말에 십분 양보한다 해도 삼성 출신 인사들을 영입한 기업들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삼성 영입 인사, 왜 뚜렷한 성과 못 내나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오너 회장의 주변에 그를 능가하는 인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하지만 중견 기업은 대부분 오너가 그룹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주변 사람을 대부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훈수를 두고, 간섭하는 일이 잦습니다.”

성공의 기억은 스스로를 과거에 붙들어 맨다. 기업의 덩치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외부 인재 영입이 늘어도 간섭의 유혹은 쉽게 떨쳐 버리기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시시콜콜 개입할 때 구성원들은 복지부동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경험칙이다. 초일류 기업에서 영입된 인재들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이병철 선대 회장은 삼고초려를 마다 않고 자신에게 쓴 소리를 아낌없이 해줄 수 있는 인물들을 영입했다. 경영자가 독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대응인 셈이다. 홍진기 중앙일보 전 회장, 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은 이 회장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은 이들이다.


지난 1966년 사카린 밀수 파동으로 그룹이 흔들리는 홍역을 치른 뒤 그는 한때 정계입문을 고민했으며, 당시 야당의 거목이던 유진산 씨를 찾아가 의견을 구했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경청(敬聽)이라는 유훈을 후계자에게 남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more..헨리포드 2세와 윌터 헤이즈





“사실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명환 대표이사가 툭 털어놓은 말이다. 수십여 개의 계열사를 이끄는 거대그룹의 총수. 눈부신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전술적인 성공이 전략적 실패를 보완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단언이다.

그룹을 이끌어 가는 선장은 멀리, 또 정확히 장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엔론, 월드콤, 탄산음료로 미국시장을 공략하던 버진그룹까지, 경영자들의 전략적 오류의 사례는 얼마나 많은가. 엔론과 월드콤은 문을 닫았으며,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자신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동양의 고전에 자주 등장하는 역사적 사례도 결코 드물지 않다. 서초 패왕 항우는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의 패권을 쥐었지만, 결정적 패착을 두는 바람에 종래에는 목숨마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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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경영 첫걸음은 공정한 성과 측정


요즘 경기도 중소기업종합지원 센터 3층에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어링포인트의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센터 소속 공무원들에게 적용할 성과급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공무원 업무의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무원 성과기준을 디자인할 강력한 원군이다.

시스템 경영의 첫걸음은 공정한 성과측정이다. “지금까지는 구두 한 켤레를 닦아도 5년 근무자에게는 3000원을, 3년 근무자는 2000원, 신입에는 1000원을 각각 지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장기근무자에게는 나태함을, 연차가 적은 공무원에게는 박탈감을 안겨줄 개연성이 큽니다.”

그가 공무원 성과 평가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각론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앞으로는 근무 연한과 관계없이 구두 한 켤레를 닦으면 1000원을 일괄 지급하겠다는 것. 고참 공무원들은 숙련도를 발휘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더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거꾸로 후배 공무원들도 업무 처리 역량이 뛰어나면 더 많은 급여를 챙길 수 있다. 장기적으로 기본급과 성과급의 비중을 50대50으로 늘려나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같은 직무를 담당해도 급여가 많게는 세 배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게 이대표의 설명이다.

다만, 충격을 감안해 성과급 20%, 기본급 80%로 시작할 계획이다. 늘 그렇듯, 개혁에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불안한 눈으로 그의 실험을 지켜보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세상 물정 모르는 민간 기업인 출신이 공무원 조직을 헤집어 놓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일각에서 터져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이 대목을 설명하며 때로는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또 큰 손동작을 취하며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가슴속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사람이 바뀌어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굴러갈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취임 일성 만큼은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 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관련기사



이 대표 시스템 사고 엿보니



질문 던지면 3~4가지 즉답



시스템 경영의 전도사로 통하는 이명환 대표는 제일모직, 제일합성, 삼성항공, 삼성비서실, 삼성코닝, 삼성SDS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이후 현대, 효성, 동부 등에서 시스템 경영 노하우를 중견 기업에 전파하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한몫 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20일 경기도 이의동 센터에서 만난 그는 답변 방식부터 독창적이었다. “중소기업 센터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성장 지원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기자가 던지는 질의에 대해 망설임 없이 족족 2∼3개의 답변을 내놓는다.

중소기업 종합지원 센터의 역할을 묻자 바로 창업지원, 성장지원, 역량 지원이라고 세 개의 답안을 내놓는 식이다. 개별 답변도 다시 몇 개의 범주로 나눈 뒤 설명을 덧붙였다. 답변 방식에서도 삼성 특유의 기업문화, 그리고 오랫동안 담금질한 시스템적 사고를 엿볼 수 있었다.

현안을 진단하고, 처방을 이끌어내는 고유의 솔루션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게 직원들의 전언이다. 그는 최근 일곱권 짜리 정설 시스템 경영을 발표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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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erview |이혁병 ADT 캡스 사장 달리는 승용차에서 경영을 논하다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5-31 22:42


“한 길 물 속은 몰라도
열 길 사람 속은 알아야 참 경영자”

최고경영자가 손수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그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업계 현안까지, 폭넓은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기자는 최근 이러한 바람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주인공은 국내 무인보안업계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ADT캡스의 이혁병 사장. 삼성동 본사에서 부천, 그리고 다시 본사로 돌아오는 세 시간 동안, 직원 교육과 접목된 이 회사 특유의 사회공헌활동 모델, 그리고 국내 보안업계의 경쟁 구도는 물론 그의 디자인 경영론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지난 2002년부터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 사장은 이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시장 전체 매출의 70%를 달성하고 있는 놀라운 성과의 주인공이다. 그의 경영 방식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이다.


이 사장과 기자, 그리고 이남희 사원이 참석한 이번 대담은 이 회사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나눔사랑 택시 드라이버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편집자주

“성공한 경영자들은 주변사람들의 미묘한 변화를 절묘하게 포착해 낸다. 직원 가슴 속 깊은 곳의 불신을 치유하니 노사가 신뢰를 회복했다.”

“디자인이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전략을 짜는 것은 인적·물적 자원을 보기 좋게 배치하는 것이기에 큰 틀에서 보면 디자인과 다르지 않다.”


햇 볕에 검게 그을린 건강한 피부의 50대 기업인. 그를 배웅하는 직원들의 얼굴에서는 도무지 긴장감이라고는 엿볼 수 없다. 입사 후 처음 떠나는 야유회를 앞두고 마음이 들떠 있는 신입사원들이 떠오른다고 할까. 지난 22일 오후 5시20분,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무인보안업체 ADT캡스 본사.

이 회사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검은색 승용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가 바로 일일 운전사로 나선 이혁병(53) 사장이다. 주말이면 한강 둔치로 달려가 수상스키를 즐기는 취미 덕분인지 나이에 비해 무척 젊어 보인다. 그는 첫 고객으로 이 회사 여성 관제사인 이남희(24)씨를 태웠다.

목적지는 경기도 부천. 업무 차 부천에 가는 이씨를 사장이 직접 태워다 주고, 이렇게 아낀 택시비는 박원순 변호사가 운영하는 ‘사랑의 재단’에 기부하게 된다. 단발성 행사는 아니며, 임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첫 주자로 이혁병 사장이 직접 나섰다는 설명이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 출장을 떠나는 직원들은 평소 존경하던 선배나 간부 사원을 일일 운전사 겸 멘토로 요청할 수 있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자연스레 궁금했던 점이나, 직장생활의 노하우, 전문분야의 지식 등을 물어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직원들에게 회사가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사회공헌 기금도 거둬들이고, 조직 운영의 효율도 높이자는 다목적 취지다. 기자는 이 사장이 직접 운전하는 자가용의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견해, 국내 무인보안시장의 실태, 그리고 이 회사가 급속 성장할 수 있는 배경 등을 내내 물어보았다.

차선을 바꾸랴 질의에 응답하랴 긴장을 한 탓일까. 오후 5시 40분경, 이 사장이 벌써부터 땀을 흘린다. 하지만 부임 초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설명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 명확했다. 캐리어LG 대표이사를 지낸 그가 지난 2002년 이 회사의 사장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노조는 거의 매년 노사 분규를 일으켰다. 말 그대로 바람 잘 날이 없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았다. 경쟁기업인 에스원은 이 틈새를 비집고 시장을 맹렬히 잠식해 들어갔다. 위기였다. 당시 그가 내놓은 처방전은 노사 양측의 신뢰 회복이었다. “직원들의 가슴속 깊은 곳의 불신을 보았습니다.”

성공한 경영자들은 주변사람들의 미묘한 변화를 절묘하게 포착해 낸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 유비, 그리고 손권을 비롯한 리더들은, 모두 한 길 물 속은 몰라도 열 길 사람 속을 간파하는 대표선수들이었다. 스킨십은 성공한 경영자들의 첫걸음이다.

함께 어울려 수상스키를 타고, 승마를 했다. 또 문화예술작품 관람을 하며 그들의 마음 속으로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국내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현장 사원들의 유니폼도 산뜻한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일체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그가 유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수상스키를 탈 때 겁에 질려 일어나지 못하는 직원들이 자세를 제대로 잡을 때까지 눈물이 쏙 빠지게 호통을 쳤다는 것이 이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지난 2005년 도입한 ‘열정 프로그램’은 화룡정점이었다.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되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열정’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묶었다.

매년 직원들이 연수원에 모여 1박 2일 일정으로 연극이나 운동 경기를 하며 팀워크를 다지는 한편, 직원들이 자신의 장기를 경매할 수 있는 사내 프로그램을 만들어 화합을 도모하기도 했다. 노래솜씨가 뛰어난 직원은 자신의 재주를 사내 게시판에 올려놓으면, 다른 직원들이 경매를 통해 그의 재능을 돈을 주고 구입하게 된다.

이 회사는 글로벌기업 타이코 아시아 전체 매출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한때 노사분규로 바람 잘 날 없었으나, 올해로 4년째 무분규를 맞고 있다. 본사에서 이 사장의 성공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는 배경이다.


보안산업은 미래의 블루오션
오후 6시 30분경, 퇴근 무렵이어서인지, 차가 꽉 막혀서 움직이지 못한다. 교통도 흐름이 있듯이, 산업에도 기회와 위기가 교차한다. 무인보안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변수는 없을까.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없을까. 화제를 자연스레 돌려보았다. 이 사장은 그러나 높은 진입장벽을 예로 들며, 이러한 가능성을 일축한다.

무엇보다, 고가의 장비를 수요자의 집이나 건물에 구축해야 한다. 외부인의 침입을 정밀하게 포착하고, 중앙의 관제탑에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또 이상이 발견됐을 때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인력도 확보해야 한다. “유럽의 무인보안산업의 강자인 첩(Chubb)도 한국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에스원과 캡스의 벽을 넘어설 수 없었던 것.

KT텔레콥이 기존의 유선전화망을 활용할 수 있는 이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시장 구도를 뒤흔들기에는 아직까지 역부족이다. 그는 무인보안 분야의 강점을 활용한 신규사업 부문 진출 가능성도 일축했다.(박스기사 참조) 사업의 내실을 기하는 편이 실익이 클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경비로봇이나, 인터넷 회선을 활용한 서비스도 본사에서 개발을 완료했으나, 높은 서비스비용, 그리고 낮은 신뢰도 탓에 상용 서비스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그는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새로운 흐름에는 주목하고 있다고. 7월부터 색다른 광고를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7월부터 애니메이션 광고 선보인다
업계 최초로 애니메이션 형식을 빌렸다는 것이 홍보팀 관계자의 귀띔이다. 애니메이션 광고는 게임의 법칙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무엇보다, 기업고객이나 자영업자는 물론 일반 가정이 보안서비스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등장하고 있는 변화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직까지는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하지만 장래에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주도하는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폭력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현실에서 가정의 안위를 경찰들에게만 맡길 수가 있을까. 치안은 더 이상 공공재만은 아니다.

“브랜드가 아니라 이제는 러브마크가 돼야 합니다.” 이혁병 사장이 보안업체가 브랜드를 중시하는 배경을 묻는 기자에게 툭 털어놓은 말이다.

자사 서비스에 대한 신뢰감을 주면서도, 친숙한 모습으로 브랜딩을 하는 것은 가까운 장래의 사업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변수이다.

“지금은 ADT캡스라는 사명을 사용하고 있으나, 캡스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ADT로 브랜드를 통일할 예정입니다.”

브랜딩 작업은 그때를 대비한 이 사장의 용의주도한 포석으로 풀이할 수 있다. 국내 보안 시장은 에스원이 절반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에스원과 ADT캡스 두 회사가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구도이다. 40% 가량을 캡스가, 그리고 나머지 시장을 후발주자인 KT텔레콥과 각 지역에 거점을 둔 중소 군소업체들이 분할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동차에서 휴대폰까지, 글로벌 무대는 온통 저가 경쟁이 한창이다. 소득 수준이 과거에 비해 높아진 신흥 시장의 소비자들을 겨냥한 포석이다.

미국 기업들도 자국의 저소득층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비즈니스위크의 보도다. 삼성동 본사에서 출발해 여직원을 부천에 데려다 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기까지 세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이혁병 사장은 서울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해군 장교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부임 후 연매출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린 그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보안업체를 이끌어 가는 수장이지만, 그는 최근 홍보실에 입사한 직원도, 프리랜서 디자이너 이력의 소유자를 선발할 정도로 디자인을 중시한다.

물론 디자인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라는 지론에서다. 지난 1999년 국제산업디자인 대학원 과정에 부지런히 참가하면서 그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한다.

부임 후 유명 디자이너에게 직원들의 유니폼 제작을 의뢰한 것도 그의 이러한 성향을 가늠하게 한다.

“전략을 짜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결국 자사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보기 좋게 배치한다는 점에서 디자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캡스 성공의 핵심요소는 직원화합과 더불어 디자인의 중시에 있다고 봅니다.”

보안산업 新성장동력 살펴보니

“가능성 무궁무진… 프라이버시가 걸림돌”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가 음료사업에 진출한 것은 관련 다각화일까, 아니면 비관련 다각화일까. 전문가들은 회사의 가치사슬을 공유할 수 있는 부문으로의 진출은 겉으로는 성격이 달라보여도 관련 다각화에 가깝다는 분석을 한다. 담배회사의 음료사업 진출은 관련 다각화라는 얘기다.

보안산업의 경우 이런 분야에 해당하는 사업은 무엇일까. 기자는 이 사장에게 대형 할인점 등에 설치한 보안 장비라는 기왕의 인프라를 활용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대형 할인점이나, 공공기관에 설치한 보안관련 설비에 축적되는 방대한 자료가 자산이다.

자주 가는 코너, 동선을 비롯한 소비자들의 소비습관을 분석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객사에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의 동선이나, 소비 습관을 정교하게 분석해 제공한다면 보안 상품 자체의 매력을 높이는 이른바 ‘락인 상품’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사장은 하지만 프라이버시 문제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보안 부문의 경우 소비자 관련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 밖에 IT보안 부문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수익성이 떨어져 매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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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황수 GE코리아 신임 사장의 경영플랜
[이코노믹리뷰 2007-05-24 10:54]

“한국시장 新비즈니스 모델 꿈틀
본사에서 잠재력 주목하고 있어”

“인재를 평가할 때 지연이나 학연 등을 배제하고
그 사람이 지닌 역량만으로 파악하는 것이
GE의 장점입니다.”

“혁신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으며, 부단 없는 고투의 산물입니다. 한국 기업인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변화의 노력을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게을리 해온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지난 3월 이채욱 전 회장의 후임으로 GE코리아에 부임한 황수 신임 사장. 그는 지난 17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지적하며 지금은 관리형이 아니라 성장형 CEO가 각광을 받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일상적인 경쟁에 치중하다보니 여유를 갖고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 사장은 하지만 최근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표 기업들이 창조 경영을 선포하는 등 신 성장 동력 확보에 뜨거운 열정을 보이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GE본사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두 자릿수 성장을 위해 방송을 비롯한 여타 부문에도 지속적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해, 국내 방송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하나로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어 자신과 이채욱 전 회장은 학벌이나 지연에 얽매이지 않는 공정한 평가시스템의 수혜자라며 엄정한 인사 원칙의 확립이야말로 글로벌 기업 도약의 첫걸음임을 강조했다.



부임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습니다. 취임기자 회견이 다소 늦었는데,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GE코리아의 사업 영역은 매우 방대합니다. 건광관리(health care) 부문부터 엔진, 플라스틱, 가전까지, 그동안 사업 현황을 일일이 확인하고 또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발탁배경이 궁금합니다. 적자 누적으로 문 닫기 일보직전이었던 GE삼성조명을 되살린 일화는 국내에서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본사에서 회생 작업을 지휘해보라며 저를 GE삼성조명 사장으로 선임했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만년 적자기업이었습니다. 제가 부임하자, 사람들이 다 떠난 회사에 사장이 다시 왔다며 사원들이 술렁거릴 정도였습니다. 이 회사를 불과 1년 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시켰습니다. (그는 북아시아 사장 시절에 10년 간 적자를 면치 못하던 일본조명사업을 역시 흑자로 반전시켰다. )




GE는 발명왕 에디슨이 창업한 기업이자, 포천 500대 기업 리스트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세계 최고의 회사로 유명합니다. 이곳에서의 경쟁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이 회사에 처음 입사한 이후의 일화입니다. 분위기도 냉랭한데다 업무 강도가 매우 세서 정말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업무 교육(OJT)도 두 시간 정도가 다였습니다. 가족들과 짬을 내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갔다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정도입니다. 프로페셔널한 조직이라는 방증이겠죠.(웃음)

혹시 자신의 진로에 영향을 준 계기가 있었습니까. 감명 깊게 읽은 책도 괜찮습니다.
바빠서 통 책 읽을 여유를 내기가 어렵습니다만, 《완벽에의 충동》이라는 책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임자인 이채욱 회장도 이른바 기업 회생전문가였는데요. 두 분은 공통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싱가포르에 가 있는 이채욱 전 회장이 저를 만나면 늘 하던 말이 있습니다. 제가 자신과 꼭 닮은 길을 걷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공감합니다. 둘 다 한국사회의 주류 대학인 ‘SKY’ 출신이 아니었고, 회사 내에서 뛰어난 성과를 인정받아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특성에 가려 잊어버리기 쉽지만, 공정한 평가 시스템은 GE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재를 평가할 때 지연이나 학연 등을 배제하고 그 사람이 지닌 역량만으로 파악하는 것이 GE의 장점입니다. (저도) 모두 여섯 차례 이상의 엄격한 인터뷰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이 회사의 사장으로 최종 낙점될 수 있었습니다. GE에 근무하게 된 것을 기쁘고, 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회사는 FMP로 불리는 이른바 엘리트 사원 양성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보통 직장생활 2∼3년 차의 직장인들을 상대로 선발하며, 이들은 대개 사내에서 빠른 진급을 하게 된다.)




GE에 38세의 늦깎이의 나이에 입사했다고 들었습니다. 학자의 길을 포기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박사 과정을 밟다가 도저히 적성이 아닌 듯해 과감히 포기했습니다.(웃음) 38세의 나이에 GE에 입사했는데, 첫 번째 보직이 바로 ‘석영’제품의 글로벌마케팅 책임자였습니다. (그는 미국 쿼츠 인터내셔널(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소재)의 국제 영업 업무 담당으로 입사했다. 이후 38세의 나이에 GE로 옮겼다.)

이채욱 전 회장이 탁월한 성적을 남겼는데, 혹시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까. 회사의 덩치를 얼마나 더 키울 계획입니까.
지난해 17억 달러였던 GE코리아 매출을 올해 19억달러, 내년에 22억달러로 늘려나갈 방침입니다. 특히 한국 내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 사업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GDP의 2∼3배 정도의 성장률을 강조해 왔습니다. 부임 초부터 늘 강조해온 원칙입니다. 시장 여건이 우호적이면 우호적인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사업 기회라는 것은 항상 주변에 있다고 봅니다.

GE는 이멜트 회장 부임 후 놀랄 만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 자란 성년이 매년 부쩍부쩍 키가 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요.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이멜트 회장은 항상 ‘성장을 하나의 절차(process)로 만들라’는 말을 해왔습니다. 세계적인 리더들의 리더십을 연구한 끝에 이들에게 공통적인 특성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임직원들을 교육하고, 평가하는 데 이러한 기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성장의 DNA를 평소에 각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섯가지 기준이 외부 지향성(external focus), 명확한 사고(clear thinking), 상상력(imagination), 포용력(inclusiveness), 그리고 전문성(expertise)이다.)

두자릿수 성장을 위해서는 신규사업 발굴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방송 분야 진출설도 들려옵니다만.
미 NBC 사장단이 한국을 방문하고 지난 3월 돌아갔습니다. 방송 시장의 잠재력을 현장에서 직접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 방송 콘텐츠 시장의 가능성을 매우 높게 평가 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길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한국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미국에 접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겁니다.

GE코리아가 국내 방송 부문의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은 없습니까.
국내 총생산(GDP)의 2∼3배에 달하는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달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방송은 물론 다른 분야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갈 것입니다. GE코리아는 현재 디지틀조선의 경제정보채널 비즈니스앤과 콘텐츠 공유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업 환경은 어떤 편입니까. 혹시 바뀌었으면 하는 규제는 없을까요.
GE코리아는 산업자본으로 분류돼 금산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은행업에 진출할 수가 없습니다. (동석한 조병렬 GE코리아 상무는 미국에서도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은 금지돼 있다며 보충설명을 했다. )

두 나라 사이에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이번 조약체결이 성장의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당장 사업 내용에 큰 변화가 있기보다는 조직 내부의 변화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예컨대, 양국간 관세가 줄어들면서 GE가 한국에서 구매하는 물품의 비중이 더욱 커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국내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요즘 비즈니스 모델 발굴이 화두입니다. 최태원 SK 회장은 한국 기업이 성장 동력 개발을 게을리 했다는 자성의 발언을 한 바 있습니다.
혁신이란 결코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고투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나라에 와서 국내 기업인들이 평소에 이러한 변화의 노력을 좀 게을리 해온 것이 아닌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당장의 사업에 매달리다보니, 멀리 내다보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삼성을 필두로 창조 경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에 비춰 볼 때 너무 뒤처진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기업인들의 대단한 열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시장의 장래를 밝게 보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삼성인력개발원의 요청으로 다음달에도 삼성그룹 중역들을 대상으로 창조경영에 대한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무언가 될성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이 많은) GE가 한국 시장에 주목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성장 동력 발굴과 관련해 GE에는 최고경영자를 보좌하는 조직이나 직급이 있습니까.
성장 동력은 기업인들이라면 항상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잭 웰치 전 회장 시절에도 사업 부문별로 끊임없이 그 방안을 고민해 왔습니다. 다만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성장 동력 발굴에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업부문별로 신규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출합니다.

이멜트 회장과 회장 직속의 위원회가 이 아이디어를 평가하게 됩니다. 현재 신사업 프로젝트 40개를 상시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90개로 늘릴 계획입니다. 2~3년내에 10억 달러 매출 잠재력이 있는 아이디어가 그 대상입니다. GE에서는 이를 획기적인(break-through) 아이디어라는 말로 부르고 있습니다.

잭 웰치 회장 시절에는, 이른바 신상필벌의 원칙으로 유명했는데요. 지금도 이러한 원칙이 유지되고 있습니까. 직원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억누른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의 역량을 세 등급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잭 웰치 시절에 비해 더 융통성을 두는 편입니다. (비즈니스위크는 2005년 3월 28일자에서 제너럴 일렉트릭 내부 직원의 말을 인용해 하위 10% 인력의 해고원칙도 과거에 비해 좀 더 유연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인 최초의 성장 리더로 GE에서도 승승장구해 왔습니다. 끝으로 그 비결을 조언해주십시오.
관리자형은 지금처럼 빨리 변모하는 경영환경에서 이제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성장형 CEO로 스스로를 변모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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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한국경제 갈 길을 묻다

 

[이코노믹리뷰 2006-05-31 09:57]작년 창간 기념호에 실린 역사학자 이덕일씨와, 한정주 작가 인터뷰 기사입니다. 벌써 1년가량이 지나긴 했지만, 다시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 여럿있습니다. 이덕일 선생은 당시 참여정부에 매우 비판적이셨는데, 지금은 어떠신 지 모르겠습니다. 


“도학만 외친 조광조 중종과 결별…
개혁성공 열쇠는 포용력과 융통성”

코드인사 선호 의자왕, 나당 연합군에 무너져
금광왕 최창학은 정치 올인의 위험성 보여줘
조선조 대동법 선구자 김육의 리더십 배워야

부동산은 이해관계 첨예…조광조도 토지개혁엔 소극적
대통령은 이해집단 폭넓게 수용한 정조 통치술 배워야
재벌, 비자금 조성 비난받을 일…소학부터 다시 읽어라

프랑스 크레타유 태생의 미국 역사학자 자크 바전(Jacques Barzun)은 살아 있는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올해로 100세가 된 그는, 유럽사를 가로지르는 폭넓은 지식으로 당대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제’역할을 수행해 왔다. 역사가의 책무는 그런 것이다.

<이코노믹리뷰>는 두 명의 역사학자와 연쇄 인터뷰를 가졌다. 가깝게는 강남 주택의 버블 논쟁에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속사태, 그리고 멀게는 수도 이전까지,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한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보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이덕일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과, 한정주 고전연구회장이다.

- 요즘 최대 이슈는 강남 주택의 버블 여부다.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는가.

(이덕일) 동양 토지제도의 기본인 정전제를 보자. 우물 정자에 네모를 그리면 모두 아홉 개의 농지가 조성되는 데, 이 중 8개는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국가에 세금으로 바치는 게 기본 구도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훈구파를 비롯한 힘있는 계층이 토지 소유를 늘려나가면서 여러 부작용을 불러왔다.

토지나 주택을 둘러싼 논란은 이처럼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있었다.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은 (버블을 판단할 기준도 모호하지만)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혁가로 널리 알려진 조광조조차 부분적인 토지개혁을 주창했을 뿐이다. 출신 성분 자체가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 한미 자유무역 협정(FTA)를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마치 조선시대의 개항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덕일) 개화사상의 선구자인 오경석은 서양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야 조선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확신한 인물이었다. 역관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병인양요 당시 주요 정보를 대원군에게 건네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대원군이 역관들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쇄국을 고집하다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다. 기회를 성공으로 바꾸는 것은 항상 당사자들의 땀과 눈물이다.

- 정부가 추진한 수도 이전이 성공했다면 집값 억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겠는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정주) 경제학자가 아니니, 수도 이전의 편익과 비용을 정교하게 측정하는 건 능력 밖이다. 하지만 과거의 사례를 볼 때 수도 이전은 대부분 정치적인 의도 속에서 진행되는 사례가 많았다.

고려 말 신돈을 앞세워 개혁을 추진하던 공민왕이나, 귀족 가문에 포위돼 있던 의자왕이 수도 이전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덕일) (수도 이전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주장이 모두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더 원대한 수도 이전의 비전을 제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정교한 프로그램이 뒷받침했다면, 수도 이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정조의 화성 축성을 본받을 필요가 있었다.

- 정조가 추진한 화성 축성이 후세 사가들의 지속적이고, 뜨거운 주목을 받는 배경은 무엇인가.

(이덕일) 정조의 화성 축성 프로젝트를 면밀히 고찰해 보자. 수원성 앞에 십자로를 조성하고, 상가를 유치하는 것이 한축이다. 화성 천도를 통해 조선의 상업혁명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였다. 또 화성 근처에 만석보라는 인공 저수지와 대유둔이라는 농장을 조성해 농사를 짓는 것이 또 다른 축이었다.

농업혁명을 추진했던 것이다. 당시 천도 추진은, 분명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 노론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양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조와 남인들의 )숨은 뜻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정조는 결코 적대 세력을 상정하고, 불만을 부추기는 식의 접근을 하지는 않았다.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사실상 죽게했으며, 자신조차 제거하려한 노론조차 포용했다. 참여정부와는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다.

-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마다 반발이 상대적으로 심한 것도 이러한 원죄 탓인가?

(이덕일)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본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 월간지에 실은 적이 있다. 당시 (그에게 )조선후기 정조의 통치술을 배워야 한다는 제언을 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이해 집단을 폭넓게 포용하는 정치를 추구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불행하게도 정조가 아니라, 숙종의 길을 걸었다. 증오의 정치를 양산했다는 뜻이다. 수도이전 문제를 보자. 큰 정책은 긍정적인 면을 강조해야 한다.

“수도를 이전해서 우리나라 전체 모습이 이렇게 바뀐다.” “3만달러로 나가는 데 이런 측면이 있다”등 비전을 제시하면서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항상 반대 세력을 설정해놓고 추진하니 반발이 심하며 되는 일도 없고 힘만 빠지는 것이다.

(한정주) 조광조는 도학 정치만을 부르짖다 한때의 최대 지원군이던 중종을 개혁 전선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 포용력과 융통성은 개혁 성공을 위한 두 가지 키워드다.

- 이른바 코드 인사를 현 정부가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정주) 삼국시대, 백제의 의자왕은 거대 호족 세력인 8대성 출신의 귀족들을 모두 내몰고, 40여 명에 달하는 자신의 아들들을 주요 직책에 임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코드에 맞는 인물들을 배치했던 셈이다.

정책 추진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그는 훗날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만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사는 만사다. 당파를 초월해 능력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뿐만 아니다. 일반 기업의 입장에서도 인사는 중요하다. 친위 부대로 인력을 구성해서는 험난한 경쟁을 헤쳐나갈 수 없다.

- 정부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덕일) 요즘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의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조의 사림 세력을 재평가한 책이다. 사림파가 과연 정당성을 부여받을 만한 정치집단이었는지에 대한 회의의 산물이다. 사림이 집권하자마자 당쟁이 격화됐으며, 특히 조일 전쟁이 터졌을 때도 극도로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집권 전후가 다른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무능한 세력이 아니었던가는 생각이 든다. 1970∼80년대 기대를 걸었던 386도 비슷하다. 집권 후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다. 사림은 그나마 당대의 최고 지식인들이었다. 조광조도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으나, 다시 과거에 응시해 급제했다.

하지만 386은 사림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집단이다.

- 불투명한 정부 정책 탓에 국내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옮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동의하는가.

(이덕일) 정부가 기업을 이끌어나가기에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본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국민소득 2만달러가 아니라, 3만달러 시대도 조기에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한정주) 기업인들은 이윤을 찾아 움직이는 존재다. 법가인 상앙은 전국 시대에 당시 상인들을 벌레에 비유한 바 있는 데,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들이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법가사상의 집대성자인 한비자가 상인을 다섯 가지 벌레의 하나에 비유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익을 좇는 존재들이라는 인식이 당시에도 이미 존재했던 셈이다. 공장 이전도 비슷한 맥락이다.

-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구속은 어떻게 보는가.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있다.

(이덕일) 재벌가 구성원들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특권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십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비밀벽에 감춰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비난받을 행동이다. 더욱이 각종 회사를 설립해 식구들에게 일감을 독식하게 한 것도 윤리를 잊어버린 행동이다.

재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도 곤란하지만, 무조건적 옹호도 피해야 한다. 이들은 소학부터 다시 읽어야 할 듯 하다.

(한정주) 일제시대의 금광왕 최창학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백수건달이던 그는 일제말기 운좋게 금광을 발견해 거대한 부를 움켜쥔 인물이다. 광구를 분할해 당시 일본재벌인 미쓰이나 미쓰비시에 매각해 현재 가치로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그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훗날 대가를 치른다.

독립 운동가들에게 돈 한 푼 쓰지 않던 그는, 김구 선생에게 줄을 섰다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후 고생만 하다 재판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 국내 재벌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 가히 리더십의 위기라고 부를 만하다. 기업가나 정책 담당자들에게 전범이 되는 인물은 없는가.

(이덕일) 조선 시대의 김육이다. 대동법을 전국에 확산시킨 인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실천적인 경세가였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좁고 불편하게 만든 길을 넓혔으며, 화폐 사용 확대를 추진했다. 대동법의 목적은 조세정의의 실현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 제도 실시로 조선의 경제 전체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됐다.

김육은 동시대에 태어났다면 한국 경제의 수장인 재정경제부 장관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이 밖에 남덕우전 총리도 뛰어난 정책가다.

이밖에 조선시대 역관이던 변승업은 처세의 비결을 알려주는 인물이다. 역관 출신으로 도성 제일의 부자가 된 그는 말년에 재산을 상당부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나라의 권력을 독차지하고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 집안치고 권세가 3대를 이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정주) 현군이던 중국의 당태종, 공신들을 가혹하게 제거했던 조선의 태종, 그리고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등을 꼽고 싶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것도 분명하다. 기회를 성공으로 바꾸는 것은 항상 당사자들의 땀과 눈물이다.”
- 이덕일 -

“개혁이란 (광대가) 줄을 타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좌우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두 세력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일이 성패를 좌우한다.”
- 한정주 -

- 위대한 인물은 많지만, 이들 중 개혁에 성공한 이들이 드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덕일) 정교한 개혁 프로그램의 부재. 그리고 반대 세력을 포용하지 못하는 편협함 탓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아젠더의 부재가 개혁을 좌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컨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던 것도, 골품제로 갈갈이 찢겨 있던 신라 사회에 삼국 통일이라는 아젠더를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정주) 고대 그리스의 개혁가 솔론을 보자. 귀족과 빈민층의 양보를 이끌어낸 그는, 결국 민중의 방종과 타락을 억제하지 못해 참주정(독재)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개혁이란 (광대가) 줄을 타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좌우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두 세력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일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 이러한 논리를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

(한정주)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모든 인간은 사악하고, 자유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제도가 아무리 훌륭하게 바뀌어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개혁은 실패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2006년 국내 상황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국내 노동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규직 근로자가 비정규직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직원을 채용하면서 돈을 받은 일부 간부들의 도덕적 타락을 떠올려 보라. 이들은 우리 사회에 불신의 골을 깊게 했다.

- 대북지원이 퍼주기식 접근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다음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어떻게 보는가.

(이덕일) (한반도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중국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세를 넓혀가고 있으며, 특히 북한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만주뿐만 아니라, 북한 지역을 자국의 역사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국의 역사라는 것은 자국의 땅이라는 의미다.

동북공정이 의도하는 바는 뚜렷하다. 북한 정부가 무너질 경우 괴뢰정권을 세우거나, 직접 접수할 수 있는 역사적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구한 말, 우리 선조들이 지적으로 모자란 사람들이어서 일본에 나라를 강점당했던 것이 아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거대 국가 중국은 민주 정체가 아니어서 더욱 위협적이다.

(한정주) 고구려가 지배하던 만주는 사실 주인이 없는 지역이다. 주인이 계속해서 갈렸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을 앞세워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측과 공동 조사단을 만들어 이 문제를 풀어보는 방안도 좋지 않겠는가.

- 끝으로 역사가로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달라 .

(이덕일) 역사를 고찰해 볼 때, 한 민족은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다툴 때 수난의 역사를 겪었다. 조선 시대에도 당쟁이 결국 살육전으로 비화됐고, 지금도 칼로 얼굴을 긋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에너지를 안이 아니라, 밖으로 돌릴 수 있는 아젠더를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나 실패했다. 원대한 꿈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젠더를 제시해야 할 때다.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니라, 몽골족과 만주족을 아우르는 범 동이족이다. 이들과의 범 민족 연합을 구상해야 할 때다.

역사물 제작 바람 ‘왜’

“이순신·주몽 만나며
답답한 현실 잊으려나”

역사물 제작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주말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한 데 이어, 올 들어서도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건국 과정을 담은 드라마가 화제다. 태왕사신기를 비롯한 후속 작품들도 줄줄이 예정돼 있는 상황. 역사물이 인기를 얻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배가 부르면 조상의 묘자리나 족보부터 챙긴다고 하지 않는가. 먹고 살만해 지니 조상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전 연구가인 한정주씨의 말이다. 그는 최근 제작방영된 사극을 비교해보면 과거와는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화려한 복장, 그리고 색감이다.

역사물 제작은 이런 맥락에서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그는 덧붙인다.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는 것. 반면 이덕일 소장은 역사물 열풍이 답답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기제라고 설명한다. 역사물 제작 바람이 반갑기는 하지만 마냥 환영할 수만도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콘텐츠 기획 능력의 부족도 이러한 움직임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이 소장은 분석했다. 현대극에 비해 좀 더 쉽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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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c |풍수학자가 본 대선 후보들

[이코노믹리뷰 2007-03-15 17:48](풍수나 관상, 점.  우리가 미신이라고 부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3국은 특히 미신적 요소들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 공중파 방송의 사극 연개소문에 등장하는 수양제도
태자시절, 자신이 빨리 황제가 될 수 있는 터를 골라달라고 지관을 닥달하지요. 그의 아버지도 겉으로는 풍수학이 지닌 논리적 허점을 맹공하면서도 아내의 묘지를 명당으로 골라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동양적 정서가 아닌가 합니다.

고백하건데, 기자된 입장에서 이런 식의 기사를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언론에서 풍수를 통해 대권주자의 운을 가늠해본다는 것은 왠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대선이 열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운명에 울고, 또 다른 이는 웃게 될 것입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그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한걸음 앞서 파악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강렬한 욕구. 담당 데스크들은 이럴 때  저간의 기류를 과감히 거부할 수 없나 봅니다. 사실 저도 매우 궁금합니다.


현재 1위 이명박 후보
“묘 앞에 저수지가 있으니…”

위정자들은 풍수지리에 대해 전통적으로 이중적 행태를 보여왔다. 멀게는 중국의 5대 16국 시대를 종식하고 대륙의 통일을 이뤄낸 수 문제부터, 가깝게는 아들을 임금으로 만든 조선의 흥선대원군까지, 공개적으로야 풍수지리를 미신이라고 애써 무시하면서도 유명 지관들을 풀어 전국의 명당을 수배했다.

조상이나 가족 묘가 위치한 선영을 애써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서까지 자신은 물론 후손들의 복을 기원했다. 풍수지리설의 비과학성을 질타한 수 문제는 부인의 묘자리를 당대의 지관인 소길에게 고르게 했으며, 흥선대원군은 술사에게 부탁해 2대를 이어 왕이 나올 수 있다는 충청도 예산에 부친의 묘를 이장했다.

대선에 나선 적이 있는 대한민국의 여론 지도층도 예외는 아니다. 이회창 씨는 지난 2004년 선친의 묘를 이장했으며, 다음해엔 이인제 전 대선 후보가 선영을 이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1995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2001년)도 선영을 이장한 적이 있다.

미신은 동양의 지도자나 지식인들에 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천형이다. 대선레이스에서 낙마한 고건 전 서울시장의 부친 고형곤 박사는 타계전 자신의 무덤을 직접 지정했다. 고씨는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베르그송과 후설을 전공한 대학자였지만 풍수지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최근 풍수와 대선 승리의 함수를 분석한 책을 발표한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평생을 풍수지리를 연구해온 학자이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풍수학적인 관점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를 것으로 예상해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선영이나 생가가 가장 탁월한 풍수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는 대선주자는 누구일까.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나, 천정배 의원 등도 생가나 선영이 모두 길지이다. 대선 출마설이 다시 불거져 나오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결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생가와 선영을 바라보고 있는 주산이 모두 종을 엎어놓은 듯한 금성의 모양이다.

이러한 풍수의 특징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는 자리라는 점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다만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생가의 입지가 험난한 시대, 위기의 시대에 거친 광야에서 깃발을 들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양새이다.

타고난 지도자의 땅이지만, 문제는 난세에 빛을 발하며 평시에는 힘을 잃을 지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를 과연 난세로 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어떨까. “묘 앞에 작은 저수지를 조성해 물을 가두어 뒀다. 하지만 물빛 또한 누런빛으로 탁하기 그지없다. 무엇하나 이로움이 없겠다.”

그가 또 다른 풍수지리 연구가인 지종학 풍수지리 연구소장의 말을 빌려 평가한 대목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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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욱 GE코리아 회장, 열정의 경영자

Management |이채욱 회장에게 배우는 GE CEO 경영학

[이코노믹리뷰 2007-02-07 13:18] (이채욱 회장은 딸만 셋을 둔 딸딸이 아빱니다. 항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들을 생각하며 분전을 해온 덕분일까요. 그는 학연, 지연이 맹위를 떨치는 이 땅에서 지방대를 나온 학력으로도 입지전적인 성공스토리를 구축해온 주인공입니다.

그는 지난 1일자로 이멜트의 특명을 받고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에서 다시 자신의 운명을 가늠할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는데요. 한국사회의 강고한 학연의 벽을 무너뜨려온 그가 이번에도 다시한번 성공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참고로 이 기사에 제 이름이 누락되는 실수가 발생했네요. 엉뚱한 곳에서 예기치 않은 실수가 생기네요
.


● 강한 자신감 = 아시아 시장 적임자는 바로 ‘나’다
● 따뜻한 카리스마 = 직원 이름, 대소사까지 일일이 기억
● 긍정적 사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노동시장은 매력
● 열린 경영 = 홍보담당자가 “CEO 발언 재미없다” 면박

“C. W. 한국은 당신에게 너무 좁지 않습니까.” 지난달 2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보카레이톤(Boca Raton).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이날 대규모 연회를 열었다. 전 세계 GE 계열사 CEO가 매년 한 자리에 모여 한해 실적을 평가하는 연례 행사다.

연회 분위기는 비교적 화기애애했다. 부문별로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예년의 실적 상승세를 이어간 덕분이다. GE는 이멜트 부임 후 연평균 8% 이상의 고속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성장률 8%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연매출이 1500억달러에 달하는 GE의 경우 매년 나이키 정도 되는 규모의 회사를 새로 인수하는 효과에 비유할 수 있다.

항공기 제트엔진부터 헬스 케어까지, 수많은 사업부문을 운영하고 있는 이 공룡기업이 이러한 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하는 일은 묘기에 가깝다는 평이다.

참석자들의 노고에 대한 격려가 이어진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하지만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단연 아시아에서 온 작은 체구의 경영자였다. 바로 이채욱 당시 GE코리아 회장(현 GE헬스케어 아시아 성장 시장 총괄사장)이다.

이멜트 회장은 덕담과 더불어 그에게 아시아 총괄사장으로의 영전을 귀띔해 주었다.

헬스케어는 글로벌 기업의 가파른 성장세를 지탱하고 있는 주춧돌이다. 아시아는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대결장이다.

GE, 독일의 지멘스 등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시장 공략의 수위를 바짝 높이며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멜트 회장으로서는 결코 경쟁사에 내줄 수 없는 부문인 셈이다. 이채욱 회장은 싱가포르를 축으로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4개 지역의 17개 나라를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맡게 된다. 이멜트 회장이 그를 아시아 헬스케어 시장 공략의 ‘야전 사령관’으로 전격 낙점한 배경은 무엇일까.

亞 헬스케어 시장 공략 ‘야전 사령관’부임
“내 이름의 이니셜 C. W.는 GE에서 도전(Challenge), 그리고 승리(Win)를 뜻합니다.” 지난달 30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 이 회장의 이러한 발언은 무엇보다 그의 진취적 성향을 가늠하게 한다.

그를 이해하는 첫 번째 코드는 ‘자신감’이다. 이번 인사의 배경을 묻자 자신보다 아시아 시장을 잘 아는 기업인이 GE에 또 누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리더가 활기에 넘쳐야 조직이 건강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병원에 정기검진차 들렀다가, 이상이 발견된 심장 부위에 수술을 받았다. 심각한 증세는 아니었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그는 여전히 활기찼다.

그가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젓는 영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내는 것도 이러한 성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내 경영자들과는 달리, 한국 노동시장의 매력을 강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제프리 이멜트가 강조하는 ‘외향성(externality)’은 그의 덕목이기도 하다.

“우리 근로자들은 로열티가 높고 진취적입니다. 인도 근로자는 영어는 잘할지 모르지만 충성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일본 근로자들은 몸값이 비싸며, 남들보다 멀리 내다보는 비전이 부족합니다.” 그는 국내 근로자들의 장점이 단점에 가려 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한다.

강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단점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하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인재경영은 그를 이해하는 또 다른 코드다.(박스기사 참조).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도 수년 전 싱가포르에서 함께 근무했으며, 지금은 기업의 중추로 부상한 직원들의 이름과 대소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초음파 의료기기 부문의 구자규 아시아 총괄사장, 중국에서 근무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GE의 아시아 담당인 임정희 이사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때 그가 발탁한 열명의 국내 인재들이다.

열린 사고도 주목할 만하다. GE에서는 이른바 라운드 테이블 미팅을 하고 있는 데, 임원급과 평직원들이 서로 어울려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이 회장을 배석한 홍보 상무(조병렬)는 GE의 이러한 문화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이 회장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우수함을 강조하자, 한국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협회장이라는 위치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조언한다. 또 싱가포르에 가서도 국내 인재들에게 적극 기회를 주겠다고 하자, 다른 나라 출신의 인재들과의 공정한 경쟁의 룰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라고 교통정리를 한다.

이 회장의 발언이 ‘영 재미가 없다’는 식의 농담도 서슴지 않는다. 국내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GE코리아가 제프리 이멜트가 경영자들에게 제시한 목표치인 8%를 훌쩍 뛰어넘는 20%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데는 이러한 강점이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진취적인 기질, GE식 시스템 경영, 그리고 인재를 발탁하는 능력 그리고 포용력은 이 회장의 성공을 가져온 요인들이다.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가치 사슬을 탄력적으로 바꾸어나가거나, 개선하면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비교우위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전략적 유연성도 물론 그의 몫이다.

잭 웰치는 비용절감… 이멜트는 마케팅
제프리 이멜트 시대가 그에게 불러온 변화는 무엇일까. “제가 어떻게 감히 두 거물들을…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기자의 질문에 자신의 견해를 털어 놓는다.

무엇보다 연구개발자 출신이던 잭 웰치는 연구개발(R&D)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더불어 ‘비용 삭감’에 자신의 역량을 집중했다.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기업인수합병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멜트 회장은 잭 웰치가 이룩한 업적에 두 가지 정도를 추가했다.

무엇보다, 이멜트 회장은 마케팅의 역할을 중시한다고 이 회장은 강조했다. 상상력(imagination), 혁신(innovation) 등도 잭 웰치 시절에 비해 더욱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잭 웰치가 그룹 전체를 이끌어갈 때만 하더라도 마케팅 부서는 실적이 부진한 판매 사원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에 불과했다.

이 전직 판매사원들은 마케팅 부서에서 현장과는 동떨어진 채 보기 좋게 차트나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지난해 6월호에서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프리 이멜트는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마케팅 전담 임원인 CMO(Chief Marketing Officer)를 다시 만들었다.

그는 또 판관비를 매출의 11%에서 8% 수준으로 줄이고, 이렇게 아낀 돈을 마케팅으로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세계적인 경영자들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프록터앤갬블 출신이기도 하지만, 마케팅 중시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0년대와는 다른 변화된 기업 환경을 반영하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제품 간 우열이 희미해지면서 소비자의 감성을 포착하고, 효율적으로 파고드는 이 부문의 역할이 중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케팅은 연간 8% 성장을 목표로 하는 제너럴일렉트릭의 성장의 견인차인 셈이다. 이회장에게도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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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에서 IT세상을 논하다



[이코노믹리뷰 2006-07-05 07:12]
nterview |달리는 기차에서 만난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일간지와 주간지 기자들의 취재 스타일은 상당히 다릅니다. 일간지 기자들이 새로운 팩트를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면, 주간지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요. 텔레비전으로 치자면 뉴스와 인간세상의 차이라고 할까요.
물론 어느 매체에 근무하더라도 팩트 확보는 중요하겠죠. 다만 업태의 차이탓에 서로 주력하는 부문이 서로 차이가 납니다. 기자간담회에 가보면 짧은 시간동안 팩트를 이끌어내려는 일간지 기자들의 노력이 매우 치열합니다. 때로는 유도질문도 던집니다. "기업인에게 야수의 열정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기자)" "예....뭐..(CEO).."

들은 건 여기까진데 다음날 신문에는 "기업인은 야수의 열정 지녀야 한다"는 식의 헤드라인이 올라옵니다. 꼭 아니라고 하기도 뭐합니다만,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기자들 만나기가 부담스러운 거죠. 아마도 이희성 사장도 기자들을 썩 내켜하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년말 인텔코리아 주최 송년회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안에 일간지 기자 두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저와는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이희성 사장은   별로 말수가 없는 것 같아, 작년에 어디 주간지랑 인터뷰했는 데, 그것말고는 다른 매체는 거의 만나지 않은 것 같지: 이 사장이 지난해 '어디 주간지'랑만 인터뷰를 했는 지는 확인할 수는 없는데요. 이 어디 주간지가 바로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이코노믹리뷰'입니다.

이 사장은 작년 인터뷰에서 비록 10여분에 불과했지만, 비교적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일간지쪽이야 새로운 팩트가 없다고 꼬집을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내실있는 내용이라고 판단합니다. 아마도 두  매체간의 생각의 차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세계 CPU시장의 절대강자 인텔은 왜 자꾸 마케팅을 강조하는걸까요. 판단해보시죠


“KTX보다 빠른 비메모리 칩 속도
경쟁기업은 결코 따라올 수 없어”

“서브 미니 노트북. 울트라 모바일 피시(ultra mobile pc),
핸드 헬드 피시가 시장의 한 영역을 확고하게 차지하게 될 것”

레 스터 서로(Lester Thurow) 미 MIT대 교수. 세계적인 경영 석학인 그는 이른바 ‘지식경영’의 신봉자다. 특히 다가오는 위기의 징후를 미리 읽고,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기업 내 최고지식책임자(CKO·Chief Knowledge Officer)의 운용을 제안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서로 교수가 내세운 논리는 명확하다. 눈부신 기술 발전 속도 덕분에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지며 잠재 경쟁 기업이 증가하고 있어, 경쟁 기업은 물론 다른 분야의 동향을 주시하며 최고 경영자의 의사 판단을 돕는 전문가가 요청된다는 것. 기업 경영에서도 이른바 조기경보기가 요구된다는 의미다.

그가 제시한 사례가 인텔. 예컨대,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보다 수백 배 이상 연산 속도가 빠른 칩 개발의 기술적 돌파구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가 아니라, 생물학 분야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이 경우 이 회사의 시장 지배력이 일거에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론 이 노학자의 예측은 아직까지는 이른 감이 있다. 다른 분야의 잠재 경쟁 기업 중 인텔의 강고한 시장 지배력을 무너뜨릴 기업이 아직까지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 서로 교수가 인텔의 사례를 예로 든 것은, 이 회사의 시장 독점력이 크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하지만 이 절대 강자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방아쇠를 당긴 업체는 AMD(Advanced Micro Device). 이 회사가 세계 데스크톱 부문 공세의 수위를 높이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자, 인텔은 지난해 최고 경영자를 교체하는 등 초강수를 두며 분위기 쇄신과 더불어 조직 추스르기에 나섰다.

특히 신임 회장 부임 이후 기술 중시 일변도에서 탈피해 마케팅 부문을 과거에 비해 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게 세계적인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5월 25일자의 분석이다.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까. 국내에서도 최근 인텔 코리아의 움직임이 과거와 비교해 부쩍 달라졌다는 평가다.

지난 6월 27일 오후, 동대구행 KTX 열차에서 열린 이 회사 주최 온라인 게임 대회가 대표적이다. 이날 행사에는 예선을 통과한 프로게이머 16여 명이 참석했는데, 군복을 입은 채 작전 논의를 하거나, 노트북을 앞에 두고 온라인 축구 대결을 치열하게 펼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게임 해설을 수도 없이 해봤으며, 심지어 신문선씨와도 공동해설을 했지만 달리는 KTX 기차내에서 중계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이날 게임 해설을 담당한 전용준씨의 설명이다.

특히 열차 두 칸을 통째로 빌려 행사를 연 인텔코리아의 이희성 사장은 이날 사진 기자들을 위해 도우미들과 과감히 포즈를 취하고, 온라인 축구 게임을 지켜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리거나 손뼉을 치는 등 시종일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인텔은 과연 변한 것일까.

또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한국시장 상황은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지난달 27일 오후, 시속 300km 속도로 달리는 동대구행 KTX 열차에서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인텔코리아가 주최하고, 한국HP·루이까또즈 등이 후원했다.

- 달리는 KTX 열차에서 온라인 게임 대회를 연 것이 이채롭다. 배경부터 설명해 달라.

센트리노 듀오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화면 구현이 가능하다. 중간 중간에 끊기는 현상을 찾아 볼 수 없다. 이 게임(니드 포 스피드·Need for Speed)의 배경 화면을 보라.

화면이 일그러지지 않고 매우 뚜렷하다. 특히 칩을 구동하는 데도 전력이 덜 들어간다. 전력을 덜 소모하니 배터리도 오래 간다.

전원이 차단된 장소에서 무선으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 열차보다 더 이상적인 장소가 있겠는가.

- 평소 고등학생 아들과 게임을 자주 한다고 들었다. 아들과의 대결에서도 승부욕을 발휘하는가.

게임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간혹 하는 정도다. 하지만 현저히 열세여서 가급적 피한다. 상대가 안되다 보니, 때로는 신경질이 날 정도다. (웃음). 에이지 오프 엠파이어·레드 얼러트를 주로 한다.

커맨드 앤 퀀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에도 도전해 봤는 데,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그만두었다. 요새 나오는 게임들 가운데는 국민 게임으로 불리는 맥슨의 ‘카트라이더’를 많이 한다.

- 게임 부문을 많이 강조하고 있어 마치 게임회사 사장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시장을 지금 봐도 PMP를 비롯한 핸드 디바이스(hand devide)에서 MP3나 비디오 시청이 가능해지고 있다. 고사양 노트북에서나 즐길 수 있던 기능들이 크기가 작은 핸드디바이스에서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노트북 시장에서는 기존의 데스크톱에서 구현하던 고성능 사양의 PC 게임이 중요해진다. 프로세서가 두개로 구성된 센트리노 듀오도 대표적이다. (앞으로 소비자들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고성능게임부터 음악, 그리고 영화감상까지 모바일 플랫폼에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국내외에서 AMD의 추격이 거세다. 특히 이 칩을 장착한 일부 외산 노트북의 인기도 상당히 높다.

데 스크톱 분야에서 AMD가 상당한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트북에서는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인텔 제품은 발열 문제나 전략 소비량 등에서 경쟁사에 비해 확실한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다.

AMD가 데스크톱 시장에서 유독 64비트에 초점을 두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노트북 시장에서의 열세 탓이다.

특히 노트북 시장에서는 인텔의 리더십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인텔의 수준에 도달하는 데 한참이 걸릴 것이다.

-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가. 기술 추격속도가 예상보다 빠르지 않은가.

현재 모바일 플랫폼 핸드셋시장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9억 ∼9억5000만대 규모다. 개인용 컴퓨터(PC)시장은 2억5000만대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시장 규모가 거의 4배 정도다.

시장이 거의 4배 정도로 확대가 되면서 앞으로 (노트북이나 개인용 컴퓨터는 물론) 거의 모든 세그먼트에 인텔의 아키텍처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런 게 5년 내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 자체가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 첨단 제품의 발표 주기가 더욱 짧아지고 있는 데, 지금처럼 발전 속도가 눈부실 것으로 예상했는가.

물 론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반도체 집적도는 18개월 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 집적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성능이 두 배 정도 향상된다는 얘기다. 지금 무어가 예상한 추세대로 진행돼 가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발전 속도가 빠르다 보니, 변화상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5년 후에는 모든 사람이 컴퓨터를 입고 다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 ‘올웨이스 온(always-on)’의 기능이 집에서 구현될 것이다. 일부 기능만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완벽히 실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그먼트도 더 여러 분야로 나뉘어질 것이다. 서브 미니 노트북·울트라 모바일 피시(ultra mobile pc)·핸드 헬드 피시가 시장의 한 영역을 확고하게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모니터 사이즈별로도 20인치에서 스크린 사이즈에서 3인치까지 다양한 모바일 세그먼트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다양하게 유저의 욕구를 반영해 나가게 될 것으로 본다.

- 인텔은 항상 관심 대상이다. 서로 교수는 첨단기업일수록 CKO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CKO를 운용하고 있는가.

운 용하고 있지 않지만 CIO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CIO는 정보통신 인프라스트럭처를 활용해 경영자가 최적의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한 자료를 기업경영에 핵심적인 정보로 가공하는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CIO가 이를 주요 어젠다(agenda)로 삼고 있다. 특히 지식경영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이른바 암묵지를 꾸준히 형식지로 바꾸어 나가는 등 기업 구성원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다.

- 인텔 전 회장인 앤디 그로브는 편집광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사장도 스스로를 편집광이라고 평가하는가.

편집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편집광적인 면은 있다고 본다. 특정하게 주어진 목표가 있으면 편집광처럼 달려드는 성격이다. 다국적 기업 최고경영자에게는 매출 목표 달성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열차 이벤트도 센트리노 듀오를 효율적으로 널리 알려 더 많은 소비자들이 인텔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텔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 피터 드러커의 저작을 일선 경영현장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소개해 줄 수 있는가.

피터 드러커는 정신적인 멘토이기도 하다. 피터 드러커의 책 6권을 차례로 숙독하고 있다. 드러커의 책을 읽으며 리더의 조건, 지적 근로자의 역할, 그리고 기업가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현장에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보니 성찰을 할 시간이 부족한데, 드러커는 이러한 부분을 채워준다.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 인텔 모바일 기술이 앞으로도 국내외 시장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물론이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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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움켜잡는 5가지 노하우

출판가 스타 기획자들이 공개하는 트렌드 콕 집어내는 5가지 노하우

[이코노믹리뷰 2006-06-27 21:45] (고수들에겐 정말 무언가가 있습니다. 흔히 암묵지라고 표현하는 데요. 다들 죽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끝내  '한방'을 터뜨리고야 마는 뚝심을 이들은 발휘합니다. 출판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어도 될성 부른 아이템을 꼭 집어내는 남다른 재기, 그리고 성실함을 앞세워 꾸준히 히트상품을 만들어 냅니다.

출판기획자들은  민심의 가늠좌이기도 합니다. 바람에 따라 좌로도 우로도 휘어지는 갈대에 비유되는 동시대 민초들의 심리 상태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과연, 움켜잡았다 싶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버리는 시대정신을  용하게도 포착하는 이들의 노하우는 과연 무엇일까요. 출판가 스타 기획자 3인방의 비결을 들어보시죠      


책의 성공에는 숨어 있는 주역이 있다. 바로 출판 기획자들이다. 소비자의 정신세계를 가로지르는 모세 혈관 하나하나에 현미경을 대고, 현 트렌드는 물론 가까운 장래에 거세질 새로운 동향을 분석하는 문화상품 제작의 지휘자들.

국내 출판시장에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조선왕 독살사건》의 김선식 다산북스 사장, 《한국의 젊은 부자들》의 오영진 토네이도 편집주간, 그리고《써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의 권선희 '사이' 사장을 만나 그들만의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시장 트렌드 파악하는 5가지 노하우

-매일 아침 30분 간 난상 토론을 하라
-혼란스러울 때는 자신의 ‘내면’을 읽어라
-거꾸로 생각하는 역발상에 익숙해져라
-기획과 마케팅은 하나…함께 논의하라
-여러 영역 오가는 퓨전 사고에 익숙해져라

◇ 스타 기획자 인터뷰

토네이도 오영진 편집주간

“매일 아침 난상토론 온몸 감각기관 깨워라”


“기획은 키워드 찾기다. 키워드를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조직의 지능이 가장 중요하다.”- 오영진 주간 -

‘ 스타 파워’의 퇴조는 출판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다. 독자들은 이제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쉽사리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콘텐츠의 쓰임새와 품질, 그리고 가격을 요모조모 따져본 뒤 도서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문화상품 구매에서도 비용 대비 효율을 철저히 따져보는 것.

신생 출판사인 ‘토네이도’의 오영진 편집 주간은 시장의 변화를 포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평가다. 지난 3월 첫 선을 보인 《한국의 젊은 부자들》은 2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석달 동안 무려 12만여 권이 판매됐다. 1월에 냈더라면 적어도 20만권을 훌쩍 넘을 수도 있었다는 게 그의 아쉬움이다.

후속작인 자기 계발서 《팀장 3년차》도 시장의 반향이 썩 괜찮았으니, ‘연타석 안타’를 날린 셈. 100만권 이상이 팔려나간 자기 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도 오 주간이 기획한 작품이다. 대형 출판사에 비해 자금력과 인력 등에서 현저하게 열세인데다, 든든한 후원자도 없는 이 회사가 선전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실전에서 날카롭게 벼린 기획력이야말로 사업의 성패(成敗)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그는 지적한다. “2004년 반짝 재테크 열풍이 불었다가 지난해부터 수그러들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부자를 선망하는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의 관심과 열정은 더욱 뜨거워 졌는데, 이 점을 정확히 포착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부동산 전문가인 박용석씨를 평소 눈여겨 봐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책을 내도록 설득한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는 그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그는‘난상토론’이야말로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는 장이라고 조언한다.

“매일 아침 온몸의 감각기관을 활짝 열어놓고 시장의 트렌드를 읽습니다.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30분 동안 회의를 하고, 토론 과정에서 썩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기획서를 만드는 등 작업에 돌입합니다. ”그가 제시한 또 다른 노하우는 이른바 ‘퓨전 사고’.

예컨대, 아동 도서를 보면서도 성인도서를 기획하고, 거꾸로 성인 도서의 강점도 아동 도서에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를 끊임없이 고민하라는 것. 오 주간은 지금은 ‘퓨전 시대’라고 강조한다. 활발한 토론으로 축적한 지식을 공유해 조직 전체의 지능을 높여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

직원 5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출판사지만, 그룹웨어를 통해 회의에서 논의된 성과물들을 공유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피해야 할 금기사항도 적지 않다.

그는 특히 기획자라고 해서 마케팅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모든 회의에서 기획과 마케팅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재테크 동호회인 e짠돌이 카페와 제휴해 이벤트를 열고 회원들에게 《한국의 젊은 부자들》을 나눠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요즘 그를 사로잡고 있는 말은 ‘원소스멀티유즈’다. “국내 시장의 작은 규모 탓에 여타 문화산업 진출을 시도하는 출판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탄탄한 텍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출판분야가 국내 문화산업에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회사는 장기적으로 다른 문화산업 분야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그가 수많은 인기 아나운서들 중 정지영씨를 《마시멜로 이야기》의 번역자로 택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지적인 이미지에다 로열티가 높은 그녀의 팬 클럽을 감안한 것이었다고.

▷ 다산북스 김선식 사장

“끊임없는 독서가 자양분
해답은 책속에 다 들어있어”


“묘책을 찾아 헤매지만, 모든 해답은 책 속에 들어있는 셈이다.” - 김선식 사장 -

《 나비와 전사》. 김선식 다산북스 사장이 요즘 짬짬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다. 재야의 고전연구가인 고진아씨가 장승·연암·허준 등을 비롯해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나 소재를 앞세워 근대와 탈근대의 관계를 파고든 학술서인데, 한눈에 보기에도 두터운 책 분량 탓인지 감히 집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김 사장이 이 책을 읽는 이유는 간단하다. 양질의 콘텐츠를 일반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묘책을 찾아 헤매지만, 사실 해답은 책 속에 모두 들어있습니다.”책을 읽다보면 꽉 막혀 있던 기획 방향이 어느 순간‘툭’하고 터진다고.

그는 70만권 정도가 팔린 《성공하는 사람들은 1%가 다르다》의 사례를 들었다. 이 자기 계발서는 달라지고 싶다는 직장인들의 바람을 파악해 이를 핵심 키워드(그는 ‘하이콘셉트’라고 표현했다)로 정확히 풀어내 높은 호응을 얻었다. 사회생활에서 스스로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비결이다.

김 사장은 특히 이 책을 읽으며 ‘호감’이라는 키워드가 출판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게 될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독서를 통해 현 출판 시장의 흐름은 물론, 지금은 미약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거세질 가능성이 있는 시장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특히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도 독서 만한 수단은 없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책에서 하루가 멀어지면 한 달을 망치고, 한 달이 멀어지면 일 년을 망치게 됩니다”는 그가 파악한 국내 소비자들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책을 문화 상품으로 파악하고 있다. 계몽하려고 해서는 백전백패다.

역사서들이 대부분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것도 이러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산물이 《조선왕 독살사건》이다. 국내에 역사서 바람을 몰고 온 이 책의 판매량은 무려 17만권. 사진과 도표를 집어넣어 20대 독자들에게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 주효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치열한 열정을 다룬 역사서 《죽어야 산다》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이유도, 국내시장에서 마니아 문화가 확산되면서 콘텐츠를 수용할 독자층의 저변이 넓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자기 계발 분야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소설 시장의 주요 소비자이던 20대 대학생들이 취업난 탓에 이 분야로 관심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획자들이 읽어봐야 할 책으로 《완벽에의 충동》 《깨진 유리창 법칙》 《나비와 전사》 등을 들었다.

▷ 권선희 사이 사장

사람들은 5%만 서로 다를 뿐
“혼란스러울 때 내면 성찰해야”


“사람들은 95%가 서로 같고, 나머지 5%정도가 다르다. 내면을 들여다봐라.” - 권선희 사장 -

고수들 사이에는 서로 통하는 것이 있나 보다. 민음사의 자회사인 황금가지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1인 출판사를 설립하며 독립한 권선희 ‘사이’ 사장도 “책 속에 모든 해답이 들어있다”고 강조한다. 오랜 독서로 다진 내공이 상품의‘디테일’을 결정하고, 디테일은 상품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

권 사장은 지금까지 270만여 부가 팔려나간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산파 역할을 스타 기획자 출신. “입사 1~2년차 때는 주로 영화를 보거나, TV 광고에 등장하는 카피 등을 분석하는 등 다른 문화산업 영역으로 시선을 많이 돌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3만권 가까이 팔려나간 《써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도 이러한 깨달음의 산물이다. 조기퇴직이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직장인을 겨냥한 재테크서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고독한 중년의 심리를 분석하고 체계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책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권 사장은 이 틈새를 성공적으로 파고들었다.

물론 시중에 넘쳐나는 가벼운 재테크 서적을 읽으며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고민해 얻은 수확물이다. 변변한 광고나 이벤트 행사 한 번 하지 않은 이 책은 특히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시중의 베스트셀러 작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그녀는 귀띔한다.

번역이나 광고·사인회 등 이벤트에 많은 돈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세심하게 읽는 그녀만의 노하우는 없을까.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보라는 게 그녀의 주문이다. 이른바 역발상이다.

예컨대, 재테크 분야에서 남성들이 주로 지갑을 풀고 있다면, 여성들은 어떨 것인지를 따져보라는 얘기다. 물론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다. 그래도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경우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고 조언한다.“사람들은 95%가 서로 같고, 나머지 5%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

자신만의 강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권 사장은 일부 출판사들의 실패 사례를 거론했다. 20~30대 영상문화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동영상을 보는 듯 화려하게 그림이나 그래픽 등을 배치한 책들을 잇달아 선보였지만 대부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

활자매체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인 텍스트의 깊이를 잃어버렸기 때문. 권 사장이 파악하고 있는 요즘 소비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일까. 그녀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심리학이나 자기 계발, 재테크가 떠오른다고 지적한다.

이 분야는 지금도 시장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뇌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차기작으로 《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를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며 뇌 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약속했는 데, 10여 년이 지나며 성과물이 하나둘 선을 보이고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

특히 국내에서 심리학 서적이 인기를 끌면서 뇌 관련 서적도 덩달아 상종가를 누리고 있는 데, 애정·미움·고통을 비롯한 감정도 다 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일본 사례 들여다 보니

잠재수요 정확히 예측
100만원 백과사전 ‘대박’


기획자의 역할이 돋보이는 사례는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일본도 파산위기에 몰렸다가 톡톡튀는 아이디어 하나로 되살아나거나, 특정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출판사들이 적지 않다. 판매 부진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몰렸다가 외국 소설 번역물로 되살아난 ‘구류도 출판’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미술서 전문으로 80년간의 전통을 자랑했으나, 거품경제의 붕괴로 고가의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자, 《열두번 째 천사》 《푸른 하늘 너머》 등 해외 번역물 단행본 출간으로 방향을 틀며 역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 돈으로 거의 100만원에 가까운 어린이용 종합백과사전 《포플러디아》로 대박을 터뜨리며 종이 백과사전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통념을 비웃은 ‘포플러샤’도 발상의 전환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 출판사들이 CD롬판으로 백과사전을 펴냈다가 실패할 정도로 시장은 얼어붙어 있었지만, 이 회사는 전국의 초등중학교 및 중등학교의 잠재 수요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사측은 판매량이 5년 내 10만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어린이들이 흥미를 지닐 수 있도록 백과사전 내용 배치, 사진 선정 등에 상당한 신경을 쓴 것이 주효했다. 이 밖에 깊이 있는 전문서·학술서로 입지를 굳힌 《미네르바쇼보》도 실용서 발간만이 살 길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밖에 아동문제 강좌, 현대의 보육학, 사회과학 총서, 현대의 미디어와 저널리즘, 미네르바 서양사 라이브러리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총서를 발간해 이 부문에서 독보적인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출판기업은 성숙한 시장에서도 높은 이윤 창출의 기회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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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좁은 기업인·공무원 한국 경제 망치고 있어”

[이코노믹리뷰 2005-11-01 09:54](우리사회에는 미래학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학자 출신이기도 하고, 때로는 군인들도 있으며, 컨설팅 펌의 잘나가는 컨선턴트들도있습니다. 기자는 재작년 말 이들 가운데 세명을 만나보았습니다. 취재를 다니며 하루하루 부대끼다 보면 좀더 멀리 내다보고, 우리사회를 장래에 규정할 물밑 흐름들을 엿보고 싶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되는데, 아마도 미래학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아이템으로 제출한 것은
이때문이 아니었을가하는 생각을 뒤늦게나마 해봅니다.

모두 내로라하는 인물들이었지만, 세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는 국방연구원의 김재두 박사였습니다. 유가 상승 탓에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서 그는 유가가 백달러대까지오를 수 있다는 예견을 해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특히 수요공급 원리를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경제 전문가들과 달리 국제 정세를 꿰뚫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페르시아만 해협의 역 학구도, 이란-미국의 전쟁 발발의 가능성, 위태로운 중동 정세, 중국의 원유 외교 등이 유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알기 쉽게 풀어주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훌륭한 국제정치학 강의의기도 했습니다.

한달 뒤 김 박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단독 꼭지로 내보내 유관  부처들이 반발을 하는 등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김재두 박사님(현역 대령이기도 하죠.)  상호간에 의사 소통의 불일치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물의를 일으켰던 점은 이 자리를 빌어  다시 사과드립니다.


미래학 전문가 3명 격정 토로
‘가 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바라본다.’ 리처드 바크의 우화소설에 나오는 이 글귀는 삼성그룹의 편법증여 논란에서 정부의 유가 대책까지, 각종 현안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시민단체· 정부·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자성(自省)도 일고 있다.

<이코노믹 리뷰>는 하인호 한국미래학연구원장, 김재두 국방연구원 박사, 송기홍 한국모니터그룹 부사장 등 미래학 전문가 3인방과 연쇄 인터뷰를 갖고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한 이들의 제언과 더불어 미래 전망 등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지식경영 장애물은 ‘최고 경영자’

“삼 성그룹이요? 이번 (X-파일)사태가 겸양지덕(謙讓之德)을 배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국내 최초의 미래학 연구기관인 ‘한국미래학연구원’의 하인호 박사.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한양대 교수로 강단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는, 지난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피츠버그 대학 국제문제연구센터에서 연구원 활동을 하며 미래학에 눈을 뜬 국내 미래학 분야의 1세대 학자다.

미국 유학시절, 미래의 강국 중국을 분석한 극비 보고서를 작성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한 하 박사는, 이미 10년 전에 삼성경제연구소의 외주를 받아 2005년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예견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17일 오후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난 하 박사에게 첫 질문으로 삼성그룹의 편법증여와 ‘X-파일 사태’에 대한 의견을 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지난 1966년 사카린 밀수 파동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삼성의 난국을 그가 일찍이 예상했는지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미래학은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내다보는 학문이 아니다”며 환한 웃음을 짓는 이 노(老)학자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며 난처한 상황을 슬쩍 비껴갔다. “1985년이었던가요.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본 기억이 아직도 새롭습니다. (강연회에 참석한) 그는 현대그룹에는 관련 공무원을 전담하는 인력들이 부처별로 수십여 명이 있다는 조크로 좌중을 즐겁게 했습니다. ”

인·허가를 일일이 기다리다보면 공사나 수출 납기를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1970년대 상황을 풍자한 말이긴 했지만, 지금도 공무원들의 마인드는 과거와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게 하 박사의 시각.

그는 하지만 민간 분야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미래학도 지식 경영의 한 분과라고 볼 수 있는 데, 국내 기업들은 지식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내부의사 결정시스템은 여전히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 “경영 부문에 ‘미래학’을 접목하는 것은 결국 기업 사고의 폭을 넓혀 기회를 한 걸음 앞서 포착하고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곳은 극히 적습니다.” 특히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로 막는 정점에 최고 경영자가 있는 것은 안타깝다고 그는 토로했다.

그가 그리는 10년 후 세계 경제의 모습은 어떨까? 한·중·일 3국, 동남아시아연합, 그리고 인도를 합친 ‘투 더블유(Two-W)권’이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지구촌 경제의 주축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게 하 박사의 관측이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아직도 미국과 유럽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 박사는 이 밖에 일부 미래학자들이 펼치는 주장의 맹점을 꼬집기도 했다. 일부 팩트를 부풀려 대중을 오도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그의 설명.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해서, 미래를 꼭 암울하게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인구가 줄어들어도 멀티플레이어들을 양산할 수 있다면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정부, 중국 정부 딱 반만 따라가라

전 통적으로 군사 부문에서 미래학 분야의 대가들이 배출돼 온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 기법의 창시자인 ‘허먼 칸’ 역시 미 공군의 전략 담당자였다. 군대는 이처럼 색다른 시각을 지닌 우수 인력들을 민간부문에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해왔으나,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석유공사나 민간 부문의 유가 예측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고개를 들면서 새로운 시각을 지닌 전문가들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석유 수급 요인과 더불어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에너지 패권 경쟁 구도를 들여다보면서 유가 흐름을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사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재두박사가 주목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박사는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 시기와 더불어 지난해 고유가 추세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예견, 화제를 불러온 주인공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가와르 유전’은 이제 물을 부어야 석유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현재 생산중인 유전의 80%는 지난 1970년대 이전에 발견한 것들로, 생산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기를 정확히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국제 정세와 수급요인을 감안해 볼 때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게 김 박사의 설명이다. 특히 2010∼2015년이면 석유를 둘러싼 지구촌의 갈등이 최악의 상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원유 공급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지니고 해외 유전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라는 그가,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를 보면 사복 차림의 중국 인민해방군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자국이 참여하고 있는 현지 유전 개발 현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지만, 중국이 에너지원 확보에 얼마나 전략적으로 임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김 박사는 하지만 우리 정부는 사활이 걸린 에너지원 확보 문제에 대해 멀리 내다보는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제 유가가 30달러를 밑돌 당시, 중국이 배럴당 22~25달러에 선물 계약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 의미(유가 급등)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우리 정부의 현 수준이라는 것.

“유관 부처의 정부 관료들이 부서 이기주의에 빠져 주위 비판에 귀를 닫아서는, 에너지 확보전이 치열한 국제무대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고언을 세미나에서만 경청할 게 아니라, 정책에 반영하는 태도가 아쉽습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왜 자꾸 유가 예측이 틀리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는 그는 특히 석유나 천연자원이 풍부한 구소련 지역에 일찍 진출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를 모두 놓친 것은 통탄할 만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 박사는 한국군의 이라크 주둔도, 늦은 감은 있지만 에너지원 확보라는 장기적인 국익확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르빌 지역은 부녀자들이 양동이로 석유를 날라 이용할 만큼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김 박사는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일까? 그는 지난 2003년 3월에 발발한 이라크전의 사례를 들었다. “지난 200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프라하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동구권 7개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는 뉴스를 보고, 개전이 임박했음을 예감했습니다. ”이라크를 치기 위해서는 군사기지를 확보해야 하는 데, 새 회원들을 대거 받아들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읽혔다는 얘기다. 군사 전문가들에게는 때로는 한 줄의 뉴스가 미래를 내다보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미래 예측의 첫걸음은 敬聽

미 공군에서 사용되던 미래예측 기법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기업 경영에 접목한 업체가 미국의 모니터 그룹이다. 세계적 컨설팅 기관인 모니터 그룹 한국 본사의 송기홍 부사장은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의 전도사로 불린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구 소련 붕괴와 9·11 테러 사태를 정확히 예견한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가 미 공군 소속이던 ‘허먼 칸’의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어 비즈니스 현장에 접목한 미래 예측법이다.

지난 20일 여의도에 위치한 ‘모니터그룹(Monitor Group Korea)’ 본사에서 만난 송 부사장은,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간의 격차를 지적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장기 전략의 유무’를 꼽았다. “한국 기업처럼 기획실에 근무하는 인력이 많은 나라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수 인력을 한 곳에 모아놓고도 이들에게 불과 2~3년 후의 단기 계획을 짜게 하는 것은 심각한 인력 낭비라고 봅니다.” 눈앞의 시급한 문제와 장기적인 과제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폭넓은 시야를 지녀야 하는 데,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역량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내 경영자들이 대부분 ‘장기 전략’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 “(제가) 만나 본 최고 경영자들은 대부분 자사가 이미 선진국 수준의 미래 예측력을 지닌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업 진로와 관련해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하면서도 정작 어디에서 문제의 매듭을 풀어 나가야 할 지 모르고 있다는 얘기죠.”

그는 외국인들에게 폐쇄적인 인사시스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의 60% 가량을 해외 부문에서 벌어들이고 있지만, 정작 삼성 임원진에서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합니다. 외국인 이사 선임이 화제를 모으는 것 자체가 다른 글로벌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이비엠,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삼성에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들이 삼성을 평생직장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폐쇄성 탓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폐쇄성은 제한된 사고를 가져온다. 송 부사장은 이는 비단 민간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 ‘8·31 부동산 대책’을 보면 수요 억제와 더불어 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리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 증가율은 이미 감소세로 돌아섰는데, 주택 공급을 이렇게 늘려나가면 장기적으로 집값이 폭락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는 정부가 출산율이나 인구증가율 등을 정책에 반영했는지 의아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과 정부의 전략부재를 탓하는 송 부사장은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할 까?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결코 점성술이나 주역 같은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하는 그는,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나서 두 가지 이상의 대응 시나리오를 만든 뒤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처리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기름 유출 사건이 발생하면 시민단체 관계자부터 해양 생태학자, 해당 기업 담당자까지 다양한 인력을 초빙해 폭넓은 의견을 청취하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추후 비슷한 사건이 터지면 이를 바탕으로 대응한다는 것.

미래 예측의 첫걸음도 결국 귀를 활짝 여는 경청(敬聽)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미래학 大家들 살펴보니

탁월한 예측력 CIA도 감탄

앨 빈 토플러, 페이스 팝콘, 존 나이스비트, 호머 리. 미래학의 계보를 파악할 때 빼놓기 어려운 내로라하는 전문가 들이다. 특히 호머 리는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탁월한 예측력으로 학자들 사이에서 전설이 된 군사 전략가다. 중국 해방 운동을 주도한 쑨원의 군사(軍師) 역할을 하며 의화단 운동에도 참여한 이색경력을 지닌 그는, 지난 1909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과 2차 세계대전 발발을 정확히 예상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특히 지난 1980년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사실을 무려 70여 년 전에 예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호머 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또 다른 미래학자가 에너지기업 로열더치셀 런던사무소에서 근무하던 피에르 왁(Pierre Wack)이다. 로열더치셀의 런던지부 기획 부서에서 시나리오 기획자로 근무하던 그는, 지난 1973년 ‘욤-키푸르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오일쇼크를 정확히 예측해 관심을 끌었다. 이 밖에 피터 슈워츠는,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해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구소련 내 개혁세력의 등장과 소련의 붕괴를 정확히 맞춰 그의 예측을 비웃은 미 정보기관 CIA의 코를 납작케 한 인물.

흥미로운 점은 미래학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민간 기업들이 주로 세계 석유 메이저 업체들이라는 것이다. 미래학자들 가운데도 에너지 기업에 소속된 이들이 적지 않다. 에너지 분야 만큼 메이저 업체들의 패권을 위태롭게 만드는 변수들이 도처에 산재한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석유자원의 보고인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정치 불안, 미·중 패권 전쟁, 각국의 대체에너지 개발 등이 모두 기존 산업지도를 뒤바꿀 수 있는 주요 요인들이라는 것.

이는 미래학이 기업들의 불안감을 자양분으로 번창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반증한다. 지난 2001년 9·11 사태 직후에 열린 피터 슈워츠 주최 미래학 세미나는 몰려드는 명사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삼성과 두산 등 주요 기업들이 불법 행위에 연루돼 수난을 겪고 있는 국내 재계에서도, 미래학이 번성할 토양이 이미 마련되고 있는 셈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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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스터디 스타강사의 경영학원론

Management |메가스터디 매출 20% 담당하는 스타 학원강사의 경영전략론(제가 만나본 유명강사들은 참 달변입니다. 말을 못해서야 수강생들을 자신의 강좌에 모을 수는 없겠죠. 김기훈 세듀어학원장도 비슷했습니다. 한시간정도 인터뷰를 했는 데, 자신의 포부, 메가스터디에 합류하게 된 배경 등을 말 그대로 술술술 풀어놓더군요. 젊은 나이에 돈도 많이 모았습니다. 메가 스터디 스톡옵션 받은것만 60억원이라고 하니...아 부러워라. :).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번 이들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큰 흐름을 한발 먼저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재부의 기회로 활용한다는 점이지요.

김기훈 강사도 미국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국내 중고등학생을 겨냥한 SAT동영상 강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유명 강사를 한국에 초빙하기는 여건상 수월하지 않은 점이 있어 이들의 동영상을 국내에서도 시청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메가스터디가 처음에 이런 식으로 유명 강사들을 설득하지 않았을까요? 자 김기훈 강사가 강의하는  경영학 원론, 한번 들어보시죠)


[이코노믹리뷰 2006-10-02 00:21]


“시장 선도기업 시행착오가
후발 기업에겐 경영 바이블”

품질 받쳐주지 않는 명성은 신기루
수강생 50만명은 신규사업의 재산
학원도 비전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

“합병에 대한 충동이 사라지고 자기 파괴(그리고 창조의)의 열정이 샘솟는 세상을 상상한다. ”톰 피터스는 현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규정한 바 있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은 역저 《미래를 경영하라》에서 터뜨린 일갈인 데,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며 경영상식의 유통기한이 더욱 짧아지고 있는 세태를 지적한 것이다.

피터스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덩지를 키우고 단위당 생산단가를 낮춰 경쟁자들을 압박하던 근대의 조직들은, 새로운 유형의 기업들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행보를 고수해온 도요타는 세계자동차 업계 수위를 노리고 있다.

제너럴모터스와 포드자동차의 난국, 그리고 혼다와 도요타의 선전은 세계 자동차 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에서 비껴선 기업들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무색하게 만든다. 상식의 파괴다. 프랑스의 사상가인 ‘레이몽 아롱’의 말처럼, 난세는 사람들의 생각을 더욱 깊게 만든다.

메가스터디 외국어영역 김기훈(37) 대표강사. 그는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겨냥한 맞춤 전략으로 막대한 부를 움켜쥐는 데 성공한 주인공이다. ‘혼란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피터스의 금언은, 메가스터디 연간 매출의 20% 가량을 담당한다는 그의 전략을 설명하는‘키워드’이다.

지난 18일 오후 1시 30분 대치동에 위치한 쎄듀어학원에서 그를 만났는데, 사실 외모부터 독특했다. 3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젤을 발라 긴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었으며, 왼쪽 귀에는 은색 귀고리를 달았다. 평범한 외모가 부담스러워 한쪽 귀에 귀고리를 달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잘 어울린다고 해 수년째 착용하고 있다고.

그가 지난해 메가스터디 강의로 올린 연간 매출액은 83억원 규모. 매출 기준으로 국내 최고의 토익 강사라는 김대균 씨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이며, 지금까지 거쳐간 수강생 수만 해도 50만명에 달한다. 메가스터디에서 받은 스톡옵션 7만 5000주의 가치만 60억원.

그가 명강사들이 대거 몰려 있는 이곳에서 이처럼 독보적인 실적을 거둘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강의의 질이 다른 강사들을 압도한다는 평가다. “연출자가 뛰어나도 대본이 좋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뛰어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영어 연구센터를 보자. 상근 직원을 포함해 모두 8명에 달하는 연구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연구원 4명은 교재 연구와 저술 작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비상근인 다른 4명은 주요 타깃층인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여러 트렌드와 고객 수요 조사를 담당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소에서는 5종의 영어 교재 단행본을 출간했는데 모두 부문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은 명성이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원어민 강사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개인 학원에 채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강사들은 대개 연봉 3600만원 수준인데, 이 정도 몸값으로는 해외 유명 대학을 나와 사설학원에서 잔뼈가 굵은 인재를 영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김기훈 대표강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강의 교재나 수업의 품질에 대한 집착은 유명 강사들에게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강사들과 구별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 데, 이른바 ‘전략’에 대한 이해와 ‘비전’이 그것이다. 지난 2002년 닻을 올린 메가스터디와의 오월동주(吳越同舟)가 대표적 사례다. 자신의 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당시 태동하던 온라인 교육시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메가스터디 강사로 활동하며 시장 상황을 주시했다고 한다.

물론 메가스터디 측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인터넷이 사교육 시장에 불러올 변화를 주시하며, 선도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에서 한 걸음 비껴서 있으면서도 대표 브랜드로 부상하고 있는 메가스터디 강의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온 것. 말 그대로 일석삼조인 셈이다.

시장에 먼저 진출하고도 시행착오를 거듭 범하며 후발주자에 수위자리를 빼앗기는 일부 선도 기업들의 실수를 감안할 때, 이러한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찌감치 비전을 세우고 조직 운영을 해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3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영어 학습자들의 학습수요를 흡수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의 신동방 어학원은 그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오는 2010년까지 코스닥과 나스닥 동시 상장을 추진한다는 계획인데, 오는 12월 오픈할 예정인 인터넷 강의 사이트는 이러한 원대한 비전의 첫걸음이다. 그는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의 조기유학 수요를 적극 흡수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명성을 날리는 미국의 SAT 강사들을 대상으로 동영상 강의 교섭에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미국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국내에서 교재를 기획하고 이를 미국에서 제작해 현지에서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국내의 교재 기획수준이 뛰어나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메가스터디와는 오는 2009년 1월까지 강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후 독자행보를 할지, 제휴관계를 유지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끝으로 고비용 저효율인 국내 공교육의 영어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꿀 복안이 없냐고 묻자, 수년전 복거일 씨가 주창한 영어공용화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메가스터디 스타강사의 영어학습법

“부의 미래 원서로 읽어보세요”

메가스터디 최고의 유명 강사는 영어 공부를 어떤 식으로 할까. 그는 아리랑 텔레비전의 대담프로를 자주 보라고 조언한다. 뉴스의 흐름이나 배경 지식을 대부분 알고 있어서 CNN이나 BBC방송에 비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생활에 유용할 표현도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도 영어와 교양공부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어 이른바 뉴토익에 대비하기 위한 교재로는 최적이라고 강조했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도 영문판의 일독을 권유했는데, 학원에서 공부하는 재수생이 내용파악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영어가 평이하다고 말했다.


2007/02/25 - [로컬(Local) VIEW/로컬 인더스트리 VIEW] - 칼라일, 어학시장 판도까지 바꾸나


박영환 기자(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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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의 인재등용 노하우

“말을 대신해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해 날지 말라”

길고 긴 번역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스승인 고 권우 홍찬유 선생은 뜻밖에도 ‘관중’을 공부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주군인 제환공을 패자 지위에 올려놓고 춘추시대 열국을 평정한 사나이. 유학을 평생의 가르침으로 삼아온 스승의 입에서, 유가에서 전통적으로 배격하는 관중이라니….

고개를 갸웃했다. 노자, 장자, 묵가까지 제자백가 사상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하지만 읽으면 읽어볼수록 원전의 문장 하나 하나가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매주 서울역 인근에 있는 대우학술재단에 모여 유학 사상을 집대성한 ‘성리대전’을 강독하던 학자 네 명이 전격 의기투합했다.

번역은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작업에 비유할 정도로 고단했다. 무엇보다, 문장이 난삽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지만, 의미가 턱하니 막힐 때에는 한학자들을 찾았다. 초역에만 2년 이상이 걸렸고, 작년 말 관중은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무려 7년여의 길고 긴 작업이었다. 그동안 스승은 타계하고, 정부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바뀌었다.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값만 무려 5만원. 사실, 잘 팔리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에나 등장하는 패도 정치가로 알려진 관중에 누가 관심이 있으랴.

하지만 ‘관중’은 뜻밖에도 출판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시내 주요 대형 서적의 고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정해년 새해, 수천년 전 중국 대륙을 풍미하던 이 남자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오후 인천 경인교대에서 만난 공동번역자 고대혁 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먹고 살 기반이 있어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긴다는 뜻이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수출 3000억달러를 돌파했지만, 체감 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춥고 어둡다.

“관자에게서 21세기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의 원형을 본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 교수는 기자의 이러한 가설에 순순히 동의를 한다. 관중은 말 그대로 민생문제 해결을 가장 중시하던 정치가였다.

간웅으로 널리 알려진 조조가 관중의 사상에 심취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젊은 시절, 조조는 첫 임지에 부임해 일을 낸다. 당시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던 수백여 개의 사당을 모조리 허물어버리는 대담한 행동을 했는데, 미신보다는 백성들의 민생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사고 덕분이었다.

관중은 특히 갈등을 풀어내고, 비전을 제시하며, 인재를 발탁하는 일에 발군이었다. ‘말을 대신해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해 날지 마라.’ 관중이 남긴 인재 운용의 첫 번째 원칙이다. 지도자가 일을 맡기고도 시시콜콜 간섭하며 달리는 말에 발길질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뜻이라고 고 교수는 지적한다.

관중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인재를 추천하는 데 결코 망설임이 없던 배경이다. 진시황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동문 한비자를 모함해 죽여버렸으나, 자신도 훗날 비슷한 운명에 처하는 이사는 관중을 배웠어야 했다.


일을 맡기고 시시콜콜 간섭하면 득보다 실 많아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원칙을 견지하기란 때로는 얼마나 힘든 것인가. 국내 일부 대기업그룹 오너들은 내로라하는 인재를 발탁하고도, 수시로 갈아치우거나 작은 실수를 빌미 삼아 옷을 벗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첨단 경영기법을 이식했지만, 회사별로 명암이 엇갈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이명환 전 동부그룹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른바 ‘시스템 경영’의 성패는 경영자의 용인관(用人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제환공은 관중 사후에 간신들을 등용했다 결국 죽어서도 한동안 관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아야 했다.

관중에게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리더십은 시스템의 중시다. 문제를 푸는 데 한 사람의 독단을 배제하고, 많은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보탤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유가에서 이상향으로 통하는 요순시대를 보자. 당시에도 후계자 그룹간의 암투,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민생고는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요순임금이나, 관중은 여느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원탁회의를 열어 참석자들과 머리를 모았다. 특히 공은 언제나 자신이 발탁한 인재에게 돌렸으며, 과는 자신의 몫이었다. 구성원의 장점을 중시했으며, 한 가지 단점으로 섣불리 이들의 능력을 폄하하지 않았다.

관중은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하라고 했다. “사실, 너무 이상적인 얘기들이 아닐까요” 고 교수가 제자들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중의 리더십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세계적인 검색 기업인 구글은 조그만 벤처기업 시절부터, 사내 인사평가위원회를 통해 인재를 발탁했다. 사내추천에만 의지하다, 자신의 입지를 우선시해 A급 인재를 추천하지 않는 직원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관중은 마굿간 우리를 구성하는 목재의 사례를 들며 이러한 이치를 이미 설파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여 년 전이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현대판 관중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있겠습니까. ”고 교수는 재치 있게 비켜간다. “인재는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라고 해서 관중 만한 인물이 없겠습니까. 다만 이들을 알아볼 수 있는 국민들의 역량이 문제가 되겠지요.”

관중은 누구인가

“제갈량이 흠모한 춘추시대 대정치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로 널리 알려진 춘추시대의 정치가 관중. 훗날 춘추시대 열국의 정치무대를 좌우하는 대정치가로 성장하지만, 그도 젊은 시절 자신의 지식을 무기로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입신양명을 꾀하던 숱한 제자 백가 지식인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지금처럼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외무고시가 없던 춘추전국시대의 유가, 종횡가, 법가 등은 자신들의 부국강병 이론이나, 치도를 앞세워 군주들에게 지식을 세일즈하는 지식보부상이었다. 자신의 이론이 받아들여지면 경륜을 펼칠 기회를 제공받았으나, 이는 드문 경우에 불과했다.

공자나 맹자도 평생을 떠돌며 자신을 채용해줄 주군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관중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단한 행운아였다. 그는 제나라의 왕권을 다투는 여러 공자들 가운데 공자 규의 참모 노릇을 하면서 입신양명을 꿈꾸었다.

흥미로운 점은 절친한 친구인 포숙아가 공자 규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훗날 왕위에 오르는 제환공의 참모를 담당하게 되면서, 두 사람이 정치적인 라이벌로 부상하게 된다는 점이다. 관중은 제환공의 배에 화살을 날리며 목숨을 노리는 승부수를 띄우지만, 거사는 실패하고 포숙아가 지지한 제환공이 제나라의 왕위를 잇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진가를 알고 있는 포숙아의 천거로 왕위에 오른 제환공을 보필하는 재상자리에 오르게 되고, 자신의 경륜을 펼쳐 그를 패자 자리에 올려놓게 된다. 관중은 흔히 법가 사상의 시조 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중국 최고의 기재로 통하는 제갈공명이 융중에 머물던 무명시절에 자신을 관중에 비유하곤 할 정도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대정치 사상가로 인정받아 왔다. 재상 자리를 자신의 친구에게 양보한 포숙아,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객을 재상자리에 발탁한 제환공 모두 관중 못지않게 대단한 인물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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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컴퍼니 이성용 사장 인터뷰


Management |베인&컴퍼니 이성용 사장이 밝히는 임원으로 살아남는 6가지 방법(이 성용 사장은 5공화국 시절, 청와대에서 미군 연락장교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미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습니다. 지난해 8월 이사장을 이 회사 본사에서 인터뷰했으니, 다섯달 가량이 벌써 지났네요. 하지만 이 사장의 인상은 지금도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우리말 발음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어른들이 늘 하는 말씀처럼 똑소리가 나는 인물이었습니다. 뛰어나니 이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의 수장으로 근무할 수 있는 거겠죠. 이사장이 밝히는 임원으로 살아남는 6가지 방법, 자 귀를 기울여 보시죠.  


[이코노믹리뷰 2006-08-04 15:42]


“전략적 사고 첫걸음은 열린 태도
인적 네크워크부터 리모델링 하라”

“임원진을 혁신해야 비로소 회사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기업 베인&컴퍼니 코리아의 이성용 사장은 지난달 20일 이 회사 본사에서 가진 기자와의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국내 기업의 임원들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기업의 별’이라는 통념과 달리, 상당수가 윗선에서 던져주는 일만 처리하다 보니 전략적 사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국내 임원들의 취약한 경쟁력으로는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이성용 사장은, 특히 “동종 업계는 물론 사내 교류마저도 꺼리는 폐쇄적인 태도부터 포기해야 한다”며 전략적 사고의 첫걸음은 열린 태도에 있음을 강조했다. 인적 네트워크의 리모델링부터 하라는 주문이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5공 시절 청와대에서 미8군 연락장교로도 복무한 이 사장은, 전 세계 20개 나라에 32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 컨설팅회사 한국 법인의 대표이자, 베인&컴퍼니 본사 글로벌 디렉터로서 동북아시아 IT부문과 한국금융 서비스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임원들이 꼭 실천해야 할 자기혁신법 6가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당장 손에 들어라
●일년에 일주일 정도는 전략을 고민하라
●외국의 경쟁사 정기적으로 방문하라
●경쟁사 임원 동향을 부지런히 파악하라
●경쟁사 정보는 공급사에서도 확보하라
●FTA는 위기이자 기회, 영어부터 시작하라

-세계적 컨설팅 기업의 수장이다 보니, 많이 바쁜 것 같다. 서울시 자문위원단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삼성테스코 이승한 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자문위원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조만간 (서울시측에서 논의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 자문위원단에는 5~6명 정도의 외부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서울시가 도쿄나 밀라노, 그리고 싱가포르 등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단 모임에서 도시 브랜드 제고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음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임원들》이라는 책을 저술 했는데, 국내 임원들의 자화상을 냉정하게 분석했다는 평가다.

국내에는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서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국내외 유명 최고경영자의 자서전이나 경영전략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임원들로서는 딱히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고치려 해도 도움을 구할 곳이 흔치 않다. 오랫동안 컨설턴트로 기업임원들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바를 정리하게 된 배경이다.


-해외 기업인들과 견주어 볼 때 국내 기업임원들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장점부터 살펴보자면 단기 현안을 처리하는 역량이 탁월하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손익 관리를 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특히 3~5년을 멀리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역량이 부족하다. 시야가 매우 좁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생각없이 한다고 하면 지나칠까.

대기업의 경우 한 기업에서 신입사원 생활을 시작하고 요직을 거쳐 임원직에 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러 기업을 두루 거쳐야 지식의 폭도 더 깊어지게 마련인데, 이러한 점에서 외국에 비해 상당한 핸디캡을 안고 있는 셈이다. 자사 브랜드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해외에서 근무해본 경험도 적다.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데도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한국적인 상황도 감안해야 하는 데, 평가가 지나치게 박한 것이 아닌가.

자질은 뛰어나지만, 시스템이 문제다. 우선, 임원들에 대한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기업들이 드물다. 얼마 전 필드에서 한 재벌 그룹 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 데, (그에게 ) 골프 회원권 금액의 50%를 임원 교육에 쓴다면 임원 역량이 열 배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농담 섞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최고 인재를 모아 놓고도 이들의 역량을 강화할 교육에 지속적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내 기업의 평가 시스템도 때로는 장애로 작용한다. 대부분 연간 단위로 평가를 받고 재계약을 맺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회장이 3~5년 장기 비전을 강조해도, 임원들 입장에서야 그 때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장기 비전에 시큰둥한 데도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국내 기업의 토양도 따져봐야 한다.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보니 스스로 사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임원들을 만나보면 오너의 의사를 파악하는 나름의 비법을 자랑스레 털어놓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임원이라는 자리는 전리품이 아니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임원들의 전략적 스킬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기회를 한 걸음 앞서 포착하고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비단 최고경영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국내 임원들은 인맥을 넓히고 제대로 활용하는 데도 상당히 서툰 편이다. (내가 만나본 ) 임원 상당수가 경쟁 기업의 임원들은 막론하고, 심지어 사내 임원들과도 교류하지 않는 폐쇄적인 태도를 지닌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임원들도 많이 공부를 한다고 하는 데,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다.


-국내 정서상 경쟁 기업 임원과 교류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할까. 왜 다들 제너럴일렉트릭(GE)만 배우려고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잭 웰치나 빌 게이츠를 입에 올리지만, 국내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배우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국내 상황에 정통한) 경쟁 기업의 임원들이 서로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다.

경쟁사에서는 일을 어떻게 하는지 배울 게 많다. 경쟁기업 임원들과 만난다고 해서 기밀문서를 주고받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스스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멀리하는 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임원이 되고, 롱런하는 데도 네트워크가 의외로 많이 작용을 한다. 좋은 쪽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피터 드러커나 잭 웰치의 경영 사상을 학습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대가들에 집착한 나머지, 가까운 곳에 있는 정보의 보고(寶庫)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해외 석학들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내게도 ) 피터 드러커는 영감의 원천이다. 특히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책은 임원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프로페셔널로 산다는 것이 어떤 뜻인 지,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무엇인 지 등을 논하고 있는 데, 경영자로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전략적 스킬을 키우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선, 1년 중 적어도 일주일은 회사의 각 사업부를 전략적 관점에서 검토해 보라. 3년 후 상사나 오너와 어떤 비즈니스 사안을 논의하게 될지, 현재와는 어떤 점이 다를지,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깊이 검토해 보라. 부서가 당면한 전략적 문제에 대해 일지로 기록해야 한다.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 상사와 친밀한 관계라면 이를 연간 주기로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함께 고민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공급업체가 누구보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라. 특히 경쟁사에도 납품을 하는 회사라면 양질의 정보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이 대표는 다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데, 본인이 직접 실천하고 있는 방안이 있다면.

진부한 말이지만, 배우고 익히는 데 결코 게을러서는 안 된다. 글로벌한 시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해외 저널도 꾸준히 읽어봐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권해주고 싶다. 고개를 절로 끄덕거릴만한 사례가 적지 않다.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글로벌한 시각을 배울 수 있다. <포브스>도 추천할 만하다. 모두 간결하고도 명확해서 (나처럼)항상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딱이다. (웃음)


-업종부터 임원 개개인의 업무스타일까지, 차이점이 적지 않은 데 일률적으로 이러한 지침을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인맥을 넓히고,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 것은 말 그대로 공통분모일 뿐이다. 임원 스스로의 유형을 파악해서 대처해야 한다. 예컨대, 전술적 스킬에 탁월한 이른바 마셜형 리더를 보자. 그는 우선 부하 직원과 자신이 담당해야 할 책임의 몫을 분명히 파악하는 편이 낫다. 이들은 스스로의 경영 노하우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권한이양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임원 자신이, 과연 인맥 활용에 뛰어난 브래들리형 리더인지, 관리 감독에 탁월한 아이젠하워형 리더인지 등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본인의 리더십 못지 않게 부하직원이나 상사의 성격·리더십 유형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업을 혁신하기 전에 임원직을 혁신해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만나본 국내 임원들 중 전략적 스킬이 가장 탁월한 기업인 한 명만 꼽아달라.

한 사람을 딱히 지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본받아야 할 역할 모델은 역시 은행권의 임원들이다. 특히 신한은행 임원들이 은행권에서는 가장 탁월한 것 같다. 맨손으로 신한은행을 일으켰다는 자부심 덕분인지 열정이 대단한 데다, 특히 국내 금융권과 달리 덜 관료적이어서 얽매인 사고를 하지 않는 점도 강점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임원들이 거의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근접해 있다.


-국내외 기업인들 사이에서 성장이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고민하는 임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나.

국내 기업들이 의외로 성장을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큰 돈을 벌고 있지만, 예외적인 사례다. 통틀어 따져보면 많은 기업들이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VK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문을 닫는 기업도 적지 않다. 성장을 하려면 해외시장에 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 경쟁의 정도가 세다는 점이다.

외국에 나가면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니 여러모로 어렵다. 국내 시장에는 중견 기업만 해도 브랜드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어 시장을 파고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해외 시장은 다르다. 결국 주판알을 튕겨보고 갈 데가 없으니 현금만 쌓아놓고 있다. 임원들의 전략적 사고가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끝으로, 뜨거운 감자인 한미 FTA도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사실, 수년 전 컨설팅 시장의 빗장을 열 때도 논란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경영 혁신의 노하우를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거의 시차 없이 습득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고객사들의 평가다. 금융 부문도 비슷하다. 국내에 진입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결국 국내 인력들을 채용해야 한다.

이들은 외국 기업의 노하우를 익혀 스스로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가장 큰 이슈는 영어다. IT 분야 고급인력이 많은 데 영어 탓에 수출을 못하고 있다. 영어를 할 수 있으면 앞으로는 더 많은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데, 지금까지는 그것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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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이공계현실을 비판하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펌글)
 
 
(월간조선에 실린 서울대 이면우 교수의 글입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긴 합니다만, 이공계 회피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오죽하면 제너럴일렉트릭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자국의 이공계 전공자 격감을 거론하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겠습니까. 문제는 세상을 바꾸는 이노베이션의 주체들이 공대출신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죠. 미국에서도 젊은 나이에 거대한 부를 일궈낸 인물중에는 공대 출신들이 많지요. 공대 출신이 기업은 물론 관계를 주름잡고 있는 인도나 중국을 두려워하는 배경입니다.
 
아마도 이런 반론을 하실 분들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게 어디 이공계 뿐이냐고. 워렌 버핏, 칼리피오리나,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인문학을 전공한 거물들 가운데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거나, 한때 주도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공계 전공자가 가늠하지 못하는 인문학의 가치가 또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 하지만 말이죠. '그들이' 이런 얘기에 꿈쩍이나 하겠습니까. 이 교수님,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시지 말고, 차라리 될성싶은 대선후보 진영에나 참가해보시죠. :)


많은 사람들이 이공계 교육의 위기를 얘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공계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다. 이건 아주 간단명료한 문제다. 살고 싶으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나 는 1991년 '서울공대 백서'를 발간했다. '서울대학은 국내 최고의 대학도 아니고, 세계 400위 안에도 못 드는 관악산의 최고대학'이라는 게 백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대학은 지금도 관악산의 최고 대학일 뿐이다.

2002 년 대선 때 서울대 폐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관악산 골짜기의 골목대장 밖에 안 되는 대학을 없애서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 나는 '서울공대 백서'와 1992년에 펴낸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오늘날 우리 공학교육의 위기는 5년 내지 10년 후 국가 전체의 위기로 냉큼 대두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IMF가 터지자 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 같이 예견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건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내다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공계 교육이 왜 국가위기를 진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바퀴는 두 개다. 하나는 국가 경쟁력이고 하나는 가계부 작성이다. 돈을 잘 벌어야 하고, 번 돈을 잘 써야 하는 이치다. IMF는 벌이는 없고 가계부 작성도 엉망이었기 때문에 온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계부 작성을 투명하게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엉망이었던 가계부 정리는 대충 끝났다. 구멍난 곳을 메우는 데 150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벌이를 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 'W 이론'에서 나는 세계 1등 기술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은 고스톱 판과 포커 판의 게임처럼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 2등이나 3등은 가산만 탕진할 뿐이다.

당 시에는 "도대체 무슨 얘기냐"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이제 이 얘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예전에는 인구 1억 명이면 내수시장만으로 국가를 지탱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요새는 인구가 문제가 아니다. WTO 등 글로벌 네트워킹 때문에 인구가 10억 명이 넘어도 기술이 없으면 굶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이외에 팔아먹을 것이 없다.

제주도를 천혜의 관광지라고 하지만 1년에 비오는 날이 100일이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는 부적격이다. 발리나 하와이에 가 본 사람들은 내 얘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관광국가로 먹고 살기에 우리의 문화유산은 너무 빈약하다.

벌 이가 없으면 아무리 가계부를 잘 써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원천은 과학기술 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 학생들이 과학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있느냐는 우리나라가 5년 후, 10년 후 어디로 갈 것인지를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들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는가? 답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삼성전자가 핸드폰을 하나 만들 때 퀄컴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판매가의 15% 정도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설비와 부품을 일본에서 모두 수입해야 한다. 앞으로 남고 뒤로 믿지는 장사다. 그것도 삼성전자의 얘기다.

정부는 '2만 달러 국민소득 달성을 위해 5대 성장전략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독자적인 기술 없이 어떻게 5대 성장 전략 사업을 키우겠다는 말인가?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들

지난해 서울공대생 23명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적 어도 100명에서 150명의 공대생이 머리를 싸매고 골방에서 법전을 외워대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그것보다 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나도 늦기 전에 고시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하며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은 채 고시공부의 언저리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서울공대 학부생 5500명 가운데 10% 이상이 고시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니던 한 학생이 다시 대입 시험을 봐서 서울의대에 입학했다. 면접장에서 제자를 만난 물리학과의 한 교수는 기가 막혀서 '물리 과목은 다 맞았겠지'라고 했다고 한다.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돈 잘 버는 의사·한의사·변호사가 되겠다고 작심한 아이들에 비교하면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에 불과하다.

나는 이 제자들이 딱하기만 하다. 눈치 빠르게 일찌감치 돈 버는 쪽으로 갈 것이지 서울공대에는 왜 들어왔다는 말인가.

서울공대나 자연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모두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특출나게 잘 했고, 과학기술을 연구해야겠다는 신념을 가졌던 친구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가 '이공계 공부해야 이렇게 비전이 없는데 그래도 고집을 부리면서 이공계 공부를 계속 할 거냐'면서 이 아이들을 끊임없이 고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 대덕의 연구원들은 밤 12시까지 연구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연구자 학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20대, 30대에 습득한 기술과 이론들은 순식간에 과거의 것이 되고 만다. 이공계 연구인력의 정년은 대부분 40대다.

이공계 인력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을 기다리는 건 '사오정'이라는 운명이다. 과학기술 인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길에는 존경과 냉소가 뒤섞여 있다.

이 들이 한국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라는 걸 어렴풋이 인식한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활동을 지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싫다. 국민의 이해 부족과 낮은 지위와 보수 때문에 이공계 출신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이런데도 당신들은 자식들을 이공계에 보낼 것인가? 의대와 한의대에, 법과대학과 상과대학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개인차원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사회차원의 비합리적 선택이 되는 현상을 미리 알고, 차단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몫이다.

재벌 총수들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재벌기업 총수에게 "왜 기술력도 확보되지 않은 공장들을 자꾸 늘려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의 대답이 똑같았다. "이교수, 그러니까 이공계 출신들이 눈치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요. 공장이 없으면 파이낸싱이 안 되잖아." 두 총수가 이끌던 거대 재벌기업 두 개는 IMF 전후에 무너졌다. 그때 한 재벌 총수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생산성 향상, 그거 별 의미가 없어요. 5~6% 이윤이 남는데 30% 생산성 향상시켜 봐야 기껏 2% 포인트 이윤을 더 남기는 겁니다. 공무원들하고 골프 치고, 술 먹고 해서 큰 프로젝트 하나 따오면 20%, 30% 이윤이 남아요. 로비 잘하는 게 생산성 향상시키는 것보다 열 배는 쉽게 돈 버는 일입니다."

공 장을 세워서 은행 돈을 빌리고, 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덩치를 키워 정부의 특혜를 받고…. 그런 식으로 기업들은 살아왔다. 그 체질이 지금도 과히 많이 바뀌지 않았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를 나온 사람들은 재벌기업의 비서실, 기획실, 마케팅실에 근무하면서 정·관계에 포진한 동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지금도 이공계 졸업생들은 '당신들이 중요하다'는 말만 듣지 계속 벽지 공장을 돌게 된다. 이공대 졸업생들의 좌절은 여기서 시작한다. 엔지니어들이 말도 못 하고 속을 끓이는 사이에 몇 년 후배인 법대·상대 출신들은 쭉쭉 승진을 한다.

이공계 졸업생은 승진에 한계가 있다. 경영진에 많이 기용되지를 못한다. 벽지의 공장에 처박혀 있으니까 '촌닭 같아서'임원으로는 못 쓰겠다는 것이다.

그 래도 과거에는 엔지니어들에게 프라이드가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성을 향상시켰다고, 품질개선을 했다고 총수와 간혹 악수할 기회도 있었다. 1960년대, 1970년대에 기업들이 외국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면, 영문 매뉴얼을 보고 가동시키는 일을 서울공대 출신들이 했다. 복잡한 영어 매뉴얼을 보고 다들 기겁을 하는데 그나마 서울공대생들이 그걸 해낼 수 있었다.

요즈음은 그 일을 외국에서 공부한 교포 출신들이 대체한다. 영어 실력이 서울공대생들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에서 '서울공대 나온 친구들이 기술을 알면 얼마나 더 아나, 교포 2세가 낫다. 미국에서 대학교 2학년 다니다가 왔다는데도 또랑또랑하고 매너 좋고, 아무나 만나도 섭섭하게 안 하고….'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

왜 대학들은 이렇게 기술 경쟁력이 없는 공대생들을 양산하고 있을까?서울공대는 물론이고 대다수 공과대학이 이론 교육에 치중한다.

강 의 시간에 외국 이야기만 들으니 학생들은 감흥이 일지 않는다. 학생들이 '우리가 직접 실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물으면 교수들은 '여기서는 못해'하고 의욕을 꺾어 버린다. 학생들은 교수들로부터 '너희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받는다.

서울공대 교수의 학위논문 80% 가까이가 이론이다. 이공계가 아니라 이이계인 셈이다. 우리 공대생들은 실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유학 가면 다 촌닭이 된다.

이런 현실에 대해 교수들은 '실험실습비도 없고, 실험장비도 없다, 어차피 나만의 책임은 아니지 않느냐'며 항변한다.

그러니 이공계 출신들은 유학 가서도 다 이론 쪽으로 간다.

기업은 해외협동이 있을 수 없다. 수요도 없고 공급도 없다. 기업과 대학 사이에 오가는 연구비는 기업들이 이공계 학생들을 조달하려는 차원에서 에이전시한테 주는 커미션일 뿐이다.

최근 들어 서울공대의 커트라인이 웬만한 지방의 의과대학보다 떨어진다. '공대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한다는 사실이 신문에 자꾸 보도되니까 공대가 더 죽는다'며 정원 미달 사실을 숨기는 것을 대책으로 들고 나오는 교수도 있다.

입 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져 수학·과학 '보충반'을 편성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수준의 학생들을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하라는 말이냐'고 한탄하는 동료 교수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 과연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학교육을 했느냐'고 묻는다.

최근 정부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겠다', '병역 혜택을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이런 대중적 구호를 보면 옛날 전봇대에 붙어있던 술집 여종업원 호객 구호가 생각난다. '침식 제공, 선불 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구호를 보면 "아, 저곳은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건 산업기술이고, 그것을 이끌어 가는 것이 이공계 교육'이라는 사실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의 전환이 없이 몇 개의 사탕을 나눠 주는 것으로 이공계 교육을 살려낼 방도는 없다.

내 실험실의 졸업생들 중 11명이 국제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졸업생들은 물론 교수인 나 역시 자부심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국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 이것이 우리 이공계의 현주소다.

이공계 기피의 역사적 뿌리

우 리 사회는 기술을 천시하던 조선조의 문화로 회귀하고 있다. 기술을 중시하고 이공계가 우대를 받았던 1960년대 이후의 시기는 기술을 냉대한 긴 역사에서 잠시 반짝한 예외적인 시기였다. 역사 속에서 내 선배 과학자 기술자들은 모두 처절한 최후를 맞았다.

신라 무영탑의 전설은 아주 로맨틱하다. 탑 만들기에 동원된 석공은 오랫동안 아내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내는 남편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스스로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 탑 만드는 데 동원되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가정이 파탄난다' 불사에 동원된 석공들에게 오두막 하나씩 지어 주고 거기서 아내가 밥을 지어 주게 했을 법한데도 위정자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영탑의 전설이 주는 교훈은 '석공에게 시집가면 죽는다'였을지 모른다.

에밀레종 설화도 마찬가지다. 공명 설계는 컴퓨터 기술로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신라 시대에 종을 만들려면 보통 고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독촉과 질책을 받았으면 끓는 쇳물에 제 아이를 넣어 볼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흉내만 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대대손손 축복을 내리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아들을 제물로 바쳐 맑고 그윽한 소리를 만들어낸 신라의 종 만드는 기술자가 그 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 설화 역시 '주조 기술자가 되려면 자식을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새벽 안개처럼 은은하게 사방에 퍼지게 했을 것이다.

조 선시대 기술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천민 계층이었다. 장영실을 보자. 관노 출신 천민인 장영실은 당시 지극히 예외적으로 종 6품까지 벼슬이 올랐다. 세종이 신임을 하니 문반들의 시기 질투가 대단했다. 문반들은 '천민이 종 6품까지 올라가는 것을 좌시하면 안 된다'는 공감대 아래 세종에게 온갖 간언을 했으나 세종이 듣지 않았다.

그러다 장영실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공주의 가마 손잡이가 부러져 공주의 가마가 구르고 말았다. 왕족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면 모반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세종도 감싸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가마 손잡이에 미리 톱질을 해 놓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당시 돌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후 아무도 장영실이 어떻게 됐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과학 기술자로 출세하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관존민비

국 내의 몇 개 안 되는 과학관에 가서 보면 서양 과학자들은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전부 기록돼 있는데 우리나라 과학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출생연도만 밝혀져 있을 뿐 사망연도는 물음표로 처리돼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말로가 안 좋았다는 증거다.

나는 1990년대에 '손빨래 세탁기', '골고루 전자레인지', '따로따로 냉장고' 등을 개발해서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제품 6개를 만들었다. 이 덕에 1996년에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세종문화상을 받았다.

시상식 전날 예행연습이 있다고 해서 불려갔다. 단상에 올라가는 걸음걸이가 씩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몇 번을 단상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연습하러 나온 여고 합창대원들 앞에서 서울공대 교수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었다.

이 튿날 시상식장에서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시상을 맡은 이수성 국무총리는 나와 함께 서울대학 교수로 일했던 분이다. 그의 연설이 이어지는 10여 분 내내 나는 객석을 등진 채 그를 바라보고 서 있어야 했다. 시상식의 주인은 상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맨 앞에 앉아 사진기를 들고 있던 아내는 나의 뒤통수만 실컷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상품 개발로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는 나는 수상 소감 한 마디 못해 보고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조선 시대 장영실의 얘기가 아니라, 1996년 서울공대 교수가 겪은 일이다. '이러니 다들 관료가 되려고 하지 누가 과학기술자가 되려고 하겠나' 하며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십면초가

나 는 1986년부터 우리의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1992년 'W 이론을 만들자'에서 우리 경제가 십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의 산업구조는 선진국에서 도입한 낙후기술과 설비에 저임금을 결합한 허약 체질이었다.

주문자 상표를 부착한 얼굴 없는 수출로 우리 상품은 저급품으로 분류돼서 외국의 저소득층에 팔려 나갔다. 유통망과 애프터 서비스 시스템이 없어 단골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져 실속 없는 산업팽창이 이뤄졌다.

1975 년을 기점으로 우리 산업의 틀을 바꿔야 했다. 1975년까지만 해도 '저임금 양산조립'은 한국에게 보장된 독무대였다. 그렇지만 기술도입과 단순 모방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했고, 값싼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라는 넘을 수 없는 산이 눈앞에 있었다.

1975년의 기술도입료가 전년도에 비해 갑자기 4배나 늘어났다. 이때부터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어야 했는데 우린 그걸 하지 못했다. 기술 도입료와 로열티가 계속 올라가자 기업들은 현장 작업자들만 다그쳤다.

지 금도 관료와 기업인들은 '고임금 저효율이 해소되어야 경제위기가 해소된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허리띠만 졸라매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말인가? 이웃집에서 카시미론 솜 이불을 팔아대는데 낡은 솜틀 기계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 것은 1975년식 사고방식이다. 제조업은 기술정보, 상품기획, 연구개발, 설계, 설비계획, 부품조달, 생산, 판매기획, 판매, 사후관리 등 대략 10단계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우리의 제조업은 상품기획과 연구개발 설계는 해외기술의 도입으로 대체했고, 판매 및 사후관리 단계는 외국 바이어들에게 기대 왔다. 우리 손으로 직접 담당하였던 것은 생산부분 뿐이다.

우리 제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응급 처방은 무엇일까. 우선 선진 제품의 모방에 심취했던 역개발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창의적인 연구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상품 기획을 해 본적이 없다.

선진기업에서 만든 제품을 도입하고 모방설계를 했으며, 세계시장에서 소비자 구매욕이 입증된 상품만 골라 뒤늦게 기획에 착수하였다.

나는 1989년 산학협동을 통해 '하이 터치'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상품을 개발하자는 게 목표였다.

1989 년에 만든 입체형 컴퓨터 키보드는 손목의 피로를 덜어 주는 제품이었다. 1993년에 출시되어 1조원 이상 팔린 맥킨토시 키보드보다 4년 앞선 기획 상품이었다. 한국의 대기업은 '이제까지 이런 제품을 본 기억이 없다'는 이유로 대량생산을 망설였다.

'그렇게 좋은 키보드라면 왜 IBM에서 아직까지 개발을 하지 않았겠는가'가 업체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우리 기업은 남의 것을 모방만 해왔기 때문에 남이 안 하는 것을 만들면 큰일이 나는 줄 안다.

비 슷한 시기에 나는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자동 진공청소기를 개발했다. 최근 필립스가 제작해 국내에서 한 대에 200만원 이상으로 팔리는 자동 진공청소기와 똑같은 모양과 기능의 제품이다. 차이가 있다면 필립스는 진공청소기에 자동 감지장치를 장착했다는 것뿐이다.

자동 진공청소기의 기획 아이디어를 냈지만, 어느 전자제품 업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산학협동을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인들 머리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삼부가 이론'을 발견했다.

경영혁신은 죽지 않으려고 하는 일

신제품 개발을 위한 상품기획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기업의 관리자들이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개발을 기피한다.

첫째,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이유다.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면 제품 원가가 올라가고 판매가도 높아지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량산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가 나온다. 나는 직육면체로 만든 제품의 모서리를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곡선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기업 쪽에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곡면으로 바꾸면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신뢰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논리다. 새로운 기능이 첨가되면 부품이 늘어나고 고장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기업 측에서는 '삼부가 이론'으로 신제품 개발에 반대했다.

어 떤 기업이 일류기업인가? 일류기업은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산업분야를 개척하고 최고 혹은 최초의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이 기업을 모방한 다른 기업들이 덩달아 돈을 벌어야 한다. 즉 보고 따라 하는 이류기업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렇다면 초일류기업이란 무엇인가? 국적과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전세계의 일류기업들이 초일류 기업의 기술과 상품 경영철학을 본받아서 큰 이익을 내야 한다. 초일류로 분류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몇 개 밖에 없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한국에는 불행하게도 초일류 기업이 없다.

삼성은 일류기업이지 초일류기업이 아니다. 삼성이 '신경영'을 추진할 때 삼성 임원들의 방마다 '잭 웰치'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나는 삼성 임원들에게 '삼성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잭 웰치를 쫓아갈 수 없다'고 얘기했다.
삼성 사람들이 '왜 안 되냐'고 묻기에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 잭 웰치는 현재 1등이거나 가까운 장래에 1등이 될 수 있는 2등을 빼놓고는 다 잘라냈다. 삼성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그룹이 공중 분해되어도 좋은가? 잭 웰치가 한 번에 10만 명을 감원했다. 한국적 정서를 이겨내고 수만 명을 감원시킬 자신이 있나? 잭 웰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서 직접 서류 나르고 재떨이 던지며 경영혁신에 달라붙었다. 당신 회사의 회장이 그렇게 할 수 있나'

삼성 관계자들은 '신경영을 하려는 총수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고 항변했다. 나는 '경영 혁신은 총수의 의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안 하면 죽기 때문에 하는 것이 경영혁신'이라고 했다.

그러면 삼성 관계자들은 대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죽기 살기로 경영혁신을 안 하는데 왜 삼성은 안 죽습니까?'

내 대답은 이렇다. '지금 사방에 암 걸려서 링거 꼽고 누워있는 환자들이 수두룩한데 폐병 걸린 환자를 죽일 수는 없지 않나?' 한국에서 경영혁신을 하겠다는 기업들은 대개 '전담추진반'을 둔다. 전담추진반은 보통 상무급이 팀장이 된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상급자인 사장들의 목을 자르겠는가?

IMF 경영혁신의 최대 피해자는 연구인력

IMF 이후 제일 먼저 잘려나간 것이 '전담추진반'에 연줄을 확보하지 못한 연구소의 연구인력들이었다.

총수가 직접 나서서 '우리 기업이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밤새워 고심했다면 연구인력은 제일 마지막 감원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했다.

이 게 대한민국 기업의 비극이고, 나라의 비극이다. 한국은 기업의 회장이 구설수를 외면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잭 웰치는 '전담추진반'을 두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감원대상을 고르고, 자르고, 불필요한 부서와 인력을 잘라 냈다.

1997년 초 한 경영자 모임에서 내게 강연을 요청했다. 당시 '가격 경쟁력만이 살길이다'는 구호가 위력을 떨치던 시절이었다. 나는 강연을 하면서 '아직도 가격 경쟁력을 강조하는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기업활동에서 가능한 한 끝까지 피해야 할 것이 바로 경쟁사와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가격경쟁이란 최후의 승자 하나만이 남을 때까지 출혈을 하면서 계속해야 하는 죽음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나서서 '죽음의 경기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아직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제품들은 제조원가가 높은 반면에 판매가가 낮아서 가격 경쟁력을 따질 시기를 지난 지 오래다. 우리 제조업은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에 비해 높은 금융 비용과 부동산 가격, 물류 비용, 로열티, 실질 임금 등이 높아 '5고'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울타리를 친 내수시장에서 국내 가격을 높게 받아 연명해 왔다. 마치 친척들에게는 비싼 값을 받고 일반인에게는 싼 값에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긴 것과 같다.

운 동경기에서 우리 팀이 계속 실점을 하면 관중들은 '작전을 바꾸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의 과거 작전은 가격 경쟁력이었으나, 가격 경쟁력 작전으로 가서는 중국은 물론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상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길은 가격을 높여서 받을 수 있는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는 길뿐이다. 제품가격을 높이고도 물건을 파는 방법은 독특한 제품, 경쟁상대가 없는 고부가 제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겠다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 중국에는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은 물론 화상 네트워킹과 마케팅 능력이 있고, 일본에는 기술력이 있는데 우리가 무슨 근거로 가격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까? 해답은 창의력에 있다.

우리에게 창의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모든 걸 해 봤는데 아직까지 안 해 본 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혹시 창의력이 있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나 스스로 경험을 통해 우리가 창의력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창의력을 가지고 소규모 실험을 해서 세계시장에 성공여부를 타진한 다음 군단 병력에게 파는 식으로 가야 한다. 우리의 3대 효자 상품인 휴대폰, LCD, 자동차 산업은 5년 안에 중국의 추격을 받아 자멸할 운명이다.

'가격 결정권'만이 살길이다

글로벌 마켓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마켓을 독점 내지 선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가격 결정권만 가지면 우리는 동양의 맹주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가격결정권을 가지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내가 내놓은 아래의 물음들에 독자들이 응답을 해주었으면 한다.

' 정부가 5년 이내에 이공계 기피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을 내놓을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기업이 5년 이내에 정부지원 없이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보는가?' '대학이 5년 이내에 스스로 교육개혁을 추진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학부모들이 내 자식만은 편안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고, 자녀에게 이공계 대학 진학을 권유할 확률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항목이든 "10% 이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응급실로 가야 한다.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우 리 산업은 도시가스에 밀려 설 자리를 뺏긴 구공탄 공장에 비유될 수 있다. 생산성을 향상해 하루에 구공탄을 10%씩 더 찍으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날 수 있을까? 구공탄 공장의 '고임금·저효율'이 해소되면 구공탄 공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답은 둘 다 '아니오'이다.

도시가스가 도입되는 초기에 '도시가스로 업종을 전환하라'고 했다면 연탄공장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웃기지 마라. 온돌방이 존재하는 한, 겨울철이 존재하는 한 구공탄은 영원하다.' 연탄공장은 그렇게 전의를 불 태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음가게와 냉장고, 우마차와 용달차, LP와 CD 모두 똑같은 원리다. LP 5000장을 모은 음악 애호가에게 CD로 바꾸라고 한다면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오스트리아에 여행 갔을 때 밥 굶으면서 산 오페라 판, 유학할 때 아내에게 잔소리 들어가며 산 클래식 전집,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그래서 음악 애호가도 이렇게 외친다. "클래식이 존재하는 한, 아니 오페라가 존재하는 한 LP는 영원하다." 그러나 지금은 축음기 생산이 중단되어 더 이상 LP를 들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과거의 산업구조가 일직선인 주로를 눈감고 뛰기만 하면 되는 마차 경주였다면, 지금의 산업구조는 폴로 게임이다. 말의 눈을 절대 가리면 안 되고 주로도 일직선이 아니고 그라운드다. 어디로 갈지 모르며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빨리 설 줄 알아야 하고 세 박자 쉬었다가 달릴 수도 있고, 세 걸음 뛰다가 정지도 해야 하는 복잡한 게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마차 경주 챔피언들이 폴로 복장을 하고 나와서 설치고 있는 형국이다.

요즈음 우리의 국가 목표는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이다. GNP로 국가의 비전을 내세우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의식은 거의 필리핀 수준이다. 우리에게는 '이웃을 돕겠다', '인류에 혹은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 희박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기 조차 힘들다. 원래 패러다임의 전환은 극히 일부가 시도하는 것이고 시도한 사람 중에 극히 일부가 성공한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이공계 기피의 최종 피해자는 국민

조선조의 한 왕이 정승들에게 "광풍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초가삼간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의정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광풍이 쇠잔해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지도계층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사방의 문을 열어 놓으면 초가집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방 안에 있던 민초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 바람에 날려가서 죽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끈질기게 버텨왔다. 7년 전쟁에서 절반에 가까운 민초들이 사라진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이공계의 위기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이공계의 위기에는 기업과 대학, 사회 전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잭 웰치의 얘기에서 거론했듯이, 이공계의 위기는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각오로 달라붙어야 할 문제다. 정책 구호나 유인책 몇 가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대학이나 이공계 대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기업, 우리 사회 전체가 이공계 기피현상의 최종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살고 싶으면 해결해야 하고, 죽고 싶으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냥 놔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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