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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社)바이벌’플랜] 고전 속 영웅들의 처세술



●“지나친 총명은 화를 부른다”

황하는 늘 범람했다. 중원을 지배한 몽골인들은 치수(治水)에 서툴렀다. 그들은 ‘요순’이 아니었다. 다루가치들은 무더위와 배고픔에 지친 평민들을 둑을 쌓는 일에 동원했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흉년과 수탈에 지친 백성들은 공사현장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훗날 명나라를 창업하는 주원장의 부모도 이때 목숨을 잃는다. 난세 중의 난세였다. 주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행각승으로 중국 전역을 돌며 비참한 현실을 목도한다. 그리고 조변석개하는 인심의 덧없음도 깨닫는다. 그런 그가 중국 대륙에서 이민족인 몽골족을 몰아내고 한족의 명나라를 세웠다.

유학자 주기와의 만남은 천재일우였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하던 이 무장은 이 유학자의 조언에 따라 성을 높이 쌓고 곡식을 비축했으며 ‘칭왕’을 미루었다. 난세를 돌파하기 위한 세 가지 지혜였다. 한족 대몽 항쟁의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주기가 제시한 3원칙은 단순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칭왕의 연기(延期)’다. 스스로 ‘왕’을 칭하는 일을 미루라는 뜻이다. 우쭐하는 마음에 총명함을 뽐내다가는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삼국 시대 조조 휘하에 일하던 ‘양수’는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못해 목숨을 읽고 만 인물의 전범(典範)이다.

양수는 어릴 때부터 영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천재형 인물이었다. 당시 군주마저 우습게 여겼던 시대의 미치광이 ‘예형’마저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을 정도이다. 대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학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이런 배경을 밑천으로 조조의 후계자 그룹과도 꾸준한 교분을 이어갔다. 하지만 ‘현명한 자는 지나치고, 우둔한 자는 모자라다’는 중용의 통찰력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조조의 속내를 여러 차례 꿰뚫어본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더욱이 이런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기까지 했다. 조조가 무심코 던진 ‘계륵‘이라는 말에서 그의 철군 의지를 읽은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양수는 ‘한중이 마치 먹을 것이 없는 닭갈비와 같다는 뜻이니 조조가 곧 한중에서 철군을 할 것’이라는 예측한다. 그의 예상은 적중한다. 그리고 반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죄명은 말을 함부로 옮기고 사적인 이익을 챙겼으며 제후들과 밀통했다는 것이었다.

인재들에게 한없는 포용력을 발휘하는 조조였다. 뇌물을 받아 말썽을 빚던 동향의 관료를 번번이 용서하고, 배신한 장수까지 다시 받아들이는 그였다. 하지만 자신의 의중을 꿰뚫어보며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 위험한 ‘인재’를 용서하지는 않았다.

지나친 총명은 어리석음만 못하다. 촉한 제갈공명의 북벌을 좌절시킨 사마의는 이러한 원리를 꿰뚫고 있었다. 요동 땅을 지배하던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예는 그에게 토벌을 명령한다. 그는 적군의 주력이 기다리고 있던 주성을 지나쳐 적장인 공손강이 웅거하고 있는 양평으로 진격해 들어간다.

수나라 대군이 고구려의 요동성을 지나쳐 바로 평양성으로 진격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병력을 ‘길목’에 매복하고, 적의 주력을 섬멸하는 대전과를 이루게 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사마의의 이후 행보이다. 큰 공을 세운 장병들에게 겨울 한파를 막을 수 있는 두터운 방한 외투를 지급하라는 참모들의 제언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그였다.

군심을 장악하려 한다는 황제의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반드시 배신을 한다는 이른바 ‘낭중지상’이어서 늘 조씨 가문의 견제를 받고 있던 그가 얼마나 용의주도한 인물이었는가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진시황의 명을 받아 중원의 제후국들을 차례로 정복한 장군 ‘왕전’도 처세의 묘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통일전쟁에 나선 그는, 군대를 되돌려 반역을 꾀할 수 있다는 진시황의 의심을 피해가야 했다. 왕전이 내민 카드는 비루함을 가장하는 일이었다.

진시왕 영정을 상대로 출정에 앞서 수차례에 걸쳐 전답과 저택 등 재물을 줄기차게 요구해 자신이 배반할 마음이 추호도 없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한나라의 황제 유방의 동향이었던 명재상 소하가 취한 행동도 비슷한 맥락이다. 민심을 장악해 반기를 들 수 있다는 황제의 우려를 씻어내는 일이 시급했다.

백성들에게 더없이 후덕하던 소하는 이러한 의심을 지우기 위해 백성들에게 고리대를 놓고 빚을 상환하지 못한 이들의 곤장을 쳐 일부러 원성을 자초했다. 조직이나 국가를 향한 로열티를 입증하는 일이 이들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던 셈이다. 물론 처세술만으로 난국을 헤쳐갈 수는 없다.

주원장이 소중히 여긴 두 번째 원칙이 바로 ‘성을 높이 쌓고 곡식을 비축하는 일’이다. 거점을 확보하고 평소 실력을 부지런히 닦으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위촉오가 경합을 하던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수로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여몽이 대표적 실례이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강남 지역에 옮겨왔다 매형을 따라 종군해 공을 세워 발탁된 사례이다. 그는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성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선비는 헤어진 지 사흘만 지나도 장족의 발전을 이룩해 눈을 부비고 그를 다시 바라봐야 할 정도라는 뜻이다.

훗날 맹장 관우가 지키던 형주 쟁탈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 바로 괄목상대한 여몽이었다. 병을 칭하고 자신의 자리에 백면서생(白面書生)에 불과하던 육손을 임명해 관우의 방심을 부추겼다. 그리고 관우가 대병력을 이끌고 북벌에 나선 사이 형주를 기습해 형주탈환이라는 오랜 숙원을 마침내 이룬다.

여몽은 유연함도 발휘했다. 아직 무명이었을 때의 일화다. 손권이 군대 개편을 추진하자, 그는 자신의 군대를 창검기치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그의 진영에 순시를 나온 손권의 마음을 군무로 사로잡아 다른 부대를 넘겨받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인사권자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겨 휘하 부대의 덩지를 키우고, 훗날 동오의 총사령관이 되는 기틀을 이때부터 다지게 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사권을 쥔 이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나라의 신불해가 주창한 ‘술(術)’의 원칙을 눈여겨봐야 하는 까닭이다.

신불해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요건 중에 술을 필수 요건으로 삼았다. 술로써 다스릴 때 신하들은 군주의 심의를 꿰뚫어보지 못하게 되고 자기보다 높은 자리를 넘보지 않으면서 오직 자기 직분에만 충실하게 된다고 하였다. 임직원의 입장에서는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인사권자의 변덕을 이해하는 요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운(時運)’이 역행하는 때가 있게 마련이다. 진나라 부국강병의 토대를 놓았던 상앙이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가 사망하자 사지로 내몰리게 된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제나라 전씨 가문의 계승자였던 맹상군의 ‘교토삼굴(狡兎三窟)’전략은 이런 맥락에서 눈여 겨 볼 만하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이상 파놓는다는 뜻이다. <십팔사략>에 따르면 맹상군은 제나라의 왕족인 전씨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다. 명민함을 발휘해 집안의 적장자로 가업을 계승하게 된다.

식객만도 무려 3000여명에 달했을 정도이다. 정치 환경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는 식객이었던 풍환의 도움으로 자신의 봉지로 돌아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게 된다.

역사는 인간관계에 울고 웃는 영웅들의 눈물의 파노라마이자, 오늘을 살고 있는 동시대인이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하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세를 이루고 조직이 운용되는 한, 수천 년 전 역사의 한 귀퉁이를 장식했던 인물들의 ‘처세술’이 여전히 유효한 배경이기도 하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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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도 ‘갈등’으로 무너진 은행 많아… 美 씨티은행 내분 ‘닮은 꼴’

신한사태 반면교사ㅣ쇠망의 씨앗은 ‘사람’에게 있더라

2010년 10월 12일 10시 00분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은 마치 야생마의 등 위에 올라타 고삐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양양한 동안(童顔)의 미남 경영자, 샌디 웨일의 양아들이자 오른팔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는 한때 씨티그룹의 잘 나가는 2인자였다.

샌디 웨일·제이미 다이먼은 인연의 골이 깊었다. 아메리카익스프레스(AMEX)에서 쫓겨난 샌디 웨일을 무작정 따라 나선 것이 바로 그였다. 제이미 다이먼은 중국 진한시대의 장수인 ‘한신’을 떠올리게 하는 뛰어난 금융 영토 확장의 전문가였다. 스승과 제자가 선택한 와신상담의 무대가 볼티모어에 있는 ‘커머셜 크레디트(Commercial Credit)’ .

두 사람은 환상의 복식조였다. 샌디 웨일이 큰 흐름을 제시하면, 제이미 다이먼은 세부적인 부분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수행했다. 월가는 그런 두 사람을 부자지간, 스승과 제자에 비유했다. 이 회사는 ‘프라이메리카(Primerica)’ ‘트래블러스(Travelers)’ ‘씨티그룹(Citygroup)’ 등으로 사명을 바꾸며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했다.


동고동락 20여 년 만에 2인자 ‘토사구팽’

두 사람이 동고동락한 세월이 무려 20여 년. ‘시너지’는 두 사람이 선호하는 씨티그룹 성장의 키워드였다. 부단 없이 인접 영역으로 금융 영토를 늘리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죽’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 ‘이 거대한 금융제국의 후계자는 당연히 제이미 다이먼이 될 것’이라는 게 월가의 분석이었다. 그의 몰락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제시카 비블리오윅츠’는 아버지인 샌디 웨일의 불신에 기름을 부은 ‘장본인’이었다.직속 상사인 제이미 다이먼과 자주 부딪치던 샌디 웨일의 딸은 그의 반대로 승진이 좌절되자 회사를 떠난다. 이로부터 14개월 후, 제이미 다이먼도 씨티그룹에서 물러난다.

씨티그룹 경영자들이 모두 참석한 경영전략회의가 발단이었다. 씨티그룹의 운영 방향을 둘러싸고 말다툼을 벌이는 경영진들을 중재하는 제이미 다이먼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노 경영자가 바로 훗날 자신의 딸의 사퇴에 아쉬움을 토로하던 샌디 웨일이었다.

지난 1998년 11월, 제이미 다이먼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뉴욕에 있는 컨퍼런스센터(conference center)로 오라’는 샌디 웨일의 전화였다. 이 전화 한통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샌디 웨일이 그에게 던진 주문은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젊은 경영자는 세상사에 어두웠다. 제이미 다이먼은 며칠 후 샌디 웨일이 준비해둔 기자회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준비된 원고를 읽는 일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회사를 용퇴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무려 20년 가까이 이 제국의 확장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제이미 다이먼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운명을 면치 못했다.

“65세의 웨일이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다이먼을 시기했는지도 모른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이었다. 20여 년 이상 지속된 두 사람의 밀월관계는 종언을 고했고, 그 원인을 놓고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분석이 꼬리를 문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샌디 웨일도 불청객 ‘의심’ 못 피해

증권사 사환으로 시작해 45년 만에 세계 최대 금융그룹이던 씨티그룹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성공담의 주인공이었다. 씨티코프와 합병이 샌디 웨일 인생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그도 나이가 먹으면서 피해가지 못한 불청객이 있었다. 바로 ‘의심’이다.

금융가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독 장기 집권형 리더들이 많다. 샌디 웨일 씨티그룹 전 회장, 모리스 그린버그 AIG 전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이 영욕의 세월을 거친 대표적인 경영자들이다.


“어떤 일에서든 성공이나 실패를 결정하는 진짜 문제가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과 문화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라응찬 회장은 1991년 행장으로 선임된 후 은행장 3기 연임, 부회장 2기 연임에 이어 지주회사 회장으로 지난 3월 네 번째 선임됨으로써 무려 19년 동안 신한은행의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소속사의 초고속 성장을 주도하며 조직의 최정상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라 회장도 대구은행 비서실 시절 똑 부러지는 일처리로 재무장관 출신인 김준성 대구은행장의 눈도장을 받으며 훗날의 대도약을 예비한다. 라 회장은 재일교포 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정치권의 외풍을 막으며 신한은행의 도약을 이끈 금융계의 거물이었다.

그가 이 금융그룹이 나아갈 큰 윤곽을 그린 리더십의 전범이라면, 신상훈 사장은 라 회장이 높이 치켜 든 전략목표를 실행에 옮기는 한국의 ‘제이미 다이먼’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도 씨티그룹의 내분사태와 여러모로 닮았다. 이번 사태가 ‘제도보다는 사람의 문제’라는 진단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블루오션 이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김위찬 교수, 로사베스 모사 켄트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상찬을 아끼지 않은 연구 대상이 신한은행이다. 이들이 보는 신한의 성장동력이 바로 독특한 신한금융의 기업문화, 수뇌부의 뛰어난 리스크 관리 역량이었다.

그런 이 금융 명가에 위기가 소리 없이 찾아든 이면에는 최고 상층부의 내분이 있다. 호남이 연고인 신상훈 사장은 지난 10년 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이 은행의 외형 성장에 큰 몫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는 라응찬 회장의 명실상부한 후계자였다.

미국 씨티그룹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리더를 정점으로 전략 목표를 향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던 사업 단위들이 더 이상 매끄럽게 움직이지 않는 이면에는 수뇌부의 분열이 있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춤은 추어야 한다.” 샌디 웨일이 제이미 다이먼을 내쫓은 뒤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척 프린스는 변호사 출신의 경영자였다. 지난 2008년 미국 금융 위기의 여파로 흔들리던 이 회사의 수장에서 물러난 그가 남긴 사퇴의 변이다. 지난 2008년, 샌디 웨일 씨티그룹 전 회장은 척 프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것을 뒤늦게 후회한 바 있다.


신한 라 회장-신 사장 ‘다툼’도 닮은 꼴

제이미 다이먼은 무려 1년 4개월여를 ‘두문불출’했다. 집 근처에 있는 복싱 체육관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였다. 제이미 다이먼이 재기의 날개를 펼친 은행이 바로 ‘뱅크원’이었다.

지난 2004년, 그는 JP모건체이스와 합병을 성사시킨다. 두 은행의 합병으로 자산 규모 1조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거대 은행이 등장한다. 제이미 다이먼은 JP모건체이스의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미국의 신용 위기 사태로 흔들리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인수하는 등 월가의 대표 주자로 우뚝 섰다.

“어떤 일에서든 성공이나 실패를 결정하는 진짜 문제가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과 문화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경영석학인 마이클 해머(Michal Hammer)가 대표작인 <아젠다(Agenda)>에서 남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뇌부 ‘빅3’의 권력다툼으로 촉발된 신한사태는 이 운행 구성원들이 지닌 30여 년 간 애써 구축해온 탄탄한 브랜드를 송두리째 허물어뜨리며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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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EO, 창의력 어디서 얻나


“요가·명상·종교로 직관력 길러”

‘직관을 중시하라’세계적인 경영자들 가운데는 동양의 종교나 명상에 심취한 이들이 적지 않다.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의 절친한 친구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데이터베이스 기업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의 저택을 일본식으로 꾸며놓고, 일본풍 옷을 즐겨 입는 등 동양의 정신문화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잡스도 선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창의성은 젊은 시절부터 다진 경험과 더불어 독특한 발상법에 빚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직관을 따르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당신의 가슴, 그리고 직관이야말로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가 설문 조사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대학시절 빠져들었던 동양의 종교가 창의력 발휘에 한 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대학을 때려치우고 비디오게임 ‘퐁(Pong)’으로 대박을 터뜨린 아타리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인도의 참선 수련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일즈포스 닷컴의 최고경영자 ‘마크 베니오프’도 대표적인 불교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오라클의 세일즈 맨 시절이던 지난 1996년,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떠나 성직자인 암리타난을 만나 3년 간의 수행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비즈니스 위크》는 격무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의 비결에 놀라움을 표시한 바 있으며, 《포천》도 숲속에서 직원들과 명상하고 있는 그의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경영자들이 종교, 명상, 요가 등을 통해 자신들의 삶에 변화를 꾀하고 있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우선 스티브 잡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직관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합리적인 사고만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경쟁의 격화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영자들 뿐만이 아니다. 명상을 하는 미국인들은 최근 10년 사이 두배 가량이 증가한 것으로 <타임>은 전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수천명의 인명을 앗아간 9.11테러 사태도 요가, 명상을 비롯한 동양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발언들

“직관을 따라야 창의력이 발현된다”

▶ "You can't just ask customers what they want and then try to give that to them. By the time you get it built, they'll want something new."

고 객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나서 그들에게 바로 그 물건을 제공할 수는 없다. 당신이 제품을 완성할 때 쯤이면, 고객들은 뭔가 새로운 제품을 찾을 것이다.

▶ Be a yardstick of quality. Some people aren't used to an environment where excellence is expected."

품질이 모든 것이다. 품질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환경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 "Innovation distinguishes between a leader and a follower."

혁신이야말로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다.

▶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다른 이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라. 도그마를 추종하지 말아라. 도그마는 다른 사람의 사고의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당신 스스로의 목소리를 사라지게 하지 말아라

▶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직관을 따르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당신의 가슴, 그리고 직관이야말로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른 것은 부차적이다.

▶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사 망 선고는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은 사라져버렸다.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당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점을 늘 생각해보라. 무엇인가 잃을 게 있다는 두려움을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당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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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Leadership | ⑤ 야후 창업자 제리 양
[이코노믹리뷰 2006-04-19 12:15] 야후는 한때 검색의 대명사였습니다. 책이나 신문을 읽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자연스레 이 사이트 주소를 쳐넣었지요. 제 머리가 아니라 손 끝이 이 회사의  웹주소를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강산도 바꾼다고 하죠.

'검색 머신'으로 불리는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야후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진행형이라기 보다는 이미 밀어냈다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한국시장에서는 더더욱 맥을 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사장 자리에 앉혀도 턱턱 나가 떨어집니다. 야후에  미래는 있는 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이 회사의 설립자인 제리양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는 여전히 아시아 이민자들의 우상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경영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년전 그가 제시한 처방은 명확했습니다.인간의 얼굴을 한 야후를 만들겠다는 복안이었습니다.

누리꾼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리노베이션을 하겠다는 거지요. 플릭커를 비롯해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겠죠. 꽤 오래전부터 이런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미국 본사에서도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을 설득하는 게 간부사원들의 주요 업무중 하나가 됐다고 한 외신은 보도합니다.

제리양이 제시한 처방, 그리고 테리 시멜을 비롯한 경영진들의 원대한 구상도 시효를 다한것은 아닐까는 생각이 듭니다. 구글의 공세를 과연 견뎌낼 수 있을 지 회사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강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대학교 서클 선배같은 푸근한 외양을 지닌 제리양. 아시아 이민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그가 이번에도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날로그 감성 리더십으로 디지털 세계 장악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 기술은 그 다음이다”

<이코노믹 리뷰>는 인터넷 혁명의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세계적 경영자 5명의 리더십을 심층 분석해보는 코너를 마련하고, 이를 5회에 걸쳐 집중 연재하고 있다. 연재 대상은 인터넷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구글(Google)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 조용한 리더십의 대명사 맥 휘트먼 이베이(ebay) 사장, 아마존의 (Amazon)의 제프 베조스 회장, 제너럴 일렉트릭의 제프리 이멜트, 그리고 야후(Yahoo)의 제리 양이다.

“(나는)10년 전 만큼 기술지향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검색의 미래를 찾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여불위에서 미국의 카네기에 이르기까지, 빈손으로 시작해 가난한 나라의 연간 국내총생산 규모를 뛰어넘는 부를 일궈낸 인물들의 성공은 뛰어난 능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운명은 이들의 삶을 엿보는 또 다른 키워드다.

미국과 중국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던 지난 1978년, 대만의 타이베이. 영어 교사이던 젊은 어머니 릴리(Lily)는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새너제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훗날 야후를 설립하는 제리 양(39)이 불과 10세 때의 일이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그녀의 희망은, 아들의 성공이었다.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야 여느 부모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열악했다. 아시아계 이민자가 미국 사회에서 할 일이라고는 허드렛일 밖에는 없었고, 그녀는 자존심을 접고 청소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장남인 제리 양은 공부를 썩 잘했다. 아들이 들고 오는 성적표는 미국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화룡정점(畵龍頂點). 명문 사학이자, 벤처 기업인들의 요람 스탠퍼드대(전기공학) 입학은 집안의 경사였다.

이 학교는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의 보증 수표나 다름없었다. 중국 과거 시험의 예비 시험격인 동생시 합격에 비유할 수 있을까.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한 제리 양의 꿈은 더 원대했다.

인터넷은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대학원 조교 생활을 하던 그는, 늘어나는 인터넷 사이트의 주제별 안내 가이드(Jerry Yang's WWW guide)를 짬짬이 정리했다.

당시 스탠퍼드 대학원생들에게 이메일과 더불어 인터넷(고퍼) 서핑은 일상 생활의 일부분이었는 데, 그는 동료 학생들에게 도움을 자청했던 것.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가이드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학생들은 물론 전세계 네티즌들의 접속으로 컴퓨터가 과도한 부하를 감당하지 못하자 서버 컴퓨터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을 정도.

그가 벤처기업 창업에 나선 배경이었다.

회사 이름은 야후(yahoo). 공동 창업자인 데이비드 파일로(David Filo)의 어린 시절 애칭이었다. 모든 것은 순풍에 돛을 단 격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투자사 ‘세쿼이어 캐피털(Sequoia Capital)’에서 100만달러를 투자 받는 데 성공했으며, 창업 2년 만에 직원은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당시만 해도 그는 인터넷의 폭발력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지난 1997년 <머니>와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이러한 점은 확인된다. “우리가 만든 웹 사이트의 명단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린 단지 취미 삼아 (사이트 정리를 )했을 뿐이다.” 제리 양의 말이다.

하지만 야후는 인터넷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난 1996년 4월 11일, 주당 13달러에 260만주를 공개한 이 회사의 현재 인터넷 이용자 수만 25개국, 3억5000만여 명. 경제주간지 <포브스(Forbes)>에 단골로 등장하는 거물 기업인으로 성장한 제리 양의 재산만 무려 수십억달러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기업간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중국의 알리바바(alibaba)닷컴을 10억달러에 전격 인수, 중국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식지 않는 열정과 인간중시 철학
첨단시대에 아날로그 감성 통한다는 것 입증

지난 세기말의 인터넷 혁명은, 독창적인 아디이어를 지닌 소수의 선각자들이 거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제리 양은 행운아였다. 당시 스탠퍼드는 벤처 창업의 젖줄이자 인터넷 혁명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대만에서 건너와 인터넷이 태동하던 시기에 스탠퍼드를 다닌 것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성은 창업보다 어렵다고 했다. 특히 지난 2000년 벤처 거품 붕괴의 후폭풍을 극복하고, 다시 닷컴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나름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이코스·알타비스타·익사이트·고닷컴·스냅…. 한때 검색 분야의 총아로 각광받다 사라져간 비운의 업체들과 달리 야후가 10년 이상 최정상 기업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경영자적 자질을 가늠하게 한다. “사람을 언제나 먼저 생각하라. 기술은 그 다음이다.” 제리 양을 이해하는 첫 번째 코드는 식지 않는 열정과 더불어, 고유의 인간 중시 철학이다.

그의 경영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그 진가(眞價)를 발휘하고 있다. 닷컴 부활을 선도하고 있는 마이스페이스닷컴이나 트라이브 닷컴·클래스페이스 닷컴·포토버킷닷컴의 성공은 첨단의 시대에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먹혀들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한 대표적인 사례다.

“네티즌이 다시 찾아오도록 많은 음식을 준비하라.” 그의 또 다른 강점은 지속적인 서비스 기반 확충에 성공한 것이다. 전자여행 상품 거래의 선두기업인 세이버 그룹과 제휴를 맺어 야후 회원들이 여행 상품 예약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비디오 판매회사인 비디오서브 닷컴과도 제휴를 체결, 네티즌들의 발길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내 것이 대표적 사례다.

부단한 기업 인수합병도 비슷한 맥락이다. 《보랏빛 황소》의 저자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경영구루 ‘세스 고딘(Seth Gordin)’이 창립한 다이렉트 마케팅 서비스 기업인 ‘요요다인’, 전자상점 운영기업인 ‘바이어웹’ 등을 지속적으로 인수하며, 야후를 네티즌을 위한 거대한 가상 사회로 조성해 나갔다.

검색과 커뮤니티의 결합도, 야후의 성공시대를 불러온 비장의 카드. 사진과 음악, 블로그, 그리고 식당 리뷰 등을 실을 수 있는 블로그에 지인들을 초대하고, 메신저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야후 360(Yahoo! 360)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커뮤니티, 블로그, 그리고 사진 서비스 등을 적절히 융합하면서 새로운 경쟁우위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환경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도 주효했다. 지난 2000년 닷컴 버블이 터지며 우려가 높아지자 할리우드 출신의 최고 경영자인 ‘테리 시멜(Terry Semel)’을 전격 영입해 지휘봉을 맡기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며 위기의 조기 진압에 성공한 것.

워너브러더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다소 운영이 방만하다는 지적을 받던 야후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왔다. (박스기사 참조)

야후는 제리 양과 테리 시멜의 조율을 거치며 검색·사진·음악 등 여러 분야에 두루 강점을 지닌 미디어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른 닷컴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 구글, 인터넷 업체 경쟁구도 변화 불러
야후, 신 서비스 개발 失地 회복 적극 나서

하지만 과제도 만만치 않다. 구글은 닷컴의 경쟁 구도에 일대 변화를 불러왔다. 스탠퍼드 동문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가 설립한 이 회사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앞세워 검색 분야의 명실상부한 최강자로 부상했다. 인터넷 기업의 경쟁 구도를 포털에서 검색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검색 광고 시장의 급성장을 불러온 주역이기도 하다.

야후가 구절 단위로 검색을 수행하는 ‘와이앤큐(Y!Q)’ 서비스 등을 앞세워 실지(失地) 회복에 적극 나서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또 다른 검색기업인 오버추어(Overture)를 사들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검색광고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이 분야 공략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 (박스기사 참조)

검색 시장 3위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의 MSN도 여전히 껄끄러운 상대다.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점이 상당한 부담거리다. 넷스케이프가 이 회사 익스플로러의 공세에 밀려 브라우저 시장의 패권을 넘겨주어야 했던 것은 반면교사다.

지난 2004년 기업 설명회에 클린턴 전 대통령을 초빙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는 검색 전문기업 아큐나(www.accoona.com)를 비롯한 후발 주자들도 주목 대상이다. “(나는) 10년 전 만큼 기술 지향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검색의 미래를 찾는 작업의 한복판에 있을 것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중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 지난해 회사 창립 10주년을 맞아 검색전문가 포럼에서 행한 제리 양의 연설의 한 대목은 야후가 처해있는 나름의 고민을 엿보게 한다.

제리 양이 전하는 야후 성공 방식

▷미디어와 미디어의 메시지를 이해하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 기술은 그 다음이다

▷광대한 지구촌에 친밀하고 작은 동네를 만들어라

▷편집광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최고의 상대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라

▷기막힌 이벤트로 생동감을 유지하라

▷최고의 수준을 지닌 파트너와 협력하라

▷생동감 넘치는 기업 문화를 창출하라

▷네티즌이 찾아오도록 많은 음식을 제공하라


미 온라인 광고 시장 쟁탈전

검색광고 시장이 닷컴 성장동력…
아마존까지 검색 서비스 출사표

야후·구글·MSN 등이 검색시장 공략의 수위를 한 단계 높이고 있는 배경은 물론 상대적으로 밝은 시장 전망 때문이다. 온라인 광고시장이 오프라인 광고시장에 비해 여전히 턱없이 적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미국의 온라인 광고시장은 오프라인 광고 시장의 3% 규모로, 전화번호부 광고시장에도 못 미치고 있다.

검색 광고시장이 달아오르는 배경이기도 하다.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이 검색 서비스인 A9(www.a9.com)을 앞세워 이 대열에 합류한 것은 미국 시장에서 불고 있는 검색광고 시장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온라인 광고 시장을 외면하던 굴뚝기업들이 광고비를 늘려가고 있는 배경은 명확하다. 비용 대비 효율성을 서서히 파악하면서부터. 인터넷 환경 변화와도 깊이 맞물려 있다.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 증가로 미국인들의 웹 서핑 시간이 늘어나면서 광고 노출시간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크라이슬러는 온라인 광고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플래시 등 다양한 효과를 통해 메시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 점도 주효했다는 평가. 클릭수나 이용자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광고는 상대적으로 매력적이다. 광고 효과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 광고비도 오프라인에 비해 더 저렴하다.


야후-구글, 어떤 차이 있나

“테리 시멜과 에릭 슈미트보면
창업자 철학 한눈에 들어와”

테리 시멜 야후 회장은 구글의 에릭 슈미트와 종종 비교대상이 된다. 그는 워너브러더스에서 20년간 근무하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생리를 깊이 터득하고 있는 인물이다. 또 영화에서 음악까지 여러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장기적인 비전을 지닌 전략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달리, 대중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경영자는 아니지만, 야후를 21세기 미디어 분야의 강자로 탈바꿈시킬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영임은 야후가 검색과 콘텐츠를 결합시킨 미디어 그룹을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불러온 배경으로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장기적으로 자체 콘텐츠 제작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야후에 부임한 그는 닷컴 버블 붕괴 후 야후에 합류해 이 회사의 재활에 기여했으며, 특히 미디어 사업 분야의 교통정리에 나서 콘텐츠 중복 등 문제를 대폭 줄였다는 평가다.

반면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루슨트 테크놀로지,·노벨 등을 거친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이다. 제리 양과 래리 페이지의 회사 운영 방향의 차이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구글은 공대 출신의 기술자들이 알고리즘 개발에 몰두하는 기술회사인 데 비해, 야후는 엔터테인먼트 쪽에 가깝다는 평가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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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와 리더십

“고든 무어가 쇼클리를 떠난 이유 ”

고 든 무어(Gordon Moore), 로버트 노이시(Robert Noyce). 하나같이 미국의 기업사에 한 획을 그은 쟁쟁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한때 한 명의 리더 밑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는 점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내로라하는 천재들을 통솔하던 주인공이 바로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이다.

런던 태생의 과학자인 쇼클리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벨연구소에서 근무했는데, 그는 당시 트랜지스터의 발명자로 널리 알려졌으며, 1957년에는 노벨상을 받으며 자신의 명성을 공인받는다. 1955년에는 벨연구소를 떠나 자신의 이름을 딴 쇼클리반도체(Shockley Semiconductor Laboratory)를 설립한다.

당시 그의 명성을 좇아 이 반도체 회사에 모여든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무어의 법칙을 발견한 고든 무어, 그리고 로버트 노이시이다. 모두 당대의 천재들이었으나, 쇼클리는 단연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직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지닌 천재적인 인물’당시 쇼클리를 평가한 말들이다.

쇼클리는 천재들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천재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은 이러한 천재성에 비추어 볼 때 턱없이 부족했다. 다음은 그의 부족한 리더십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이다. 쇼클리는 자신의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당 시 연구원들은 연구 성과물을 담은 리서치 보고서를 발행할 것을 권유한다. 쇼클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집으로 돌아가 연구 보고서를 만들어 다음날 이 보고서를 그들의 공동명의로 내자고 제안한다. 다른 구성원들을 무시하고 있는 자신의 속내를 들키고 만 것이다.

하나같이 자신의 분야에서 천재성을 인정받던 인물들이었으니 쇼클리의 이러한 태도에 충격을 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사건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연구원들의 지적수준이나 업무에 대한 열정을 못마땅해하던 쇼클리는 이들 중 일부에게만 비밀 프로젝트를 맡긴다.

그리고 프로젝트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불과 5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던 작은 회사에서 비밀이 유지되기는 어려웠다. 쇼클리가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판단한 나머지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8명의 직원이 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

당시 이들이 독립해 차린 회사가 훗날 미국 기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는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이다. 또 제리 샌더스(Jerry Sanders)가 독립해 다시 에이엠디(AMD. Advnaced Micoro Device)를, 고든 무어(Gordon Moor)는 인텔을 각각 설립하게 된다.

당대의 천재들을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모을 수 있었던 천재 과학자 쇼클리. 그의 빈곤한 리더십이 역설적으로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터전을 닦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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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이멜트, 미재계의 클린턴

Global Leadership| ④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이코노믹리뷰 2006-04-12 08:36] (이 기사를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멜트 회장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갔지요. 수행비서도 없이 혼자 방한했으며, 우리나라에서 행한 연설문도 모두 스스로 작성했다는 게 이 회사 조병렬 상무의 설명이었습니다. GE정도되는 글로벌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은 여러모르 특출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데다, 최고권력자로부터 매끄럽게 권력을 승계한 인물들이니 분명 남다른 데가 있겠죠. 실무지식은 물론 큰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에 더해 정치력도 갖추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할밖에요. 이 회사는 이멜트 부임후 연간 평균 8%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001년 9.11테러 나흘 뒤 부임했죠 :).
 
참고로 글로벌 IBM의 지난해 성장률은 4%였습니다. 성장을 중시하는 이멜트가 한국에서 승승장구하던 이채욱 GE코리아 회장을 싱가포르로 데려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죠. 이멜트의 활약은 기자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국내 기업인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툭하면 기업인들의 의욕을 꺽는다며 정부를 탓하지요.

참여정부의 좌파 정책이 기업가 정신을 앗아가 버렸다며 자꾸 책임을 외부에만 전가합니다 . 도무지 반성이라고는 이들의 사전에는 없는 듯 합니다. 이들의 말에도 물론 일부 타당한 면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잭웰치도, 제프리 이멜트도 기업환경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남다른 혜안과 추진력으로 회사를 반석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지멘스는 규제가 강한 자국보다 해외에서의 매출비중이 더 높습니다. 밖에 나가서 놀기는 무섭고, 집안에 있자니 왠지 불안하고....저는 볼멘소리만 하는 경제단체 수장들, 그리고 몇몇 기업인들을  지켜보면 자꾸 투정을 부리는 부잣집 도련님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 이멜트는 여로 모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도 비교되는 데, 공교롭게도 클린턴 재단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멜트는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잭 웰치처럼 20년은 이 거대기업을 이끌어 갈겁니다. 참 부럽지 않습니까)  

 

“닷컴에서 성장동력 배우는 풋볼선수 출신의 경영자 ”

“발명왕 에디슨이 창업한 128년 전통의 이 굴뚝기업은
이멜트의 지휘 아래 급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문화혁명’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이멜트가 제시하는 경영원칙

◇ 지속적으로 절차를 단순화하라
◇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파악하라
◇ 끊임없이 배우되 교수법도 학습하라
◇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하라
◇ 직원들에 관심을 표시하라
◇ 세부적인 사안 파악에도 노력하라
◇ 침묵도 때로는 조직운영에 필요하다


권력자의 얼굴은 온화한 듯하면서도 냉혹하다.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지난 1994년 여름, 미국의 휴양지 ‘보카 라톤(Boca Raton)’의 한 연회장. 미국 최고 굴뚝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플라스틱 사업 부문장의 얼굴은 이날 따라 잔뜩 찌푸려 있었다.

전날의 불쾌한 기억 탓이었다. 그가 이끄는 플라스틱 사업부는 연초에 정한 경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무려 5000만달러 이상 당초 목표치보다 적었다. 치솟는 원료 비용이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보스인 잭 웰치는 부하직원들을 일일이 배려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멜트는 행사 내내 잭 웰치의 눈길을 애써 피했다.

‘중성자탄 잭’'이라는 섬뜩한 별명을 지닌 이 최고 경영자는 집요했다. “당신의 열렬한 팬이다. 하지만 올해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내년에도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멜트를 조용히 연회장 밖으로 불러 낸 잭 웰치가 던진 경고성 발언이었다.

동부의 명문인 다트머스 대학, 하버드 경영대학원,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갬블, 그리고 제너럴 일렉트릭…. 명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성공적인 직장 경력을 차근차근 밟아가던 그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스스로 그만두겠다는 약속을 한 배경이기도 했다.

쓰라린 경험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었을까. 이멜트는 이후 승승장구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놓는다. 특히 지난 2000년은 최고의 해였다. 이사회는 3명의 내로라하는 후보자 중 가장 젊은 그를 잭 웰치의 뒤를 이을 최고 경영자로 지명했다. 미인대회를 떠올리게 하는 엄격한 후계자 평가 과정은 숱한 화제를 뿌렸다.(또 다른 후보자 제임스 맥너니는 3M 회장을 거쳐 보잉사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로버트 나델리는 미국 최대 주택용품 전문회사인 홈데포 회장으로 옮겼다)

당시 40대 중반의 이 젊은 경영자의 일거수일투족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영화배우 존 트래볼타의 영화 대사를 즐겨 인용할 정도로 대중 문화에 관심이 높던 그는, 운동선수(미식축구) 출신이며, 골프가 취미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의 기질상의 공통점을 거론하는 내용도 간혹 지면을 장식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워보였다. 특히 초우량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을 경영하는 일은, 경기에 민감한 플라스틱 사업부를 안정 궤도에 올려놓는 일보다 오히려 더 수월해 보였다. “잭 웰치가 구축한 네가지 이니셔티브(세계화·정보화·서비스·식스 시그마)를 확산시켜 나가겠다.”그가 잭 웰치 정신의 계승을 공언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실상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가 이끌던 미국의 10년 장기 호황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고, 특히 9·11 테러 사태로 전 세계의 경기는 빠른 속도로 냉각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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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둔화 등의 여파로 지난 2001년 제너럴 일렉트릭의 이익증가율이 10년만에 한자릿수로 하락했다. 모든 비판은 그의 몫이었다. 잭 웰치가 가장 적절한 시기에 물러났다는 평가도 일각에서 나왔다. 지난 2003년에도 이익률이 불과 6% 상승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 재임 중 회사의 주식 가치를 무려 60배 이상 올려놓으며 경영의 신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부여받은 잭 웰치의 존재는 부담거리였다.

▷ 이멜트가 강조한 리더십, 침묵의 미를 살려라

“침묵의 미를 살려라(Leave a few things unsaid).” 이멜트가 당부하는 리더십 10계명 중 하나다. 구성원들을 일일이 규율하기보다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가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바로 ‘혁신’과 ‘기술’, 그리고 ‘마케팅’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창업한 128년 전통의 이 굴뚝기업은 이멜트의 지휘 아래 급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문화혁명’이라고까지 부른다. 틈만 나면 기술의 미래를 강조하는 그는, 유서 깊은 굴뚝기업의 경영자가 아니라 실리콘 밸리닷컴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다.

사내 문화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계열사 마케팅 담당자의 아이디어 회의가 대표적인 사례. 그는 이들이 제출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데, 회의 참석자들은 다섯건 이상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이들이 계열사로 돌아가 직원들을 독려할 것임은 자명하다.

성과도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연비가 뛰어난 반면 크기는 대폭 줄인 에어택시용 제트엔진도 이러한 기획회의의 산물이다. 인사 부문에서도 과감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내부 인사가 선임되던 고위 직급에 외부 인사 영입을 늘려나가고 있는 것. 윌리엄 카스텔(William M. Castell)을 GE 헬스케어사의 부회장에 영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안정 추구 성향의 관리자형 임직원이 적지 않은 이 회사의 문화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친 환경기술 중시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작년 9월 그룹의 신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환경시장 공략 방침을 발표한 제너럴 일렉트릭은, 중국의 환경 시장을 활발히 파고 들면서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올 2월호에서 중국의 환경시장에 주목하라며, 친환경 시범마을에 관련 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GE의 사례를 다룬 바 있다.

변화와 혁신은 그를 이해하는 주요 코드인 데, 사실 취임 당시만 해도 잭 웰치의 아류 정도로 폄하되던 그가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나선 배경은 크게 두 갈래다. 무엇보다 제너럴 일렉트릭이 경쟁력을 상실한 굴뚝기업들로 구성된 거대 그룹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80~1990년대의 효자부문이던 가전 부문은 저가상품을 앞세운 중국, 그리고 프리미엄 가전 제품을 앞세운 한국 업체의 공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멜트도 올해 초 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가전부문 인력의 90% 가량의 은퇴를 유도해 나간다는 방침을 내비친 바 있다. 후발업체들의 공세가 얼마나 거센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잭 웰치식 경영으로는 더 이상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스기사 참조) 잭 웰치는 주로 활발한 기업인수합병, 대규모 정리해고, 앞선 기법의 자금 운용 방식을 앞세워 기업 성장을 주도해왔다. 그의 노력을 폄하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기업의 핵심 경쟁력 제고보다 외형 성장에 주력했다는 것.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이 회사 연금 기금의 운용 수익 이익률이 잭 웰치의 치세를 뒷받침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멜트가 제시하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미래는 무엇일까? 유망 기업의 인수 합병에 의존하지 않고도 연간 90억달러의 수입을 더 벌어들일 수 있는 역량 갖추기이다.

이베이와 스타벅스 등의 연 매출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치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의 구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잭 웰치가 전격 폐지했던 마케팅 최고 경영자직을 다시 부활시켰으며, 지난 1990년대 회사 성장을 이끌던 인수합병팀의 규모도 축소했다. 반면 영업직·기술직 인력들을 큰 폭으로 늘려나가고 있다. 잭 웰치의 후광 속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위대한 전임자가 남긴 유산을 없애가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직원 평가 기준

지식경영에 걸림돌…
잭 웰치式 상벌주의 용도폐기

GE의 엄격한 상벌주의 평가 시스템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인수합병으로 하루가 다르게 회사의 규모는 커졌으며, 비용 절감을 위해 하위 10%의 인력을 정리해고 해야 했다. 우량 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간 잭 웰치가 임직원들을 세 등급(A·B·C)으로 구분해 평가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동시킨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인사관리는 임직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을 높이는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평가다. 방식은 비교적 단순했다. 임직원들을 A·B·C 세 부류로 구분하고, 소수의 뛰어난 직원들(A등급)에게 포상을,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전직(轉職)을 강요했다. 비판은 명확하다. 엄격한 상벌(賞罰)을 골간으로 하는 잭 웰치식 경영 시스템이 조직원들의 과감한 실험 정신을 위축시켜 지식 경영을 위태롭게 한다는 게 골자다.

<비즈니스 위크>는 지난해 3월 28일자에서 제너럴 일렉트릭 내부 직원의 말을 인용해 하위 10% 인력의 해고원칙도 과거에 비해 좀 더 유연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잭 웰치도 자신의 저서에서 (이러한 평가시스템의 폐해를 반영하는)금융계열사의 한 여자 관리자의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는 것.

그녀는 투자수익률을 앞세워 소속 펀드 매니저들을 무섭게 압박하는 관리자였다. 펀드매니저들은 리스크가 높은 기술주에 대거 투자를 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훗날 버블이 붕괴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실상을 파악한 회사측이 그녀를 해고한다. 실적 지상주의가 때로는 독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 대표적인 사례다.


제프리 이멜트 인터뷰(글로벌리스트)

“중국과 인도는 차원이 다른 경쟁상대”

제프리 이멜트가 지난달 <글로벌리스트>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세계 최우량 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최고 경영자의 고민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이나 인도에 대한 두려움, 공대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미국의 교육시장에 대한 염려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 경제에서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무엇인가.

1990년대는 호황기였다. 전반적으로 성공하는 기업이 많았다. 지금도 경제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와 비교할 때 큰 차이는 존재한다. 기업의 성공은 더 이상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미래에 어떤 식으로 경쟁을 해 나갈지 항상 고민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공장 폐쇄 등 어려울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지 않나.

상황이 녹록치 않다. 미국에서 가전 기기를 생산해 돈을 벌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장기적으로 이 분야에 근무하는 인력의 90% 가량의 퇴직을 유도할 계획이다.

하루 일과는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가.

매일 매일 터빈, 비행기 제트엔진, 그리고 자기공명장치를 판매한다. 최고 경영자가 하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업조직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그는 스스로를 영업맨이라고 소개한다)

■ 세계 각국은 어떤 식으로 세계화에 대응하고 있는가.

(세계인들에게 )세계화는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세계 전역의 상황이 비슷하다. 배경은 명확하다. 전혀 다른 차원의 경쟁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가 그들이다.

그들은 엄청난 인적 자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엔지니어가 이들에게 인기 직종인 점이 인상적이다. 두 나라의 등장이 각국의 국민들을 두렵게 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경쟁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

제너럴일렉트릭에서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 존재는 일본이다. 처음에 한 일이 일본에 간 것이다. 그들은 상당히 세련된 업무 절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제한된 인구를 지니고 있는 점이 한계다.

유럽은 어떠한 편인가.

영국이 (유럽에서) 아마도 가장 성공한 국가다. 제조업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혁신을 중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 특히 기술교육을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스포츠 마사지 전공자들이 전기공학 전공자들보다 더 늘어나는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미국이) 전 세계의 마사지 서비스 산업의 중심지가 되려고 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미국 경제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자리(시간당 20~30달러)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교육시스템은 이러한 일자리를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또 없는가.

이 밖에 에너지와 건강보험 부문에 대해서도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 투입과 산출을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산업정책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아마도 최고 경영자 클럽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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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베조스, 변화무쌍한 천재경영자

Global Leadership|③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

[이코노믹리뷰 2006-04-06 03:45] (영화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헤리 코닉 주니어가 출연했고,나머지 배우들은 제가 영화에 문외한인 탓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당시 지역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던 천재 소년이 등장하는 데, 이 소년은 천재성을 인정받아 한 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센터에서 다른 천재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지요.

미국이란 나라는 얼마나 넓습니까. 이 소년은 자신을 압도하는 다른 천재들을 지켜보며 좌절하고, 결국 이 센터에서 탈락하고 마는 뭐 그런 스토리였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당시 이 영화가 제프 베조스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프 베조스로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떠들석하게 만들 정도로 천재 소년이었다고 하죠.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베조스의 리더십을
한번 분석해보죠)

온라인의 월마트 꿈꾸는
변화무쌍한 천재 경영자

“오프라인 매장은 고객들에게 마치 스포츠 게임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나,
일대일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젊은 아버지를 유난히 따르던 야윈 몸집의 천재 소년. 자신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주던 그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10세 때의 일이었다. 가족들은 담담하게 그에게 이를 알려주었다. 이민자 출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할 무렵, 17세이던 그녀는 이미 그를 임신하고 있었다.

친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손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유독 깊어서였을까. 미 정부기관인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Atomic Energy Commision)에서 고위 공직자로 근무하던 외할아버지는 유독 그를 사랑했다. 할아버지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과학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과시한 아들을, 부모는 텍사스(Texas) 지역의 과학 영재 학교(Miami Palmetto Science School)에 보냈다. 당시, 이 소년의 놀라운 능력을 상세히 분석한 책(Turning on Bright Minds)까지 발매됐을 정도이니 그는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였던 셈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을 꿈꾸던 이 소년이 바로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Amazon)’의 창립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브라질의 아마존 강에서 영감을 얻어 이름을 지은 이 회사의 지난 2004년 실적은 눈부셨다. 69억달러 매출에 5억8800만달러 순이익을 올렸다.

회사 가치만 해도 무려 180억달러(올 1월말 기준)다. 지난 2003년 아마존은 처음으로 연간 기준 순이익을 냈으며, 이후 매년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매출 규모도 오프라인 최대 서점인 ‘반스앤노블’을 압도하며 닷컴 종말론을 예고하던 세간의 예측을 비웃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는 것. 매출 규모에서 가늠할 수 있듯이, 아마존은 더 이상 책만 파는 온라인 서점이 아니다. 티파니의 보석 상품에서 모토롤라의 레이저(Razr) 휴대폰, 그리고 구치 명품 가방까지, 여러 영역을 활발히 파고들며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는 물론 오프라인의 절대강자인 월마트를 위협하는 공룡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회사인 ‘블루 오리진’을 통해 어린 시절의 꿈인 우주 여행을 추진하고 나서며 화제를 불러모은 베조스는 2003, 2004년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하는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됐다. 개인 재산만 아프가니스탄의 연간 국내 총생산을 웃도는 45억달러.

하지만 베조스의 리더십은 다른 경영자들에 비해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가려져 왔다. 대중적인 이미지가 그의 이해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독특한 웃음소리로 외부에 괴짜 경영자로 더 많이 알려져 온 베조스 리더십의 특징은 합리성·치밀함, 그리고 융통성 등으로 요약된다.

“매사에 고집을 피우는 한편 때로는 융통성도 발휘해야 한다. 언제 어느 쪽을 선택할 지가 관건일 뿐이다. ” 베조스의 말이다. 그는 원칙을 고수하되, 이에 얽매여 더 큰 이익을 방기하는 경영자는 아니다. 지난 2003년 대외 광고 중단 선언은 그의 지향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광고 중단 결정, 시장에 충격파
세스 고딘이 아마존 사례 다뤄

《보랏빛 소가 간다》. 지난 2003년. 세계적인 경영학자 세스 고딘(Seth Gordin)이 발표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광고가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는데, 당시 그에게 영향을 준 기업이 바로 베조스가 이끌고 있는 아마존(Amazon)이었다.

고딘에게 영감을 준 것은, 같은 해 베조스의 ‘광고 중단 선언’이었다. 광고비를 대폭 줄이고, 이를 제품 배송 비용을 줄이는 데 활용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브랜드 가치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닷컴 기업의 광고 중단 선언은 미디어 기업은 물론 학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브랜드는 소비자들을 묶어두는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식이었다. 이베이가 지난 1998년 거액을 들여 전문 경영인인 맥 휘트먼(Meg Whitman)을 전격 영입한 것도,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갬블, 장난감 기업인 하스브로스 등을 거친 그녀의 브랜드 관리 능력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구글에서 검색을, 이베이에서 온라인 경매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베조스가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광고 집행을 과감히 중단한 배경은, 그의 의사결정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료에 입각해 모든 것을 측정하고, 판단이나 본능을 철저히 배격한다는 것.

평소 광고의 효용성에 심각한 의문을 품고 있던 그는, 미국의 두 도시를 지정해 일정 기간 광고를 집행한 반면, 나머지 도시에서는 광고 집행을 중단했다. 그리고 나서 매출을 서로 비교했는데, 결과는 명확했다.

브랜드 가치 하락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지만, 배송 비용 인하는 고객 로열티를 높여 장기적으로 회사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베조스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합리성이다. ‘측정할 수 있는가’. 그가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오는 팀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과학 영재 스쿨에 다닌 그는, 의사 결정시 수치를 중시한다. 그리고 항상 꼼꼼하고 치밀한 접근으로 지속적으로 비교 우위를 창출해 왔다. 아마존이 인터넷 도서 시장의 후발 주자였지만, 단기간에 놀라운 성공을 거둔 배경이기도 하다.

우수한 인력에 대한 편집광적인 집착도 그를 이해하는 또 다른 코드다. 피 면접자의 논리상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크라테스식 질의응답 방법은 그의 전매특허다. 베조스는 화이트보드에 차트를 그려놓고 후보자들의 강점과 약점을 면밀하게 비교했으며, 후보자의 자격요건이나 능력에 대한 단 한 가지의 의문이라도 남아 있을 경우 결코 그를 채용하지 않았다.

다른 면접관들은 엄격한 기준을 유지하라는 그의 등쌀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특히 직원을 선발할 때마다 채용 기준을 한 단계씩 더 높여 나갔는 데, 물론 전체 인력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직원들의 능력을 판별하는 잣대도 독특했다.

애플의 자회사에서 근무하다 아마존으로 옮겨온 쉘카판(Shel Kaphan)이 대표적인 사례. 회사를 열두 번이나 옮겼으며,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던 그를 베조스는 첫 번째 직원으로 선발했다. 컴퓨터 시스템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데 따른 것이었다.

창의력도 인재 선발의 주요 기준이었다. “창의적이지 못한 이들과 함께 보내기에 인생은 지나치게 짧다.” 아내를 구할 때조차 그는, 창의력이 풍부한 배우자를 원했다고 <와이어드(Wired)>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원칙에 얽매여 소탐대실하는 경영자는 아니다. 혁신을 중시했지만, 경쟁자의 기술을 재빨리 들여오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유명 테니스 스타와 자선 테니스 경기를 하고, 속없어 보이는 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이면에는 이처럼 집요하고 끈질긴 면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반스앤노블의 역공, 헬기 사고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수차례 극복한 배경이기도 하다.

헬기사고에서 구사일생
지난 2003년 3월, 그는 헬리콥터 사고로 머리에 부상을 당했다. 베조스가 타고 있던 헬리콥터가 강풍에 휘말려 갑자기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목장을 매입하기 위해 텍사스 외곽 지대의 후보지를 돌아보던 중이었다. 이 사고로 생과 사를 오가는 아찔한 순간을 겪어야 했던 그는 사고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사고는 영화 속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진행됐습니다. 헬기가 추락하는 순간, 심오한 인생의 진리 따위가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이렇게 바보같이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습니다. ”그는 회사로 곧 돌아왔는 데, 헬리콥터를 다시는 타지 않겠다는 게 복귀의 일성이었다.

지난 1997년 반스앤노블스의 역공도 위기감을 높였다. 아마존이 맹렬한 공세로 시장을 잠식하자, 이 공룡기업은 역으로 온라인 도서 판매사이트를 개설하며 반격에 나섰다. 시장 조사 전문기관인 포레스트 리서치(Forest Research)는 이 거대 오프라인 기업의 역공이 아마존 몰락의 서곡이 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주가는 100달러에서 6달러로 폭락했다. 하지만 그는 투자자들을 초청해 기업설명회를 여는 등 발빠르게 대처하며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베조스는 당시 투자자들에게 지금은 아마존 주식을 구입해야 할 때가 아니지만, 조만간 주가상승과 더불어 실적향상을 이뤄내겠다는 약속을 했다. 불과 3 년뒤 그는 사상 최초로 연간 수익을 내면서 이를 입증해냈다.

그의 뛰어난 상황대처 능력을 가늠하게 하는 부분이지만, 베조스에게도 최근 경영환경의 빠른 변화는 상당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온라인 업체와 오프라인 업체, 그리고 온라인과 온라인 업체간의 맞대결이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띠고 있다.

저가 할인매장인 월마트는 이제 아마존이나, 이베이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존의 입지를 위협할 더 강력한 적은 오프라인 기업인 월마트나 시어스 백화점이 아니라 구글이나 이베이, 그리고 야후를 비롯한 온라인 업체들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들은 활발한 인수 합병을 통해 상대방의 강점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며 온라인 세상의 패권을 꿈꾸고 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베조스는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우선 가장 강력한 적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해야 하는 지상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베조스가 밝히는 나의 경영철학

▷ 인사가 만사…채용을 신중히 하라

▷원칙을 지키되 융통성도 발휘하라

▷ 쉬운 돈벌이 방안이 항상 선은 아니다

▷ 의사결정시 직감보다 데이터를 중시하라

작은 사항들을 꾸준히 개선해 나가라


온라인 서점 창업 배경은

“헤지펀드서 온라인서점 성공예감”

첫 출발부터 범상치 않았다. 프린스턴대 졸업반이던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앤더슨컨설팅 인텔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채용을 제안했기 때문. 하지만 그는 신생 기업인 피텔에 입사했다. 컬럼비아 대학 교수 출신들이 세운 벤처 회사였는데, 시스템 구축이 그의 주요 업무였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인 뱅커스 트러스트로 이직했다. 안정적인 직장보다 자신의 꿈을 펼칠 곳을 찾던 그는 이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가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곳은 세 번째 직장인 헤지펀드 ‘디이 쇼(DE Shaw)’에서였다. 창업자 데이비드 쇼(David Shaw)는 예술적인 재능과 더불어 직관력, 그리고 분석 능력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고, 제프 베조스와 호흡이 잘 맞았다. 고객사를 상대로 금융부문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게 그의 담당업무였다.

그는 이 곳에서 승승장구하며 불과 입사 1년여 만에 수석 부사장의 자리에 오른다. 당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인터넷 분야에서 유망 사업을 찾는 중책을 맡은 베조스가 데이비드 쇼에게 제시한 신사업 아이템은 인터넷 도서 판매.

난상토론 끝에 얻은 결론이었지만 회사측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그는 아내와 더불어 창업 준비에 나선다. 프린스턴 대학의 동기생들을 비롯한 15명의 투자자들에게 200만달러 가량 종잣돈을 확보했다. 회사 이름은 처음에는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로 지었지만, 곧 아마존으로 바꾼다.

홈페이지는 고객들이 매장을 직접 방문할 때 느끼는 편리함을 그대로 맛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도서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경보가 울리도록 해두었는 데, 사업시작 2~3달 만에 경보를 해제하지 않고서는 시끄러워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론 물리학자를 꿈꾸던 그가 진로를 바꾸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프린스턴대 재학 시절, 이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동급생 3명은 그의 좌절과 더불어 진로 변경을 불러왔다. 이들은 마치 뇌구조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고 그는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유년시절부터 천재소년으로 통하던 그에게는 최초의 지적 좌절이었던 셈이다.


온·오프라인 유통전쟁 결과는

“온라인 업체가 최후의 승자”

“오프라인 점포 중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편리함을 주거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업체들만이 살아남는다.”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의 예측이다. 백화점 노르드스톰과, 캐주얼 브랜드 갭이 대표적이다. 노르드스톰은 일대일 고객응대서비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갭은 젊은이들의 취향을 매장 설계 등에 적극 반영하며 고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궁극적으로 쇼핑을 마치 흥미로운 스포츠 게임을 보는 듯 만들 수 있어야 오프라인 매장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명.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올해 2월호에서 오프라인 매장도 온라인 매장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흡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장래에도 인터넷이 대세라는 베조스의 생각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베조스는 앞으로 온라인 기업들의 비교 우위가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한다. 예컨대, 인터넷과 더불어 개인용 컴퓨터의 부팅 속도가 빨라지면 5분 길이의 작은 비디오 클립을 상품 설명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아마존에서 가수나 작가, 저자 등이 자기의 음반이나, 도서 등을 직접 홍보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온라인 매장들의 강점인 정보 활용이 한 차원 더 높아질 것임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가 오프라인 서점이 경쟁상대는 아닐 것으로 관측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 밖에 생필품 대부분도 앞으로 인터넷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대부분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온라인 매장들의 기동성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학자인 슈워르츠가 이끄는 GBN도 비슷한 예측을 하고 있다. 대형 밴 차량이 주택가를 항상 돌면서, 온라인에서 주문받은 생필품을 거의 실시간으로 배달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2011/10/03 - [분류 전체보기] - 킨들 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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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Leadership| ② 이베이 맥 휘트먼 사장 (그녀는 저니맨에 가깝습니다. 저니맨이란 한 팀에 오래 있지 못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는 운동선수를 의미합니다. 그녀는 프록터앤갬블, 디즈니, 이베이, 하스브로스 등 여러 회사를 거쳤습니다. 전직이 흔한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직장인들이 회사를 자주 옮겨다니는 건 아니죠. 프록터앤갬블은 도요타 못지 않게 직원들이 장기 근속하기로 유명한 회사죠.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이 그녀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된 듯 합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이를 경영에 반영하는 습관이 몸에 배였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전제적인 유형의 보스를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맥휘트먼의 겸양의 리더십을 한번 배워보시죠.  )

[이코노믹리뷰 2006-03-30 06:45]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
결단력은 있지만 지배욕은 없다”

‘미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 전자상거래 업체인 미국의 이베이(ebay)를 지칭하는 말이다.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디어(Pier Omydir)가 여자 친구에게 줄 ‘캔디박스’를 구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기업의 성장 속도는 실로 현기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년 말 현재 전 세계적으로 등록된 회원 수만 무려 1억 5000만여 명.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의 인구를 합친 것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이 회사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13억2900만달러. 순이익은 36.1% 늘어난 2억 7900만달러였다.

창립 이후 매 분기 4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기업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해외 진출 실적도 괄목할 만하다. 지난 2001년에는 우리나라의 전자 상거래 업체인 옥션(auction)을 인수했으며, 프랑스·영국, 그리고 최후의 격전지 중국 등 해외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간간이 거래 수수료 인상을 둘러싼 잡음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이베이는 이제 구글·야후·아마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인터넷 기업의 명실상부한 최강자 대열에 합류했다.

‘떠들썩한 시골 장터의 정겨움과 초현대식 쇼핑몰의 편리함’. 이베이의 성공 비결은 명확하다. 시골 장터나, 지역 바자회의 흥겨움, 정겨움과 쇼핑의 편리함을 결합시킨 것이 상당 부분 주효했다는 평가다.‘친구들과 디즈니랜드에 가는 데 돈이 필요하다. 직접 그린 그림을 2달러에 팔고 싶다’는 한 어린이의 상품 설명은 보는 이들의 미소를 흘리게 한다.

두 살짜리 어린이가 초콜릿 푸딩을 재료로 직접 찍어낸 ‘손가락 프린팅’, 15만달러짜리 스포츠카 페라리와 더불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필 서명이 첨부돼 있는 편지…. 오프라인 매장에서라면 동시에 선보이기 힘든 이질적인 상품에 대한 원스톱 쇼핑을 제공하는 온라인 경매는, 이제 포털이나 인터넷 기업들이 탐을 내는 대표적인 수익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이베이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맥 휘트먼(Meg Whitman) 이베이 사장이다. 래리 페이지(구글 창업자)·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경영자의 반열에 오른 그녀는 이베이 약진을 이끌어낸 일등공신이다.

지난 1998년 3월, 휘트먼이 이 회사에 합류한 이후 회원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으며, 매 분기 수입은 40% 이상 폭증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 1999년 당시 미국 온라인 경매시장의 6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이베이의 독주를 경고하고 나설 정도였다. 그녀가 이베이 운영의 중임(重任)을 맡은 지 불과 1년여 만이었다.

물론 상황이 썩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포털 업체 등 이 분야의 잠재력에 뒤늦게 눈을 뜬 기업들이 이베이의 행보를 주시하며 유사 서비스를 신설해 강력한 위협을 던져 주었다. 가격비교 사이트는 수익 기반을 일거에 흔들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잠재력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신기술은 시장 강자의 비교우위를 순식간에 뒤집어놓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붉은 꽃이 열흘을 가지 못한다’는 속담은 이베이에게 딱 들어맞는 표현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은 그녀의 편이었다. 지난 2001년 닷컴 버블 붕괴의 후폭풍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베이가 온라인 결제 서비스사인 ‘페이팔(PayPal)’을 인수하는 등 승승장구하자, 그녀에 대해 다소 인색하던 시장의 평가도 완전히 달라졌다.

휘트먼식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온화한 미소가 돋보이는 휘트먼식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일까. ‘강한 결단력의 소유자이지만,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성향이 없는 경영자’. 지난 1998년 휘트먼과 면접을 치르고 난 뒤 창업자인 오미디어가 내린 그녀에 대한 평가는 정곡을 정확히 찌른 말이었다.

개방성, 유연함으로 튀지 않은 리더십 발휘

휘트먼식 리더십의 요체는 개방성·유연함 등으로 요약된다. “휘트먼은 결코 튀지 않는 리더다. 결코 보스처럼 굴지 않지만, 임직원들을 훌륭하게 이끈다. 그녀는 다스리지 않는 경영자며,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다.” <유에스뉴스 앤 월드 리포트>의 윌리엄 메이어 기자의 평가다

사실, 이 말 만큼 휘트먼식 리더십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평가도 없다. 휘트먼 자신도 ‘민주적 리더십’이야말로 이베이 성공의 비결(秘結)이라고 <유에스뉴스 앤 월드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회사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제언을 정책에 반영하는 한편,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여 사고의 폭을 확대해 나가는 그녀의 신중한 행보는 휘트먼식 리더십의 첫 번째 특징이다.

그녀가‘자아없는 경영(selfless management)’의 전범(典範)으로 불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회의 주재에서도 그녀의 이러한 특징은 확인된다. 장기 전략 수립에 수일 간을 매달리기보다 아이디어를 직접 실천해 보고 잘못된 점을 개선해 반영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게 그녀의 지론.
 
물론 이러한 아이디어의 근원은 ‘온라인 커뮤니티’다. 온라인 장터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판매자와 구매자들, 그리고 이베이의 9300여 명의 직원들은 그녀의 경영 전략의 큰 줄기를 결정하는 핵심 참모인 셈이다. 사실, “고객의 아이디어를 서비스나 제품 기획에 반영하라”는 프라할라다(C.K. Prahalad) 미시간대 교수의 가르침은 이베이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특히 그녀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전기는 중고 자동차 매매분야 진출을 둘러싼 회사 내부의 논란이었다. 일부 회원들이 장난감 자동차 카테고리에 중고 자동차 판매 공고를 올려놓으면서 회사측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당시 이베이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 반대 이유는 거래의 안전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중고차 매물 거래에 나서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제대로 계약을 이행할 것이라는 신뢰의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베이는 중고 자동차 판매업에 진출했고, 이제는 대표적인 효자 품목이 됐다.

그녀가 군림하고 통제하는 전통적인 리더십을 포기하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결정적으로 중시하게 된 배경이다. “시장을 이기려고 하지 마라.” 휘트먼의 이러한 사고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고 프랭크 웰스(Frank Wells) 디즈니 전 회장이었다. 그는 경영자가 지녀야 할 겸손의 미덕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인물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이직 경험도 유연한 사고방식의 형성에 한몫 했다는 것이다. <유에스뉴스앤 월드리포트>는 그녀의 민주적인 리더십 형성에는 잦은 전직의 영향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과거의 지식이 더 이상 나침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새로운 분야로 이직한 그녀가, 주변의 전문가 집단에게 꾸준히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만의 아집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컨설턴트부터 장난감 회사의 최고경영자, 그리고 소비재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까지, 그녀는 과거의 경험을 금과옥조로 삼기 어려운 새로운 분야로 이직을 했고, 이러한 경험은 이베이 운영방식에도 일정부분 기여한 셈이다.

특히 소비재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프록터앤갬블의 브랜드 마케팅 분야에서 직장경력을 시작한 것도 고객 중시 성향에 한몫 했다. 민주적인 리더십의 소유주인 휘트먼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대단하다. 인터넷 전화업체인 스카이프 인수건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휘트먼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가늠하게 한다.

이베이가 지난해 인터넷 전화업체 스카이프를 26억달러에 인수하자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회사 주가는 하락을 면치 못했다. 상품의 구매자와 판매자가 온라인 전화 서비스를 통해 더 정확하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였지만, 당시 이윤을 내지 못하고 있는 기업을 지나치게 비싸게 사들였다는 게 비판을 면치 못했던 것.

하지만 이베이의 주가는 곧 원상회복됐는데, 미국 언론은 이를 ‘맥 휘트먼 효과’에 따른 것으로 보았다. 언제나 신중한 행보로 시장의 믿음을 결코 배신한 적이 없는 그녀의 과거 업적을 신뢰했다는 의미다. 디즈니는 지난해 그녀를 영입하려고 했으며, 야후는 이베이와 전략적 제휴 협상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식경영시대에 이상적인 경영자 모델

지난 2002년 이금룡 당시 옥션 사장을 물러나게 한 것은 그녀의 또 다른 면을 가늠하게 한다. 당시 옥션의 지분 50%를 인수한 이베이의 휘트먼은, 대외 활동에 치중하는 이금룡 사장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그를 물러나게 했다.

“당시 (그녀가) 한국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일정 부분 오해가 있었다. 하지만 대외지향적 관리자보다 사업을 꼼꼼히 챙길 관리형 경영자를 선호한 것도 사실이다. ”홍보라인에 근무하던 이 회사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자신의 경영 방침과 부합하지 않는 경영자를 축출하는 단호한 면모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휘트먼이 항상 승리의 보증수표가 돼 온 것은 아니다. 지난 2002년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터줏대감인 야후에 밀려 사업을 접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 그녀의 리더십을 폄하하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들려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인터넷 기업에서나 통할 스타일이며, 거대 굴뚝 기업 경영자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적지 않다는 것. 특히 소비자들을 추수하기보다 일정한 흐름을 선도해 온 경영자의 존재는 휘트먼식 리더십이 절대선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군림하지 않고, 소비자와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는 그녀의 리더십 스타일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있고, 소비자들의 변덕스러운 기호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최고경영자의 독선은 실패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올해 2월호에서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 좋아하는 경영자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영자에게 지식경영이란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일 뿐이라는 얘기다.
휘트먼식 리더십은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그녀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지난 1999년 이베이의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던 요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잠재해 있다. 예컨대, 미국 인터넷 산업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고 있는 구글의 가격 비교 서비스인 프루걸(froogal) 은 이베이의 입지에 상당한 위협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전망.

구글뿐만이 아니다. 야후를 비롯한 포털들도 가격 비교 서비스를 앞세워 이베이의 성장기반을 적극적으로 파고 들고 있으며, 아마존은 책은 물론 자동차·보석 등 상품을 판매하며 이베이의 입지를 강력히 위협하고 있다.
“ 나는 이베이가 그 잠재력의 일부만을 현실로 옮겼다고 판단하고 있다.” 휘트먼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베이가 경쟁자들을 누르고 전자상거래는 물론 전 세계 네티즌들을 끌어들이는 포털이 되든, 아니면 욱일승천의 기세를 잃어버리고 고만고만한 사업자로 전락하는 지 여부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주요 승부처의 하나는 중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베이 입성 비하인드 스토리

급여 수준 알고 머뭇…
스톡옵션 720만주에 OK

휘트먼이 당시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이베이에 합류한 것은 지난 1998년 초.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갬블·베인앤컴퍼니 등을 거쳐 장난감 업체이던 하스브로스의 최고 경영자로 근무하던 때였다.

이베이의 창업자인 오미디어는 브랜드 관리 부문에서 역량이 탁월한 최고 경영자를 수소문하고 있었고, 그녀는 6명의 후보군에 속해있었다. 공대 출신들이 주도하던 회사 입장에서 마케팅 역량을 강화할 전문가의 영입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베이는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었다.

“헤드헌터가 실리콘밸리에 있는 신생 인터넷 회사인 이베이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전혀 없다고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신경정신 외과의사로 뇌종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두 아이도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스브로스를 나와 5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옮겨갈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

《이베이의 거대한 실험》에 실린 맥 휘트먼의 말이다. 당시 그녀에게 제시된 급여 조건은 연봉 14만5000달러에 보너스 10만달러.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파격적인 스톡옵션 조건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회사 주식의 6%에 달하는 720만주를 주당 0.022달러에 살 수 있다는 옵션이었다. 당시 미국을 강타한 닷컴 열풍을 감안해 볼 때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던 셈이다. 휘트먼이 이베이의 약진에 단단히 한몫 한 것은 명확하다.
 
윤리경영이 부상하면서 최고경영자에게 지나친 보상을 주는 스톡옵션의 폐해를 지적하는 염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휘트먼은 스톡옵션의 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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