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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은행들은 참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어 왔습니다.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꺼져가던 불씨를 가까스로 되살린 외환은행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장이 할키고, 정치권에 시달리며 부침을 겪어온 외환은행 매각이 법원의 판결로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History: (출처: 은행은 군대보다 무서운 무기다)

외환은행은 지난 1989년 한국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특수은행에서 일반은행으로 전환됐다. 1994년에는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북한에 금호출장소를 개점하기도 했다. 

정부출자은행으로 고유한 위상을 보유한 외환은행은 1997년 IMF외환위기를 맞아 다른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1998년 2월 금감원에서 일반은행 12개가 적기시정조치(경영개선 요구 및 권고)를 받았는데, 
이때 외환은행은 경영개선권고를 받았다. 

자본확충을 위해 같은해 7월 독일 코메르츠방크에서 3500억원을 증자받는 등 자구노력을 기울인 결과, 외환은행은 금융당국과 4년간의 조건부 승인으로 경영개선을 위한 약정을 체결하고, 위기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체제로 나갔다. 

당시 344개이던 (시중은행 평균 547개)지점을 250개로 줄이고 인력도 대대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골자였다. (1998년 당시 동남, 동화, 충청, 경기, 대동은 퇴출되고 7개 은행이 조건부 승인)

국제 금융가에서 외환은행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절, 콜하우젠 코메르츠 방크 회장, 홍세표 전 외환은행장은
의기투합했다. 

두사람이 홍전회장 과장시절부터 친분이 있던데다, 동아시아 시장의 금융네트워크를 구축하려던 코메르츠측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코메르츠는 시가 2500원에 불과하던 주식 7000만주를 액면가인 5000원에 사들였다. 

외자유치 규모도 3500억원에 달하는데다, 외환위기 이후 첫 외자유치라는 점에서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코메르츠는 IMF이후 외국인 투자 1호였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외환은행은 경영상황이 호전되지만 1999년부터 터져 나온 대우그룹 부실문제와 2000년에 들어서면서 불거진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 때문에 또 다시 자본확충에 나서야 됐다. 그 결과, 대주주인 코메르츠 방크와 수출입은행의 증자 참여를 위해 외환은행은 2대1 감자라는 수모를 겪는다.

2002년 4월9일 금융감독당국의 경영개선권고조치를 해제받고 4년간의 MOU체제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후 2002년 주총을 앞두고 낙하산 인사 파동이 불거진다. 

1997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후 2001년 흑자전환을 시현한 외환은행 김경림 행장의 돌연한 사의 표명은 외환은행 운명을 가른 변곡점이었다. 

2002년 4월30일 부임한 이강원 행장은 자본확충 추가를 위해 국내 공모 증자를 추진하다 주가 하락으로 포기한 뒤 5000-6000억원 규모의 외자유치를 추진한다. 

4년간의 혹독한 MOU체제에서 벗어난 지 20여일 후 취임한 이강원 행장은 공격 경영은 선언한다. 맥킨지의 장기생존전략에 따라 퍼스트 초이스 뱅크를 새로운 비전으로 내걸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슬로건 하에 대내외적인 힘을 과시하며 새로운 힘을 조직에 불어넣는다. 

2003년 북핵사태, 이라크전발발로 우리경제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외환은행이 대규모로 투자한 SK글로벌, 하이닉스, 현대상선 등 주요기업의 경영상황이 7월경에 개선됐고, 주가상승으로 외환은행의 경영상황도 안정국면으로 들어갔다.

뜻밖의 일이 불거진 것이 바로 이시기였다. 2003년 9월 금감위가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하고 다음달에 유치자금이 들어왔다. 다들 투자자금 유치라고 여겼으나, 머지않아 론스타가 주식의 51%를소유해 경영권을 넘겨받은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론스타는 2003년 9월, 외환은행을 인수한다. 론스타는 정부 지원금을 포함한 외환은행의 지분 51%(3억2585만주)를
1조3833억원에 취득한다. 자산규모 63조원인 외환은행의 최대주주가 되는 것이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뒤 가장 먼저 한 조치는 부서의 통폐합. 종합기획부도 그때 없앴다.

2004년에는 외환은행의 로스앤젤레스 현지법인(Pacific Union Bank)도 매각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지 몇달 뒤 2004년초부터 외환카드 노조는 외환은행과 합병시 주가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한다.

2006년 들어 사태는 더욱 숨가쁘게 흘러간다.1월12일,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주간사로 씨티은행을 선정한다.취득후 2년간 지속되던 지분매각 제한이 해제되자마자 하루빨리 차익을 남기고 손을 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같은해 5월19일,국민은행과 매각계약을 체결하지만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검찰수사가 이어지자 계약을 같은해 11월23일 파기한다.

2007년 6월 22일,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대상자를 물색하지만 시일이 지연되자 보유주식중 일부를 서둘러 분할매각 (13.6%)한다.그리고 영국계 은행인 HSBC와 또다시 계약(2007년 9월3일)을 체결한다. 

론스타 보유 외환은행 지분 51%를 주당 1만8045원에 매각한다는 계약에 따르면, 인수대금은 5조9000억원이 된다. 무려 4조원 이상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금융위가 판결까지는 승인을 보유하겠다고 버틴 가운데  론스타는 법원 판결까지 기다릴 것인지, HSBC와 계약을 파기하고 또 다른 인수자를 물색할 것인지 , 아니면 지분을 일부 매각하든지 세장의 카드가 주어졌다. 

론스타가 선택한 방안은 또 다른 인수자를 찾는 방안이었다. 

론스타는 2010년 11월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주당 1만4250원에 팔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올 7월 다시 매각가를 주당 860원 낮추면서 11월까지 계약기한을 연장했다.


은행은군대보다무서운무기다론스타게이트에숨겨진진실과우리의선택
카테고리 경제/경영 > 재테크/금융
지은이 김준환 (두리미디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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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이 고문으로 활동하던 칼라일 그룹이 지난 2000년 한미은행을 인수했다.4년뒤인 2004년 시티그룹에 매각하고 3년4개월만에 투자원금의 2.3배인 6200억원을 벌어들였다. 칼라일그룹의 투자수익률은 1987년 설립 이후 연평균 30%가 넘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1999년 뉴브리지캐피탈에 인수된 뒤 다시 스탠타드차타드에 재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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