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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황’ 自中之亂 관치개입 불러”

2010년 01월 13일 08시 09분
작년 9월말 열린 KB금융지주 출범 1주년 기념식장에 황영기 회장(오른쪽), 강정원 행장이 입장하고 있다.작년 9월말 열린 KB금융지주 출범 1주년 기념식장에 황영기 회장(오른쪽), 강정원 행장이 입장하고 있다.

강정원 KB국민은행장은 미 동부의 명문인 다트머스대 출신이다. 이 대학의 동문이 바로 ‘제프리 이멜트(Jeff Immelt)’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이다.

에디슨이 창업한 이 복합기업의 최고경영자는 마케팅 사관학교인 ‘프록터앤갬블(P&G)’을 거쳐 이 회사에 합류했다. 그리고 지난 2001년 회장에 등극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로버트 나델리 등 강력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비교적 순조롭게 ‘대권’을 이양 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재작년 금융위기 국면에서 ‘경영의 신’으로 통하는 전임자의 집중 포화로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노(老) 경영자의 원색적인 비판은, 미국을 대표하는 이 복합 기업의 ‘살아있는 권력’을 뒤흔들었다. 두개의 권력은 늘 분란의 온상이다.

국내 금융사 중 자산 규모 수위인 KB국민지주를 뒤흔든 ‘외풍’도 오랜 라이벌 관계인 지주사·은행 경영자의 해묵은 ‘갈등’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던 황영기 우리은행장의 KB국민지주 입성이 분란의 도화선이었다. 두 사람은 뱅커스트러스트 시절부터 경쟁을 펼쳐온 평생의 라이벌이다.

“황 영기 회장이 지주사 회장으로 부임한 후 강 행장이 숱한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강 행장이 평소 ‘수담(手談)’을 나눌 정도로 친한 인사들이, 황 회장 부임 후 한직으로 밀려나는 일도 속출했어요.” 금융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휘체계의 ‘이원화’도 ‘갈등’의 ‘불쏘시개’였다. 은행 부문이 지주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지만, 그룹수장은 지주사 회장인 불안한 동거 체제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두 사람의 ‘구원(舊怨)’은 이러한 갈등구도에 기름을 부었다.
이들은 뱅커스트러스트 시절 한솥밥을 먹으며 경쟁을 펼친 평생의 ‘라이벌’이다. 이 은행의 일본 지사로 발령이 난 황 회장은 일본 근무를 끝내고도 한국 자회사로 복귀하지 못하며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황 회장이 일본에 있을 때 술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강정원 행장이 뱅커스트러스트에서 입지를 확고히 하면서 황회장은 당시 딱히 돌아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죠.”

일본계 증권사에서 근무하며 황회장과 교유한 경험이 있는 금융전문가의 전언이다. 황 회장이 당시 모국에 돌아가 입사한 회사가 ‘삼성그룹’이다. 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황 회장은 재기의 발판을 닦는다.

그리고 지난 2004년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지주의 회장으로 선임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황영기 전성시대의 백미는 재작년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이다. ‘파죽지세’였다. 그는 강정원 행장과 가까운 수장들을 물갈이 하고, 금융 감독당국 출신의 인사를 영입하는 등 친정 체제를 강화하는 데 주력한다. 강행장과의 2라운드에서 완승을 거두는 순간이다.

우리은행 시절의 파생금융상품 투자 결정은 그러나 황 회장의 발목을 잡는다. ‘서프 프라임 모기지’를 기초 자산으로 한 ‘CDO’ 투자가 화근이었다. 미 저소득층의 모기지 상환 중단은 연쇄 부실을 불렀다.

미국 발 금융위기의 도화선이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태평양을 건너 대한민국 우리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맹폭을 가한다.

황 회장은 화산 폭발에 비견될만한 불가항력의 사태라고 강변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미 신용평가사들마저 CDO에 ‘트리플 에이(AAA)’등급을 부여했을 정도였다. 동정론이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국감을 앞둔 금융감독 당국의 ‘셈법’도 그의 낙마를 불러온 요인이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정 감사를 앞둔 금융 감독 당국이,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의 파생 상품 투자 손실을 좌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황 회장의 중징계와 관련해 ‘상황논리’도 제기한다. 파생상품 투자 책임을 묻지 않으면 자칫 투자 손실의 ‘불똥’이 고스란히 감독 당국에 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 회장 낙마의 이면에는 평소 ‘금융당국’, 그리고 동종업계 관계자들과 대립각을 세워온 그의 각박한 ‘원칙주의’도 한몫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은행 시절 감독 당국과 대립각을 세우거나, 계열사 경영자와 갈등을 빚는 등 배려를 모르는 처세의 한계를 꼬집는 지적이다.

황 회장의 낙마는 지주사 수장을 노리던 강정원 행장에게는 반전의 기회였다.
라이벌 대전의 최후 승자는 강 행장으로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금융감독 당국이 개입하면서 상황은 다시 급반전된다.

금융지주사의 회장직에 도전하는 관료 출신들이, 선임 절차의 불공정성을 꼬집으며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를 한 후폭풍의 여파다.

국민의 정부 시절 외자유치의 중책을 담당했던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회장선임 절차를 연기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강 행장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회장직 포기 의사를 내비쳤다.

금융당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사실상 백기투항한 셈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예비 조사에서 ‘무리수’를 두며 관치 논란을 불렀다.

강 행장의 운전기사까지 조사하고, 컴퓨터를 통째로 가져가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이며 퇴진을 사실상 종용했다.

강 행장이 국민은행장으로 재임하며 주최한 골프 대회도 도마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정원 행장이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이다. KB국민지주 수난의 이면에는 지도부의 분열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평생의 라이벌인 두 경영자가 구원을 씻어내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면서, 정부 지분이 단 한주도 없는 이 민간금융기관에서 조차 관치 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빌미를 주었다는 얘기다.

‘동패구상(同敗俱傷)’이다. 황영기 회장은 KB금융지주에서 낙마한 뒤 최근 차병원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뱅커스 트러스트시절 일본에서 돌아와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내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강정원 행장은 금융당국 사정의 압박이 강해지자 ‘결자해지’의 뜻을 밝혔다.
조직이 ‘외풍’에 흔들리며 금융지주사. 은행의 지휘권 일원화 등 시너지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편 논의도 실종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제 논리는 사라지고 정치논리만 횡횡하는 국면이다. ‘농부’를 자처하는 김정태 전행장은 지금도 이 은행에 거액을 맡기거나 예치에 도움을 주면서 후배 사랑을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런 그도 지난 정부에서 재정경제부의 스타 관료 출신과의 해묵은 갈등 끝에 물러난 바 있다. ‘수난삼대(受難三代)’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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