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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전스’에서 성장 해법 찾는 경영자들

“당신도 크로스오버형(crossover) 리더입니까”

2010년 06월 29일 16시 33분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인사이트 트립’서 통찰력…
융복합시장 급성장…2015년 202조원 규모



잔잔한 미풍이 허리케인으로 바뀌며 지축을 뒤흔드는 양상이다. 컨버전스는 산업 지도를 바꾸는 판도라의 상자다.

SK텔레콤은 하나은행과 손잡고 카드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밥솥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쿠쿠전자는 정수기 사업에 진출하며 웅진코웨이에 도전장을 던졌다. 제조와 서비스의 융합은 신시장 창출의 방정식이다.

금호타이어는 타이어와 서비스를 통합한 T스테이션으로 ‘실지(失地)’를 회복했다.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전전긍긍이다.

히말라야에서 성장의 방정식을 구하는 컨설팅 업계의 경영자, 인사이트 트립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카드사 사장, 젊은 대학생들과 교유하며 새로움을 수혈하는 금융권의 노경영자를 비롯한 현대판 ‘율리시즈’들의 컨버전스 트렌드 해법에 주목했다. <편집자 주>




지난 2006년 7월, 베이스캠프가 있는 히말라야의 로체샤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 우뚝 선 산봉우리를 휘감고 몰아치는 바람은 매서웠다.

김경준(47)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는 히말라야의 눈 덮힌 풍경을 생생히 기억한다. 해발 5000m 고지에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다웠다.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률을 보이는 글로벌 기업의 한국 자회사. 당시 이 기업의 전무이던 그는 국내 재벌기업들을 상대로 성장 전략의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사였다.

서울 여의도 빌딩 숲을 누비며 성장의 덫에 걸린 고객사들의 고민거리를 씻어주는 것이 그의 주요 업무였다. 하루가 다르게 팍팍해지는 시장 환경은 최고경영자(CEO)들의 골칫거리이자, 늘 새로운 전략을 제시해야 하는 그의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히말라야행을 돌연 선택했을 때 다들 무모한 도전이라고들 했다. 히말라야의 전설로 통하는 산악인 엄홍길과의 만남은 새로웠다.

컨설턴트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무뚝뚝한 산 사나이는 리더십의 교범이었다. 엄홍길씨는 ‘히말라야 등반’이라는 ‘구도 행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뛰어난 마케터였다.

엄씨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직해 가치를 새로 만들어내는 컨버전스의 달인이었다. 휴먼원정대가 그 백미였다.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결합해 등반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산악인을 만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엄혹한 도전 속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강인함도 빼놓을 수 없는 신선함이었죠.”


엄홍길 산악대장이 주도한 ‘휴먼원정대’는 산악인이 만들어낸 화려한 프로젝트였다. 뜨거운 햇볕이 작열하는,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인 히말라야 설원이라는 색다른 공간에서 문득 찾아온 깨달음은 한 산악인에서 비롯됐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0년 6월22일. 한국경영학회 주최로 열린 컨버전스 세미나장.

김 대표가 기조연설을 한 컨버전스 세미나 행사장은 이 새로운 트렌드에서 성장의 기회를 엿보려는 최고경영자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현장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판매하는 기업인들의 위기감은 말 그대로 대단합니다. 애플이 휴대폰 업체 노키아와 경쟁을 할 것이라고 수년 전에 누가 예상을 했겠습니까.”

김 대표는 요즘 컨버전스 강의를 한다. 수년 전 히말라야행에서 만난 엄홍길 산악대장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컨버전스의 고수였다.

국내 시장의 강자들이 컨버전스 관련 세미나장으로 몰리는 이면에는 상전벽해의 변화를 주도하며 비즈니스 지형을 바꾸는 담대한 도전자들이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도 바로 여행에서 아이디어를 구하는 최고경영자다. 레드오션으로 변모한 카드 업계에서 독특한 마케팅으로 순항을 거듭하는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인사이트 트립(insight trip)’으로 불리는 여행에서 카드 업계의 변화를 주도할 통찰력을 얻고 있다.

잠재적 경쟁자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정영학 렉스마크 코리아 사장은 빅블루 IBM에서 분사한 이 글로벌 기업의 한국시장 공략의 첨병이다.

이 회사의 복합기는 프린터, 팩스기, 복사기, 스캐너 등을 하나의 기기에 통합한 대표적인 컨버전스 상품으로 이 분야에서 활동하던 단품시장 강자들의 몰락을 부른 장본인이다.

프린터 시장의 터줏대감들을 무너뜨린 이 글로벌 기업의 복합기는 프린터보다는 ‘지능형 컴퓨터’에 가깝다는 것이 정 사장의 설명이다.

문서 복사와 동시에 정보를 읽어 들여 원본은 복합기에 내장된 하드디스크에 남겨놓고, 미리 지정한 상대방의 이메일로 전송하는 기능은 이 업체의 자랑거리다.

고객사의 네트워크(SI)는 이 복합기를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바꿔주는 ‘도우미’다.

고객사 전체에 몇 대의 복합기가 운용되고 있으며, 이들 복합기에 장착된 토너나 종이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등도 간단한 프로그램 조작으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프린터의 놀라운 진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업체의 한국시장 공략을 주도하는 정 사장도 이른바 ‘하이브리드형 경영자’라는 점이다.

수십여 년을 글로벌 기업에서 활동한 그는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마케팅(휴렛패커드) 분야를 두루 거친 팔방미인형 경영자다.

프린터의 진화는 컨버전스의 첫 단추에 불과하다. 컴퓨터와 휴대폰의 컨버전스로 등장한 스마트폰은 노키아,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주도하던 휴대폰 업계의 산업지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다.

김경준 대표는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로 기술과 기술의 결합, 제품과 제품의 결합을 의미하던 컨버전스의 범위가 시장, 산업, 문화 영역을 비롯한 전 영역으로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악, 사진, 문학, 상상력을 주제로 한 경영대학원 과정이 최고경영자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영국의 프리미엄 위스키 브랜드를 비롯한 ‘이종산업’에서 고속 성장의 해법을 엿보는 경영자가 바로 정태영(51) 현대카드 사장이다.


인사이트 트립서 통찰력을 얻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매년 ‘인사이트 트립(insight trip)’을 떠난다. 레드오션(red ocean)으로 변모한 신용카드 업계에서 톡톡 튀는 마케팅으로 순항을 거듭하는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우리말로 통찰력 여행이라는 이 독특한 이름의 해외 탐방길에서 카드 업계의 변화를 주도할 트렌드,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 변화의 ‘통찰력’을 얻는다.

그는 지난해 살림의 여왕으로 유명한 마샤 스튜어트의 사무실을 방문해 이 회사의 라이프 스타일 잡지인 <마샤스튜어트 리빙>의 한국판을 같이 내기로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 사장은 또 아이폰 인기 앱인 자가트(zagat)를 만든 레스토랑 가이드북 제작업체 ‘자가트’와도 공동사업을 하고 있다.

<2010 서울 레스토랑 지도>를 만들어 선보인 정 사장이 관심을 기울이는 또 다른 영역이 바로 주류, 백화점을 비롯한 이종 업계다.

영국을 비롯한 구미권의 브랜드 컨설팅 회사는 정 사장이 즐겨 찾는 방문 1순위다. 정 사장은 영국 프리미엄 위스키의 브랜드 전략과 디자인 등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후문이다.

그는 인사이트 트립에서 자사의 비교우위를 빠른 속도로 카피하는 경쟁 상대를 따돌릴 아이디어를 구한다.

인사이트 트립은 국내 카드시장의 신선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이 회사 도약의 자양분이다.

‘슈퍼 콘서트’ ‘슈퍼매치’를 비롯한 빅 이벤트로 카드회사 마케팅의 영역을 확장해온 정 사장은 요즘 또 다른 시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고객들의 소비 성향을 분석해 바람직한 소비 포트폴리오를 권유하는 서비스가 그것이다. 전통적인 카드 회사의 밸류 체인에 ‘고객 컨설팅’을 더한 시도다.

인사이트 트립은 비단 현대카드의 전유물은 아니다. 작년 12월, 삼성경제연구소의 세리(SERI) CEO 강좌의 수강생이던 최고경영자 10여 명은 이탈리아 피렌체여행을 떠나 화제를 모았다.

인문학자로 유명한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학 교수와 함께 르네상스 혁명을 이끈 중심지를 돌아보러 간 것.

르네상스 혁명을 주도하던 피렌체의 도시 경쟁력이 화두였다.
또 이 도시의 번영을 주도한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사람들이 신학적 사고를 극복하고, 이 도시의 번영을 주도해가는 과정에도 주목했다.

김 교수는 매일 10여 시간씩 열흘 동안 특강을 하는 강행군을 했다는 후문이다.


국내에서 ‘컨버전스’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지난 1993년경이다. 복합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주인공은 삼성그룹의 변화를 주도하던 이건희 회장이라는 것이 컨설팅 업계의 진단이다. 지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신경영’은 물론 ‘복합화’ 제안도 포함돼 있다.


젊은 세대에서 성장의 기회 엿보다
“손님 만날 일이 많았던 1970년대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지. 앉은 자리에서 10잔도 마셨어.

그러고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서 손가락을 집어넣고 토하고 그랬지. 그렇게 한 7개월 지냈더니 더 이상 못 마시겠더라구.”

젊은 세대와의 교유에서 변화의 흐름을 엿보는 최고경영자가 바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을지로에 있는 30년 단골 이태리 식당 ‘라칸티나’를 방문한다.

대학 졸업을 앞둔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들을 만나 자신의 젊은 시절과 은행권 성공 방정식을 들려준다.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은 금융지주회사 최고경영자가 빠뜨리지 않는 월례 행사다.

그는 참석자들을 상대로 넥타이 고르는 요령부터 젊은 시절 고생담까지, 시시콜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젊은 후배들은 금융권의 장수 CEO가 젊은 감각을 받아들이는 창구이자, 미래의 소비자들을 만나는 접점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이 만남을 “기쁨이자, 기회”라고 평가한다. 국내 금융사들은 보험·은행·증권·자산운용 부문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혀가며 규모의 경제와 더불어 ‘부문별 시너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통신사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모바일 카드 시장 공략에 나서는 등 금융권을 뒤흔드는 컨버전스 추세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는 평이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아이디어의 80%는 경영의 테두리 밖에서 나온다.”

게리 헤멀 시카고대학 교수의 발언은 시사적이다. 최고경영자들이 피렌체나 히말라야로 떠나거나, 젊은 세대와 교유하는 배경을 가늠하게 한다.


강력한 플랫폼 지닌 기업이 컨버전스 주도
국내에서 복합화(컨버전스)라는 용어를 사용한 주인공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라는 것이 컨설팅 업계의 정설이다. 지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신경영’과 더불어 ‘복합화’를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의 분석이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1990년대 초반 공식화한 컨버전스의 트렌드는 최근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산업과 산업이 서로 섞이며 기존 산업의 질서를 송두리째 바꾸는 단계로 진입 중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성장의 기회를 포착한 경영자들의 특징도 뚜렷하다.
지난 1990년대 초반 ‘빅 블루’ IBM을 파산 위기에서 구해낸 루 거스너 전 회장은 제조업과 서비스의 컨버전스에서 이 공룡기업의 살길을 모색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팔미사노 후임 회장은 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를 인수하며 서비스부문으로 무게 중심을 점차 옮겨간 주역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애플의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가 컨버전스에서 성장의 기회를 선제적으로 포착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괴짜 경영자는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대만의 휴대폰 업체,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등을 자사 주도의 생태계에 끌어들여 노키아나 삼성전자, LG전자가 공들여 구축한 휴대폰 산업 내 포지셔닝을 단숨에 뒤흔들고 있다.

김경준 대표는 “강력한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낼 ‘플랫폼’이 누구의 소유인지가 결국 경제적 관계를 바꾼다”고 강조한다.

구글,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무대의 강자들이 최근 이 플랫폼을 앞세워 용호상박의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라는 것.

컨버전스 시대의 승자는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포착하고 융복합 기술로 공략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강신장 삼성경제연구소 전 지식경제실장은 “남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새로움”이라며 “융합·복합으로 (소비자들의) 숨겨진 니즈(needs)를 공략하는 기업들이 급증했다”고 진단한다.

컨버전스 성공시대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며, 기술은 그 이후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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