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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노래·미모’ 2류지만 재창조 통해 ‘초일류’치장 5억달러 벌어

마돈나 ‘섹시코드’는 계산된 브랜딩

2010년 11월 16일 14시 43분 
1989년 6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열린 ‘컨페션 투어(Confession Tour)’, 대형 콘서트장은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무대 한복판에 있는 금발의 여성 뮤지션 좌우로 근육질의 상반신을 드러낸 반라의 남성 댄서들이 몸을 가볍게 흔들고 있다. 

무대 오른편에 있는 흑인 댄서의 가슴에는 이스라엘의 상징물이 선명히 찍혀 있다. 
또 이 여성가수 왼편에 있는 무용수의 근육질 가슴에는 아랍 세계를 상징하는 표식이 눈길을 끌었다. 

이 두 댄서의 손을 맞잡은 채 중동 땅의 평화를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하던 여성 가수가 바로 ‘마돈나 루이스 베로니카 치콘(52·Madonna Louise Veronica Ciccone)’, 한국 팬들에게는 ‘마돈나’로 더 잘 알려진 미국의 뮤지션이다. 

마돈나가 지난 2008년 9월6일 자신의 ‘Sticky and Sweet Tour’ 공연의 일환으로 이탈리아 로마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공연하고 있다.마돈나가 지난 2008년 9월6일 자신의 ‘Sticky and Sweet Tour’ 공연의 일환으로 이탈리아 로마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공연하고 있다.

1982년 초, 댄서로 활동하다가 가수로 전향하며 미 연예계에 데뷔한 이 여성 뮤지션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미 음악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팝 음악’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해온 주인공이라는 찬사가 끊이질 않았지만, 종교인들의 시각은 비판적이었다. 외설적인 가사나 춤이 논란을 촉발한 도화선이었다.

그녀에게는 이러한 논란이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마돈나가 지금까지 판매한 앨범은 무려 2억장. 음반 판매로 거둬들인 소득이 5억 달러, 우리돈으로 5000억원을 훌쩍 넘는 돈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두 번째로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뮤지션인 그녀의 전성시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50세를 훌쩍 넘긴 그녀의 인기는 여전히 시들 기미가 없다. 지난해 미국의 콘서트 프로모션 회사인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과 자신의 음반, 노래, 영상 등에 대한 일괄 계약을 체결하며 받은 돈만 무려 1억 2000만 달러. 

1978년, 19세의 나이에 뉴욕에 도착한 마돈나가 달랑 손에 쥔 돈은 35달러에 불과했다. 그녀의 춤 실력은 당대 댄서들과 견줄 정도는 아니었으며, 훗날 가수로서도 가창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쁘장 한 외모를 보유했지만, 대단한 미인축에도 끼지 못했다. 전문가들이 이른바 ‘마돈나 팩터(Madonna factor)’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뮤지션 마돈나는 복합기업의 브랜드 관리, 시너지 경영의 노하우를 엿보는 비밀의 창(窓 )이다. 또 제한된 자원으로 거대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무기인 ‘란체스터 전략’의 백미(白眉)이기도 하다. 


주류·비주류 섞어 새로움 창조

“마돈나의 비디오나 싱글 음반이 발매되는 날은 게이들에게는 마치 국경일과도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음반을 사기 위해 매장으로 달려갔고, 텔레비전에 등장한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았습니다.” 마돈나의 팬클럽 회장격인 '스티브 그둘라(Steve Gdula)'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녀의 첫번째 성공 코드는 시너지. 을 출시하며 히트 음반 연타를 친 가수 마돈나가 지난 1990년 발표한 음반 '는 게이바에서 유행하던 춤을 제도권에 첫 소개한 작품이었다. 

마돈나는 비주류의 문화를 주류 음악에 더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시너지의 고수였다. 이 음반들은 게이를 비롯한 지지자들의 결속을 유도한 끈끈한 접착제이기도 했다. 

마돈나는 하지만 이러한 게이 팬들의 지지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했다. 지난 1996년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인 에바 페론을 소재로 한 영화 <에비타> 출연을 신호탄으로 영화, 패션, 음반, 출판, 공연, 프로듀싱을 비롯한 인접 분야로 끊임없이 보폭을 확대해 나가며 만능엔터테이너의 면모를 자랑한다. 

미국 주류사회를 공략해 나가면서도, 전통적인 지지 기반인 게이팬들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그녀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이었다.


뮤지션 마돈나는 복합 기업의 브랜드 관리, 시너지 경영의 노하우를 엿보는 비밀의 창(窓 )이다. 또 제한된 자원으로 거대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의 비장의 무기인 ‘란체스터 전략’의 백미(白眉)이기도 하다



한번 팬은 영원한 팬…해리포터 마케팅

마돈나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바로 ‘재창조(reinvention)’이다. 그녀가 50세가 넘어서도 전성기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지난 1980년대 펩시와 광고계약도 그녀에게는 비상의 날개를 달아준 전기였다. 펩시콜라의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는 이 40개 나라, 2억 5000만명의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이 열린 지난 1984년, 마돈나는 네 번째 앨범인 ‘보더라인(borderline)’으로 미 팝 음반 부문 판매순위 ‘탑 10’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때만해도 음악 전문가들은 그녀가 대중의 뇌리에서 곧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이 여성 가수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데뷔초부터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대중에게 비춰져야 할지를 정확히 간파했다. 스타 디자이너, 이미지 컨설턴트, 매니저를 비롯한 문화산업의 고수를 자처하는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음악산업에서 신인 가수가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녀는 데뷔 이래 30년 이상 이러한 원칙을 지켰다. 

“나는 최고의 가수가 아닙니다. 가장 뛰어난 댄서도 아니죠. 사실, 그런 현실에는 별로 관심도 없습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사람들이 반응하는 지점(people's) 을 바로 격발시키는 것입니다.” 단 한분야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보유하지 못한 그녀가 30년 동안 수퍼스타로 군림할 수 있던 이면에는 브랜드 관리를 빼놓을 수 없다. 

브랜드 관리의 주요 노하우 중 하나가 바로 해리포터 마케팅이다. 프랑스의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이 네슬레와 공동투자한 ‘이네오브(Inneov)’가 수년 전 ‘이네오브 펌니스(Firmness)’라는 브랜드를 출시하며 선택한 해리포터 마케팅 전략은 나이 들어가는 여성 소비자들과 같은 연령대의 ‘빅 모델’을 채택해 둘 사이에 동질감을 부여하고, 지속적인 소비를 유도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주류와 비주류의 시너지, 탁월한 브랜드 관리 노하우, 비즈니스 감각은 그녀의 비상을 부른 트리오이다. 물론 그녀가 대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면에는 집요함도 빼놓을 수 없다. 미 헐리우드에 진입한 것은 남편인 숀펜 덕분이었다. 또 댄서에서 가수로 변모한 것도 뮤지션인 스티브 브레이의 도움이 컸다. 

남편이나, 지인들의 도움을 등에 업고서라도 이종 분야진출을 추구하는 이 여성 뮤지션의 집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돈나 전성시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지난 1992년 타임워너사와 손을 잡고 자신의 음반사인 ‘매버릭 리코드(Maverick Records)’를 세운 그녀는 '될성부른 떡잎'을 고르는 데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가 발탁한 신인가수 앨러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의 데뷔 앨범은 무려 3000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마돈나와 필적할만한 비즈니스 감각을 보유한 가수들은 지금까지 없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뮤지션 마돈나가 걸어온 길

이름 : 마돈나 루이스 베로니카 치콘(Madonna Louise Veronica Ciccone
생일 : 1958년 8월 16일 
장르 : 팝, 락
직업 : 가수(singer), 작곡가(songwriter), 댄서(dancer), 음반 프로듀서(record producer), 영화제작자(film producer), 영화감독(film director), 패션 디자이너(fashion designer), 작가(author), 여배우(actress), 기업가(actress) 
활동시기 : 1981~현재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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