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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28일 11시 34분 
美 GM·GE도 사업 본분 잊고 ‘금융’치중 위기 자초
현대·LG·삼성 등 빅3기업 진지한 농업 접근법 교훈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격이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발언의 파문이 일파만파다. 올해 상반기 중 농협의 신용 사업(금융)과 경제 사업(유통)을 쪼개는 이른바 ‘신경망 분리’ 방안을 결정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농협의 역할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해묵은 논쟁에 다시 한 번 불을 점화했다. 갑론을박이 치열하지만, 이번만큼은 신경망 분리가 대세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그 배경을 집중 분석했다. (편집자 주)

콩 수확하는 러시아 연해주 한국기업 농장. 현대중공업이 설립한 현대아그로는 올해 3천500㏊ 밭에 콩 등을 심어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콩 수확하는 러시아 연해주 한국기업 농장. 현대중공업이 설립한 현대아그로는 올해 3천500㏊ 밭에 콩 등을 심어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러시아 연해주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계승한 현대가의 꿈이 익어가는 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70km 떨어진 곡창 지대인 하롤스키에 위치한 이 농장에서는 지난해 콩 4500만t, 옥수수 2000t을 수확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8년 이 농장을 사들였다. 

이 회사의 러시아 연해주 영농법인인 하를 제노스가 보유한 이 농장은 여의도 면적의 33배 크기인 3000만 평에 달한다. 세계 조선업계 1위인 이 회사 영농법인이 재작년 연해주 농장을 인수하며 밝힌 인수 목적은 친환경사업의 육성.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친환경 녹색 분야인 농장을 인수했다는 것이 이 회사의 설명. 

강원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유조선으로 바다를 막아 충청도 서산 땅에 농장을 조성하는 등 농업에 애정을 기울여온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는 러시아 연해주 농장 출범의 밀알이 됐다. 국내 최초의 대규모 영농기업인 ‘서산 농장’을 일군 정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연해주에 농장을 사들여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도 농업대학인 ‘연암 대학’을 만들어 축산, 원예 등 농업전문인을 양성하고 있다. 그는 굴지의 대기업인 LG 회장직을 박차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섯 종균을 기르고, 된장· 청국장을 비롯한 전통 발효식품을 만들고 있다. 생명산업과 농업 후계자를 육성하는 이 대학 후생관에서는 구 회장이 만든 전통 발효식품을 판매한다.


기업인들 농업의 잠재력 높이 평가

삼성그룹도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이 에버랜드에 돈사를 짓는 등 한때 양돈 사업 진출을 저울질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 LG그룹, 삼성그룹을 비롯한 ‘빅3’의 창업자들이 농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배경은 이들이 대부분 농촌 출신으로, 이 분야의 잠재력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재작년 발표한 보고서 '식품산업: 새로운 가치와 도전'에 따르면 식품산업은 세계 시장 규모가 4조 달러로 반도체 산업의 15배에 달하는 거대 산업이다. 

이 분야의 잠재력은 더 크다. 농업이나, 식품에 바이오 부문이 접목되면서 비만방지 식품, 노화방지 식품 등 응용분야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농업 부문에 관심을 피력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이나 연해주 등지의 농지 인수를 저울질하는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에게 농업은 가격 경쟁력 확보의 유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옥수수를 비롯한 식량을 대량으로 재배하거나, 베트남 수역의 어장을 사들여 수산물을 대량 생산한다면, 경쟁사와의 피 말리는 가격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농업 경쟁력 ‘인접 산업 경쟁력’ 좌우 

경쟁 유통 업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웃소싱’ 만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보고, 러시아 연해주나 베트남 등에 대형 농장을 사들여 가격전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포석이다. 연해주나 블라디보스토크는 토지가 광활한데다, 임금도 상대적으로 낮다. 규모의 경제를 적용할 수 있는 천혜의 요건을 두루 갖춘 지역이라는 얘기다. 

옥수수를 비롯한 작물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호재다. 튀니스,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 주요 국가들을 휩쓸고 있는 풀뿌리 혁명의 이면에도 따지고 보면, 가격이 급등한 식량을 둘러싼 다툼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 

농업은 식량 안보를 지키고, 식품업체나 대형 유통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후방 연관사업이다. 

신수종 사업에 목이 마른 국내 기업들의 경우 눈독을 들여볼 만한 매력적인 시장이 바로 이 분야다. 하지만 국내 농업은 세계 시장을 파고들기는 고사하고 여전히 '영세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력은 취약하다. 디지털 농업, 벤처 농업을 비롯한 혁신 농법들이 관심을 끌었으나, 아직은 찻잔속의 태풍 격이다. 

드뤠피스, 카길을 비롯한 다국적 애그로(Agro.농업) 기업들은 막강한 네트워크를 자산으로 농업, 식품, 바이오로 연결되는 농업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카길을 비롯한 곡물 메이저들은 이 분야의 '골드만삭스'다. 

국내에서  농협 신경망 분리를 둘러싸고 논란이 재점화된 것도 이러한 자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할복까지 시도하는 축협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의 치열한 저항을 물리치고 농협과 축협, 인삼협동조합을 통합했으나, 당초 기대하던 통폐합의 효과는 미미하고 그 폐해는 여전한 것이 현실. 

농협 신경망 분리 변화의 불씨 될까

미 면화사업자들이 자국의 면화 농가를 상대로 인공위성을 활용한 GPS농법을 보급하거나, 세계 각국에 ‘코튼 마크’ 브랜드를 홍보하는 등 자국 농업 발전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 농협이 농산물 유통, 브랜딩을 비롯한 지원단체 본연의 업무보다 돈 장사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판의 골자는 농협이 유통을 비롯한 경제 사업보다는 신용사업 등 돈벌이에 골몰하면서, 농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이나, 제너럴일렉트릭이 금융부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제품을 공들여 만드는 장인정신을 발휘하기 보다 모기지 사업을 비롯한 신용분야에 치중하다가 위기를 자초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농협중앙회가 맡긴 외부 연구용역에서는 해결책으로 ‘지주회사’ 모델을 제시했다. 경제부문은 사업지주회사로, 신용부문은 금융지주회사로 각각 독립시키자는 것이 골자다. 금융지주는 아래에 은행·보험·증권·자산운용 등을, 사업지주는 산지유통·농수산도매·축산가공 등을 자회사로 두게 된다. 

농협의 신경망 분리가 이슈가 된 것은,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올해 상반기 중 농협의 신용(금융)사업과 경제(유통)사업을 쪼개는 이른바 ‘신경 분리’ 방안을 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촉발됐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격이다.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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