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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정권은 왜 오래가지 못할까”

2010년 01월 13일 11시 22분

《인물지》
- 박찬철·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 2만7000원


조조는 늘 ‘유재시거(惟才是擧)’의 원칙에 충실했다. ‘재주’가 인재 등용의 ‘금과옥조(金科玉條)’였다. 뇌물을 수뢰하거나, ‘음행(淫行)’을 일삼는 인물도 능력만 뛰어나다면 과감히 발탁했다.

전장에서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적장마저도 감싸 안은 조조의 인재 등용 원칙은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했다. 후한 시대 인재 발탁의 기준은 ‘충(忠)’과 '효(孝)'였다.

전한을 멸하고 ‘신’을 창업한 역적 ‘왕망’은 후한 황제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었다. 지극한 효심으로 이름을 날리거나, 군왕을 향한 충성심이 강한 ‘명사’들을 등용의 일순위로 삼은 배경이다. 하지만 능력과 명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동서고금의 법칙이기도 하다.

환관의 가문 출신이던 조조는 이러한 인물들의 ‘위선’과 ‘무능’을 꿰뚫어보았다. 부모의 묘 앞에 초막을 짓고 7년상을 지낸 ‘효자’는 알고 보니 복상 중 ‘후처’를 여러 명 들인 호색한이었다.

그의 인재관은 이러한 상황을 통찰한 것이었다. 중국의 변방 출신인 ‘가후’, 조조의 아들과 조카를 살해한 장수, 원소 휘하에 있던 장합 등이 통일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주역들이다. 강동의 지배자 손권도 인재를 감별하는 탁월한 안목을 자랑했다.

노숙이나 주유, 여몽, 육손에 이르기까지, 젊은 인사들에게 과감히 군권을 준 것도 손권이었다. 인사의 ‘실사구시(實事求是)’였다.

하지만 이들 용인의 고수들이 늘 인사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인물지》는 삼국시대의 인물인 유소가 저술한 인재평가의 고전이다.

구징, 체별, 유업, 재리, 재능, 이해, 영웅, 접식, 팔관, 칠류, 효난, 석쟁 등 사람을 평가하는 12가지 기준을 총망라 했다. 오행 사상을 비롯해 동양학에 뿌리를 둔 당대의 시대적 특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왕들이 베갯머리에 두고 읽던 인재경영의 비서’로 통하는 《인물지》는 조조 ‘용인술’의 한계를 가늠하게 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조조는 결코 인물의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들여 발탁한 인재 중에는 훗날 사마씨 가문에 투항하며 충절을 버린 이들이 많았다.

조조의 휘하에 몰려든 인사들 상당수는 ‘명리’에 집착하는 ‘불나방’들이었다. 입신양명의 수단인 왕조가 무너지자 재빨리 이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중국사를 수놓은 인재들의 용인술, 그리고 그들의 한계를 통찰하려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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