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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국쇠망사》

이상주의자 왕망은 왜 실패했을까

2009년 06월 09일 15시 40분
리샹 지음, 정광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5000원리샹 지음, 정광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5000원
위선의 시대였다. 부모의 묘 옆에 움막을 짓고 삼년 시묘살이를 한다던 효자는 밤만 되면 첩의 집을 찾아 향락을 즐기는 무뢰배였다. 부인에게 비단옷을 사줄 여유가 없어 무명옷을 입힌 청백리 상당수는 넘쳐나는 곳간을 주체하기 어려운 부패관료였다. 전한 시대는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시기였다.

왕망은 위선자들에게 분노하던 민심의 흐름을 꿰뚫어 보았다. 집안의 하인을 죽게 한 아들에게 자결을 명령한 그는 유가 경전에서 막 뛰쳐나온 듯한 도덕군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민초들은 왕망에게서 희망의 빛을 보았다. 그의 집권과정은 잘 기획된 한 편의 ‘미드(미국 드라마)’를 떠올리게 했다.

왕망이 연출한 이 역성혁명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천심(天心)’의 위조였다. 수하들을 시켜 길조로 알려진 흰 꿩을 태황태후에게 바치게 하며 자신의 덕을 칭송하게 했다. 민심은 가장 강력한 집권의 보루였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신(新) 정권은 유가에서 이상향으로 삼는 주대의 토지제도를 되살렸으나 현실에 맞지 않았다. 기득권 세력의 약화를 위해 화폐제도를 자주 바꾸었으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었다.

하늘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메뚜기 떼가 수도 장안을 덮치고 기근이 기승을 부리자, 민심의 이반은 극에 달한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눈앞에서 자식들이 죽는 모습을 본 농민들은 왕망에게 등을 돌렸다.

왕망의 화려한 부상과 몰락은 오늘을 되돌아보는 거울이다. 그는 도덕적인 우위도 갖추고 있었으며, 강력한 지지기반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교한 개혁 프로그램과 비전의 부재는 이 이상주의자의 날개 없는 추락을 불러왔다. 왕망을 일각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백성들을 장안성 밖으로 보내 하늘을 향해 울부짖게 하는 등 천심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의 최후는 비참하다.

장안성을 함락한 반란군의 칼날에 온몸이 찢기는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중국제국쇠망사》는 왕망을 비롯해 중국사를 수놓은 군웅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히 복원해 낸 수작이다.
2007/02/21 - [로컬(Local) VIEW/로컬 리더십 VIEW] - 대통령 리더십 분석-노무현 대통령


박영환 기자(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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