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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도 ‘갈등’으로 무너진 은행 많아… 美 씨티은행 내분 ‘닮은 꼴’

신한사태 반면교사ㅣ쇠망의 씨앗은 ‘사람’에게 있더라

2010년 10월 12일 10시 00분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은 마치 야생마의 등 위에 올라타 고삐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전도양양한 동안(童顔)의 미남 경영자, 샌디 웨일의 양아들이자 오른팔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는 한때 씨티그룹의 잘 나가는 2인자였다.

샌디 웨일·제이미 다이먼은 인연의 골이 깊었다. 아메리카익스프레스(AMEX)에서 쫓겨난 샌디 웨일을 무작정 따라 나선 것이 바로 그였다. 제이미 다이먼은 중국 진한시대의 장수인 ‘한신’을 떠올리게 하는 뛰어난 금융 영토 확장의 전문가였다. 스승과 제자가 선택한 와신상담의 무대가 볼티모어에 있는 ‘커머셜 크레디트(Commercial Credit)’ .

두 사람은 환상의 복식조였다. 샌디 웨일이 큰 흐름을 제시하면, 제이미 다이먼은 세부적인 부분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수행했다. 월가는 그런 두 사람을 부자지간, 스승과 제자에 비유했다. 이 회사는 ‘프라이메리카(Primerica)’ ‘트래블러스(Travelers)’ ‘씨티그룹(Citygroup)’ 등으로 사명을 바꾸며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했다.


동고동락 20여 년 만에 2인자 ‘토사구팽’

두 사람이 동고동락한 세월이 무려 20여 년. ‘시너지’는 두 사람이 선호하는 씨티그룹 성장의 키워드였다. 부단 없이 인접 영역으로 금융 영토를 늘리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죽’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 ‘이 거대한 금융제국의 후계자는 당연히 제이미 다이먼이 될 것’이라는 게 월가의 분석이었다. 그의 몰락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제시카 비블리오윅츠’는 아버지인 샌디 웨일의 불신에 기름을 부은 ‘장본인’이었다.직속 상사인 제이미 다이먼과 자주 부딪치던 샌디 웨일의 딸은 그의 반대로 승진이 좌절되자 회사를 떠난다. 이로부터 14개월 후, 제이미 다이먼도 씨티그룹에서 물러난다.

씨티그룹 경영자들이 모두 참석한 경영전략회의가 발단이었다. 씨티그룹의 운영 방향을 둘러싸고 말다툼을 벌이는 경영진들을 중재하는 제이미 다이먼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노 경영자가 바로 훗날 자신의 딸의 사퇴에 아쉬움을 토로하던 샌디 웨일이었다.

지난 1998년 11월, 제이미 다이먼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뉴욕에 있는 컨퍼런스센터(conference center)로 오라’는 샌디 웨일의 전화였다. 이 전화 한통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샌디 웨일이 그에게 던진 주문은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젊은 경영자는 세상사에 어두웠다. 제이미 다이먼은 며칠 후 샌디 웨일이 준비해둔 기자회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준비된 원고를 읽는 일이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회사를 용퇴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무려 20년 가까이 이 제국의 확장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제이미 다이먼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운명을 면치 못했다.

“65세의 웨일이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다이먼을 시기했는지도 모른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이었다. 20여 년 이상 지속된 두 사람의 밀월관계는 종언을 고했고, 그 원인을 놓고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분석이 꼬리를 문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샌디 웨일도 불청객 ‘의심’ 못 피해

증권사 사환으로 시작해 45년 만에 세계 최대 금융그룹이던 씨티그룹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성공담의 주인공이었다. 씨티코프와 합병이 샌디 웨일 인생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그도 나이가 먹으면서 피해가지 못한 불청객이 있었다. 바로 ‘의심’이다.

금융가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독 장기 집권형 리더들이 많다. 샌디 웨일 씨티그룹 전 회장, 모리스 그린버그 AIG 전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이 영욕의 세월을 거친 대표적인 경영자들이다.


“어떤 일에서든 성공이나 실패를 결정하는 진짜 문제가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과 문화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라응찬 회장은 1991년 행장으로 선임된 후 은행장 3기 연임, 부회장 2기 연임에 이어 지주회사 회장으로 지난 3월 네 번째 선임됨으로써 무려 19년 동안 신한은행의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소속사의 초고속 성장을 주도하며 조직의 최정상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라 회장도 대구은행 비서실 시절 똑 부러지는 일처리로 재무장관 출신인 김준성 대구은행장의 눈도장을 받으며 훗날의 대도약을 예비한다. 라 회장은 재일교포 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정치권의 외풍을 막으며 신한은행의 도약을 이끈 금융계의 거물이었다.

그가 이 금융그룹이 나아갈 큰 윤곽을 그린 리더십의 전범이라면, 신상훈 사장은 라 회장이 높이 치켜 든 전략목표를 실행에 옮기는 한국의 ‘제이미 다이먼’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도 씨티그룹의 내분사태와 여러모로 닮았다. 이번 사태가 ‘제도보다는 사람의 문제’라는 진단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블루오션 이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김위찬 교수, 로사베스 모사 켄트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상찬을 아끼지 않은 연구 대상이 신한은행이다. 이들이 보는 신한의 성장동력이 바로 독특한 신한금융의 기업문화, 수뇌부의 뛰어난 리스크 관리 역량이었다.

그런 이 금융 명가에 위기가 소리 없이 찾아든 이면에는 최고 상층부의 내분이 있다. 호남이 연고인 신상훈 사장은 지난 10년 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이 은행의 외형 성장에 큰 몫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는 라응찬 회장의 명실상부한 후계자였다.

미국 씨티그룹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리더를 정점으로 전략 목표를 향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던 사업 단위들이 더 이상 매끄럽게 움직이지 않는 이면에는 수뇌부의 분열이 있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춤은 추어야 한다.” 샌디 웨일이 제이미 다이먼을 내쫓은 뒤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척 프린스는 변호사 출신의 경영자였다. 지난 2008년 미국 금융 위기의 여파로 흔들리던 이 회사의 수장에서 물러난 그가 남긴 사퇴의 변이다. 지난 2008년, 샌디 웨일 씨티그룹 전 회장은 척 프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것을 뒤늦게 후회한 바 있다.


신한 라 회장-신 사장 ‘다툼’도 닮은 꼴

제이미 다이먼은 무려 1년 4개월여를 ‘두문불출’했다. 집 근처에 있는 복싱 체육관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였다. 제이미 다이먼이 재기의 날개를 펼친 은행이 바로 ‘뱅크원’이었다.

지난 2004년, 그는 JP모건체이스와 합병을 성사시킨다. 두 은행의 합병으로 자산 규모 1조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거대 은행이 등장한다. 제이미 다이먼은 JP모건체이스의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미국의 신용 위기 사태로 흔들리던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인수하는 등 월가의 대표 주자로 우뚝 섰다.

“어떤 일에서든 성공이나 실패를 결정하는 진짜 문제가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과 문화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경영석학인 마이클 해머(Michal Hammer)가 대표작인 <아젠다(Agenda)>에서 남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뇌부 ‘빅3’의 권력다툼으로 촉발된 신한사태는 이 운행 구성원들이 지닌 30여 년 간 애써 구축해온 탄탄한 브랜드를 송두리째 허물어뜨리며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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