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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호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삼국지 통섭의 원리

“나관중과 조앤 롤링은 이란성 쌍생아”

2011년 02월 14일 15시 10분
[사진 : 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사진 : 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스토리와 스토리, 팩트와 팩트에 상상력의 조미료를 뿌려 매끄럽게 묶어 통섭의 비교우위를 만들어내듯 IT 플랫폼 통합 마법을 보여준 잡스는 산업계의 나관중·조앤 롤링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통합의 지혜 깨우친 ‘원소스 멀티유즈’ 스토리 비즈의 대가

지난 2월8일 휴넷이 주최하고 아시아미디어그룹이 후원하는 제37회 CEO 월례 조찬모임이 소공동 플라자 호텔에서 열렸다. ‘삼국지연의에서 나타난 중국인의 정서’를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서경호 서울대 교수는 “한국사회가 스토리텔링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며 “기업체들도 면접 방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고언했다. <편집자 주>

“이야기를 스타카토로 풀어가는 사회는 스토리의 질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맥락을 이해하고,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야 합니다.” 출판에서 광고, 문화, 인재 채용에 이르기까지, 바야흐로 스토리 전성시대다. 가난으로 매 끼니를 걱정하던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 를 300조 원이 넘는 거대 브랜드로 성장시킨 현대판 호머다.

그녀는 유럽의 신화에 독창적 상상력을 더해 전 세계인들을 웃고 울리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세그멘트(segment:타깃 영역)가 따로 없는 메시지가 비교우위였다. 먹을거리를 구하고 집세를 내기 위해 복지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하던 이 여류 작가는 이 작품으로 자신의 삶도 바꿨고, 스토리 비즈니스의 신기원도 활짝 열었다.

나관중 원작의 삼국지연의는 중국판 <해리포터>다. 위촉오 3국이 패권을 다투던 중국사의 한 자락을 감칠맛 나게 재구성해 동아시아인들을 사로잡은 나관중은 정사 삼국지의 팩트를 씨줄로, 상상력을 날줄로 영웅 서사시를 만든 통섭의 달인이자, 중국판 조앤 롤링이었다.

서경호 서울대 교수는 삼국지 전문가다. “국내에는 삼국지 전문가가 4000여 명 정도 됩니다. 이들 중에는 방 하나를 삼국지 관련 자료로 다 채운 마니아도 있고요. 이 분들과 비교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죠.” 서경호 교수는 삼국지 마니아들을 화제에 올리며 이같이 말한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의 삼국지 독해법은 독특하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서사의 힘에 주목한다. 낙방거사 나관중의 붓 끝에서 제갈공명은 비와 바람, 귀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불세출의 군사전략가로 부활한다.

하지만 제갈공명은 뛰어난 정치인이었지, 탁월한 군사전략가는 아니었다는 것이 진수의 평가이기도 하다. 무리한 북벌을 감행하며 촉나라 패망의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이었다. 한고조 유방의 창업을 도운 장자방 장량, 모택동의 중국 제패를 보좌한 주은래,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증국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 적어도 군사적 재능만 놓고 평가할 때 그랬다.

그런 그는 나관중의 붓 끝에서 화려하게 채색되며, 신출귀몰하는 전략가로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화려하게 되살아난다. 그 백미가 바로 적벽대전.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등장하는 적벽대전은 10여 줄에 불과하다. 원소를 물리친 관도대전으로 중원을 평정한 조조가 이끄는 위나라의 대군이 풍토병으로 고생하다 회군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삼국지는 가공 여지 무한한 원석

나관중은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드라마틱하게 융합했다. 조조군의 중원 제패, 양자강 남하, 풍토병의 유행, 유비·손권 연합군의 승리를 비빔밥처럼 휘휘 섞어 매력적인 문화상품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역사적 팩트에 독특한 상상력을 입혀 독자들의 혼을 쏙 빼놓은 그가 견지한 ‘촉한 정통론’은 어지러운 팩트에 질서를 부여하는 ‘북극성’이었다.

삼국지연의는 당대의 <반지의 제왕>이자 <해리포터>였다. “나관중은 지금으로 치면 역사에 정통한 아마추어 역사학자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국지연의는 아마추어 역사가의 입장에서 백성들에게 역사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풀어쓴 교과서인 셈입니다.”

나관중이 남긴 삼국지연의의 유산은 깊고도 넓다. 중국인들은 이 작품을 신호탄으로 역사적 사실 자체보다, 의미와 맥락에 방점을 두게 됐다는 얘기다. 팩트와 팩트, 스토리와 스토리를 잇는 독창적인 상상력이 ‘팩트(fact)’ 못지않은 주요 변수로 등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삼국지연의> <금병매>를 비롯한 역사물이 지적 오락의 반열에 오르게 된 원동력이다.

서 교수는 삼국지를 아직도 가공할 수 있는 여지가 남은 원석에 비유한다. 경영전략서, 심리학, 처세 부문 등으로 스스로를 복제하고 있다. DVD, 영화 부문으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복제하고 있는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명사다. 조앤 롤링과 나관중은 이런 맥락에서 ‘이란성 쌍생아’에 비유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작품은 끊임없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스토리와 스토리, 팩트와 팩트에 상상력이라는 조미료를 뿌려 매끄럽게 묶어내는 통섭이 바로 이들의 비교우위이다. 스티브 잡스는 MP3 단말기와 아이튠스 플랫폼을 통합해 MP3 시장을 제패한 산업계의 조앤 롤링이자 나관중이다.

우리 사회, 속도에 매몰 서사 능력 떨어져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국의 수재들이 다 모인다는 서울대생 들 중에서도 삼국지 완역본을 읽는 이들은 드물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한국 사회의 서사 능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강조한다.

속도전이 중시되다 보니 불거진 부작용이다. 문제는 이러한 폐해가 비단 문학 영역에 그치고 있지 않다는 것. 통섭이나 융합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서 교수는 인재 선발 방식부터 바꿀 것을 당부한다.

면접자들을 대상으로 화두를 제시한 뒤 상대방의 구술을 밑천삼아 대화를 ‘수건 돌리기식’으로 이어나가는 면접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는 이 대화가 세 바퀴 정도 돌아가고 나면, 면접 참가자들의 역량 또한 정확히 간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재계에 불고 있는 인문학 바람에도 일침을 가했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이 거대한 삶의 보고에서 무엇을 건져 올릴지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라는 것. 삼국지는 서 교수에게 중국의 오늘을 엿보는 창이자, 대한민국을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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