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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빅뱅’ 어디로…

전략부재 금융산업 위기 돌파구는 있나

미 서부 진출 도전정신,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삼성전자 배워라


대한민국 금융가는 폭풍전야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정국이다. 우리금융지주 매각은 금융 빅뱅의 서막이다. 신한 사태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도 미지수다. 올 연말과 내년 초 주요 은행 수장들의 대대적인 물갈이도 예고돼 있다. 성장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대한민국 은행 산업의 현주소를 조명했다. <편집자주>


최동준(56) SC제일은행 전 상무는 전략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 전문가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한 드림팩 금융상품 시리즈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고객관리 기법인 라이프사이클 매니지먼트가 주특기. 

켈로그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맥킨지에서 컨설턴트 생활을 한 그에게도 국내 금융 산업은 ‘고해의 바다’이다. “돈과 같은 ‘코모더티(commodity·뚜렷한 특징이 없는 상품을 지칭)’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토로는 은행권 최고경영자들의 고충을 엿보는 ‘창(窓)’이다. 라이프사이클 매니지먼트, 해리포터 마케팅, 스토리 마케팅, 무의식 마케팅…국내 은행산업은 최첨단 마케팅 기법들이 부딪치는 치열한 경연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마케팅 대전의 이면에는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국내 은행들의 초라한 현실이 있다. ‘미투(Me-Too·따라하기) 전략’은 아이디어 부재의 산물이다. 경쟁사의 인기 금융 상품은 최단 시간에 카피된다. 점포가 많고, 브랜드 파워가 강한 강자에 유리한 경쟁 구도다. 

최 전 상무는 드림팩 시리즈를 개발하며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잠들기 전 일본의 인기 만화 ‘나루토’를 펼쳐들며 시름을 잊는다. 그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국내 은행들의 경쟁 구도가 소모적인 ‘참호전’의 형태를 다시 띤 것은 1997년 말 이후다. 전략이 실종되고 효율성의 논리가 은행경영자들을 압도하던 시기다.


매크로 경영 가고, 마이크로 경영 오고

지난 1995년 2월26일, 미국 서부의 관문인 캘리포니아 톰 브래들리 국제공항. 신한은행 양신근 과장은 수 개월 만에 다시 미국 땅을 밟았다. 그의 임무는 미국 서부의 지역밀착형 커뮤니티 은행 인수.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머린내셔널(MBN) 은행이 인수 후보였다. 협상은 쉽지 않았다. 

신한은행은 머린 내셔널을 우여곡절 끝에 인수하는 데 성공하며 국내 금융사의 한 장을 장식한다. 이 은행은 미국 시장공략의 전진기지였다. 고객기반도 미국인들이 주종을 이뤘다. 머린내셔널을 인수하며 글로벌 경영의 시동을 건 신한은행의 원대한 전략은 유효기간이 짧았다. 

태국에서 발화한 아시아 금융위기의 불길이 발단이었다. 지난 1997년 초, 국내 은행들은 해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환 위기의 후폭풍은 거셌다. 신한은행은 외환 위기 이후 이 은행 지분을 다시 처분한다. 생존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지난 1997년 초 257개에 달하던 국내은행의 해외 점포 수는 일년 만에 134개로 반토막이 난다. 그로부터 10여 년후. 신한은행은 인도 뭄바이, 베트남 하노이 등에 진출하며 글로벌 경영의 시동을 다시 걸었다. 주요 고객은 삼성, LG를 비롯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 외환 위기의 상흔은 여전히 깊다. 

수익 다변화 나선 CEO들 속속 ‘집으로’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애창곡인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세계적인 투자은행 인수에 나선 국내 최초이자, 최후일지 모르는 경영자다. 민 회장의 도전은 미국 내에서도 화제였다.

그가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나선 이면에는 성장에 부심하는 은행들의 현실이 있다. 
국내 은행들의 이자 수익은 총이익의 80% 수준. 주요 경영자들이 제품·사업·지역 포트폴리오 재편에 늘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황영기 KB국민지주 전 회장은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금융상품인 CDO 등에서 성장의 해법을 엿보았다. 

강정원 국민은행 전 행장은 떠오르는 중앙아시아에서 성장의 길을 모색했다. 재작년 미국발 금융 위기는 이들의 몰락을 부른 판도라의 상자였다. 이 스타 경영자들의 실패한 도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갈래다.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단골 메뉴다. 은행 경영자들이 과감한 도전에 나서기 보다 ‘품질 관리’ ‘비용 절감’ 등 안전운행에 치중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고개를 든다. 

“한국 은행들도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말하는 일본 기업의 전략 부재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은행들도 일본 기업처럼 상호 모방적인 정책을 취해왔어요.”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비용 절감을 비롯해 기존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치중하면서 전략적 의사 결정을 소홀히 해왔다”고 꼬집는다. 문제는 전략이다. 


글로벌 기업경영 모델 ‘스탠다드차타드’

‘전술적 성공이 전략의 실패를 되돌릴 수 없다.’ 영국계 금융회사인 스탠다드차타드 그룹(Standard Chartered)의 전략 방향은 명확하다. ‘아시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Asia focused)’는 캐치프레이즈가 그것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이 금융 그룹의 매출 90%는 영국 밖에서 발생한다.

외국계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에 지주 회사를 설립한 이 은행은 증권사, 저축은행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나가고 있다. 영국 대처 행정부가 집권 후 탈 규제의 수위를 높이자, 이 그룹의 경영자는 탈 영국으로 맞받아쳤다. 아시아가 성장의 키워드였다.

지난 2005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치열한 경합 끝에 인수에 성공한 제일은행은 아시아 공략의 거점이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에서 필요로 하는 금융 서비스의 대부분을 외국 글로벌은행들에 맡기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레이트 원전을 수주할 때 우리 은행들은 지급보증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6월 부임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의 취임사이다. 고해성사를 방불케 하는 대목. 

국내 은행들의 해외 진출 지역은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해외 점포의 60%가 중국, 베트남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에 몰려있는 것이 현주소다. 글로벌 경영전략도 경쟁 상대와 판박이이다. 문화적으로 가까운 지역부터 공략하라는 정석에 충실한 결과다. 

현지 법인도 주로 현지에 파견된 한국인 직원들이 담당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지난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국내 은행권은 여전히 ‘인재 수혈’, ‘ 오픈 이노베이션에 소극적이다. 


폐쇄적인 인사 시스템도 발목 잡아

지난 1999년, 에릭 김(Eric Kim)은 모국의 한 전자회사에 둥지를 튼다. 아시아 시장에서 약진하던 이 회사가 바로 삼성전자. 난공불락에 비유되는 유럽과 미국 시장 공략을 담당하는 글로벌 마케팅 담당 임원이 그의 직책이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삼성전자의 위상은 초라했다. 

이 회사 제품은 품질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브랜드는 기억나지 않는 중저가 상품에 불과했다. 2005년, 삼성전자는 인터브랜드의 브랜드 평가에서 소니를 앞선다. 
이 글로벌 기업이 ‘비상(飛上)’한 이면에는 글로벌 전자 산업의 챔피온 격인 소니를 타깃으로 삼아, 전사적으로 역량을 결집한 리더의 전략이 있었다. 

마케팅 분야의 경험이 일천한 인재를 과감히 발탁해 브랜드 가치 제고의 대임을 맡긴 과감한 도전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랑크프루트 선언은 이 회사 제품 질적 도약의 밑거름이었다. 이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 주인공은 에릭김이었다는 것이 토니 미첼 KDI 정책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스페인의 산탄데르가 3대째 한 가문이 지배하는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트남에 있는 신한비나은행 전경.

신한사태, 금융권 빅뱅 신호탄 될까

여의도 금융가는 폭풍전야다. 올 연말과 내년 초 주요 은행 수장들의 대대적인 물갈이도 예고돼 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이 오는 12월20일 임기가 끝나고, 내년 3월에는 산업은행장, 우리금융지주 회장, 우리은행장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다. 신한 사태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미지수다. 

우리금융지주 인수전도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KB국민지주, 하나금융지주를 비롯한 인수 후보들의 셈법도 복잡하다.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는 우리금융지주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연말 국내 은행가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꼬리를 문다. 신한금융 사태는 은행산업의 현주소다. 

국내 은행산업은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경쟁 상대를 곁눈질하고 있다. 정부 역할론도 다시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보다폰, 브리티시텔레콤(BT), 스탠다드차타드를 비롯한 영국 기업들은 대처 개혁의 적자들이다. 

“대처 총리 집권 후 탈 규제 바람이 영국에서 불기 시작합니다. 당시 국영 기업이던 브리티시 텔레콤(BT)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김흥진 BT코리아 사장은 영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봇물을 이룬 계기를 대처 개혁에서 찾는다. BT의 변화를 주도한 주인공이 바로 네덜란드 출신의 ‘벤 버바이엔’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코노믹리뷰 박영환 기자 yung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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