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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벌> 시리즈 낸 재벌 연구가 김진방 교수


“경영권을 물건처럼 주고받으니
 왕자의 亂, 형제의 亂에 휘말려”


엑스파일에서 형제간 경영권 분쟁까지. 두산, 삼성 등 국내를 대표하는 재벌 기업들의 추문이 잇따라 터져 나오며 재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두산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박용성·박용오 형제간의 싸움이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의 폭로전으로 치달으며 우애경영으로 이름이 높던 기업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으며,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그룹도 지난 1997년 대선에서 선별적인 자금 지원을 통해 특정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시도가 ‘뜻하지 않게’ 폭로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2000년 왕자의 난 이후 잊을 만 하면 수면 위로 고개를 드는 재벌 기업의 비리 백태는, IMF사태 이후 재벌 개혁의 기치를 들고 추진해온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투명성 제고 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더불어, 국내 재벌 기업들의 뼈를 깎는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 10일 인천시 용현동에 위치한 인하대학교 연구실에서 이 대학 김진방 경제학부 교수를 만나 재계를 향한 그의 애정어린 조언에 귀를 귀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진방 교수는 지난달 3년여의 고된 작업 끝에 《한국의 재벌》시리즈를 발표했으며, 이에 앞서 지난 1999년 《재벌 백서》를 출간한 바 있는 국내 최고의 재벌연구가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거친 김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총수 일가의‘경영권 프리미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러한 비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 두산그룹이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며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두산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분쟁 당사자인 박용오 전 회장의 장남(박경원 전신전자 사장)이 지주회사격인 두산산업개발(당시 두산건설)의 지분을 일찍 포기했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정을 받았다가 매각했다. 하지만 두산산업개발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4세 후계 구도의 중심 기업으로 부각되자 (박용오, 박경원 부자가)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두산그룹의 무게 중심이 두산에서 두산산업개발로 이동하면서 여러 가지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무르익었던 셈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과거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영권을 물건 주고받듯이 한 재벌 가문의 전근대적인 인식이 여전하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유독 대기업에서 경영권 분쟁이 잦은 이유가 있는가

(두 차례에 걸쳐 경영권 분쟁을 겪은) 현대그룹을 보자. 지난 1997년 말 현대그룹 총수 일가의 지분이 10%를 넘었다. 당시 현대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4대 그룹의 총수일가 지분이 평균 5% 정도였으니 지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이는 김영삼 정부 시절에 그룹 확장이 거의 없던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0년 들어 총수 일가 지분율이 4%대로 급락했다.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대주주(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 지분이 대거 처분되고 계열분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분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하락하자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모두 ‘순환 출자’구조로 바뀐 것이다. 

- 순환 출자 구조가 잇단 경영권 분쟁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IMF 이후 재벌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순환출자로 전환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두산은 한국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을, 한화는 대한생명을 각각 인수하면서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졌다. 또 현대그룹도 유동성 위기 극복과 계열분리 과정에서 지분이 낮아지다 보니, 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화됐다. 이를 순환출자나 연쇄출자를 통해 보완한 것이다. 

문제는 계열사들이 줄줄이 엮이다 보니, 지주회사격인 핵심 기업의 경영권만 인수하면 기업집단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지배구조를 바꿔서라도 경영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탈법과 편법을 통해 더 큰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영을 잘 하게 되면 보너스를 받는 게 경영권 프리미엄이어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경영권을 지니게 되면 편법, 불법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편법·불법이라면 어떤 내용을 의미하나. 두산 박용오 일가가 폭로한 내용을 말하는가.

지난 1997년으로 눈을 돌려보자. 당시 4대 재벌은 이 때부터 2년에 걸쳐 대거 증자에 나섰다. 해방 이후 발행한 전체 물량의 1.5배에 달할 정도였다. IMF라는 전대 미문의 국가부도 사태를 맞아 정부가 대기업에 부채비율 200% 이하를 요구하자 직접금융시장에 눈을 돌린 결과다. 흥미로운 점은 2년 사이에 발행 주식수가 1.5배 이상 늘어났는데 총수일가의 지분율은 (이에 비례해 )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편법을 동원한 결과다. 

두산을 예로 들어보자. IMF 이후 두산건설이 주식을 발행했는데 총수 일가가 대출을 받아서 이를 사들인다. 대출은 기업이 주선하고, 이자도 대신 내준다. 결국 자기 돈을 하나도 안들이고 주식을 그대로 인수한다. 동부건설도 자사주를 총수에게 팔았는데 외상으로 팔았다. 그리고 배당을 실시하고, 총수는 배당금으로 주식 대금을 갚는다. 결국 가공자본을 만들어 대주주 일가의 지배권만 강화한 것이다. 

- 이러한 지배구조 변화를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가 있는가. 

5%에도 못 미치는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를 줄줄이 엮는)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사례를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 후진적인 가족간 경영권 분쟁이 빈발하는 것도 한번 자리를 차지하면 경영 성과를 불문하고 (제왕적 지위를 누리는) 지배구조 탓이다.

지난 80년 이후의 혼맥 지도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재계와 관계·정계 사이의 결혼은 거의 없어졌다. 재계가 관계나 정계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핏줄이 아니라, 자금력을 통해서 매개될 수 있는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 하지만 스웨덴의 발렌베리, 독일의 BMW의 크반트가 등이 모두 가족 기업이지 않나

물론 이탈리아나 스웨덴 등에는 가족 기업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5~7%지분으로 40%에 가까운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업 집단은 없다. 대표적인 가족경영 기업인 스웨덴의 발렌베리도 지분율이 20%에 달한다. 

이 밖에 미국이나 영국은 거의 100% 지분투자한 자회사는 있지만 기업집단제도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들 국가와는 달리) 총수 일가를 제어할 아무런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주주대표소송이나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도가 있다. 하지만 개인주주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고. 부담해야 할 것은 많은 상황에서 소송을 하기는 어렵다. 

- 삼성을 비롯한 일부 대기업은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배구조 탓을 할 이유가 있는가. 

소유지배구조가 기업의 성과를 또는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나쁜 소유구조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지, 소유지배구조가 좋아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유지배 구조는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할 문제다. 성과가 좋았으니까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도 실적을 거론하는 이가 있다면 삼성자동차의 실패는 무엇인지, 또 그것이 국민경제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묻고 싶다.

- 정부가 국내기업들의 손발을 묶어두다 보니, 경영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소버린의 폐해를 이미 목격하지 않았나. 

이렇게 비유하고 싶다. 마치 아무도 모르는 지하자원이 있는데 외국인이 이를 캐내면서 (주주들과 )나눠 가진 것이다. 경영권 공방 과정을 통해서 누가 손해를 봤는지 반문하고 싶다. 

손해 본 사람은 경영권이 취약해진 최태원 SK회장뿐이다. 주주들은 이익을 봤다. 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해서 국민경제가 손해를 입은 것도 아니다. 경영을 잘해 주가가 높고 기업 가치가 높은 상황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서 누가 경영권을 가져가려고 하겠는가. 경영권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경영을 못해서 기업 가치가 하락했다는 의미이다.

- 삼성, 현대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의 지배 구조에 반대한다면 대안은 있는지 묻고 싶다. 

지주회사를 채택하고 있는 LG 모델도 고려해 볼 만한 부분이다. 물론 가족간의 이해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갔고, 그 과정에서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일가들은 GS, LS로 분리해 나간 것이긴 하다. 

하지만 책임을 확실히 물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금융과 산업의 분리가 이뤄진 점도 긍정적이다. 양자의 분리를 통해서 국민경제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다(지주회사를 하려면 법적으로 금융회사가 없어야 한다). 

- 재벌 기업들이 LG에 이어 지주 회사로 갈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가.

다른 정책적인·사회적인 압력이나 유인이 없다면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의 예를 들자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선 삼성생명을 떼어놓지 않으면 지주회사 체제로 갈 수 없다. 떼어 놓는다는 것은 포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엑스파일 사건이 보여주듯이 불법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여지도 대폭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지주회사제로 가려할지는 의문이다. 

- 지난 1997년 이후 정부는 재벌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후진적인 행태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정부가 투명성 제고를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공정공시제도에서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도까지, 실제로 외부여건이 많이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책임의 상당 부분은 검찰과 법원에 있다고 본다. 

SK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검찰이 적극적으로 기소를 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검찰이 기소를 해서 형법을 통해 배임판결을 받은 전례가 있다면, 주주들이 민법을 통해서 자기의 이익을 구제하는 것이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삼성의 엑스파일 사건의 처리방향이 상당히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검찰이 사건처리에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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