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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근공(遠交近攻)

익숙한 곳부터 공략

‘선난후이(先難後易).’ ‘중국의 잭 웰치’로 불리는 장루이민 하이얼 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해외 시장 공략의 대원칙이다. 처음부터 강한 상대와 겨루다 보면 비록 고달플지라도 스스로를 강하게 담금질할 수 있어, 시장 공략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통신 분야는 이러한 원칙이 먹혀들기 어려운 영역이다. 각국의 규제가 강하고, 투자비 또한 천문학적이어서 한 번의 실기가 전략 달성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

가까운 곳을, ‘치고’ 먼 곳과 ‘교유’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시장공략 원칙이 시공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배경이기도 하다(박스기사 참조). 선난후이를 기치로 내건 하이얼도 실은, 화교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 상대적으로 시장 흐름에 밝은 아시아 주변 시장을 우선 공략했다.

자국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다진 4년 후인 지난 1995년이 돼서야 인도네시아로 눈을 돌린 것. KTF의 말레이시아 현지 시장 진출도 비슷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지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역에 우선 진출하는 편이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오병기 글로벌 전략팀장은 말레이시아 시장 진출의 배경을 이 같이 설명한다. 미국이나 중국에 직접 치고 들어가는 대신,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미국이나 중국이 시장 규모만 놓고 볼 때 매력적이긴 하지만, 당장 파고들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는 만큼 ‘전선’을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좁혀 입지를 탄탄히 구축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논리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국내 시장에서 힘겨운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는 사정도 감안했다.

KTF가 동남아 시장 상황을 꿰고 있는 배경은 일찌감치 이 지역에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온 덕분이다. 지난 2003년 인도네시아 국영 기업을 상대로 2000만달러짜리 컨설팅을 수행한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현지 사정을 손금 보듯이 속속들이 알게 됐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당시 CDMA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자사 전문가들로 팀을 꾸려서 이 회사에 파견했던 것.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을 통해 ‘프리콤(Freekom)’사에 지분(19.9%)을 투자한 것도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링백톤(Ring Back Tone)서비스와 모바일 콘텐츠(Mobile contents) 제공 사업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아직까지 음성 통화와 문자메시지 중심의 서비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성장 전망이 밝다는 판단을 했어요. 번호이동성제도가 이미 시행중이었고, 국내외 업체들의 공정 경쟁을 보장하고 있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오 팀장은 ‘유모바일’에 과감히 베팅을 할 수 있던 배경을 이같이 설명한다. 전략적 제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9개국 8개 통신사업자와 연합해 ‘커넥서스’라는 이름의 ‘이동통신연합체’를 구성했다. 이 연합체에 가입한 고객의 수가 1억 3000만명.

세계 최대 이동통신 단체인 GSMA 이사회 멤버로 신규프로젝트를 검토하는 EMC, 그리고 프로젝트 검토 실무 총괄을 맡는SRG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의 통신업체 NTT 도코모와도 상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케팅과 네트워크 노하우를 서로 이전받고 양국에서 히트한 부가서비스도 도입해 서비스 특화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현대판 원교근공전략의 또 다른 형태이기도 하다.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활동 무대를 단계적으로 넓혀나가 전체 매출의 10%를 해외 시장에서 거둔다는 것이 이 회사의 장기 목표이다.

‘비전 2015’는 이러한 글로벌 시장 전략의 로드맵이다. 동남 아시아를 교두보로 삼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그 첫 단계이다.

아프리카 시장도 일찌감치 파고들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러한 원칙에 따라 본격적인 진출을 일단 유보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

●비전 2015로

단계적인 시장 공략

흥미로운 점은 ‘비전 2015’가 냉철한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는 것. 글로벌기업들에 비해 아직은 소비자를 파고드는 첨단 마케팅, 현지 네트워크 구축을 비롯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진단이 출발점이다.

영국의 보다폰을 위시한 유럽의 통신 강자들은 유럽, 그리고 뒷마당격인 아프리카를 손금 보듯이 꿰뚫고 있다. 글로벌기업들은 문화 인류학자들을 고용해 소비자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등 앞선 마케팅 기법으로 시장을 파고 든다.

신흥 시장의 변화에 주목하며 포트폴리오를 신속하게 재구축하는 역량 또한 뛰어나다는 평가다. 미국 시장은 더욱 변화무쌍하다.

SK텔레콤이 틈새시장격인 MVNO(이동통신망사업자)시장에 진출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월트디즈니도 이 시장에 진출했다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풍부한 아동용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으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 글로벌기업조차 소비자들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읽어내는 데 실패한 것.

이밖에 영국 보다폰, 스프린터를 비롯한 간판급 통신 강자들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지역의 신흥 강자들이 잇따라 등장하며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도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KTF가 동남아 시장 공략의 시동을 먼저 걸고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글로벌 무대의 강자들과 전략적 공조를 통해 힘을 비축하고 동남아시아 시장을 파고들면서 유럽이나, 미국,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 진출 공략의 시기를 조심스럽게 저울질 해나가겠다는 복안이다.

“(아프리카 현지에서도)광범위한 유통망 구축 등을 위해 활발한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고 있으며, 진입 비용이 높은 미국 시장도 부담을 줄이면서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진출 방안을 꾸준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오 팀장의 설명이다.

●지향점은

‘모어 댄 모바일’

조영주 KTF 사장은 부임 후 자신의 직함을 바꾸었다. 명함에 새겨진 직함을 ‘CEO(최고경영자)’에서 ‘CSO(Chief Servant Officer)’로 교체했다. 이른바 고객 감동 경영을 위해 최고경영자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임직원들과의 허심탄회한 소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쇼’ 홍보를 위해 ‘윤희정과 프렌즈’ 공연에서 ‘고엽(Autumn Leaves)’ 등의 재즈곡을 불렀으며, 최근 러시아 축구 대표팀의 명장 히딩크 감독의 선전을 언급하며 임직원들의 분발을 독려하는 등 튀는 행보를 적극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KTF는 늘 변화에 선제적인 대처를 해온 선두주자이다. 이동 통신 업계 최초로 핸드폰 디자인 공모 행사를 개최하는 등 디자인에도 고객의 감성을 반영해 왔으며, 소비자 조사와 각종 마케팅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바일 퓨처리스트’ 제도를 운영하는 등 이른바 ‘집단지성을 밸류체인에 적용해 왔다.

이런 회사의 수장이 변화의 총대를 매고 나선 배경은 물론 글로벌 시장의 급변 탓이다. 미국의 버라이존(Verizon)이 올텔을 최근 275억달러에 인수하며 덩지 불리기에 나선 것도, 영국의 BT(브리티시 텔레콤)가 ‘서비스 기업’을 표방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페인의 텔레포니카, 프랑스의 오렌지를 비롯한 글로벌 통신업체는 오랜 세월 자국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면서 형성된 사내 문화를 글로벌 경쟁에 적합한 고객지향적형태로 ‘튜닝’하는 환골탈퇴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KTF의 ‘비전 2015’는 이러한 변화의 첫 단추이다.

공세적인 성장 전략인 ‘모어 댄 모바일(More than Mobile. 모바일을 넘어서)’은 그 지향점이다. 영국 BT(브리티시 텔레콤)의 Beyond Telecom, BBC의 Beyond Broadcasting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인데, 기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가능성의 영역을 적극 파고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회사 측은 “글로벌 시장을 엔터테인먼트, 전자상거래와 더불어 3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나갈 것”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글로벌시장 공략 법칙◇

주변 시장 찍고 본무대 도전장

신흥시장 기업들이 빠른 성장을 유지하면서 글로벌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하고 있다. 아짐 프렘지가 이끄는 인도의 위프로, 인포시스(Infosys), 중국의 하이얼, 레노보, 브라질의 암베브(Amvev), 멕시코의 세멕스(Cemex) 등은 자국 시장에 대한 탄탄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도 적극 진출하며 세계 경제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도의 자동차 업체인‘마힌드라&마힌드라(mahindra&mahindra)’, 필리핀의 졸리비 등도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업체. 이들 ‘루키’들의 사례는 신흥 시장에서 터를 닦고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들 기업이 더 이상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약자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글로벌기업에 비해 브랜드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해외 현지 시장에 대한 정보력도 떨어지는 이들이 악조건을 극복하고 선전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들이 구사하고 있는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해외에 진출할 때는 자국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근 시장부터 공략해 들어가는 전략이 그것이다.

가까운 곳을 공격하고 멀리 떨어진 곳과는 사귀며 역량을 비축하는 이른바 ‘원교근공(遠郊勤功)’의 원칙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해외에 진출할 때도 자국 시장과 소비자 취향이 비슷한 인근 국가부터 공략해 이러한 우위를 살려나가며 힘을 비축하고,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시장은 추후에 공략했다.

백색 가전분야의 하이얼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반면 내노라하는 글로벌기업들도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실패한 사례가 많다. 세계 최대의 할인점 월마트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으나, 한국시장에서 사업을 접고 떠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프랑스의 할인점인 까르푸도 비슷한 사례다. 전국 시대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은 전략가 범수가 기틀을 놓은 원교근공의 원칙을 앞세워 주변국을 하나씩 점령했다. 그리고 제, 초를 비롯한 원거리 국과는 우호를 다지는 방식으로 대륙의 통일을 달성한 바 있는데, 이러한 외교 정책이 시장 공략의 원칙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통신기업 CEO 튀는 행동 ‘왜’◇

사내 문화와 비전의 통합 작업

글로벌기업 최고경영자들이 톡톡 튀는 행보로 조직원들의 위기감을 고취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스페인의 통신 기업인 ‘텔레포니카(Telefonica)’가 대표적 실례이다. 이 업체는 민영화의 물결 속에서 모바일 텔레폰 업체인 ‘모비스타’를 인수했다. 모비스타는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며 텔레포니카의 최대 캐쉬 카우로 부상했다.

텔레포니카의 ‘훌리오 리나레스’ 사장이 위기의 조짐을 간파한 것이 이때를 전후해서이다.

이윤폭이 늘어나면서 조직원들 사이에서는 소비자를 무시하는 태도가 뚜렷해졌으며, 마케팅, 판매를 비롯한 부서별 갈등의 수위도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며 그의 위기감을 끌어 올렸다.

부서별 마찰은 이견의 조율과 목표를 향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힘들게 만들었다. 남미지역의 전화 회사들을 속속 인수하면서 이러한 갈등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조직이 커지면서 사내 정치도 더욱 치열해져만 갔다. 리나레스는 글로벌 비전과 조직 문화사이의 골에 주목했다.

글로벌기업을 지향하고 있지만, 스페인 통신시장 독점기업 시절 배태된 사내문화가 발목을 잡았던 것. 그가 착수한 첫 작업이 바로 사내문화와 비전의 통합작업(VCI, Culture-Vision Alignmnet)이었다. 이를 위해 일선 대고객 서비스 품질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렸다.

최고경영자가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튀는 행동으로 변화를 몸소 실천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프랑스의 통신업체인 ‘오렌지(Orange)’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이들은 이 때를 전후해 브랜딩 통합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며 자국의 좁은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조영주 KTF 사장은 물론, 전임자인 남중수 현 KT 사장도 KTF 사장 시절 ‘튀는 행보’로 화제를 불러모은바 있다.

KTF 최고경영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 회사가 글로벌기업 도약의 시동을 본격적으로 걸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공략의 포문을 열면서, 글로벌 전략의 총 사령탑인 최고경영자들도 더욱 바빠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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