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Statistics Graph

10. 백인 거지 팻말 들고 한 푼 호소 - 자원전쟁에 신음하는 뉴욕 -
 

취재 =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1. 지난달 15일 오후 6시, 뉴욕 맨하튼 32번가에 위치한 한인 타운 초입에 위치한 감미옥. 설렁탕, 육개장을 비롯한 한국 전통 음식으로 뉴요커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인 타운의 대표선수 격이다. 국적이 궁금해서였을까. 일본인 여성 관광객 두 명이 기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식사 초기 빈자리가 숭숭 눈에 띄었지만, 30분 가량이 지나자 카메라와 캠코더를 든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식당 안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나가기를 반복한다. 아시아인들이 주로 앉아있는 매장의 분위기가 맘에 안 들었는지 다시 밖으로 나가는 이들도 눈에 띈다. 뉴욕 맨하탄의 한인 타운은 요즘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색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포장마차형 주점이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이곳에서 밀, 쌀,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이나 기름값 인상의 후폭풍을 여간해서는 피부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2. 같은 날 오후 3시, 뉴욕 맨하튼 브로드웨이에 있는 ‘갭’의 중저가 브랜드인 ‘올드 네이비(old navy)’ 매장. 창고형 매장인 이곳은 아동복을 비롯한 의류 제품을 층마다 가득 쌓아놓은 채 판매하고 있었다. 월마트나 코스트코를 비롯한 대형할인점의 매장 구성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내부 전경이 눈길을 끈다. 매장에 비치된 ‘대형 카트’를 밀고 다니며 물건을 고를 수 있으며, 각층마다 카운터에 열명 가까운 직원들이 고객들의 계산을 돕는다. 대형 매장은 피부 색깔이 제각각인 관광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 매장에서 불과 5분 거리에 한국인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포레버21’이 있다. 독특한 디자인에 저렴한 가격대의 제품에 대한 입소문이 나서인지 이 매장 역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아메리칸 걸스’의 쇼핑 봉투를 들고 막 들어선 벽안의 모녀 역시 뉴욕스타일의 쉬크(sheek. 세련된)한 의류를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경기 침체 논쟁이 넘쳤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고문이기도 한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를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CNN을 비롯한 뉴스 채널에 등장해 경기 진단과 더불어 부시 행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으며, 지난 1분기 천문학적인 적자를 입은 씨티그룹의 대규모 감원소식도 전파를 탔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불리는 뉴욕 맨하튼의 중심가는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유가, 곡물가가 고공비행을 하고 있는 가운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쓰나미’처럼 월가를 덮쳤지만 리세션(recession. 경기 침체)의 징후를 포착하기는 어려웠다.

 

□ 몰려드는 관광객이 경기 지탱


백화점인 ‘메이시(Macy)’ ‘스테이플스(Staples)’ ‘갭(Gap)’ ‘빅토리아시크릿(Victoria Secret)’은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명품 할인 매장인 ‘센츄리 21(Century 21)’도 마치 ‘도때기 시장’을 방불케 했다. 전철역에서 ‘베사메 무초’를 열창하는 히스패닉의 노랫 가락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젊은 여성들, 그리고 뉴욕의 명물인 말탄 경찰관의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유가 급등이나, 곡물가 상승이 심각하긴 하죠. 하지만 뉴욕 맨하튼은 사실 경기 침체의 징후를 파악하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닙니다. 요즘 달러 약세로 유럽, 아시아의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거든요.” 세계 5대 은행인 BNP파리바 뉴욕 지점의 유일한 한국인 직원인 옥큰별(35) 씨.


“경기 침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너털 웃음을 짓는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 프랑스계 은행에 입사한 애널리스트인 그는 유로화 강세로 구매력이 높아진 유럽인들로 요즘 “뉴욕은 만원”이라고 귀띔한다.


지난 80년대 미국의 자존심인 록펠러 센터를 매입하며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를 자랑하던 일본 기업의 빈자리를 유럽 기업들이 채우고 있다고. 다만, 금융권은 찬바람이 쌩쌩 도는 편이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계 은행들이 직원들을 대규모로 자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곡물 가격 인상의 여파로 아이티를 비롯한 빈국에서 폭동이 발발하고, 태국이 쌀 수입을 잠정 중단했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오전, 뉴욕의 일상은 분주했고, ‘리세션’의 징후를 엿보기는 어려웠다.


국제 유가의 고공비행, 그리고 금이나 백금, 곡물의 가파른 가격상승을 ‘호재’로 여기는 전문직들도 적지 않았다. 패러마운트 옵션(Paramount Option)에서 근무하고 있는 ‘레이몬드 카본(Raymond Carbone)’ 트레이더가 대표적인 실례이다.


뉴욕 상품거래소(NYMEX)에서 고객사들을 상대로 유가 선물을 거래하는 그는 요즘 이 시장이 매우 뜨겁다고 전한다. “유가 선물이나 옵션의 변동 폭이 높아 리스크는 과거보다 치솟았지만, 큰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 또한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흥미로운 점은 월스트리트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두드러진 것. 씨티그룹을 비롯한 미국계 금융회사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아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 반면, 보수적인 운용원칙으로 유명한 BNP파리바 등 프랑스계 금융회사들은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미국계 금융기관에서 해고된 인력들을 프랑스계 금융기관들이 다시 채용하고 있다”는 게 옥큰별 씨의 전언이다. 뉴욕 증권거래소(NYSE)의 브론즈 황소 상 앞에서 자신의 사진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아시아와 유럽의 관광객들, 그리고 갭이나, 바나나 리퍼블릭, 메이시 매장은 뉴욕 경기 상황의 ‘바로미터’였다.


잘 빠진 몸에 핫팬티 한 장을 달랑 걸친 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는 캠코더를 대자 더욱 목청을 높인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뉴스코퍼레이션’ 건물 1층에는 좌우로 헤드라인이 흐르는 가운데 계열 언론사인 폭스채널의 한 여기자가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어 오랫동안 먹지를 못했습니다” 뉴욕 속에는 또 다른 뉴욕이 있다. 오후 2시, 맨하튼의 24번가. 한 백인 남자가 도움을 호소하는 팻말을 들고 애처롭게 앉아 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이 남자는 카메라를 들이대니, 수치심을 느끼는 지 바로 팻말을 내린다.

 


□ 대체에너지 개발에 옥수수 농지값 급등


그리고 기자 일행을 휑한 시선으로 노려본다. 상가 뒤로 돌아가 다시 접근해 촬영을 시도해 봐도 반응은 매번 같았다. 뉴욕에는 이른바 ‘워킹 푸어(Working Poor)’ 계층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 도시 거주민들 중 55만 명이 바로 이러한 워킹 푸어 계층이다.(출처: Schuyler Center)


치솟는 식료품 가격은 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 CNN에 따르면 이 남자처럼 구걸을 하거나, 아니면 보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뉴요커들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뉴욕에 본사가 있는 ‘슐러 센터(Schuyler Center)’ 측의 설명이다.


이들 계층은 어린 자녀를 돌보고 임대료를 내기에 역부족이다. 장시간을 높은 노동 강도로 일을 하고 있지만, 현 소득만으로는 각종 공과금, 식료품, 임대료를 내기에도 빠듯하다는 것. 요즘 큰 폭으로 뛰고 있는 생필품 값은 이들의 주름살을 더하고 있다.


체감 물가가 치솟고 있는 것이 부담거리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0달러 정도를 들고 나가면 그럭저럭 장을 볼만했는데요. 요즘은 원자재 가격이 치솟다 보니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식료품이 많지가 않습니다.”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구소련의 키르기스스탄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금은 미국의 한 신학 대학을 다니고 있는 유학생 배인구(28)씨의 전언이다.


옥수수나 밀 가격의 상승은 가계의 살림살이에 주름살을 드리는 골칫거리다. 뉴욕 도심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 거리인 퀸즈나, 한인들이 주로 몰려 사는 플러싱에만 가도 유가 급등이나, 곡물가 상승의 여파를 감지할 수 있다. 퀸즈의 우드사이드에는 아침부터 하염없이 자신들을 채용해 줄 고용주를 기다리는 히스패닉들을 볼 수 있다.


곡물가 급등에 따른 웃지 못할 진풍경도 펼쳐지고 있다. 뉴욕 교외의 옥수수 재배 농지가 최근 20% 이상 큰 폭으로 치솟았다는 것이 현지 부동산 업자들의 전언이다. 한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땅이었으나, 대체 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에탄올의 원료인 옥수수를 사들이면서 덩달아 농지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


비영리단체인 EDF(Environmental Defense Fund)의 마샤 아르노프 박사는 “미 정부의 대체에너지 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옥수수 특수는 물론 아마존의 황폐화까지 불러왔다 ”고 지적한다.
 

맨하튼의 차이나 타운이 빠른 속도로 뉴욕에서 세를 넓혀가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진기한 물건을 찾기 위해 이곳에 몰리는 데다, 생필품값 인상으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는 뉴요커들이 알뜰 쇼핑 차원에서 이 지역을 자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오전, 뉴욕 맨하튼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심지어 라면도 한인타운보다 더욱 싼 값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던 ‘이탈리아타운’을 이제는 한구석으로 완전히 밀어냈다. 뉴욕의 중국인들은 유가·곡물가 급등의 호기를 뉴욕상권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는 호기로 활용하고 있었다.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