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Statistics Graph

“충무로나 할리우드나 끈끈한 인간관계가 중요해”

 

이병헌 미국 진출시킨 영화 전문가 황정욱 사장

2009년 11월 04일 13시 35분조회수:1,689

한국 영화계는 올해 경사가 겹쳤다. 영화 <해운대>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운 데 이어, 배우 이병헌이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에서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오르며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썼다.

이 한류 배우의 할리우드 입성을 도운 숨은 전략가가 바로 황정욱 ‘에이전트 웹’ 사장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기업형 매니지먼트사인 ‘스타서치’를 창업하며 국내 엔터테인먼트업계 역사의 한 장을 풍미했던 그를 만나 미국 진출의 비밀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국민배우 ‘허장강’ 씨를 스크린으로 보며 자란 세대이신데, 요즘 격세지감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한국인 배우가 미 할리우드에 진출해 주연급 조연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니 세상이 참 많이 달라지기는 했죠.(웃음)

허장강의 후예들이 동아시아를 뒤흔든 데 이어,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어요. 솔직히 지금이니까 하는 말입니다만, 배우들도 그 가능성을 크지 않게 봤던 게 사실입니다.


할리우드에는 청룽(성룡)이나 저우룬파(주윤발), 리롄제(이연걸) 등 ‘터줏대감’들이 있지 않습니까. 성공 가능성에 ‘반신반의’한 것도 무리는 아니죠.
이병헌 씨가 제게 미국 진출에 너무 ‘올인’하지는 마시라고 하더군요. 과연 할리우드에 입성할 수 있을지 본인도 미심쩍은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요. 뭐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웃음)


왜 이병헌 씨였나요. 한국 영화계에는 뛰어난 남자 배우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 공하는 배우들은 무엇보다 ‘포스’가 있어요. 이병헌, 이정재 같은 배우들이 다 그렇습니다. 병헌 씨는 무엇보다 고집이 있어요. (제가) 좀 도와준다고 해서 허리를 숙이지도 않고… 장인정신이 투철한 배우입니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무척 좋았어요.


국내 최초의 기업형 매니지먼트사인 ‘스타서치’에서 갈고닦은 실력이 빛을 발한 건가요.
내로라하는 배우들은 다 모여들었어요. 황신혜, 김혜수, 신은경 씨 등이 다 이 회사 소속이었습니다.

이때 제작한 <체인지>는 당시 꽤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지금 연예인들이 흔히 타고 다니는 ‘스타 크래프트’를 처음 도입한 매니지먼트사도 바로 스타서치였습니다.


아버님이 잡지 명가로 유명한 ‘신태양사’를 운영하셨죠. 어릴 때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까.
(지금은 타계한) 김희갑 씨 구타사건으로 유명해진 임화수 씨가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였어요. 그분이 영화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집을 드나들던 그분도 늘 지켜보았고, 잡지사에 글을 기고하던 작가들을 볼 기회도 많았어요. 김동리 씨가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그래서인가요. 최민수 씨가 출연한 <리베라메>를 비롯해서 흥행 영화도 몇 편 제작하셨죠.
< 체인지>도 제가 제작한 영화입니다. 카메오 출연에 나선 분들이 무려 20여명이나 됐어요. 카메오들이 너무 많다 보니 중간에 필름이 잘리는 분들도 있었고 조인성 씨가 그 영화에서는 지나가는 남자로 나올 정도였습니다.(웃음)


비결이 뭔가요. 할리우드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한국배우를 단시간에 알린 노하우가 있습니까.
에이전트 400여명이 활동하는 CAA에 눈을 돌렸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에이전시입니다. 그때가 벌써 4년 전이네요. 이병헌 씨와 함께 이 회사를 방문했어요.

여기서 독립영화 분야의 최고 에이전트인 존 푸탁 회장을 볼 수 있었죠. <택시드라이버>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거물급 에이전트였어요.


이 거물급 할리우드 에이전트가 황 사장을 만나주기는 하던가요.
약속을 하고 찾아갔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연락처조차 파악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지인’이 존 푸탁 회장과 죽마고우였어요.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병헌 씨가 무척 빨라요. 태권도 유단자이기도 하고….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틀어줬어요. 남자 주인공이 술값을 내지 않고 소동을 피우는 깡패들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 뛰어오릅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격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신(Scene)’이 그 사람들한테도 인상적이었나 봐요. 아직 이 영화의 비디오도 안 나왔던 때입니다. CJ엔터테인먼트에 협조 요청을 했지요.


좀 더 일찍 할리우드에 진출할 기회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시장에서 워낙 인기가 높지 않습니까.
사실, 이병헌 씨도 할리우드에 좀 더 일찍 데뷔할 뻔했어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케빈 코스트너 주연, 애쉬튼 커처 조연의 <가디언> 배역 제의가 들어왔는데, 결국 거절을 했어요.


할리우드의 배역 제의를 뿌리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때는 왜 고사했습니까.
해양구조대에서 활동하는 동양인 구조대원 역할이 왔는데요. 일단 배역이 좀 작았어요. 결국, 잘 알고 지내던 한 일본인 감독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답변은 명확하더군요.

한류 스타 이병헌이 그 정도 영화의 ‘조연’으로 나오는 걸 일본인들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황정욱 사장이 美 CAA본사에서 영화배우 이병헌 씨와 함께 존 푸탁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황정욱 사장이 美 CAA본사에서 영화배우 이병헌 씨와 함께 존 푸탁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에 이전트 400여명이 활동하는 CAA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병헌 씨와 함께 이 회사를 방문했어요. 여기서 독립영화 분야의 최고 에이전트인 존 푸탁 회장을 볼 수 있었죠. <택시드라이버>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거물급 에이전트였어요.”


미국 시장 진출에 욕심을 부리다 자칫 일본의 한류 팬들을 실망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군요.
드라마 <올인>이 일본에서 크게 ‘히트’하면서 그는 ‘한류스타’로 발돋움했어요. 그런 그가 덩치가 큰 서양인들 사이에서 인명 구조요원으로 활동하는 모습은 솔직히 ‘리스크’가 있었어요.


배역을 지나치게 꼼꼼히 따지다 실패한 사례도 있지 않습니까. <아이언맨>이 그랬죠.
이정재 씨가 이 영화의 조역을 제안받은 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을 사사건건 괴롭히는 악당 역할이었는데, 이를 거절했어요.

쇳덩이 옷을 입은 남자가 날아 다니며 전투를 하는 이 공상과학 영화가 그 정도로 뜰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죠.


그래서 전문가가 더 필요한 건 아닐까요.
제가 한때 역술인을 자주 찾았어요.(웃음) 용하다고 소문난 분한테 가서 제가 점찍어둔 배우를 캐스팅해도 될지 여쭤보고 재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맞추기는 하는데, 꼭 시기를 놓치더라고요. 그 배우를 쓰면 망할 거라고 해서 포기했는데, 다른 감독 영화에 바로 출연해서는 대박을 터뜨렸어요. 그런데, 이 배우가 그 다음 작품에서 꼭 쪽박을 차는 거예요.


미 영화판의 노련한 전문가들을 상대로 개런티 등을 협상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CAA가 또 다른 한국 연예인을 지명하며 보고 싶다고 해서 간 적이 있어요. 회장방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저쪽에서 톰 크루즈가 오는 거예요.

다들 용수철이 튀듯 벌떡 일어났어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와 돌아가면서 악수를 했습니다. 일부러 그를 불렀던 거 같아요.(웃음) 기선제압용인 셈이죠.


영화판에 뛰어들어 일찍부터 고생을 하면서 훗날 할리우드에 진출할 힘을 기른 셈이네요.
<바람의 파이터>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캐스팅부터 참 힘들었어요. 공개 오디션을 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에 ‘무림고수’들이 참 많은 데, 다들 비주얼이 안 되더군요.(웃음)

박진영 사장이 비를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못하겠다고 연락이 오더군요. 한 달 사이에 이 가수가 정말 무섭도록 확 뜬 거죠.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었죠. 영화 <제이슨 리> 제작 때문에 빚을 꽤 졌어요. 1998년 12월27일, 점심을 먹으러 가다 뇌경색으로 쓰러졌어요. 그때는 다들 어렵지 않았습니까.

정신이 아득 해오고 한달 반 동안 입원을 해야 했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셈입니다. 그런데 죽었다 일어나도 빚은 전혀 줄지 않더라구요.


발등의 불은 어떤 식으로 끄셨습니까.
직원이 MBC 베스트극장에 내보려고 한다면서 방구석에서 원고를 쓰고 있더라구요. 원고 내용을 훑어봤는데, 내용이 좋았어요.

한 방에 뜰 수 있겠더라구요. 그게 바로 <시월애>입니다. 하도 궁색하다 보니 나중에 판권을 1억원에 팔았어요.


전화위복이 된 건 아닙니까.
30 대 초반에 코래드, 유니레버를 거쳐 (범삼성계이던) 새한에 들어갔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새한미디어의 특수관계사(새한에서 지분을 보유)였죠. 디지털미디어라는 회사였습니다. 테드 터너를 비롯해 업계 거물은 그때 대부분 만나보았구요.

하지만 영화판에서 실패하면서 세상이 달라졌지요.이 정도로 하는데도 정말 안 되는 건가 하는 거였죠. 그런 쓰디쓴 회한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영화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뭘 배우셨습니까.
영화계가 참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연세대를 나와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온 제 눈에 참 만만해 보였던 거죠. 배급은 객관적이고 계수화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 시스템을 갖출 여지가 있습니다. 조직화하면 성공할 것으로 자신했어요.

문제는 너무 모든 것을 서구식의 합리적인 잣대로만 접근하려고 했어요. 그게 먹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어요. 영화는 끈끈한 인간관계가 그 성패를 좌우합니다. 배우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야 하고….


‘아이데오’의 팀 브라운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다음번에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배우는 누군가요.
<모래시계>에 출연했던 이정재입니다. 아직 마땅한 영화를 못 만나서 포트폴리오가 없을 뿐이죠. 그는 뭐라고 할까요. 포스가 강렬한 배우입니다.


최근 서울을 방문했던 하토야마 총리 일행을 예방한 적이 있지요. 일본 쪽으로도 보폭을 넓힐 계획이십니까.
초등학교 동창이 하토야마 총리 사무실의 동아시아 고문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윤성준 고문)와 함께 하토야마 총리가 묶고 있는 호텔에 가서 두 사람이 만나는 걸 그냥 지켜봤지요.(웃음)


범유럽주의자인 ‘칼레르기’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연은 누구인가요.
이병헌 씨에게 이 역할을 제안할 계획입니다. 칼레르기는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국제주의자입니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카사블랑카>가 이미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그를 서양사람으로 그리고 있어요. 사실, 칼레르기는 동양인에 가까운 외모였습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