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Statistics Graph

“리스크 관리는 결국 리더십 문제…직원 마음 사야 건전성도 좋아져”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에게 듣는 금융 CEO 리더십

2009년 04월 13일 18시 27분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는 것을‘탁’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
온전한 병아리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영자가 독주해서는 결코 ‘줄탁동시’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조언을 경청해야 합니다.



이화언(65) 전 대구은행장은 ‘아름다운 퇴장’의 주인공이다. 박수 갈채를 받을 때 무대에서 내려왔다. 올해 초 은행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의 ‘용퇴’ 결정은 금융가에 잔잔한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는 늘 이슈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4년 전 대구은행장에 부임할 당시에도 ‘지속가능경영’을 새로운 경영 화두로 제시하며 자산 경쟁에 ‘올인’하던 이 분야 게임의 법칙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대구은행은 대한민국 금융산업을 선도하는 이른바 ‘녹색경영’의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9일 대구시 대명동 센트로 펠리스에 있는 개인사무실에서 이 전 행장을 만나 그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그는 한시간 남짓한 인터뷰 끝자락에 기자의 팔 위에 손가락으로 사자성어 하나를 꾹꾹 눌러 썼다. 40년 은행원 생활에서 터득한 리더십의 요체가 바로 상생의 정신을 강조한 줄탁동시이다.



Q. 경영 일선에서 용퇴하신 지도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어제(8일)부터 센트로 펠리스에 있는 개인사무실로 출근해 책도 보고 지인들도 만나며 소일하고 있습니다.

Q. 요즘 시장 환경은 ‘살얼음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은행장 용퇴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최고경영자의 주요 임무가 바로 후계자 승계입니다. 하춘수 신임 행장은 37년간 같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한 인물입니다. (제가) 행장 시절 혼신의 힘을 기울여온 지속가능경영을 완성할 적임자입니다.

Diversity in the Ecological Soup
Diversity in the Ecological Soup by jurvetson 저작자 표시



Q. 금융계는 노장들이 맹활약을 하는 대표적 분야가 아닌가요. 대구은행 출신인 라응찬 회장도 70대입니다.
(저 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토박입니다. 이 지역 은행에서만 40년을 일했습니다. 그런 제가 (다른 분야)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웃음) 나이(44년생)도 적지 않고요. 은행장으로 재임하며 지역 사회와 교유하고, 지속가능경영의 ‘주춧돌’을 놓았으니 그 결과에 만족할 따름입니다.

Si es que en el fondo son unos buenazos...
Si es que en el fondo son unos buenazos... by Guesu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신한금융지주 수뇌부들과는 대구은행 시절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지 않습니까.
라응찬 회장도 대구은행 비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지점장도 지냈습니다. 라 회장뿐만이 아닙니다. 신한은행에는 대구은행 출신들이 꽤 많습니다. 이인호 신한은행 전 행장은 중앙지점에서 (저와) 같이 근무한 인연도 있습니다.

신한 은행 직원
신한 은행 직원 by acote1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Q. 그때 왜 안 옮기셨어요.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웃음)


Q. 두 은행이 신용관리 시스템이 뛰어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겠군요.
지 난 1974년대 박영복 사기 사건이 도화선이 됐습니다. 금융권이 공동으로 ‘신용분석사’ 자격증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저를 포함해 21명이 처음으로 자격증을 땄습니다. 제가 바로 1기 신용분석사입니다. 희대의 사기꾼 덕분에 평생을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지식을 얻은 셈이죠.(웃음)

Faces of the fallen
Faces of the fallen by Nurpu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박영복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이 대한민국 은행들의 여신관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셈이군요.
‘금 록통상’을 운용하던 박영복은 쓸모없는 ‘돌산’의 가치를 부풀려 엄청난 돈을 대출받았습니다. 그리고 부도를 내버려 은행들의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지난 외환위기 때 한보·기아 사태에 버금가는 대형 사건이었죠. 이 사기 사건을 계기로 국내은행에 신용조사부서들이 신설됩니다.


Q. 지난해 국내 은행들이 다시 위기설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국내 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교한 신용관리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최고경영자는 리스크 관리 전문가의 리더십을 존중해야 합니다.


Oh my God I look Cute!!
Oh my God I look Cute!! by creativesam 저작자 표시비영리



Q. 지난 10년간 두 차례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비결이 바로 그것인가요.
저 뿐만이 아니라 (대구은행에는) 전문성을 갖춘 신용분석사 300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기업 영업점의 RM(Relationship Manager), SRM(Senior Relationship Manager)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서울지점장으로 근무할 때 혹시 대출 외압은 없었습니까. 당시 한보나 기아 등이 파국으로 치달을 때였습니다만.
대 구은행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지분이 전혀 없습니다. 정부가 은행의 신용분석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없는 거죠. 당시 한보, 기아차가 회사채 지급 보증 요청을 했습니다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외환위기를 무난히 극복한 것도 이들 신용분석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Chinese New Year in Dalian - risk evaluation
Chinese New Year in Dalian - risk evaluation by GraemeNicol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춘추시대 오자서나 범리 등은 모두 ‘기미(예측)’의 달인들이었다고 합니다. 지구온난화가 은행 경영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보셨습니까.
대구은행은 지역에 거점을 둔 지방 은행입니다.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지속가능경영이 생존의 조건입니다. 지구온난화가 굴뚝기업은 물론 금융기관의 경영에 미칠 리스크를 면밀히 따져보았습니다.

Q. 다들 ‘자산 경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지방 은행이 ‘녹색경영’을 주창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우 리, 신한, 국민, 하나 등 4대 은행과 규모 경쟁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작지만 알차고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을 숙고했습니다. 그리고 정답은 녹색경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기업도 시민사회의 일원입니다. 국내 금융기관 중 지속가능보고서를 발표하기는 대구은행이 처음입니다.

Green Leaf of a Bio Plant in Nature
Green Leaf of a Bio Plant in Nature by epSos.de 저작자 표시




Q. 이 보고서는 제작 때부터 화제를 불러모으지 않았습니까.
지속가능보고서인만큼 환경 부담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친환경 용지와 콩기름 잉크를 사용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최고경영자는 위험 관리 분야의 총책임자격인 ‘CRO(Chief Risk Manager)’등
리스크 관리 전문가의 리더십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Q. 지역사회를 ‘은행 서비스’에 붙들어 매기 위한 ‘심모원려’로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대구는 대구은행의 거점이 아닙니까.
대 구 에서 무려16개 은행이 각축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구은행은 절반에 가까운(44%)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녹색경영도, 지속가능경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역사회와 교유하면서 공동체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Remembrance Day 2008
Remembrance Day 2008 by ViaMoi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Q. MB정부의 녹색성장은 제조업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요.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은 녹색성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제 가 서울에서 만난) 한 건설업체 CEO분과 똑같은 질문을 던지시는군요. 환경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대출을 많이 해주거나, 이자도 깎아줄 수 있습니다. 총수익의 4.5% 규모, 130억원 정도를 지속가능경영에 꾸준히 지출하고 있습니다. 국내 금융권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Q. 시류에 휩쓸리다 텃밭이 허물어지며 경영난에 봉착한 기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재임기간 중 경영 성적표는 어땠습니까.
은행장으로 취임하던 지난 2005년, 당기순이익은 1753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순익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지난해는 2612억원에 달했습니다. 2006년 2405억, 2007년 2608억원을 각각 기록했습니다.

Q. 비결이 무엇인가요.
대 구은행은 이 지역 점포 수만 160개에 달합니다. 다른 은행들을 압도하는 수준입니다. 직원들 대다수가 토박이들입니다. 속된 말로 고객사의 밥그릇과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손금처럼 들여다볼 정도입니다. (저만 해도) 대구은행에 신입사원으로 입행해 무려 40년간 잔뼈가 굵었습니다. 하 행장도 마찬가지입니다.

Warning!!!...Tiger in training...:O))
Warning!!!...Tiger in training...:O)) by law_keve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Q.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이기도 합니다. 지역사회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점이 새로운 도전을 어렵게 하지는 않습니까.
지 역 경제 전반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대구은행에서도) 며칠 전에도 신용보증기금에 50억원가량을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포스코를 비롯해, 구미의 전자단지 등이 국가 경제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역 경제도 곧 좋아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Inauguración de la Planta Manufacturera Posco México (06/08/09)
Inauguración de la Planta Manufacturera Posco México (06/08/09) by Gobierno Federa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사업 포트폴리오가 금융지주사들에 비해 취약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좀 더 멀리 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대 구경북은 다른 지역보다 녹색성장 시대를 이끌어가기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린에너지 연구생산 기반과 더불어 환경 클러스터(Cluster)도 잘 조성돼 있습니다. 특히 환경 부문은 지역은행의 성장엔진으로 부상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IA Summit 2007 Mind-Map
IA Summit 2007 Mind-Map by Kaeru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손자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 인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승의 요건으로 사람을 꼽았습니다만.
행장으로 취임한 후 늘 저를 사로잡은 화두이기도 합니다. 직원들을 먼저 감동시켜야 합니다. CEO레터를 매주 쓰며 직원들에게 경영방침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Shake your Booty!
Shake your Booty! by Carlo Nicor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Q. 편지가 상당히 진솔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내밀한 개인사를 공개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재 미가 없으면 직원들이 읽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직원들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편지 중간중간에 제가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은행원으로 살아온 삶을 진솔하게 반영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야 클릭 수도 높일 수 있습니다.(웃음)

Q. 줄탁동시가 바로 이러한 경영철학을 반영한 건가요.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밖에서 쪼는 것을 ‘탁’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 온전한 병아리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영자가 독주해서는 결코 줄탁동시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조언을 경청해야 합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고
 

티스토리 툴바